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세기 대마법사-136화 (136/221)

제136장 일개미를 홀려라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와자자자자자자자장창.

콰다다다다다당.

울부짖은 늑대의 포효를 닮은 알스케인 황자의 분노에 찬 외침.

불과 하루 전까지만 해도 20만 대군에 500 스카이나이트를 실질적으로 지휘하던 위치였다.

하지만 단 하루, 그것도 말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라비테르 대군은 산산조각이 난 유리조각의 파편이 되어버렸다.

네루만의 영주 카이어를 생포하여 그 가죽을 뜨고, 온몸을 찢어 죽이리라는 각오로 임한 전투.

패배라는 말은 상상도 못해 본 단어였다.

그러나 알스케인 황자는 패배를 맛보았다.

그것도 20만 대군과 300명의 스카이나이트를 잃어버린 패전군의 총책임자가 되었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끈질기게 뒤따라오던 네루만의 스카이나이트들.

죽음의 공포에 오줌까지 지린 황자 알스케인.

야노비스 공작성에 도착하고서도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자신과 제국군을 지옥에 밀어 넣고 웃던 카이어의 웃음소리.

"으아아아아,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방 안에 있던 모든 집기들을 부숴 버린 황자는 자신의 머리칼을 뜯으며 울부짖었다.

죽어서도 잊지 못할 수모.

마족에게 영혼을 팔아서라도 그놈을 죽이고 싶었다.

네루만의 영주 카이어, 그놈의 혀를 자르고 심장을 뜯어 먹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

"왜 이리  귀가 간지러워?"

미녀들 덕분에 아주 푹 자고 일어난 아침.

해가 중천에 떠서야 집무실로 이동할 수 있었다.

일어날 때도 됐건만 무슨 경쟁이라도 하듯 내 품으로 더 파고드는 두 미녀 덕분에 한참을 멍하니 천장에 붙은 먼지까지 세어야 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동시에 잠이 깬 미녀들을 방 안에 놔두고 마법으로 청결을 유지한 채 집무실로 들어섰다.

하지만 그 순간 간지러운 귀.

어떤 놈이 작정하고 욕을 하는지 왼쪽 귀가 파고 또 파도 시원치 않았다.

"아자 훌륭한 자세들이야."

집무실 창밖으로 보이는 창공단의 풍경.

어제 그렇게 축제의 판이 벌어졌건만, 나처럼 게으른 모습을 보이는 자가 없었다.

전투 중의 날아온 눈먼 스피어에 부숴진 격납고를 수리하고, 각종 물품들을 바쁘게 이동시키는 기사들과 병사들.

주군 된 입장에서는 적극 추천하고 싶은 자세였다.

똑똑.

"주군, 데르발입니다."

"오! 데르발 경, 어서 들어오게."

끼이익.

들어오라는 말에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서는 데르발.

"몸은 좀 어떠신지요."

"괜찮아. 간만에 푹 잠을 잤어."

"다행입니다."

"그래 자네는 좀 어떤가?"

"주군 덕분에 저도 푹 잠을 잤습니다."

라비테르 제국 놈들 때문에 잠을 자도 잔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비록 성격상 늦잠을 자지 않았을 것이지만, 짧게 자도 숙면을 취할 수 있따면 몽롱한 긴 잠보다는 나았다.

"대충 정리는 끝났는가?"

"부족하지만 큰 맥락들은 정리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받은 피해는 얼마인가."

어제 축제를 벌이면서도 마음 한쪽은 편하지 않았다.

영지의 스카이나이트들 중에서도 사상자가 났을 것이며, 성벽에서 항전하던 기사나 병사들도 상당수의 사상자가 발생했을 것이다.

하지만 짧은 축제는 필요했었다.

죽은 이들이야 안타깝지만 그들의 숭고한 희생 덕분에 네루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런 평화를 기리기 위하여, 아니, 죽은 이들을 위하여 술을 마시면서도 모든 이들의 마음 한쪽은 애도의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출격한 102명의 스카이나이트 중에 아홉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격추된 와이번 스물다섯 마리 중 열두 마리가 죽었으며, 나머지는 성수를 이용하여 치료했습니다."

"음....."

거의 300마리 이상의 와이번이 격추당한 제국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아홉 명의 기사가 죽었다는 말에 가슴이 찌르르 아파왔다.

"또한 성벽을 방어하던 기사 서른다섯 명과 병사 890명이 사망했습니다. 부상자들을 성수로 신속하게 치료했지만 치료가 불가능한 상태에 있던 이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목표를 잃은 스피어에 일반 백성 150명 정도가 사망했습니다."

'그렇게나 많이 죽다니.....'

