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세기 대마법사-58화 (58/221)

제58장 돈 먹는 하마 같은 영지

"정병들을 육성한다."

"정병이라 하심은?"

"마나를 다룰 줄 아는 이들로 기마병을 육성할 것이며, 십부장 이상은 모두 블레이드를 사용할 수 있는 부대를 원한다."

"헉! 그, 그것은...."

바쁘기 그지없는 하루였다.

기사들이 있는 덕분에 쉽게 병사들을 인도받고 돌아온 창공단.

저녁 회의 시간에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빨리 군사적,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않으면 사방의 적들이 우리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그전에 먼저 힘을 길러야 한다."

원론적인 얘기지만 지금 반드시 필요한 부분.

데르발과 라이케르, 그리고 제니스를 비롯한 스카이나이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이 끝이 없네.'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판이었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홍길동도 아니고 베베토를 멀미나게 타고 돌아다녀야 했다.

'7서클 마법을 확 깨닫던지 해야지.'

워프 이동 마법진을 설치할 수 있는 7서클 마법사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아직 마음과 달리 서클 벽을 무너뜨릴 수 있는 깨달음은 찾아오지 않았다.

"정치, 경제, 군사, 문화, 예술, 환경! 네루만은 영지 모든 것들의 중심이 될 것이다. 그렇게 알고 경들은 최선을 다해주길 바란다!"

"명!"

내가 그리는 그림이 곧 이들이 그리는 그림일 터.

파라다이스를 완성하는 그날까지 전력 질주만이 남아 있었다.

"데르발, 행정학교 출신들에 대한 포섭은 시작했는가?"

"네, 주군. 루비스 상단 급통신을 이용해 몇몇 제국에 남아 있는 친구들에게 소식을 전했습니다. 곧 연락이 올 것입니다."

"라이케르, 정보 길드장은 잡아왔는가?"

"당연히 곱게 갑옥에 데려다 놓았습니다."

"수고했네. 그리고 경은 내일부터 마나에 재질있는 병사들을 선발해 놓게. 그리고 마법사 용병들을 포섭해서 정규 병사로 편입시켜 놓게."

"걱정하지 마십시오! 수당만 두둑이 주신다면 대마법사라도 끌어다 놓겠습니다."

기사의 작위를 받고서도 용병 버릇을 고치지 못한 라이케르.

아마 저렇게 살다 죽을 것이다.

벽에 똥 바르고 떼어 먹는 그날까지 여자, 돈, 여자, 돈 하면서 말이다.

"제니스 경, 혹시 네루만에 과거 광부를 했던 이들을 아는가?"

"네?"

"이왕이면 여러 가지 암석을 잘 파악하고 있는 능력자라면 좋겠는데."

"있습니다. 과거 광부였던 자들이 마을을 형성하고 살고 있는 곳이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그럼 내알 불러오도록 하게. 아주 중요한 일이니까 잘 데려오도록."

"명!"

'지시할 일이 한둘이 아니네.'

건설육성 게임도 아니고, 한 번 실수하면 리스타트도 할 수 없는 실전 영지 육성 전략.

있는 지식, 없는 지식 다 꺼내놓고 판을 벌려야 했다.

"데르발 경만 남고 모두 돌아가게."

"명!"

"아이고, 이렇게 쉴 시간도 없이 매일 굴리면 어떡합니까. 가불도 안 해주면서...."

투덜거리며 밖으로 나가는 라이케르.

그 모습을 제니스가 살포시 미소를 지으며 보고 있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적응을 한 것같이 보였다.

"주군, 너무 무리하신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되옵니다."

기사들이 나가자 데르발이 내 안색을 살피며 걱정을 해왔다.

"내 걱정 말고 자네 몸이나 살피게. 감기라도 걸리면 바로 내쫓아 버릴 테니까."

내 말에 빙그레 웃음으로 대신하는 데르발.

"영지 경영이 생각보다 쉽지가 않아...."

"주군께서는 잘하고 계십니다. 저보다 더 많은 행정적 지식과 통찰력을 보이시는 주군을 보면서 저는 진심으로 신께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런 주군을 모시고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신들께 말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살아봐, 이건 기본이니.'

