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5장 다다익선
"이, 이게 뭔가?"
"하하, 수리할 게 좀 많아서 들고 왔습니다. 어째 마법 화로는 잘 돌아갑니까?"
"호오, 모두 다 미스릴 합금이군."
질문에 답하기보다는 눈을 번쩍이며 부서진 와이번 방어구와 에어 플레이트를 살펴보는 드워프 카시아르스.
"형제의 손길이 느껴지는군. 타르바바 일족의 솜씨야. 하하, 정말 좋은 작품이군."
나는 아무리 봐도 모르겠건만 와이번 방어구를 집어 들고 기뻐하는 카시아르스.
"인간들 솜씨치고는 훌륭하군. 우리 일족에 한참 못 미치지만...."
족장 카시아르스를 따라 드워프들이 방어구와 에어 플레이트를 집어 들고 꼼꼼히 살폈다.
"다시 제련하려면 마법진이 파괴될 텐데 괜찮겠는가?"
"물론입니다. 이왕 하시는 김에 튼튼하게 만들어주십시오."
"당연하지. 우리 루할루메르 일족의 손에 들어온 이상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물건이 되어야 해."
장인들 아니랄까 봐 쓸데없는 곳에 자존심을 팍팍 세우는 카시아르스.
지금까지 전투 중에 습득한 와이번 방어구를 칭칭 싸매서 드워프 마을까지 가져왔다.
마탑이나 드워프와 인연이 없는 나였기에 그동안 고장난 방어구를 방치했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대한민국 제일의 삼송에 버금가는 에프터 서비스를 자랑하는 드워프.
더 이상 좋을 수가 없었다.
"저 그리고 이 물건들도 만들어주십시오."
"이건 뭔가?"
내가 내미는 몇 장의 설계도를 받아 드는 카시아르스.
"드라빌트 아닌가. 오오! 이 설계도로 만든다면 자연스럽게 구동이 되겠군."
한눈에 드라빌트와 그 성능을 파악해 버리는 드워프 족장.
"이런 쇠구슬이라면 동작이 자연스럽게 연결될 것 같습니다. 마법진만 쓸 만하다면 예전 것보다 효율이 30프로 정도는 늘 것 같고...."
족장의 말에 원로급 드워프들이 달라붙어 열심히 토론을 하였다.
"이건 또 뭔가?"
드라빌트 설계도 말고 다른 것을 집어 들고 질문을 던지는 카시아르스.
"쟁기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쟁기 맞습니다."
"그래? 정말 특이한 모양이군. 이 형태로 완성이 된다면 말 몇 마리가 땅을 파는 것과 다를 바가 없을 것 같아. 거기에다 자연스럽게 깊이도 조절할 수 있고.... 자네가 만든 것인가?"
'나 같은 천재가 아니면 누가 만들겠소이까! 움하하하하.'
21세기 과학 기술이라 불리기도 좀 거시기한 작품.
시골 할아버지 댁에 놀러 가면서 보았던 트랙터에 달린 농기구를 설계했다.
그리고 루나 마을에서 직접 쟁기를 메었던 경험을 살려 특별히 고안한 작품이었다.
"다음 것도 한 번 봐주십시오."
"음... 이건...."
"창끝 부근에 미스릴 코팅만 해주시면 됩니다. 무게는 되도록 가볍게 만들어주시고 중간 부근에는 마법진을 새겨 넣을 수 있으면 됩니다."
앞으로 무지하게 필요할 블레스트 스피어 개량형.
스승님이 집어 넣어주신 지식과 경제성을 살려 특별 고안한 신형 스피어였다.
"이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지. 그래도 대단하군. 인간으로 이런 걸 다 생각해 내다니. 역시! 바위의 아들들과 친구 할 자격이 있어!"
우호도가 상승하는 기분 좋은 울림이 들렸다.
