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장 금지된 야간비행
"카이어님."
'응?'
밤이 깊어가는 창공단.
순찰과 훈련을 마친 와이번들이 자신들의 둥지인 격납고로 들어간 밤.
곳곳에 마법등이 희미하게 비추는 창공단.
어둠이 깃든 건물 옆에서 누군가 나를 불렀다.
"여기에요, 여기...."
'헐! 아이지스 아냐!'
대제국의 황실 핏줄이라 창공단에서도 근위기사들의 호위를 받는 아이지스.
주변을 살피며 아이지스가 도둑고양이처럼 어둠 속에서 손짓하며 나를 불렀다.
"아니, 황녀님...."
"쉿! 조용히 해요. 근위기사들을 따돌리고 나왔단 말이에요."
정숙하고 고고한 아이지스가 긴장한 표정으로 입가에 손을 가져가며 사방을 할폈다.
'훗. 귀엽다.'
평소에 보지 못한 아이지스의 조심스러운 모습.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로 귀여웠다.
"따라와요."
'일반 복장?'
금색 실이 수놓아진 황실 수련복이 아닌 나와 같은 일반 에어 플레이트를 착용하고 있는 아이지스.
따라오라는 말과 함께 어둠의 샛길로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왜 이 시각에 나를?'
좋아하는 사이라면 어두운 곳에서 사랑의 밀어라도 나누겠지만, 전혀 그런 관계가 아닌 아이지스.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으면 종종걸음으로 앞장섰다.
'밥도 안 먹었는데....'
아직도 구경할 거리가 넘치고 넘치는 창공단.
하나하나 관찰하며 머릿속에 궁금한 점들을 새겨 넣었다.
그렇기에 저녁도 먹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위험신호는 뭐지?'
황녀가 나쁜 짓을 할 리 없겠지만 머릿속에서는 불길한 느낌이 사르르 피어올랐다.
더욱이 근위기사까지 따돌리고 나를 기다린 것이 분명한 아이지스.
무언가 꿍꿍이가 있음이 분명했다.
'어라, 이곳은!'
그렇게 소리도 없이 아이지스와 도착한 곳은 익히 내가 알고 있는 장소.
바로 베베토가 머물고 있는 저주받은 격납고였다.
끼이익.
격납고의 작은 문을 열고 아이지스가 먼저 들어갔다.
'왜 이곳에?'
무언가 머릿속에 그려지는 여러 가지 그림들.
'수상해.... 그리고 불길해.'
고귀한 제국의 황녀가 도둑고양이 노릇을 하며 나를 이끈 베베토의 격납고.
고개를 저으며 그녀를 따라 안으로 들어섰다.
★★★★★★★★★★★★★★★★★★★★★
'헉~! 이건 뭐야?'
희미한 빛을 뿜어내는 이동식 마법등이 켜져 있는 베베토의 격납고 안.
'안장이 왜 여기에 있어?'
와이번을 타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착용시켜야 하는 2인용 안장이 격납고 안에 있었다.
"베베토, 내일이면 나 황궁으로 돌아가야 해. 이번에 돌아가면 언제 나올 수 있을지 몰라. 그전에 너에게 하늘을 선물하고 싶어."
'돌아가? 선물?'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는 퍼즐.
철컥.
'열쇠까지!'
어디서 훔쳐 왔는지 베베토의 발목을 묶고 있는 커다란 쇠줄 자물쇠에 열쇠를 꽂아 넣는 아이지스.
"저, 황녀님. 지금 뭐 하시는...."
"카이어 경, 부탁입니다. 베베토에게... 하늘을 볼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왜 울먹이고 그래?'
미인의 가장 큰 무기가 눈물이라고 했던가.
커다란 눈동자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 있는 아이지스의 모습.
내가 알던 당당한 제국의 황녀가 아니었다.
"하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베베토가 남입니까."
"고마워요. 카이어님은 제 마음을 이해해 주실 거라 믿었어요."
말이 끝남과 동시에 입가에 생긋 미소를 짓는 황녀 아이지스.
'오! 신이시여!'
전생에 무슨 복을 쌓았는지 요즘 들어 주변에 넘쳐나는 천하의 미인들.
기쁨이라는 놈이 가슴속에서 요동치며 솟아올랐다.
