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세기 대마법사-53화 (53/221)

제53장 생각지도 못한 거래

"네, 네에!"

"어...어떻게 그런 일이."

"와우! 주군, 멋지십니다!"

"음...."

해적들과의 거래 조건에 대해 말하자 집무실에서는 네 마디의 각기 다른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그리 쓸모가 없는 성수가 천만 골드를 훌쩍 넘어 대어가 되자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었다.

"위험하지 않을까요? 자칫 해적들과 거래를 했다는 소문이 제국에 들어가면 귀찮게 될 수도 있습니다."

제니스가 신중한 표정을 지었다.

"귀찮게? 아니, 지놈들이 해준 게 뭐 있다고 지랄이야. 여차하면 독립해 버릴 것이야."

그동안 바즈란 제국에 쌓인 게 많은 듯 입에서 불을 내뿜었다.

"조용히 처리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야이크스 백작뿐만 아니라 이곳 백성들도 해적과의 거래를 가히 좋게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이런 일은 알려지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야."

"그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조용히 포장된 마차에 실어 밤에 항구로 이동한다. 어차피 해적들이 나타나는 바람에 수비하던 병사들이 다 덴포스로 도망쳐 왔으니 괜찮을 것이야."

그동안 얼마나 당했으면 해적들을 보자마자 도망쳐 온 새가슴 병사들.

내 손에 들어온다면 빡시게 굴려주리라 마음먹었다.

"그런데 그자들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제니스의 스카이나이트였던 베르케스가 해적들을 믿을 수 있겠냐고 물어왔다.

"물론 못 믿지. 그러니까 경들은 오늘 밤은 나와 함께 비상 근무를 할 것이야. 그리고 믿을 수 있는 병사들을 소집하도록. 그들과 일 처리를 할 것이다."

"명!"

내가 바보도 아니고 담보도 없는 저 신용불량자들을 어찌 믿을 수 있단 말인가.

"주군, 시급히 처리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대충 해적들과의 물물교환 이야기가 끝나자 데르발이 한무더기의 서류를 들이밀었다.

"루켄스 자작의 휘하 4,000명의 사병들이 죄수 신분으로 묶여 있습니다. 제니스 남작님의 사병들이 일단 감시를 하고 있지만 그들을 오랫동안 붙잡아둘 수 없습니다. 더욱이 기사 급들은 처리하기가 더욱 곤란합니다.  사병들과 달리 기사 급들은 마나를 다룰 줄 알고, 루켄스 자작에 대한 충성심 또한 남다릅니다."

'에휴, 벌써 일거리 천지네.'

대충 짐작은 했지만 강행군의 연속.

하지만 명령을 내려야 했다.

이곳의 최고 권력자는 바로 나였기에.

"루켄스 자작에게 적극적으로 협조한 기사들은 마나홀을 폐쇄하라. 동시에 악독한 죄를 지은 사병들도 함께 구금하라. 그들은 모두 노예로 삼을 것이다. 또한 사로잡은 사병들 중에 집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자들은 모두 귀향 조치하고, 남은 사병들은 제니스 남작 휘하의 사병들과 함께 제국군 군사편제에 따라 새로이 부대를 창설하라."

"명!"

공식적인 자리.

기사들이 가슴에 오른손을 대며 명령을 받았다.

"제니스 경, 현재 사병들의 월급은 얼마로 책정되어 있나?"

"일반 보병 병사들을 기준으로 한 달에 1골드를 지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사들은 50골드, 스카이나이트들은 1,000골드씩 지급하고 있습니다."

"루켄스 자작의 사병들도 그 정도 지급받았겠지?"

"아마 그럴 것입니다."

'월급 말고도 먹고 자고, 기타 등등 물품까지 한 사람당 2골드씩 잡으면.... 한 달에 최하 50만 골드씩 고정 지출이군.'

야이크스 휘하에 있는 네루만 평원 출신 사병들이 2만, 루켄스 자작과 제니스 남작의 병사들이 합쳐서 대충 5,000, 그리고 용병들의 숫자가 대략 1,000명.

