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세기 대마법사-72화 (72/221)

제72장 수인족

'허억! 저, 저게 뭐야?'

도착과 동시에 펼쳐진 6서클 마법.

달려가 막기에는 이미 늦어버렸기에 동굴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6서클 마법에서도 살아남은 이들이 동굴 밖으로 걸어나왔다.

아직도 마법 불길의 기운이 남아 있건만 일그러진 표정을 지으며 밖으로 나온 이들.

'수인족!'

놀랍게도 이미 멸족한 것으로 알려진 수인족이었다.

평소에는 인간과 거의 흡사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지만 전투 시에는 온몸이 털로 뒤덮이며 강철 같은 기다란 손톱을 드러내는 수인족.

유사인종 중에 가장 강력한 전투 능력을 소유한 이들이 바로 수인족이었다.

천 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그들이 사람들 앞에 다시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마법사? 수인족이?'

더울 놀랄 일은 6서클 마법을 방어하기 위하여 펼쳐 낸 마법들.

인간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보이는 다섯 마리, 아니, 다섯 명의 수인족은 다들 마법사로 보였다.

'하아, 저들이 아이달 마탑의 마법사?'

믿고 싶지 않았지만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상상.

길게 한숨이 나왔다.

"이런, 수인족이 아직 살아 있었다니! 하하하. 이거 오늘 횡재했는데?"

"항복하라! 움직이는 자들은 모두 참살하겠다!"

'저 자식은 뭐야?'

고품격 미스릴 갑옷을 착용하고 패션 감각이 떨어지는 황금 망토를 두른 어린놈의 새끼.

부모가 황금을 좋아하는지 머리칼도 황금빛이었다.

그런 귀티나는 놈을 보호하고 있는 기사들.

예사 실력자들이 아니었다.

마스터 급은 아니더라도 강맹한 마나를 풍겨내는 자들.

'6서클 마법사에 근위기사급 실력자들의 보호를 받는 골드 와이번의 소유자라.... 저 자식, 라비테르 제국 황실 인물이야?'

여러 가지 정황으로 놈을 짐작해 보았다.

"인간들... 죽인다...."

고양이 같은 꼬리가 달린 수인족들.

그중 가운데 서 있던 2미터 크기의 수인족이 살기 깃든 음성을 뱉어냈다.

"전하를 보호하라!"

'전하?'

수인족들이 살기를 풍겨내자 마법사가 기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쉬이이이이익.

퍼버버벅.

그리고 하늘을 날고 있던 스카이나이트들이 지상 가까이 비행하며 수인족 앞에 스피어를 던졌다.

무언의 경고.

수인족들이 전투 종족이긴 했지만 상황은 절대 불리했다.

"꿇어라! 난 대 라비테르 제국의 황자 알스케인이다. 무릎을 꿇고 나를 맞이한다면 너희들의 목숨을 살려줄 것이다!"

라비테르 제국의 황자라 밝힌 금발의 애송이.

오만한 얼굴에는 이미 승리를 맛본 자의 여유가 넘쳐흘렀다.

"크아앙!"

파앗!

그때 성난 호랑이 울음소리를 내며 몸을 날리는 수인족들.

"이놈들!"

"어디서!"

기다렸다는 듯이 마주쳐 가는 다섯 명의 기사들.

'와우! 서커스단도 아니고!'

놀라운 움직임이었다.

전설 속에 전투 괴물로 등장하는 수인족의 명성을 확인할 수 있는 광경.

점프를 하는 순간 거의 3미터 정도 튀어 올랐고 날아가는 속도는 화살과 비견될 정도였다.

"홀드!"

기다렸다는 듯이 수인족들을 향해 홀드 마법을 펼치는 두 마법사.

파아앗.

스포츠카처럼 달려가던 수인족들이 몸이 한순간 멈칫했다.

카가강.

그때를 놓치지 않고 블레이드가 담긴 검을 날려대는 기사들.

