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세기 대마법사-182화 (182/221)

제182장 비와 김치전

"크아아아악!"

"으아아아아! 시, 신관들이 사람을 죽였다!"

라비테르 제국의 황실이 존재하는 수도.

황태자가 신관들의 치료를 받아 죽음에 이르렀다는 불길한 소문이 빠르게 황성을 강타했고, 신이 타락한 신관들을 벌하기 위하여 신성력을 거둬갔다는 말도 안 되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그러나 치료를 받아야 하는 이들 중에는 설마하는 심정으로 각 신전을 찾는 이들이 허다했다.

그중에서도 치료력이 가장 우수한 축복의 여신 네르미스님의 신전은 언제나 병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비싼 치료비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효과가 나타나기에 귀족들을 비롯한 중류층 이상의 백성들이 신전을 찾았다.

그런 황성의 네르미스 신전.

제국의 황성에 위치한 곳답게 신전은 주변 여타 건물과 달리 웅장하기 그지없었다.

황성에 위치한 원형 경기장보다 더 크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넓고 화려함의 극치를 달렸다.

"모두 물러나시오!"

타다다다닥.

그리 안 해도 황태자의 사망으로 민감해져 있는 신전.

갑자기 치료를 받고 있던 상인이 입에서 게거품을 뿜어내며 죽어버리자, 신전 밖에서 경비를 서던 성기사 수십여 명이 달려왔다.

"오, 오늘은 이만 신전 문을 닫겠습니다. 모두 내일 와주십시오."

신전을 책임지고 있는 헤로므스라는 이름의 신관이 비명 소리에 달려나와 상황을 살펴보고 신전 문을 닫겠다고 말을 꺼내었다.

"무슨 일입니까! 왜 멀쩡하던 사람이 치료를 받다 죽는 것 입니까!"

"우리들도 위험에 빠지는 것은 아닙니까!"

넓은 신전 안의 치료소.

여러 명의 신관들이 돌아가면서 병자들을 치료했기에 개방형의 공간이었고, 그 안에서 치료를 받거나 대기 중이던 이들이 소리 높여 불만을 터뜨렸다.

"이번 일은 모두 저희 신전에서 알아서 처리할 것입니다. 모두 물러가 계시면 바로 사건 경과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황성에서 벌어진 일 때문에 라비테르 황성에 위치한 신전들은 비상시국이었다.

아직 황성에서 별말이 없지만 구속된 황성 파견 신관들이 황태자의 사인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음이 밝혀지면 낭패가 아닐 수 없었다.

"난 이타루 남작가의 장자인 살트온 로드라고 합니다. 소문이 사실이었소이까? 각 신전이 모시는 신들께서 타락한 신관들을 벌하기 위하여 성력 대신 저주력을 내리고 있다는 말이 사실입니까!"

"이곳이 어디라고! 무슨 말도 안 되는 망발을!"

타락한 신관이니 저주력이라는 불경한 말을 신전에서 꺼내자 안색이 변한 성기사들.

"망발이라니! 감히 일개 성기사들이 제국의 귀족에게 주둥이를 함부로 놀리더냐! 정말 타락한 종들이 분명하구나!"

차자장!

다른 이도 아니고 남작가를 이을 로드에게 험한 말을 뱉자 살트온이 분노에 찬 일갈을 터뜨렸고, 그 순간 그를 수행해온 두 명의 기사가 검을 뽑았다.

차자자자장!

검이 뽑히자 성기사들도 지지 않고 검을 뽑았다.

투욱!

그런 성기사들 중에 선두에 나선 이를 향해 손에 끼고 있던 장갑을 벗어 던지는 살트온.

"기사 앞에서 검을 뽑는 것은 곧 결투를 의미하는 것. 제국 황제 폐하께서 허락하신 기사의 이름으로 그대에게 결투를 신청하는 바이다!"

"헉....."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책임자 헤로므스 신관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지금까지 이런 일은 없었다.

제국의 명예라 불리는 기사와 신전의 성기사가 결투를 벌였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비록 검을 들고 명예를 지키는 자들임에는 똑같았지만 제국과 신전이 지키는 명예는 달랐다.