이곳에 부임한 지 한 달도 안 되어 엄청난 병사들을 소유하게 되었다.

'엄청난 불균형이군.'

아직 자세히 조사하진 않았지만 이 넓은 네루만 땅덩어리에 인구가 많아야 50만을 넘지 않을 것이다.

50만의 인구수에 비해서 25,000의 병사들은 엄청난 숫자였다.

가장 힘을 쓸 이들이 군대에 있다는 것은 낭비였다.

'정예병을 육성해야 해. 그리고 나머지 병사들은 각 마을로 되돌려 보내 예비군으로 되돌리고....'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순수한 고삐리지만 그동안 섭렵한 삼국지와 수호지, 기타 등등 내가 좋아했던 역사 지식을 바탕으로 빠르게 정리해 갔다.

'문제는 일반 병사들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와이번을 확보 하느냐이다.'

아무리 겁대가리 상실한 몬스터라도 먹이사슬 최상부에 위치한 와이번을 만나면 모두 꼬리를 말았다.

그런 몬스터들에게 와이번만한 대항 무기는 없었다.

'데르발의 말처럼 마탑과 신전의 도움이 절실하다. 거기에 낙후한 시설들과 방어 시설을 정비하려면.... 휴우.'

빠르게 돌아가던 두뇌가 거기에서 잠시 멈추었다.

나 혼자 어찌하기에는 너무나 큰 땅덩어리와 인구.

초등학교 때나 중학교 때 공식 명함이라고는 반장 몇 번인 내가 다스리기에는 덩치가 너무 컸다.

'행정, 사법, 군사, 경제까지 실력자들이 필요하다.'

군사편제야 여기 있는 이들이 어느 정도 처리가 가능하겠지만 경제나 행정 쪽은 특히 문제였다.

"피곤할 터이니 오후까지는 잠시간의 휴식을 취한다. 나도 잠시 쉬어야겠다."

"흐흐. 당연히 그래야죠. 온몸이 찌뿌둥한 게 술 한잔 마시고 따뜻한 물에 몸 좀 담그고 싶습니다."

"그럼 저희들은 물러가겠습니다."

언제나 머릿속에 먹고 노는 것밖에 없는 라이케르가 술을 생각하는지 눈동자에 밝은 광채가 어렸다.

그리고 제니스를 비롯한 이들이 모두 집무실 밖으로 나갔다.

'거대 영지를 경영한다라.... 잘할 수 있을까....'

묵직한 마음으로 집무실 창밖을 보았다.

창공단 곳곳에 엉덩이를 깔고 누운 자유분방한 용병들과 그들 사이를 누비벼 즐겁게 놀고 있는 아이들.

창공단 안에 활기찬 봄기운이 전염병처럼 서서히 퍼져 나갔다.

"휴우...."

그러나 미소 대신 터져 나오는 한숨.

대한민국에 있었다면 아이들과 수학 공식이나 외우며 교실에서 밥이나 축내고 있을 나이.

그런 나에게 맡겨진 네루만 평원과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

정말 믿기지 않는 현실에 마음이 답답해 왔다.

나 하나의 결정으로 이제부터 이곳 백성들의 생사가 달려 있음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영주라....'

그리고 영주라는 이름값의 무게가 나를 감싸 안았다.

비록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나중에는 창대할 나마느이 파라다이스.

이제 개봉박두였다.

★★★★★★★★★★★★★★★★★★★★★

'이제 슬슬 올 때가 되었는데.'

날이 저물자 천막으로 가려진 마차 열 대를 동원하여 창고로 사용하는 격납고에서 성수를 실었다.

나름대로 비밀을 지키고자 입이 무거운 100명의 병사들을 동원하였다.

사실, 그들이 싣고 있는 물건이 성수라는 것을 병사들은 알지 못했다.

그저 명령에 따라 움직일 뿐이었다.

그리고 해적들의 등장에 겁을 먹고 아직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 항구의 선착장.

창공을 배회하는 제니스와 스카이나이트들의 보호를 받으며 크리시아를 기다렸다.

