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1장 음차원의 마나를 마시다
"끄응....."
'여기가 어디야?'
드래고니아가 분명한 꼬맹이를 따라 제단 밑으로 몸을 던졌건만 온몸이 무언가에 두들겨 맞은 것 같은 고통에 눈을 떴다.
'뭐야, 이곳은?'
분명 피라미드 지하로 몸을 날렸기에 피라미드 안이라 생각했건만, 지금 내가 누워 있는 곳은 지하로 보이는 거대한 동굴 안.
천장에 박혀 있는 빛을 발하는 보석 덕분에 희미하게 동굴 안이 보였다.
'꼬맹이를 찾아야 한다!'
한가하게 동굴을 살필 수 없기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컥!"
하지만 일어나는 순간 온몸의 뼈다귀가 부서질 듯 고통을 호소했다.
한 발자국만 더 움직이면 스스로 자폭해 버리겠다는 협박.
"에, 에어 플레이트가 왜 이래?"
도대체 블랙홀 같은 구멍 속에서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모르지만 걷기에 불편할 정도로 에어 플레이트가 우그러져 있었다.
오우거가 쇠방망이로 제대로 후려친 것 같은 형상.
딸깍.
망가진 플레이트를 벗었다.
"일단 마법으로....."
플레이트를 벗어 던지고 힐 마법이라도 펼쳐 상처를 치유하려는 순간, 갑자기 섬뜩한 공포가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어, 없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마나가 사라졌다!!!!!!!!!!!!"
그러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정력을 주체 못하는 변강쇠처럼 마나홀을 따라 흐르던 마나가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마나가 사라지다니!'
남자가 여자에게 명품을 안겨주고 계산을 하다가 카드 한도 초과라는 여직원의 친절한 설명에 개쪽당하는 기분이 이런 것이던가.
마나뿐만이 아니라 마나 서클과 홀도 사라져 버렸다.
언제 마나를 알았냐는 듯 온몸은 비어버린 사과 박스처럼 변해 있었다.
'여기는 도대체 어디란 말인가!'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았건만 까마득히 높아서인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검도 없고, 마나도 없다. 그리고 이곳의 정체도 모른다. 크윽, 씨이, 내 이럴 줄 알았어'
오늘의 표어 선정에도 문제가 있었다.
하필이면 깡이라는 표어.
정말 깡다구로 벼텨야 할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꼬맹이와 흑마법사는 어디로 간 것이야?'
같은 곳에 떨어지지 않았음이 확실했다.
만약 같은 곳에 놈들과 내가 있었다면 그들이 나를 살려두지 않았을 것이다.
'말로만 듣던 드래곤 레어처럼... 헐? 설마 드래곤 레어?'
동굴을 살피던 중에 무의식적으로 드래곤 레어를 생각하던 나는 설마하는 생각에 사방을 살폈다.
'인공적인 흔적이 남아 있다.'
연한 빛 속에서 보이는 인공적인 흔적들.
다 자란 드래곤의 크기가 수백 미터에 달했다는 거짓말투성이 역사책 속의 드래곤.
살펴보니 사방 모든 곳이 딱 드래곤이 놀기 좋은 사이즈였다.
'그러고 보니 꼬맹이가 드래곤의 후손인 드래고니아잖아!'
딱딱 들어맞았다.
드래곤이 인간 후손을 위하여 무언가 준비해 줄 수도 있는 문제.
마음이 갑자기 바빠졌다.
꼬맹이도 문제였지만 사악한 흑마법사의 등장이 더 큰일이었다.
그리고 이대로 있을 수 없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밥을 먹어야 한다는 가문의 가르침.
삐그덕거리는 몸을 이끌고 동굴 속을 천천히 걸어갔다.
'드래곤 레어라면 가디언도 있는 거 아냐?'
과거부터 난공불락의 요새로 취급받는 드래곤.
겁대가리 상실한 마법사들과 인간 전사들이 드래곤에게 도전했다가 가디언들에게 박살나서 가디언의 똥이 되었다는 아름다운(?) 전설 같은 이야기는 역사서 곳곳에 기록되어 있었다.
파스스.
그 순간 등 뒤에서 느껴지는 으스스한 기운.
'빌어먹을!'
재수없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뒤통수 말고 코도 옵션으로 깨진다고 누가 그랬던가.
하필이면 가디언을 생각하는 순간, 등 뒤에서 살벌한 기운이 느껴졌다.
꿀꺽.
나도 모르게 넘어가는 마른침.
마나도 없고 검조차 없는 맨몸으로 무적이라 불리는 드래곤 가디언과 맞부딪친다면 결과는... 상상할 것도 없었다.
그냥 게임 오버였고, 요단 강을 총알택시 타고 건너게 될 것이 자명했다.
스으스으.
'더러운 놈! 죽이려면 빨리 죽이르 것이지, 왜 목에다가 숨을 뱉고 지랄이야!'
독한 놈을 만난 것 같았다.
깔끔하게 한칼에 보내는 것이 아니라 내 목에 이빨을 쑤셔박고 피를 쪽 빨아 몸보신하고, 뼈다귀는 푹 삶아 사골국을 해 먹을 것 같은 놈.
악질 중의 최고 악질 가디언일 것이다.
'썅! 그래, 죽기 전에 네놈 얼굴이라도 한 번 보자. 나중에 지옥 오면 똥침 백배로 복수해 주마!'
결코 천당 갈 마음도 없고, 그런 복도 쌓지 않은 나였기에 일찌감치 지옥행 표를 끊었다.
독하게 마음먹었다.
