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세기 대마법사-62화 (62/221)

제62장 전설의 그림자

"테스케님,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인상을 쓰며 덴포스 성을 노려보는 테스케를 향해 보조 상인이 조심스럽게 준비가 끝났음을 알렸다.

'죽일 놈!'

"으드득!"

재수없이 밝게 웃는 놈만 생각하면 속에서 열불이 끓어오르는 테스케.

상단의 부단주가 되는 동안에 수많은 거래를 하고 인간들을 만나보았지만 오늘처럼 뒤통수 제대로 맞고, 손해 제대로 본 거래는 처음이었다.

테스케 인생 중에 가장 치욕스러운 오늘.

이를 갈며 테스케는 가슴에 원한을 차곡차곡 쌓았다.

"하크라인님, 마탑주님은 언제 오시는지...."

"흥! 탑주님이 아무 때나 오는 줄 아시오!"

"그, 그럼... 마법 화로는 누가...."

화가 잔뜩 난 독사처럼 살기를 뿌리는 하크라인의 모습에 테스케는 화를 가라앉히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무리 대상단이라 하더라도 고서클 마법사는 함부로 할 수 없었다.

아닌 말로 마탑과 척을 지면 언제 불벼락을 맞을지 몰랐다.

상행 중에 있는 상단을 미친 척하고 먼 거리에서 마법이라도 몇 번 날리면 상단은 그날로 파멸이었다.

더욱이 마탑 출신 마법사들은 각 제국과 왕실 마탑에 소속 되어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들.

절대 조심 또 조심해야 했다.

"마법진에 정통한 안드라이크 부탑주가 와이번을 타고 올 것이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상단 일이나 똑바로 하시오!"

"알겠습니다."

공손히 고개를 숙이는 테스케.

더럽고 치사하고 아니꼬워도 먹고살기 위해서는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상인의 자세였다.

'모두 다 카이어 그놈 때문이다! 네 이놈을!'

돈을 다 지불했건만 느릿느릿하게 병사들을 동원하여 밀을 날라다 주었던 카이어라는 놈.

인부들을 고용하면 반나절이면 될 일을 삼 일에 걸쳐 밀을 내주었다.

물론 마탑에서 2등급 마정석과 마법진에 능통한 자가 올때까지 시간이 필요했지만, 보는 것만으로 짜증이 났다.

더군다나 밀을 다 나른 병사들이 임금으로 1골드씩 요구하였다.

자신들은 고급 인력이라고 반드시 1골드를 받아야 한다 하였다.

영주나 그 아래 병사들이나 돈독이 오른 네루만.

이번에 상단으로 돌아가면 철저히 이번 손해를 배상받으리라 마음먹었다.

"저기 오는군."

그때, 저 멀리 상단을 향해 날아오는 세 마리의 와이번.

마법 룬어판 위에 자리 잡은 초승달과 해가 그려진 가우스 마탑의 상징 휘장을 몸에 두른 회색 와이번들이 천천히 상단으로 내려섰다.

그리고 그 선두에 작은 키의 마법사가 서 있었다.

에어 플레이트 갑옷 손목에 그려진 선명한 여섯 개의 황금 줄무늬.

6서클 마스터이자 가우스 마탑의 또 다른 부탑주인 안드라이크의 등장이었다.

★★★★★★★★★★★★★★★★★★★★★

쉬이이이이이이익!

상단이 떠남을 확인한 뒤 바로 베베토를 타고 이륙하였다.

지금쯤이면 루비스 상단은 내가 알려준 드워프 마을 입구에 이르렀을 것이다.

'최대한 빨리 일을 마무리진다.'

자메르가 이끄는 루비스 상단.

마음 같아서는 드워프 물건을 직접 처분하고 싶었지만 그건 또 도리가 아니었다.

충분히 엄청난 이익을 남길 수 있건만 쪼잔한 몇 푼 때문에 좋은 인연을 잃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인간들이나 하는 짓이었다.

'병사들만으로는 위험하다.'

최대한 선발로 정병들로 상행을 호위케 하였다.

덴포스에서 1,000명, 오라크 성에서 다시 1,000명의 병사들이 상단에 합류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오라크 성의 주둔 와이번 부대도 상단 호위에 투입되었다.

테미르 놈들과 몬스터들의 동시 도발만 없다면 북부는 위험하지 않았다.

그러나 미래를 예견할 수 없는 법.

전력의 공백을 알아채고 테미르 놈들이 공격해 온다면 애써 장만한 와이번 부대가 상할 수도 있었다.

'2등급 마정석을 이런 곳에 쓸 줄이야.'

만약 해적들이 마정석을 주지 않았다면 드워프의 마법 화로를 고치는 데 애를 먹었을 것이다.

'와이번 알을 부화하기 위해서는 성수가 더 필요한데.... 아르미스는 편지를 받고 어찌하고 있을까.'

신전을 네루만에 유치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였다.

아무리 신전들이 경쟁을 한다 하더라도 위험한 곳에 돈을 쏟아붓는 자선사업을 하려고 하지는 않을 것.

그렇기에 아르미스에게 편지를 썼다.

루나 마을에서 아르미스는 말했었다.

나를 위해서 그 무엇이라도 하겠다고.

그리고 나는 뻔뻔하게 그녀에게 편지를 보냈다.

내가 아는 순수한 신관은 오직 한 명.

아르미스 사제밖에 없었다.

★★★★★★★★★★★★★★★★★★★★★

쿵쾅! 쿵쾅! 쿵쾅쾅!

새로 바뀐 드워프를 불러내는 박자가 돌벽을 울렸다.

'다음에는 통신구라도 하나 주던가 해야지.'

"여기에 드워프가 사는 것입니까? 어쩐지."

