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 2009 새로운 시작 -- >
따가운 햇살에 준혁은 잠에서 깨어났다. 다른 사람들은 부러워 할지 몰라도 준혁의 방은 햇살이 너무 빨리 들어왔다. 그래서 항상 커튼을 치고는 했는데, 어제 저녁에는 여러 가지 일들이 있다 보니 빼먹게 되었고, 그 결과로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게 된 것이었다. 침대에서 일어난 준혁은 천천히 몸을 움직여봤다. 온몸이 성치 않을 줄 알았는데, 허리와 다리가 조금 뻐근한 감이 없지 않아 있는 것 말고는 그리 불편한 곳은 없었다. 아니 어젯밤의 일을 생각하면 대단한 회복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게 다 병 주고 약주는 젠의 능력이다. 아! 젠이 누구냐고? 누구긴 누구겠어? 준혁을 과거로 데리고 온 램프의 요정의 이름이지. 그러고 보면 일주일 만에 여자의 이름을 알아낸 준혁도 나름 대단하긴 하다. 뭐, 얼굴 볼 겨를이 없었다는 핑계가 있긴 하다만 말이다.
" 나를 만족시켜줬으니 궁금증을 풀어줘야겠지? "
어젯밤 정사가 끝난 후, 가쁜 숨을 몰아쉬는 준혁에게 젠이 던진 첫마디였다.
연속으로 몇 번을 사정했는지 몰랐다. 게다가 젠을 상대하기전 이미 여성 한명과 원나잇을 하고 온 상태였다. 결과적으로 두명의 여자 연속으로 상대한 것이다. 아무리 자신이 젊다지만, 계속이랬다 가는 어디 탈이 나도 단단히 날것이 분명했다.
야구선수가 조심해야할 3가지(야구선수에게만 국한 된 것이 아닌 모든 운동선수들에게 도 적용되는 이야기다)란 것이 있다.
바로 도박, 술, 여자다.
이 3가지 중 지금 준혁이 걱정을 하는 것은 여자였다. 준혁이 겉으로 보기엔 20대 초반이었지만, 그 속에 들어앉아 있는 정신은 이미 실패를 경험했었고, 사회의 쓴맛도 알고 있는 30대 중반의 아저씨(결혼 안했는데 아저씨 소리 들었다고 화내지는 말자. 결혼했건 안했건 30중반 넘으면 우월한 유전자가 아닌 다음에는 다 듣게 되는 소리다. )였다. 이런 그가 다시 주어진 기회를 잡고 과거로 돌아와 실패했던 삶의 경로를 되돌리려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앞서 말한 3가지에 빠져든다면 인생 헛산 거다. 구재불능인거다. 하지만, 현재의 준혁은 젠과의 계약문제로 여자문제를 자신이 컨트롤 할 수 없었다.
여자와 잠자리를 가지고, 그 정기를 램프의 요정인 젠에게 넘겨주어야한다. 그것이 과거로 돌아온 자신이 그녀에게 지불해야할 반대급부였다.3가지 금기 중에 한 가지라도, 야구선수에게 무조건적으로 섹스를 금지하지는 않는다. 정상적인 과하지 않은 관계는 오히려 선수에게 정신적인 안정을 주고 생활의 활력을 준다고 본다.
하지만, 준혁의 오늘과 같은 경우는 반드시 금해야 할 일이었다. 선수생활을 오래하고 싶으면 말이다.
" 그것보다, 다른 방법은 없나요? 그 정기를 넘겨주는 방법 말이에요. "
" 없어. "
단호한 대답이었다. 솔직히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목적을 위해서는 지금의 방법이 최선이었다.
" 그런데 왜 바꾸자는 거야? 남자 입장에서는 좋아라해야할 방법 아니야?
"
"휴우.. 솔직히 그렇긴 한데요... 이대로 계속 간다면 내가 못 버텨날 것 같아서요. 이 방법대로라면 무조건 2명 이상을 상대해야하는 거잖아요. 게다가 지금처럼 여러 번 하는 건... "
그와 마주보고 있으니, 보지 않으려고 해도 그녀의 알몸을 보게 된다. 어디 가더라도 빠지지 않을 몸매에다가 불숙 불숙 조금 전의 정사가 떠오르니 자연스레 그의 남성이 반응한다.
