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 2009 트리플 A -- >
준혁은 곰곰이 기억을 되살려본다.
" 신종플루는... 이미 대유행중이고, 아이폰도 3Gs까지 이미 발매가 된 상태( 미국 발매일은 2009.6.19일 임)로 팀 동료 중에도 들고 다니는 이가 있고... 그리고 또 뭐가 있을까? "
한참을 고민 해봐도 그다지 생산적이다 싶은 것 들은 마땅히 떠오른 것들이 없었다.
" 뭘 그리 혼자 중얼거려? "
" 아, 아뇨. "
" 아니긴. 신종플루, 아이폰은 또 왜? "
귀도 밝네. 이미 다 들었다니 이야기 안 해줄 수도 없고. 준혁은 괜스레 입맛을 다시며 입을 열었다.
" 과거로 왔잖아요. "
"그래. 그런데 오늘따라 과거로 왔다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하는 것 같다. 너. "
" 그렇게 되나요? 하하하. "
젠의 지적에 준혁 자신이 생각해도 상당히 많이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그리고 젠의 재촉에 다시금 이야기를 한다.
" 과거로 왔기 때문에 1년 후 게임이 발매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제가 알고 있는 사실이 이 게임발매일 뿐일까 싶더라고요. "
그렇겠네. 라며 젠도 고개를 끄덕여줬다. 그러면서
'돈 벌수 있는 방법. 그런 기억들은 없을까? 하고 생각한 거지?'
라며 되묻기까지 한다.
" 어떻게 알았어요? "
놀라는 표정의 준혁을 보며 그녀는 별거 아냐 라며 말을 계속했다.
"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만난 사람들 중에 열에 여덟아홉은 돈에 관련된 소원을 빌더라고. "
" 그랬구나. 나도 돈이라도 왕창 벌수 있게 해달라고 할 걸 그랬나 싶네요. "
" 왜? 다시 야구를 하게 된 것이 싫어? 돈이 더 좋아? "
" 아뇨. 그렇다기 보다는. 하하하. "
젠의 직구에 준혁은 웃으며 얼버무렸다. 야구를 다시 할 수 있게 된 것은 분명 그에겐 행운이었다. 하지만, 야구대신 돈이 생겼다고 하더라도 나쁠 것은 없는 것 아닌가 싶기도 했다. 돈 준다는데, 생긴다는데 싫어할 사람 거의 없을 거다.
" 없는 소리 하기는. 뻔히 보이는구만. 뭐 그래도 준혁은 소원을 잘 선택한 거야. 들어줄 수가 없는, 불가능한 소원이라도 한번 입 밖을 내뱉으면 끝이야. "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싶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젠을 바라본다.
"돈에 관한 것도 들어줄 수가 없는 소원에 속하거든. "
" 램프의 요정이라면 소원 한가지씩은 무조건 들어주는 것 아니었어요? "
" 동화책을 많이 봤구나. "
" ... ... "
" 그럼, 세상을 멸망시켜주세요. 이런 소원을 빈다면 들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
" 에이. 그런 소원을 비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
" 있었어. 정확히 812년 전에 말이지. 나이 30도 안 먹은 삐쩍 골았던 남자였는데, 너희들 말로는 염세주의자라고 해야겠지? 암튼 그 남자가 그런 소원을 빌더군. 세상의 인간들은 다 썩었다. 그러니 멸망시켜달라고 하더군. "
그 소원을 들어줬었더라면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지도 못했겠군. 아니지. 들어줄 수 없는 소원이라고 했으니까 상관이 없는 건가?
" 그래도 한번 말하고 나면 끝이라니요. 그렇다면 소원을 말해도 안 들어주기도 한다는 건가요? "
" 빙고~! 이해력이 좋구나. "
젠은 엄지손가락과 중지를 맞대어 '딱'하고 소리를 내었다. 게다가 그가 정답을 말했다는 사실에 칭찬까지 해줄 듯 한 미소까지 짓고 있는 모습에 기가차서 한마디 했다.
" 에이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소원을 들어주는 램프라면서요? "
" 없기 왜 없어? 램프의 요정은 무조건 소원을 들어준다는 편견도 버려! 들어줄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거야. 그렇다고 소원을 말할 기회를 늘여 줄 수는 없지. 규칙 위반이니까. 이런 상황을 머라 한다더라. 아 그래 '낙장불입'이라고 한다더군. "
" 그건 또 어디서 들은 이야긴데요? "
갈수록 첩첩산중이다. 여기서 왜 '플라워 배틀'에서 사용하는 전문용어가 나오냐는 말이다.