내가 하는 짓을 유심히 보고 있는 자메르가 감탄을 터뜨렸다.

아무리 대상인인 그라 해도 드워프가 이런 곳에 사는 줄은 몰랐던 것 같다.

"준비는 완벽하죠?"

"물론입니다. 제가 카이어님을 믿는 만큼 저를 믿으셔도 됩니다."

'헐, 이 양반이! 그럼 믿지 말란 소리야?'

도대체 나라는 존재의 뭘 믿고 저런 소리들을 하는지 몰랐다.

나도 믿지 못하는 나였건만 사람들은 나를 믿었다.

드드드드드드득.

그리고 잠시 후 돌문이 활짝 열렸다.

"어서 오십시오, 친구여!"

"족장님, 며칠 못 본 사이에 수염이 더 멋지게 자라셨습니다. 인간계에 나가서도 한 인기하시겠습니다."

"하하, 듣기 좋은 칭찬 고맙소이다."

"이쪽은 제가 믿는 상단의 총책임자입니다. 앞으로 드워프 마을에 필요한 물건을 공급해 드릴 것입니다."

"루비스 상단의 자메르라고 합니다. 바위의 일족들을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정중하게 인사를 올리는 자메르.

"인간 상인치고는 눈빛이 맑구려."

어지간해서는 인간에게 칭찬을 하지 않는 족장 카시아르스가 자메르의 눈동자를 보더니 칭찬을 했다.

"카이어님!"

"네르포포, 하하! 잘 지냈어?"

"네! 어서 들어가요. 모두 기다리고 있습니다."

"들어가십시다, 친구여."

언제나 듣기 좋은 친구라는 말.

그렇게 드워프들이 친구라는 말을 건네자 자메르의 얼굴에 놀람이 가득했다.

그도 대충은 알 것이다.

드워프와 친구먹는 일은 오크에게서 사냥한 소를 양보받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샤일트 경, 가서 병사들을 지휘하게."

"명!"

스카이나이트의 도움없이 이곳까지 오기는 불가능했다.

코르베인 상단 놈들이 무식하게 이 근방의 몬스터들을 도륙하거나 쫓아냈지만, 며칠 사이에 어느 정도 복원되었다.

그렇게 오는 동안 몇 번의 전투가 벌어졌고, 지금도 병사들은 대기 상태였다.

'이제 수금하러 가볼까.'

발걸음도 가볍게 드워프들과 함께 드워프 도시로 들어갔다.

좋은 일에는 항상 마가 낀다는 조상들의 격언을 잘 알고 있기에 시간 낭비는 하고 싶지 않았다.

★★★★★★★★★★★★★★★★★★★★★

"뭐, 뭐라고! 덴포스에서 루비스 상단이 드워프 마을 쪽으로 출발했다고??"

"그렇습니다, 테스케님. 상단에 정보를 제공하는 용병 몇 명이 확실히 그렇게 말했답니다."

"헉!"

대륙에서 가장 빠르고, 한 번에 쉬지 않고 1,000킬로 정도를 주파해서 모든 제국이나 왕국에서 사용하는 연락용 새, 루미카르.

한 마리의 루미카르가 인식용 마법구에 착륙을 했고, 덴포스에 있는 가우스 지부에 긴급 연락을 전해 왔다.

"쯧쯧. 어찌 일을 그따위로 처리하는 것이오!"

옆에서 듣고 있던 하크라인이 버럭 화를 냈다.

"괘, 괜찮을 것입니다. 드워프 마을을 찾아가는 방법을 아는 자는 드뭅니다. 그리고 설령 찾아갔다 하더라도 드워프들의 신의를 지킬 것이기에 전혀 염려하실 것이 없습니다."

"혹시 그러다 드워프들이 엄청난 계약 조건에 마음이 변하면, 그때는 테스케 부단주 혼자 책임질 것이오? 목숨 하나로는 어림도 없을 건인데 그리 자신만만하다니 보기는 좋소이다."

이죽거리며 테스케를 자극하는 마법사 하크라인.

원래부터 까칠한 성격에 근래 보름 사이 겪은 스트레스에 성질이 더럽게 변해 있었다.

"세들리안 단장을 데려와라! 지금 당장!"

"알겠습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전갈에 테스케는 혼란에 빠졌다.

'카이어.... 설마 그놈이?'

그리고 그 순간 떠오르는 사악한 검정 머리의 악마 한 마리.

'아니야, 놈이 무슨 수로.'

하지만 이내 드는 불길함에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하크라인의 말이 사실이라면 테스케의 목숨은 없었다.

아니, 지금까지 쌓아놓은 돈과 명예뿐만 아니라 가족들 모두 노예로 팔려갈 것이 분명했다.

'죽여 버릴 것이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설마가 진실이 된다면 볼 것도 없었다.

네루만 정도는 하룻밤 사이에 지워 버릴 전력이기에 카이어 놈을 죽이리라 마음먹었다.

키로로로로로로로로.

하늘 위에서 날고 있는 와이번.

6서클 마스터 둘에 총 스물세 마리의 와이번이 있었다.

어지간한 공국과는 전면전도 불사할 수 있는.

★★★★★★★★★★★★★★★★★★★★★

위잉, 위잉, 위잉.

'언제 봐도 사부가 만든 마법진은 경이롭단 말이야.'

지구에서 맛보았던 사부의 여러 가지 마법진.

드래곤도 펼칠 수 없는 차원 이동 마법진을 직접 견식한 나였지만 보면 볼수록 마법이라는 놈은 신비로웠다.

'이런 것까지 얻다니. 흐흐, 땡잡았다.'

마법진을 수리한다는 핑계로 마법사에게 가장 필요한 마법 도구를 얻었다.