"안장을 채울까요?"
"네!"
황녀의 기뻐하는 모습에 돌쇠 모드로 전환한 나.
2인용 안장을 들고 베베토 앞에 섰다.
"들었지? 오늘 밤, 우리 한 번 달려보는 거야!"
들어서는 순간부터 잔뜩 흥분한 황금 눈빛을 번쩍이는 베베토.
아무 말이 없었다.
'레비테이션 마법을 펼치면 간단할 건데.'
안장을 장착하기 위해서는 제격인 레비테이션 마법.
펼치지 못하고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내가 마법사라는 것을 지금은 밝히고 싶지 않았다.
설사 황녀라 할지라도.
'촉감 죽이는데!'
몇 차례 본 적이 있기에 10킬로는 넘게 나가는 안장을 메고 베베토의 다리를 타고 올라갔다.
그리고 느껴지는 베베토의 따스한 털의 감촉.
전신을 촘촘하게 감싸고 있는, 단단한 가죽 위의 검은 바탕에 새겨진 황금 줄무늬 털은 느낌이 제대로였다.
엄마가 가끔씩 애용하시는 모피코트의 털 감촉은 털 축에 끼지도 못할 정도였다.
'그런데 잘 날 수 있을까?'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거의 태어날 때부터 이곳에 격리된 것이 분명한 베베토.
우리릍 태우고 육중한 몸을 띄울 수 있을지 걱정이 들었다.
'에이, 그래도 명색이 와이번인데.'
기껏해야 몇 미터 날지 못하는 닭대가리도 아닌 와이번.
그것도 이종교배로 태어나 다른 와이번보다 강한 베베토.
놈을 믿었다.
아니, 마음 깊은 곳에서 베베토에 대한 친근한 감정이 믿음으로 승화되었다.
철컹.
"다 되었어. 이제...자유야."
스륵스륵.
부리에 둥그런 가죽 망을 씌우고 목과 양 날개 사이에 가죽끈을 연결하면 완성되는 2인용 안장.
어느새 아이지스도 쇠사슬을 다 풀어냈다.
쿠르르르르르르.
발에서 쇠사슬이 떨어져 나갔건만 움직일 생각을 못하는 베베토.
지금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 듯 목울음 소리를 내며 커다란 눈을 껌벅였다.
"움직여 봐, 베베토."
가느다란 손길로 베베토의 다리를 쓰다듬는 아이지스.
안장을 채우고 황녀의 곁에 내려선 아이지스의 간절한 마음을 알알이 느낄 수 있었다.
쿠우우우.
아이지스의 말에 용기를 내는 듯 베베토가 떨리는 울음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천천히 발을 움직였다.
구궁.
한 발자국이건만 육중한 움직임에 떨리는 바닥.
'왜 내 심장이 떨리지?'
와이번계의 왕따 베베토의 비행이 떨리는 내 마음.
스륵.
'으헛!'
갑자기 황녀가 내 손을 잡았다.
파르르.
베베토의 움직임을 환희에 찬 눈으로 보다가 무의식 중 옆에 있는 내 손을 잡은 것이 분명한 아이지스.
그녀의 연체동물 같은 부드러운 손의 느낌에 심장이 방망이로 얻어맞은 것처럼 두근거렸다.
'고맙다, 베베토!'
베베토가 아니었다면 어찌 일개 준기사 대우인 내가 황녀의 손을 잡아볼 수 있겠는가.
'가만, 그러고 보니 안장이 2인승!!'
질끈 눈을 감고 싶은 이 마음.
황녀 아이지스와 이렇게 빨리 상황이 진전(?)될 줄은 몰랐다.
'그래! 스카이나이트가 될 거라면 이런 미인 황녀와 함께 비행 한 번 해봐야지!'
간덩이가 원래 부어 있는지, 아니면 태생이 크게 태어난 것인지 모르지만 당연스럽게 생각되는 자신감.
마음을 굳게 먹었다.
절대 아이린과 첫 비행 때처럼 촌스러운 비명을 지르지 않겠다고.
"저... 카이어님."
"네, 네?"'
눈을 뜨고 있음에도 그려지는 아이지스와의 흐뭇한 광경.
