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세기 대마법사-201화 (201/221)

제201장 반격의 준비

"8서클은 어찌 오를 수 있습니까?"

"글쎄다. 하도 오래전 기억이라 가물가물거린다."'

순진한 아르미스를 통하여 즐거운 한때를 보낸 사부.

지하 연무장으로 이끌고 와서 8서클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가물가물이 아니라 맨입으로 못 가르쳐 주겠다는 심보겠지.'

지하 연무장 곳곳을 바라보며 내 시선을 피하는 아이달 사부의 모습.

"사부님을 위하여 마탑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나이를 먹었더니 몸을 움직이는 것도 힘들고... 이럴 때는 똘똘한 놈들이 옆에서 좀 거들어주면 딱 좋을 터인데."

"영지 마법사들 모두를 마탑에 보내 드리겠습니다."

"입맛도 부실한 게 이제 마나의 품으로 돌아갈 날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구나. 죽기 전에 먹고 싶은 거 다 먹어보고 싶은데, 내 욕심이 너무 큰 것은 아닌지 모르겠구나."

"최, 최고 주방장을 섭외해 드리겠습니다."

"잠자기엔 적당히 푹신하고 딱딱함 침대가 좋더구나. 이왕이면 테라스와 방도 좀 널찍하면 딱 좋겠더구나. 그리고 난 누가 내 머리 위에서 자는 꼴을 못 봐서....."

'에휴.....'

참 눈썰미도 좋았다.

콕 찍어서 내 방을 원한다고 표시를 팍팍 내는 사부.

"제... 제 방을 내드리겠습니다."

"그래? 안 그래도 되는데. 이거 미안해서 어쩌나."

"스승과 제자 사이에 아까워하는 바가 있으면 되겠습니까? 필요한 것이 있으면 더 말씀해 주십시오."

아까워하는 바를 강조해서 말했다.

이제 줄 것 다 주었으니 8서클에 대한 정보를 내놓으라는 내 조심스러운 권고.

씨익.

원하는 바를 얻고 사람 좋은 미소를 짓는 사부.

그 웃음의 크기만큼 내 심장은 썩어 들어갔다.

"넌 8서클의 경지가 무어라 생각하느냐?"

"....."

갑작스러운 사부의 질문.

'씨이, 내가 알면 이렇게 묻고 있겠어!'

전혀 상상도 안 가는 8서클 경지.

알아야 면장을 한다고, 8서클에 대한 지식은 머리에 주입 된 마법 공식밖에 없었다.

"모르겠습니다."

"몰라? 그럼 나도 모른다."

"스승님!"

배 째라는 식으로 나오는 아이달 사부.

울컥 소리를 질렀다.

"쯧쯧. 어찌 그리 빈약한 상상력으로 7서클에 오를 수 있었노? 마법사라는 자체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자들이거늘. 8서클에 대한 아무런 꿈도 없이 그것을 얻으려 하느냐? 너무 욕심이 과한 것 같구나."

쿠웅!

사부의 말이 머리를 강타했다.

'8서클에 대한 아무런 꿈이 없다니.....'

"모든 것은 처음으로 꿈꿀 때의 자세를 잊는 순간 발전을 멈추고 퇴보하게 된다. 안주하는 순간 천천히 뒤처지게 되고, 어느 순간 다른 꿈꾸는 이들이 저 멀리 사라진 뒤에야 자신의 잘못을 아는 것읻라. 마법도 이와 다를 것이 없다. 마법이 아니면 세상 그 무엇도 필요없다고 느끼는 그 감정. 그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서클은 그다음의 문제이다."

서클이 아니라 마음 자세를 보라는 사부의 말.

부끄러웠다.

사실 지금 내 경지는 대사기였다.

일반 마법사들은 죽기 살기로 파고들어 탑주 급의 나이나되어야 오를 수 있는 경지.

그런데 나는 잘난 사부의 지식으로 오늘에 오를 수 있었다.

물론 오르는 과정에서 죽을 고비도 넘겼지만 일반적인 마법사들이 겪는 고통은 대부분 건너뛰었다.