눈을 감고 그들의 고귀한 죽음을 잠시 애도하였다.

"그 이외에 대형 석궁 12개가 완파, 30개 정도가 부분 파손을 당했으며 성벽도 상당수 훼손되었습니다."

생각보다 피해가 적었다.

누가 있어 라비테르 대군 앞에서 이런 소소한 피해로 대승을 거둘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영지 입장에서는 적지 않는 죽음이었다.

즉사하지만 않으면 성수로 치료가 가능하건만, 손쓸 틈도 없이 죽은 이들이 그리 많았다.

"적들의 피해는?"

"라비테르 놈들의 피해는 엄청납니다. 우선 적 와이번 500마리 중에 살아서 돌아간 놈은 200마리 정도밖에 없으며, 300마리 중 약 170마리의 와이번이 추락하였으나 목숨에는 지장이 없으며 나머지 130마리는 죽었습니다."

번쩍 눈이 떠졌다.

살아남은 170마리의 와이번.

돈을 주고도 대륙에서 단시간에 그렇게 많은 와이번은 구입할 수 없었다.

'됐어!'

손에 불끈 힘이 들어갔다.

100마리 이상 생포하면 성공했다 싶었건만 170마리나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와이번을 조종하던 스카이나이트 300명 중 250명이 사망하거나 자살했으며 나머지는 포로로 잡혀 있습니다."

라비테르 제국 최고의 귀족들이자 기사들이라면 당연한 일이었다.

적에게 잡혀서 치욕스러우니 자살한 자들이 있을 것이다.

"보병들은 어떤가?"

"그것이... 상당히 골치 아픕니다."

"무슨 말인가. 놈들이 난동이라도 부린단 말인가?"

"아닙니다. 난동이 문제가 아니라 포로로 잡힌 병사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말을 하면서도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데르발.

"숫자가 너무 많은가?"

나도 대충은 예상하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아직도 포로로 잡힌 적들의 숫자가 정확히 파악이 안 될 정도입니다. 적어도 18만 명은 확실히 넘을 것입니다."

'많긴 많네.'

18만이 뉘 집 개새끼 이름도 아니고, 무려 네루만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대병력.

"포로들을 덴포스 도시 밖 평원에 몰아넣고 감시하고 있지만 그들을 대충이라도 제어하려면 5,000명 이상의 병사들이 필요합니다."

대충이라는 말을 강조하는 데르발.

'대승을 거두어도 골치 아프네.'

포로로 잡힌 18만 명의 병사들.

한참 식욕이 좋을 건강한 나이 때의 병사들이라 밥도 많이 먹을 것이었다.

"부상자들에 대한 치료는 다 해줬는가."

"어제 급한 부상자들은 치료했습니다. 아르미스님과 성기사님들이 도움을 주셨습니다."

천사표 아르미스가 그냥 뒀을 리가 없었다.

적이나 아군이나 그녀에게는 다 같은 신의 불쌍한 자식들일 뿐이었다.

"포로들은 어찌했으면 좋겠는가."

"라비테르 제국에서 조만간 연락이 올 것입니다. 생존하거나 사망한 귀족이나 기사들을 찾기 위하여 각 귀족 가문에서 사람을 보낼 것이며, 제국도 백성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하여 포로 협상을 해올 것입니다."

'호오, 포로 협상이라 이거지.'

승자에게는 축복이요. 패자에게는 다시없을 저주라는 전쟁.

와이번 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이득을 보았건만, 거기에 보너스로 포로 협상을 통하여 부가 수입을 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가만, 그러고 보니 놈들이 남긴 군수품은 또 얼마야?'

20만 명이 사용하는 무기를 고철로 팔아도 네루만은 몇 년 동안 배부르게 먹고살 것이다.

또한 전쟁 수행에 필요한 각종 군수품인 화살과 말, 식량, 취침용 막사 등등.

생각할 수도 없는 엄청난 분량의 군수품이 획득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기사들은 어디로 갔는가? 창공단을 보니 와이번들도 얼마 없던데."

"영지 곳곳에 흩어져 있는 제국군 잔당을 소탕하러 출격하였습니다. 도망친 자들의 숫자도 상당합니다."

"각 마을에 자경단은 가동되고 있는가?"

"놈들이 도망친 방향은 모두 놈들의 진군 방향이었습니다. 저희 영지민들이 집중적으로 거주하는 곳으로는 제국 병사들이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설령 후방에 나타났다 하더라도 어설픈 제국 병사들에게 당할 영지민들이 아닙니다."

태어날 때부터 용병을 목표로 살아갔던 네루만 영지민들.