수인족들이 30센티 정도 되는 검정 손톱을 날려 결투를 벌였다.

카가가가가강.

차자자자자장.

불꽃이 튀었다.

놀랍게도 발달한 근육과 신경으로 기사들의 검에 맞서는 수인족들.

근위기사들이 분명한 이들에 밀리지 않고 손을 놀렸다.

'호오, 제법인데.'

처음에는 블레이드에 당할 줄 알았건만 손톱이 상당히 단단한 것 같았다.

기사들이 뿜어내는 블레이드를 보건대 어지간한 플레이트도 베어버릴 정도로 강렬하였건만 검은 손톱은 잘려 나가지 않았다.

쉬이이이이익.

퍼어억!

"크아아아아앙!"

그때 지상 10미터 위에서 날고 있던 스카이나이트가 던진 블레스트 스피어가 한 수인족의 등판을 꿰뚫었다.

"멈춰라! 움직이면 모두 죽이겠다!"

기사들의 전투였건만 비겁하게 등 뒤에서 공격을 퍼부은 라비테르 제국 놈들.

제국의 명예라 할 수 있는 근위기사라 하기에는 추접스러운 놈들이었다.

"크아앙!"

"크르르릉!"

동료가 중상을 입자 크르릉 소리를 내며 뒤로 물러나는 수인족들.

'인간 마법사는 아무도 없나?'

이 정도 상황이면 동굴 안에 살아 있는 자가 있다면 모두 나올 것이건만 더 이상의 인기척은 없었다.

★★★★★★★★★★★★★★★★★★★★★

"항복해라. 더 이상의 기회는 없다. 보아하니 대륙에 남아 있는 수인족은 너희들밖에 없는 것 같은데 멸족을 당하고 싶지 않으면 순순히 명령에 따르라."

"크르르르르르르릉."

부상당한 동료륻 받쳐 들고 으르렁거리는 수인족.

파바바박.

그들 앞으로 다시 위협적인 스피어가 깊숙이 박혔다.

추접스럽고 완벽한 올가미.

"....."

"오! 수인족에 대한 전설이 사실이었어! 평소에는 사람과 똑같다더니!"

'헐! 수인족이 구미호 계열이었어?'

황자라는 자식의 감탄사에 나도 따라 지를 뻔했다.

멸족이라는 말에 항복하기를 결심한 듯 투기를 풀어버리는 수인족.

갑자기 털들이 모두 사라지고 꼬리가 말아지며 손톱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등장한 다섯 명의 인간.

건장한 남자 세 명과 육감적인 몸매를 소유한 두 명의 암컷, 아니, 여인.

'크헉!'

더울 놀라운 것은 그들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19금이라는 것.

눈이 동그랗게 떠졌고, 코에서 쌍코피가 터질 뻔하였다.

아무리 수인족이라지만 지금 모습은 영락없이 인간과 같은 형태.

"전하, 경하드립니다. 천 년 만에 수인족을 사로잡으셨습니다."

"하하. 고맙소, 도르비트 경. 이번 일은 내 잊지 않겠소."

"아닙니다, 전하. 제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두 전하를 위하여 신이 내려주신 선물이 아닌가 하옵니다."

수인족이 포기를 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얼굴에 금칠하기 놀이를 하는 황자와 마법사.

등을 꿰뚫은 창 때문에 수인족 한 명이 피를 게워내며 죽기 일보 직전이건만 치료를 해줄 생각도 없어 보였다.

"계집과 수컷들은 따로 분리해서 묶어라."

"명!"

황자라는 자의 눈동자가 수인족 여인에게 향했다.

이제 갓 이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두 명의 수인족 여인.

환상적인 몸매였다.

남미쪽 여인들처럼 쭉쭉 빵빵 들어갈 데는 들어가고 나올데는 아낌없이 나온 육감적인 몸매.

친굳르이 가끔씩 보여주던 야한 서양 잡지 표지 모델들은 무수리로 보일 지경이었다.

