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세기 대마법사-171화 (171/221)

제171장 출전 준비 완료!

쇄애애애애애애액!

퍼버버벅!

쿠아아아아아악!

"막아라! 막아!"

쉬이이이이이이이익!

퍼어어어엉! 퍼어어어엉!

바즈란 제국 서부 국경의 중요 성 중에 하나인 페페온 후작의 성.

크란츠 왕국에서 도망쳐 온 제국 잔여 병력과 쿠비란 왕국의 기습 공격에 허를 찔린 서부군단 소속 스카이나이트들과 병사들이 피를 토하며 성을 사수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계에 부딪쳐 있었다.

황실에 청한 증원군이 오지 않나 얼마 전부터 주변 영주들의 증원군들이 뚝 끊어지더니 며칠 전부터는 귀족들 중에서도 탈영하는 자들이 발생했다.

무차별적인 왕국들의 별동 공격에 제국군은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페페온 후작성의 상공에서는 일방적인 학살이 벌어지고 있었다.

온전하게 스카이나이트 전력을 보유한 크란츠 왕국과 쿠비란 왕국의 연합 와이번 600여 마리.

새카맣게 하늘을 뒤덮고 채 100마리도 남지 않은 제국 스카이나이트들에게 블레스트 스피어를 날리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었다.

단단한 후작성의 성벽을 부숴 버리고 있는 투석기.

마법사들에 의하여 사거리가 훨씬 늘어난 투석기들에서는 사정없이 돌들이 쏘아지고 있었다.

콰아아아앙!

투석기들의 집중 공격과 스카이나이트들이 던진 스피어에 어느 순간 마나 방어치의 한계를 넘긴 성벽들이 박살났다.

"성벽이 무너졌다!"

"돌격하라!"

"단숨에 성벽을 함락하라!"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사기가 충천한 두 왕국군 10만 병사들이 상공의 전투는 신경 쓰지도 않고 성을 향해 달려갔다.

두두두두두두두.

지축을 울리는 병사들의 발걸음 소리.

"....."

성벽을 사수해야 할 제국 병사들은 다가오는 적병들에게 화살을 퍼부을 생각도 못하고 멍청히 서 있었다.

보름이 넘는 동안 계속된 치열한 접전.

지친 병사들은 이제 그 끝을 보고 싶었다.

이미 병사들과 제국에 파다한 폭군 황제의 무능한 정치와 귀족들의 비겁함에 용기를 내지 못하는 제국 병사들.

"퇴, 퇴각하십시다."

"더 이상 머뭇거리다가는 개죽음을 당할 것입니다."

이미 성의 주인인 페페온 후작은 이틀 전에 황제에게 도움을 청한다며 도망치고 없었다.

그런 성을 수비하는 이들은 제국 서부군단의 지휘관들과 주변 영지의 귀족들.

그나마 용맹을 보이며 항전하던 이들은 성벽이 무너지고 와이번들의 숫자가 급감하자 후퇴를 종용하였다.

"가긴 어디를 간단 말이오. 이미 늦었소."

자랑스러운 제국 2군단의 사령관인 에로이트 백작은 담담한 목소리로 하늘을 보았다.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방금 전까지 마지막 의지를 불태우며 항전하던 제국 와이번들은 단 한 기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제국 스카이나이트들이 떠난 상공에는 두 왕국의 와이번들이 질서 정연한 대형을 이루며 위협 비행을 가하고 있었다.

"크으... 어떻게... 우리 제국이."

"하아... 이곳이 무너지면 황성도 위험할 터인데."

남아 있는 귀족들은 그나마 제국에 쥐꼬리만 한 충성심이 있던 자들.

한숨을 쉬며 제국의 험난한 앞날에 쓴 입맛을 다셨다.

"우리가 할 도리는 다 한 것 같소."

병사들도 항전의 의지를 꺾은 이 마당에 지휘관들이 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성벽을 의지하고 약 5만의 병사들이 존재했지만 스카이나이트의 도움 없이는 허수아비 같은 존재들.

"자랑스러운 병사들아, 수고했노라!"

두툼한 지휘관용 성루에서 마나를 돋워 소리치는 에로이트 백작.

"이제 되었노라. 모두 무기를 내려놓으라. 이제 그만... 해도 되었노라."

누구에게 하는 말인가.

소리를 치는 에로이트 백작의 눈가에 어리는 촉촉한 눈물.

