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툴 플레이어-28화 (28/309)

< -- 2. 2009 트리플 A -- >

" 아이고고고..."

나이도 얼마 안 먹었는데(정신연령이 아니라 신체나이말이다.), 컨디션은 그다지 좋지 못하다. 그래도 이번엔 비행기가 아니라 버스라서 그나마 다행이랄까?

갑자기 웬 비행기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메이저리그는 전용기, 마이너리그는 전용버스라고 다들 알고 있을 터이니 말이다.

하지만, AAA정도 되면 매번은 아니더라도 원정지가 어디이냐에 따라서 비행기를 이용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비행기란 것이 전용기가 아니라는 것이 문제다. 민간여객기에 일반 탑승객처럼 보딩패스(탑승권정도로 생각하면 되겠다.)를 받고 올라야하는데, 여기서 선수들이 비즈니스 석에 앉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리라 본다. 당연히 이코노미석이다. 게다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AAA연고도시들이 대부분 중소도시들이다보니 직항로가 거의 없어서 대도시에서 환승을 해야 한다. 정작 비행시간은 짧지만, 그 외의 대기시간이라던 가하는 것들이 많이 소비되는 것이다. 그래서 선수들은 오히려 7~8시간을 달리더라도 한방에 갈수 있는 버스를 선호했다.

그렇다고 버스가 편하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그래도, 요즘 체력이 많이 좋아졌다는 생각은 든다. 예전 기억엔 일주일씩 원정을 다녀오고 나면 그날은 파김치가 되어 쓰러졌었는데, 과거로 돌아온 효과 때문인지, 컨디션이 조금 좋지 않다고 느끼는 것 말고는 양호한 편이니 말이다.

" 저 왔어요. ~. "

그러고 보니 과거로 회귀해서 바뀐 점이 하나 더 있다.

원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문을 열고 들어가면 항상 젠이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거다. (원정 때는 집에 램프를 두고 간다.) 물론 목적(?)이 있다 보니 그런 것이겠지만, 아무도 없이 휑한 집보다는 그래도 누군가가 있다는 게 나쁘진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처음과는 달리 그녀에게 적응이 된 것인지, 아님 단련이 된 것인지 준혁 자신도 젠과의 관계에서 차츰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는 점도 한몫했다. 한바탕 열락의 폭풍이 집안을 휘돌았다.

정렬적인 키스와 성난 파도와 같은 두 남녀의 움직임에 침대의 매트리스가 요동쳤다.

그리고, 절정에 오른 두 남녀는 그 느낌을 음미하며 한참을 그대로 있었다.

" 하아~~. "

샤워를 하고 나오니 젠은 이미 옷을 차려입고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이미지를 카피하는 것이라고 했으니 옷을 입었다라고 말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갈아입은 것으로 보였다.

자신은 이렇게 운동을 하고 오거나 섹스를 하고 나면 땀도 흘리게 되곤 해서 샤워를 해야만 한다. 그런데, 젠이 샤워하는 모습은 한 번도 본적이 없는 듯 하다. 그래도 항상 좋은 냄새가 나는 걸로 보면 자신이 모르는 때에 씻는 건가 싶기도 하고, 판타지 소설처럼 다른 요정을 불러내는 건가 싶기도 하는데, 아니면 요정이라서 그런 건 필요 없나 싶기도 하다.

'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

준혁은 원정가기 전부터 열흘 넘게 고민하고 있는 문제가 있었다. 쉽사리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 문제였다. 그런 것이 이번의 원정 중에 한 가지 방법이 떠올랐다. 그래서 그것을 젠에게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젠. 한 가지만 물어볼게요. "

기분이 좋은지 젠은 준혁의 물음에 고양이 미소를 지으며 쳐다봤다.

일이 잘 풀릴 것 같다고 생각하며 질문을 계속했다.

" 지금으로부터 딱 1년만 미래로 갔다 올수는 없을까요? "

하지만, 역시 방심은 금물이었다. 단칼에 잘라 말하는 젠에겐.