꿀꺽.

나도 모르게 넘어가는 마른침.

부끄러움이 없었다.

인간들과 다른 관념을 가지고 사는 듯 성숙한 육체를 아낌없이 보이고 있었다.

다만 아랫도리만 가죽으로 만든 속옷을 착용하고 있었다.

마법 불길에도 용케 타지 않는 것으로 보아 마수 가죽 계열인 것 같았다.

'그런데 저놈들을 어찌 처리하지.'

베베토를 부르기에는 상황이 좋지 않았다.

혹시 모를 위험을 대비하느라 비행하며 경계 중인 와이번이 10여 마리.

그리고 지상에 있는 자들도 그리 만만히 볼 수 없는 실력자들.

내가 숨어 있는 숲에서 놈들이 있는 곳까지는 대략 20미터.

단숨에 도약해서 달려간다 하더라도 발각되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꿇어!"

퍼어억!

멸족이라는 말에 반항을 포기한 수인족을 향해 다가간 기사들.

황자를 향해 아직도 살기를 띠는 수인족들의 몸을 가차없이 발로 찼다.

"컥!"

찰칵찰칵

그리고 어느새 준비한 마나 제어 팔찌로 수인족의 손을 뒤에서 묶어버리는 근위기사들.

"전하, 안에 들어가서 나머지 잔당들이 없나 살피고 오겠습니다."

"나도 갈 것이오."

"아니 되옵니다. 소신이 기사들과 먼저 들어가서 살펴 안전이 확인된 뒤에 들어오시옵소서."

마법사가 강력하게 황자를 말렸다.

"알겠소. 그럼 빨리 다녀오시오."

'옳거니!'

놈들 처리 문제로 잠시 고민하고 있는 사이 마법사가 알아서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포르핀 경과 에드바인 경이 호위하시오."

"명!"

황실 근위기사들은 오직 황제와 황실 가족의 명령만 받았다.

황자의 명령에 힘차게 대답을 하며 두 명의 기사가 마법사의 옆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세 사람은 커다란 동굴 안으로 사라졌다.

"수인족 계집치고는 상당한 미모군. 쓸모가 많겠어."

'저런 마빡에 피도 안 마른 놈이!'

마법사가 사라지자 포박된 수인족 여인에게 다가가는 황자라는 놈.

입가에 음흉한 미소를 짓는 모습이 40대 변태 아저씨들이 고삐리들 치마를 보며 짓는 웃음과 아주 흡사했다.

'기회다!'

황자라는 놈이 수인족 계집에게 다가가자 기사들이 근접 호위를 풀었다.

마나 팔찌에 채워진 이상 반항할 여력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꼴에 기사라고 체통을 지키려는 것 같았다.

'가랏! 윈드 미사일!'

3서클 마법 정도는 이제 영창 없이 마음의 의지로 펼칠 수 있었다.

목표는 공터에서 졸고 있는 황금 닭대가리들.

파바바밧.

십여 개의 투명한 마법들이 소리없이 날아갔다.

퍼버버버버버버벅.

꾸에에에에에에에에엑!

카아아아아아아아악!

졸고 있다가 갑작스럽게 머리통에 적중된 마법에 땅이 떠나가라 비명을 지르는 와이번 열 마리.

팟!

모두의 시선이 와이번으로 향하는 순간 황자를 향해 바람같이 달렸다.

"암습이다!"

"헉!"

'늦었어, 굼벵이들아!'

마나 스텝으로 20미터 전력 질주로 달렸다.

아니, 날았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정도로 황자 옆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누가 어찌할 사이도 없이 황자의 하얀 목덜미에 자리 잡은 검.

위이이이잉.

블레이드를 새파랗게 먹은 검이 파르르 검끝을 떨었다.

"....."

얼음 땡 놀이를 하는 것도 아니건만 일순간 모두의 몸이 굳어버렸다.

황자와 불과 5미터 정도 떨어진 근위기사들과 마법사 한 명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 손에 들린 검과 나를 보고 있었다.