"아닙니다. 제가 아무리 뛰어나다 하더라도 신의 손을 닮은 바위의 일족에 비할 수가 있겠습니까.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하하하, 예의를 아는 자네를 보니 갑자기 기분이 좋아지는군. 어떤가, 오늘 또...."
'헐! 서, 설마 또 축제?'
루비스 상단에서 공급받은 넉넉한 맥주가 또다시 땡기는지 입맛을 다시며 나에게 의견을 묻는 카시아르스.
"영지 일이 바빠서...."
"음... 그런가? 조금 아쉽군...."
아이도 아니건만 서운한 표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드워프들.
'아이고 두야.'
인생의 낙이라고는 술과 망치질밖에 없는 이들에게 무얼 더 바라겠는가.
"그것들을 찾으러 올 때 제가 새로운 비법으로 제조한 맥주를 들고 오겠습니다. 아마,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그런 맛일 것입니다."
"그런 맥주가 있는가?"
"그럼요. 저만 믿으십시오!"
"알겠네! 오늘부터 모든 드워프들과 함께 일을 시작하겠네. 자네는 걱정 말고 보름 후에 찾아오게!"
조삼모사에 나오는 원숭이들도 아니고, 새로운 맛의 맥주라는 말에 금세 희망을 품고 기뻐하는 드워프들.
여태 인간들에게 눈탱이 맞고 살아온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순수함을 순수라 생각하지 않고 욕망으로 이용하는 몇몇 인간들.
그들은 모를 것이다.
드워프들을 등쳐 먹고 사는 자신들보다 이렇게 단순하게 살아가는 드워프들이 더 행복하다는 사실을.
★★★★★★★★★★★★★★★★★★★★★
"군마를 더 확보해야겠습니다. 유사시 영지를 긴급 방어하기 위해서는 기마병들이 필수입니다."
"루비스 상단을 통해 계속 군마를 수입해. 가격은 상관하지 말고 가장 좋은 놈들로 말이야."
"알겠습니다. 그리고 다음은 씨앗 파종 문제에 대해 보고 올리겠습니다. 영지와 등을 돌릴 것이 확실한 코르베인 상단을 비롯한 상단들과 마탑이 견제에 들어가면 루비스 상단을 통한 물품 보급도 어려울 것입니다. 당장이야 그런 일은 없겠지만 주군께서 제국의 공식 영주로 임명되지 않는 것과 바즈란 고위 귀족들이 포섭당한다면 다른 왕국들도 마탑과 상단의 압력에 굴복할 것입니다. 그전에 식량의 확보를 위해서는 파종이 시급합니다."
'이놈의 한 성격이 문제지.'
계획대로라면 내년이나 그 후에 천천히 상단과 마탑과 등을 돌려도 되건만 싸가지없는 꼴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성격 때문에 일이 커졌다.
그러나 후회는 없었다.
더러운 꼴을 보느니 차라리 시원하게 패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어차피 낸일 일은 내일 걱정하면 땡이었다.
"며칠만 기다려. 내게 좋은 수가 있으니."
"알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본격적인 몬스터 토벌을 위해서 필요한 여러 가지 물품들에 대해 보고드리겠습니다. 스카이나이트들의 활동에 자극받은 몬스터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보고입니다. 특히 네루만에서 압도적인 숫자를 이루고 있는 오크들이 빈번하게 전방 요새나 마을을 공격하고 있다 합니다."
예상한 바였다.
본능으로 사는 놈들이니 자신들에게 위기가 닥치고 있음을 알 것이다.
"기사들과 지휘관들을 모아 구체적인 공격 계획을 잡아야겠지만, 몬스터들을 몰아내는 것만으로 끝이 아닙니다. 루알과 코비란 산맥까지 소탕할 수 없기에 영지의 전체적인 안정은 쉽게 꾀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또한 주군께서 추진하시는 도시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석재와 나무들이 필요하지만 아시다시피 네루만 평원은 산맥들 이외에는 이렇다 할 돌산도 나무도 부족합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당분간은 힘들 것 같습니다."
