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5장 뽕을 뽑아주마
"준비한 증거들은 충분한가."
"주군이 명하신 대로 마탑 지부들의 부정 거래와 세금 탈루에 대한 서류를 완벽하에 작성했습니다."
"그럼 이 시간부로 마탑 지부의 모든 건물과 물건들의 압류를 실시한다. 동시에 마법사들을 포박하라!"
"명!"
나를 우습게 여기는 마탑 지부들.
한 번의 경고가 우스웠던지 수시로 루미카르를 날려 네루만의 소식을 바깥에 알렸다.
그리고 이제 때가 되었다.
"또한 모든 국경을 봉쇄하고 용병들을 비롯한 그 누구도 영지에 허락없이 들이지 말도록 하라."
"명!"
마탑뿐만 아니라 용병들과 상인들의 출입도 통제할 것이다.
용병들의 도움 없이도 충분히 치안과 몬스터 퇴치를 이룰 수 있었고, 상인들 도움 없이도 영지를 운영할 수 있었다.
'놈들이 먼저 통제하기 전에 내가 먼저 문을 걸어 잠글 것이야.'
로시아테에게 황제의 청을 거역할 명분을 주었다.
네루만 영지와 하비스 왕국 국경 분쟁.
내일 라비테르 제국 포로 병사들을 석방하면서 국경을 소란하게 만들 참이었다.
물론 폴트비란은 믿지 않을 것이지만 당분간 시간을 벌면 그뿐이었다.
"신속하게 일을 마무리하라. 그리고 루비스 상단의 지배상인을 들라 하라."
"명!"
데르발을 비롯한 행정관들이 집무실에서 명을 외쳤다.
'오늘 제대로 한 번 털려봐라.'
그동안 사람들을 매수하여 마탑 지부에 여러 가지 물건을 주문하게 만들었다.
그것도 모르고 주문이 폭주하자 마탑에서 비밀리에 물건을 확보해 놓은 마탑 지부들.
내가 보기에는 보잘것없는 물건들이었지만 내다 팔면 제법 돈이 되는 마법과 관련된 물건들이 마탑 지부에 차곡차곡 쌓여 있음을 보고받았다.
당분간 영지에 필요한 하급 마법 재료들을 충분히 충당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데르발 경."
"하명하시옵소서, 주군."
나가려던 데르발을 불러 세웠다.
"건조된 소금을 성문 앞으로 이동시켜 놓으라."
"알겠습니다, 주군."
하도 엉뚱한 짓을 잘했기에 묻지도 않고 대답하는 데르발.
고개를 숙이고 밖으로 나갔다.
똑똑.
그리고 잠시 후 방문 앞에서 노크 소리가 났다.
"들어오라."
끼이익.
아직 저택이 완성되지 않아 사용하고 있는 외인 창공단의 집무실.
낡은 문을 열고 한 인물이 들어섰다.
'어라? 저자는!'
총지배상인인 자메르가 한가한 사람도 아니기에 이번 상행은 지배상인이 이끌고 왔다 하였다.
그런데 방으로 들어서는 지배상인은 아주 익숙한 이였다.
"카이어 드 네루만 백작님을 뵈옵니다."
"하하, 언제 지부장에서 지배상인이 되었는가?"
"모두 백작님 덕분이옵니다. 헤헤."
그러했다.
들어선 이는 루비스 상단에서 오지로 취급받던 네루만 지부장 렌키스였다.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백작님. 이 은혜는 죽어서도 잊지 않겠습니다요."
루비스 상단에서도 아주 중요한 위치에 오른 네루만.
나와 안면이 있는 자를 승진시킨 것 같았다.
'사람은 꿈을 크게 가져야 한다니까.'
나를 잘 만난 덕도 있겠지만 내 말을 믿고 따라준 지부장의 능력과 선견지명도 한몫했을 것이다.
루비스 상단 같은 곳에서 어찌 실력없는 자를 지배상인에 임명하겠는가.
"물건들은 착오가 없겠지?"
"물론입니다요. 최상품의 물건들로 가져왔습니다. 총지배상인님의 명으로 튼튼하고 새끼 잘 낳기로 소문난 인데스 왕국산 소들까지 준비했습니다."
내 성격을 알기에 최상품으로 준비한 루비스 상단.
마음이 흡족했다.
"수고했네."
"수고라니요. 당치도 않은 말씀입니다요."
돈을 주고 하는 정당한 거래였지만 수고라는 말이 나왔다.