"네 상태를 잘 모르겠지만 운 좋게 7서클에 올랐다 해서 8서클 또한 그리 얻을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지 말거라. 매일같이 꾸던 꿈이 어느 날 현실이 되었을 때, 그것이 바로 8서클의 경지, 아니, 마법의 끝인 9서클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사실... 나 또한 꿈을 꾸지만 절박하지 않기에 9서클의 벽은 도전도 못하고 있다. 제자야....."

조용히 나를 부르는 사부의 근엄한 목소리.

그리고 처음으로 보는 사부의 진중한 마법에 대한 견해.

"네, 스승님."'

없는 존경심이 가슴에서 무럭무럭 자라나며 스승을 보았다.

더 중요한 한마디를 기다리면서.

"꿈 잘 꾸거라."

".....?"

"난 이만 내 꿈 꾸러 가마."

저벅저벅.

말과 함께 지하 연무장에 나를 남겨놓고 휘적휘적 걸어가는 사부.

멀어져 가는 사부의 등을 바라보는 순간.

'이, 이 개사기 같으니라고!'

번뜩 꿈에서 깨어나는 내 모습.

지금까지 한 사부가 한 말의 진짜 의미.

8서클도 9서클도 하룻밤 꿈과 같다는 배부른 자의 투정, 아니, 마법사의 개꿈 이론.

'썩을... 그러니까 주제 파악하고 꿈에서나 8서클을 꿈꾸라는 거지? 그런 거야!'

이런 말도 안 되는 몇 마디를 남겨주고 내 마탑과 마법사, 그리고 방까지 강탈해 간 사부.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사부의 말대로 진짜 내가 꿈꾸는 마법이 무엇인가를 생각 하면서.

★★★★★★★★★★★★★★★★★★★★★

"아바마마, 그동안 무탈하셨는지요."

"하하,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이렇게 건강한 모습을 보니 내 마음이 한량없이 기쁘구나."

오페른 제국의 황성.

암흑제국의 사주를 받은 몬스터들과 마수들이 이웃한 데포트 왕국 차트라인 요새를 무너뜨리고, 왕성으로 진격하고 있다는 급보가 날아와 분위기가 어두웠다.

그런데 황성에 울리는 황제의 시원한 웃음소리.

황태자가 돌아왔다.

황제와 말도 안 되는 내기를 걸고 밖으로 도망치듯 사라졌던 황태자가 방금 도착한 것이다.

"기뻐하시는 아바마마의 모습을 뵈오니 좀 더 일찍 돌아오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되옵니다."

"아니다. 딱 좋을 때 왔다. 사실, 대륙이 뒤숭숭하지 않았다면 너를 약속 기간까지 결코 부르지 않았을 것이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이온데 약속에 패하신 아바마마께서는 저의 혼사를 비롯한 일체의 개인행동에 대하여 더 이상 관여하지 않아 주시기를 청하는 바이옵니다."

"물론이다. 나도 한다면 하는 사람이다."

실로 몇 년 만에 집 나간 자식이 돌아왔건만 오고 가는 대화 속에 담겨 있는 내용들은 심히 범상치 않았다.

일국, 아니, 몇 개의 왕국을 합친 제국을 다스리는 황제와 그의 아들 황태자.

찌리리릿.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아버지와 아들의 진한 부정이 아니라 묘한 경쟁의식이 넘쳐흘렀다.

"그런데 지금 상황이 어찌 돌아가고 있는지요? 황성 경비가 아주 엄하던데 아바마마도 많이 약해지신 것 같습니다. 힘이 부치시면 소자도 클 만큼 컸는데 황위를 양위하시고 어마마마와 편안히 보내시옵소서. 골치 아픈 정치 따위는 다 잊어 버리시고 말이옵니다."

황실에서 파견한 황실 마탑주와 함께 이동 마법진을 이용하여 제국에 도착한 황태자.

누가 들으면 역모라 할 수 있는 망발을 서슴없이 꺼내었다.

"네 주군이었던 네루만 영주가 통이 큰 사람이었나 보구나. 너 같은 싸가지없는 이를 기사로 받아주고 말이다."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으니까요. 그래도 카이어 영주는 참 본받을 만했습니다. 황성에서 배우지 못한 여러 가지를 아주 제대로 가르쳐 주었으니 말입니다."