" 불가능. "

"왜요? 날 과거로 데리고 왔잖아요. 다시 갈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 "

" 그래도 불가. 준혁은 이미 소원을 빌었잖아? 한사람에게 들어줄 수 있는 소원은 한가지거든. 그리고, 그때의 소원이 실현 가능했던 건 1000년에 한번만 온다는 그날이기 때문에 가능한 거였어. 뭐. 준혁이 1000년을 살고 다시 그날을 맞이한다면 가능은 하지만 말이야. "

자신이 1000년을 살 수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되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에게 필요한 것은 1년 뒤의 2010년이었다.

" 그런데, 그건 왜 묻는 거야? "

불가능이란 말에 조금은 힘이 빠졌다. 일주일을 고심해서 찾아낸 방법이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의 질문에 대답 안할 수도 없다.

젠은 화나면 무서운 램프의 요정이니까.

" 사실은, 1년 후로 가서 게임 매뉴얼을 구하려고 했거든요. "

준혁의 말에 젠은 언뜻 이해가 안가는 듯, 무슨 이야긴가 하는 표정이었다.

" 젠이 저의 소원을 들어줬잖아요. "

그녀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 그래서, 과거로 왔고, 지금 제 눈에는 소원을 빌었을 때 했던 야구게임의 효과와 옵션들이 시합에 들어가면 보이잖아요. "

젠도 익히 아는 사실이었다. 그녀가 들어준 소원이었고, 직접 준혁의 입으로 듣기도 했다.

" 그중에 슈퍼모드란 것이 있어요. 다른 게임의 기능들과는 달리 일정 조건, 그러니까 포인트가 모여야 발동되는 기술이거든요. 거기에 대한 설명을 게임메뉴얼에서 찾아보고 싶었다는 거죠. 기억이 잘 떠오르지 않아서요. "

준혁의 이어진 설명에 젠도 그가 원했던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 그러니까, 게임 매뉴얼을 보고 그 기술의 포인트 습득조건을 확인해보고 싶었다는 말이네. "

" 정확히 말하면 포인트가 깎이는 조건을 알고 싶다라는거죠. "

" 다시 말하지만, 1년 후로 가는 것은 불가능해. 그렇지만 영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지 싶은데 말이야. "

젠이 말에 준혁은 귀가 번쩍했다.

" 시합을 하면서 조건이 충족되어야, 그러니까 그 조건이란 것은 포인트가 되겠지. 암튼 그 포인트가 모여야 발동이 되는 기술이라면, 준혁이 뛴 시합의 기록을 살펴보면 되는 것 아닐까?"

" 발동된 날과 발동되지 않은 날의 기록에서 차이점이 있을 것 아느냐라는 거지. "

" 그렇겠군요. 그런데 그건 어떻게 생각해 낸 거예요?"

"계약자가 야구선수인데, 공부 좀 해봤지. 저기에 다 나와 있던데?"

라며, 젠은 노트북을 가리킨다.

--탁탁탁탁,,--

타자치는 솜씨도 웹서핑과 스크롤을 넘기는 솜씨도 엄청나다.

언제 이렇게나 발전한 건지 요정이란 족속들은 다 이런가 싶었다.

" 야구게임이란 것도 좀 해봤거든. "

" 야구게임요? 혹시?"

" E사 거야. "

"그렇겠지요. 그가 하던 게임은 내년 발매니까.

"

"준혁이 하던 야구게임이 다른 게임들하고 완전히 다르거나 그런 건 아니잖아. 글치? "

젠의 물음에 준혁은 그렇다고 대답해줬다. 선수카드라던가 육성이라던가 능력치 물약이라던가... 그런저런 게임이 재미를 위한 요소들이 없지 않아있었지만, 던지고 치고 달린다는 것은 바뀔 수 없는 대명제였다.

" 자. 여기봐. "

젠이 보여준 것은 마이너리그 공식홈페이지였다.

