소설리스트

5툴 플레이어-44화 (44/309)

< -- 외전 -- >

<특파원 최기훈 기자의 메이저 관람기-이준혁 선수편>

이준혁과 약속한대로 경기를 관람하기로 했습니다. 경기는 오후 7시 5분에 시작이 되었습니다. 관중은 경기 끝마칠 때까지 절반을 조금 넘긴 듯 했습니다. 성적이 좋지 않다보니 이해가 갔습니다. 그래도 작년에 비하면 관중수가 늘어난 거라고 합니다.

제가 자리 잡은 위치는 홈플레이트 뒤쪽부근에서 조금 뒤쪽의 자리였는데, 덕분에 선수들의 타격하는 모습과 투수의 투구모습이 모두 잘 보였습니다.

다행이었습니다.1회 초 자이언츠의 공격, 상대하는 워싱턴의 선발투수는 크레이그 슈탐멘입니다. 95마일의 빠른 볼을 던지는 그는 첫 타자를 그라운드 볼로 가볍게 처리하는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2번 타자 프레디 산체스를 맞이해서는 2구째 던진 공이 맞아나갔습니다. 빠른 타구가 1루수 키를 넘겼고, 우익선상으로 떨어졌는데, 타구를 봐서는 주자가 충분히 2루로 갈만하다 싶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샌가 우익수 수비를 하고 있던 준혁이 달려와서는 그 공을 2루로 송구하더군요.

산체스는 1루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후 3번 타자를 좌익수 플라이로 잡아내며 간단히 끝내나 싶었는데, 4번과 5번 타자에게 연속으로 중견수-좌익수앞 안타를 맞더니 1실점하고 말더군요.

그후, 6번 애런 로완드를 2-3루간 땅볼로 잡아내면서 1회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시작된 1회 말 공격.

기다렸던 준혁이 2번 타자로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마이너리그 때는 경기하는 모습을 두어 번 봤었지만, 메이저리그에서 타석에 들어서는 모습을 처음보는것이라 솔직히 기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타격코치도 미스터리하다고 한 연습타격과 실전타격이 얼마나 다른지를 말입니다.

준혁이 상대할 투수는 좌완인 배리 지토였습니다.

배리 지토는 2007년 ML 투수 역대 최대 액수의 계약(7년간 1억 2600만 달러)으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유니폼을 입은 선수입니다. 하지만, 계약 이후 3년간 기대이하의 성적을 보여주며 자이언츠의 팬들의 분노와 조소의 대상이 되었었죠. 7년간 오클랜드에서 보여주었던 102승 63패(승률 0.618) 방어율 3.55 WHIP 1.25 평균투구이닝 6.44의 성적과는 달리 자이언츠에서의 3년 동안 31승 43패(승률0.419) 방어율 4.56 WHIP1.43 평균투구이닝 5.79로 기대에 못 미치며 계약당시 적지 않은 사람들의 우려대로 자이언츠의 재앙이 되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4년째를 맞이하는 올해 들어 그는 드디어 몸값을 하기 시작했는데요. 9경기에 나서서 6승 2패 방어율 2.80를 기록 하고 평균투구이닝도 6.77을 기록중이입니다. 게다가 이 9경기 중에는 작년 사이영상 2위인 세인트루이스의 웨인라이트와 다저스의 차세대 에이스인 클레이튼 커쇼와 의 맞대결도 있었는데, 웨인라이트를 상대로는 2대 0의 승리를 거두었고, 커쇼를 상대로도 8회말 1사 1루까지 1대 0으로 이겨놓고 마운드를 내려갔었습니다. 비록 뒤에 올라온 구원투수가 대타 매니 라미레스에게 역전 투런홈런을 맞으며 승리는 놓쳤지만, 자이언츠가 그에게 거액의 연봉을 지급하며 기대했던 상대팀 에이스와의 맞대결에서 전혀 밀리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 전성기 때의 모습으로 부활을 하고 있는 배리 지토를 상대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하며 준혁의 타석을 지켜봤습니다. 선구안이 좋은 선수답게 9구째 까지 끌고 가더군요. 아쉽게도 10구째 파울플라이로 물러나긴 했습니다만, 준혁에게 힘을 뺐던지 다음 타자 애덤 던에게 홈런을 허용하는 배리 지토였습니다.2회 말 다시 준혁의 타석이 돌아왔습니다.

배리 지토가 오늘은 컨디션이 좋지 않은지 선두타자 조쉬 윌링햄에게 또다시 솔로홈런을 허용했습니다. 그리고나서 땅볼 아웃 하나를 겨우 잡고는 2루타와 포볼을 허용하더군요. 투수인 슈탐멘의 보내기번트로 2사 2-3루 상황이 되었고, 1번 맥스웰에게 사사구를 허용 만루가 되었습니다.

이번엔 앞선 주자가 없던 타석과 달리 만루의 기회가 준혁에게 걸렸습니다. 올 시즌 한 달간의 기록밖에 없지만, 득점권 상황에서의 준혁의 타율은 5할 7푼으로 자신의 평균타율보다 훨씬 높습니다. 이 득점권 타율이 높기 때문에 더더욱 고타율이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좌우투수를 가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대를 하며 주시를 했습니다.

초구 커브는 그대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2구째 슬라이더도 그대로 지켜봤습니다.