"하하, 안녕들 하쇼."

투구를 쓴 상태였기에 내 본모습을 알 수 없는 이들.

자유로운 왼손을 반갑게 흔들었다.

그러나 누구 하나 입을 여는 자들이 없었다.

지금 자신들이 보고 있는 장면이 무엇을 뜻하는지 파악하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다.

"저, 전하!"

기사들의 몸이 본능적으로 움직이려 하였다.

"웬만하면 그대로 있지? 이 잘나신 황자 머리통이 바닥에 구르는 걸 보고 싶지 않으면 말이야."

"크윽!"

기사들이 분노에 몸을 떨었다.

근위기사들은 다른 기사들과 달리 황실에 충성심이 높은 자들.

그런 기사들에게 머리통 운운하며 협박을 하는 내 모습은 악마로 보일 것이다.

"네, 네놈은 누구냐."

목에 거의 닿을락 말락 한 검을 보고 겁을 집어먹는 황자놈이 꼴에 자존심을 세웠다.

퍽!

나도 모르게 아구창을 향해 날아가는 주먹.

"전하!!!!!"

"컥!"

찢어지는 기사들의 애절한 비명과 황자의 비명.

"아직 분위기 파악을 잘 못한는 것 같은데, 좋은 말로 할 때 존댓말로 해라. 뒈지고 싶지 않으면 말이야. 흐흐흐."

'나도 싸이코 기질이 있나?'

당하는 입장에서는 결코 웃을 수 없는 살벌한 분위기였건만 악당처럼 음흉한 웃음을 터뜨리는 내 모습.

나도 놀랄 정도였다.

"그분이 어떤 분이신 줄 아느냐! 전하를 풀어주어라! 그러면 죄를 묻지 않겠다!"

마법사가 놀라 호통을 쳤다.

"어이, 마법사 양반. 내 머리 위에 있는 머리통이 돌로 보여? 썅, 장난해? 지금 내가 장난하는 거 같아?"

위이잉!

말과 함께 마나를 더 불어넣자 파랗게 타오르는 검.

모두들 입을 다물었다.

'이 자식들 놀고들 있네.'

동굴 안에 들어가 있던 기사들과 마법사의 기척이 감지되었다.

"어이! 거기 쥐새끼처럼 숨어 있지 말고 어서 기어나와! 안그러면 이 잘난 얼굴에 상처난다!":

동굴에 향해 경고를 날렸다.

"그리고 거기 스카이나이트들! 빨랑빨랑 안 기어 내려올래?"

마나를 돋워 기회를 엿보고 있는 스카이나이트들에게 힘껏 소리쳤다.

"며, 명령을 따르라. 어서!"

코피를 줄줄 흘리던 황자가 공포에 젖은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기사들 중에 한 놈은 수인족을 풀어줘라. 어이, 친구들 이걸로 상처를 치료해."

허리춤에 매달려 있는 수통에 담겨 있는 포션을 수인족 앞으로 던졌다.

'오! 누님, 제발 그것만은 가려주세요.'

갑작스런 상황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수인족.

그중에서 탄력적인 찌찌를 보이고 있는 여인들의 모습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기사들은 검을 버리고 일렬종대로 자리 잡는다! 실시!"

"....."

내가 내린 명령어 어쩔 줄 몰라 하는 기사들.

퍽!

"컥!"

그대로 황자의 얼굴을 또 주먹으로 갈겼다.

"어, 어서 명령대로 하라! 어서!"'

왼쪽 눈탱이를 부여잡고 악을 쓰는 황자.

곱게 자란 놈일수록 폭력에 약하다 누가 그랬던가.

오늘 같은 폭력과 위협은 머리털 나고 처음일 것이다.

차자작.

"그래, 이제 말귀를 알아듣네."

하늘 같은 황자의 명령에 어느새 일렬종대로 헤쳐 모인 기사들.