그것은 바로 미스릴 접합기.

액체 상태의 미스릴을 세밀한 마법 회로도에 접합시켜 사용할 수 있게 만드는 귀중한 도구였다.

볼펜처럼 미스릴 액체만 갈아 끼우면 언제라도 마나 회로도를 만들 수 있었다.

굵은 볼펜에 담겨 있는 미스릴 접합기.

안에 찰랑찰랑 고여 있는 액체 상태의 미스릴이 엉덩이를 흔들며 나를 반겼다.

'이쪽 마법진이 문제였어. 누군지 몰라도 참으로 멍청한 놈이야. 이렇게 한 줄만 그으면 불필요한 마나가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건만 이걸 몰라서. 쯧쯧.'

다른 마법사들이 보면 입에 게거품을 물고 나를 말릴 것이다.

한 번 완성된 마법진은 만든 자가 아니거나 모든 것을 통달한 대마법사가 아니면 함부로 만지지 않는 것이 이치였다.

스스슥.

그런 이치를 개무시하며 스슥 미스릴 접합기의 액체를 뽑아내며 마법진의 부족한 부분을 완성해 갔다.

'호오, 이런 원리도 있었네.'

엄청난 화력을 만들어내는 마법 화로답게 마법진은 매우 복잡했다.

화염 마법진에 제어 마법진, 감속 마법진 등등 수십여 개의 마법진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었다.

그렇게 마법진의 흐트러진 부분을 수리해 가면서 나도 몰랐던 사실들을 하나둘씩 깨달아갔다.

머릿속에 주입된 지식과 직접 눈으로 보고 깨닫는 지식은 천양지차였다.

'아... 정말 대단하다!'

내 사기가 들통날까 봐 드워프들을 마법진이 있는 곳에 못오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혼자서 마법진을 감상하며 수리하는 와중.

벅찬 감동이 가슴에 물밀 듯이 들어찼다.

'6서클 마법 공식에 이것을 대입하면.... 이것은!'

콰광!

막혀 있던 둑이 터지듯 머릿속을 헤집기 시작하는 수많은 마법 수식들.

마법진과 어울리며 마법 수식들은 자신들만의 마법을 펼쳐 갔다.

위이이잉 위이이잉.

눈을 감았다.

'서, 서클 벽이 무너지려 한다!'

언제 올지 몰라 전전긍긍했던 6서클 마법의 벽.

급히 마나 호흡법의 자세를 취하며 마법 지식들이 머릿속에서 뛰놀게 놔두었다.

1서클 파이어 마법과 결합된 파이어 버스트 마법진이 서로 겹쳐지며 6서클 파이어 익스플로젼 마법으로 변형이 되어가는 과정이 보였고, 4서클 프로스트 링 마법이 아이스 볼 마법과 합쳐져 7서클 대범위 블리자드 마법으로 펼쳐지는 환상이 보였다.

'아....'

하나와 하나가 결합되어 둘이 아닌 셋과 다섯, 열이 되는 마법의 놀라운 변형력.

그동안 상식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파괴되며 새로운 마법 수식들이 생성, 수립, 정리되어 갔다.

콰드드드득.

그리고 병아리가 알을 깨고 세상에 나오듯, 5서클에 머물던 마나 서크링 깨뜨려지며 또 다른 모습으로 변형되었다.

정말 언제나 예상치 못한 가운데 찾아오는 마법의 깨달음.

부르르르.

온몸의 진리의 희열에 떨었다.

마법사가 아니면 정말 맛볼 수 없는 뜨거운 깨달음의 맛.

콰과과과과과광.

어느 순간 머릿속에 뒤죽박죽 뛰놀던 마법 지식들이 핵폭발을 하듯 머릿속의 한곳에서 뭉쳐져 폭죽처럼 터져 나갔다.

지이이이이이이이이잉.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허리 부근에 생성되는 마나 서클.

하나, 둘, 셋.... 그리고 다섯을 넘은 여섯 개의 완벽한 느낌.

'됐다!'

꿈에서도 그리던 6서클 마법의 벽.

드디어 깨져 나갔다.

마법진을 연구하는 중에 찾아온 6서클의 깨달음.

눈을 떴다.

"하아...."

보였다.

5서클 마법사였을 때와 달리 보이는 세상.

세밀한 스케치로 그림을 그린 것처럼 공간에 떠다니는 마나의 입자가 보이는 착각이 들었다.

'감각이 더 정확해졌다!'

손을 들어 보았다.

분명 언제나 변함없이 주인을 떠난 적이 없던 손.

그러나 달랐다.

내가 내 손을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손이 나를 조종하는 것처럼 정확하고 확실한 느낌이 뇌를 타고 주르르 전신으로 흘렀다.

'이, 이게 6서클이구나'

이제야 실감이 되었다.

마나 홀이 하나가 더 생겼다는 단순한 수치가 아닌 온몸과 정신을 깨우는 마나가 주는 농밀한 감동.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기쁨의 웃음이 입을 열고 세상에 고함을 질렀다.

누가 있어 내 나이에 6서클 마법사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제국에서조차 6서클 마법사란 이유만으로 황실 소속의 마법사가 될 수 있고, 자작 정도의 작위는 능히 받을 수 있는 능력자.

더욱이 상단전 중단전, 하단전이 통합되어 있는 나의 마나량은 6서클이 아닌 7서클 마나량에 육박할 것.

이제 두려울 것이 없었다.

그 어떤 놈이라도 내 앞을 막아서면 박살 낼 자신이 있었다.

'돈 벌었다! 흐흐흐.'

그리고 모든 능력치는 돈으로 계산되었다.

6서클 마법사가 된다면 어지간한 마법진은 만들어낼 수 있었다.

