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4장 황제, 죽다
"폐, 폐하....."
"왔는가....."
"어서 일어나시옵소서. 자리를 털고 일어나시어 예전처럼 소신을 호령하여 주시옵소서."
바즈란 제국의 황성.
병약한 황제가 누워 있는 방 안.
제국 사대 공작 중 한 명인 가르비티 공작이 황제의 부름을 받고 급히 달려와 있었다.
"벌써 자네를 안 지 50년이 됐군..... 어릴 적 자네를 형처럼 따랐었는데....."
"폐하....."
다른 이들과 달리 황제와 유난히 추억이 많은 가르비티 공작.
선대 황제와 가르비티 공작의 아버지는 친구 사이였고, 그 덕분에 황실에 자주 놀러왔던 가르비티는 황태자였던 하비트론 황제와 형 동생처럼 지냈었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 황제의 위에 오른 뒤로는 군신간이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그런데 황제가 과거를 회상하며 가르비티 공작을 따뜻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오늘은 유난히 정신이 맑아. 이제 곧 신의 품으로 갈 때가 온 것 같으니."
"무슨 황망한 말씀이시옵니까. 신의 품이라뇨! 늙은 소신도 이렇게 건강한데 폐하께서는 어찌 그리 심약한 말씀만 하시옵니까....."
"고마웠네."
황제는 그런 가르비티 공작을 향해 고맙다고 말했다.
"경과 충신들 덕분에 내 대에 제국은 가장 번성을 이루었다. 그중에서 모자란 나를 믿고 따라준 자네 공이 제일 크네."
"폐하....."
평소 하지 않던 진심을 말하는 황제의 따스한 말에 늙은 공작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오늘은 부탁이 있어서 불렀네."
명령도 아닌 황제의 부탁.
비록 병약하여 병상에 누워 있지만 한마디 명령만으로 제국을 뒤집을 수 있는 권력을 쥐고 있는 황제가 공작에게 부탁을 하고 있었다.
"하명만 하시옵소서. 소신 목숨 걸고 봉행하겠나이다."
가르비티 공작도 알고 있었다.
어쩌면 지금 하는 말이 황제의 유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제국을 부탁하네."
"....."
제국을 부탁한다는 황제의 말에 놀라 눈을 부릅뜨는 가르비티.
"내가 죽거든 영지에서 단 한 발자국도 나오지 말게. 자네는 나이가 있으니 노환을 핑계로 칩거하게. 그리고 힘을 비축해 두게."
오늘 내일 한다는 신관들의 말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또렷하게 자신의 의사를 밝히는 황제.
눈동자에는 현명한 자의 슬기로움이 가득했다.
"그리고... 때가 되면 제국을 위하여 한 번만 검을 들어주게. 그것이 내 마지막 부탁이네."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황제의 부탁.
자칫 이 말이 밖으로 새어나가면 역모로 취급받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이것을 받게나."
"이것은....."
"옥새가 찍혀 있는 명령서이네."
"이것을 왜 제게 주시는지요."
"이제 믿을 사람이 황실에 자네밖에 없네."
"폐하!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시옵니까. 그 어떤 자라도 황명을 받지 않는다면 소신이 목을 베어버릴 것입니다!"
"고마워...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야. 자네도 알지 않는가, 권력이란 끊임없이 흐르는 물과 같다는 것을."
"크윽....."
어찌 황제가 말하는 바를 모르겠는가.
바즈란 제국에서 황제 다음의 권력과 명예를 쥔 이가 바로 사대 공작들이 아닌가.
"이 방에서 나가면 이 명령서를 바로 집행해 주게. 그 누가 막더라도 반드시 말이야."
명령서 하나 건네는 것도 힘이 부치는지 파르르 손을 떠는 하비트론 황제.
가르비티 공작은 눈물을 꾹꾹 눌러 참으며 두 손으로 황명을 받았다.
"헉! 이, 이것은....."
"얘들이 살아 있다면 내가 한 부탁은 유효하지만 만약 죽었다면... 자네는 가문을 보전하게."
"폐하....."
오늘 참으로 할 말 없게 만드는 황제.
가르비티는 황명을 받아 들고 황제를 보았다.
"쿨럭, 쿨럭....."
그때 할 말을 다했는지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이며 격한 기침을 토하는 황제.
"폐하!"
"...됐어. 나는 됐으니... 어서 나가게. 그리고 바로... 바로 내 명을 실행해 주게..... 그리고 돌아가. 자네도 위험할 수 있으니..... 쿨럭, 쿨럭."
말을 마치고 기침을 토하며 붉은 피를 한 웅큼 입가에 흘리는 황제.
방금 전까지 총명하던 황제의 눈은 급격히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폐하, 소신, 후에 뵙겠습니다....."
쿵!