그중에 한 놈이 재빨리 수인족에게 달려가 마나 팔찌를 풀어주었다.

킹오오오오.

키우우우우.

하늘에서 스피어를 들고 망설이던 스카이나이트들도 서둘러 착륙하기 시작했다.

"동굴에 있는 마법사와 기사 놈들도 튀어나온다! 실시!"

타다다닥.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밖으로 달려나오는 세 사람.

"조금만 허튼수작하면 여기 계시는 황자가 이 세상과 하직하는 것을 볼 것이다. 그러나 내 말만 잘 따라준다면 좋게 끝날 수도 있다."

치이이이익.

'호오, 엄청난 생명력에 재생 능력이군.'

'보통 사람 같았다면 스피어아 몸을 관통했다면 즉사 내지 바로 사경을 헤맸을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관통당한 채로 목숨을 부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스스럼없이 스피어를 뽑아내어 그 상처에 성수를 붓는 수인족.

신음 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

얼굴을 잠깐 찡그리는 것이 전부였다.

"무엇을 원하시오. 들어줄 수 있는 것은 다 들어줄 터이니 전하와 우리를 풀어주시오."

일렬종대로 길게 뒤로 줄을 선 기사들.

그때 줄을 서던 마법사가 다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였다.

영화에서 보면 이런 장면 많이 보게 된다.

마음이 약해져 여기서 풀어주게 된다면 즉시 이빨을 들이대는 나쁜 놈들.

지금 눈앞에 있는 놈들이라고 다를 바가 없었다.

근위기사라는 놈들이 다수의 힘을 믿고 수인족을 핍박하던 모습.

자신들이 당해봐야 그 짜릿한 맛(?)을 알 것이었다.

퍼억!

"크악!"

말이 필요없었다.

발발 떨고 있는 황자의 오른쪽 눈탱이에 작렬하는 주먹.

"도르비트, 날 죽일 작정이더냐!!!!!!!!!!!"

남의 목숨보다 자신의 목숨을 만 배쯤 귀하게 여기는 황자 녀석의 외침.

후다다닥.

도르비트라는 마법사가 질린 표정을 지으며 기사들 뒤로 줄을 섰다.

"거기 스카이나이트, 네놈들은 기사 아냐? 어서 안 튀어와!"

"며, 명!"

내 호통에 와이번 위에서 눈치를 보고 있던 스카이나이트들이 후다닥 뛰어내려 기사들 뒤에 줄을 섰다.

정신이 얼마나 혼란스러웠는지 명이라 외치기까지 하면서 말이다.

'흐흐. 난 조교 체질인가 봐.'

군대도 아니 갔건만 모든 21세기 아이들의 간접 지식 창고인 텔레비전을 통해 배운 조교 놀이.

딱 내 체질이었다.

'이것들을 어떻게 한다.'

이런 일이 닥칠 줄은 나도 예상치 못했다.

수인족이 위험에 처해 있었기에 이런 상황까지 이르렀지만 딱히 무엇을 대비한 것은 없었다.

반짝반짝.

그때 눈을 파고드는 근위기사들의 반짝거리는 에어 플레이트.

'흐흐흐....'

띠링띠링.

'근위기사가 착용하는 최고급 풀세트 갑옷을 획득하셨습니다!' 라고 울리는 아이템 획득을 알리는 음성.

에어 플레이트라고 다 같은 에어 플레이트가 아니었다.

미스릴 함량이 다른 것보다 훨씬 많이 들어가 있는 황실 스카이나이트들의 에어 플레이트.

'와이번까지?'

기사들 옆에 주인들이 당하고 있는 꼴을 보고 숨죽이는 와이번들도 눈에 들어왔다.

'가능할까?'

너무나 많았다. 한두 마리면 어찌해 볼 것이건만 한꺼번에 20마리는 벅찼다.

'까짓것 못 먹어도 고다!'

가끔씩 아버지 친구 분들이 오셔서 구경하던 동양화 48장이 만들어낸 한 대사.