동시에 나의 능력치 상승은 네루만의 힘과 직결되는 것.

이제 갈퀴로 돈을 쓸어 담기만 하면 되었다.

"무, 무슨 일이십니까!"

"카이어님!"

한참 멀리 떨어져 있던 이들이 놀라 달려왔다.

"하하, 아닙니다. 마법진 수리가 다 끝났습니다. 이제 마정석만 갈아 끼우면 됩니다."

"아... 그러시군요."

"휴우. 마나가 요동치기에 무슨 일이 일어난 줄 알았습니다."

족장 카시아르스와 네르포포, 그리고 자메르가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족장님, 어떻습니까. 오늘도 축제를 벌이심이."

"그러고 싶지만 맥주가 다 떨어져서...."

기쁨을 나누고 싶은 내 마음을 모르겠지만 놀기 좋아하는 족장 및 드워프들이 축제를 어찌 마다하겠는가.

하지만 맥주가 떨어졌다는 말을 하며 시무룩해지는 족장.

"자메르님, 부탁합니다."

"걱정 마십시오. 드워프님들이 드실 수 있는 맥주가 마차에 있습니다. 축제를 하셔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오오오! 정말 뛰어난 상인이구려. 하하하하. 그럼 뭐 볼게 있겠는가! 드워프의 친구가 드디어 마법 화로를 고쳐 준 영광스러운 날. 삶의 즐거움을 노래할 줄 아는 드워프라면 응당 축제를 즐겨야 하는 법! 모두에게 전하라! 오늘 축제를 열것이라고!"

"와아아아아아아! 족장님이 축제를 명하셨다!"

"축제다! 축제!!!!!!!"

축제라는 족장의 한마디에 또다시 거대한 지하 도시에 울리는 드워프들의 엄청난 함성.

그 광경에 자메르가 벙찐 표정을 지었다.

'오늘 먹고 죽는 거야! 인생 그까잇 거 뭐 있어! 움하하하하하!'

손에 수백만 골드가 나가는 마정석을 들고 마음껏 속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인생 뭐 없을 거 같지만 오늘 하루, 난 무지 행복한 놈이었다.

★★★★★★★★★★★★★★★★★★★★★

"으드득! 감히...."

참았던 분노를 겉으로 사정없이 드러내는 테스케.

정찰을 나갔던 용병 스카이나이트들이 정보를 전해 왔다.

약 2,000명 정도 되는 병사들이 드워프가 사는 마을 밑 평원에 상단 마차를 보호하며 있다고 하였다.

"크크, 카이어 그놈이 아주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군. 코르베인 상단과 본 마탑을 우습게 보다니...."

테스케만큼이나 살기를 뿜어내는 마법사 하크라인.

덴포스 성에서 당한 수모와 카이어라는 놈에게 당한 멸시는 죽어서도 잊지 못할 정도로 마법사의 자존심을 긁어버렸다.

"와이번이 몇 마리라고?"

"카이어라는 자의 와이번을 포함하여 다섯 마리 정도라 합니다. 그중에는 테미르 놈들의 와이번도 포함되어 있다 합니다."

분노도 잠시, 상인의 자세로 돌아온 테스케는 보조 상인의 말을 들으며 싸늘한 정신을 유지했다.

"가우스 마탑에서 도와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보답은 섭섭지 않게 해드리겠습니다."

"어차피 한 배를 탄 동지가 아니겠소. 힘껏 도와주리다."

"그런데 카이어라는 자가 누군가? 처음 듣는 놈인데 상단의 일을 방해할 정도로 능력이 있는 자인가?"

묵묵히 듣고 있던 드워프만 한 키의 안드라이크 부탑주가 큼지막한 머리통을 테스케에게 향하며 물음을 던졌다.

"뛰어난 자입니다. 몇 달 만에 네루만 평원을 삼킨 자입니다. 그리고... 놈은 반드시 죽여야 할 악마의 새끼입니다."

냉정하게 카이어를 평가하는 테스케.

'위험한 자다. 더 놔뒀다가는 상단, 아니, 대륙이 위험한 놈이다!'

아직까지 카이어가 드워프와 거래를 마쳤다는 정보는 없었다.

그러나 드워프가 카이어라는 자와 거래를 했다면 그 순간, 카이어고 나발이고 없었다.

상단에게 있어 돈은 곧 생명.

자신의 밥줄을 하나둘씩 빼앗기고 살아남은 상단은 대륙 역사상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런 까닭에 보이지 않는 암중에서 상단들은 끊임없이 그들만의 전쟁을 벌려왔다.

땅이 아닌 돈을 빼앗기고 빼앗는, 치열한 피보다 더 진한 전쟁을....

★★★★★★★★★★★★★★★★★★★★★

'대, 대박이다!'

말해서 무엇하랴.

드워프와 친구먹은 덕분에 밀을 비롯한 일체의 생필품은 착착 드워프가 만든 엄청난 고가의 명품들과 바꾸어졌다.

남는 게 시간하고 금속밖에 없는 드워프들.

먹고 자고 축제를 빼고는 인생의 낙이 없는 그들이 할 짓이라고는 무언가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것.

그리고 그 창조물들은 드워프 장인 정신과 합쳐져 인간 세상에서 오랜 세월 명품으로 자리 잡았다.

'저, 저 검 정말 죽인다!'

한눈에 봐도 싸늘한 예기를 줄줄 풍기며 검집째 파란 빛을 뿜어내는 검.

한둘이 아니었다.

족히 수백 자루가 넘는 명검이 드워프 창고에서 끄집어내져 밖으로 옮겨지고 있었다.

'저 갑옷들! 오오! 보석 세공품은 또 어떠한가!'