주입식 교육의 세계 선진국 중에 한곳인 대한밈ㄴ국.

벼락치기 공부만 해도 영지 경영에 대한 제반 지식을 쌓을 수 있을 것이다.

"백성들은 어떠한가?"

"다들 만족하고 있습니다. 루켄스 자작이 워낙 악정을 했기에 주군이 하신 일들은 이곳 백성들의 희망이 되고 있습니다."

"최대한 불편하지 않게 편의를 봐줘. 그리고 호깃라도 백성들에게 해악을 끼치는 자들이 있다면 엄단하게. 백성들이 있어야 네루만도 경도, 나도 있는 것이니."

"주군의 말씀 가슴에 깊이 새기겠습니다."

나를 무슨 선지자급으로 대하는 데르발.

지금도 눈동자에서 '존경합니다' 라는 빛을 팍팍 뿌리고 있었다.

"그런데 의외로 재미가 있어. 이제 시작이지만 전혀 두렵지가 않단 말이야."

"주군이시니 가능하신 일입니다. 바즈란 제국도 포기한 이곳을 사람 사는 곳으로 만들려는 주군의 계획, 오직 주군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일 것입니다."

"하하, 데르발 경만 있으면 이렇게 힘이 나니 참 신기하지?"'

"그리 말씀해 주시니 한없이 기쁠 따름입니다."

친한 친척 누나라도 있으면 소개시켜 주고픈 데르발.

솔직히 데르발이 없었다면 이곳을 영지로 삼고자 노력하지도 않을 것이다.

"자네도 물러가게. 정보 길드 지부장이라는 자를 데려오고 말이야."

"그럼 편히 쉬십시오."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나가는 데르발.

'벌써 밤이 깊었네.'

집무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별들의 축제가 벌어진 하늘.

다른 것 다 떠나서 정말 자연 환경 하나는 끝내주는 곳이었다.

★★★★★★★★★★★★★★★★★★★★

"긴말하지 않겠다. 무조건적인 협조를 바란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하룻밤 감옥에 쳐넣자 바짝 쫄아 있는 정보 길드 네루만 지부장.

정보 길드 지부장이라는 직함과 어울리지 않게 30대 중반의 뚱뚱보 아저씨였다.

"이름이...."

"스미언스입니다, 영주님!"

눈치 하나는 빨랐다.

"내가 원하는 정보는 최대한 빨리 신속하게. 하지만 다른곳에서 나와 네루만에 대한 정보는 최대한 느리고 부정확하게 전달해 주면 되네. 쉽지 않나?"

"....."

내 설명에 작은 눈을 껌벅거리는 스미언스.

"불가합니다."

들어올 때와 달리 차분하게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스미언스.

"왜냐고 묻고 싶군."

"영주님 말씀대로 한다면 저희 정보 길드는 존재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기나긴 대륙의 역사 속에서 저희 정보 길드가 각 제국이나 왕국의 정보력을 따돌릴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 빠르고 신속한 정보 거래에 있습니다. 만약 지금 저를 죽이신다 해도 아마 다른 정보 길드원이 모든 것을 원하는 자에게 필 것입니다."'

'호오, 그 정도란 말이지.'

생각보다 확고한 정보 길드 지부장의 답변.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역사상 나와 같은 자들이 하나둘이 아니었을 테니.

"하하. 알겠네. 자네 뜻이 그러하다면 그리해야지."

".....??"

갑작스럽게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정보 길드 지부장.

"그럼 다시 한 번 부탁하지."

"부탁이라 하심은...."

"내가 원하는 정보를 세상 누구보다 빠르게 전달해 주는 것. 그것이 내가 원하는 부탁일세."

"걱정 마십시오! 가격만 정해지면 제국 황녀가 즐겨 입는 속옷 색깔도 알아올 수 있습니다."

'아놔, 이 아저씩 나를 변태로 아나....'

마음속으로 이는 작은 불만.