네루만 평원도를 바라보고 있는 나를 향해 데르발이 완곡하게 불가하다는 말을 전해왔다.
자신의 수준으로는 아무리 생각해도 안 될 것이다.
대제국도 버린 이곳을 돈으로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행정 학교 출신인 데르발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데르발의 생각.
난 달랐다.
"경이 생각하기에 지금 가장 위협적인 존재는 무어라 생각하는가?"
"...이런 말 드리기 죄송하지만 사방이 온통 적밖에 없습니다. 그것도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말입니다."
데르발이 말하지 않았지만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적들 중에 가장 큰 적이 바로 대책없이 사건을 치는 나라는 것을 말이다.
"앞으로 몇 주 후, 본격적으로 몬스터 소탕을 시작할 것이다. 이곳부터 이곳으로."
하비스 왕국의 국경부터 시작하여 루알 산맥과 덴포스를 잇는 거대한 평원을 쭈욱 손으로 가리켰다.
"....."
알겠습니다라는 힘찬 대답 대신 심각하게 내가 가리키는 지점을 바라보는 데르발.
'요새를 건축해야 한다. 산맥들과 평원의 경계에 대규모 요새나 성을 건축하여 분리시켜야 한다. 동시에 도로를 정비해야 한다. 이대로는 죽도 밥도 안 된다.'
몬스터를 몰아낸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잡초 같은 생명력을 소유하고 있는 몬스터들은 틈만 나면 다시 네루만을 노릴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일이 몇 번만 반복되면 과거 제국이 그랬던 것처럼 손을 들어야 할 것이다.
"주군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등 뒤에서 들려오는 뜨거운 데르발의 음성.
나를 믿고 있었다.
내일 제국을 공격한다 하더라도 나를 믿고 따를 데르발.
길게 말할 필요 없었다.
남자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
"무슨 고민 있으세요?"
영주는 소설에서 보던 것처럼 그런 낭만적인 직업이 아니었다.
뭐, 악당 캐릭처럼 마음대로 산다면 모를까 전체적인 발전을 꾀하는 일이 쉽지가 않았다.
그리고 저녁을 먹으며 생각에 빠져 있자 아르미스가 조심스럽게 고민이 있느냐 물었다.
'후우, 보고 있는 것만으로 마음이 다 편안해지네.'
성력이라는 것, 마법이라는 것, 마나라는 것, 보고 경험하고 있지만 믿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특히 신의 가피가 절절하게 살아 숨 쉬는 이 대륙.
성녀 아르미스의 포근한 얼굴과 은온하게 어리는 성스러움은 보는 이로 하여금 모든 근심걱정을 날리게 만들었다.
"하하,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저 내일 아침 메뉴가 무얼까 고민해 보았습니다."
"티나요...."
"네?"
"거짓말이 보인다구요."
가지런한 치아를 드러내며 기분 좋게 눈웃음을 짓는 아르미스.
일순간 식당 안에 활짝 프리지아 꽃이 피는 착각이 들었다.
새벽에 일어나 기도로 시작해서 하루 종일 아픈 이들을 치료하고 위로해 주어야 했건만 내 앞에서 환한 미소를 흘리는 그녀.
그런 아르미스 앞에서 힘들다 말한다는 것이 우스운 일이었다.
"마음껏 하세요. 부족한 제가 매일 카이어님을 위히여 기도하고 있답니다...."
함축적 의미의 두 마디.
마음껏과 기도.
마음이 훈훈해졌다.
"고맙습니다.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는데 염치없이 받기만 합니다."
"아무것도라니요. 카이어님은 저를 신 앞에 바로 서게 해주신 분이십니다. 그 깨우침, 죽어서도 갚을 길이 없답니다."
아르미스의 갈색 눈동자가 촉촉이 젖어 들어갔다.
바보처럼 울려고 하는 것 같았다.