거의 인간들과 교류를 끊고 살다시피 한 드워프들이 인간 화폐가 무어 그리 필요하겠는가.

젊은 드워프들이 날라오는 큼지막한 맥주통을 보며 드워프들은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밖으로 옮겨지는 드워프 물건을 보며 침을 꼴딱꼴딱 삼켜갔다.

"와이번에 착용하는 미스릴 방어구도 마차에 실었네. 마법 화로가 고장 나는 바람에 겨우 다섯 개만 만들었어."

"하하. 괜찮습니다. 앞으로 자주 볼 사이에 그딴 것이 무어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그렇지. 친구 사이에 어찌 그런 것들이 중요하겠는가."

아이달의 제자의 제자라는 말에 나를 존경해 주던 카시아르스를 할아버지로 삼기로 했다.

그리고 카시아르스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자주 찾아뵙겠습니다. 제가 설계한 드라비트의 설계도와 합금이 있는데 함께 연구해 보고 싶습니다."

"오오! 새로운 설계도와 합금? 아직 인간계에 우리 드워프가 모르는 합금이 있단 말인가?"

금속에 미쳐 사는 드워프답게 눈을 번쩍 뜨며 즐거워하는 카시아르스와 그 옆의 드워프들.

반짝반짝 빛나는 눈동자가 유치원생들이 새로운 율동을 배울 때 보이는 것과 흡사했다.

'세상에, 이런 고마운 분들이 어디 있는가. 감사합니다. 어르신들~♬'

다시 한 번 마음속으로 고마움을 진하게 표현하며 자메르와 나는 드워프 도시 입구를 나섰다.

그그그그그그그극.

그렇게 거래가 무사히 끝나고 입구까지 마중 나온 드워프들과 아쉬운 빠빠이를 나누고 잠시 후 돌문이 닫혔다.

"카이어님! 존경합니다!"

드워프들의 모습이 사라지자 바로 고개를 팍 수그리며 존경을 표현하는 자메르.

"뭘 이 정도를 가지고.... 큼큼. 어서 갑시다."

어찌 나를 존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얼마 되지도 않는 물건들로 바꾼 엄청난 드워프의 명품들.

'흐흐. 최소 천만 골드는 벌었다!'

어지간한 대영지의 일 년 총 수입과 맞먹는 어마어마한 금액.

해적들에 이어 대박 2탄이 터진 것이다.

"걱정 마시고 저희 상단에 모든 물건 매매의 위탁을 맡기십시오. 정확히 20프로의 마진만 얻고 모두 돌려드리겠습니다."

대륙의 상단들은 보통 50프로 정도의 이윤은 아무렇지 않게 붙였다.

그러나 덩치가 덩치고 물건이 물건이다 보니 20프로 마진만 붙이겠다고 고백하는 자메르.

그의 몸에서 열정이 흘렀다.

그동안 드워프 물품이 없어서 대륙 5대 상단 중에서도 하위에 있던 루비스 상단을 최상급으로 레벨업을 할 수 있는 기회.

놓친다면 그놈은 머리에 똥만 찬 똥개 사촌일 것이다.

"우리 사이에 그런 게 중요하겠소이까. 와이번 미스릴 방어구 몇몇 물건만 빼고 모두 처분을 맡기겠소. 천만 골드만 주시오."

"하하. 카이어님의 이런 화끈한 매력에 전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습니다. 천만 골드를 지급하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루비스 상단ㄴ과 거래하는 모든 물품은 원가에서 10프로 마진만 붙이겠습니다."

"고맙소이다. 하하하."

형님뻘이지만 이제는 편하게 하대를 팍팍 했다.

아쉬울 것이 전혀 없었고 어차피 계급이 깡패인 것은 지구나 이곳이나 마찬가지였다.

'현찰은 준비됐고. 이제는 본격적인 영지 개발이다!'

병사들 정비도 대충 끝났고, 돈도 준비되었다.

그리고 이제 남은 것은 영지에서 몬스터를 몰아내는 대역사의 시작.

6서클을 이루고 나서부터 더 맑아진 머리.

팍팍 돌아가며 여러 가지 계획들이 주루룩 떠올랐다.

'응? 그런데 저 와이번은....'

기분 좋게 자메르와 하산하는 중에 저 멀리 보이는 와이번 세 마리.

'후후. 벌써 알아챈 거야?'

모든 거래가 끝마쳐진 상태.

두려울 것이 없었다.

내 앞을 막는 자, 6서클 마법사의 따끈한 파이어 볼로 엉덩이를 지져 버릴 참이었다.

★★★★★★★★★★★★★★★★★★★★★

척척척척!

용병들과 달리 군사 훈련을 제대로 받은 병사들의 발걸음이 기분 좋게 평원을 갈랐다.

히이이이잉, 히이이이잉.

있는 말 없는 말 다 긁어모아 만든 상행.

봄의 짧은 건기 덕분에 평원은 말라 있었고, 마차는 무리없이 도시 덴포스를 향해 이동했다.

쉬이이이이이익!

'이놈들이 한 번 해보자는 거지?'

코르베인 상단이 우리가 지나갈 방향에 진을 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놈들의 총 와이번은 스물세 마리. 조금 아쉽군.'

오라크 성에 있던 아홉 마리 와이번을 불러들였다.

아무리 나라 해도 스물세 마리는 겁나는 숫자였다.

'최대한 기사들의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한다.'

하나같이 내 피와 같은 스카이나이트들.

나를 향한 그들의 충성 맹세 소리가 아직도 귀에 울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그 대가로 그들 모두를 내가 꿈꾸는 영광스러운 미래로 이끌어야 했다.

네루만의 영주 카이어.

난 네루만의 주인이었다.