하지만 그 순간 떠오르는 바즈란 제국 황녀 아이지스의 얼굴.

사르르 나도 모르게 붉어졌다.

새파란 이팔청춘에게 그 정도 상상은 삶의 보너스였다.

"그건 필요없고.... 한 단체에 대한 정보를 알고 싶네."

"어떤 단체이신지...."

꼬리를 무리는 대답을 즐겨하는 뚱땡이 스미언스.

"금안의 사신 아이달에 대한 정보네."

"헉! 그, 금안의 사신!"

"아! 정확히 말하면 금안의 사신이 아니라 그가 사라지고 난 뒤에 아이달의 마탑 소속 마법사들이 남아 있는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면 어느 곳에 있는지 정확히 알고 싶네."

"그건... 특급을 넘는 초특급일 터인데...."

"선불로 3급 마정석 1개를 주겠네."

"초특급은 정보 길드 자체의 존립을 위협할 수 있는 정보를 의미합니다. 제국이나 왕국의 권좌를 찬탈하는 역모급이 특급 정보로 분류됩니다."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하지 않는 스미언스.

"정보에 만족하면 100만 골드를 일시불로 주겠네."

"음...."

100만 골드라는 말에 신음을 흘리는 정보 길드 지부장.

작은 영지의 일 년 총수입이라 할 수 있는 200만 골드에 달하건만 곤란한 표정을 짓는 스미언스.

"하겠습니다. 단, 기한은 적어도 다섯 달 이상 주셔야 합니다."

"하하. 기한은 넉넉하게 주겠네."

'제발 그놈들 있는 곳을 콱 물어와라.'

마탑의 협조를 얻어야 하건만, 그 호랑말코 같은 도적놈들과 거래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깟 마법 좀 배웠다고 사람 무시는 기본이요, 뒤통수 때리기는 옵션인 도둑들.

더럽고 치사해서라도 마탑과 손을 잡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생각난 스승 건달프의 마탑.

한때 대륙 모든 제국이나 왕국들이 알아서 뇌물을 바쳤을 정도라면 마탑 규모 또한 대단했을 것이다.

부자는 망해도 삼 년은 가고, 마탑은 망해도 100년은 간다는 이곳 속담처럼 그들이 이 대륙 어딘가에 살아 있을 것이라 믿고 싶었다.

"그런데 영주님은 누구십니까? 정확한 출생지도 없고...."

"왜 벌써 나에 대한 의뢰가 들어왔나?"

"그게... 그렇습니다. 1급으로 처리가 될 정도로 가격이 상승하였습니다."

'1급? 역모 다음이네.'

그리 나쁘지 않는 나에 대한 몸값.

"알려줄까?"

"네? 헤헤. 저야 그러면 고맙지요."

내 말에 화색을 감추지 않는 스미언스.

"알면 다치는 데도?"

"....."

"아니, 다치는 정도가 아니라 묻힐 수도 있어. 커다란 돌덩이에 매달아서 바다 깊은 곳에 아주 깊숙이 말이야."

"영, 영주님...."

기쁨도 잠시, 어느새 울먹이는 얼굴로 변한 뚱땡이 스미언스 지부장.

'흐흐....'

가끔씩 사악해지는 내 모습.

나도 몰랐다.

어느 것이 진짜 내 모습인지....

★★★★★★★★★★★★★★★★★★★★

위이이이잉 위이이이이잉.

"됐다!"

며칠 동안 고생하며 작업했던 마법진이 붉고 파란 빛을 뿜어내며 완성되었음을 고했다.

머릿속에 들어 있는 마법 지식 중 하나인 마나 집중기.

마나에 감응력이 존재하는 자들에게는 하늘이 주신 선물과 같은 물건.

다른 마탑은 어찌하는지 몰라도 건달프 사부의 마나 집중기는 몸소 체험해 보았기에 그 성능의 우수함을 입증할 수 있었다.

"일정 수준까지는 마나를 단시간에 확대할 수 있게 되었다."

네루만은 다 부족했지만 그중에서도 마나를 다룰 줄 아는 기사급이 너무 부족했다.

