턱봉이[poik66] 타이핑 했습니다!
제140장 하일드리안 제국의 초대
'아니, 그 아줌마가 언제 봤다고 나를 초청해.'
대륙에서는 얼음제국이라 불리는 하일드리안 제국.
일 년에 눈이 오는 날이 반년 이상이고, 아이스 트롤과 아이스 오우거 같은 특이한 몬스터들이 살고 있는 곳.
대륙에 존재하는 마정석보다 더 많은 마정석과 보석 같은 귀중한 광물이 무한정 생산된다는 그곳은 대륙인들에게는 언제나 신비에 싸인 환상 속의 대지라 하였다.
그런데 그곳의 여황제가 나를 초청한다 하였다.
'좌우지간 이놈의 인기는.....'
겸손과는 진작 담을 쌓아버린 나.
바다 건너 나를 초청한 여황제의 사람 볼 줄 아는 안목에 나름대로 흡족하였다.
"만약 초대를 거부하면 황제 폐하께서 마정석 공급을 끊는다고 하시네요. 카이어 영주님뿐만 아니라 저희 왕국에도 말이에요."
'헉! 이건 또 뭔 소리야.'
그러나 귓가에 울리는 크리시아의 담담한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말이 어디 있습니까? 그분이 저를 언제 봤다고 초청을 한단 말입니까?"
"호호, 왜 그럴까요?"
내 어이없는 질문에 짧은 미소를 지으며 나를 빤히 바라보는 크리시아.
'내가 점쟁이도 아니고 그걸 어떻게 알아.'
얼음제국 하일드리안에 대하여 아는 것이라고는 제국을 다스리는 존재가 나이가 제법 젊은 여황제라는 것과, 대륙과 그리 교류가 없는 폐쇄적인 곳이라는 것뿐이었다.
'한 번 가보고 싶은 곳이긴 한데.....'
여황제의 초청이 의심스러웠지만 미지의 대륙을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대륙인들 사이에서 꿈의 대륙이라 불리는 곳.
네루만이 안정되었다면 진작 찾아가 봤을 것이다.
마정석과 황금이 널려 있는 곳.
거기에 여인들까지 미인 아닌 사람이 없다는 그곳.
꿈이 큰 남자라면 당연히 가보고 싶은 곳이 아니겠는가.
"언제 가실 건가요?"
내가 침묵을 지키자 크리시아가 물어왔다.
'마정석이 없으면 안 되는데.....'
마탑들과 사이가 좋다면 마정석을 아쉬운 대로 구할 수 있겠지만 마탑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제국과 상단과 등을 돌리고 있는 나.
대륙에서 거래 금지 품목을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만큼 이나 어려웠다.
더욱이 새로 건설되는 성과 곳곳의 요새들, 각종 건설 현장에는 마정석이 반드시 필요했다.
'마정석이 없다면 내가 계획했던 것들의 3분의 1도 완성하지 못한다.'
라비테르 놈들이 이대로 물러나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또한 동맹을 길가의 돌멩이마냥 하찮게 취급하는 바즈란 깡패 새끼 황제.
놈들이 어찌하기 전에 네루만을 완벽한 요새로 구축해야 했다.
"시간은 얼마나 걸립니까? 아실지 모르겠지만 네루만이 처한 상황에서 제가 몸을 빼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네루만의 발전을 위해서 그깟 여황제 만나는 것이 무에 문제겠는가.
목적이 의심스러웠지만 아쉬운 것은 여황제가 아니라 나였다.
"아직 네루만이 위기에 처해 있음을 잘 알고 있어요. 그런 까닭에 최단시간의 항로를 제공할 계획입니다."
'쾌속선이 있으면 딱인데.'
바다에 대해서 아는 지식은 전무했다.
다만 시간이 황금, 아니, 다이아몬드 같은 이 시기에 21세기에 널리고 널린 쾌속선이 그리울 따름이었다.
"샤리크나의 바람을 제대로 맞으면 와이번을 태우고 보름정도 거리입니다. 와이번이 없다면 돛이 많은 배를 이용한다면 열흘 정도 걸립니다."