'온다!'

그때, 저 멀리 환하게 뜬 달빛을 받으며 등장하는 십여 마리의 와이번.

공격과는 무관하게 발에 물건들을 담은 커다란 꾸러미를 들고 있었다.

'호오, 물건들을 저렇게 이동시키는 방법이 있었네.'

배가 나타날 줄 알았건만 와이번이 물건을 들고 나타난 광경에 감탄을 터뜨렸다.

쿠오오오오오오!

와이번이 나타나자 저녁으로 소 한 마리를 잡아먹고 꾸벅꾸벅 졸고 있던 베베토가 나직한 울음을 토했다.

키오오오오오.

베베토가 남자다운 묵직한 울음을 토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어느 와이번이 하이톤으로 대답했다.

마치 동네 방앗간에서 은밀히 뻐꾸기 소리를 날리던 청춘 남녀처럼.

'쇼하고 있네.'

해적 와이번이 나타나자 긴장감이 감돌던 와중에 생쇼를 하는 두 마리의 와이번.

인간들의 긴장감 따위는 관심이 없었다.

파락 파락 파라락.

그 와중에 내 곁으로 착륙하는 한 마리 와이번.

달빛 속에서 확연히 눈에 띄는 하얀 바탕의 황금 땡땡이 무늬 와이번과 그 주인 크리시아였다.

휘이이익.

와이번이 착륙하자 가볍게 지상으로 몸을 날리는 크리시아.

전투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투구와 갑옷도 벗고 몸에 착달라붙은 검정 가죽 옷을 착용하고 있었다.

'휘이! 몸매 환상이네!'

절로 터지는 휘파람 소리.

에어 플레이트에 감춰져 있던 크리시아의 몸매는 예술 그자체였다.

170에 가까운 키에 신비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바다 빛깔의 긴 생머리.

거기에 나올 곳은 확실히 나와주고 들어갈 곳은 과감히 들어가 준 육감적인 몸매는 여린(?) 내 가슴에 불을 확 질렀다.

'이국적 미모란 말이야.'

달이라는 조명발에 드러나는 보기 좋게 선탠되어진 탄력적인 얼굴 피부.

입가에 짓고 있는 미소가 아주 매혹적이었다.

"호호. 많이 기다리셨나요?"

목소리도 훌륭했다.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는 짤랑짤랑 은방울 목소리.

듣는 이의 귀를 즐겁게 했다.

'나도 이제 여친을 만들 때가 된 것이야.'

밤에 피는 장미처럼 매력을 확실히 발산하는 크리시아에 가슴이 부르르 떨리자 불쌍한 내 청춘을 되돌아보았다.

개나 소나 다 있는 여친이라는 존재.

내 옆 자리가 아직 공석이라는 것은 말이 안 되었다.

"밤바람이 좋아서 기다릴 만했습니다."

속물은 아니지만 낮과는 달리 입에서 살짝 존댓말이 나왔다.

나보다 몇 살 누나인 미녀 크리시아에게는 비단결(?) 같은 내 마음처럼 부드러운 말을 하고 싶었다.

"그렇죠? 이 맘 때 불어오는 샤리크나는 저희 바다 사람들에게는 고마운 바람입니다. 겨울에 불어오는 카조프네의 종잡을 수 없는 변덕을 멀리 날려 보내고 언제나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샤리크나.... 짧고 달콤한 바다 사람들의 휴식 기간이랍니다."

나도 도서관에서 배웠던 대륙 기초 상식.

계절의 열두 여신의 아들과 딸들인 봄의 바람 샤리크나, 여름에 불어오는 에이온, 가을의 루차카트, 겨울의 카조프네까지.

특히 사계절이 뚜렷하다는 네루만에서는 그들과 필연적으로 만나야 할 것이었다.

'분위기 좋은데.'

낮에는 지난밤의 전투와 해적들에 대한 안 좋은 소문 때문에 마음이 닫혀 있었지만 밤에는 낮과는 달랐다.

잔잔히 불어오는 밤바람에 머리칼을 사라락 날리는 크리시아.