아무리 와이번과 합동 공격을 가한다 하더라도 몸빵하며 몬스터들과 대적할 보병부대의 핵심은 기사들.

그런 기사들의 실력을 최대한 살리고, 마나 감응 능력이 있는 자들을 단시간에 쓸 만한 기사급으로 육성하는 것이 시급했다.

"마법사들이 참 아쉽단 말이야."

마법진이 완성되었지만 내가 매일 운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격납고 중심에 자리 잡은 마나 집중기는 정품 3급 마정석을 사용하기에 한 번에 세 명씩 기사들에게 마나 집중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마법사만이 구동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더 문제는 마법사라는 존재가 씨가 말랐는지 별로 없다는 것이다.

"벌써 보름이 지났다. 이제 본격적으로 몬스터들을 소탕해야 하는데...."

몬스터들을 몰아내야 늦지 않게 파종을 할 수 있을 것이고, 파종이 되어야만 올 가을에 그나마 곡물 수입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 루비스 상단을 통하여 구입한 식량 대금이 자그마치 40만 골드.

50만이 넘는 네루만 영지민들이 딱 세 달을 버틸 수 있는 식량이 40만 골드였다.

"자급자족과 동시에 수입원을 창출하지 않으면 곧 파산할 것이다."

식량뿐만이 아니었다.

보름 동안 데르발이 수시로 보고한 네루만의 현실.

성벽과 전방의 요새 사수가 시급하였고, 병사들의 갑옷을 비롯한 일체의 소모품 또한 충원 내지 교체가 필요하다 하였다.

거기에 지난 여름 유실된 강둑을 보수해야 하며, 상인들이 안전하게 통행할 수 있도록 도로 공사 및 안전 확보도 긴급을 요한다 하였다.

예전에 막연히 예측했던 일들이 현실이 되어 나를 찾아왔다.

"한국은행도 아니고 어디서 돈을 팍팍 찍어내야 할 터인데...."

이런 네루만의 비참함 속에서도 골수를 쪽쪽 빨아먹었던 루켄스 자작.

정말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금은 고사하고 당분간은 빈민 구제 활동을 벌여야 했다.

"오늘부터 바로 기사들을 투입한다. 마나에 소질이 있는 병사들 중에서도 잘만 추스르면 100명 단위는 넘게 나오겠지."

아직 정식으로 병사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내지 않았지만 조만간 나이가 들거나 전력에 도움이 안 되는 병사들은 각 마을로 돌려보낼 것이다.

그곳에서 예비군 형식으로 마을을 보호하며 생산적인 일에 투입할 것이다.

"지금쯤이면 편지가 도착했으려나...."

한 여인을 생각하며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그러나 신전들을 생각하면 와락 인상이 구겨졌다.

돈이 안 되는 곳이기에 모두 떠난 신전들.

이런 곳일수록 신의 일꾼들이 더욱 모여 신의 자비를 베풀어야 하건만, 이곳 대륙도 대한민국과 다를 바 없었다.

스님은 없고 땡중 천지요, 목사님은 없고 돈에 눈 먼 먹사들만 사방에서 아우성인 대한민국.

신의 자비를 모르는 자들이 어찌 신을 팔아먹고 살 수 있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양심이라는 놈들이 살아 있다면 인간의 탈을 쓰고 그렇게 살면 안 되었다.

"마탑 녀석들, 당분간은 조용하겠지 크크."

며칠 동안 지하 갑옥에서 생고생하였던 가우스 마탑의 올토이스.

아무리 마탑이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하더라도 영지와 전면전을 벌일 수는 없었다.

기껏해야 고위 귀족이나 황제에게 간하여 벌주는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이곳 네루만에서는 황제 할애비가 와도 안 되었다.

아무것도 해준 것 없으면서 권리만 주장하려 한다면 아구창을 아작 내버릴 것이다.

가우스 마탑의 부지부장이라는 놈이 찾아와 며칠 사이 몇 년을 늙어버린 올토이스를 데려갔다.

유감이라는 전언과 함께 앞으로 내 모든 일에 협조할 수 없다 말하던 마탑들.