제국이야 사라질 수도 있지만 애꿎은 병사들은 죽일 필요가 없었다.

못난 황제 하나 덕분에 수백 년간 영화를 누리던 바즈란은 사상누각처럼 허물어지기 일보 직전.

그런 제국을 위하여 피를 흘릴 의무 따위는 저 병사들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경들도 마음의 준비를 하시오."

"....."

남아 있던 귀족들과 기사들의 얼굴에 비애감이 어렸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왕국들은 제국의 헛기침에도 몸을 사렸다.

그런 왕국들의 공세에 제국 영토가 유린당하는 이 순간.

지도층인 그들 또한 할 말이 없었다.

아무리 황제가 무능하다 하더라도 그 죄는 황제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귀족들은 알고 있었다.

"조금만 수모를 견딥시다. 가르비티 공작 각하께서... 반드시 이 원한을 갚아줄 것입니다."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졌지만 귀족들은 알고 있었다.

폭군을 몰아내고 2황자를 추대하려는 가르비티 공작과 북부 귀족들의 움직임.

"그러길 바라야지요. 이대로 무너지기에는 바즈란은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 아닙니까."

폴트비란 황제가 들어서기 전에 바즈란 제국은 어떠한 곳이었던가.

주변 왕국을 힘이 아닌 마음으로 다스리며, 평민들과 귀족들 모두 지엄한 국법과 황명으로 다스리던 곳.

잠시 위기는 있을지언정 무너지면 아니 되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 싹은 멀지 않은 곳에서 쑥쑥 자라고 있었다.

★★★★★★★★★★★★★★★★★★★★★

"결국 페페온 성마저 함락당했군."

"...이제 왕국들을 막을 여력이 없겠군요."

"이 위급한 순간에도 황성에 남은 전력들을 집중시키다니. 도대체 멍청한 황제, 아니, 귀족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칼데인 백작을 꺾고 상쾌한 기분으로 들어선 공작가의 회의실.

갑작스럽게 날아온 페페온 성의 함락 소식에 회의장은 금세 장례식 분위기로 변하였다.

'페페온 성이라면 이곳에서 와이번을 타고 하루 거리가 아닌가.'

멀다면 먼 곳이지만 가깝다면 가까운 곳.

페르콘 강 상류 지류가 갈라지는 곳에 위치한 황성에서도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정보에 의하면 황제는 이 위급한 상황에서도 나서지 않고있다 합니다. 모사꾼 실베론에게 모든 권한을 넘기고 후궁들의 처소에만 있다 합니다."

"허어... 아무리 그래도 이런 위급한 순간에."

가르비티 공작의 성에 모인 제국 북부 귀족들.

"할버크만 무너지면 이제 제국군은 3분의 2가 사라질 것입니다. 그 아까운 전력들이 그렇게 사라지다니....."

곳곳에 들리는 탄식들.

회의장의 상좌에 앉아 있던 아이지스와 라즈시온의 얼굴은 진작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무능한 황제라지만 자신들의 오라버니이자 형.

귀족들의 질타 어린 목소리는 황녀와 꼬맹이에게 잊지 못할 상처로 남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도와줄 수 없었다.

황실 하나 때문에 전란에 휩싸인 제국.

바즈란이라는 성을 사용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만들 하시오. 아무리 지금 황제 폐하께서 무능하다지만 황녀님과 황자 전하 앞에서 그 무슨 불충한 망발들이오!"

"....."

눈을 감고 듣고 있던 가르비티 공작의 호통이 쩌렁쩌렁 회의장에 울렸다.

그 순간 입을 나불거리던 귀족들은 황급히 자라목이 되어 입을 다물었다.

"됐습니다. 모든 죄는 황실에 있는 법. 그 죄를 달게 받겠습니다."

'캬아, 정말 대단한 여인이라니까.'

나 같았으면 어디서 망발이라며 주먹이 날아갔을 판이건만, 꿋꿋이 인내하는 아이지스 황녀.

"아니옵니다, 황녀 전하. 어찌 이 모든 일이 황실의 잘못이겠나이까. 황제 폐하를 잘못 보필한 저희들의 죄 또한 가볍지 않사옵니다."

늙은 공작이 착잡한 음성으로 자신들의 죄를 자복했다.

"불충한 소인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새로운 제국을 건설하겠다고 모인 이들답게 자신들이 저지른 죄를 바로 깨닫는 귀족들.