★★★★★★★★★★★★★★★★★★★★★

"와이번 간의 전투가 벌어지면 바로 용병들을 돌격시키시오."

"꼭 이래야 하겠습니까. 저희야 돈을 더 받아 할 말은 없지만 자칫 바즈란 제국과 의라도 상한다면...."

지금껏 잠자코 있던 헤르스 용병단의 세들리안 단장이 조심스럽게 다시 한 번 권고를 하였다.

전투의 대가로 와이번을 구입할 수 있는 200만 골드가 넘는 현금에 포획된 물건의 반절 이상의 획득권을 얻는 용병단.

사실 말도 안 되는 전투였다.

용병 스카이나이트들만으로도 충분하건만 가우스 마탑에서 직접 날아온 세 명의 마법사들은 실로 두려운 존재였다.

거기에다가 일반 병사들쯤은 찰나지간에 도륙시킬 수 있는 블레이드를 다룰 줄 아는 용병들 500명.

상대가 안 되는 전력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바즈란 제국의 귀족이자 네루만의 영주로 임명된 자로 소문난 자였다.

자칫 제국과 분쟁이라도 일어나면 상단을 떠나 용병들도 골치가 아플 것이었다.

"모든 것은 내가 책임질 것이오. 단장은 계약서대로 움직여만 주면 될 것이오."

루비스 상단이 드워프와 계약을 끝마치고 마차에 가득 드워프 물품을 실어 오고 있다는 보고에 테스케의 이성은 툭하고 끊어졌따.

어찌 그라고 상행이 아닌 이런 전투를 하고 싶겠는가.

하지만 이제는 그 어느 곳도 도망갈 구멍이 없었다.

'죽여 네놈의 뼈를 씹으리라!'

인생에 있어 가장 비참함을 맛본 테스케.

자신이 지금껏 저지른 오만은 생각지 않고 오직 카이어에 대한 원한만 생각했다.

파라락!

"부, 부단주님, 드디어 놈들이 나타났습니다."

상공을 배회하고 있던 스카이나이트 한 명이 붉은 기를 흔들었다.

"공격을 명하시오! 지금 바로!"

쓴 입맛을 다시고 있는 세들리안에게 명령을 내리는 테스케.

이미 하크라인은 마탑에서 날아온 와이번에 탑승한 상태였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카이어의 몸통을 박살 내겠다는 테스케는 마법사를 내리고 본인이 직접 나섰다.

'휴유.... 어쩔 수 없군.'

길게 한숨을 내쉬는 세들리안 단장.

계약서에 명시된 대로 이제는 전투를 치를 수밖에 없았다.

'그자, 강한 자다. 결코 만만한 자가 아니야.'

용병으로 잔뼈가 굵은 세들리안.

속을 알 수 없는 웃음을 짓고 있던 카이어의 모습을 생각하자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네루만을 홀로 평정했다는 소문에 역시 소문은 믿을 게 못 된다고 생각한 그였지만, 막상 카이어를 보자 마음이 차갑게 식는 것을 느꼈다.

강자.

놈은 정말로 강자였던 것이다.

★★★★★★★★★★★★★★★★★★★★★

쿠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창공을 뒤덮는 살기를 감지한 베베토가 길게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키오오오오오오오!

키루루루루루루루!

그 뒤를 이어 아홉 마리의 각기 다른 와이번들이 울음을 토했다.

인디언들이 전투에 나서기 전 목소리로 용맹을 증명하듯, 와이번들은 전투 의지를 불태웠다.

'결국 죽기로 작정했군.'

큰 이권 사업임이 분명했지만 사업이라는 것은 언제 상황이 바뀔지 모르는 승부의 세계였다.

오늘 석유 값이 오른다고 몽땅 사서 비축하면 내일 갑자기 폭락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

언제까지 독점적으로 장사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어리석은 상인들만의 특권이었다.

그리고 이곳 네루만은 나의 나와바리.

결코 공짜로 내 것을 가져가지는 못할 것이다.

과거에는 어떠했을지 모르지만 앞으로 내가 있는 한 영원히.

스윽.

손을 들어 올렸다.

쉬익!

그리고 힘차게 공격 대형을 갖추며 날아오는 적을 향하여 가리켰다.

편대 공격 명령.

파라라라라라라락.

와이번들의 힘차게 날개 치는 소리가 투구 사이로 들려왔다.

'모두 무사하라. 나의 기사들이여....'

많은 시간 함께하지 못했고, 밥 한 번 제대로 먹은 적 없지만 지금 날고 있는 스카이나이트들은 다시 태어난 나만의 기사들.

결코 그들을 잃고 싶지 않았다.

"베베토, 가자!"

쿠오오오오오오오!

내 명령에 힘차게 날개를 펄럭이며 앞으로 튀어나가는 베베토.

베베토의 역동적인 날개 근육의 느낌이 온몸으로 전해졌다.

짜릿한 긴장.

스륵.

블레스트 스피어를 손에 들었다.

'오늘 또 하나의 역사를 만들어주마! 나, 카이어의 대전기를 말이다!'

사정거리 안에 들어온 와이번.

팍!

허공을 가르며 날아가는 스피어의 엄청난 스피드의 궤적.

파바바밧.

그리고 나를 향해 날아오는 스피어의 물결.

한눈에 봐도 십여 발 이상.

척척!

양손에 들린 스피어!

쇄애애애애애애애액.

나를 믿고 베베토가 날아오는 스피어를 향해 정면으로 돌진했다.

시작된 싸움.

이제 그 누군가 죽어야 끝이 날 것이었다.

★★★★★★★★★★★★★★★★★★★★★

"헉...."

"으으...."

전장에서 나름 싸움질 좀 했다는 용병들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23대 10의 와이번 전투.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이 아니었다.