언젠가 날 잡아서 깡그리 영지 밖으로 쫓아내 버릴 참이었다.

"루알 산맥 쪽에 코비란 산맥보다 더 많은 광산들이 있다, 이거지.... 그런데 문제는 그곳에서 버틸 수 있는냐인데.... 광산을 개발하려면 광부들뿐만 아니라 경비병들도 꽤 있어야 할 터인데."

예전 광부들을 수소문해서 과거 광산들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그러자 광부들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이야기들.

금광, 은광뿐만 아니라 마정석이 나오는 광산도 있었다고 한다.

다만, 그것들을 채굴하기 위해서는 낮이고 밤이고 쏟아지는 몬스터들을 막아내야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돈이 될 만한 것들이 사방 천지에 있지만 몬스터들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네루만.

준비되는 대로 대대적인 청소를 시작하리라 마음먹었다.

그그그, 그그그그.

"응? 이건 무슨 소리야?"

마법진을 완성하고 밖으로 나가려 할 때, 묵직한 무언가가 끌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히이이잉, 히이이잉.

힘겨워하는 말들의 울음소리.

"뭐야?"

호기심에 격납고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

'엥? 저건 또 뭣이야?'

일단의 병사들이 큼직한 네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 위에 무언가를 끌고 왔다.

'로봇??'

놀랍게도 마차 위에 실려 있는 물건은 길이 3미터 정도 되는 쇠로 만들어진 로봇이었다.

만화에서 보던 잘생긴 놈이 아닌, 투구를 착용하고 녹이 쓴 투박한 몸체를 소유한 로봇의 모습.

생각지도 못한 물건이었다.

"오랜만에 드라비트를 보네."

"아직도 남아 있다니."

'드라비트!'

드라비트라는 말을 듣자 갑자기 좌르륵 생각나는 설명.

'공성용 아이언 골렘으로 한때 전장의 필수품이었지만, 파괴력이 강회된 블레스트 스피어의 등장으로 사라진 골렘이라 이거지.'

설명뿐만 아니라 여러 장의 마나 회로도와 설계도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특히, 제법 속력을 낼 수 있는 최신형 골렘의 설계도도 그려졌다.

"어디서 가져온 것인가?"

"네, 영주님! 가데인 성의 물품들을 정리하다 찾아냈습니다."

루켄스 자작이 사용하던 가데인 성은 기초 방어를 하는 백인대를 제외하고 모든 물건들을 끄집어내라 명했다.

네루만 백성들의 피를 짜서 이루어진 성이었기에 팔 수 있는 것들은 모두 팔아 식량 비용에 충당하라 명령을 내렸었다.

'호오, 쓸 만한데?'

이것저것 부족한 네루만.

골동품이고 뭐고 사용할 만한 것은 다 재활용해야 했다.

그리고 내 머릿속을 반짝 스치고 지나가는 기가 막힌 한 생각.

"이 한 대뿐인가?"

"아, 아닙니다. 다섯 기 정도의 드라비트간 녹슨 상태로 더 있습니다."

병사들을 이끌고 있는 백부장이 괜한 짓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수고했네. 잠시 쉬었다가 나머지 드라비트를 모두 가져오게."

"명!"

수고했다는 말에 백부장의 얼굴이 활짝 펴쳤다.

'잘만 하면 트랙터 부대를 소유하겠네. 크크.'

마법이라는 놈은 사용하면 할수록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계 문명이 극대화되지 않아도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을 친환경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학문.

신이 인간에게 내려준 진정한 축복이 아닌가 싶었다.

★★★★★★★★★★★★★★★★★★★★

"주군, 이대로 가다가는 한 달 이내에 금화가 바닥날 것 같습니다."

어릴 때 할아버지가 있는 시골에서 보았던 트랙터용 쟁기를 밑그림하는 중에 데르발이 찾아왔다.

그리고 돈이 떨어져 가고 있음을 알려왔다.

'떠그랄, 내 이럴 줄 알았지.'

네루만 평원, 이름만 들으면 참 좋았다.