" 누구한테 들었겠어. 동종업종 종사자한테서 들었지. 오래전에 한번 마주친 적이 있었는데, 그 치가 그러더군. 낙장불입이라고. 왜 그런지 이유도 들었는데, 참으로 오묘하더라고. "
" 네~에 네~에. "
이제는 더 이상 왜 돈은 안 되는지 물어볼 마음도 사라졌다. 화투치는 동종업자 램프의 요정이라니 어른들의 동화도 아니고 말이야.
" 허허허... "
헛웃음만 나온다.
이래나 저래나 결국은 스스로 돈 벌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건데... 스캇 보라스라도 에이전트로 골라서 FA대박을 노리는 수밖에 없는 건가?
' 과거로 올 줄 알았으면, 로또 당첨번호나 좌악 뽑아서 오는 건데. '
후회는 아무리 빨리해도 늦다는 말이 맞은 가보다. 그래도... 누가 알았냐 말이다. 과거로 돌아오게 될 줄을! 돈벌이 방법의 발견에 실패한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시간은 흘러 흘러... 양키스가 월드시리즈에 우승했다는 기록을 남긴 채 메이저리그 야구도 휴식기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준혁은 느긋하게 시간을 보낼 수 없었다. 오히려 바쁘게 움직였다. 내년이면 외야의 강력한 경쟁자인 브라이스 하퍼가 워싱턴과 계약을 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계약 2년 후인 2012년 4월에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르는데, 올해 워싱턴과 계약을 한 스티븐 스트라스버그와 함께 워싱턴 투타의 2괴물 중 한명이었다. 본래 포수로 입단해서 외야수로 전향을 하니, 준혁이 먼저 외야의 한자리를 선점해 놓지 않으면 입장이 곤란하게 될 수도 있는 문제였다. 90만 달러짜리인 자신과는 비교도 안 되는 990만 달러의 귀하신 몸인 하퍼다. 상위리그에서 괜찮은 실력을 보여주더라도 몸값에서 밀려서 치이는 곳이 메이저 리그였다. 물론 준혁 스스로도 메이저에 올라가더라도 괜찮은 실력은 훨씬 상회할 자신이 있었지만, 그래도 방심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외야자원에 골머리를 앓고 있고 팜에도 변변한 외야 유망주가 없는 지금의 워싱턴의 상황을 놓칠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역시나 그런 그의 생각이 맞았다는 듯이, 구단에서는 AFL(애리조나 폴리그)에 스트라스버그와 함께 그의 참가를 결정했다. 애리조나 폴리그는 각 구단들의 AA와 AAA의 유망주들만으로 팀을 꾸려서 경기를 갖는 교육리그의 성격을 띠고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끝이 난다면 유망주들만 모아놓았을 리가 없을 것이다. 각 팀들은 AFL을 크게 3가지의 용도로 이용했는데, 우선 첫 번째로 마이너리그 우등생들끼리 시합을 함으로써 경험을 쌓게 하기 위한 것이 있었고, 여기에서 같은 연장선으로 유망주중의 유망주를 골라내어 자신의 팀의 선수는 40인 로스터로 보호하고, 괜찮은 다른 팀 선수는 데려오기 위함이 두 번째 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스트라스버그와 준혁의 경우인 세 번째 용도가 있는데, 그것은 메이저리그 승격을 앞두고 결정을 내리기전 시험을 해보는 것이었다.
스트라스버그야 과거의 행적을 보더라도 100%부합하겠지만, 준혁은 어떻게 확신을 하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 그는 확신하고 있었다. 팀 내 사정이 그러했기 때문이었다.2009년 시즌은 이적선수들(애덤던 (37홈런 99타점.0.282) )과 기존선수들(짐머맨 (29홈런 94타점 0.293) )이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내어주며 팀 성적과는 달리 타선은 좋았다. 1번부터 중심타선까지 흐름이 매끄러워서 정교함과 파괴력이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결정적인 약점이 있었으니, 그것은 라인업에 준족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그 덕분에 워싱턴의 감독은 작전을 구사하는데 있어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었고, 득점루트의 제한이라는 약점을 지니게 되었다. 그렇다고 앞에서 보다 뒤에서 세는 게 훨씬 빠른 워싱턴의 팜은 스티븐 스트라스버그라는 전국구의 천재를 영입하고도 랭킹 26위를 마크하고 있었고, 그마나 그 안에서도 쓸 만한 외야자원은 전무하다 시피 했던 것이 과거의 일이었고, 현재 준혁이 회귀를 한 상태에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 그가 이렇게 자신 있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자신감을 여지없이 AFL에서 들어내어 보여준 준혁은 혼자 계시는 아버지를 만나러 잠시 귀국했던 고향집에서 구단으로부터의 전화를 받게 된다. 바로 메이저리그 캠프에 합류하라는 통보를 말이다.
준혁에겐 이제부터 진정한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