루비스 상단이 아니었다면 왕따 네루만의 발전은 상당히 늦어졌을 것이다.
"총지배상인에게도 말했지만 내일 있을 소금 이외에 당분간 거래는 없을 것이오."
"알고 있습니다. 그리 안 해도 총지배상인께서도 안부를 전해주셨습니다. 찾아뵐 때까지 건강하시라 하셨습니다."
"하하. 자메르 총지배상인에게도 똑같이 전해주시구려."
돌아가는 판세가 몸에 다이너마이트를 품고 불 속으로 돌격하는 꼴임을 자메르가 알고 있을 것이다.
철저히 대비하고 있지만 주변의 적들은 상상불허.
자칫 방심하는 순간 공들인 탑이 와르르 무너질 수 있었다.
★★★★★★★★★★★★★★★★★★★★★
쾅!
도시 덴포스에 자리잡고 있는 가우스 마탑 지부.
요 한 달 사이로 갑자기 몬스터 피와 가죽들을 파는 자들이 늘고 각종 저서클 마법 아이템의 판매에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던 지부의 문이 박살이 났다.
"누, 누구야!"
물건들을 정리하고 있던 마법사들이 부서진 문을 바라보며 소리를 버럭 질었다.
네루만의 영주의 경고가 있었지만 그 이후로 아무런 제재도 가하지 않고 있었기에 영주가 마탑을 인정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감히 덴포스에서 건들 자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마법사들.
성난 눈길로 부서진 문을 바라보았다.
타다다다다다다다닥.
"허억!!"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갑자기 갑옷을 착용한 기사들과 병사들 수십 명이 중무장을 한 채 들어오자 마법사들의 안색은 새파랗게 질려갔다.
"영주님의 명을 거역하고 불법 거래와 세금 탈루를 행한 마법사들을 모두 포박하고, 재화를 비롯한 모든 물건들을 압수한다! 반항하는 자들은 참살해도 좋다!"
"명!"
기사의 명령에 살벌한 목소리로 명을 외치는 병사들.
"그, 그게 무슨 말이오? 불법 거래와 세금 탈루라니. 우리 마탑 지부는 바즈란 제국 모든 영지에서 면책특권과 면세의 권리가 있소이다. 그런데 이런 말도 안 되는....."
가우스 마탑 지부를 관리하는 마법사가 자신들의 권리를 앵무새처럼 읆조렸다.
저벅저벅.
그 말에 마법사에게 다가오는 기사.
"이곳의 영주님은 카이어 드 네루만 백작님. 그분의 명은 모든 제국법에 우선한다. 네루만에서 영주님은 신이시다!"
싸늘한 표정으로 마법사 앞에서 투기를 뿜어내는 기사.
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때 밖에서 와이번들의 힘찬 소리가 울렸다.
"집행을 실시하라!"
새파란 기사의 말투에 질려 버린 마법사들.
우르르르르르.
병사들이 마나 팔찌를 들고 마법사들에게 달려왔다.
그러난 누구 하나 반항하지 못했다.
잠시나마 잊고 있었던 네루만의 영주 카이어.
기사의 말처럼 그는 네루만에서 신과 다름이 없었다.
★★★★★★★★★★★★★★★★★★★★★
"모두들 그동안 수고했다."
덴포스 성의 정문 성벽 바깥쪽.
엄청나게 넓은 평원에 포로로 잡혀 고생한 라비테르 병사들이 각을 잡고 정렬한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포로로 잡혀올 때보다 더 살쪄서 돌아가는 이들은 너희들 밖에 없을 것이다.'
끝이 보이지 않았다.
말이 18만이지, 그 인력을 일사불란하게 통솔하여 네루만 공사 현상에 투입한 데르발과 행정관들의 능력에 다시 한 번 감탄했다.
아무리 백부장, 천부장을 뽑고 기사들을 투입하였다 하더라도 병사들의 배치를 치밀하게 하지 못했다면 우왕좌왕하다가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명령에 따라 완벽하게 일 처리를 끝낸 행정관들.
요즘은 자체적으로 행정보완 요원들을 선발하여 능률을 극대화시켜 가고 있었다.
"내 이름으로 약속했듯이, 라비테르 제국과의 포로 협상의 결과대로 그대들을 제국에 넘겨줄 것이다. 오늘부터 이동하여 이틀이면 그대들은 네루만을 떠나게 될 것이다."
"....."
'얼라리요? 즐겁지 않은 거야? 다들 표정이 왜 저래.'