땅도 왕창 넓고, 물 좋고 산 좋고 거기다 자원까지 풍부하다.

그러나 문제는 돈을 수없이 꼬라박아야 가능하다는 것.

제국도 포기한 이 네루만을 이제 내가 맡아야 했다.

"경이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경제 활동은 뭐가 있겠는가? 이곳 네루만에서 말이야."

까놓고 돈 벌 방법ㅂ을 말해보라고 말하진 못했다.

이제 나는 품위를 지켜야 하는 네루만의 중니이었다.

"제일 먼저 식량의 안정적인 확보입니다. 계속 대륙에서 식량을 조달하기에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갑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광산 개발이 좋습니다. 예전, 제국 행정학교에서도 이곳 네루만의 광물 자원 매장량은 상당하다고 배웠습니다. 바즈란 제국은 이곳 말고도 리토르 산맥에 많은 광산이 있기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겠지만, 분명 다른 왕국들에게 없는 자원이 풍부할 것입니다. 그리고 중계 무역도 생각해 볼만합니다. 주군께서 케스미르 해적들과 친분을 유지하신다면 제법 큰 이득을 얻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물어보기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이 줄줄 의견을 내놓는 데르발.

역시나 쓸모 많은 인재였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군사적 전력의 확충입니다. 몬스터들을 몰아내지 않고서는 답이 없습니다. 거기에... 마탑과 신전의 적극적인 협력도 필수적입니다."

마지막에 마탑과 신전이라는 말을 하면서 내 눈치를 살피는 데르발.

내 까칠한 성격 때문에 마탑과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음을 알고도 아쉬움이 남는 것 같았다.

'신전의 도움이 가장 중요하다. 치료용 포션뿐만 아니라 신전이 들어옴으로써 영지민들은 안정감을 맛볼 것이다.'

악마 루켄스 자작을 물리쳤지만 나에 대한 신뢰가 그리 크지는 않을 것이다.

영주나 귀족들에 대한 영지민들의 뿌리 깊은 불신.

하루 이틀 사이에 사라질 종류가 아니었다.

"1골드 정도인 오크 부산물의 가격은 어떤 이유로 책정된 것인가?"

"가죽 값일 것입니다. 오우거나 트롤에는 못 미치지만 몬스터들 중에서는 오크 가죽으로 만든 장화와 래더아머는 초보 용병들이나 자경단에게 유용한 물건입니다."

"그렇군. 그런데 네루만에는 마수가 없나?"

"있습니다. 그러나 몬스터들만으로도 먹이나 충분하니 굳이 인간들을 건드리지 않는 것일 뿐입니다. 마수는 몬스터들과 달리 똑똑한 놈들입니다."

나도 알고 있었다.

아니, 아는 것이 아니라 한 마리 잡아보기까지 했었다.

"해산물은 어떠한가? 강에서도 대형 어종의 물고기가 잡히는 것으로 보아 어족 자원은 풍부한 것 같은데."

"그 점에 대해서 여러 자료와 이곳 어부들의 말을 종합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알아낸 바에 의하면 가을이 지나 겨울에 들어서면 로벤트 강을 따라 연어가 엄청나게 나타난다고 합니다. 동시에 여름과 가을철에는 마디르가 해안을 따라 남하한다 합니다. 물론, 다른 어종 또한 골고루 엄청나게 퍼져 있다 합니다. 1만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케스미르 군도의 해류 영향권이기에 상상 이상이라고 합니다."

'참치! 크크. 다 죽었어!'

데르발의 말은 띠링띠링 돈으로 계산이 되었다.

"문제는 물고기들만큼이나 많은 바다 몬스터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이곳 마수들은 더 위험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당연히 그런 위험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어찌 돈이 되겠는가.

'고기를 잡으면 어느 정도 식량 충당도 되고 돈벌이도 되겠어.'

바다 몬스터나 마수 따위는 위험거리도 아니었다.

그녀만 온다면 모든 것이 한 방에 해결될 것이었다.

"라이케르에게 전해서 오늘부로 선발된 기사들과 마나 능력자들을 데려오도록. 저녁 이후 하루에 세 명씩 말이야."

