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세기 대마법사-98화 (98/221)

제98장 전운

"이런 쳐 죽일 놈들!!!!!!!!!!"

도로 공사가 마무리되었다.

아직 다 양생되지 않았지만 목표한 곳까지 완성이 되었기에 엘프들은 마을로 돌아갔다.

겨울에는 엘프들도 휴식을 취한다 하였기에 붙잡을 수 없었다.

그리고 돌아온 집무실.

루미카르를 통하여 하비스 왕국 로시아테로부터 한 통의 편지가 배달되어 있었다.

앞으로 삼 일 후, 하비스 왕국의 귀족과 기사들이 국경을 넘어 공격해 온다는 이야기.

미안하다 하였다.

"성기사들까지 온다, 이거지."

약 200마리 이상의 와이번과 기사단 수천 명, 보병 5만 정도가 예상된다 하였다.

그 인원에는 네르안님을 모시는 성기사들과 사제들도 포함되어 있다고 하였다.

"어차피 치를 전쟁이라면 결코 사양하지 않겠다."

아직도 네루만 영지는 안정화되어 있지 않았다.

몬스터들이 곳곳에서 도발해 왔고, 테미르 놈들이 요즘 부쩍 북부 영지 쪽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보고도 있었다.

그러나 적이 그런 내 입장까지 생각해 줄 리가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네놈들의 눈에서 피눈물 나게 만들어줄 것이다."

쉽지 않은 전쟁이 될 것이었다.

절대적으로 열세인 전력 차.

와이번 200마리가 한꺼번에 공격해 온다면 적지 않은 피해를 입을 것이 분명했다.

"밖에 아무도 없는가!"

"주군, 하명하십시오!"

"속히 데르발 경을 비롯한 주요 기사들을 모조리 소집하도록. 오라크 성의 샤일트 경도 오라 전하라!"

"명!"

기사의 힘찬 외침이 집무실 안을 맴돌았다.

그리고 나는 시선을 돌려 네루만 전도를 보았다.

나의 꿈, 나의 희망, 나의 모든 삶이 담겨 있는 한 장의 지도.

결코 그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나의 자존심이었다.

★★★★★★★★★★★★★★★★★★★★★

키오오오오오오오!

쿠그그그그그그그!

"정말 엄청난 위용입니다. 이렇게 많은 숫자의 와이번을 내 생전에 볼 수 있다니."

"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정말 대단한 전력입니다."

하비스 왕국의 썩어빠진 귀족들이 감탄사를 연발하였다.

네루만 영지를 지척에 두고 있는 카발론 백작성 앞의 공터는 200마리가 넘는 와이번과 수천 필의 군마, 그리고 5만에 이르는 병사들로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가히 하비스 왕국 총 전력의 2분지 1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전력이었다.

"네루만 놈들은 아직도 모르고 있나 봅니다."

"크크, 알 턱이 없지요. 얼마 전에 몬스터들이 난리를 치는 바람에 요새 하나가 반쯤 부서졌다고 합니다."

"그래도 생각보다 제법 잘 버티고 있습니다. 지금쯤이면 오크의 식량이 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카발론 백작성의 연회장.

네루만 토벌을 위하여 모여든 하비스 왕국의 귀족들이 시끄럽게 침을 튀겨가며 삼 일 후에 벌어질 출병의 긴장감을 풀고 있었다.

"사제님들과 성기사님들이 오셔서 얼마나 든든한지 모르겠습니다."

"네르안님의 이름을 더럽힌 악인을 처벌하는 일에 한 팔을 거들 뿐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상석에 앉아 있는 이번 징벌군의 책임자인 한스케인.

그는 성기사와 사제들을 이끌고 참석한 다테리안이라는 사제와 대화를 나누었다.

'이번 기회에 덴포스까지 쓸어버려야지. 올해 대풍을 이뤘다고 하던데. 흐흐흐.'

상인들을 통하여 알려진 올해 네루만의 대풍 소식.

하비스 왕국도 맑은 날씨 덕분에 오랜만에 풍작을 이뤘지만 네루만보다 못하다 하였다.

