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 2009 새로운 시작 -- >
희뿌연 연기가 준혁의 눈앞에 나타났다. 처음엔 단순한 안개와 같은 연기였다. 그런데 그런 연기가 한곳으로 모이기 시작하더니 곧 어떤 형상을 이루기 시작했다.
그것은... 여인의 모습이었다. 꿈속에서나 나올법한 아름다운 여인이 그에게 다가와서는 말을 건넨다.
-저의 소원을 한 들어주시겠어요? 대신 저도 당신의 소원을 들어드릴게요.
-역시나 개꿈이었군.
준혁은 꿈이라고 생각했다. 안개 속에서 나타난 미인이
'소원을 말해봐.'
라고 말하는데 그게 현실일리는 없지 않겠는가. 거기다 그녀가 걸치고 있는 속살이 훤히 비치는 하늘하늘한 천 쪼가리는 더더욱 이런 생각에 확신을 주었다. 하지만, 꿈이라고 생각하니 대답은 쉽게 할 수 있었다. 자신의 망상의 발현을 계속 유지하려면 긍정의 대답을 해줘야하지 않겠는가. 거부를 해서 눈앞의 여인이 사라져버린다면 아쉬울 것 같으니까 말이다. 아무리 꿈속의 여인이라지만.
-그대의 소원은 무엇인가요?
여인이 다시금 물어왔다. 물어보는 폼이 자신의 소원부터 먼저 들어줄 모양인가보다.
' 무슨 소원을 말할까? 어차피 꿈인데, 같이 자자고 할까? 아니다. 그랬다간 아침에 찝찝한 일을 당할지도 모르잖아? '
확실히 요즘 굶주리긴 했나보다 싶었다. 이런 꿈까지 꾸는걸 보면 말이다. 꿈에서라도 욕망을 풀어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왠지 그러긴 싫었다.
' 그렇다면 무슨 소원을 빌까? '
꿈이란 것을 인지하고도 또 그 소원이란 말에 고민하는 준혁이다. 요즘 모 개그프로에 나오는 유행어중 하나인... -왜 이러는 걸까요? -란 말이 딱 들어맞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것이고... 결정을 내린 준혁의 입은 열렸다.
-야구를 다시 하고 싶어요. 젊은 시절로 돌아가서.
항상 미련이 남아있던 야구였다. 그래서 였을까? 여인의 물음에 준혁은 결정을 하자 곧장 대답을 할 수 있었다. 게다가 꿈속에서라도 과거로 돌아가 실패했던 자신의 삶을 성공으로 되돌리고 싶었다.
-야구라면 조금 전 당신이 하던 걸 말하는 건가요?
-조금 전? 아 야구게임을 말하는가보군요.
게임을 하고 자서 그런지, 꿈속에서 게임이야기가 나오나 보다고 간단히 생각하며 준혁은 말을 이었다.
-네 맞아요. 이왕이면 게임속의 선수들처럼 야구를 잘하고 싶어요.
--그래요. 소원대로 이루어 질것에요. 그리고, 이 계약의 징표로 당신은 절 가지셔야 해요.
라며 여인은 준혁의 품에 안겨왔다. 언제 벗어버렸는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체로.
'역시나 개꿈이었군.'
스토리가 재대로 전개되어지나 싶었더니, 이야기는 다른길로 빠져버리고 있었다. 역시나 굶주려 있었던 걸까? 제발 아침에 곤란한 상황은 없기를 바라면서 준혁은 여인을 안았다.
그러면서도 중얼거리기를 멈추지 않는다.
-차라리 돼지 한 마리라도 던져주면 좀 좋아? 로또나 사게.
"으~"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에 준혁은 잠에서 깼다.
아무리 꿈속의 정사였다고는 하지만, 아름다운 여인을 품에 품는 다는 생각에 무리를 했더니 눈을 뜨긴 했지만, 일어나는 것이 만만치 않았다.
게다가 햇살을 받아 따가운 볼과는 달리, 다리는 가벼운 한기마저 느껴졌다. 이른 아침이라 공기가 서늘할 수는 있다지만, 자신이 잠든 곳은 방이었다. 비바람이 거세서 보일러까지 약하게 틀어놨기에 추울 리가 없었다. 그런데 이 느낌은 마치...
' 내가 언제 옷을 벗고 잤지?'
다리에서 느껴지는 허전함에 손으로 몸을 만져보니 바지만이 아니라, 아예 옷을 훌러덩 다 벗고 자고 있는 것이 아닌가?
준혁은 옷 다 벗고 자는 취미가 없었다. 아무리 덥더라도 러닝과 팬티는 입고 잔다. 물론 예전 운동을 할 때는 가끔 그럴 때가 있긴 했지만, 야구를 그만둔 이후로는 없었다.
더군다나 어젯밤은 추운날씨였으니 옷을 벗을 이유가 없었다.
' 허헛. 거참. 이젠 몽유병까지 생길 나이인가? '
다행히 거시기 쪽의 요가 축축하지 않은 것이 꿈속에서 그가 우려했던 일은 벌어지지 않은 듯 했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옷을 훌렁훌렁 벗어재꼈다는 사실이 유쾌하지 많은 않았다. 준혁은 손으로 눈을 비비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햇살이 이렇게나 방안으로 들어올 정도면 꽤나 시간이 지났다는 이야기다. 그 말은 가게 문 열 시간이 훨씬 지났다는 말이다. 서둘러야겠다고 생각하며 발을 내딛는데... 발밑이 허전하다.
-쿵!-
" 아이쿠야!"
굴러 떨어진 준혁이다.
아픔에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돌리니 눈앞에 침대가 보였다.
분명 요들 깔고 잤는데... 아니 자신의 방에는 침대가 없는데, 웬 침대란 말인가? 그제야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준혁은 방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 뭐.. 뭐야!!? 여긴 어디지? "
결단코, 이곳은 자신이 잠들었던 그의 집이 아니었다. 게다가!
" 차암. 요란하게 일어나네? "
어젯밤 꿈속에서 살을 섞었던 여인이 그를 보며 웃기까지 하는 게 아닌가?
준혁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상황에 할 말을 잊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