'열흘? 안 되는데.....'
말이 열흘이지 그곳에서 얼마나 체류할지 모르고 더욱이 오는 시간까지 합치면 한 달 가까운 시간이 소요될 것이 분명했다.
거기에 베베토 없는 내 삶은 팥 없는 찐빵이요, 고무줄 없는 팬티 신세.
와이번 이동선까지 이용한다면 한 달이 훌쩍 넘어갈 판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이면 누군가 네루만을 충분히 찜 쪄 먹고도 남을 세월이었다.
"불가합니다. 그 정도 여유를 부릴 수 없습니다."
화기애애하던 분위기가 순간 경직되었다.
마정석이 아쉽기는 했지만 네루만을 버리고 갈 수가 없었다.
분명 이 순간에도 나와 네루만의 모든 일들을 보고할 첩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떠났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그날로 네루만은 주인 없는 집 꼴이 될 것이다.
와이번의 숫자가 늘어났다지만 그 정도의 전력은 아직 왕국 수준도 안 되었다.
"하아... 저도 알고 있어요. 하지만 반드시 가셔야 해요. 여황제께서 지금 진노하고 계십니다."
'진노? 나를 언제 봤다고?'
"하일드리안 제국과 본 영지는 아무런 교류가 없건만 여황제께서 진노하다니요. 저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농담할 상황이 아니었다.
대륙의 제국을 떠나 이제는 바다 건너 제국까지 나를 적으로 삼으려 한다니.
"모두 카이어님 때문입니다."
크리시아가 내 탓이라며 나를 곤혹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아니, 그게 무슨....."
"생각나세요? 지난 늦가을에 저와 함께 찾아왔던 티아벨 말이에요."
'티아벨?'
물론 생각났다.
대륙에서 보기 힘든 윤기나는 백발을 소유했던 얼음미녀.
내 참새 패러디 농담에 즐겁게 웃던 그녀를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네, 생각납니다."
"그분이 카이어님을 보고 싶어하신답니다."
"네에!!!"
티아벨이 나를 보고 싶어한다는 말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저 예의상 따뜻한 분위기로 접대를 했건만 그 상황이 오해를 만들어낸 것 같았다.
"그, 그건 그렇고, 티아벨 양이 저를 보고 싶어하는 것과 여황제가 진노한 까닭에는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티아벨 양이 황족이라도 된다는 소리입니까?"
"네... 황족 맞아요."
"....."
'젠장!'
설마하는 생각도 없었다.
비밀에 싸인 하일드리안 제국의 황족이 뭐 한다고 위험하고 볼 것 없는 네루만에 찾아오겠는가.
그런데 어이없어 내뱉은 말이 사실이 되는 이 순간.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그것도 다음 대, 하일드리안 제국을 이끌어가실 단 한 분뿐인 제국의 황녀님이십니다."
"컥!"
여황제 즉위의 전통을 소유하고 있는 하일드리안 제국.
그런 제국의 황제가 될 단 한 명의 여인.
'말도 안 돼!'
가슴속에서 말도 안 된다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운명의 장난도 아니고, 어찌 하일드리안 제국의 황위 계승자가 나를 보고 싶어한단 말인가.
"저희 왕국도 그 문제 때문에 곤란한 지경에 빠졌어요. 네루만을 제외하고 거의 유일한 동맹이라 할 수 있는 하일드리안 제국이 등을 돌린다면 왕국의 운영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거예요. 케스미르는 마정석이 생산되는 곳이 한 곳도 없습니다."
곤란한 표정을 짓는 크리시아.
"티아벨 양, 아니, 황녀께서 어찌 네루만을 찾아왔답니까. 제국의 황위를 이을 분께서....."
믿어지지 않기에 다시 한 번 확인을 하려 질문을 던졌다.
"휴우! 모두 다 제 불찰이에요. 티아벨 황녀님과 어릴 적부터 친분이 있었고, 그 친분 때문에 가끔씩 왕국에 놀러 오시기도 했답니다. 그리고 하필 네루만에 방문하는 그때, 찾아오셔서 이곳까지 오게 되었네요."