그리고 공식적이지는 않지만 일반 기사와 성기사들은 서로를 향해 들지 않음이 불문율처럼 내려왔다.

"왜, 겁이 나는가? 신성한 성력을 팔아먹고 살 만하니 기사의 자존심도 버린 것인가? 후후후."

작정을 하고 왔음인지 성기사들과 신관들을 조롱하는 살트온.

치료를 받기 위하여 찾아왔던 사람들의 눈빛이 빛났다.

말은 하지 못했지만 어지간한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최소 수 골드에서 수십, 수백 골드를 헌납해야 가능했다.

그렇기에 일반 평민은 아파도 찾아오지 못하는 신전의 높다란 문턱.

듣고 있던 성기사들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황제의 권력도 감히 범접하지 못하는 신전 안에서 감추고 싶은 공공연한 비밀을 뱉어내며 분노를 자극하는 살트온이라는 자.

"결투를 받아들이겠다!"

참지 못한 성기사가 장갑을 발로 밟으며 결투 신청을 받아들였다.

"하하하!"

호탕한 웃음을 토하는 살트온.

검을 들고 고개를 숙였다.

"타앗!"

"합!"

그리고 병자들을 치료하는 치료소에서 벌어지는 결투.

할 말을 잃어버린 헤로므스의 안색은 창백하다 못해 파랗게 질려갔다.

너무도 우연히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

수습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까가가가가강!

마나 블레이드가 넘실대는 두 기사의 검이 부딪치며 굉음을 만들어내었다.

지방 귀족가의 자식이라지만 귀족가의 엄연한 핏줄.

검이 상당히 매서웠다.

하지만 황성의 신전을 방어하는 성기사는 성기사들 중에서도 상위에 있는 자.

수십여 번 검이 허공에 부딪치는 순간, 살트온의 몸에 허점이 드러났다.

푸욱!

"컥!"

그리고 벌어진 참상.

단순히 승패를 결정짓기 위하여 성기사가 빈틈으로 살짝 검을 밀어 넣었을 뿐이건만, 그 순간 방향을 틀어 검을 찔러오는 살트온의 목을 깊숙이 파고드는 검.

놀란 성기사가 급히 검을 빼내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신전.

즉사가 아니면 급히 치료하면 살 수도 있는 상황.

"....."

하지만 신은 성기사의 뜻을 받아주지 않았다.

아직 마나 블레이드가 파랗게 서려 있던 검이 빼어지자 반쯤 목이 잘라져 버렸다.

촤아아아아아아아악.

목을 지나가는 대동맥이 잘리자 피분수가 수 미터씩 뿜어지며 사방에 날렸다.

털썩.

비명 한마디를 남기고 바닥에 주저앉은 살트온.

"로, 로드시여!!!!!!!!"

"이놈들!!!!!"

목숨으로 받들어야 할 로드의 죽음에 눈이 돌아간 이타루 남작가의 기사들.

검을 빼어 들고 성기사들에게 덤벼들었다.

차자자자자장.

그리고 이어지는 결투의 연장.

"크악!"

"악!"

무엇에 홀린 것처럼 미친 듯이 달려들며 살검을 뿌리던 남작가의 기사들이 성기사들의 손에 팔다리가 잘려 나갔다.

"으아아아아! 신전에서 성기사들이 기사들을 죽였다!"

"화, 황성 수비군에 어서 알려라!!!"

멍하니 보고 있던 병자들이 비명을 지르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

그런 사람들의 비명에 눈만 껌벅이며 바라보는 신관들과 성기사들.

악몽도 이런 악몽이 없었다.

성스러워야 할 신의 대지에서 벌어진 참상.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어, 어서 신전 문을 닫으라. 그리고 대신관님께 보고하라..... 신전이 위험하다고 말이다."

헤로므스 신관의 입에서 떨리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부모에게 버려진 여섯 살 이후로 평생 신전에 몸담아 살아왔던 그.

