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세기 대마법사-212화 (212/221)

제212장 마족 슬레이어

"마, 마족이래!"

"허억......!"

"모두 당황하지 말고 퇴각하라. 이는 영주님의 절대 명령이시다."

방금 전까지 수십만 몬스터와 암흑제국 병사들과 일전을 벌였던 네루만 국경 요새의 병사들.

조심스럽게 전해지는 퇴각 명령에 모두들 새파랗게 질려 버렸다.

어릴 적, 할머니, 할아버지를 통해서나 듣던 옛이야기의 주인공.

드래곤과 함께 항상 등장하던 영웅들의 밥이었던 마족.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어릴 때였고, 성인이 된 병사들은 마족이라는 이름만으로 정신을 놓는 이들이 발생했다.

마족.

그것도 암흑제국을 멋지게 처리한 무적의 영주가 무참히 당할 정도의 강대한 힘을 소유한 놈.

성벽 위에서 아직 불을 밝히고 있는 라이트 마법을 통하여 희미하게나마 모든 것을 보고 있던 병사들이 퇴각 명령에 갈등에 빠져들어 갔다.

"우, 우리는 가지 않을 것이오!"

"맞습니다. 영주님께서 계시는 이곳이 우리가 있어야 할 곳입니다!"

"모두 자리를 사수하시오. 영주님이 마족을 물리치실 것이 분명합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영주님은 우리를 지켜줄 것입니다!"

"절대 퇴각이란 있을 수 없소! 이곳에서 도망치면 네루만은 누가 지킨단 말이오!'

"맞소이다! 절대 자리를 사수합시다!"

영주에게서 퇴각 명령이 떨어졌건만 성벽에서 물러서지 않는 네루만의 병사들.

마족임을 알아챈 대륙 마법사들이 오줌 마려운 강아지처럼 그런 병사들의 눈치를 살폈다.

병사들뿐만 아니라 기사들까지 퇴각 명령을 무시하였다.

그런 장렬한 분위기 속에서 등을 돌렸다가는 칼침 맞을 것이 뻔하였기에, 의리없는 마법사들이 자리를 뜨지 못했다.

그리고 병사들은 결투가 벌어지고 있는 공간을 바라보았다.

거리로는 약 2킬로 정도.

마나를 사용하지 못하고, 성벽에 설치한 라이트 마법진의 빛이 겨우 비추는 곳.

병사들이 살피기에는 제법 먼 거리였지만, 그 누구 하나 눈을 떼지 않았다.

결투가 벌어지며 번쩍번쩍 마나의 광휘에 눈이 멀 정도였건만 이 순간이 자신들의 앞으로 살아갈 세상을 결정짓는 한 판 승부라는 것을 모두 다 알고 있었다.

그러나 병사들이 모르는 한 가지가 있었다.

요새와 연결된 마법진을 이용하여 일단의 신관들이 망루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네루만의 성녀 아르미스가 신관들 앞에 서 있다는 것을 말이다.

★★★★★★★★★★★★★★★★★★★★★

파아아아앙!

파가가가가가가강!

"커억......"

놈은 마법사 따위가 아니었다.

타고난 전투 종족이라 불리는 쌈ㄷ락 출신 마족.

상급 마족이라는 놈은 해병대 지옥 코스를 졸업한 놈처럼 육박전에도 극한의 능력을 보였다.

촤아아아악.

입에서 또 뿌려지는 피분수.

내 몸 안에 얼마나 많은 피가 존재하는지는 몰라도 내장이나 기타 등등의 장기가 중대한 손상을 입었음을 피를 보며 짐작할 수 있었다.

'잔인한 놈.'

마법 대결을 피해 놈과 검으로 결투를 벌였다.

무슨 까닭인지 순수하게 결투를 받아준 마족 놈.

내심 한가닥 희망을 가졌지만, 아공간에서 소환한 놈의 대한 무식한 검 한 자루와 부딪친 후 나는 깨달았다.

오늘 무덤 자리 제대로 파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거기에다 잔인하기까지 했다.

내가 봐도 서너 번, 내 목숨을 아작 낼 수 있는 순간이 있었건만 나를 희롱하는 놈.

지금도 손에서 절망의 지팡이를 놓을 정도로 타격을 입었다.

아무 대책 없이 튕겨져 나가고 있는 이때.

놈이 가벼운 마법 한 방이라도 펼치거나, 뒤따라와 검으로 후려치면 그대로 두 쪽이 날 판이었다.

'씨이... 맞다 보니까 아프지도 않네.'

고통이 극한에 이르면 고통을 못 느낀다는 말을 몸소 깨닫고 있었다.

손에 들린 절망의 지팡이를 간신히 들고 있을 정도의 감각만 존재했다.

오기와 깡으로도 안 되는 실력 차이.

매일 놀기만 하던 꼴찌가 명문대에 원서를 넣고 합격하기를 바라는 어리석음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놈 참 색깔 좋네.'

어느새 깊숙하게 어둠을 베어 문 천지사방.