포로로 잡혔기에 귀향 소식을 들으면 기뻐할 줄 알았다.
아무리 내가 잘 대해준다 하여도 집보다는 못할 것이었다.
하지만 포로 병사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마치 네루만에서 떠나기 싫기라도 한 얼굴이었다.
"또한 약속했듯이 지난 한 달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그대들이 노력한 대가를 지금부터 지급하겠다. 각자 마차에 오르기 전에 병사들은 3골드씩 받아가도록 하라."
"....."
'어라? 돈도 싫어?'
약속했던 것보다 더 지급을 한다 하건만 전혀 기뻐하지 않는 병사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탁하겠다. 다시는 내 영지 네루만에 오는 일이 없기를 기원하겠다. 그대들이 흘린 땀바울로 건설 되어진 네루만 곳곳을 어지럽히지 않기를 간곡히 청하는 바이다."
라비테르 제국도 바보가 아니라면 한 번 패전한 병사들을 다시 투입하지는 않을 것이다.
더욱이 네루만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아 네루만에 동화되어 버린 병사들.
그들에게 전투 의지가 남아 있을 턱이 없었다.
"제군들의 앞날에 자비의 여신 네르안님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성루 위에 서서 성호를 그으며 마지막 인사를 대신했다.
적으로 만났지만 저들이 무슨 죄가 있겠는가.
귀족들의 명령대로 움직이는 일개 하수인에 불과한 병사들.
그들의 무사 귀환을 진심으로 기원하였다.
철퍽.
'응?'
철퍽철퍽.
그때였다.
갑자기 도열한 병사들 중 일부가 바닥에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뭐, 뭐야?'
한둘이 아니었다.
하나둘씩 꿇기 시작하더니 곧 수백 명, 아니, 수천 명이 바닥에 앉아버렸다.
"네루만에 남겠습니다. 저희들을 받아주십시오, 영주님!"
"받아주십시오! 영주님!"
누군가의 선창을 따라 자신들을 받아달라 한목소리를 내는 병사들.
'헉!'
갑자기 머리가 띵해졌다.
기껏해야 수천 단위 병사들이 남을 줄 알았건만 대충 보아도 만 명이 넘어가는 병사들의 투항.
라비테르 제국에 사랑하는 가족이 있을 것이건만, 그들을 버리고 네루만에 투항하겠다 무릎을 꿇는 병사들.
그것뿐만 아니었다.
비록 무릎을 꿇지는 않았지만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나머지 포로 병사들.
그들의 마음 또한 무릎 꿇은 병사들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다.
'흐흐흐. 이건 또 무슨 떡이냐!'
나름대로 계산이 깔린 대우였다.
그래 봤자 별로 잘해준 것도 없이 네루만 일반 병사들과 똑같은 취급을 해준 것밖에 없었다.
그런데 대박이 되어 내게 돌아왔다.
얼추 1만이 넘는 정병.
저들만 있다면 능히 네루만의 이점을 살려 10만 정도 병사들을 막을 수 있을 것이었다.
"주군....."'
내 옆에 서 있던 데르발의 목소리도 떨렸다.
그도 얼마 정도는 투항할 줄 알았겠지만 이렇게 많은 숫자일 줄은 몰랐을 것이다.
"고맙다..... 그대들이 오늘 보여준 나와 네루만에 대한 진정은 훗날 반드시 돌려줄 것이다. 나의 병사들아!"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네루만 만세!"
"영주님 만세!"
자신들을 받아들이자 벌떡 일어나 만세를 외치는 포로 병사들.
'만세! 만세!'
나도 마음속으로 힘껏 만세를 외쳤다.
인생 착하게 산 나에게 준 하늘의 보너스.
기쁘게 받아들일 뿐이었다.
★★★★★★★★★★★★★★★★★★★★★
"샤일트 경, 당분간 내 역할을 맡아주시오."
".....!!"
갑작스러운 호출에 집무실로 찾아온 샤일트 경.
내 역할을 맡아달라는 말에 놀라 눈동자를 크게 확대시켰다.
"그, 그게 무슨....."
"급히 영지를 떠날 사정이 생겼소. 길면 한 달, 짧으면 보름 정도 시간이 걸릴 것이오. 그동안 와이번을 베베토처럼 변장하고 하루에 한 차례 덴포스 상공 주변을 날면 될 것이오."
대놓고 첩자질을 하던 마탑 지부를 접수했지만 아직도 곳곳에 적의 감시병이 있었다.