영지전이라고 해야 잘해야 열 마리 정도가 전부였고, 30마리 이상이 싸우는 전투는 국가 간의 전투라야 볼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오늘 용병들은 예견치 못한 창공의 전투를 관람할 수 있었다.

엄청난 속도로 서로를 향해 날아가며 블레스트 스피어를 날리는 스카이나이트들.

누구 편을 들 수도 없었다.

스피어의 흔적을 눈으로 따라가는 그 순간 이미 전투는 시작이자 중반을 달리고 있는 것이었다.

"헛! 저럴 수가!"

"위험해!!!!"

그리고 보이는 한 장면.

검은 바탕에 황금 줄무늬의 와이번이 앞으로 튀어나왔고, 곧 그 와이번을 향해 열 개의 스피어가 바람을 가르며 달려들었다.

서로 간의 거리는 약 2.5킬로.

정확한 사정거리는 아니었지만 숫자로 밀어붙인다면 거리는 무의미한 순간.

용병들의 눈은 모두 황금 줄무늬 와이번을 향했다.

번쩍.

피하지도 않고 날아오는 스피어를 향해 맨몸으로 돌진하는 와이번.

스피어가 와이번의 몸에 거의 다다라 이제 피할 수 없다고 모두 생각하는 그 순간.

갑자기 용병들의 눈에 멀게 할 정도의 거대한 빛의 파장이 창공에서 폭발하였다.

콰과과과과과광!

"....."

강렬한 빛에 순간 눈이 멀어 상황을 살필 수 없었지만 강렬하게 터지는 폭음.

천둥이 몰아치는 굉음에 용병들은 눈을 비비며 급히 하늘을 살폈다.

"저, 저럴 수가!"

"오오! 세상에!"

그리고 보았다.

스피어의 파도를 헤치고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며 용병 와이번을 향해 스피어를 날리는 한 남자의 모습.

끼아아아아아아악.

어느새 한 마리의 와이번이 몸통에 스피어를 맞고 처절한 비명을 흘리고 있었다.

파앗!

그리고 그때 등장하는 은빛 새 한 마리.

"정, 정령이다!"

"슈, 슈리엘이 나타났다!"

용병들의 입에서 놀란 외침이 사방을 울렸다.

블레스트 스피어를 헤집고 천신처럼 날아가는 한 남자.

그 남자 곁에서 은빛 날개를 퍼덕이는 바람의 정령 슈리엘.

용병들의 머릿속에 모든 광경이 똑똑히 파고들었다.

누가 뭐랄 것 없이 본능은 그 남자의 뒤를 따르게 만들었다.

★★★★★★★★★★★★★★★★★★★★★

번쩍!

까가가강!

용병들은 달랐다.

자신들이 날린 블레스트 스피어를 마법으로 날려 버리고 나타난 나를 보고 놀라는 와중에도 와이번 방어구에 장착된 실드 마법을 본능적으로 펼치는 용병 스카이나이트들.

내가 날린 스피어가 실드에 부딪치고 방어구에 작렬하며 튕겨 나갔다.

'제법인데. 후후.'

생사의 대결이었건만 마음은 넓은 바다를 보듯이 평안했다.

사방에 날개를 퍼덕이는 적 와이번들밖에 없었건만 두렵지 않았다.

"슈리엘, 가서 물어!"

파아앗!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소환된 슈리엘이 공간을 갈랐다.

콰직.

쿠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엑!

몇 번의 전투 경험을 살려 가장 아프고 중요한 곳을 알아챈 슈리엘이 방어구와 날개를 연결하는 근육을 힘껏 물었다.

그리고 터지는 와이번의 처절한 비명.

고통에 빙글빙글 돌며 슈리엘을 떼내려 하였지만 그것은 자신만의 소망.

말 잘 듣는 불독처럼 한 번 물은 슈리엘은 내가 떨어지라는 명령을 내릴 때까지 그대로 있을 것이다.

쇄애애애애애애애액.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대형을 다시 잡은 스카이나이트들이 블레스트 스피어를 또다시 날려왔다.

이제는 정면이 아니라 위와 밑에서 동시에 공격해 오는 스피어.

'너희들에게 보여주마. 진정한 마법의 위력을!'

이때를 위하여 메모라이즈해 두었던 6서클 마법.

다른 와이번을 위하여 베베토는 방어구를 착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난 그런 베베토를 위하여 준비해 두었다.

"배리어!"

위이이이이이잉!

마법 시동어가 펼쳐지고 공기가 압축되듯 내 안의 마나와 순식간에 결합한 대기의 마나들.

반투명한 원형을 이루며 베베토를 감쌌다.

쾅! 쾅! 콰과과과광!

그 순간 실드 마법의 강화판인 배리어 마법을 두들기는 스피어들의 물결.

결코 뚫리지 않았다.

'이걸로 엿이나 사드세요!'

공격을 가볍게 막아내고, 그 순간 300미터 앞에 나타난 두 마리의 와이번.

아니, 스카이나이트.

들고 있던 스피어를 힘껏 날렸다.

쉬이이익.

순식간에 공간을 압축해 가는 스피어.

퍼억!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환청처럼 스카이나이트의 몸통을 비집고 들어간 스피어의 비명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넷!'

순식간에 네 마리의 와이번이 전투 불능 상태에 빠졌다.

그리고 그때, 후방에 있던 세 마리의 와이번이 보였다.

쇄애애애애애애애액.

번쩍!

지이이이이이이이잉!

'마법사!'

놀랍게도 나를 향해 날아오는 것은 한 발의 스피어와 두 개의 마법.

6서클 플레임 케논과 라이트닝 스트라이크!

피할 수가 없었다.

생각지도 못한 마법사들의 공격.

씨익.