놀랍게도 네루만에서 생산된 곡식들은 다른 곳보다 두 배 이상 많은 열매를 맺었다고 한다.

'드워프 물건들도 제법 될 거고, 와입언 방어구나... 흐흐, 노예들도 제법 될 거란 말이야.'

아직 전쟁이 시작되지도 않았건만 벌써 승리의 결과물을 생각하는 한스케인.

아무리 네루만의 영주가 무적이라 소문났지만 이만한 전력을 홀로 어찌할 수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 정도 전력이라면 제국과도 단기전을 치를 수 있을 정도였다.

"다시 부탁드리는 바이지만, 아르미스 사제를 찾으면 꼭 저희들에게 알려주셔야 합니다. 다른 일체의 것들은 간섭하지 않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르미스라는 사제를 찾으면 곧바로 신의 품으로 돌려드리겠습니다."

성기사들의 숫자가 물경 1,000명에 가까웠다.

거기에 치료의 은사를 행할 수 있는 사제들이 수십 명.

성전이 아니라면 끼어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유르한스 백작은 어디로 간 거야?'

카발론 영주성에 하비스 왕국의 중요 귀족들이 모였건만 얼굴도 비추지 않는 백작 유르한스.

집사에게 듣기로 병환이 심하여 밖으로 나올 수 없을 정도라 하였다.

'이번 일만 잘 마무리된다면 내 입지는 더욱 공고히 될 것이다. 그리고 잘만 하면 공왕까지.....'

생각만 해도 짜릿했다.

아무리 하비스 왕국을 좌지우지하는 공작의 신분이라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개 귀족일 뿐이었다.

그러나 라비테르 제국에 왕국을 헌납한다면 공왕의 위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아니, 그냥 제국의 후작위라도 받으면 대성공이었다.

"모두들 한잡 듭시다. 이렇게 모인 것도 오랜만인데."

짜릿한 기분에 잔을 들고 술을 청하는 한스케인.

"잔을 듭시다!"

"하하하."

하비스의 탐쵹스러운 돼지들이 잔을 높이 들었다.

이 전쟁이 끝나고 떨어질 빵 부스러기를 얼마나 자신의 것으로 만들 것이냐를 즐거이 상상하면서.

★★★★★★★★★★★★★★★★★★★★★

"전방에 있는 백성들을 모두 덴포스 성으로 소개한다. 동시에 각 요새에 저장되어 있는 식량 또한 덴포스로 이동시킨다. 이는 신속하게 즉시 처리해야 할 일이다."

"명!"

중요 기사들이 모두 소집되었다.

하비스 왕국의 잡것들이 국경에 밀집해 있다는 말에 이를가는 기사들.

이들의 눈에서는 살기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다들 알겠지만 이번 전쟁으로 네루만의 운명이 결판 지어질 것이다. 지금까지 쌓아온 우리의 땀과 피가 하루아침의 이슬처럼 사라질 수 있음을 명심하도록!"

"명!"

내 피와 땀만이 아니었다.

이곳에 있는 기사들이 지난 일 년 동안 이룩해 온 위대한 업적.

"주군, 그런데 어찌 적을 섬멸하실 생각이십니까? 전면전이 아니시라면 덴포스에서 항전을 어떻겠는지요? 겨울이 짚어지면 놈들도 퇴각할 것이 분명합니다."

네루만의 특성을 잘 알고 있는 제니스 남작이 항전을 제안했다.

"무슨 소리! 주군, 전면전을 치르셔야 합니다! 그까짓 오합지졸 때문에 안마당까지 내준다면 병사들과 백성들의 사기는 말이 아닐 것입니다. 제가 선두에 서겠습니다!"

열혈남아 라이케르가 전면전을 주장했다.

그러나 용병일과 군에서 잔뼈가 굵은 세들리안과 샤일트 경은 입을 다물고 있었다.

"제군들."

"....."

내 말에 모두 나를 바라보는 기사들.

"난 영주가 되면서 맹세하였다. 내 땅에 내 허락 없이 단 한 발자국이라도 들여놓는 자는 피로써 그 대가를 치르게 하겠노라고 말이다."