예비 병사들까지 대부분 차출했지만 각각의 마을에 남아 있던 이들도 한 힘 정도는 쓸 수 있는 이들이었다.

"혹시 마법사들은 없는가?"

"있습니다. 군단 소속 전투 마법단에 속해 있던 4서클 이상의 마법사가 200명가량의 마법사가 잡혀 있습니다. 위험한 자들이라 기사들과 함께 마나 수갑을 채워놨습니다."

'200명! 크크크.'

역시 통 큰 제국다웠다.

4서클 이상의 마법사를 수백 명인 군단에 배속하는 이들은 제국 아니면 꿈도 꾸기 힘든 일일 것이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빠르게 계산되는 수많은 계산들.

18만이나 되는 인력을 그냥 놀릴 수는 없었다.

무노동 무임금.

일하지 않는 자는 밥을 먹을 자격이 없었다.

"전 포로들을 중앙 성문 앞으로 모으게."

".....?"

말뜻을 파악하지 못하고 눈동자를 껌벅이는 데르발.

"내가 할 말이 있으니 기사와 마법사들을 제외한 모든 포로들을 모으게."

"명!"

내가 이런 명령 한두 번 내리던가.

의문을 지우고 힘차게 명을 외치는 데르발.

그는 또 보게 될 것이다.

나 강혁의 통 큰 배짱을 말이다.

★★★★★★★★★★★★★★★★★★★★★

'끝이 안 보이네.'

흩어져 수용되어 있던 포로들을 한 곳으로 모으는 것만으로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어제의 충격에서 깨어나 포로가 된 자신들의 모습이 믿기지 않았을 것이다.

기껏해야 1만도 안 되는 병력들이 자신들을 포위하고 있는 광경.

성격 급한 놈들은 혀를 깨물고 죽고 싶을 정도로 억울하 것이었다.

'어제의 노예가 오늘의 아군이라...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야.'

테미르 노예군의 대장으로 임명한 칸타하르의 명령에 따라 제국군을 포위하고 있는 테미르 전사들.

어른들이 말씀하신 뒤웅박 팔자라는 것이 저럴 때 사용하는 단어인 것 같았다.

'군율은 완벽하군.'

포로가 되었음에도 한곳으로 모으자 알아서 척척 줄과 열을 맞추는 라비테르 제국군.

그들과 본격적으로 한판 붙었다면 어찌 되었을까 하는 쓸데없는 상상은 필요치 않았다.

정식 전투였다면 네루만 백성들이 백전백패할 것은 뻔한 답이었다.

"네루만의 영주 카이어 백작이라고 한다."

중앙 성문 옆에 위치한 성루에 올라 마나를 돋워 힘차게 외쳤다.

"....."

내가 나타나는 순간부터 나만을 보고 있던 포로들.

찌르르르르.

살기와 분노, 증오, 공포 따위의 여러 감정이 뒤섞여 있는 눈길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렇게 만나게 된 것이 유감이지만 어쨌든 반갑다."

가진 자의 배짱을 목소리에 가득 담았다.

내가 만약 폭군이었다면 모조리 쓸어 죽여도 뭐라 할 자는 아무도 없었다.

이 시대에 있어 전쟁에서 사로잡힌 포로들은 노예 이상의 가치는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그대들을 이곳에 부른 이유는 한 가지 제안을 하기 위해서이다."

".....?"

자신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내 입에서 나오는 제안이라는 말에 의문을 표하는 포로들.

이렇게 적 대장이 직접 나와 제안이라는 것을 한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어봤을 것이다.

'자식들. 긴장 풀어, 안 잡아먹을 테니.'

팽팽한 긴장감이 의문의 눈길 속에서 감지되었다.

혹시나 자신들을 어찌할까 봐 걱정을 하는 것이었다.

"난 포로들이라 하여 지금까지의 전쟁 관례에 따라 노예로 대우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자비의 여신 네르안님을 모시는 신실한 종으로서 그대들을 짐승과 다름없이 취급하길 원하지 않는다."

"....."

말이 대지를 울려 퍼져 나갈수록 포로들은 침묵 속에 빠져들어 갔다.

"곧 라비테르 제국에서 그대들을 위하여 포로 협상을 제안할 것이다. 그리고 난 그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일 것이다."

내 목적을 위해서 포로들을 안심시켰다.

"또한 그대들이 제국에 돌아가기 전까지 네루만의 병사들과 똑같은 음식으로 하루 세 끼의 식사와 편안한 잠자리, 네르안 신전을 통하여 아픈 자들을 치료할 수 있도록 내 이름으로 약속하는 바이다."

두 번째 미끼도 던졌다.

"저 말을 믿어도 돼?"