보아하니 머릿속에 칼과 노만 들어 있는 해적들과 달리 지적인 모습이 엿보였다.

"사람들 마음 같죠. 미래에 대한 희망에 차 있는 자들이 품은 봄 같은 마음, 거친 열정을 가진 이들이 주식으로 삼는 뜨거운 여름 바람, 그리고 풍요와 안락의 가을.... 춥고 배고프고 투쟁적인 겨울바람까지.... 어차피 인간과 자연은 다를 바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네...."

어디서 들었는지 잘도 주절거리는 내 말에 크리시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의 모습을 보였다.

"그건 그렇고, 물건들은 어떻게 가져갈 생각이십니까? 은밀히 처리할 일들은 신속하고 정확히 처리하는 것이 피차 좋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수송은 걱정하지 마세요. 말만 떼어내면 마차들을 저희가 가죽 끈으로 묶어 와이번을 통해 가져갈 것입니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 듯 크리시아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내가 오늘 인심 썼다 마차 값은 양보하마.'

낮과 같은 분위기였다면 마차 값까지 톡톡히 받아냈을 것이지만, 미인 앞에서 그렇게까지 쪼잔하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와이번 알에 대한 보증은 무얼로 하시겠습니까?"

하지만 계산은 계산이었다.

"그것 때문에 따로 할 말이 있는데...."

내 물음에 살짝 배꽃 같은 미소를 머금은 크리시아.

"....."

미인이 주는 즐거움에 눈동자는 호사를 누렸다.

"제가 보증으로 있으면 안 될까요?"

'헐!'

매혹적인 미소와 야릇한 눈길로 묘한 신호를 보내는 크리시아.

찌리리 전기에 감전된 듯 마음이 울렁거렸다.

'누나, 나 찍은 거야?'

미인에게 찍힘당한 자만의 흐뭇한 마음.

마음으로는 백번 크리시아를 환영하였다.

"하하. 농담도 잘하십니다. 전, 사람보다는 물질을 더 신뢰합니다."

그러나 미인이라고 해서 공과 사를 구별 못하겠는가.

물건은 환금성이 있지만 저런 미인은 그저 부담스러울 뿐이다.

그리고 아직 완성되지 않는 나의 파라다이스.

함부로 여인을 초청하고 싶지 않았다.

"에이, 실망이에요. 저 같은 인질이라면 무조건 승낙할 줄 알았는데."

장난기 가득한 얼굴에 살짝 토라진 목소리를 내는 크리시아.

어지간한 남자는 그 애교에 확 정신이 넘어갈 것 같았다.

★★★★★★★★★★★★★★★★★★★★★

'제법이야.'

왕국에서 최고 미인 소리를 들으며 자랐던 크리시아.

단번에 무 자르듯 자신의 농담 섞인 제안을 거절하는 눈앞의 남자에게 호감이 더 일었다.

들려오는 세작들의 정보에 의하면 통이 크고 화끈하다고 알려진 카이어.

그런 남자들은 대부분 정과 미인에 약한 법이건만 카이어란 자는 그런 부류가 아닌 것 같았다.

"다음에 승낙해 드리겠습니다. 지금은 아무리 봐도 아닌것 같습니다."

거기에 낮과 달리 정중하고 예의바른 모습.

능글맞은 귀족 같은 모습은 사라지고 기사도를 아는 바른 모습만 보였다.

"아니에요. 제가 잠시 실례를 한 것 같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조건으로 말씀하셨던 와이번 보호 방어구와 에어 플레이트 한 세트를 이행 보증 물건으로 맡길까 합니다. 어떠십니까?"

크리시아도 예의를 갖춰 레이디답게 조신하게 입을 열었다.

왠지 그렇게 말해야 할 것 같은 이 기분.

카이어라는 저 남자는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이였다.

★★★★★★★★★★★★★★★★★★★★★

'탱큐 베리 망치지!'

최상의 계약 조건.

비록 루켄스 자작 것을 날치기해서 빼앗은 것이지만 전혀 양심에 꺼리낌이 없었다.