" 여기 보면, 준혁이 몇 월 며칟날 경기했고, 그 경기에서 몇 타석에 들어섰고, 안타는 몇 개 쳤다는 둥 소소한 기록들을 전부 확인할 수 있어. "

"그건 그렇지요. "

자신도 들어와 보고는 한 사이트라 모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선수 개개인의 1구 1구의 기록을 취합하기는 쉽지 않다. 타율이라던가 타점 이런 건 정리가 잘되어있어 금방 확인이 가능하지만 말이다. 다시금 젠의 말이 이어졌다.

" 이걸 모아서 하나의 차트로 만들어버리면 눈에 쏙 들어올 거야. "

순간 준혁은 자신의 노트북이 슈퍼컴퓨터가 된 줄 알았다.

중간에 부상으로 쉬었다지만, 2달은 넘게( 60경기 이상) 경기에 참여했다.

거기다 AA와 AAA로 기록이 분산되어있었고, 1구 1구를 다 확인하려면 각각의 시합에 대한 스코어보드 자체를 다 확인해야했다.

그런데 1시간 만에 그것을 확인 다하고는 차트 작업까지 끝내버린 것이었다. 인터넷의 홈페이지 열리는 속도의 한계라는 것이 있어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도대체 얼마나 빨리 끝났을지 감이 안 잡힐 정도였다.

" 사람 맞아요? "

" 나? 요정인데? "

" 아! 그랬죠. 맞아 맞아. "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는 연신 고개를 갸웃하는 준혁에게 젠이 프린터로 차트를 뽑아내서는 손에 쥐어주었다.

방금 노트북의 화면으로 봤던 그의 기록들이 타석별로 일목요연하게 날짜별 내림차순으로 보기 좋게 프린트되어있었다. 타석마다 몇 개의 공을 봤고, 그 공들이 스트라이크가 되었는지 볼이 되었는지, 스트라이크가 되었다면 서서 본 스트라이크인지, 헛스윙을 한 스트라이크인지, 아니면 파울볼에 의한 스트라이크인지.

마지막 공이 안타인지 아웃인지 안타라면 어떤 성질의 안타인지 아웃이라면 어떤 결과로 나온 아웃인지 모두 표시가 되어있었다.

" 워어. 대단한데요. "

" 별거 아냐. 사이트에 다 나와 있는걸 모아서 정리한 것 뿐인데 뭐. "

" 그래도요. 이건 대단한 거예요. "

" 그래? 에헴. 뭐 대단하다고 하다면야. 후훗. "

가식 없는 순수한 칭찬이라 그런지 젠도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 그럼 우선 살펴보고 있어봐. 나는 다른 걸 또 뽑아 볼 테니. "

" 그래요. "

차트에는 슈퍼모드 발동한 날이 표시 되어있지 않았다. 당연히 마이너리그 홈페이지에도 표시가 되어있지 않았다. 그의 눈에만 보이는 것을 그들이 알 수는 없을 테니까.

슈퍼모드가 발동된 날과 되지 않은 날의 구분이 되어야만 정확한 분류가 가능하기에 준혁은 고심을 하며 기억을 되살려보았다.

" 홈런 친 날은 전부 슈퍼모드 발동일 이었으니 우선 표시하고. 흠, 그리고는 이날 ... 이날... 너무 잘 맞아서 1루타가 된 날도 발동했고 "

인간의 기억이란 것이 명확하지는 못해서, 정확하게 다 찾아냈다고 자신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생각나는 대로 차트에 표시를 했다.

" 자, 그럼 뭐가 차이가 있을까? "

한참을 고민하면서 봤다. 하지만, 능력이 떨어지는 건지 도통 차이점을 찾을 수가 없는 준혁이었다.

머리에 쥐가 날 정도였다.

눈이 흐릿흐릿해졌다. --부루루루루~--정신을 차리기 위해 세수를 하고 나오자, 프린터 소리가 들려왔다.

작업하던 것이 끝난 모양이다.

" 뭐 좀 찾았어? "

" 아니요. 아아~ 도저히 모르겠는데요. 아이고. "

" 후훗. 이것도 봐야하는데 벌써부터 그러면 어쩔려구 그래? "

라며 젠이 차트 하나를 더 넘겨준다.