'썩을.....'
머리에 착착 그려지는 모든 상황.
이제는 빼도 박도 못하게 생겼다.
'아니, 그런데 내가 뭐가 좋다고 보고 싶다는 거야? 그리고 딸내미가 그러면 잘 타이를 것이지 왜 나를 오라 가라 해.'
인상이 팍팍 써졌다.
티아벨이라는 미녀가 나를 보고 싶어한다는 말은 기분이 좋았지만 그녀의 감정 때문에 하일드리안까지 가야 하는 내 신세가 처량하였다.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에요. 잘하면 열흘 정도의 시간에 다녀오실 수도 있어요."
"그건 또 무슨....."
갑자기 찾아와서 나를 혼란의 구덩이에 팍 하고 발로 차서 밀어 넣은 크리시아.
열흘이라는 말로 내 귀를 솔깃하게 만들었다.
마정석을 어떻게 하더라도 구해야 하는 내 입장에서 이것저것 따질 여유가 없었다.
"저희 왕국에서도 아주 위급할 때만 사용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대신, 위험 부담이 아주 크지만 말이에요."
'지금 나랑 장난하나. 병 주고 약 주고 잘 논다.'
뜬금없이 찾아와 그리 안 해도 고달픈 인생에 고민거리를 팍팍 안겨주는 크리시아.
위험 부담이 아주 큰 방법을 사용하라 나를 꼬시고 있었다.
"아마 지금 마음 같아서는 와이번을 타고 바다를 건너고 싶을 것이에요. 하지만 바다 위를 날다 와이번이 바다에 착륙이라도 하는 날에는 대양에 기생하는 대형 바다 몬스터와 마수들에 의하여 순식간에 신의 품으로 떠나고 말 것입니다."
생긋 웃으며 정확히 내 심정을 꼭 짚어내는 크리시아.
'쩝.'
쓴 입맛을 다셨다.
더럽고 치사하지만 네루만의 목줄을 쥐고 있는 하일드리안의 여황제가 오라 하니 달려가야 하는 이 순간.
'사나이 가는 길에 이 정도 위난은 아무것도 아니다!'
독하게 마음을 먹었다.
이제 조금만 더 노력과 시간을 투자하면 완성될 나의 파라다이스.
"어떤 방법인지 듣고 싶군요."
"아주 위험한데 괜찮겠어요?"
싱긋 웃던 크리시아가 재차 물어왔다.
"하하, 물론입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방법만 알려주십시오."
가슴을 쫙 펴고 호탕한 표정을 지었다.
"호호, 그러실 줄 알았어요."
"....."
'불여우.'
환하게 웃던 얼굴이 썩소로 변해갔다.
생각해 보면 지금의 이 위기는 저 불여우 크리시아로 인하여 발생한 일이었다.
'에휴, 예쁘니까 참아준다.'
"저희도 준비를 해야 해요. 이번 일을 왕국 차원에서 지원해야 하기에 한 달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에요."
방법은 말하지 않고 한 달 정도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크리시아.
나도 추천하는 바였다.
라비테르 제국군을 돌려보내는 시기까지 영지 발전을 위해 포로들의 뽕을 뽑아야 했다.
"지난가을 제공하지 못했던 성수는 바로 준비시켜 두겠습니다."
"영주님의 배려에 감사합니다. 혹시 필요하실까 봐 얼마 정도의 마정석을 저도 준비해 두었어요."
'미워할 수 없단 말이야.'
여우가 분명하지만 미모에 똑똑함을 소유한 크리시아.
이번 사태의 원흉이지만 하는 짓은 칭찬을 받기에 충분했다.
어차피 네루만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하일드리안 제국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다.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는 속담처럼 위기를 기회로 바꿀 줄 아는 자세.
21세기에서 온 대마법사만이 가질 수 있는 훌륭한 지혜였다.
언제나 하는 말이지만 아니면 말고였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