그런 그들을 잠시나마 속일 수 있는 방법은 나와 베베토를 대신할 존재를 만들어놓는 것밖에 없었다.
"데르발 경, 이 일은 경을 비롯한 중요 기사들만 알아야 할 것임을 명심하라."
"알겠습니다, 주군."
오른팔 데르발에게는 대충 사정을 밝혔다.
마정석을 공급하는 하일드리안 제국의 황제가 내가 나타나지 않으면 마정석 공급을 끊겠다는 사실을 알린 것이다.
"적어도 보름 이상은 사람들의 이목을 속여야 할 것이니 경들은 참고하시오."
"충!"
충성스러운 샤일트 경은 길게 묻지 않았다.
"귀화한 병사들은 당분간 오라크 성과 동부 순찰로 돌리시오."
"명대로 하겠사옵니다."
마음이 일어 귀화를 했지만 제국 놈들이 협박을 하면 어떻게 변할지 몰랐다.
아직은 반절의 귀화.
네루만에 뿌리가 생기기 전까지는 귀화 병사들은 철저히 관리해야 할 것이었다.
"그리고 포로들이 모두 돌아간 뒤로는 철저하게 국경을 통제하시오. 순찰을 강화하여 영지에 침입하는 자들을 모두 잡아들이시오. 반항하는 자들은 죽여도 좋소."
이어지는 지시 사항.
이제부터는 철저하게 영지를 보호해야 했다.
자급자족의 기틀을 마련한 이상 영지를 개방할 필요가 없었다.
하이에나 같은 용병들과 이익에 눈먼 상인들이 마음 놓고 들락거리는 꼴을 볼 수 없었다.
"데르발."
"하명하시옵소서."
"영지의 거점 도시 선정은 어찌 되고 있는가."
"영주님이 명하신 대로 거점 도시 선정과 그에 부속한 작은 소도시들을 완성하고 있습니다. 보름 정도면 대충의 윤곽이 드러날 것입니다."
대한민국처럼 만들고 싶었다.
각 도와 그 중심 도시, 그리고 면과 동 같은 행정단위를 만들어 영지를 경영하고 싶었다.
대륙처럼 대충대충 영지를 관리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내가 제일 걱정이란 말이야.'
방금 전 크리시아로부터 루미카르가 날아왔다.
오늘 해가 지는 시각에 항구 상공에서 조우하기로 했다.
"포로 수송은 다 끝난 건가?"
"방금 전 라이케르 경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포로들이 국경에 도착했다 합니다."
"잘 끝나서 다행이군."
투항한 1만의 병사들을 제외한 17만의 병사들이 떠났다.
덴포스와 하비스 국경까지 완벽하게 건설된 도로와 마차를 이용하여 신속하게 떠난 것이다.
"엘프들과 드워프들에게 부탁해 놓았으니 국경 요새 건설에 박차를 가하도록. 튼튼하기만 하면 되니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명!"
도로가 모두 완성된 상태에서 국경을 그대로 놔둘 수 없었다.
예전에 계획했던 것처럼 국경에 요새를 건설하여 그곳을 제1방어선으로 삼아야 했다.
앞으로 1, 2년 후면 도로를 중심으로 마을이 생겨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영지에 적을 단 한 발자국이라도 들이면 아니 되었다.
'에휴, 믿고 떠나도 되는 건지 모르겠네.'
힘차게 대답하는 데르발과 샤일트 경이었지만 안심이 되지 않았다.
말이야 바른말이지만 내가 없는 것이 들통나면 제국들이 가만히 있을지 궁금했다.
보병들을 동원하지 않고 스카이나이트만 보내도 영지는 쑥대밭이 될 것이 뻔하였다.
아직은 초등학생 정도의 무력밖에 소유하지 못한 네루만.
아이들을 남겨두고 떠나는 부모의 심정이 따로 없었다.
'이제 슬슬 떠나볼까.'
어느새 창문에 보이는 어스름한 황혼의 기운.
떠날 때가 되었음을 알려오고 있었다.
'하일드리안..... 기다려라. 내가 뽕을 뽑아주마!'
움직이는 시간이 모두 네루만의 안녕과 발전과 연결되어 있는 나였다.
그런 나를 오라 가라 하는 하일드리안 여황제.
사람 잘못 건드렸다.
나 그렇게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이번 기회에 머릿속 깊이 저장시켜 놓으리라 마음먹었다.
★★★★★★★★★★★★★★★★★★★★★
"크크크크크크크크....."