붐 떠서 날아가며 하늘을 바라보는 기분은 제법 신선하였다.

죽음을 각오하였기에 여유를 얻을 수 있는 이율배반적인 시간.

더 이상 베베토를 타고 저 별들의 바다를 비행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도 나약한 육신을 소유한 인간일 뿐이었다.

저 사기 캐릭 같은 마족 놈에게는 말이다.

파아아아아앗!

마나를 격발시켰건만 무의미하게 보냈던 5분.

마나가 떨어지는 듯 몸이 천천히 지상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런 내 눈에 보이는 성스러운 빛.

'지, 진짜 가는구나.'

사람이 죽으면 열린다는 저승문.

그리 착한 일도 많이 하지 않았건만 신은 나를 위하여 천국의 문을 여는 듯 성스러운 파란 광채가 하늘을 비추고 있었다.

'응?'

그뿐만이 아니었다.

바람 빠지는 풍선처럼 마나가 서서히 소모되어 지상으로 추락하던 몸.

무언가 나를 받쳐 주는 듯 허공중에서 몸이 멈추었다.

'이게 뭔 일이야?'

마법은 아니었다.

사부도 지금 나를 도와주기에는 벅찬 상황.

거기에 마나와 다른 이질적인 기운.

급히 고개를 돌렸다.

"헛!"

사방을 살피던 중 보이던 한 장면.

'성령의 오라?'

2킬로 정도 떨어진 요새 망루에서 성스러운 파란 빛이 내 주변을 비추고 있었다.

"크어어억!"

귓가에 들려오는 마족 놈의 비명.

'얼라리요?'

마나를 격발한 나조차도 동네 똥개 취급하던 놈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런 마족 놈의 전신에는 새파란 성령의 빛이 내리쬐고 있었다.

위이이이잉, 위이이잉.

그뿐만 아니었다.

갑자기 허전했던 마나홀에 서서히 들어차는 마나의 기운.

내 몸 같지 않던 감각도 마나가 돌아오자 같이 회복되었다.

꿀꺽.

나도 모르게 침이 넘어갔다.

그리고 그 순간 생각나는 한 사람.

"아, 아르미스!"

그러했다.

이 말도 안 되는 신의 능력을 사용하는 이는 성녀라 불리는 아르미스, 그녀 말고는 불가능한 기적.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요새 성벽에 들려오는 병사들의 우렁찬 함성.

"아르미스 성녀님이시다!"

"신의 가피가 임하셨다!"

내 궁금증을 확 날려주는 병사들의 외침.

"이, 이런 말도 안 되는......"

기쁨에 떠는 나와 병사들과 달리 긴장을 머금은 마족 놈의 외침.

붉은 망토로 성령의 빛으로부터 얼굴을 보호하며 놈은 당황해하고 있었다.

치지지지지지지지지직.

그런 놈의 발밑의 지상에서는 차원의 문을 열고 무언가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마, 마계 병사들!'

마족 놈에게는 못 미치겠지만 나타나는 순간 지상의 재앙과 다름없을 마계의 조직폭력배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마, 마나가 다 회복되었다.'

체내에 깃든 생명력이 담긴 마나까지 다 짜낸 마나 격발.

펼치고 나면 최소 중상 내지 사망이 분명한 무리수였건만, 어느새 몸이 회복되어 있었다.

인간이 가진 마법이나 지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신들의 힘.

윙! 윙! 윙!

놀랍게도 마나홀이 확장되어 있었다.

내가 마나를 격발시키며 늘려놨던 마나홀만큼 마나가 들어차 있었다.

전화위복.

온몸에 기쁨이 짜르르 흘러넘쳤다.

'기회다!'

그런 내 눈에 보이는 장면.

마족 놈이 눈을 못 뜨고 있었다.

아니, 치이이익거리며 놈이 쳐놓은 실드가 녹아내리며 놈의 몸이 무방비 상태로 드러났다.

방금 전까지 마법을 튕겨내고 내 공격을 가로막던 놈의 무식한 오토 실드.

"조, 조금만 더......"

마족 놈이 망토로 얼굴을 가리며 차원의 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고 있는 마계 조폭 놈들을 보고 있었다.

놈과는 달리 힘겹게 공간의 문을 열고 모습을 드러내는 놈들.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는 갑옷 입은 소부터 시작해서, 꼬리가 몇 개나 달린 검은 대가리의 사자 같은 놈, 온몸이 근육질인 눈 세 개짜리 새하얀 왕대가리 놈들까지.

하나둘 강림하고 있었다.

'이 새끼가 어디다 폐기물들을 쏟아내고 지랄이야!'

다시없을 하늘이 주신 기회.

속으로 욕을 퍼부으며 몸을 바람처럼 날렸다.

오토 실드가 깨진 상태에다가, 성령의 빛으로 인하여 눈도 제대로 못 뜨고 육체적 기능이 현저하게 떨어진 마족 놈.

최대한 숨을 죽이고 놈의 눈이 미치지 않는 측면으로 날아갔다.

그런 나를 알아채지 못하는 마족.