신전의 타락도 알고 있었고, 그 타락을 이용하여 어느 정도 개인적인 부를 취하고 오늘의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다.

그러나 언제나 마음속에서 양심은 살아 있었다.

신전이 이렇게 흘러가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며칠 사이로 벌어진 참사.

죽은 살트온의 말처럼 타락한 종들을 벌하기 위한 신의 분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투두툭두두둑.

'벌써 우기인가.....'

비가 왔다.

정신없이 봄을 보내었더니 어느새 성큼 다가온 여름.

네루만에만 존재하는 짧은 우기가 찾아왔다.

투둑, 투두둑, 투두둑.

밤을 새다시피 새로운 7서클 마법 공식을 창조했다.

기존의 저서클 마법 중에 수식이 간단하고 사부가 심어놓은 마법 지식과 결합이 가능한 마법들을 추렸다.

7서클 마법사의 경지에 올랐지만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요즘 느껴졌다.

영지는 서서히 안정화되었지만 아직도 할 일이 많았다.

행정구역을 개편했지만 중심 도시와 촌락 간의 유대관계는 아직 긴밀하게 형성되지 않았다.

워낙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진 구조였기에 일순간에 바로잡을 수 없었다.

더욱이 기사와 병사들로는 어찌할 수 없는 전문 행정 인력의 부족.

대륙에서 꿈을 찾아 네루만에 들기 원하는 젊은 인재들이 많았지만 아직은 부족하였다.

"날씨 좋네....."

화창한 날도 사랑했지만 이렇게 비가 오는 날도 나쁘지 않았다.

투둑거리며 베란다에 떨어지는 수많은 물방울들.

마나의 경지가 달라지면서 모든 자연 현상들이 과거처럼 하나의 현상으로 보이지 않았다.

튀어 오르는 물방울에 담겨 있는 자연의 생명력과, 그것이 모여 또다시 이뤄내는 연속되는 마나의 생성과 결합 그리고 분해 과정.

멍하니 웅장한 오케스트라같이 울려오는 자연의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오랜만에 맛보는 나른한 평화.

내 기분처럼 대륙도 조용하였다.

꾸준히 네루만을 압박하기 위하여 라비테르 제국군이 국경 부근에 병력을 집결시키고 있었다.

그 병력들 중에는 지금껏 조용하던 유케인과 베르카인 왕국의 스카이나이트들도 포함되어 있다 들었다.

고요 속의 긴장감.

지금 이 순간을 표한하기에 가장 알맞은 표현이었다.

'바즈란도 이제 조용해졌고 다른 왕국들도 잃어버린 전력을 복구하느라 여념이 없다 했지.'

이렇다 할 일 없이 끝난 바즈란 제국을 향한 왕국들의 침공.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로 원수 대하듯 결전을 벌이던 제국과 주변 왕국들은 새로이 화친을 맺었다.

바즈란 제국의 꼬맹이 황제와 아이지스 황녀는 바보가 아니었기에 제국을 혼란 속에서 구해냈다.

폴트비란을 따라 제국을 어지럽혔던 대귀족들과 수십 명의 귀족들은 추방하거나 평민으로 강등시켜 버렸다.

그리고 그 자리를 제국에 충성하는 새로운 귀족들로 채웠다.

후에 어찌 될지는 모라도 제국을 활기차게 만들기에는 충분한 수혈이 분명했다.

거기에 나로 인하여 개박살이 난 주변 왕국들과 평화협정식을 맺었다.

모든 일이 폴트비란 전 황제로 인하여 벌어진 까닭에 제국 침입의 죄를 묻지 않는 것이었다.

'수십 년 동안은 전력을 복구하느라 눈코 뜰 새 없겠네.'

보병들이야 농부들을 징집해도 몇 달 만에 쓸 만한 전력으로 완성시킬 수 있겠지만, 와이번 한 마리를 전투에 사용하려면 5년 이상이 소모되었다.

그런 와이번들이 지금은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상황.

순전히 알에서 부화시켜 새로이 키워내야 하는 까닭에 전쟁에 참여한 왕국은 수십 년이 지나야 전력을 복구할 수 있을 것이었다.