사나이 죽더라도 깡! 하고 소리치고 죽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나, 둘, 셋!'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고 힘껏 등을 돌렸다.
"야! 이 새끼....."
"까아아아아아아악!"
야, 이 새끼야! 하고 부르려는 순간, 나보다 먼저 찢어지는 고음을 뱉어내는 비명 소리.
'으아악, 이건 또 뭐야!!!!!'
이빨이 삐죽하게 튀어나오거나, 대갈통을 한 방에 날릴 쇠몽둥이를 든 오우거를 생각했건만 내 눈앞에 나타난 물체.
'여, 여자?'
놀랍게도 내 눈앞에 나타난 물체는 여자, 그것도 알 수 없는 문양이 새겨진 고풍스러운 황금 옷을 착용한 금발의 여인.
'왜? 이런 곳에 여자가?'
사방을 둘러보아도 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는 슬라임조차도 살 수 없는 곳.
그런데 여자가 있었다.
놀라 소리쳤지만, 그 순간에도 잃지 않는 고귀한 미모.
'황금 눈동자?'
거기에다 특이하게 진한 금발에 눈동자가 황금색이었다.
"누구세요?"
무의식중에 튀어나온 누구냐는 말.
".....?"
내 물음에 입을 다물고 신비한 황금색 눈동자를 깜빡이는 여인.
'백치?'
순간 떠오르는 단어는 백치 아다다.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았다.
희로애락 같은 인간의 감정이 섞여 있지 않는 여인의 눈동자.
"말 못해요?"
입을 가리키며 말을 못하느냐 물었다.
대답 대신 깜빡깜빡 큰 눈을 떴다 감았다 하는 여인.
'넌 도대체 누구니?'
다행스럽게 흉포한 가디언이 아니라 아리따운 금안의 여인이었기에 안심이 되었지만, 의문도 동시에 들었다.
콰아아아아앙!
"헉!"
그때, 갑자기 저 멀리서 들려오는 폭발음.
쉭.
갑자기 아무 말도 없이 황금 머리칼을 날리며 사라지는 여인.
잡을 수 없었다.
헤이스트 마법이라도 발휘하는 양, 엄청난 속도로 달려가는 여인.
"가, 같이 가요!!!!!"
타다다닥.
사라지는 여인은 최신형 스포츠카라면, 마나도 없는 지금 내 신세는 딱 세발자전거 수준.
오랜만에 발바닥 땀나도록 여인의 뒤를 쫓았다.
본능은 말해주고 있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오직, 스피드뿐이라고.
★★★★★★★★★★★★★★★★★★★★★
"헉헉....."
얼마나 전력 질주로 달렸는지 몰랐다.
황금 눈동자의 여인을 쫓아 달렸건만 어느 순간 여인은 사라졌고, 거의 2킬로 전력 질주로 달린 내 몸은 고장난 기차처럼 헉헉대며 숨을 뿜어내기 바빴다.
'여기는 또 어디야?'
무작정 달리다 보니 갑자기 나타난 석조 건물.
동굴 안에 놀랍게도 고대 건축 양식의 석조 건물이 떡하니 나타나 있었다.
위이잉, 위이잉.
그리고 건물 안에서 마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차갑고 시린 음차원의 마나.
흑마법사라면 눈을 뒤집고 흡수하고 싶은 순수한 음차원의 마나가 석조 건물 전체를 휘감고 있었다.
스륵스륵.
'엥?'
그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격하게 숨을 들이켜자 구름처럼 떠다니던 음창원의 마나가 숨결을 따라 내 몸 안에 쌓이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조화야!!!'
몸 안에 존재하던 마나가 사라진 것을 노리기라도 한 듯, 몸 안에 쌓이는 음차원의 마나.
"후우후우....."
마나가 흡수되자 떨리던 몸이 진정되었다.
어차피 양의 마나나 음의 마나나 둘 다 마나인 것은 사실.
더군다나 내 마나 호흡법은 천지간의 모든 것을 흡수할 수 있는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마나 호흡법.
숨결을 따라 음차원의 마나가 쌓이자 기분이 상쾌해져 갔다.
마약 중독자가 이래서 마약을 끊지 못할 것이라 생각이 들정도로 온몸에 퍼지는 상쾌한 마나의 기운.
위이잉.
'마, 마나 서클이 돌아온다!'
놀랍게도 음차원의 마나가 축적되더니 어느새 1서클의 마나홀을 형성했다.
보고도 믿지 못할 현실.
저벅.
더 강렬한 음차원의 마나를 흡수하기 위하여 나도 모르게 음차원의 마나가 꿈틀거리는 곳으로 움직였다.
"하아....."
환희가 밀려왔다.
숨을 들이켤수록 더욱더 농밀하게 축적되는 음차원의 마나.
휘리리리링.
2서클의 마나홀이 허리 부근에서 맴돌더니 많은 양의 마나가 밀려들어 왔다.
저벅저벅.
나도 모르게 마나에 취해 한 걸음 더 음차원의 마나가 꿈틀거리는 석조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파삭.
밑바닥 밑으로 깨져 있는 파편을 밟고 들어선 거대한 석조 건물.
"후우후우....."
마나의 숨결에 취해 정신이 몽롱했다.
처음으로 경험해 보는 마나 회복.
건물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3서클의 마나가 어느새 활성화 되고 있었다.
이전에는 결코 경험해 보지 못한 차갑고 시원한 음차원의 마나.
저벅저벅.
휘리리리리리링.
멈추지 않는 걸음.
속삭이고 있었다.
저 깊은 곳에서 어서 오라고 마나가 나를 유혹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