"그리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궁금한 점도 많을 것이었다.

직접 듣지는 못했지만 소문에 내가 마법을 사용한다 들을 것이건만, 꾹 참고 묻지 않는 데르발.

저런 기사가 필요했다.

내가 모래로 밀을 만든다 하더라도 믿는 그런 충성스러운 기사 말이다.

★★★★★★★★★★★★★★★★★★★★

치이이이익.

"클리어!"

파앗!

파이어로 뜨겁게 달구어진 드라비트의 몸통.

그 위로 클리어 마법을 펼쳤다.

치리리리리리리릭.

몸통에 붙어 있던 녹들이 마법으로 뜨겁게 달구어지다 클리어 마법에 밥솥에 붙어 있던 누룽지가 떨어지듯 몸체에서 분리됐다.

"깔끔하네."

때가 말끔히 벗겨진 드라비트의 깔끔한 몸통.

"마정석으로 구동되는 아이언 골렘. 스카이나이트 등장으로 그 효용성이 사라졌지만 나는 네가 필요하다.'

3미터가 조금 넘고 팔뚝이 내 허벅지만 한 강철 로봇.

과학과 기계공학이 그리 발달하지 않는 상태에서 이것을 만들어낸 이곳 마법사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었다.

"연금술과 금속학, 마법학이 만들어낸 걸작품이란 말이지."

녹이 제거된 깜장색 드라비트가 마음에 쏙 들었다.

"레비테이션!"

마법을 펼쳐 드라비트를 뒤집었다.

구형 기사 갑옷처럼 통 쇠로 만들어진 드라비트의 몸체는 관절도 두터운 통관 갑옷으로 보호되고 있었다.

"손가락은 열 개가 다 있지만 그리 유연하지는 않을 것 같단 말이야."

듣기로 과거에는 이 손에 엄청나게 큰 무쇠 망치를 들고 성문이나 성벽을 향해 돌진했다 한다.

화살을 비롯한 어지간한 마법 따위에는 꿈쩍도 안 했던 드라비트의 강력한 방어력에 공성전에서는 필수였다 한다.

그러나 스카이나이트가 날리는 블레스트 스피어에 꼬챙이 꿰인 고기 신세가 되어버린 후 지금까지 역사 속에 숨어 있었다.

덜컹.

등판에 있는 두꺼운 보호판을 열었다.

"구형 마나 회로도군."

그리고 보이는 마법 회로도.

마정석을 끼워 넣는 자리를 중심으로 20센티 정도 되는 사각 미스릴 회로판에 미스릴이 실처럼 연결되어 있었다.

한 번 연결되면 절단나지 않는 이상 지워지지 않는 미스릴 합급 회로도.

핸드폰에 금을 사용하듯이 중요한 마나 회로도에는 미스릴을 꼭 사용해야 했다.

"테스트 한번 해볼까?"

도대체 얼마의 세월을 처박혀 있었는지는 몰라도 녹이 벗겨진 상태는 양호했다.

"4급 정도면 충분하겠지."

머리에 들어 있는 지식에는 과거 2등급까지 사용한 드라비트도 있다 하였다.

그러나 스카이나이트의 움직이는 과녁판이 된 이후로는 그런 미친 짓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철컥.

달걀만 한 크기부터 어른 주먹 크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마정석.

일정 이상의 크기부터는 마나 출력이 증가하지 않기에 대부분 덩어리가 큰 마정석은 쪼개져 사용되었다.

어린아이 주먹만 한 투명한 마정석을 안전판을 끼워 넣었다.

위이이이이이.

마정석이 끼워지자 빠르게 드라비트의 전신으로 마나가 흘렀다.

스윽 손을 얹어 마정석에 내 마나를 동화시켰다.

타 마법사의 방해를 받지 않고 조종하기 위해서는 구동과 동시에 마나 동화 작업이 필요했다.

철컥철컥.

마나 동화가 끝나자 자연스럽게 보호판이 닫혀졌다.