"흥, 다 거짓말이야."

웅성웅성.

파격적인 포로 대우에 웅성거리며 놀라워하는 포로들.

'자식들, 놀랍냐? 흐흐흐.'

죽이지 않고 팔아먹지만 않아도 감사해야 할 판에, 양질의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한다는 말을 어찌 놀러워하지 않겠는가.

"조용!"

우르르르르르릉.

마나홀을 활성화시켜 대지가 들썩일 정도로 조용하라 외쳤다.

"....."

귀가 멍멍할 정도의 한마디에 다시 침묵에 빠져드는 포로들.

엄청난 마나에 나를 두려워하고 있음이 확연히 느껴졌다.

"그러나 그것은 공짜가 아니다. 내 영지민들과 기사, 그리고 병사들이 피땀 흘려 생산한 곡식을 맨입으로 먹는다면 그자는 양심이 없는 놈일 것이다. 나 또한, 어제 내 병사들과 백성들을 살해한 그대들을 용서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님을 명심하라."

좋은 조건 뒤에 따라붙은 경고.

포로돌의 눈빛이 흔들렸다.

자신들이 생각해도 너무나 좋은 조건이지만, 양심이라는 놈이 있고, 생각이라는 것을 할 줄 안다면 자신들의 죄를 알 것이었다.

"제국에서 포로 협상을 할 때까지 그대들을 네루만 신전 사업에 투입할 것이다. 단, 나 또한 그대들을 노예처럼 다루지 않을 것이다. 일반 병사들은 한 달에 1골드의 월급을 지불할 것이며, 백인장은 10골드, 천인장은 100골드를 제공할 것이다."

"헉!"

"말도 안 되는....."

대륙에 이런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사로잡힌 포로들에게 하루 한 끼도 아니고 세 끼를 주고, 잠자리에 신전의 보살핌, 그리고 월급까지 주는 파격적인 제안.

그냥 시켜도 해야 할 판에 월급까지 제공한다는 사실에 제국 병사들은 동료들을 보며 동요하였다.

'너희들이 어찌 알겠느냐, 이 봉황의 뜻을.'

미끼가 훌륭할수록 대어를 잡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

포로들뿐만 아니라 감시하고 있던 네루만의 병사들도 놀라는 눈치였다.

자신들의 월급에 비하면 작지만 포로들에게 돈을 준다는 자체만으로도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포로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러나 나의 이 파격적인 제안에도 불구하고 소란을 피우거나, 탈주를 시도한다면 그자는 발견 즉시 참살할 것이다. 그리고 그대들도 알다시피 네루만에서 탈주하기란 고서클 마법사도 불가능하다. 한쪽은 바다요, 양쪽은 험준한 산맥이며, 곳곳에는 아직도 각종 몬스터들의 터전이다. 거기에 네루만의 모든 곳은 평지. 스카이나이트들에게 발각당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마음대로 해도 좋다. 목숨이 아깝지 않다면 말이다."

확실하게 마무리 도장을 찍었다.

말 잘 들으면 어지간한 용병 월급을 주겠지만 도망이나 불순한 행동을 할 시에는 목숨을 거두겠다는 나의 협박.

살고자 하는 놈들은 다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18만 명의 노가다 대부대의 탄생! 크하하하. 하늘이 내게 주신 선물이로다!'

할 일이 넘치다 못해 산처럼 쌓여 있는 네루만.

건장한 체격에 남는 건 힘밖에 없는 라비테르 정규 병사들이 투입될 것이다.

나의 파라다이스를 건설하기 위한 일개미가 되어.

★★★★★★★★★★★★★★★★★★★★★

"벌써 가려고?"

"응, 아수비지만 우리 종족들에게도 봄은 중요해."

"아쉽네."

"호호, 걱정마. 시간 내서 종종 놀러 올 테니까."

'간다고 하니까. 서운하네.'

이번 대승의 진정한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로코로이아와 테미르 종족.

아직은 영지 기사들과 병사들과 어울리기 힘든 그들은 떠난다 하였다.

"고맙다."

"고맙기는... 대수호전사가 나고, 내가 대수호전사인데 뭐가 고마워."

부부 일심동체라는 말뜻을 아는 중삐리 로코로이아.

말을 하는 와중에도 아쉬움이 가득 담긴 눈동자로 나를 보았다.

"이건 선물이야."

"정말?"

줄 게 별로 없었다.

매년 조공으로 엄청난 보석을 받는 로코로이아는 나보다 더 부자였다.

그런 그녀에게 드워프가 만든 미스릴 핀을 선물했다.

작은 다이아가 수십 개 박혀 있는 초승달을 닮은 머리핀.