두려움 대신 피어나는 차가운 미소.

그리고 머리에 떠오르는 한 마법.

위이이이이이이이잉.

100퍼센트 풀가동된 마나홀.

"기가 라이데인!"

촤악 손을 펼치며 터져 나오는 마법 영창.

치지지지지직.

순식간에 지름 2미터의 푸른 원형의 구체에 모여드는 전격의 기운들.

콰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릉!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내 의지를 따라 공간을 날아가는 번갯불들의 작렬.

콰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광!

투구를 울리는 엄청난 폭발음.

쇄애애애애애애애애애액.

지상으로 급격히 날개를 꺾는 베베토.

'하아....'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마음껏 펼친 6서클 마법에 심장은 미친 말처럼 뛰었고, 피는 거꾸로 돌며 나를 몽환 세계로 이끌었다.

여한이 없었다.

누가 뭐라 해도 이 순간, 난 마음껏 창공을 희롱하였기에.

★★★★★★★★★★★★★★★★★★★★★

"...이, 이럴 수가...."

"마, 말도 안 돼...."

멍하니 와이번의 동선을 따라가다 보게 된 엄청난 광경.

붉은 화염과 작렬하는 마법 번개들의 폭풍.

난생처음 본 6서클 마법사들의 공전절후한 창공의 대결에 용병들은 입을 헉하고 벌렸다.

쇄애애애애애액.

엄청나게 몰아치는 전격의 파장 속에서 한 마리의 와이번이 지상으로 급격하게 떨어져 내렸다.

아니, 그 뒤를 이어 빙글빙글 돌거나 고개를 꺾은 채 추락하는 세 마리의 와이번.

꿀꺽.

누군가의 입에서 마른침이 넘어갔다.

단 한 번의 대결로 대륙을 뒤흔드는 가우스 마탑의 와이번들이 격추를 당한 것이다.

쉬이이이익.

와이번들이 그렇게 추락하는 사이, 마법사 한 명이 플라이 마법이 걸린 에어 플레이트를 이용해 허공을 날았다.

쿵! 쿵! 쿠궁!

그리고 들려오는 세 개의 충격파.

".....??"

분명히 떨어진 것은 네 마리였건만 들려오는 소리는 세 개.

용병들의 시선이 급히 아래를 향했다.

그러나 100미터 앞의 얕은 구릉에 가려 보이지 않자 고개를 힘껏 빼 드는 용병들과 상인들.

"으헉!"

"으악!"

누군가의 비명이 터졌다.

쇄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액.

그리고 그 비명의 뒤를 이어 모습을 드러내는 거대한 검은 동체.

용병들과 상인들을 덮칠 듯 지상 위를 바짝 날았다.

"피, 피하라!!!!!!!!"

"도망쳐!!!!!!!!"

거대한 검은 날개를 활짝 펴고 지상에 강림한 사신처럼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는 물체.

검은 바탕에 황금색 줄무늬의 와이번.

놀랍게도 마탑의 와이번들을 모두 격추시킨 카이어라는 자의 와이번이 마법의 폭풍 속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 있었던 것이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리고 대지에 울리는 커다란 광소.

와이번 위에 당당히 서서 한 손에는 고삐를 다른 한 손에는 블레스트 스피어를 든 한 남자가 붉은 망토를 펄럭이며 날고 있었다.

모두의 뇌리 속에 잊히지 않는 전설의 그림자가 되어서....

★★★★★★★★★★★★★★★★★★★★★

"어찌 되었단 말인가! 어찌!"

주군의 생사에 가슴이 터져 버릴 것 같은 데르발.

통신구 앞에서 두 손을 모으며 공포의 시간을 보냈다.

'신이시여....'

답답한 마음에 신을 불렀다.

무신론자에 가깝게 살아온 삶이었기에 신을 찾는 일이 드물었지만 주군을 만난 이후로 신을 항상 가까이하며 살았다.

그 정도로 주군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지금도 얼마 되지도 않는 스카이나이트를 이끌고 스무 마리가 넘는 와이번과 전투를 벌이고 있을 주군.

언제나 무모하다 생각하고 있었건만 주군은 기적처럼 승리를 만들어내었다.

그리고 오늘 또 하나의 승리를 맛보리라 믿었지만 데르발은 두러웠다.

부모님 없는 삶은 생각해 보았지만 주군 없는 인생은 전혀 그려지지 않았던 것이다.

똑똑.

"데르발님!"

"무슨 일인가!"

밖에서 들려오는 노크 소리와 병사의 붊,

신경이 예민한 데르발이 평소와 달리 날카롭게 물었다.

"영주님의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손님?"

영주의 손님이라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데르발.

그가 알기로 주군을 찾아올 손님은 이 대륙에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끼이익.

마법 통신실의 문을 열었다.

'응?'

열자마자 병사들과 함께 있는 한 존재를 볼 수 있었다.

'여자?'

놀랍게도 주군의 손님은 여자.

로브를 깊게 둘러쓰고 있어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로브 밖으로 드러난 날씬한 자태에 여자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누구신지....?"

조심스럽게 묻는 데르발.

스르륵.

그 물음에 살포시 로브를 하얀 두 손으로 걷어내는 여인.

"아...."

"....."

수줍게 드러나는 놀랍고도 순수한 미모.

데르발과 병사들의 눈은 놀람으로 순간 부릅떠졌다.

"자비의 손길이 함께하시기를.... 네르안님의 부족한 종 아르미스가 카이어님을 뵙기를 청합니다."

성스러움이 가득 묻어나는 목소리로 카이어를 찾는 신의 사제.

데르발의 눈동자를 바라보는 아르미스의 눈동자는 묻고 있었다.

카이어, 그가 지금 어디 있냐고....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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