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툴 플레이어-33화 (33/309)

< -- 3. 2010 스프링캠프 -- >

" 모두들 수고했다. 다들 호텔로 가서 쉬도록 하고, 내일 보자. "

감독의 말과 함께 청백전이 끝나며 오늘의 공식 훈련 일정이 끝났다.

한국 같으면 저녁 늦게까지 감독과 코치들이 선수들을 붙잡고 훈련을 시킬 터이지만, 메이저리그엔 그런 것이 없다. 정해진 훈련 이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선수 개개인의 몫이니까 말이다. 이렇게 자율에 맡긴다고 하지만, 적어도 스프링캠프에 참가한 선수치고 시간을 허투루 보내는 이는 없었다. 모두들 자신의 생각과 스케줄대로 개인훈련에 힘썼다.

준혁도 마찬가지였다. 내기의 대가로 스트라스버그에게 저녁을 사고는, 숙소로 돌아와 곧장 방망이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본래 스프링캠프가 차려진 플로리다가 운동하기에 좋은 날씨였지만, 이렇게 저녁이 되면 더더욱 운동하기에 좋다.

--부~웅--

몸에 열이 오르고, 조금씩 땀이 나오려한다. 그때, 준혁의 시야에 스트라스버그가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수건을 들고 오는걸 보니 쉐도우피칭 연습을 하려고 하는가 보다. 그런데, 수건을 들지 않은 반대편 손의 위치가 밉상이다. 배를 문지르고 있었는데, 폼이 꼭 자알 얻어먹었다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준혁은 다가오는 스트라스버그에게 퉁명스럽게 한마디 던졌다.

" 가난뱅이한테 밥 얻어먹으니 좋냐? "

" 먼저 내기를 건 사람이 누구였더라? 그리고 내가 적당한 곳으로 안내해 주지 않았어? "

준혁이나 스트라스버그나 메이저스프링캠프는 처음이었다. 하지만, 준혁보단 스트라스버그가 주변 지리는 조금 더 낯익었다. 그 이유에는 프로선수가 되기 전, 부모님과 스프링캠프 시즌에 맞춰 몇 번이나 플로리다 관광을 왔었던 것이 한몫했다. 그래서 식당의 선택과 찾기는 스트라스버그가 했는데, 저렴하면서도 맛 또한 괜찮아서 나름 만족은 되었고.... 그냥 심술이었다.

" 휴우. 그래. 그건 고맙다. 하지만, 내가 너하고 내기를 또 하면 성을 간다. 갈어. "

오늘의 청백전을 떠올리자, 준혁은 한기마저 든다. 얼마나 무섭게 집중을 하던지...

" 오우 그거 좋은데, 스트라스버그로 성을 바꾸고 내동생 하는 건 어때? "

하지만, 스트라스버그는 오히려 좋아라한다. 그래도 동생이라니! 그건 안 될 말이다.

" 허참. 이놈 봐라. 나이는 내가 더 많거든. 바꾸더라도 내가 형을 해야지 안 그래? "

" 한국에는 결혼을 해야 어른이 된다는 속담이 있다며? 그래도 성을 스트라스버그로 바꿀 생각은 있나본데? "

기억력도 좋은 놈. 방금 그가 말한 속담은 올해 1월 달에 결혼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준혁이 해준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 덕분에 오히려 대답이 궁해졌다. 이럴 때는 역시 부모님이다.

" 우리 아버지 우신다. 나를 불효자로 만들 생각은 말아라."

라고 말하고는 다시 스윙연습을 한다. 그러자, 스트라스버그도 더 이상 놀릴 생각은 없었던지 물끄러미 준혁의 스윙을 본다. 그러더니 다시 한마디 한다.

" 거참, 스윙만 봐서는 그리 대단한 타자는 아닌데 말이야. "

" 내비 두셔. 것보다 너도 연습하러 왔으면 연습이나 해. "

하지만, 스트라스버그는 관전모드를 풀 생각이 없어보였다. 들고 있던 수건을 목에 걸치기 까지 했다.

눈앞서 스윙훈련을 하고 있는 준혁은 오늘 청백전에서 비록 자신에게 삼진을 당하긴 했지만 그의 전력을 다한 피칭을 11구까지 끌고 간 타자였다. 그리고 이어진 다른 투수들을 상대로는 펄펄 날았었다. 그런데, 그런 타자치고는 타격 폼이 정말 저렴하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묘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 오른쪽 옆구리가 비었어. 배트 끝이 또 내려가잖아. "

" 냅 둬. "

연이은 스트라스버그의 지적질에 준혁은 짜증이 슬금슬금 올라온다. 그 순간 과거의 기억이 하나 떠올랐다.

' 그러고 보니 저놈 투수라고는 하지만, 타격도 좋았었지?

(NL은 투수가 타석에 들어선다.)'

하지만 이건 아니잖아.