한쪽 무릎을 꿇으며 기사로서의 최고의 예를 올리는 가르비티.
늙은 그의 노안에 주르륵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반드시 폐하의 뜻대로 이 제국을 수호하겠나이다! 반드시.....'
마지막으로 황제를 일별하고 침실 문을 여는 가르비티 공작.
"뭐 하는가! 황제 폐하께서 쓰러지셨다. 속히 신관들을 불러라! 속히!!!!!!"
온 궁전이 떠나가라 마나를 돋워 소리치는 가리비티 공작의 일성.
그 순간 쥐 죽은 듯 조용하던 황실은 한바탕 광풍이 휘몰아쳤다.
황제가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어둠 속의 눈들.
알고 있었다.
이제 쓰러진 황제가 다시는 일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
'이제 이 수식만 집어넣으면.....'
한 시간째 집중한 덕분에 이마에서 굵은 땀방울이 방울져 손등에 떨어졌다.
그러나 결코 멈출 수 없는 순간.
미스릴 접합기를 들고 쇠로 만든 화살대에 마법진을 완성해 갔다.
지잉!
마법진이 완성되는 순간 가볍게 대기의 마나와 공명하였다.
"휴우....."
그리고 입에서 터져 나오는 한숨.
"됐다!"
길이 2미터의 대형 화살.
와이번과 지상 병력을 견제하기 위하여 설치할 대형 석궁에 장착할 신무기였다.
"난 너무 똑똑한 것 같아."
내가 생각해도 대견했다.
부족한 와이번과 스카이나이트, 그리고 전쟁 물자 속에서 최대한의 효능을 이끌어내기 위하여 요 며칠 고심하였다.
그리고 새로운 신무기를 만들어내었다.
"흐흐. 어떤 놈인지 몰라도 제대로 뜨거운 맛을 볼 것이야."
손에 들린 통쇠 화살을 만지며 기분이 좋아졌다.
이제 화살촉만 미스릴로 코팅한다면 지상에서도 와이번을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어지게 되었다.
"마나를 다루는 자는 누구나 와이번을 상대할 수 있는 무기라. 캬아, 좋다!"
철저한 방어 위주로 적들을 상대해야 하는 현실.
방어에 알맞은 무기들을 창조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손에 들린 무기는 가장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작품이었다.
"블레스트 스피어를 제조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의 100분의 1로 효능은 비슷하게 낼 수 있다 이거지. 흐흐흐."
블레스트 스피어는 마나 전도성 때문에 전체를 미스릴 코팅을 해야 했다.
하지만 손에 들고 있는 화살은 단지 속도만 증가시키는 마법진을 장착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유효사거리 3킬로가 넘는 괴물 화살로 탄생했다.
"이제 좀 쉬어볼까."
하비스 귀족병들을 상대했던 수법들은 적들에게 어느 정도 파악되어졌을 것이다.
그렇기에 비장의 수법들이 필요했다.
뒤통수를 딱 때려 단 한 방에 골로 보낼 수 있는 수법 말이다.
휘리리링.
창문을 열자 시원한 바람과 함께 보이는 광경.
어느새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하루 이틀 잠을 자지 않아도 별 지장이 없기에 몸은 피로하지 않았다.
그런 내 눈에 보이는 새벽녘의 붉은 동트는 기운.
우두둑.
기지개를 켜며 온몸의 근육을 이완시켜 갔다.
"다리와 요새도 다 완성이 되었고, 이제 남은 것은 기다리는 일만 남았는가."
겨울이었기에 대규모로 성을 쌓거나 방비를 할 수 없었다.
현재 가능한 일은 새로운 스카이나이트들을 육성하는 것과 기사들과 병사들을 훈련시키는 것뿐.
신년 회의가 끝나기 무섭게 기사들은 맹렬하게 자신과 병사들을 다그쳤다.
대륙 전체와 싸워야 할지 모른다 선언했으니 기사들도 긴장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요 며칠 조용하네. 영 찝찝한데....."
언제 팔자 좋게 쉬어본 적이 없는 나였다.
그런데 몬스터가 출몰했다는 보고도 없고, 영지 전체가 평온에 휩싸여 있었다.
"불안한데."
평온한 게 좋지만 그게 내 팔자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 나는 등골을 타고 스멀스멀 흐르는 불안함의 정체를 파악하려 애썼다.
"젠장, 편해도 문제라니까."
머리를 긁적이며 불안감을 떨쳐 버렸다.
계획했던 대로 착착 일이 진행되고 있는데 문제될 것이 전혀 없었다.
하등 인생에 도움이 안 되는 불안감만 빼고 말이다.
"씨이... 이런 날 꼭 사건 터지던데."
등을 돌려 잠시나마 눈을 붙이기 위하여 침대로 향하던 나.
오늘 무언가 불길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에 인상을 팍 썼다.
하지만 어쩌랴.