그리고 안면의 투구가 착용되고 관절이 움직이며 쇳소리를 내었다.

"어이, 친구, 이제 일어나 보시지."

시대를 뛰어넘는 음성인식기술.

몇 가지 안 되었지만 마나 회로도에 기억된 명령어에 드라비트는 반응한다 하였다.

끼기기기기기긱.

일어나라는 말에 힘겹게 상체를 마차 위에서 일으키는 드라비트.

투구 사이로 파란 안광이 레이저 불빛처럼 흘러나왔다.

"앞으로 걸어봐."

인간보다는 못하지만 제법 관절을 움직이는 드라비트의 행동.

신기했다.

말로만 듣던 건담 프라모델을 소유한 것보다 더 기분 좋았다.

쿵쿵, 쿵쿵.

"오오! 잘한다!"

재미있었다.

저렇게 덩치 크고 말 잘듣는 로봇은 21세기에서도 쉽게 만들 수 없는 것.

장난감을 소유한 어린아이처럼 즐거운 마음이 들었다.

콰직. 쿵! 쿵! 쿵!

격납고를 뚫고 무식하게 밖으로 나가기 전까지 말이다.

"어어! 멈춰! 멈춰! 이 새대가리야!"

즐거움도 잠시, 새대가리라 부르며 드라비트를 세웠다.

'신형 마나 회로판을 장착하면 달릴 수도, 몇 가지 공격술도 추가할 수 있다 이거지.'

마법진의 정교한 축소판인 마나 회로도.

생각했던 것보다 창조적 재미가 월등했다.

"친구, 원래 자리로 들어가 푹 쉬게나."

끼기, 끼기기기.

말도 못하는 강철 골렘.

내 명령에 그 자리에서 눈을 감고 휴식 모드에 들어갔다.

명렁어에 원래 자리로 돌아가라는 입력어는 없는 것 같았다.

'기사들은 잘하고 있겠지?'

한심한 드라비트를 보고 발걸음을 옆 격납고로 돌렸다.

사람들과 와이번이 빠져나간 격납고 몇 곳을 마법 실험실로 삼아 사용하고 있었다.

네루만의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영주라는 직위.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행복감이 밀려왔다.

돈이 조금 많이 든다는 불편만 없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말이다.

★★★★★★★★★★★★★★★★★★★★

'숙면 모드네.'

삼각형의 마나 집중기 안에 있는 세 사람.

4등급 마정석을 사용한 마나 집중기 공간 안에는 마나가 회오리치고 있었다.

그리고 마나 호흡법을 펼치고 있는 기사들의 코와 전신으로 마나가 스며들고 있었다.

건달프 사부만 알고 있는 특수 마법진.

단시간에 블레이드 마스터를 만드는 그런 성능은 아니다.

그러나 평소 부족했던 마나 통로를 확장시켜 자신이 낼 수 있는 최상으로 마나홀을 확장시킬 수 있다.

'내일 몇 개 더 설치해야겠어.'

편안한 기사들의 얼굴을 보며 마음을 굳혔다.

최단기간 대륙 최강의 기사단을 만들어야 했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말이다.

'으갸갸! 오늘 하루도 보람찼단 말이야.'

임시적으로 루켄스 성에 보관하고 있던 식량들을 풀어 각 마을로 보냈다.

미래고 나발이고, 일단 먹고살아야 함은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함....'

소리 내어 하품을 하지 못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나마 창공단 방어는 완벽하게 되었단 말이지.'

시간이 날 때마다 창공단 둘레를 마법진으로 감싸 버렸다.

평상시에는 가동되지 않지만, 비상시에는 시동어만으로 엄청난 위력을 낼 마법진의 남용.

나만이 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그런데 6서클 마법공식이 마법진에 적용할 수 있다면....'

조용히 단장실로 돌아가는 길.

요 며칠 마법진에 빠져 있다 갑자기 마법적 지식들이 재해석되고 있었다.

뭐랄까?

복습을 하다가 발견 못한 오류를 찾아낸 이 느낌.

가는 중에도 머릿속에는 복잡한 공식들이 얽히고설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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