"우리 나갈까요?"
"정말요?"
아름다운 여인의 눈물을 눈뜨고 보고 있을 수 있는 강심장을 소유하지는 않았다.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사인을 보냈다.
그러자 손을 마주 잡고 기뻐하는 아르미스.
"가시죠, 레이디."
"감사합니다, 기사님."
의자에서 일어나 한 손을 내밀며 에스코트를 했다.
그런 내 행동에 무릎을 살짝 구부리며 답례를 하는 아르미스.
두근두근.
심장이 떨려왔다.
조금은 답답한 이 순간.
마음이 아름다운 여인과 나누는 창공의 드라이브.
세상 그 누구도 부럽지 않았다.
설사 황제라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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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와이번을 주신다고요!!"
"스카이나이트 교육을 받았다고 하지 않았나?"
"그, 그건 그렇지만...."
"네루만 제1기사단장이 아니라면 누가 스카이나이트가 될 수 있겠는가. 듣기로 경 휘하 기사들 중에 정식으로 교육을 받은 자들이 몇 명 있다고 하던데, 그들은 따로 빼놓게 조만간 와이번을 구해놓을 테니."
"주... 주군...."
기사단장 세들리안이 주군이라 부르며 감동을 먹었다.
기사라 해도 다 같은 기사가 아니었다.
스카이나이트야말로 진정한 기사로 불리는 현실.
전투에서 살아남은 용병 와이번 세 마리를 베베토와 함께 재교육시켜(?) 전력화했다.
그리고 세들리안에게 와이번을 하사하였다.
"바로 비행 준비를 하게."
"며엉!"
"쳇, 누구는 기사단장에 와이번까지 주고 누구는 매일매일 뭣 나게 순찰 비행만 시키고! 주군, 이건 너무 불공평한 거 아닙니까!"
오전 순찰을 준비하는 라이케르가 투덜거리며 따져 왔다.
테미르 놈들이 언제 넘어올지 모르기에 북부를 담당하는 오라크 성의 스카이나이트들은 남부까지 부르지 않았다.
그렇기에 제니스를 비롯해 네 명이 이인 일조로 매일 순찰을 나섰다.
놀기 좋아하는 불충성 게으름뱅이 라이케르 입에서 불만이 터져 나올 만하였다.
"라이케르 경, 쉬고 싶나?"
"그야 당연하죠! 근 한 달 동안 제대로 술 한 잔 못해봤습니다! 이제 와이번만 타면 헛구역질이 나올 정도입니다!"
"그래? 그럼 쉴 때도 됐군."
"흐흐.... 그럼 새로 스카이나이트들도 충원됐는데 좀 쉬어도 되겠습니까?"
음흉한 웃음과 무엇을 생각하는지 눈동자가 사악하게 반짝이는 라이케르.
"정 그렇다면 쉬게."
"정, 정말이십니까!"
"데르발에게 말해서 한 천 골드도 받아가고."
"허억! 그, 그렇게 신경 써주지 않아도 되는데...."
"뭘 그 정도를 가지고. 퇴직금치고는 좀 적은 편인데 자네가 만족하니 다행이군."
"네? 퇴, 퇴직금이요?"
"그동안 수고했어. 들어보니 제1기사단 중의 몇몇이 스카이나이트 교육을 받은 경험이 있다고 하더군. 그들을 자네 와이번에 탑승시키면 되니까. 가서 푹 쉬게. 오늘부터 안 나와도 되네."
내 말이 끝나는 순간 입을 턱하고 벌리는 라이케르.
"베, 베르케스 경! 뭐 하는가! 빨리 이륙해야지. 어제 보니까. 시세스 요새 쪽으로 오크들이 몰려들고 있지 않았나!"
타다닥.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신의 와이번에게 달려가는 라이케르.
"주군! 다녀오겠습니다!"
와이번 위로 훌쩍 올라타더니 힘차게 군례도 올렸다.