맞을 매라면 빨리 맞는 게 나은 것처럼 터질 일이라면 확터지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더 이상 나빠질 일이 내 인생에 없을 것이기에.
★★★★★★★★★★★★★★★★★★★★★
"폐, 폐하!!!!!!!"
"폐하가 붕어하셨다!"
"폐, 폐하!!!!!!!"
황제가 쓰러진 어제 이후 고양이 발자국 소리 하나 나지 않던 바즈란 제국의 황궁.
갑자기 폐하라는 통곡성이 담긴 음성이 흘러나오더니 붕어하셨다는 말이 메아리쳐 울려갔다.
쿠구궁.
"황제 폐하!"
"흐흐흑."
나름대로 어진 황제로 평가받던 하비트론 황제의 붕어 소식.
황성을 경비하던 근위기사와 병사들은 무릎을 꿇고 황제를 불렀고, 시녀 또한 자리에 쓰러져 목놓아 울었다.
"어서 황태자 전하, 아니, 황제 폐하를 모셔와라!"
황제가 죽는 순간 자동으로 황제가 되는 황태자.
황제의 침실에서 튀어나온 신관이 황태자를 찾았다.
"아, 아바마마!!!!"
부를 것도 없었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던 듯, 황제의 침실로 뛰어들어 온 황태자 폴트비란.
눈물이 범벅이 된 얼굴로 편안하게 눈을 감은 황제에게 달려들었다.
"이러시면 아니 되옵니다, 폐하!"
급히 황태자를 말리는 신관들.
"아바마마! 소자를 두고 이리 가시면 어찌하십니까! 아직 부족한 소자에게 어찌 바즈란의 운명을 맡기시나이까!"
바닥에 주저앉아 대성통곡하는 황태자 폴트비란.
누가 보면 효심이 지극한 아들이 아비의 죽음을 슬퍼하는 모습이었다.
'흐흐. 이제야 가시다니 너무 하십니다.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아비를 죽이는 불효자가 될 뻔했습니다.'
흐르는 눈물과 달리 마음속은 한없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황태자.
"폐하! 오오오! 나의 태양이신 폐하시여! 어디 계시나이까! 부족한 신첩을 놔두고 어찌 먼저 신의 품으로 돌아가시나이까!!!"
황태자가 황제의 방에 들어온 잠시 후.
황비 에르미앙이 미친 듯 달려들어 왔다.
그리고 황태자처럼 황제의 시신에 달려가는 그녀.
"어서 황비 전하를 모셔라!"
황비와 함께 들어오던 오메르 공작이 황비의 시녀들에게 명을 내렸다
"폐하, 소신 오메르 이제 왔나이다. 어서 자리에서 일어나시옵소서... 크윽."
황제의 시신 앞에 무릎을 꿇는 오메르 공작.
통곡하는 와중에도 눈동자는 바삐 움직였다.
'황제의 유언은 없었다. 어제 가르비티가 떠난 이후로 이방에 들어온 자는 아무도 없었다.
설사 가르비티가 황제의 유지를 받들었다 하더라도 아무 효력이 없었다.
황제의 유언이 집행되기 위해서는 2인 이상의 공작, 또는 5인 이상의 백작위 귀족과 다른 신전의 신관 세 사람이 입회해야 한다.
하지만 전혀 그런 일이 없었다.
"아니, 제국의 주인께서 어찌 무릎을 꿇고 있나이까. 어서 일어나시옵소서."
자신 옆에 무릎을 꿇고 있는 폴트비란을 보며 화들짝 놀라는 오메르.
폴트비란과 눈이 마주지차 기쁜 눈동자를 반짝였다.
"뭐 하는가! 어서 대바즈란 제국의 황제 폐하를 예를 갖춰 모시지 않고!"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근위기사들과 속속 모여드는 귀족들에게 호통치는 오메르 공작.
"폐하, 일어나시옵소서."
타다다닥.
급히 황제를 보필하는 황실 시종장이 달려와 폴트비란을 부축했다.
"놔라! 아바마마가 아직 살아 계시는데 내가 어찌 황제의 위에 오를 수 있단 말이냐."
뻔히 보이는 연극을 펼치는 폴트비란.
그러나 그 모습에 신관들은 안타까운 눈동자로 보았다.
황제에 오르기 위해서는 대신관들의 축복을 받는 것이 관례였기에 폴트비란은 어울리지 않는 짓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폐, 폐하.....!"
그때, 한 여인이 폐하를 외치며 침상으로 다가왔다.
바즈란 제국의 황후 네르미스.
황제의 치유를 위하여 매일 신전에 나가 기도를 올리던 그녀.
넋이 나간 사람처럼 천천히 눈을 감고 있는 황제 곁으로 다가갔다.
"....."
황후가 다가가자 아무도 막지 못했다.
