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 2009 새로운 시작 -- >
' 분명히 어깨가 약해보였는데? 어떻게 저런 송구가 가능한 거지? '
리처드 스카우트는 자신의 눈을 의심해야 되는 것인가 싶었다. 하지만, 홈팀 선수의 슈퍼세이브에 떠나갈듯이 좋아라하는 수많은 관중들이 전부다 헛것을 본 것은 분명히 아닐 터였다. 꾀병? 아님 건성 플레이? 순간적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곧바로 그건 아닐 꺼다 싶었다.
수술 후 재활을 거치면서 이미 지정병원에서 메디컬 테스트도 다 받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스카우트인 자신을 비롯하여 현장의 코칭스태프들이라면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건성 플레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경기 중 준혁이 보여준 수비시의 플레이는 분명히 허슬이 녹아있었으니까. 경기를 보고 있던 거의 모든 사람들이 확실한 안타라고 생각한 타구를 2개나 몸을 날리며 잡아낸 선수의 플레이를 건성플레이라고 한다면, 모든 메이저리그는 대충대충 야구를 하고 있다는 말이 될 테니까 말이다.
' 흠... 다시 한 번 확인해 봐야겠어. '
수술한 어깨의 파워가 다시 돌아오고 있을 수도 있었다. 아니면 이미 회복이 되었지만, 수술에 의한 트라우마로 재대로 힘을 못 싣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고 말이야.
리처드는 수첩에 '준혁 리, 어깨 체크 요망' 이라고 적어놓고 있었다. 다시금 들려오는 함성소리에 고개를 드니 타석에서 멀뚱히 서있는 상대편 타자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덕아웃으로 들어가는 새니터스 선수들의 모습도 보였다.
3아웃 째 타자를 삼진을 잡아낸 듯 보였다.
슈퍼세이브로 실점위기를 넘긴 후, 곧바로 삼진으로 이닝 종료. 야구경기에서는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곧잘 상대팀에게 넘겨주었던 분위기를 빼어오곤 한다. 그래서 조금은 새니터스의 이번 공격에 기대감을 가지게 되는 리처드였다.
' 게다가 이번 회에는 삼자범퇴만 아니면 준혁의 타석을 다시 볼 수 있을 듯도 하고 말이지. '
6회말. 역시나 리처드의 기대대로 새니터스의 타자들은 찬스를 잡아나갔다.
선두타자로 나선 팀의 4번 타자 허드슨이 포볼로 걸어 나간 후, 곧바로 안타가 나왔다. 이번시합 들어 처음으로 맞이한 무사 1,2루의 찬스였다. 하지만, 6번 타자 존스가 친 공이 인필드플라이가 선언되며 주자들은 움직일 수 없었다.
최소한의 진루타라도 쳐주지 못한 모습에 실망하는 관중들의 탄성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맞이한 준혁의 타석. 앞타자의 허망한 아웃에 중요한 타석이 되었다.
" 와아~~. "
" 리~. 준혁 리. 준혁 리! "
홈팬들은 조금 전 슈퍼세이브를 펼쳐보였던 준혁의 등장을 알아채고는 열렬하게 환영을 해주었다.
일주일동안 쉼 없이 멋진 플레이를 보여주었기에 준혁은 홈팬들에게 알음알음 알려져 가고 있었다. 거기에다 방금 전의 슈퍼세이브까지 더해지니 더욱 더 열렬한 응원을 받게 된 것이었다.
오클랜드 마이너AA팀의 포수 브라이언은 타석으로 들어서는 준 혁을 힐끔 봤다. 그러면서 그에 대한 정보를 떠올렸다. 올 시즌 타율은 2할을 겨우 넘기고 있었다. 그리고 어제시합까지 기록한 홈런갯수도 단 1개였으니 파워히터는 아니었다. 하지만 발만은 빠른 타자라고 했다. 이번 주 중에 기록한 도루만 8개였으니 확실히 위협적인 스탯이었다. 게다가 낮은 타율의 타자라는 말이 무색하게 이번 주에서만큼은 타율이 고공행진중이어서 쉽게 생각할 수만은 없는 타자였다. 이런 유형의 타자는 공을 굴릴 수 있게 하기 보다는 띄우게 하는 것이 아웃을 잡을 확률이 좀 더 높은 거다.
' 초구는 높게 줘보자. 거기에 대한 반응을 보고 땅볼 유도로 가는 거야.'
홈런타자에게는 공이 빠르더라도 높은 쪽 코스는 금물이었다. 하지만, 준혁처럼 힘이 없는 타자라면 빠른 높은 쪽 공만큼 빠른 카운트에서 파울플라이나 내야플라이로 잡아내기 쉬운 효과적인 무기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때, 타임을 요청하며 준혁이 타석을 벗어났다. 눈을 연신 깜박이는 걸로 보니 눈에 하루살이라도 들어간 듯 해 보였다.
' 이번엔 또 뭐지? '
하지만, 다른이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준혁이 타석을 벗어난 이유는 또다시 시야의 외곽이 반짝 반짝 거렸기 때문이었다. 슈퍼모드는 이미 수비 때 발동이 끝났기에 다시 발동될 턱이 없었다. 그런데도 다시 번쩍번쩍 거리고 있으니 준혁은 난감했다.