나를 건들지 않으면 그만이었지 시비를 걸어오는 자들.

멍청하게 얻어맞고 살지는 않을 것이었다.

"우선 적들은 깊숙이 끌어들이낙. 가데인 성 앞까지 끌어들인 후, 놈들에게 지옥을 선사할 것이다. 그러니 경들은 내 명령을 충실히 따라주도록!"

"명!!!!!!"

남들이 생각하면 불가능이라 말하겠지만 나를 믿고 승리의 확고한 눈빛을 보이는 기사들.

"자, 그럼 본격적으로 작전을 하달하겠다. 샤일트 경은 지금처럼 오라크 성에서 테미르 놈들을 견제하라. 그리고 내 명령이 떨어지면 지체없이 내가 지정한 곳으로 이동하면 된다."

"추웅!"

"다음 라이케르 경과 제니스 경은 휘하 편대를 이끌고 시아리스 요새로 향해 있으라. 그리고 쥐 죽은 듯이 있다 해 명령이 떨어지면 샤잁 경처럼 즉시 내가 지시한 지점으로 이동하면 된다."

"충!"

"세들리안 경이 이번에 나를 많이 도와줘야 할 것 같소."

"영광이옵니다, 주군."

용병일을 하는 동안 수많은 전쟁을 치러봤을 세들리안.

"이번 전쟁의 승패는 어떻게 빨리 적을 안으로 끌어들여야 하느냐가 관건이오. 동시에 흩어진 적들을 각개격파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오. 그렇게 승리를 취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장점인 속도전과 지형지물의 이용이 완벽하게 이뤄져야 할 것이오. 세들리안 경, 휘하의 기마병은 모두 정예화되어 있소?"

"명만 내려주십시오! 그 어떤 적도 박살 낼 자신이 있습니다."

"좋소! 휘하의 기마병을 가데인 성으로 보내시오."

"충!"

"데르발 경."'

"하명하십시오, 주군."

"마차를 급히 개조하시오. 마차 양옆으로 병사들이 앉을 수 있도록 오크 가죽으로 자리를 만드시오."

"알겠사옵니다, 주군."

"그리고 덴포스 수비병 중에서 궁수들을 중심으로 가데인 성에 배치하시오."

"명을 받드옵니다."

어젯밤부터 생각했던 전략들을 쏟아냈다.

아직 기사들에게 밝히지 않았지만 이번 전투는 모두의 기억에 남을 것이다.

"병사들에게 오늘은 술과 음식을 푸짐하게 내리시오. 내일부터는 휴식 따위는 없을 것이니."

"명!"

'준비는 끝났다. 요새를 건축하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이번 전투는 이것만으로 승리한다.'

하비스 왕국군 따위를 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적어도 바즈란과 라비테르 제국 정도 되어야 나의 적이라 할 만했다.

"그럼 모두 해산하시오."

"추웅!"

해산 명령에 충을 힘차게 외치며 군례를 올리는 기사들.

보는 것만으로도 듬직했다.

어디 가서 돈으로 사 올 수 없는 절대충성자들.

내가 간진 가장 큰 재산이었다.

★★★★★★★★★★★★★★★★★★★★★

"다 완성되었습니까?"

"물론이지. 벌써 스무 대나 생산했지."

"대단하십니다. 역시 루할루메르 일족은 드워프들 중에서 제일가는 장인이십니다."

"큼큼, 뭐, 그렇다고도 할 수 있지."

'스무 대라... 좋았어.'

와이번을 사냥할 수 있는 대형 석궁.

가데인 성벽에 장착하는 순간, 적들은 공포를 뼈저리게 맛볼 것이었다.

"그런데 무슨 일 있는가? 자네, 안색이 별로야."

세월을 거저 산 것이 아님을 보여주듯 내 안색을 보고 일을 짐작하는 카시아르스 족장.

"며칠 내로 전쟁이 일어날 것 같습니다."

"전쟁! 오오오! 그게 정말인가?"

"네."