"그래? 한 번 기대해 보마."

검을 빼 들고 결투를 해도 아무렇지 않을 두 부자간의 대화.

원래 그랬다.

유난히 자존심 강한 두 부자.

매일같이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었고, 만나기만 하면 상대방의 가슴에 비수를 팍팍 꽂았다.

"확실히 보여 드리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아바마마, 듣자하니 암흑제국을 선포한 그놈이 제대로 미쳤다고 들었습니다만 그 말이 사실입니까?"

"그게 그렇구나. 어디서 제대로 미친놈이 나타나 한바탕 난리를 치고 있구나. 며칠 전에 데포트 왕국 국경 차트라인 요새가 쑥대밭이 됐다고 하더구나."'

"그래요? 심장 약한 어마마마가 근심이 많겠습니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책은 이미 세워놨지."

"오! 역시 아바마마이십니다. 그 대책이 무엇입니까? 소자에게도 가르쳐 주십시오."

"흐흐흐. 거기 있지 않느냐."

"네?"

"네가 바로 나의 대책이다. 크하하하. 어떠냐? 총사령관으로 임명해 줄 터니 네루만 영주 밑에서 배운 바를 한 번 진하게 보여주겠느냐?"

"역시 아바마마이십니다. 가장 확실한 대책을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그래, 소신껏 한 번 해봐라. 이 제국은 어차피 너에게 물려질 것. 말아먹던 튀겨 먹던 마음껏 놀아보거라. 하하하!"

참으로 호탕하기 그지없는 오페른 제국 황제 루버트의 웃음소리.

황제 집무실에 사일런스 마법이 펼쳐져 있어서 망정이지 누가 들을까 무서운 아버지와 아들 간의 진한 대화였다.

"감사히 먹겠습니다."

황제에게 고개를 숙이며 감ㅁ사함을 전하는 남자.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네루만에서 비행단을 이끌던 블루빛 곱슬머리를 소유한 기사.

그는 바로 라이케르 폰 오페른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제국의 하나뿐인 적통 황태자였다.

★★★★★★★★★★★★★★★★★★★★★

"영주님, 알타카스라는 자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정신없이 사부가 도착하고 나서도 마음은 썩 편치 않았다.

8서클 대마법사인 사부가 있는 이상 알타카스가 그렇게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네루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세상을 구하는 사제는 아니지만 암흑제국 밑에서 신음하는 칼리얀 대륙 일반 백성들을 생각하면 입맛이 가히 좋지 않았다.

와이번이 등장하면서 대륙의 전쟁 양상이 공중전으로 대부분 결정이 났다.

그렇기에 백성들의 피해는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암흑제국이 선포된 이후로 끊임없이 국경을 통하여 난민들이 도망쳐 나오고 있다 들었다.

누가 흑마법사 아니랄까 봐 인간을 오크보다 못하게 취급한다 들었다.

영혼을 빼앗긴 데스 와이번에게 인간들을 식량으로 공급한다고까지 하니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이번에는 어느 왕국인가."

"데포트 왕국 차트라인 국경 요새를 비롯해서 라비테르 제국과 연결되어 있는 상당 부분의 영토가 몬스터들에 의하여 뒤덮였다는 보고입니다. 또한, 유케인 왕국 또한 그럴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정말 무식한 놈이네.'

리알리온 왕국에 이어 데포트 왕국, 그리고 유케인 왕국을 순식간에 아작 낸 알타카스.

방금 전에 로시아테로부터 다급한 서신을 받았다.

제국 쪽에서 수많은 난민들이 도망쳐 오고 있고, 난민들이 전하는 소식에 의하면 상당수 제국 귀족들이 암흑제국에 협력하고 있다 했다.

"주군,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알타카스라는 자가 그다음 노릴 곳은 이곳 네루만과 주군일 것입니다. 코비란 산맥에 파견된 특수 정찰조들의 말에 의하면 몬스터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합니다. 만약 놈들이 저희를 공격해 온다면 영지는 속수무책일 것입니다."