다른 이들과 달리 진정 황제의 죽음을 슬퍼하는 황후으 진실된 모습에 모든 이들은 숨을 죽였다.
사라락.
황제의 얼굴을 부드럽게 매만지는 황후.
"수고했어요... 이제 편히 쉬어요....."
죽은 남편의 귀에 속삭이는 네르미스의 속삭임.
황후는 말과 함께 황제의 식어가는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대었다.
또로로.
그리고 황후의 얼굴을 타고 흐르는 맑은 물방울들.
방울져 흘러내려 황제의 눈동자에 닿았다.
숙연하고 고결한 황후의 모습.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폴트비란의 입가는 씰룩여졌다.
"뭣들 하는가! 황후를 침실로 모셔라!"
"명!"
이제는 황후 밑에 있는 황태자가 아닌 제국 모든 이들의 머리 위에 있는 황제 폴트비란의 명령.
타다닥.
시녀들이 달려들기 전에 근위기사들이 움직였다.
"오메르 경은, 속히 국장을 선포하고 황도에 있는 모든 귀족들을 소집할 것이며 이 시간 이후부터 내 허락 없이 일체의 병사들의 이동을 허락하지 않음을 전하시오."
"황명을 받드옵니다!"
북 치고 장구 치는 두 사람.
폴트비란의 명에 오메르 공작은 깊숙이 허리를 숙이며 황명을 받는다 하였다.
그렇게 한 명의 황제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새로운 황제가 대륙에 탄생하였다.
희대의 폭군 자질이 넘쳐나는 폴트비란 폰 바즈란 황제의 등장이었다.
★★★★★★★★★★★★★★★★★★★★★
"뭐, 뭐라고! 어제 오후에 황명을 받들고 아이지스 황녀와 라즈시온 황자가 황성을 떠났다고!"
"그, 그렇습니다. 최대한 은밀하게 처리하라는 황명이 내려졌기에 이제야 발견하였습니다."
쾅!
"이런 괘씸한 늙은이! 그래서 어제 영지로 내뺀 것이었어!"
탁자를 내려치며 욕을 퍼붓는 오메르 공작.
황제가 서거하고 정신없는 와중에도 제일 먼저 미래의 화근이 될 아이지스 황녀와 라즈시온 황자를 찾았다.
하지만 놀랍게도 황명을 받고 어제 황성을 떠났다는 두 남매.
가르비티 공작이 손을 쓰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미 군부와 귀족들 대부분이 자신의 손아귀에 있었지만, 황명과 공작의 명이라면 하루쯤은 보고가 미뤄질 수도 있었다.
"어디로 갔는가? 호위하는 자들의 숫자는?"
마음 급한 오메르가 보고하는 귀족에게 급히 물었다.
"정확한 행적지는 모르겠고, 아이린 백작과 그 휘하 황실 근위 스카이나이트 편대 십여 명이 함께 움직였다 하옵니다."
"아, 아이린? 하필 고지식한 그 계집이라니....."
황도에서 급보를 날리고 행적을 찾는다면 하루 정도면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전력으로 비행을 한다면 이틀의 시간이면 황성에서 뒤쫓기에는 무리였다.
'그들이 어디로 갔단 말이더냐..... 리토르 산맥을 넘기에는 너무 위험하고, 다른 왕국으로 가기에는 정치적 부담이 클것인데.....'
바즈란 제국에 인접한 왕국들은 모두 제국의 눈치를 보고 사는 이들.
그런 왕국들이 골칫덩이 망명객들을 받아줄 리가 없었다.
"헉! 서, 설마!"
하지만 그때, 오메르 공작의 머리에서 떠오르는 한 남자의 얼굴.
"카이어! 그놈에게!!"
카이어라는 이름만 생각해도 머리가 지끈거려 오는 오메르.
"속히 네루만으로 향하는 모든 영지에 명을 내려라! 새로운 황제 폐하의 명이시니 네루만으로 향하는 황녀 일행과 블랙 와이번으로 이뤄진 황실 근위 스카이나이트들을 멈추게 하라고 말잉다. 그리고 만약 반항할 시에는 황명 거역죄로 처단해도 좋다고 말이다!"
"명!"
신속하게 내려지는 명령.
그 정도로 지금 상황은 심각하였다.
만약, 황녀와 황자가 네루만에 숨어버린다면 폴트비란의 입지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약화될 수가 있었다.
'반드시 잡아야 한다, 반드시!'
주먹을 움켜쥐며 의지를 불태우는 오메르.
그의 머릿속에 자신을 향해 비웃고 있는 카이어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네놈도 곧... 묻어버릴 것이다.'
조카 폴트비란이 황제가 되는 순간, 바즈란 제국의 보이지 않는 황제가 된 오메르의 다짐.
네루만을 향해 또 하나의 폭풍이 태동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