" 이건 뭐에요? "

" 수비 때하고, 루상에 나갔을 때 상황 정리한 거야. 파인플레이 이런 걸 하면 포인트가 많이 쌓인다면서? 그래도 차암 준혁 말대로라면 유저의 편의는 눈곱만큼도 생각하지 않긴 한가봐. 게이지 표시도 없다고 하는걸 보면 말이야. 그것만 보였어도 쉬웠을 텐데. "

" 그러니까요. "

슈퍼모드는 준혁에게 카운터펀치와 같은 것이었다. 그것의 발동타이밍만 컨트롤이 가능하다면 확실하게 그에게 힘을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조건을 찾아내려고 하는지도 몰랐다.

준혁은 타석에 대한 자료에다가 방금 받은 주루와 수비에 대한 자료도 같이 살폈다.

" ... 6월 25일 이날도 발동이 됐는데, 어디보자 보살은 없었고, 도루는 1개 했네. 오 좌익선상 3루타도 쳤군. 슈퍼모드가 발동될만해. ... 어라리? 그런데 이날은 기록이 더 좋은데 왜 발동이 안됐지? "

준혁은 6월 29일짜 기록을 살피며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이번 시즌 들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살을 2개나 잡아낸 날이었다.

그중 하나는 홈승부로 실점을 막은 것이었고, 3연속도루까지 성공한 날이었다. 그런데 분명히 기억하기로는 슈퍼모드가 발동이 되지 않은 날이었다. 이렇게 하나하나 살펴보면 볼수록 더더욱 알 수가 없었다. 파인플레이가 하나도 없었던 날 중에도 슈퍼모드는 터졌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라운드를 날고 다닌 날이었음에도 슈퍼모드가 안 터진 날도 있었다.

" 도대체 원칙이 뭐야? 포인트가 쌓인다는 건 훼이크 였던거야? "

자신의 기록을 차트로 만들어 살펴 보고나니, 게임의 제작자 놈들이 이거 지들 뭐 꼴리는 데로 만들어 놓은 거 아니냐는 생각마저 강하게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 뭐 좀 찾았어요? "

그래도 젠이라면. 차트를 만들어낸 그녀의 실력을 본다면... 이라고 생각하며 그래도 일말의 희망을 가지며 준혁은 젠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런 기대는 여지없이 부서졌다.

" 아니. 도대체가 일관성이 없어. 플레이 각각에 다가 점수를 임의로 차등적용해서 계산 해봐도 답이 안 나와. 준혁, 슈퍼모드 발동된 날 구분은 확실하게 된 거지? "

" 거의요. 홈런이나 장타가 터진 날은 여지없이 슈퍼 모드가 발동됐으니까요. 그리고 슈퍼모드 없이 2루타 이상 나온 것은 페어로 표시가 되어있으니 구분이 가능했어요. 한 두게임 빠질 수는 있겠지만, 연속도루를 했다던가 한 시합에서 보살을 2개씩 한 것은 제게도 워낙 강렬해서……. 더군다나 뒷부분 게임들은 슈퍼모드 터진 날짜를 기록까지 해놨으니까요."

" 애러같은 실수는 포인트 차감이 안 된다고 해서, 아웃되는 상황에 마이너스를 줘 봐도 마찬가지야. 기록이 좋았음에도 능력이 발동 안 되다 것은 준혁 말대로라면 그만큼 포인트의 감점 요인이 있었다라는건데, 수비시의 에러가 감점요인이 안된다면 공격 시에 그 감점요인들이 있을 것 같은데, 아웃과 파울볼, 그리고 스트라이크 먹은 것까지 적용시켜봤지만, 하나도 맞지가 않아. "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며 젠이 말했다.

" 지금으로써는 방법이 없는 것 같다."

"휴우. 할 수 없죠. 내년까지 기다려야져. "

준혁도 그녀의 말대로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최악은 아니지 않은가? 1년 후인 2010년에는 게임이 발매된 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말이다.

' 참! 그러고 보니, 내가 아는 게 게임발매 되는 것만 있는 건 아니잖아?! '

또 다시 뭔가가 떠오른 준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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