' 버근가? '
게임의 옵션도 버젓이 나타나는 상황인데 버그도 있을 수 있는 것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그것까지는 오버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타석으로 다시 들어섰다. 하지만, 여전히 번쩍 번쩍거림은 멈추질 않았다. 신경 쓰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신경이 쓰였다. 그러다보니 정신이 분산되었고, 투수의 투구직후 생성된 가상의 스트라이크존에 스트라이크존으로 통과한다는 것만 생각하고는 배트를 돌려버렸다. 스트라이크존으로 들어온 공이라고 때리면 무조건 안타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랬다면 5할 이상 못 치는 타자들이 한명도 없을 터였다. 그리고 스트라이크를 벋어난 공을 때린다고 무조건 아웃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배드볼 히터'란 말이 괜히 생겨난 것이 아닌 듯 말이다.
대신, 볼을 건드려서 안타가 될 확률보다 스트라이크를 건드려서 안타가 될 확률이 높기 때문에 스트라이크가 되는 공을 때리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상대편의 투수인 콜버트가 던진 높은 몸 쪽 빠른공은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하더라도 -2스트라이크 이후였다면 모를까- 건드리지 말았어야할 공이었다. 준혁은 파워히터가 아니었다. 요번 일주일간 성적으로는 분명 강타자로 보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내용을 살짝 살펴보면 그렇지가 않았다.12개의 안타 중 홈런 포함 2루타 이상은 2개가 전부였다.
그럼에도 OPS가 높게 나온 것은 순전히 6할을 넘어선 엄청난 출루율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실제로 앞선 경기에서도 높은 빠른공을 건드려서 안타를 만들어 본적이 없었던 그였다,
' XX 됐다! '
자신마저 초구에 쉽게 아웃되어버린다면 추격의 흐름이 끊어져 버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미 나간 배트는 회수 할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뭔가 야구공의 타점에서부터 손으로 전해져오는 느낌이 이상한 것이 아닌가? 진동이나 울림은 고사하고 감촉마저 없는 것 같다랄까?
스윙을 끝낸 준혁은 묘한 기운에 쌓인 듯 한 기분을 느끼며 두 눈으로 날아가는 공을 쫓았다.
' 어... 어? 어어?? '
앞선 시합에서 높은 공을 건드려서 파울타구를 제외하고는 한 번도 내야를 벗어나 본적이 없었던 준혁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하염없이 날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결국엔 담장을 넘어 관중석 상단에 떨어지기 까지 해버렸다.
" 와아아~~~~!!!! 리~! 리~~! 준혁 리!! "
관중석의 홈팬들은 난리가 났다. 준혁의 홈런으로 단박에 6대 5로 한 점차까지 따라 붙어버린 것이었다. 자신이 쳐 놓고도 믿을 수 없는 대형홈런에 어안이 벙벙해 있던 준혁은 홈런을 허용한 투수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을 보고는 그제야 아차 싶었다.
홈런을 때리고도 아직 홈플레이트에서 발걸음도 때고 있지 않았으니 상대방 투수에 대한 예의 차원에서 큰 실례를 범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미 늦긴 했지만, 준혁은 전력으로 다이아몬드를 돌았다. 다행히 뒤늦게라도 열심히 뛰어줘서 그런지 상대편 투수인 콜버트도 더 이상의 재스추어는 취하지 않을 듯싶었다.
주심에게 주의를 받긴 했지만, 다행이라 생각했다. 재수 없었으면 홈런 치고 밴치클리어링이 벌어지는 사태가 왔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아무튼, 홈플레이트를 밟고 덕아웃으로 들어가니 난리가 났다.
한해 많아야 홈런 1~2개 칠까 말까하던 선수가 관중석 상단에 떨어지는 큼지막한 홈런을 날렸으니, 축하를 가장한 해코지(?)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젭알 옆구리는 간질이지 말라고!! 순간 욕나올 뻔 했다. 험악해지는 준혁의 인상을 확인하고 나서야 조용해지는 덕아웃이었다. 뭐 무서워서 피하는 것이 아니라 할 것 다했으니 물러간다는 표정들이었지만 말이다. 덕분에(?) 준혁은 차분히 벤치에 앉아서 방금 전의 상황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 나타난 현상으로만 봐서는 이번 것도 슈퍼모드인것 같은데, 이게 두 번 연속으로 터지기도 하는 거였나? '
자신의 게임인생의 기억을 아무리 곱씹어 봐도 슈퍼모드란 것이 몇 시합을 연속으로 안 터지는 경우는 있었어도 이렇게 한시합내에서 두 번 연속으로 터진 적은 한 번도 못봤었다.
' 역시나, 게임이 현실에 적용되면서 나타난 버그 같은 걸까? '
고심을 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닌듯했다. 게임의 옵션이 현실에서 적용된다는 것부터가 말도 안 되는 일이니 말이다.
' 모르겠다.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어? '
더 이상 생각해봤자 머리만 아플 터 신경을 끄기로 하고 일어서는데, 다시금 환호성이 들려왔다.
덕아웃을 뛰어나가는 동료들의 모습이 큰 것 하나 터진 게 분명하다. 그래서 서둘러 나가니, 역시나!
자신의 다음 타자인 메이어가 백투백 홈런을 날린 것이었다.
메이어는 타율이 낮긴 하지만, 매해 15개 언저리의 홈런수를 기록하고 있었기에 홈런을 때릴 타자가 때린 것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준혁의 홈런은 뜬금 로또 포라고나 할까? 그 덕분에 투수의 마인드가 흔들려 연속타자 홈런을 맞은 지도 몰랐다.
어쨌든 게임스코어는 6대6으로 균형을 맞추는 워싱턴의 마이너 AA팀 새니터스 였다.
그리고 이런 준혁의 활약을 확인하고 있던 리처드 스카우트의 수첩에는 다음 문장이 추가 되고 있었다.
-집중관찰, 관리 요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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