차려진 밥상을 마다하는 놈은 세상 살 자격이 없는 놈이었다.

"벗어!"

여름의 정점인 뜨끈뜨끈한 햇살이 내리쬐는 대지.

깊은 산중이라 다른 곳보다는 시원했지만 더운 기운은 어디로 가지 않았다.

그 더운 기운을 한 방에 날리는 대사.

'자식들, 이제 행복 끝 고생 시작이다.'

".....?"

내 말에 의문의 눈동자를 보이는 기사들.

"착용하고 있는 에어 플레이트를 벗으란 말이다! 이 바보같은 놈들아!"

답할 것이 없었다.

얻어맞기 싫어 잔대가리를 굴리던 황자가 내 눈치를 살피더니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것도 자신을 목숨으로 보호해 온 근위기사들에게 바보같은 놈이라 말하며.

찰칵찰칵.

치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에어 플레이트를 벗어 내리는 기사들.

"너도 벗어."

나를 향해 어색한 웃음을 짓고 있던 황자에게 내려진 한마디.

찰칵찰칵.

전자동이었다.

매 앞에는 장사가 없다는 진리를 확인시켜 주는 황자.

기사들보다 더 빨리 갑옷을 벗었다.

"마법사! 뭐 해! 네놈들이 걸치고 있는 마법 로브도 벗어야지!"

이왕 악마가 된 것, 뽕을 뽑을 작정이었다.

고위급 마법사들이 착용하고 있는 마법 로브 또한 방수, 방한, 방열의 기능이 탑재된 최고급 마법 아이템임이 분명했다.

'크으, 속옷 좀 빨아 입지.'

주저주저 기사들을 따라 로브를 벗는 마법사들.

갑옷 안에 기본적인 스판 바지라도 입고 있는 기사들과 달리 마법사들은 로브 안에 고쟁이 같은 사각 빤스만 입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얼마나 안 빨아 입었으면 하얀 빤스에 누렇게 얼룩이 져 있다는 것.

'개 폼은 혼자 다 잡고 다니더니, 더럽기는 거지들 저리 가라네.'

고서클 마법사 놈들이 어떤 자들인가.

마법 좀 할 줄 아낟고 고개 빳빳이 세우고 고상은 다 떨고 다니는 자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어이가 없는 눈으로 마법사들을 한 번 더 봐주었다.

'부끄럽다는 거야? 참나.'

내 눈길에 고개를 숙이는 마법사들.

나이깨나 드신 양반들이기에 부끄러움이 뭔 줄 아는 것 같았다.

"오른쪽 첫 번째, 두 번째 기사는 마나 팔찌를 모두 꺼내 기사들 손을 뒤로 빼 착용시킨다! 실시!"

"시, 실시!"

황자가 내 말에 절대 복종하라 하였기에 실시라는 말을 따라 하는 근위기사들.

찰칵찰칵.

와이번에 실려 있던 마나 팔찌를 긁어모아 기사들에게 착용시켰다.

"이놈도 채워."

"....."

황자를 가리키며 기사에게 명을 내렸다.

그러자 잠시 멈칫거리는 기사들.

"뭐 해! 어서 채우지 않고!"

황자 놈이 눈을 부라리며 악을 썼다.

"그만 하지? 그렇게 해서 근위기사들이 나중에 자네를 위해서 목숨을 내놓겠어? 나 같으면 구해주기는커녕 등에다 비수를 꽂아버릴 것 같은데?"

부르르.

내 말에 몸을 떠는 황자.

그와는 반대로 얼굴이 딱딱하게 굳은 기사들.

'이간질에도 재능이 있었네? 크크.'

미래의 적이 될 놈들이 분명했다.

코비란 산맥을 경계로 이웃한 제국.

잘되는 것보다 내분이 일어나는 것이 나에게는 훨씬 유리했다.

찰칵.

기사들 중에 한 놈이 다가와 황자의 손에 마나 팔찌를 채웠다.