비상시국이라 기사들을 소집할 수 없었다.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기에 각자의 위치에서 명을 기다려야 했다.

그렇기에 데르발만이 나와 대책을 논하였다.

'놈이 다음에 노릴 곳은 분명 하비스 왕국이다.'

차근차근 왕국들을 점령해 가고 있는 알타카스.

제국 귀족들이 협조하고 있다면 일은 한결 수월할 것이다.

'바보 같은 놈들.....'

단 한 번 부딪쳐 봤지만 알타카스가 귀족들을 가만 놔둘 리가 없음을 알고 있었다.

토사구팽.

사냥이 끝나면 협조한 제국 귀족들은 몬스터 똥이 될 것이 분명했다.

"데르발 경은 나의 스승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아! 그러고 보니 주군의 스승님이 계셨군요."

아이달 사부의 이야기가 나오자 환하게 얼굴이 밝아지는 데르발.

"주군의 스승님께서는 정말 8서클 마법사가 맞으십니까? 주군을 이리 장하게 키워놓으신 것을 보니 맞는 것 같기도 한데. 인간 역사상 8서크에 오른 이는 금안의 사신 아이달밖에 없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역시 세상은 넓은 것 같습니다."

"맞네."

"네? 뭐가 맞다는 말씀이신지....."

"내 스승님이 바로 금안의 사신 아이달이시네."

".....!!"

내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멍하니 나를 바라보는 데르발.

"노, 농담이시지요?"

단 한 번도 내 말을 농담으로 받아들인 적 없는 데르발이 농담이냐며 물어왔다.

"아니네. 내 스승님은 금안의 사신 아이달이시네."

"헉! 세... 세상에.....!"

금안의 사신 아이달이 누구던가.

100년 전에 대륙을 홀로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준 흑마법사 대접을 받던 이.

그가 나의 스승이라는 말에 데르발의 얼굴이 햐앟게 질려버렸다.

"요즘은 과거를 청산하시고 착하게 살고 계시네.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

"...주군."

무슨 희대의 조폭이 출소한 것도 아니건만 두려움에 떠는 데르발.

그가 이럴진대 다른 이들이 이 사실을 알면 어떻겠는가.

'아! 맞아!'

그 순간 갑자기 떠오른 생각 하나.

"데르발, 아직 마탑들의 움직임은 없지 않는가?"

"네. 마탑주들이 없는 이상 그들은 쉽게 움직이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쯤이면 자신들의 탑주가 준 리치가 된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오예!'

남에게 고통이 되는 일이 나에게는 축복이 될 수 있었다.

지금 이 시간이 바로 딱 그때였다.

'흐흐, 사람은 역시 넓게 생각해야 해.'

사부의 이름을 감출 필요가 없었다.

대륙이 평화로운 시기라면 아이달이라는 이름만으로도 짱돌을 맞을 수 있겠지만, 지금은 사부는 쨉도 안 되는 악의 종자가 나타난 시기.

사부를 팔아먹을 때가 찾아왔다.

"마탑과 연락하려면 루비스 상단이 제격이겠지?"

"그렇습니다만, 무슨 일로....."

'왜긴 왜야. 대륙 마법계의 살아 있는 전설이 나타나셨으니까 짬밥 안 되는 것들은 다 알아서 기어나와야지. 흐흐흐.'

차마 데르발에게 밝히지 못한 속마음.

"대륙을 구하기 위해서는 마탑의 힘이 필요하다. 내가 서신을 적어줄 터이니 비밀로 최대한 빨리 그들에게 전해주도록 하게."

"명!"

길게 묻지도 않았다.

비밀로 전해달라는 말에 힘차게 명을 외치는 데르발.

'그래, 그 방법이 있었어.'

세상 다 얻은 것처럼 기고만장하고 있을 알타카스.

놈에게 회심의 일격을 선사할 핵 미사일을 준비하리라 마음먹었다.

눈에 맞으면 눈탱이를 밤탱이로, 이가 다치면 틀니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내 꼬라지.

이제 뜨거운 반격을 놈에게 안겨줄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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