"하하하, 고맙네. 안 그래도 심심했는데 일거리를 만들어줘서. 자랑은 아니지만 우리 일족이 전쟁하면 또 한 전쟁한다네. 말이고 기사고 간에 두툼한 쇠도끼로 내려치면 한 방에 쩍하고 머리통이 갈라진다네!"

"이번에는 참으십시오."

말투를 들어보건대, 전쟁에 참여하려는 족장 카시아르스.

"아니, 자네, 내가 늙었다고 무시하는가? 아니면 우리 일족이 짧은 다리로 말을 못 탄다고 구박하는 것이야!"

펄펄 뛰며 고함을 치며 흥분하는 카시아르스.

마음은 고마웠지만 이번엔 아니었다.

"드워프 일족은 이번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숨겨진 정예병입니다. 처음부터 나서시면 적들이 꽁지를 말고 도망갈까 봐 말씀을 드리지 않았습니다."

"오오! 그런가? 그럼 그렇지. 자네도 알다시피 우리 일족들은 후퇴를 몰라! 그냥, 적이 있으면 달려가서 한 방에 대가리를 쪼개고 전진만을 할 뿐이지. 흐흐흐, 아직 인간들 사이에서 우리 일족의 신화가 사리지지 않은 것 같군."

쉽게 흥분하지만 또한 쉽게 가라앉는 드워프들.

그들의 순수한 마음에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래서 드리는 부탁인데, 대형 석궁과 화살 좀 많이 만들어주십시오. 이번에 일만 잘 풀리면 제가 한 턱 거하게 쏘겠습니다."

"거하게? 뭐를?"

"지하 창고에서 맥주가 아주 죽여주게 숙성되고 있습니다. 이번에 수확한 밀로 만들어서 상큼하고 톡톡 튀는 맛이 예술일 것입니다."

"사, 상큼하고 톡톡....."

맥주라는 말만 나오면 마법에 걸리는 드워프.

"걱정 말게. 이 안에서 석궁하고 화살을 죽어라 만들 터이니 어서 일을 마치고 오게."

"족장님만 믿겠습니다."

"그럼, 나만 믿게. 자네는 우리 일족의 친구가 아닌다! 크하하하하하."

동굴 안을 기분 좋게 울리는 카시아르스의 웃음.

"그럼요. 우리는 친구 아닙니까. 하하하하하."

그를 따라 나도 웃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대박 복을 받은 놈이 분명했다.

★★★★★★★★★★★★★★★★★★★★★

"행군하라!!"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척척척척!

행군 명령이 마나를 통하여 대기하고 있던 전군에 하달되었다.

그리고 힘찬 발걸음으로 행군을 시작하는 5만 대군.

히이이이이잉!

수천 기의 말에 올라탄 기사들도 천천히 말을 움직였다.

쿠우우우우우우우우!

카우우우우우우우우!

그런 병사들의 머리 위로 날개를 활짝 펴고 공격 대형으로 하늘을 비상하는 200마리의 와이번.

장관이었다.

집채만 한 와이번 200마리가 바람을 맞으며 질서정연하게 하늘을 비행하는 모습은 보는 이의 심장을 멈추게 할 정도로 대단한 정경이었다.

거기에 순백의 플레이트 메일을 착용한 천여 명의 성기사.

망토에 수놓아진 둥그런 원안에 그려진 황금 십자가는 정경에 더해지는 성스러움, 그 자체였다.

'카이어라고 했지? 어디 한번 재주를 부려보거라. 네놈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나를 막아보거라! 크크크크.'

자신의 와이번을 타고 하늘에서 모든 광경을 내려다보고 있던 한스케인 공작.

음침한 미소를 흘리며 북쪽 하늘을 보았다.

이제 잠시 후면 넘게 될 네루만 국경.

하비스 왕국 근 백 년 역사상 처음으로 넘는 타국의 국경이었다.

척척척척!

히이이이이이잉!

하늘까지 울리는 병사들의 힘찬 발걸음.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앞으로 그들을 위해 펼쳐질 뜨거운 지옥길을.