도둑들이 모아놓은 보물은 빼앗는 자가 임자인 것이다.

"물건은 확인하지 않겠습니다. 앞으로도 자주 뵐 것 같은데."

"그 말씀 감사해요.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바다 쪽은 저희 왕국이 확실히 책임지겠습니다."

'꿩 먹고 알 먹고, 도랑치고 가재 잡고, 흐흐.'

크리시아의 말에 기분이 흐뭇해졌다.

당분간 전력으로 네루만 개혁 작업을 할 것이다.

그런 때에 해적들이 판치면 난감하건만, 알아서 예쁜 약속을 해주었다.

"휘이익!"

크리시아가 마나를 담아 휘파람을 날렸다.

파락 파락 파락 파락.

휘파람이 울리자 물건을 들고 상공을 배회하던 와이번들이 지상에 착륙하며 가죽으로 만든 커다란 자루를 내려놓았다.

타다다닥.

물건을 다 부리자 알아서 척척 말과 마차를 분리하는 스카이나이트들.

어느새 준비한 기다랗고 단단한 끈으로 마차를 튼튼하게 감았다.

"바다에 사는 몬스터 중에 파벤스라는 놈의 심줄로 만든 끈입니다. 어지간한 마법이나 블레이드로는 자를 수 없답니다."

내가 궁금한 눈길로 보자 친절하게 크리시아가 설명하였다.

그런 설명을 들으면서도 머리는 바삐 돌아갔다.

'내일부터는 정신없이 바쁘겠군.'

루켄스 자작이 사라진 네루만.

할 일이 태산보다 많았다.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공주, 아니, 사령관님."

'엉? 공주?'

마차가 부서지지 않도록 열십자 방향으로 완벽하게 줄을 매어놓은 스카이나이트가 크리시아에게 다가와 요상한 소리를 뱉었다.

"그럼 출발하세요. 바로 뒤따라가겠습니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명쾌한 명령을 내리는 크리시아.

'공주? 호오, 그랬군.'

이제야 이해가 갔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이라 하더라도 저 나이에 와이번 수십 마리를 움직이는 해적 소두목이 된다는 것은 말이 안 되었다.

"카이어님, 이제 가야 할 것 같아요."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지요."

"호호. 다음에는 식사라도 한번 해요."

"제가 정식으로 초대하겠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거금을 쏟아부어 주고 가는 대형 고객.

밥 한 끼 대접하는 것은 동방예의지국의 기본 싸가지였다.

"그럼.... 어멋!"

고개를 살짝 숙이며 아쉬운 이별을 하려던 크리시아.

자신의 와이번을 보던 그녀가 깜짝 놀랐다.

"무슨 일이.... 헛!"

크리시아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던 내 입에서도 놀란 탄성이 흘러나왔다.

'베베토! 이 색마 같은 놈!'

주인을 전혀 닮지 않는 베베토.

그 짧은 순간에 어떻게 꼬셨는지 크리시아의 하얀 암컷 와이번을 한쪽 날개로 품고 있었다.

나와 크리시아 모르게 어느새 러브러브 모드로 들어간 두 마리의 와이번.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렸다.

내가 저지른 일도 아니건만.

"큼큼!! 베베토!"

헛기침 소리를 내며 베베토를 큰소리로 불렀다.

쿠오오.

그제야 눈치를 채고 황급히 떨어지는 두 마리의 와이번.

"그, 그럼...."

나와 비슷하게 얼굴을 붉히고 있음이 분명한 크리시이가 황급히 와이번에 올라탔다.

파락 파락 파락 파락! 퍼러러럭!

와이번 발톱에 줄을 매단 스카이나이트들의 뒤를 따라 크리시아가 이륙하였다.

쿠오오오오오오!

키오오오오!

뭐가 아쉬운지 애달픈 울음소리를 내는 베베토.

그런 베베토 울음에 회답하는 크리시아의 암컷 와이번.

"에휴...."

짐승들의 애절한 이별에 나오는 것은 긴 한숨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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