"마나 팔찌를 풀어주는 열쇠를 바닥에 내려놓고 서로의 손에 팔찌를 채워라."

철퍽, 찰칵찰칵.

마나 열쇠가 바닥에 떨어지고 서로의 손에 팔찌를 채우는 기사들.

체념이 주는 상처에 기가 팍 죽어 있었다.

'정말 마법 기술은 놀랍단 말이야.'

지구의 수갑과 비슷한 형태의 마나 팔찌.

하지만 성능은 더 끝내줬다.

한 번 손에 채워지면 마나에 동화된 열쇠가 없다면 마스터도 열 수 없었다.

"본 조교의 말대로 따라준 여러분에게 감사를 드리는 바이다. 그럼 마지막으로 명령을 내리겠다! 열려진 동굴을 향해 구령에 맞춰 일렬종대로 뛰어들어 간다! 실시!"

"실시!"

"하나에 왼발! 둘에 오른발! 하나! 둘! 하나! 둘!"

속옷 형태의 옷만 걸치고 박차를 맞춰 동굴 안으로 뛰어가는 기사들.

근위기사들답게 몸매도 좋고 거시기도 훌륭한 기사들은 덜렁덜렁 알을 흔들며 동굴 안으로 사라져 갔다.

'쯧쯧. 저것도 체력이라고.'

기사들의 보폭에 맞추지 못하고 발걸음이 흩어지는 마법사 두 놈.

21세기에서도 공부 잘하는 이들 대부분이 저질 체력을 소유한 것처럼 이곳에서도 똑같았다.

"저, 저는 어떻게 할까요?"

당당하고 호기롭던 처음 표정은 어디로 가고 양쪽 눈탱이가 시퍼렇게 멍이 들고 부은 황자.

잘생긴 얼굴은 어디로 가고 한 마리 복어가 실눈을 뜨고 있었다.

"수고했어, 너도 힘껏 뛰어들어 가."

"가, 감사합니다!"

살려준 것을 감사하다 말하며 고개를 꾸벅 숙이는 황자.

타다다닥.

목에서 검이 치워지자 부리나케 동굴 안으로 달려들어 갔다.

"천천히 뛰어가. 그러다 넘어질라. 쯧쯧."

발발이에게 쫓기는 초딩처럼 초스피드로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황자.

두 손을 뒤로 묶고도 잘도 뛰었다.

"저렇게 정신력이 나약해서 무슨 황자야. 라비테르 미래도 뻔하군."

고개를 저으며 사심없이 제국의 미래를 걱정해 주었다.

"노임, 나와바."

대지의 중급 정령을 소환했다.

스르르륵.

엘프 마을에서 보았던 정령 활용법.

대지가 울렁거리더니 2미터 크기의 흙덩이가 불쑥 솟아올랐다.

"저기 동굴을 묻어버려. 꽉꽉 눌러서 말이야."

수룩수룩.

명령에 흙덩이들이 수루룩 옮겨졌다.

콰르르르르르르.

그리고 잠시 후 거대한 동굴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내 명령대로 단단한 흙들이 완전히 입구를 막아버린 것이다.

"고맙다, 인간."

'호오, 발음이 정확하네.'

전투 모드로 변했을 때와 달리 정확한 인간의 발음을 내는 수인족.

동굴에서 고개를 돌려 그들을 보았다.

'고맙기는, 다 나 좋으라고 하는 일인데.'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황자와 마법사가 지껄이던 내용을 종합해 보건대 지금 대륙에서 수인족이 발견되기는 천 년 만에 처음인 것 같았다.

그런 그들이 왜 건달프 사부의 마법들을 사용하는지 궁금했다.

"카이어라고 합니다."

"타이티온 일족의 족장 하시포트라 한다."

'홍만이 형만 하네.'

스피어에 꿰뚫려 사경을 헤매던 자라고 믿을 수 없게 완벽하게 회복되어 있었다.

