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툴 플레이어-8화 (8/309)

< -- 1. 2009 새로운 시작 -- >

고개를 돌려보니 전문 지각대장인 엔더슨 이었다.

그러고 보니 자신과 함께 방출 되었던 녀석이 저 녀석이었던가?

"웬일이야 연습벌레인 네가 지각을 다하고?"

"하하. 뭐 나도 사람인데 만날 일찍 올수야 있겠어? 그런데 넌 항상 여전하다? 바뀐 게 없는데?"

"항상 그렇지. 그런데 왠지 말투가 이상하다. 한참 못 보다가 얼굴 본 사람처럼 말이야."

엔더슨의 말에 준혁은 속이 뜨끔했다. 얼른 얼버무리며 말을 돌렸다.

" 무슨 말이야. 매일 보면서 하하. 그보다 어서 들어가자. 이미 늦었지만. 더 늦긴 그렇잖아?"

구장 안으로 들어서자 이미 많은 이들이 이미 나와 있었다. 지각을 한 터이니 당연한 것이겠지만 말이다.

"준혁. 어디 몸이라도 안 좋은 거야?"

특출난 성적을 못 내고 있어서 그렇지, 훈련은 성실히 하는 준혁이다보니, 오히려 지각한 것이 신기해 보이는가 보다. 그래서 그런지 다들 한마디씩 건넸다.

준혁은 곧장 옷을 갈아입고는 훈련에 참가했다. 가벼운 스트레칭과 러닝이 있은 후, 선수들 별로 짝을 이뤄 캐치볼을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 펑고가 이어졌다.

"혁. 컨디션 좋은데? 몸이 안 좋아서 늦은 줄 알았더니 말이야."

펑고를 해주던 코치의 말에 준혁은 웃음으로 답했다. 십 수 년도 더 지났음에도 어렵지 않게 펑고를 받아낼 수 있다는 사실이 자신도 신기했다. 물론 몸 상태로 봐서는 한창 꿈을 안고 훈련하던 때의 자신의 몸이니 당연한지도 모르지만, 정신만큼은 결코 20대 초반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그 후 타격훈련과 주루 플레이에 이어 마무리 훈련까지 이어졌는데, 자신이 과거로 돌아온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물 흐르듯이 무리 없이 진행되어 어리둥절할 정도였다.

경기가 시작되었다.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140개의 게임 중 하나의 경기이지만, 마이너리그의 선수들은 이안에서 매번 자신의 역량을 PR하기위해서 최고의 허슬을 보여줘야 한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따라올 수밖에 없는 부상과도 싸워 이겨야한다. 만일에라도 1년 이상 쉬어야하게 되는 큰 부상을 당하게 된다면, 그자신이 보너스베이비(막대한 계약금을 받은 신인 스포츠 선수)가 아닌 다음에는 여지없이 구단으로부터 방출 통보를 받게 될 것이 분명하니까 말이다.

그런 점에서는 한국에서 건너온 선수들은 조금의 메리트는 있다. 일정이상의 계약금은 받고 건너온 것이라, 부상으로 쉽사리 방출되진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들도 결국은 신인 드래프트 상위랭커와는 그 출발선부터 다를 수밖에 없기에 AA의 무한경쟁을 피할 방법은 없었다. 그런 하루하루가 전쟁인 마이너리그에 준혁도 서 있는 것이었다. 준혁의 포지션은 외야수로써, 수비부담이 적고 대형타자들의 전유물인 좌익수가 아닌 중견수과 우익수를 함께 보는 외야자원이었다.

본래 투수로 계약을 하고 건너왔으나, 부상과 수술로(한국 고교야구의 고질병이다. 당장 성적을 내야하기 때문에 에이스급 선수, 특히 투수는 혹사를 당할 수밖에 없었고, 이것은 당연히 부상으로 이어진다.)외야수로 전직하게 된 것이었다. 여기에는 고교야구에서도 외야수와 투수를 겸직했던 경험이 일조했다.

홈 경기이다 보니, 1회 초 수비로 시작했다.

--탁. 탁--

투수가 마운드에서 연습구를 던질 동안, 양발을 살짝 살짝 들었다 놨다 하며 그라운드를 밟아본다. 조금씩 몸을 움직이며 혹시라도 근육이 이완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도대체 어떤 점이 바뀐 걸까? 게임처럼 야구 잘하게 만들어줬다는데 도대체 뭘까?'

연습시간부터 지금까지 바뀐 점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그였다.

타격연습 때, 타구를 보더라도 힘이 좋아진 것 같지도 않았고, 선구안도 그저 그대로. 오히려 십 수 년 만에 하는 것이라 프리배팅에서도 처음엔 공을 재대로 앞으로 보내지 못하기까지 했었다. 물론 몇 개의 공을 보고 난 다음에는 그렇지 않았지만 말이다. 타격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모든 훈련에서도 차이점을 못 느끼고 있었다. 과거로 시간까지 역행시킨 램프의 요정이었다. 그러니 바뀌어주었다면 분명히 바뀌었을 터인데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으니 답답하기 까지 했다. 하지만, 이런 그의 상념은 더 이상 이어질 수 없었다. 1회 초 공격이 시작되었기 때문이었다.

타자가 타석에 들어서고, 그를 상대로 투수가 공을 던지는 순간. 준혁은 자세를 잡고 집중을 했다.

--찌~잉--

그 순간! 홈플레이트 쪽에서부터 하얀색 점선으로 이루어진 기다란 선이 자신의 시야 오른편하고도 뒤쪽까지 죽 연결되듯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 뭐... 뭐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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