" 야. 그래도 명색이 타잔데, 투수한테 타격 폼 지적을 받고 있으면 뭐가 되냐? "

스트라스버그의 연이은 지적질에 정신이 분산되어서였을까? 아니면 손에 땀이 찼던 것일까? 손에서 미끄러지며 빠진 배트가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또 다시 이어진 스트라스버그의 말.

" 배트를 꽉 잡아. "

"... ... "

3월 4일 시작된 시범경기가 보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 기간 동안 워싱턴이 거둔 승리는 단 2승이었다. 그래도 준혁이 회귀 전에 비교하면 나은 성적이었다. 그때는 15일간 모든 경기에서 패했었으니 말이다.

" 넌 오늘도 2이닝만 던지냐? "

" 글쎄. 오늘은 투구 이닝을 좀 더 길게 가져간다고 하던데. "

오늘은 시범경기에서는 스트라스버그가 앞선 2경기와는 달리 중간투수로 내정되어있었다. 시범경기 시작하고 3번째 등판이었는데, 앞선 두 경기에서는 2이닝만 던지긴 했지만, 좋은 투구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래서 코칭스태프에서도 기대를 하고 있었다. 기록의 의미가 없는 시범경기라지만, 그래도 처음으로 맞이한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 시즌이다 보니, 스트라스버그 본인으로써도, 승리 하나 정도는 기록해 보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게다가 중간투수이니 가능성도 있었다.

" 그러니까, 오늘 부탁 좀 하자고. "

라며 준혁에게 파이팅을 요청했다.

"그래, 나만 믿어봐. 시범경기 수위타자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보여주지. 하하하 "

시범경기가 시작되고 20일 현재 준혁은 5할에 가까운 타율로 타율3할 6푼 6리로 2위인 애틀란타의 2007년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자이자, 올해 각종 야구전문지의 유망주 랭킹에서 스트라스버그를 재치고 1위에 올라 있는 헤이워드를 압도적으로 누르고 있었다.

" 네 부탁이 아니더라도 오늘은 좀더 힘내야하기도 하거든. 오늘은 진짜 1위가 누구인지, 진정한 나의 모습을 보여줘야하니까 말이야. "

준혁은 오늘시합 상대인 애틀란타쪽 덕아웃을 보며 말했다. 곧 시합이 시작될 예정이라, 준비를 하고 있는 헤이워드의 모습이 보였다.

" 대신, 나도 부탁하나 하마. 딴 놈은 몰라도 헤이워드에게는 안타 하나라도 허용하지 마라. "

같은 유망주 랭킹 1,2위임에도 조만간 마이너로 내려갔다가 7월이 다되어서야 메이저로 올라오는 스트라스버그와는 달리 헤이워드는 개막전부터 로스터에 포함이 된다. 연고지를 옮기고 구단주가 바뀌면서 대대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짠돌이 이미지를 완전히 벗지 못한 워싱턴이었다. 자신의 기억으로는 스트라스버그를 마이너로 내리는 이유가 FA시기를 늦추고, 돈을 절감하기 위해서였으니 말이다. 물론 상대적으로 아주 저렴한 준혁에게 돈 때문에 그러지는 않겠지만, 준혁은 오히려 다른 쪽이 문제였다.

전국구 투수인 스트라스버그는 시기가 늦어졌다 뿐이지, 올해 메이저입성은 당연시 되는 선수였고, 실재로도 그랬다. 하지만, 준혁은 지명도도 미비했고, 연봉도 저렴했다. 게다가 메이저 경험은 전무하다보니, 기존의 메이저리그 배태랑 들에게 치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 워싱턴의 메이저리그 외야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들이 마이너리그 불가옵션을 가지고 있는지 까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준혁보다 수십 배나 돈을 더 받는 선수를 부상이나 극심한 슬럼프가 생기지 않은 다음에는 마이너리그에 내려 보낼 리는 만무했으니 말이다.

사정이 이러니, 결국 준혁이 할 수 있는 일은 강력한 임팩트를 계속해서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애틀란타 개막전 로스터에 당당히 포함되는 헤이워드와의 맞대결에서 극간의 차이를 보여준다면, 그만큼 그의 이름이 더 알려질 것이고, 준혁 자신의 운신의 폭도 넓어질 것이 분명할 것이다.

" 왜? 헤이워드하고 안 좋은 일로 아는 사이야? "

" 아니. 오늘 첨봐. "

자신의 승리를 위해서라도 애틀란타의 어떤 타자들에게도 살살 던진 생각이 없는 스트라스버그였다. 하지만, 준혁의 태도는 언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헤이워드만 콕 집어서 안타도 맞지 말라니.

" 헤이워드는 내가 꼭 이겨야 하거든. "

하지만, 이어진 준혁의 말에 스트라스버그도 그의 의도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물론 그의 속마음을 완벽하게 안 것은 아니었지만, 준혁이 헤이워드에게 승부욕을 드러냈다는 것, 이것 하나만큼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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