"빨리빨리 이륙해! 이 느림도 뚱땡아!"
그리고 애꿎은 와이번에게 화를 내는 라이케르.
파락 파라락 파라라락.
순식간에 먼지를 일으키며 라이케르와 와이번은 창공단 하늘로 비상했다.
"푸, 푸하하하하하하."
"크크크크크...."
그 모습에 지상에 있는 기사들과 병사들이 배를 잡고 웃음을 터뜨렸다.
'좌우지간 잔머리 굴리는 것들은. 흐흐.'
제아무리 라이케르가 잔머리를 굴린다 하더라도 열여덟 인생에 쉽게 살아오지 않은 나에게 통할 리가 없었다.
"바로 비행할 수 있겠나?"
"네! 주군!"
힘차게 대답하는 세들리안.
제법 많은 공을 들였는지 휘하 용병들은 아무 저항 없이 기사단으로 편성되었다.
다른 용병들과 달리 글자도 배우고 예절도 아는 세들리안의 용병들.
아마도 후에 자신의 영지를 찾으면 기사단으로 삼으려 했던 것 같았다.
물론 제국이나 왕국의 중요 기사단은 모두 1급 용병들 수준이었기에 수준은 조금 떨어졌다.
하지만 어떠한가.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
"오오! 이 기가 막힌 맛은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달콤한 것 같으면서도 쌉싸래하고 향 또한 예사롭지 않습니다. 정말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를 맛입니다."
'도대체 스승님은 얼마나 많은 잡시식을 소유하고 있는 거야?'
어지간한 것들은 생각만 하면 머릿속에 공식처럼 톡톡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 지식들 중에는 드워프도 반할 기가 막힌 맥주 제조법 11가지 특선도 들어 있었다.
"제가 부탁한 것들은 어떻게...."
"걱정 말게. 어제 모두 완성했으니까. 스피어 200자루와 미스릴 합금 방어구와 플레이트 메일도 다 고쳐 놓았네. 그리고 쟁기도 다섯 개나 완성했네."
신의 종족답게 말한 바 책임을 다한 드워프들.
보름 만에 절대 불가능할 것 같던 일들을 다 처리해 놓았다.
"드라빌트 진척 상황은 어떤지요?"
"음... 그건 좀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
'어라?'
언제나 당당하던 모습 대신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수염을 쓰다듬는 카시아르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미스릴 원석이 다 떨어졌네."
'얼라리요. 드워프들이 원석 때문에 곤란할 때도 있네.'
천하의 미스릴이라 하더라도 타고난 광부이자 대장장이인 드워프들에게는 문제가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심각한 표정을 보아하니 쉽게 해결될 일이 아닌 것 같았다.
"미스릴 광산이 없습니까?"
"있네, 그것도 아주 양질의 광산이 말이야."
"그런데 왜...."
아쉬운 입장이었기에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놈들이 도통 들여보내 주지를 않아. 언제부터 제놈들 영역이었다고 감히 우리 드워프들을 막다니! 도도하고 싸가지없는 새끼들!"
누구를 생각하는지 침을 튀기며 광분하는 카시아르스.
"마수가 문제입니까? 그거라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마수 따위가 아니야! 놈들은 더 사악하고 악질적인 놈들이야! 당최 대화라는 것을 모르는 멋대가리없는 놈들이라니까!"
'도대체 누구야? 호, 혹시 드래곤?'
아닐 것이다.
드래곤이 인간 세상에 마지막으로 출몰한 것이 수천 년 전이라 역사서에 전해왔다.
그리고 드래곤이라면 간이 시퍼렇게 부은 드워프가 아니고서는 어찌 이런 망발을 뱉어낼 수 있단 말인가.