귓가에 아이지스의 부름이 들려왔다.
"문 좀...."
차마 손을 빼달라는 말은 못하고 문을 가리키며 얼굴을 사르르 붉히는 아이지스.
"명!"
근위기사처럼 명이라 외치며 격납고의 문을 향해 달려갔다.
'며칠간 이 손은 씨지 않으리라! 움하하하!'
아이지스와 맞잡은 오른손의 따스한 감촉을 내 머릿속의 하드 디스크에 입력시키며.
★★★★★★★★★★★★★★★★★★★★★
"황태자 전하! 아이지스 황녀님이 사라지셨습니다!"
"뭐라고? 아이지스가!"
황태자지만 황실에 내려오는 전통에 따라 반강제적으로 와이번 비행 실습 일수를 채워야 하는 폴트비란.
오늘로 끝난 지긋지긋한 비행 실습을 떠올리며 와인을 마시던 중에 달려온 근위기사들의 입을 통해 아이지스의 실종 소식을 들었다.
'골치 아픈 계집 같으니라고!'
자신의 어머니인 황비와 달리 적통 황후 소생인 아이지스와 라즈시온.
만약 황제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아이지스에게 문제가 발생하면, 그 불똥이 자신에게 튈 것이 분명했다.
"비상 경계령을 내리고 속히 황녀의 위치를 파악하라!"
"명!'
창공단의 최고 책임자이자 스카이나이트 근위기사단의 부단장인 메르모스 후작이 있다지만, 황실에 문제가 발생할 시 최고 통수권자는 황태자.
황태자의 문 앞에 몰려와 있던 기사들이 명을 외쳤다.
"전, 전하! 감시탑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황녀님을 발견했다 합니다!"
"아이지스를!"
"그, 그렇습니다. 와이번을 타고 야간 비행을 위해 이륙했다는 보고입니다. 그런데...."
보고를 하던 기사가 말끝을 흐렸다.
"속히 말하라!"
심상치 않음을 눈치 챈 황태자가 엄하게 명을 내렸다.
"저, 저주받은 와이번을 타고 이륙했다고 하옵니다."
"뭐, 뭐라고? 저주받은 와이번!"
"헉!"
어지간하면 놀라지 않는 황태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저주를 받는다는 이종교배 와이번.
창공단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여태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고귀한 황녀가 금기시되는 와이번을 타고 이륙했다는 보고.
'멍청한 계집년. 크크.'
놀라는 것도 잠시.
폴트비란 황태자는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사악한 생각에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거기에다가 혼자가 아니시라고 합니다."
황태자를 비롯한 기사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수련생에게 지급되는 에어 플레이트를 착용한 남자 수련생과 함께 이륙했다 합니다."
"...남자 수련생과?"
"그렇습니다. 전하. 곳곳의 감시탑에서 마나 스코프로 확인한 정확한 정보입니다."
창공단을 둘러싼 산 주변으로 십여 개의 감시탑이 존재했다.
그곳에는 통신 마법과 마나 스코프를 사용할 수 있는 마법사가 배치되어 있었다.
"속히 모든 스카이나이트들을 출격시켜라!"
황태자의 안색이 굳어졌다.
황녀의 독단적인 비행이 아닌 납치라도 되는 순간, 황제의 진노는 하늘을 찌를 것이 분명했다.
'재수없는 계집년....'
황태자 폴트비란은 이를 갈았다.
자신이 황제가 되는 순간, 자기 어머니의 소원대로 모든 것을 이뤄줄 것이라고 말이다.
황후를 내쫓고 황녀를 타 왕국의 첩실로 보내 버릴 것이라 다짐하였다.
★★★★★★★★★★★★★★★★★★★★★
쉬이익ㅡ쉬이익!
퍼럭, 퍼러러럭.
하늘에 뜬 은빛 달과 수천 수만의 보석 같은 별들의 바다.
난생 처음 자유를 얻은 와이번 한 마리가 거대한 날개를 펄럭이며 바람을 갈랐다.
"하아...."
길게 들이쉬었던 숨이 내뱉어지며 가슴에 들어찬 감동을 쏟아냈다.
그렇지 않으면 눈물이 흘러내릴 것 같았다.
미치도록 아름다운 밤하늘.
