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세기 대마법사-120화 (120/221)

제120장 세상에서 가장 비싼 밥값

"맛있습니다!"

"정말요? 호호 입에 맞다니 다행입니다."

"공주님은 안 드십니까?"

"전....."

차 한잔하고 돌아갈 생각이었건만 차는 어디로 가고 바로 식사가 준비되었다.

그리고 시작된 왕실 정찬.

형편도 어렵다면서 어디서 구했는지 듣도 보도 못한 음식들이 기다란 테이블에 가득 채워져 있었다.

조금 과장하자면 어지간한 뷔페 수준의 음식들.

"쩝쩝."

"후루루룩."

'에휴, 저 화상들은 어찌해야 하나.'

다행스럽게 로시아테와 음식을 나르는 시녀들만 있기에 망정이지 귀족들이 있다면 나를 격멸의 시선으로 보았을 장면.

예의와 매너는 엿 바꿔 먹은 수인족들이 손에 잡히는 대로 음식을 쓸어 담고 있었다.

'누가 보면 평소에 굶긴 줄 알겠네. 쯧쯧.'

수인족들의 타고난 식성에 혀를 차며 로시아테를 보았다.

'뭐가 그리 좋아? 왜 나를 보고 저리 웃는 거야, 심잘 떨리게.'

북부 대륙 최고의 미인이라 소문난 로시아테.

음식을 몇 점 먹지도 않고 황홀한 미소를 지으며 나만 보고 있었다.

마치 나만 봐도 배가 부른 것처럼.

"올 겨울은 유난히 눈이 많이 온 것 같습니다."

"그런 것 같아요. 하비스 왕국은 눈이 많이 내리지 않는 곳인데, 제법 눈이 왔어요."

부드러운 로시아테의 음성.

배부르고 따뜻한 곳에 있다 보니 그녀의 부드러운 목소리는 아이스크림처럼 달콤하게 들려왔다.

"왕국은 좀 어떻습니까?"

"걱정하신 덕분에 많이 좋아지고 있습니다."

"다행입니다."

'이게 아닌데.....'

사실 이곳에 오면서 감옥에 있을 노예들을 나에게 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왠지 말하기가 쑥쓰러웠다.

그렇기에 말이 빙빙 돌았다.

'밥도 먹었겠다. 이제 돌아가야겠네.'

어차피 내가 아니더라도 데르발에게 명령해서 받으면 그만이었다.

"오늘 만찬은 평생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 다음에는 제가 한 번 초청하겠습니다."

"정말요? 호호,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초청이라는 말에 즐거운 미소를 짓는 로시아테.

한순간에 백 송이 장미가 핀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매혹적이었다.

똑똑.

덜컹.

"공주님, 급보입니다!"

똑똑거리는 노크 소리와 함게 만찬장의 문이 벌컥 열렸다.

상다히 예의에 어긋나는 짓.

하지만 들어서는 근위기사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것을 보아 심상치 않은 일이 터진 것 같았다.

"무슨 일입니까?"

"로, 로엔 공국놈들이 국경을 넘어 자제론 요새를 함락시켰다 합니다."

"네에!"

콰다당.

얼마나 놀랐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로시아테.

그녀가 앉아 있던 의자가 충격에 바닥으로 쓰러졌다.

"요새를 책임지고 있는 안트카인 자작 이하, 기사들과 병사들 모두 장렬하게 전사했다 합니다."

"아....."

"헉!"

전사라는 말에 머리를 부여잡고 쓰러지려는 로시아테.

황급히 자리를 박차고 나가 그녀를 안았다.

"흑....."

품에 안기자 뭐가 그리 서러운지 흑, 하고 눈물을 흘리는 그녀.

보고하던 기사의 얼굴은 새파랗다 못해 하얗게 질려 있었다.

"놈들의 숫자는 얼마나 된다고 하오?"

"와이번은 100여 마리 이상, 기병과 보병의 숫자가 3만 정도라 합니다."

당황하는 와중에 내가 묻자 황급하게 대답하는 근위기사.