"숲의 싹퉁머리없는 존재들, 바로 엘프들 영역에 미스릴 광산이 있어. 최근 백 년 동안에는 대체 광산이 있어 엘프들과 마주칠 일이 없었는데 이제 광물이 바닥났어. 아깝단 말이야.... 적어도 천 년 이상은 마음껏 뽑아낼 수 있는 광산인데."
'에, 엘프! 오오!'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고귀한 혈통의 종족.
하프 엘프조차 드문 대륙에서 정통 엘프를 보았다는 이는 거의 없었다.
워낙 자연을 좋아하고 인간들을 비롯한 타 종족과의 교류를 꺼려하며 뛰어난 마법 실력과 정령 친화력으로 감히 인간들이 어찌할 수 없는 종족이었다.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안 돼.... 지난 수백 년 동안 친하게 지내보려고 별 짓을 다 했는데, 그 키만 멀대같이 큰 싸가지들은 콧방귀도 안 뀌더라고. 조금만 참게 새로 미스릴 광산을 찾을 테니!"
"시간은 얼마 정도 걸리는지...."
"뭐, 애들 좀 풀고 전력을 다한다면 몇 년 안에는 찾지 않겠어? 루알 산맥이 아니면 리토르 산맥도 있으니 너무 걱정 말게."
"....."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척척 뱉어내는 카시아르스.
몇 달도 아니고 몇 년, 그것도 이 넓은 루알 산맥에 없으면 다른 산맥까지 뒤지겠다는 천하태평한 사고방식.
부글부글 속에서 열불이 끓어올랐다.
내가 계획하고 있는 물건들은 대부분 미스릴 합금이 필요했다.
어지간한 병장기나 물건들로는 전력의 열세를 극복할 수 없었고, 그 열세는 곧 망하는 길로 향하는 지름길.
"그곳이 어디입니까?"
"어디? 엘프 마을?"
"네, 제가 찾아가 담판을 짓겠습니다."
"허어, 괜한 욕심 부리지 말게. 괜히 그러다 다쳐. 엘프 녀석들도 스카이나이트가 있다는 것을 자네는 모르지?"
"네? 스카이나이트요?"
처음 듣는 소리였다.
호랑이가 취해서 곰순이를 덮쳤다는 것만큼이나 생소한 이야기였다.
"마법이야 무구와 마나로 어찌 버틸 만하지만 영역에 다가가기만 하면 유령같이 나타나서 다짜고짜 화살을 날린다니까."
"스피어가 아니라 화살을요?"
"마나가 담긴 화살을 정령이 조종을 하니 모두 백발백중이야. 그놈들 때문에 수백 년 동안 미스릴 광산을 찾아 헤맸지. 그런데 미스릴 광산은 특이하게 한곳에 응집해 있는 경우가 많아. 그리고 그런 대형 광산은 현재 발견된 모든 미스릴 광산 중에 가장 큰 놈이고 말이야."
미스릴 원석만으로도 상당한 돈이 되었다.
작은 영지라도 미스릴 광산을 개발하는 순간 어지간한 공작 못지않은 힘과 부를 소유한다 들었다.
이곳 대륙의 진정한 로또.
"위치가 어디입니까?"
"정말 갈 생각인가?"
두말하면 잔소리였다.
사방의 적들이 이빨을 들이대기 전에 방비를 세워야 했다.
더욱이 드워프까지 도와주고 있는 마당.
미스릴이 없어서 일을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었다.
"휴우, 인간들의 고집이란.... 그리 멀지 않네. 걸어서 삼일 정도 거리지만 와이번을 타면 금방일 것이야. 마을에서 북쪽으로 가다 보면...."
내 결심을 알고 위치를 설명하는 카시아리스.
'라이케르 말대로 정말 죽여줄까?'
미스릴보다 중요한 그 무엇.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보았던 엘프 여왕의 우아하고 고귀한 자태.
'흐흐흐.'
왠지 모를 웃음이 가슴을 울렸다.
이왕이면 다다익선에 다홍치마라는 명언을 남기신 선조들의 말씀을 떠올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