'우기가 끝나면 곡식들이 잘 자라겠지.'

대륙에 사는 백성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배고프지 않는 것이었다.

21세기와 달리 굳이 많은 것들을 필요치 않는 이곳 대륙 사람들.

비와 추위를 피할 수 있는 집 한 채와 배고프지 않는 하루 하루의 삶이라면 모두들 만족하고 살았다.

물론 귀족들이라 불리는 이들은 만족하지 못할 일이라지만 일반 백성들은 순박하고 그리 많은 욕심이 없었다.

'철저하게 계획적으로 물건을 공급할 것이다.'

공산주의를 찬양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곳 백성들을 물질의 욕심으로부터 지켜내고 싶었다.

다른 왕국이나 영지와 달리 풍부한 생산물을 만들어내는 이곳 네루만.

대륙의 일반 상인들은 과거처럼 각 촌락을 찾아 거래를 할 수 없었다.

각 촌락에서 생산하는 물건들은 세금을 제외하고 거래 시에는 영지에서 파견한 수매관들에게 팔아야 했다.

그리고 필요한 물건들은 촌락과 연결된 중앙 도시 행정구역에 가서 구입하면 되었다.

일반 대륙 상인들에게서 구입한 필수물품들을 구입가나 좀 더 저렴한 가격에 팔 것이었다.

먹고사는 문제에 완전 자유로운 곳.

일한 만큼 벌 수 있고, 또한 행복해질 수 있는 영지.

내가 꿈꾸는 파라다이스의 한 축이었다.

'금덩이도 많이 만들어졌겠지.'

네루만의 물건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대륙의 금화를 가져와 교환해야 했다.

그리고 교환된 금화는 바로 용광로에 들어가 금덩이로 재생산되었다.

금화와 합금의 비율이 제각각이었지만 차곡차곡 금덩이들이 모여졌다.

'코르베인 네놈들이 언제까지 버티나 보자. 후후후.'

아타이반 상단의 거래 재개 이후로 대륙 나머지 상단들도 찾아와 머리를 숙였다.

루비스 상단을 제외하고는 모두 1,000만 골드씩 예치금을 내고 네루만과 상거래 협정을 맺었다.

하지만 라비테르 제국을 상단의 중심으로 삼고 있는 코르베인 상단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네루만의 생산품들이 욕심이야 나겠지만 제국의 눈치를 보느라 쉽게 행동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얼마 안 가 고개를 숙여야 할 것이다.

다른 것은 어찌하더라도 지금 대륙을 강타하는 네루만표 소금을 팔지 못한다면 상단에 큰 타격이 갈 것이었다.

단 몇 달 만에 대륙 곳곳에 퍼져 버린 네루만표 천연 소금.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서 얼마 전에는 대규모 염전을 다시 개발해야 했다.

그리고 그 영향으로 독점적으로 화력 소금이나 암염을 취급하던 상단들은 앞 다투어 네루만표 소금을 거래 품목으로 삼았다.

계획한 바대로 소금의 대량 생산과 독점적 지배가 예상한바보다는 빠르게 이뤄졌다.

'하루에 네루만에 유입되는 사람들의 숫자가 수천 명이라고 했지.'

상인들의 거래가 활발하자 그와 함께 상단을 호위한 용병들의 숫자가 엄청나게 늘어났다.

전쟁으로 인하여 전력을 소비한 바즈란 제국, 하비스 기타 왕국들이 치안에 힘을 쓰지 못하자 곳곳에서 몬스터들을 비롯한 도적 떼들이 출몰했다.

각 왕국 곳곳도 개발되지 못한 곳이 많았고, 네루만처럼 이렇다 할 관도가 개발된 곳이 없었다.

그런 까달겡 대륙은 전쟁 후유증을 겪고 있었다.

'엘프들과 드워프들의 연합 도시는 충분히 제구실을 해나가고 있고... 라비테르 제국을 제외하면 만족스러운데 말이야.'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며 하나둘씩 떠오르는 네루만의 상황들을 정리해 갔다.