고개를 숙이며 용서를 구하였다.

'아름다운 광경은 이 정도면 되었고.'

회의를 하는 이유가 뭔가 진취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안전을 끄집어내기 위한 것.

과거의 죄나 반성하고 서로 미안하다고 하는 일은 지금 상황에서 이 정도면 충분하였다.

"공작 각하, 이제 저희가 할 일이 무엇입니까. 이대로 황성에 처박혀 있는 폴트비란 황제를 축출하러 달려가면 되는 겁니까? 그게 아니면 제국의 영토를 유린하는 왕국들에게 따끔한 일침을 가하면 됩니까?"

칙칙한 분위기를 거둬내고 건설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것이 문제네. 페페온 성이 무너지지 않았다면 황성으로 바로 진격하여 현 황제 폐하를 폐하고 라즈시온 황자 전하를 황젱늬 보위에 오르게 하면 되겠지만, 왕국군들이 욕심을 부려 이곳으로 진격 방향을 잡는다면....."

뒷말을 잇지 않는 가르비티 공작.

말하지 않아도 뻔하였다.

남의 집 털러 갔다가 자신의 곳간이 털릴 상황.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감한 현실이었다.

"황녀님의 의견은 어떠하신지요."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인 것 같군요."

현명한 아이지스도 답을 내놓지 못했다.

"왕국군을 먼저 혼내줘야 합니다!"

'오잉?'

그때, 갑자기 작은 키 때문에 의자 위로 고개만 빼꼼히 내밀고 있던 라즈시온이 결연한 목소리로 왕국군 토벌을 주장하였다.

"저, 전하... 그것은 쉽게 결정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귀족들 중 한 명이 꼬맹이의 의견에 토를 달았다.

"멍청한 형이야 저대로 놔둬도 얼마 가지 못하겠지만 왕국군들에 유린될 선조님들이 이룩한 이 제국은 누가 책임을 져야 하나요? 그리고 황제의 명만 따르고 살아온 충실한 병사들과 백성들은 어찌해야 하나요?"

날카로운 꼬맹이의 질문.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가르비티 공작님과 여러 귀족들은 지금 즉시 병사들을 모아주십시오."

'오우, 꼬맹이 대단한데!'

아직까지 어리다고 생각했건만 이 난감한 상황에서 가장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는 꼬맹이.

황제가 될 자신이 책임지겠다 말하며 귀족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황명을 받드옵니다!"

꼬맹이의 말이 끝나는 순간 격정에 부르르 떨던 가르비티 공작이 깊숙이 고개를 숙이며 황명을 받든다 하였다.

"황명을 받드옵니다!"

당찬 라즈시온의 말에 답을 얻은 귀족들이 모두 고개를 숙이며 꼬맹이의 명을 받들었다.

'오케이. 이래야 내가 편하지.'

내가 주도적으로 이끌 수는 없었다.

비록 도움을 주기 위하여 왔지만 선택은 이곳에서 살아갈 자들이 하는 것.

바즈란의 주인이 될 꼬맹이의 의견을 난 충실히 도와주면 그만이었다.

'그럼 목표는 왕국 놈들이라 이거지.'

내가 적당히 하라고 서신까지 보냈건만 끝장을 보려는 왕국 놈들.

나도 인간이지만 이래서 인간들이 참 싫었다.

욕심이 지나치면 화가 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모르는 죄.

몸으로 때울 수밖에 없었다.

"자, 그럼 바로 공격 회의에 들어갑시다. 황자 전하의 명대로 제국을 유린한 왕국 놈들에게 매서운 맛을 보여줍시다."

빨리빨리 해결하고 네루만으로 돌아가야 할 이 몸.

서둘러 회의를 진행시켰다.

아직도 다 구경하지 못한 네루만의 내 그리운 저택.

벌써 그곳이 그리워지고 있었다.

★★★★★★★★★★★★★★★★★★★★★

"하하, 완전 대승입니다."

"속이 다 시원합니다, 전하."

바즈란 제국의 중요한 성인 페페온을 점령한 쿠비란 왕국과 크란츠 왕국의 수장들.

예상보다 빠른 점령에 얼굴이 웃음이 만발하였다.

바즈란 제국이 어떠한 곳이던가.

불과 일 년 전만 해도 감히 어찌해 볼 생각은 꿈에도 못했떤 북부 대륙의 패자.

그런데 그 바즈란이 무너지고 있었다.