구름도 잠이 들어버린 별들의 놀이터에 초청된 자의 행복감.
차가운 밤바람을 들이켜는 순간 영혼은 게으름에서 번쩍 눈을 뗐고, 작은 눈동자로 보이는 푸른 별들의 거대한 바다는 숨을 멎게 만드는 장관이었다.
푸르르.
손에 쥐고 있는 고삐에서 느껴지는 팽팽한 베베토의 긴장감.
격납고를 벗어나는 것도 힘들어하던 베베토가 열린 문 너머로 보이는 하늘에 시선을 빼앗기는 순간 베베토는 흥분하며 거대한 날개를 펄럭였고, 나와 아이지스는 황급히 베베토의 등 뒤에 올라타야 했다.
그리고 우리는 하늘을 날았다.
얼떨결에 앞좌석에 자리 잡은 나.
베베토를 조종하는 스카이나이트가 되어버렸다.
쿠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비행을 위하여 타고난 와이번답게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정확히 하늘로 날아오른 베베토.
밤하늘이 떠나가라 울부짖었다.
지난 수년간의 지옥 같은 세월에 대한 보상처럼, 갑자기 찾아온 이 밤의 축복.
날개가 찢겨 나가도록 펄럭였다.
"하아.... 하...."
갑작스러운 비행에 투구도 착용하지 않고 출발하였다.
에어 플레이트와 달리 거추장스러운 투구.
실습이 끝나면 언제나 ㅂ아에다 처박아두었다.
그 대가로 나는 얼굴 가득 바람을 먹어야 했다.
'날아라! 내 심장이 터지도록!'
벌써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지친 기색 하나 없이 산과 들판을 가로질러 날아가는 베베토.
은빛 달빛에 놈의 검은 동체에 새겨진 황금 줄무늬가 광채를 발하였다.
"조금만... 천천히.... 힘들어요."
등 뒤에 얼굴을 묻은 아이지스가 귓가에 속삭였다.
바람 소리 때문에 흩어져 갔지만 마나를 사용한 덕분에 또렷하게 들려오는 음성.
지친 것 같았다.
아무리 스카이나이트라 하더라도 여자의 근력은 어찌할 수 없었다.
거칠게 일정한 방향없이 급격하고 과격하게 비행을 즐기는 베베토 때문에 나의 허리를 껴안은 손에는 힘이 가득 들어가 있었다.
더욱이 에어 플레이트 때문에 깍지도 끼지 못하고 허리춤을 붙잡고 있는 아이지스.
한계에 부딪친 것이다.
"베베토~! 이제 천천히 좀 날아줘! 황녀님이 힘드시단다!"
조종 고삐를 잡고 있지만 어떻게 조종하는지도 몰랐고, 내 조종에 베베토가 움직이지도 않았다.
그렇기에 마나를 돋워 힘껏 소리쳤다.
스륵, 스륵, 스륵.
'말귀도 잘 알아들어요. 몬스터 주제에.'
똑똑한 멍멍이처럼 말을 알아듣는 베베토.
어느새 날개의 움직임을 줄이며 속도를 조절하였다.
"아...."
속도가 줄어들자 그에쟈 긴 숨을 쉬며 팔에서 힘을 빼는 아이지스.
'쩝, 아쉽네.'
비록 갑옷과 갑옷 때문에 아이지스를 마음껏 느낄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어여쁜 여인이 허리를 잡고 있는 이 짜릿한 기분.
일찍 세상맛을 알아버린 친구들이 오토바이를 죽어도 몰고자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자식, 이제 행복하냐?'
긴 부리를 내밀고 거대한 폐부에 잔뜩 숨을 몰아쉬는 베베토.
공기를 들이마시고 내쉬는 놈의 역동적인 움직임이 안장과 고삐를 통해 생생히 전달되어 왔다.
'이래서 스카이나이트와 와이번은 한 몸이라 하는 것인가.'
서로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존재.
일반적인 비행도 이럴진대 생사를 결하는 전투 시에는 더밀접한 친화력이 필요할 것이 분명했다.
그렇기에 오만한 귀족들도 와이번 앞에서는 성심을 다하는 것이리라.
"아, 아름다워요...."