산맥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던 엘프들이 이제는 수시로 드워프와 조성한 마을에서 잠을 자거나 같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가끔씩 영지 상공을 나는 엘프들의 하르피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인간들과 달리 먼저 시비를 걸거나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엘프들.

자유롭게 허락된 비행만으로도 그들은 행복했고, 백성들은 엘프와 드워프들을 이제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의 네루만을 건설하는 데 이종족들이 얼마나 많은 도움을 주었는지 그들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한 힘이 된다는 것을 안전에 굶주린 네루만 백성들은 확실히 깨닫고 있었다.

"썩을 놈들....."

그러나 딱히 답이 나오지 않는 라비테르 제국 놈들.

코비란 산맥 너머에 하나둘 자리를 잡은 제국 병력들은 스카이나이트들을 비롯해 기마병, 일반 보병까지 네루만을 뒤덮고도 남을 숫자였다.

지금까지 들어온 정보에 의하면 힘없는 유케인과 베르카인 왕국의 스카이나이트들을 포함해서 1,500여 마리가 넘는 엄청난 전력이 포진해 있다고 들었다.

거기에 기마병이 10만 단위요, 일반 보병은 수십만이 넘는다 들었다.

조금만 방심한다면 한 방에 골로 갈 수 있는 무시무시한 전력이었다.

"그런데 마탑의 탑주들이 모두 어디로 간 거야?"

라비테르 놈들 때문에 골치가 아파왔지만 정보 수집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루비스 상단과 암흑상단에서 파견한 정보 상인 세이크로로부터 입수한 첩보에 의하면 대륙 마탑의 탑주들이 사라졌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무언가 찝찝하였다.

마탑에 앉아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황제 부럽지 않은 권력과 물질을 누릴 수 있는 마탑주들의 동시 행방불명.

나와 직접적 연관은 없었지만 찝찝하기 그지없는 소식이었다.

"라비테르 제국에서 신전의 치료를 받은 백성들 수천 명이 원인도 모르게 죽어나갔다는 말은 또 뭐야."

어제 늦게 날아온 소식 하나.

라비테르 제국의 첫 번째 황자가 신성 치료 중에 죽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일이었다.

뭐 신관들이 신이 아니기에 그럴 수도 있다지만, 제국의 각 신전에서 치료를 받던 귀족들이나 기사 그리고 일반 백성들까지 죽어간다면 말이 달라졌다.

"마음에 안 들어."

유독 라비테르 제국에서만 일어나는 신전의 참상.

신전과 신관 놈들의 행태가 예전부터 눈에 거슬렸지만 이건 아니었다.

그래도 신전이 존재하는 덕분에 비록 돈을 강탈당하지만 백성들은 마음의 안정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런 신전들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 대규모 혼란이 찾아올 것이 분명했다.

"한 번 가봐?"

들어오는 정보의 신뢰성이 아주 낮지는 않지만 한 번 찾아가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직접 눈으로 보고 판단한다면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쿠구구구궁! 쿠구궁!

번쩍번쩍.

빗방울에 천둥소리가 울리더니 번개가 지상에 작렬했다.

쏴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리고 굵어지는 빗방울.

"김치전에 막걸리 생각이 간절하네."

주말에 비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던 김치전과 막걸리.

교수와 펀드 매니저라는 고상한 직업을 소유하고 계시는 부모님이었지만 한국적 맛을 좋아하셨다.

그 덕분에 비 오는 날이면 종이컵 3분의 1정도의 막걸리와 익은 김치로 만든 김치전을 맛볼 수 있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먹는 거지. 막걸리 대신 맥주가 있잖아."

찰떡궁합은 아니더라도 밀가루 궁합 정도는 되는 김치전과 맥주.

"하아암....."

귓가에 울리는 빗방울 소리에 길게 기지개를 켜며 입맛을 다셨다.

어지간하면 비 오는 날에는 하늘을 날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오랜만에 찾아온 휴식.

아르미스를 비롯한 네루만의 뭇 지인들과 김치전 파티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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