2볼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준혁의 선구안이 좋다는 것이 다시 한 번 들어나는데요. 떨어지던지 달아나던지 에는 상관없이 스트라이크존을 벋어나는 유인구에는 기가 막힐 정도로 대처를 잘한다는 것입니다. 유인구에는 헛스윙이 거의 없는 타자죠. 배리지토는 본래 포심과 커브의 투피치 투수였습니다. 거기에 투심과 커터를 추가하고 체인지업의 비중을 높이며 오클랜드에서 안정적인 성적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자이언츠에 와서는 구속을 높이려다 오히려 3년을 말아먹었지만, 올해는 슬라이더의 비중을 높임으로서 부활을 이루어 내고 있는데, 그 덕분에 올해 지토는 우타자를 상대로는 커브-체인지업의 조합을, 좌타자를 상대로는 커브-슬라이더의 조합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이번타석의 준혁에겐 전혀 통하지 않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3구째, 이번 볼마저 볼이 되면 밀어내기의 위험이 있다 보니 지토도 스트라이크를 던질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리고 그 공을 놓칠 준혁이 아니었습니다.

결과는 중견수 앞 안타. 깊은 타구는 아니었지만, 3루 주자가 들어오기엔 충분했습니다. 이렇게 3대1로 역전을 시켰지만, 후속안타는 불발이 되어 워싱턴의 더 이상의 득점은 없었습니다. 그리고는 워싱턴이 4회 투런 홈런으로 2실점하며 동점을 허용한 것 이외에는 양팀 모두 6회까지 소강상태로 경기가 진행되었습니다. 물론 워싱턴이 역전을 당할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4회 파벌로 샌도발에게 솔로 홈런을 허용한 후, 자이언츠의 4번 타자 오브리 허프에게도 잘 맞은 장타를 허용한 것이었습니다. 라인드라이브가 걸린 타구는 빠르게 우익수인 준혁의 머리위로 날아갔습니다. 외야수가 잡기 가장 힘든 타구가 그 머리위로 넘어가는 타구라고 합니다. 거기다 빠른 타구였습니다. 하지만, 그 타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려간 준혁은 마지막에 점프를 하며 기어이 잡아내고 말았습니다. 탄성이 절로 나왔습니다. 수비를 잘한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멋진 플레이에는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7회 말 워싱턴의 공격이 시작되었습니다. 자이언츠에서는 배리 지토가 계속 마운드에 올라오고 있었는데, 풀카운트 만에 선두타자 맥스웰을 포볼로 내보내었고, 다시 준혁의 타석이 돌아왔습니다. 나는 다시 기대를 하게 되었습니다. 앞선 수비에서 좋은 호수비를 보여줬기에 더더욱 그랬습니다. 징크스라면 징크스 일수도 있는 것이 준혁에게도 있었는데, 커다란 호수비 뒤에 맞이하는 타석에서는 커다란 타구를 날린다는 것이었죠. 물론 나쁘지 않은 좋은 징크스입니다. 그리고, 역시나 준혁은 나의 이런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지토의 결정구인 커브를 걷어 올려 투런홈런을 때려낸 것입니다. 연습타석때도 그랬고, 앞선 타석에서도 그랬지만, 준혁의 타격 폼은 힘을 실어주는 타격이라기보다는 컨택위주라는 느낌이 강합니다. 그런데도 이번의 홈런처럼 펜스를 넘겨버리기도 합니다. 빅리그에 승격되고 한 달이 조금 넘어가고 있는 기간 동안 오늘까지 합쳐서 8개의 홈런이라면 절대 파워가 약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타격코치의 고민을 알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극단적 타격 폼을 가지고 있었던 토니 바티스타, 끊임없이 방망이를 흔들어대던 게리 세필드, 전형적인 기마자세의 제프 베그웰... 등 타격 교본은 휴지통에 던져버린 듯 한 타자들에 비하면 준혁의 타격자세는 양호합니다. 그리고, 쉽게 타격 폼 수정을 못하는데 는 타격의 바란스란것이 아주 조그만 것으로 무너질 수도 있다는 점 때문이기도 합니다. 오프시즌때가 된다면 타격 폼 수정에 도전을 해 볼 수도 있겠지만, 대대적으로 바뀌진 않을듯합니다. 메이저리그의 스타일이 그러하니까 말입니다. 아무튼, 준혁의 홈런으로 내셔널스파크는 순간 난리가 났습니다. 얼마나 함성이 대단하던지 바로 옆에서 하는 말도 안 들릴 정도였습니다.

팬들이 기립해서는 박수를 보내며 커튼콜을 요청했습니다. 물론 나도 그 대열에 동참했습니다. 올해도 그다지 성적이 좋은 편은 아닌 워싱턴이었지만, 그래도 신인왕이 유력한 영건 강타자의 등장에 팬들 모두 즐거워하는 표정이었습니다. 비록 이날 경기도 워싱턴은 6대 5로 역전패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7회 배리 지토를 끌어내리는 데 성공한 워싱턴이었지만, 곧바로 8회 초에 나온 중간계투들이 연이어 3실점을 하며 역전을 허용해버렸고, 그 점수가 그대로 경기 끝까지 유지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워싱턴 팬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리그 최하위 팀의 경기의 전형을 보여준 워싱턴의 경기였습니다. 하지만, 준혁의 경기를 보았고 그 경기내용이 나쁘지 않은, 아니 무척이나 좋았다는 사실에 저는 기분이 좋았습니다. 추신수 이후, 또 하나의 한국을 대표하는 타자의 존재를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하루였기에 가슴 한가득 뿌듯함을 간직하고 호텔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2010년 5월 27일 워싱턴에서 최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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