★★★★★★★★★★★★★★★★★★★★★

"외할아버지, 오랜만입니다."

"이제야 문안 인사드리옵니다, 공주님....."

하비스 왕가의 마지막 남은 충신이라 할 수 있는 사피드안 공작.

세월을 속일 수 없는 검버섯이 얼굴 가득 핀 노인.

개인적으로는 로시아테의 외할아버지가 되는 인물이었다.

"몸은 좀 어떠신지요?"

"이제 곧 신의 품으로 갈 제 몸뚱이가 무어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다만... 우리 공주님이 당하실....."

차마 말을 못하고 입술을 깨무는 사피드안 공작.

공작가라고는 하지만 가진 거라고는 늙고 병든 와이번 십여 마리와 사병 2,000명뿐.

백작가만도 못한 전력으로는 왕실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하나뿐인 외손녀가 귀족들의 시달림을 받으며 힘들게 살아가고 있음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부탁이 있어 이렇게 불렀습니다, 외할아버지."

평소와 다른 차분한 로시아테의 목소리에 이상함을 깨닫고 눈을 들어 공주를 바라보는 사피드안.

'오! 우리 로시아테에게서 국왕의 위엄이 보이는구나!'

근 일 년 만에 보는 로시아테였다.

와병을 핑계로 난장판이 되어버린 귀족회의에 전혀 참석하지 않았다.

자신의 힘으로 도와주지 못하였기에 차라리 그 꼴을 보지 않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일 년 만에 보는 외손녀가 변해 있었다.

북부 대륙의 꽃이라 불리는 아름다움은 여전했지만 풍겨나오는 기세는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말씀하십시오, 공주님."

위엄에 저절로 고개를 숙이는 사피드안.

"이제 때가 된 것 같습니다."

".....?"

때라는 말에 놀라는 공작.

"잃어버린 왕실의 위엄을 되찾고 간악무도한 죄인들을 왕실의 이름으로 처단할 때가 왔습니다."

"허억....."

거침없이 왕실의 위엄을 논하는 로시아테의 말에 사피드안은 신음을 흘렸다.

그 얼마나 학수고대하던 말이던가.

"하지만 공주님, 놈들의 힘은 강하지 그지없습니다. 잘못하시다가는 왕실의 안녕도 장담하지 못할 것입니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는 것을 외할아버지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확신합니다. 배덕자들이 왕국을 떠난 지금이 다시 올 수 없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신념에 가득 찬 로시아테의 말에 두근두근 심장이 요동치는 것을 느끼는 늙은 공작.

"소신이 무엇을 도와드리며누 되는 것이옵니까! 하명만 하시옵소서! 목숨 바쳐 왕실의 위엄을 되찾겠나이다!!!!"'

쩌렁쩌렁 고위 귀족들이 떠난 왕실 회의장을 울리는 공작의 목소리.

세월 따위는 잊어버리고 어느새 젊은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충성을 맹약한 근위기사들과 아직 하비스 왕실의 이름 안에서 살아가는 귀족들과 함께 여기 적혀 있는 자들의 가문 사람들을 모조리 끌고 오십시오."

스윽.

회의장 책상 위로 올리는 두툼한 인명부.

또로록.

인명부가 올려지자 눈물을 흘리는 로시아테.

"제가 직접 기록한 왕국의 추접한 자들의 이름입니다. 아바마마를 괴롭히고... 어마마마를 운명케 한 죽일 놈들의 이름입니다....."

이를 악물고 눈물을 뚝뚝 떨구는 로시아테.

"충! 소신... 목숨으로 명을 받드옵니다!!!"

하비스 왕국군이 네루만 영지의 국경을 넘은 지 이틀째 되던 날, 네루만에서 날아온 한 통의 편지에 로시아테는 공주는 그동안 감추었던 분노의 검을 빼어 들었다.

수백 년 동안 왕국을 갉아먹었던 버러지들의 숙청.

한판의 거대한 도박판이 펼쳐지고 있었다.

승리한 자가 모든 것을 차지하는 승자 독식의 냉엄한 승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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