손에 들고 있는 절망의 지팡이를 야구방망이처럼 쥐었다.

"헛!"

그 순간 나의 살기를 감지하고 헛소리를 뱉으며 망토를 젖히며 고개를 드는 놈.

"꺼져! 씹새야!"

두 주먹 플러스 마나 가득을 담은 절망의 지팡이.

대형 홈런을 치는 이승엽 선수처럼 힌껏 어린아이 머리통만 한 수정구가 박혀 있는 지팡이를 휘둘렀다.

"......!"

갑작스러운 공격에 말도 못하고 성령의 오라에 눈을 멍하니 뜨고 있는 마족 놈.

퍽!

그런 마족 놈의 머리통에 제대로 가격된 드래곤 하트를 머금은 수정구.

파사사사사삭.

쾅 소리나 철벽을 울리는 굉음 대신 들고 가던 수박이 길 바닥에 떨어져 박살나는 파육음이 귓가에 살포시 들렸다.

후두두두두둑.

그리고 사방으로 비산하는 정체 모르는 하얀 덩어리와 붉은 피.

놀랍게도 마족 놈들도 인간과 다를 바 없는 붉은 피를 소유하고 있었다.

쿠에에에에!

카르르르르르르!

갑작스럽게 자신들을 소환했던 마족 놈의 머리통이 사라지자 울부짖는 마계 조폭 놈들.

어느새 숫자가 100마리에 이르러 있었다.

'주, 죽은 거야?'

마음 제대로 먹고 공격을 했지만 이렇게 쉽게 마족을 죽일 줄은 몰랐다.

생각했던 것보다 강력했던 성력의 힘.

놈에게서 잠시간의 틈을 만들어냈고, 그 틈이 예상치 못한 승리를 안겨주는 현장.

'마족 슬레이어!'

대륙에 지금껏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을 위대한 영웅의 업적.

전설로만 내려오던 99%짜리 구라로 이루어진 드래곤 슬레이어와 비교할 수 없는 현존하는 마족 슬레이어.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드래곤도 상대하기 어렵다는 상급 마족.

그것도 마계 7군단장을 자칭하는 놈을 사냥한 나.

피잉!

그때, 대갈통을 나에게 헌납했건만 지상으로 떨어지지 않는 마족 놈의 육체.

그런 놈의 몸에서 주먹만 한 검은 구슬 같은 것이 튀어 올라왔다.

쉬이이익.

구슬이 튀어나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의 부하 놈들이 튀어나온 지상으로 떨어지는 놈의 육신.

스스스스스스스스.

내 앞에서 빛을 뿜으며 천천히 분해돼 가는 놈의 배설물.

'이, 이건 뭐야?'

정신없는 와중에 보게 된 황당한 장면.

'가만, 드래곤이 죽고 나면 나중에 남게 되는 드래곤 하트도 저렇게 마나의 품으로 돌아가잖아.'

갑자기 머릿속을 강타하는 지식 하나.

"혀, 혁아! 가, 가만히 있어!"

등 뒤에서 들려오는 건달프 사부의 살 떨리는 목소리.

무언가 목적이 있을 때 튀어나오는 간절한 염원을 담고 있는 느낌.

'에라, 모르겠다.'

마족 놈의 마나 하트일 수도 있는 물체.

사부에게 뺏길 수 없었다.

어쩌면 인간에게는 죽었다 깨도 불가능한 9서클 경지에 이를 수 있는 신이 주신 선물일 수도 있는 법.

눈 질끈 감았다.

그리고 대기에 녹아내리고 있는 검은 구슬을 힘차게 베어 물었다.

사라락.

단단할 것 같았건만 입에 물자 그대로 녹아내리는 검은 구슬.

꾸울꺽.

끈적끈적한 꿀을 넘기듯 목을 타고 넘어가 버렸다.

"으아아아아아! 안 돼!"

바로 옆에서 들리는 사부의 비명.

"왜 그러십니까... 허억!"

아무렇지 않는 듯 사부를 보는 순간, 갑자기 아랫배에서 치솟아올라 오는 엄청난 열기.

용암을 삼킨 듯한 괴로움이 순간 정신을 수백 번 내리쳤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터져 나오는 비명.

"초, 총공격하라!"'

"마계의 마물들을 모두 물리쳐라!"

내가 고통의 비명을 지르자 무슨 일이 발생한 줄 알고 하늘에 떠 있던 스카이나이트들이 일제히 공격을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크으으... 마나 하트......"

고통의 와중에도 아까움에 피를 토하는 사부의 아까움에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가 꿈결처럼 들려왔다.

그리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수천 발의 유성우가 마계 조폭들이 소환된 마법진을 향해 쏟아져 내리는 것이 보였다.

"크아아아악!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러나 모든 것이 완벽하게 보이지 않았다.

머릿속을 강타한 연타의 충격음.

일순간 모든 세상이 암흑으로 변하며 내 모든 것들은 정지해 버렸다.

제발 내가 먹은 집 나온 떡(?)이 잘 소화되기를 간절히 기원함을 마지막으로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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