그것도 황제 한 명으로 인하여 제국 존립 자체가 위협을 받고 있었다.

"세트니온 공작, 바로 다음 계획대로 움직입시다."

폴트비란 황제의 협박과 공격에 치욕스럽게 자살한 아버지를 결코 잊을 수 없는 크란츠 왕국의 비욘스 왕세자.

아니, 이제는 크란츠 왕국의 국왕 비욘스.

급박한 전쟁의 소용돌이에 국왕 취임식도 치르지 못했지만 서운한 마음 따위는 없었다.

어릴 적 말 못할 꿈에서나 꾸었던 제국 침략.

넓은 땅을 점령하자 욕심이 무럭무럭 자랐다.

"이곳에서 잠시 군사들을 정비해야 할 것입니다."

동맹군으로 파견된 쿠비란 왕국의 세트이온 공작이 살짝 제동을 걸어왔다.

"정비? 그게 무슨 말이오? 지금 우리가 가진 전력만으로도 제국의 황성쯤은 충분히 무너뜨릴 수 있지 않소이까. 이왕 시작한 전쟁, 제국의 뿌리를 뽑아야 할 것이 아니오."

마음 같아서는 크란츠 왕국 전력만으로 전투를 치르고 싶었지만 그것은 마음뿐이었다.

페페온 성의 일전으로 인하여 약 70여 기의 와이번이 격추당하였다.

제국 와이번들의 숫자가 수배나 많기에 손해나는 장사는 아니었지만, 그 차원이 달랐다.

아직 제국 황성에는 몇백 마리가 넘는 와이번들과 스카이나이트들이 존재한다 들었다.

과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전력이었지만 무시할 수 없었다.

"전하, 사실 오늘의 대승도 동맹군의 전력이 압도적이기 대문에 이룬 승리가 아니옵니다."

살짝 흥분한 비욘스와 달리 차분하게 입을 여는 노련한 세트니온 공작.

해마다 왕국을 공격해 오는 테미르 종족과 리토르 산맥 너머의 엄청난 몬스터들.

그 몬스터들과 테미르 종족에게는 죽음의 사신으로 불리는 공작이었다.

쿠비란 왕국에서 단 두 명밖에 없는 블레이드 마스터이자 공작의 작위를 가진 이.

극왕 아드파이론도 그를 함부로 할 수 없었다.

"전하께서도 아시겠지만 바즈란이 그리 쉽게 무너질 곳이 아닙니다. 귀족은 망해도 삼대는 편히 살 수 있는 돈을 남겨 놓는 법입니다. 그런데 일개 귀족도 아니고 제국입니다. 비록 지금은 폭군 폴트비란이 제국의 구심점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서 이런 결과가 발생했지만, 제국은 달리 제국이 아닙니다."

어릴 적부터 뼈저리게 경험한 바즈란 제국의 저력.

만약 황제가 정신을 차리고 귀족들이 적극적으로 협력한다면 왕국 연합군은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다.

전쟁 초반에 제국 스카이나이트들이 엄청나게 손실되지만 않았어도 지금의 결과는 결코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정보에 의하면 황제를 위해 검을 들 기사들이 이제 별로 남지 않았다고 하지 않습니까. 페페온 성에서 항복하는 병사들처럼 황성 또한 그럴 것입니다."

일국의 국왕 신분이었지만 세트니온 공작의 말을 무시할 수 없었다.

크란츠 왕국에는 존재하지 않는 블레이드 마스터의 실력자.

그리고 전쟁에서 뼈가 굵은 공작은 생각의 차원이 달랐다.

"만약 깊숙이 병사들을 이끌고 가다가 의외의 복병을 만나면 어찌하시렵니까?"

"의외의 복병?"

"그렇습니다. 동맹군조차 상대하기 벅찬 복병을 만나시면 우리는 어찌해야 할까요?"

어린아이를 가르치듯 연달아 질문을 던지는 세트니온.

"제국에 동맹군을 어찌할 수 있는 복병이 있을 턱이 없지 않습니까? 황성에 남아 있는 전력과 안다인과 케르퍼 왕국 동맹군을 상대하고 있는 할버크 요새의 전력만 남아 있지 않습니까."

자신이 알고 있는 바를 설명하는 비욘스.

날아가고 싶었다.

바즈란 제국의 심장에 칼을 꽂는 첫 번째 인물이 되고 싶은 마음이 젊은 그의 심장을 뜨겁게 만들었다.