'100마리에 3만이라.'

감히 적다고 말할 수 없는 숫자.

"지금 왕국에서 출동 가능한 와이번과 병사들의 숫자는 얼마나 되오?"

"그것이... 즉시 사용할 수 있는 와이번은 왕실을 수호하는 근위 스카이나이트가 소유하고 있는 20마리가 전부입니다. 병사들도 대부분 반란군을 제압하느라 기용 가능한 병력이 없습니다. 약 3,000 정도의 병사들이 왕성을 수호하고 있습니다만 그들을 빼내기에는....."

'켁? 달랑 20마리에 3,000?'

초창기 내가 네루만에서 지휘하던 숫자와 별반 다를 게 없는 전력.

내가 이끌고 온 100마리의 와이번이 있다지만 당장 전력화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스카이나이트가 붕어빵 틀에서 찍어낼 수 있는 물건이 아니지 않는가.

'이런데 좋아지고 있어?'

강한 척 폼을 잡았지만 참으로 힘들었을 로시아테의 국정 운영.

어찌 왕국이라 불리는 곳에 즉시 가용 가능한 와이번이 20마리가 전부일 수 있단 말인가.

'반란군 토벌에 전력이 분산되는 틈을 노렸군.'

그리 안 해도 자메르가 말해주었던 하비스 왕국의 상황.

로엔 공국 싸가지들이 빈집털이를 실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라비테르 놈들의 허락을 받았겠지.'

안 봐도 그림이 그려졌다.

하비스 왕국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라비테르 놈들이 자신들을 지지하던 귀족들이 나가떨어지자 공국을 이용하여 뒤통수를 친 것이리라.

'밥값 한번 비싸군.'

듣지 않았으면 몰라도 내 귀에 들어온 이상 이대로 영지에 돌아갈 수 없었다.

"괘, 괜찮습니다. 저희 왕국 일은 저희가 알아서....."

"쉿."

품에서 벗어나며 애써 냉정을 유지하려는 로시아테.

손가락을 입에 가져가며 쉿이라 말을 꺼내었다.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십시오. 저와 로시아테님과는 그 정도 말할 인연은 된다고 생각합니다."

파르르.

내 말에 눈동자를 파르르 떠는 로시아테.

"하비스 왕국의 안녕이 제 영지의 안전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가라면 제 영지를 팽개치라는 말로 들립니다."

조금은 억지스러운 과장.

그러나 그렇게 하고 싶었다.

"제군들, 밥 맛있게 먹었나?"

"잘 먹었다, 주인."

"전투인가?"

귀와 눈이 있는 수인족들.

전투라는 말을 꺼내며 투지를 불태웠다.

"놈들을 찾으려면 어떻게 하면 되오?"

얼어붙어 있는 근위기사들에게 놈들의 위치를 물었다.

"저, 그것이....."

로시아테의 눈치를 보는 근위기사.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헉! 공주님 그것은....."

당황하는 근위기사.

"좋습니다. 길 안내를 부탁합니다."

자신의 왕국을 위하여 궁전에서 걱정의 한숨이나 쉬고 있는 것이 더 웃겼다.

한 왕국을 책임지고 있는 자라면 이런 자세가 필요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셀러트 경, 근위 스카이나이트들을 소집해 주세요."

"명!"

"아닙니다. 근위 스카이나이트들은 필요없습니다. 공주님과 우리만 갑니다."

"....."

내 말에 눈을 껌벅이는 로시아테.

"알겠습니다."

내 눈동자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로시아테.

'흐흐, 와이번이 100마리라 이거지.'

한 번 해봤다고 이제는 겁이 없어졌다.

와이번 100마리 정도는 이제 막 자라기 시작하는 초등학생 정도로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와이번 100마리라는 숫자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언제나 배고픈 네루만.

공짜로 먹을 수 있을 때, 기회를 놓친다면 하늘이 내린 바보가 분명할 것이 것이었다.

★★★★★★★★★★★★★★★★★★★★★

"자레론이 함락되었다고?"