바즈란 제국의 황성.
불과 일 년 전만 하더라도 꽃피는 봄이 오면 황실 곳곳에서 꽃에 취한 시녀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건만, 이제는 꽃이 피어도 웃는 시녀들이 없었다.
발정난 미친개라 공공연히 불리는 폴트비란 황제.
잔혹한 성품을 자랑이라도 하듯 시녀나 시종들이 잘못하면 그 자리에서 검을 뽑아 목을 베었다.
특히 얼굴이 반반한 시녇르은 시도때도 없이 능욕하기 바빴다.
그런 그가 웃고 있었다.
며칠 후로 다가온 자신의 생일.
제국의 뭇 귀족들뿐만 아니라 인접한 왕국의 사신들까지 찾아올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자신의 명을 거역하는 이가 나타났다.
"로시아테... 네년이 나를 무시하다니..... 크크크."
하비스 왕실에서 날아온 한 장의 서신.
라비테르 제국과 네루만의 포로 교환 때문에 국경이 소란스러워 도저히 참가할 수 없다 하였다.
대신 예를 다하여 사신을 보낼 터이니 노여워하지 말라는 로시아테 공주의 정중한 서신.
생각있는 자라면 그 말을 믿을 것이었다.
귀족들의 무리한 출정으로 인한 국력의 쇠퇴와 로엔 공국과 반란으로 인한 왕국의 위기.
거기에 네루만과 라비테르 제국과의 일전 때문에 숨조차 쉬지 못하고 살고 있음을 대륙 사람들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단 한 사람, 하비스 왕국 사정을 개의치 않는 자가 있었다.
황제가 된 이후로 비뚤어진 욕망을 다 채우려 하는 폴트비란 황제.
광기와 변태적 욕망으로 번들거리는 그의 눈동자에서 서서히 분노가 이글거렸다.
감히 자신의 명을 거역한 자에 대한 증오심.
화르르 순식간에 불길로 변하였다.
"실베론."
"하명하십시오, 황제 폐하."
황제 덕분에 요즘 인생 최절정의 권력을 쥐고 있는 실베론 자작.
얼마 전에는 공도 없건만 파격적으로 백작위에 올랐다.
그리고 요즘은 공작들도 두려워하지 않는 전권을 휘둘렀다.
"로시아테 그 계집년이 내 명을 거절했다. 이제 어찌해야 하는가."
일국의 공주를 계집년이라 부르는 폴트비란.
"당연히 폐하의 위엄을 위하여 벌하셔야 하옵니다. 소신에게 명을 내리시면 지금이라도 날아가 그 건방진 계집년을 생포해 오겠습니다."
황제의 신발이라도 빨 것처럼 충정의 목소리로 외치는 실베론.
"일개 군단의 전력도 안 되는 하비스 왕국 놈들이 왜 내 명을 거절한 것이라 생각하는가."
반쯤 미쳤지만 어릴 적부터 배웠던 학습은 어디로 가지 않았다.
분노하지만 배운 바대로 상황을 파악하는 폴트비란.
"아마도 그자를 믿고 그런 것 같습니다."
"그자라 함은....."
실베론 또한 멍청한 자가 아니었다.
황태자 시절부터 미친놈을 보좌하여 권력을 쥔 자가 바보라면 말이 안 되었다.
"소신이 알아본 바에 의하면 로시아테와 네루만의 영주 카이어라는 자는 보통 사이가 아닌 것 같습니다. 정보에 의하면 로엔 공국군도 카이어 놈이 직접 나서서 해결해 주었다 합니다."
"카... 카이어."
불길 속에서 파이어 볼을 던진 것처럼 카이어라는 이름을 뱉어내며 눈에 광기를 더하는 폴트비란.
"크크크크... 카이어, 카이어, 카이어!!!!"
카이어라는 말을 연속 뱉어내며 주먹을 움켜쥐는 폴트비란.
놈에 대한 생각만으로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일개 수련생 시절부터 제국의 황태자였던 자신에게 반항하던 놈.
지금도 잊지 않고 있었다.
자신을 벌레 보듯 바라보던 놈의 오만한 검은 눈동자를.
"으드득....."
이를 가는 폴트비란.
"오메르 공작을 들라 하라."
그리고 오메르 공작을 찾는 황제.
생각보다 오래 참았다는 생각을 하였다.
카이어라는 자와 그곳에 머물고 있는 눈엣가시 같은 황녀와 황자를 죽이지 않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