"제국 북부 귀족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벌써 500명이상의 스카이나이트와 10만 명 이상의 정병들이 모여 있다고 합니다. 바즈란 제국에서 가장 위험스러운 가르비티 공작의 성에 말입니다."

"허억! 가, 가르비티 공작....."

비욘스도 잊고 있었던 인물.

바즈란 제국의 네 개의 기둥 중 하나이자 가장 경계해야 할 인물.

비욘스의 아버지 베카드리안 국왕도 살아생전 말했었다.

가르비티 공작이 살아 있는 한 제국은 그 어떤 위험 속에서도 온전할 것이라고 말이다.

"일단 이곳에서 병사들을 재정비하며 할버크 요새 전투를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요새가 무너지면 안다인과 케르퍼 동맹군이 황성으로 움직일 것입니다. 그때, 우리가 움직여노 늦지 않습니다."

지난 세월의 경험이 머리에 경고음을 울려주고 있었다.

북부에 웅크리고 있는 가르비티.

그가 곧 움직일 것이라고 말이다.

★★★★★★★★★★★★★★★★★★★★★

"현재까지 황자 전하의 이름으로 소집된 총 스카이나이트들의 숫자는 525명입니다. 그 외에 북부 대륙과 인접한 귀족 45명, 그리고 약 12만에 달하는 병사들이 모집되었습니다."

썩어도 준치라고 했던가.

지금 곳곳에서 제국과 왕국들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건만 간단히 네루만을 병력을 넘어서는 가르비티 공작 휘하의 병력들.

꼬맹이 라즈시온을 믿고 모인 자들이 아니었다.

내가 보기에는 깡말랐지만 포스가 강렬하게 느껴지는 가르비티를 믿고 따른 자들의 모임일 것이다.

"페페온 성에 집결한 왕국군의 규모는 얼마입니까?"

회의장에서 바로 왕국 토벌에 대하여 논의가 되었다.

그리고 은연중에 그 중심에 선 나.

공작에게 궁금했던 점을 묻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700마리가 넘는 크란츠와 쿠비란 와이번이었지만 전투로 인하여 600마리 정도로 줄어들었습니다. 거기에 10만 정도의 기병과 보병들이 따르고 있습니다."

내가 질문했지만 회의장의 상석에 위치한 아이지스와 꼬맹이 때문에 경어를 사용하는 가르비티 공작.

왕국군에 대한 정보도 자세히 파악하고 있었다.

"지원군은 없겠지요?"

"물론입니다. 크란츠 왕국은 얼마 전까지 제국에 점령당해 있던 상태라 현 병력이 전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쿠비란 왕국 또한 항시 몬스터들과 테미르 종족에 위협을 당하고 있기에 비상 전력밖에 왕국에 남지 않았습니다. 지금 가진 전력이 두 왕국군의 최대치입니다."

'아주 작정을 하고 덤볐네.'

맹위를 떨치던 사자가 병이 나고 발톱이 빠지자 잡아먹기 위하여 달려든 늑대들.

총력을 기울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와이번 600마리라... 대승을 이루지 못하면 황성까지 어찌할 수 있는 전력을 유지하기 힘들 수도 있겠네요."

똑똑한 아이지스가 왕국 토벌 뒤의 일을 걱정했다.

왕국도 문제였지만 시급한 일은 바로 미친 폴트비란을 황좌에서 끌어내리는 것.

다음 대 황제가 될 꼬맹이의 판단에 따르고 있지만 내심 찝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지금 계속해서 세작들에 의하여 들어오는 정보에 의하면 페페온 성을 점령한 왕국 침략군들이 병력 재정비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아마도 저희들을 의식하여 할버크 요새 전투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모두 다 수긍할 수 있는 적의 상황을 설명하는 가르비티 공작.

괜히 제국의 공작이 아니었다.

"쉽지 않은 전투가 되겠군요."

이곳에서 페페온 성은 와이번을 타고 하루 거리.

승패의 영향은 바로 미칠 것이 분명했다.

"쿠비란 왕국의 세트니온 공작은 만만히 볼 자가 아닙니다. 저 이상으로 전략에 도가 튼 자입니다."

적을 인정할 줄 아는 가르비티.

쿠비란의 알지 못하는 공작에 대하여 잔뜩 경계를 하고 있었다.

"지금 바로 공격합시다."

입으로만 떠드는 전략 회의는 필요없었다.