"로엔의 레미타르 왕자가 직접 나섰다 합니다. 지금은 여세를 몰아 하비스 왕국으로 깊숙이 이동 중이라 합니다."

"크크. 욕심쟁이 왕자 놈이 잘 움직여 주는군."

하비스 왕국 침공 명령을 황제에게 은밀히 받아준 야노비스 공작.

연락용 루미카르로 속속 보고되는 전장 상황에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대로 로엔 놈들이 하비스 왕국을 삼키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하는지요."

야놉시 폰 베르모얀 공작가의 가신 가문인 다베스안 백작이 조심스럽게 공작의 의중을 물었다.

"그것도 좋지. 어차피 공국도 조만간에 정리할 참이었으니 이번 기회에 손도 안 대고 코를 풀어보는 것도 괜찮겠지."

"아... 그렇군요."

공작의 심계에 감탄사를 터뜨리는 다베스얀.

건장한 체격에 블레이드 마스터인 공작의 머리가 그리 좋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건만,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했다.

그리고 더욱 조심해야겠다는 마음을 품었다.

"출병 준비는 잘 되고 있겠지?"

"서부 병단 소속 3군단과 7군단이 명령대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황명만 내려온다면 언제든지 이동할 것입니다."

"알았네."

백작의 말에 고개를 끄덛이는 야노비스 공작.

황소 같은 커다란 눈동자를 반짝였다.

다가올 커다란 대륙의 지각 변동을 생각하며.....

★★★★★★★★★★★★★★★★★★★★★

'이제 거의 다 온 것 같은데.'

하비스 왕국의 영토는 네루만 보다 조금 더 클 뿐이었다.

그런 영토를 가로질러 날기를 세 시간.

국경이 가까워졌는지 피난을 가는 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추운 날 고생들이야.'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네루만도 적들의 침공을 방어하지 못하면 영지민들은 저런 꼴을 당할 것이었다.

하지만 이곳과 달랐다.

이곳 백성들은 도망갈 곳이라도 있지, 우리 네루만은 도망치는 순간 한쪽은 바다요, 양옆은 몬스터 천지인 산맥들뿐이었다.

쿠오오오오오오오오오!

나보다 더 좋은 오감을 소유하고 있는 베베토가 전방을 향해 울음을 토하였다.

보이지 않지만 맞바람 속에서 와이번 냄새를 맡은 것 같았다.

스윽.

손을 높이 쳐들었다.

쉬이이익.

그러자 자연스럽게 학익진 공격 대형으로 자세를 잡는 수인족.

'근접전만 아니면 안전하겠지.'

항상 우리와 후방 1킬로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라고 말이다.

'순찰 와이번들이군.'

어둑해지는 하늘 위로 보이는 일단의 와이번 떼.

숫자는 약 20여 마리.

딱 잡아먹기 좋은 숫자였다.

'길게 끌 것도 없다. 한 방에 보낸다.'

생각과 함께 베베토 몸통에 붙어 있는 특수 가방을 보았다.

오늘과 같은 일이 언제 벌어질지 몰라 언제나 수십 병의 최고급 성수를 담아 가지고 다녔다.

나뿐만 아니라 수인족이 몰고 다니는 와이번에도 성수가 실려 있었다.

'준비 끝!'

한두 번 사냥하는 것도 아닌 것.

우리를 발견하고 편대비행을 이루며 날아오는 와이번을 향해 마주 날아갔다.

스윽.

그리고 그 순간 양손에 들리는 신형 블레스트 스피어.

어스름한 분위기의 하늘은 참새 잡기(?) 딱 좋은 날처럼 보였다.

★★★★★★★★★★★★★★★★★★★★★

'골드 와이번이 이곳에?'

로엔 공국 소속 와이번 순찰 편대를 이끌고 있는 카르티온 백작.

갑자기 하비스 왕국 내륙 쪽에서 날아온 골드 와이번에 당황스러웠다.