" 흐흥~. 말과 달리 몸은 괜찮은 거 같은데? "
장난감을 발견한 고양이 마냥 두 눈이 가늘어진 젠이 혀로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
" 이... 이건 그냥 생리현상이구요. "
관계를 가진지 얼마 지나지 않다보니 젠처럼 준혁도 알몸이었다. 그러다보니 치켜든 남성을 곧바로 젠에게 들켜버린 거였고, 황급히 손으로 가릴 수밖에 없었다. 그 모습에 한 번 더 웃는 젠이다.
" 무얼 걱정하는지는 알겠는데, 걱정 안 해도 돼. 나하고는 하루 종일 그 짓을 해도 너의 몸에 아무런 무리가 가지 않을 테니까? "
너무 무리하면 남성의 몸이 축나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인데, 그녀하고 라면 아무렇지 않다고 하니 그 무슨 괴이한 이론이냐고 항변하게 되는 준혁이었다. 그러자, 그녀도 조금은 진지해진 얼굴로 잘 들으라며 설명을 시작했는데,요지는 이랬다. 램프의 요정인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여성의 정기뿐이다. 남성의 기운은 아무 쓸모도 없고 자신에게 받아들여지지도 않는다. 그래서 다시 준혁에게 되돌아간다. 그러니 너에겐 하등 손해 날것이 없다.
이런 말이었다.
" 하지만, 네가 다른 여성과 할 때는 이야기가 달라지지. 사정해버리면 나에게 오는 여성의 정기도 줄어들거든. "
젠의 이야기를 듣던 준혁은 마지막 말에서 느껴지는 바가 있었다.
그래서, 곧장 반문을 했다.
" 혹시? 그래서 다른 여자한테는 안 됐던 건가요? "
"그래. 좋은걸 남에게 줄 필요는 없잖아? "
역시나 자신의 몸에 수작을 걸어놓은 것은 램프의 요정인 젠이었다.
멋대로 몸에다가 장난질을 쳐놨다고 생각하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준혁은 주먹을 꼬아 쥐며 일어섰다.
--쿵--
하지만, 나가떨어진 것은 준혁이었다. 그녀의 손짓 한 번에 접근조차 못했다.
" 내가 누구란 걸 잊었나보구나. "
그녀의 손이 올라갔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준혁의 몸도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리곤, 그녀의 손이 움직였다. 좌, 우, 바닥... 몇 번을 움직였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럴 때 마다 준혁은 벽장과 냉장고 방바닥에 패대기쳐 졌다.
마지막으로 개구리처럼 널브러지고 나서야 준혁은 떠올릴 수 있었다. 램프의 요정이란 것들은 동화에서처럼 결코 순하고만은 않다는 사실을. 그리고 무엇을 믿고 덤벼들었던 걸까 라고 말이다.
준혁은 화가 난다고 주먹부터 쥐고 보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랬는데, 어제는 너무도 쉽게 주먹을 휘두르려고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랬을까...
"휴우.. 아~. 어제는 정말. "
죽는 줄만 알았다. 어쩌다보니 떠올리긴 했지만, 다시는 생각하기도 싫은 사건이었다.
" 일주일에 한번이라고 했지? "
여성과의 관계가 그보다 많은 것은 상관없지만, 최소한 그 기간은 지켜야한다고 했다. 어겼을 시에는 계약파기라고 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성적을 유지하면 크게 문제는 없을 듯싶었다. 팀에서 주목을 받기 전에 팬들이 먼저 알아볼 테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어제처럼 원나잇을 원하는 여성도 접근할 것이고... 하지만 그렇다고 코 꿰일 수도 없고... 성질 나쁜 램프의 요정 때문에 자신이 좋아하지도 않는 여자에게 인생을 저당 잡힐 수는 없었다.
" 오는 여자 막지 말고, 가는 여자 잡지 말아야하나. 아니 등 떠밀어서라도 보내야하나..."
능력이라면 능력일수 있는 '여성의 성감을 자극하는 손'을 득했다. 하지만, 잃은 것도 컸다.
물 호스가 막힌 것이다.
' 젠장 젠장 젠장! '
램프가 옆에 있어서 입 밖으로는 욕도 못하는 자신의 처지가 왠지 처량하기까지 하다.
왠지 램프 안에 있더라도 자신이 하는 행동을 다 볼 것 같아서 말이다. 오늘따라 기브앤드테이크 (give and take) 란 말이 가슴에 와 닫는 준혁이었다.
준혁: 젠하고 하는 가라면 몸이 축날 일은 없다고 했잖아요.
젠 : 그랬지. 사실이니까.
준혁: 그런데, 제 허리는 왜 아픈 거죠? 아프지 않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젠 : 그건.... 운동부족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