백날 앉아서 적이 어떻고 그들의 전력이 얼마인가 파악하면 뭐 하는가.

어차피 맞짱 뜰 것, 힘으로 승부하면 그만이었다.

"자신감이 넘치는군."

바로 공격하자는 말에 불쾌한 빛을 드러내는 귀족들과 달리 속을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가르비티 공작.

씨익.

대답 대신에 활짝 웃음을 지어주었다.

백문이 불여일견.

백날 말해봐야 뭘 하겠는가.

"카이어 백작, 지금 상황이 우스워 보이오? 자칫 섣부른 행동 하나로 제국의 운명이 결정된단 말이오이다!"

"본 제국의 운명에는 관심이 없는 분이 아니오이까."

내 웃음에 기다렸다는 듯이 불만을 터뜨리는 귀족들.

칼데인 백작과의 결투에서 보였던 내 실력을 잊어버린 것 같았다.

"제가 지금 장난하는 것으로 보이오?"

네루만 같았다면 이렇게 토를 달 간 큰 인간들이 없을 것이건만, 내 구역을 벗어나자 바로 시비를 청해오는 귀족들.

"그럼 방금 전 하신 말이 장난이 아니고 뭐란 말이오? 무슨 애들 장난도 아니고 전략 회의도 끝나지 않았건만 바로 출격을 하자니. 그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하시오!"

"그럼 경이 한 번 말해보시오. 코앞까지 적들이 들이닥쳐 있는 이 순간, 앉아서 적들을 물리칠 계책을 만들어보시오. 정말 내가 탄복할 만한 전략을 만들어낸다면 내가 그대의 종이 되겠소이다."

이름도 알지 못하는 삼십 중반의 귀족.

삐딱한 내 말투에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하였다.

제놈이 무슨 용빼는 재주가 있다고 주댕이로만 전쟁을 끝낼 수 있단 말인가.

"그, 그건....."

내 제안에 말을 잇지 못하는 귀족.

"다른 분들은 불만이 없습니까?"

웃는 얼굴 그대로 귀족들의 눈을 다들 한 번씩 보았다.

"....."

그러자 애써 눈을 피하는 귀족들.

'자식들 귀엽기는.'

같은 귀족이라지만 네루만에서 왕 못지않은 권력을 휘두르고 있던 나와, 망해가는 제국의 귀족이 어찌 같을 수 있단 말인가.

더욱이 제국을 도와주기 위하여 바쁜 와중에도 참전해 준 고마운 존재.

형님, 형님 하면서 따르지는 못할망정 내 제안에 초를 치는 자는 앞으로 필요없었다.

아무리 봐도 나 아니면 답이 없는 상황에서 나를 믿고 따라와야 했다.

"아이지스 황녀님, 그리고 황자 전하, 가르비티 공작 각하와 여러 귀족 여러분. 제가 선봉에 서겠습니다. 그런 제 말을 믿어주시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스카이나이트 300여 명만 지원해 주십시오. 왕국군들은 반드시 격파하고 들아오겠습니다."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총사령관 자리를 달라 요구했다.

"허락합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존경과 믿음의 눈빛을 보내는 꼬맹이 황자.

"카이어님의 말에 따라주세요."

아이지스도 허락의 말을 꺼내었다.

"나도 허락하겠네. 한 번 이 제국을 위하여 멋진 승리를 부탁하네."

가르비티 공작도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나에 의하여 기가 팍 죽은 귀족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눈치만 봤다.

'사내새끼들이 간뎅이는 작아가지고.'

내가 싫으면 대놓고 반대할 줄 아는 간 큰 놈은 없었다.

"그럼 방금 전 말한 바대로 지금 출격하겠습니다. 바로 준비해 주십시오."

나에게 시간은 곧 네루만의 안녕과 연결되어 있었기에 곧바로 공격 명령을 내렸다.

'폴트비란 기다려라. 다음 차례는 네놈이니까.'

아무리 건실한 회사나 국가라 하더라도 윗대가리를 잘못 뽑으면 순식간에 회사 금고나 국고가 거덜나는 것은 한순간.

바즈란 제국을 일 년도 안 된 시기에 해쳐 먹은 폴트비란은 아이지스와 꼬맹이를 위하여 사라져 줘야 했다.

밥알 하나도 아까운 폴트비란.

지금도 정신 못 차리고 종족본능의 욕구에 최선(?)을 다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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