분위기 파악을 하는 베베토가 아주 느긋하게 비행하자 아이지스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밤 비행은 처음이에요. 언제나 상상은 했지만...."
제 아무리 황녀라 하더라도 소녀는 소녀일 뿐이었다.
더군다나 다른 싸가지 없는 귀족가의 자식들과 달리 근본이 쓸 만한 아이지스.
베베토를 걱정해 주는 그녀의 착하고 여린 마음이라면 지금 이 순간은 천국의 비행일 것이다.
"고마워요. 카이어님이 아니었다면 꿈도 꾸지 못했을 거에요."
'고마우면 말로 하지 말고 손을 잡아준다거나 뽀뽀를 해주시던지~!'
"하하, 별말씀을요. 기사라면 당연히 아름답고 고귀한 레이디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이 의무가 아니겠습니까."
마음과 달리 아주 전형적인 대화를 뱉어내는 나의 입.
내가 봐도 느끼하기 그지없는 놈이었다.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 카이어님과 날았던 오늘의 밤 비행을."'
비행소녀(?)의 따끈한 고백.
'자도 물론 잊지 못하지요~!'
칼리얀 대륙이 아니면 어찌 대한민국의 일개 고등학생이 고귀한 황녀와 이런 비행을 저지를 수 있단 말인가.
'아르미스는 잘 있나 모르겠네.'
수습사제 아르미스도 이렇게 밤 비행을 하고 싶다 말했었다.
그 당시에는 와이번이 없기에 플라이 마법으로 비행의 맛만 보여줬을 뿐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강혁, 넌 나쁜 놈이다.'
천하 미인인 황녀를 태우고 다른 여인을 생각하는 나의 한심한 작태.
그러나 어찌할 것인가.
이것이 짝 없는 청춘의 건강한 이성관인 것을.
'응? 이 느낌은!'
달과 별들이 떠 있다 하지만 대낮처럼 사방을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잘 발달된 나의 마나 덕분에 느껴지는 미세한 기운.
무언가 저쪽 하늘에서 날아오고 있었다.
쿠오오오!
베베토 또한 이상함을 감지했는지 나직한 울음소리를 내었다.
'와이번이다!'
그것도 일반적인 회색 와이번이 아닌, 내가 잘 알고 있는 놈들.
'황실 근위 스카이나이트! 제길.'
일이 잘 풀릴 리가 없었다.
제일 완벽한 시나리오는 이렇게 오붓한 비행을 만끽하고 조용히 창공단에 있는 베베토 격납고로 들어가는 것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꿈같은 상황.
곳곳에 감시탑이 있어 와이번 이착륙을 철저히 감시하고 있기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블랙 와이번까지 출격한 줄은 몰랐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니까.'
아이지스와 함께 누볐던 야간 비행.
이제 마감할 시간이 다가왔다.
'헐? 완전 전투태세네.'
마주 날아오기에 순식간에 거리를 압축한 블랙 와이번.
블레스트 스피어를 손에 든 중무장한 20여 마리의 와이번들이 어느새 빙 둘러 나를 포위하고 있었다.
"아이지스님, 이제 집에 가야겠는데요?"
"네?"
"황녀님을 모시러 근위 스카이나이트들이 왔습니다."
"아...."
아쉬움이 담긴 아이지스의 탄성.
"경고한다! 즉시 와이번을 우리가 인도하는 방향으로 조종하라!"
마나가 가득 담긴 경고음이 들려왔다.
'살벌하군.'
마법창에 마나를 불어넣었는지 블레스트 스피어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런 마법창이 20여 개가 나와 베베토를 향하고 있었다.
쿠오오!
베베토가 신경질적인 울음을 토했다.
잠시 맛본 자유에 맛을 들인 베베토.
자신을 위협하는 자들에게 적대적이었다.
'성대한 환영식이 기다리고 있겠군.'
블랙 와이번이 나타날 정도라면 창공단은 이미 준전시 상태일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내 예상이 맞는 듯 사방에서 속속 모습을 드러내는 와이번들.
베베토가 아닌 황녀 아이지스가 문제였음이 분명했다.
"베베토... 가자."
불리하게 돌아가는 현실.
베베토를 달랬다.
'여차하면 다 뒤집어 버릴 것이야!'
독한 마음을 가슴에 품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