"마음에 들어."

머리에 꽂으며 상큼하게 웃는 꼬맹이 로코로이아.

"잘 가. 필요한 게 있으면 루미카르를 날려."

"응, 대수호전사도 잘 있어."

사락.

잘 있으라는 말과 함께 내 품에 안기는 로코로이아.

'정이 무섭긴 무서워.'

뽀뽀 좀 하고 한 방에 잠 좀 잤다고 가슴이 뭉클했다.

일명 서운이라 불리는 감정의 정체.

"대수호전사... 난 다 이해해."

"뭐, 뭘?"

품에 안긴 채 다 이해한다는 이상한 말을 꺼내는 로코로이아.

"뛰어난 전사들은 훌륭한 씨를 뿌리기 위하여 여러 여자를 거느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야."

'컥!'

역시 4차원적인 생각을 소유한 로코로이아.

어린 것이 이런 기특한(?) 사상을 소유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누군지 몰라도 제대로 가르쳐 놓은 것 같았다.

"나만 잊지 마. 그거 하나면 돼. 알았지?"

말을 하면서 눈을 맞추고자 고개를 들어 날ㄹ 보는 새카만 로코로이아의 흑진주 같은 눈동자.

쪽.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뽀뽀를 해주었다.

"헤헤....."

평소와 달리 내 뽀뽀에 헤헤거리며 그 나이 때의 귀여운 소녀 모습을 보이는 로코로이아.

"곧 찾아갈게. 잘 지내."

"응."

대답과 함께 품에서 벗어나 자신의 와이번에 올라타는 로코로이아.

"다루타카인! 다루타카인!"

다루타카인을 외치는 테미르 족 스카이나이트들.

주먹 쥔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힘찬 함성을 지르는 고마운 조력자들.

파라라라라라라락.

로코로이아를 태운 와이번이 힘차게 지상을 박차며 창공으로 비상하였다.

파라라라라 파라라라라라락.

그 뒤를 따르 비상하는 300마리의 와이번.

'잘 가, 친구들.'

도움을 받았지만 과거부터 얽혀 있는 좋지 않은 관계 때문에 도시 밖에 머물던 테미르 족 스카이나이트들.

올 때와 같이 바람처럼 사라져 갔다.

'반드시 이루고 말겠어. 서로 미워하지 않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그런 대지로.....'

지금은 아쉽게 보내야지만 언젠가는 모두 열린 마음으로 모여 살아갈 나의 대지.

그곳의 이름은 사랑과 평화가 숨 쉬는 네루만이었다.

★★★★★★★★★★★★★★★★★★★★★

"그, 그것은....."

"왜? 짐의 말이 어거지로 들리나?"

"....."

바즈란 제국 황성.

사신으로 찾아온 크란츠 왕국의 칼데론 백작이 폴트비란 황제의 제안에 어이가 없어 할 말을 잃어버렸다.

황제를 달래고자 왕실 보물 창고도 개방했건만 황제가 원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위대하신 대바즈란 제국의 황제 폐하시여, 이미 왕국의 두 공주께서는 이웃 왕국에 시집을 가신 상태이옵니다. 그런데 그분들을 첩으로 삼으신다니... 거두어주시옵소서. 다른 명을 내려주신다면 크란츠 왕국의 모든 이들이 힘을 다하여 따를 것이옵니다."

폴트비란 황제가 내건 조건.

그것은 바로 몇 년 전 쿠비란과 케르퍼 왕국에 시집가 버린 쌍둥이 공주를 첩으로 달라는 것.

시집가지 않는 처녀였어도 고민하였을 일을 황제는 쉽게 말을 꺼내었다.

비릿한 냄새가 날 것 같은 독사의 눈동자를 차갑게 빛내면서.

"크크크크, 그럼 협상 결렬이군. 짐은 나름 쉬운 조건을 내걸었건만 그것을 걷어차다니....."

미친놈이 분명했다.

오래된 동맹 관계인 제국과 왕국 관계를 변태적인 욕망을 충족시키고자 단박에 파괴시켜 버린 황제의 망언.

사신으로 찾아온 칼데론 백작의 표정은 썩은 돼지 간처럼 변해 버렸다.

"가서 너희 왕에게 전하라. 인연의 주관자 로메로님의 계절에, 짐을 모욕한 크란츠 왕국을 짐이 직접 토벌할 것을 말이다! 크하하하하하하하하!"

무엇이 그리 통쾌한지 대전을 울리는 폴트비란 황제의 광소.

이미 바즈란 제국군은 크란츠 왕국 국경에 집결하고 있었다.

광기 어린 황제의 명을 충실하게 수행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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