아무리 최상급 포션이라 하지만 트롤 이상의 재생력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수인족은 목숨을 구해준 이를 주인으로 섬긴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들은 너를 주인으로 섬길 수 없다."

생각지도 못한 말을 꺼내주는 하시포트.

"이미 우리 일족은 100년 전에 한 분에게 목숨을 구함받고, 그분을 주인으로 섬겼다. 그러니 목숨 말고 다른 것을 부탁하라."

100년이라는 말만 나오면 왜 자꾸 사부가 생각나는지 몰랐다.

칼리얀 대륙에서 모습을 감춘 지가 100년이나 되었건만 아직도 모든 이들에게 회자되는 사부의 위명.

"혹시 그 주인이라는 이름이 아이달 아닙니까?"

"헉! 어, 어떻게 주인님의 이름을!"

'에휴. 그럼 그렇지.'

무슨 이유로 사부가 수인족들을 수집했는지 몰라도 이들과도 인연이 있음이 분명했다.

이제는 놀랄 기운도 그럴 마음도 없었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건만 사부가 남긴 그림자는 내 예상을 훨씬 넘어섰다.

"주인이라는 마법사가 혹시 이렇게 마법을 펼치지 않았나요?"

말과 함께 사부의 특징적인 마법 수식을 취했다.

".....!!"

내 행동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다섯 명의 수인족.

'전투 마법사! 맞아! 이들로 전투 마법사를 만들면 끝장이겠다!'

갑자기 수인족을 보고 떠오르는 전투 마법사.

마검사보다 훌륭하고 신체적 조건과 전투 감각.

만약 마법까지 플러스되면 그야말로 일인 무적군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카우우우우우우우!

쿠르르르르르르르!

'저 새대가리들이!'

자신들을 다스리던 주인들이 모두 사라지자 수상함을 느끼고 발광하는 와이번.

"베베토!!!!!!"

마나를 돋워 하늘을 향해 힘차게 베베토를 불렀다.

쿠오오오오오오오!

기다렸다는 듯이 산모퉁이를 돌아서 나오는 베베토.

파락파락 파라락.

요 몇 달 자유를 한껏 만끽한 베베토는 부쩍 더 성장해 있었다.

내가 보기에도 감탄이 나올 정도의 거대한 날개와 몸통.

어지간한 와입너의 1.5배 정도로 성장해 있었다.

카우우우우우우우우!

베베토가 나타나자 날개를 퍼덕이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수컷의 와이번들.

그와는 반대로 베베토의 탄탄한 근육을 보고 뻑 간 표정을 짓는 암컷 와이번들.

쉬아아아아아악.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었다.

날카로운 발톱을 앞세우며 급강하를 실시하는 베베토.

퍼버버벅.

쿠에에에에에 쿠에에에에에에!

그리고 시작된 무자비한 폭력.

시장 닭 집 통돌이 기계에서 닭털이 빠지듯 와이번들의 깃털이 눈송이처럼 사방에 흩뿌려졌다.

그중에서도 특히 황금 깃털이 유난히 많았다.

"하하,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은데 우리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죠. 당신들의 주인이자 나의 스승이며 역사상 유일무이한 대마도사이자, 금안의 사신이라 불렸던 위대한 아이달님에 대해서 말입니다."

베베토가 보여주는 화끈한 교육 방법에 넋을 잃고 있던 수인족.

아이달이라는 말이 나오자 모두 나에게 눈을 돌렸다.

씨익 입가에 지어지는 기분 좋은 미소.

오늘 또 한 건의 대박이 나를 향해 팡파레를 올려주고 있었다.

전투 마법사 수인족과 와이번 스물두 마리, 그리고 흠집 하나 없는 최상급 에어 플레이트들.

'움하하하하하하하하!'

가슴속에 웃음이 활화산처럼 터졌다.

위대한 카이어님이 가시는 길.

모두 길을 비켜야 할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에게 삥 뜯김이라는 저주가 임할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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