해가 석양으로 바뀔 무렵이었지만 공국에 자주 날아왔던 라비테르 제국 황실 전용 와이번을 못 알아볼 리가 없었다.

'일곱 마리... 그런데 저 블랙 와이번은 뭐란 말인가.'

선두에선 석양에 반짝이는 금줄 무늬의 블랙 와이번과 골드 와이번 다섯 마리, 마지막으로 뒤떨어져 날아오는 회색 와이번은 보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복잡해졌다.

'허억! 서, 설마!'

그리고 갑자기 생각나는 소문 하나.

네루만을 침공했던 하비스 귀족들의 와이번을 몰살시켰다는 한 남자의 이야기.

'카이어 백작! 그란 말인가!'

당황하는 와중에 급히 공격 명령을 내리기 위하여 손을 치켜드는 카르티온 백작.

번쩍.

그때 보았다.

공격하기에는 너무 먼 3킬로 전방에서 빛이 번쩍이는 모습을.

"헉!"

이상함을 생각하기도 전에 공간을 가로질러 오는 블레스트 스피어에 기겁성에 터뜨리는 카르티온.

퍼억!

쿠에에에에에엑!

퍼버벅!

육중한 타격음과 함께 앞서 날고 있던 다섯 마리의 와이번이 비명을 지르며 지상으로 처박히는 모습이 보였다.

"모두 퇴각하라!"

수적으로 우세하지만 이미 적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공포에 젖은 카르티온.

쉬이익.

퍼억!

그것이 세상에서 마지막 뱉은 말의 전부였다.

재수없게 와이번 대신 가슴 깊숙이 처박히는 블레스트 스피어.

에어 플레이트를 깊숙이 관통하고 파르르 떨고 있는 스피어의 창끝.

그것을 끝으로 백작의 눈은 더 이상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

'말도 안 돼.....'

카이어 백작 뒤에서 날아가면서 모든 것을 보고 있던 로시아테.

20마리 정도 되는 적 와이번이 나타날 때만 해도 경고를 어기고 도와줘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사거리를 벗어났건만 카이어와 그 휘하 스카이나이트들이 스피어를 날리는 모습이 보였다.

스카이나이트들의 상식에 어긋나는 행동에 어이없는 시선으로 보고 있을 때.

로시아테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고 말았다.

대륙에 알려진 블레스트 스피어의 속도에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속도로 공간을 가로질러 가는 스피어.

특별한 유도 장치도 없건만 순식간에 와이번 다섯 마리를 격추시켜 버렸다.

그것뿐만 아니었다.

놀라는 사이, 적의 반격을 대비하지 않고 바로 2번째의 스피어를 날리는 그들.

아니, 카이어는 양손으로 스피어를 날리는 여유까지 보였다.

카아아아아아아악.

쿠아아아아아아악.

연달아 들려오는 와이번들의 비명.

그것이 끝이었다.

도망치기 위하여 포물선을 그리는 적 와이번들의 근접거리로 다가가 스피어를 날리는 카이어.

순식간에 20마리의 와이번이 지상에 추락하며 눈밭을 굴렀다.

쉬이이이익.

그 순간, 추락한 와이번 곁에 내려선 카이어와 스카이나이트들.

급히 병을 들고 와이번 몸에 박힌 스피어를 회수하며 그 자리에 성수를 부었다.

그리고 마법을 펼쳤다.

'도대체 이게 뭐란 말인가.'

엄청나게 짧은 순간에 벌어진 일들.

어느새 20마리 와이번을 재워 버린 카이어가 스카이나이트들과 함께 이륙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하늘을 비상하며 날아갔다.

'카이어, 당신의 정체는 뭔가요?'

그제야 생각이 났다.

하비스 왕국 귀족가 와이번들 250마리가 단 한 번의 전투로 궤멸되었다는 사실을.

쉬이이이이잉.

로시아테의 마음속의 의문을 전혀 모르는 차가운 겨울바람, 카조프네.

카이어를 뜨겁게 바라보는 로시아테를 훑고 사라져 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