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세기 대마법사-17화 (17/221)

제17장 스카이나이트를 꿈꾸다

"사방을 경계하라!"

"이럇! 이놈들아! 뒈지고 싶지 않으면 빨리 움직여!"

히이이잉!

인상을 쓰며 용병들을 다그치는 히스 단장.

평소 같았다면 자유스러운 분위기에서 몇 마디 불만이 터져 나왔겠지만 무기를 움켜쥔 용병들은 사방을 바라보며 침묵을 유지하였다.

'이제야 용병들 같네.'

용병인지 시정잡배인지 구분이 안 갔던 블랙 와이번 용병단.

긴장한 모습에서 용병다움이 물씬 풍겨 나왔다.

'오크 계곡이라더니 분위기 한번 살벌하군.'

자르 산맥의 한줄기에 위치하고 있다는 오크 계곡.

이곳을 지나쳐 자르 산맥을 관통해야 이드발 왕국령으로 넘어갈 수 있다고 하였다.

'플라이 마법으로 정찰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냐?'

폭 100여 미터 정도에 높이는 3, 400 정도 되는 계곡이 아닌 커다란 협곡.

반나절 정도 되는 이 협곡을 지나쳐 가야 한다 하였다.

그런 협곡은 내가 보기에도 무언가 튀어나올 것 같은 분위기였다.

곳곳에 부서진 마차가 몇 대 널브려져 있는 모습이 과거 이길에서 사람 꽤나 다쳤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었다.

"카이어, 말에서 내려서 걸어. 괜히 오크 궁수들 표적이 될수 있으니."

론이 도끼와 방패를 들고 급히 말에서 내리라 충고해 왔다.

'긴장감, 장난이 아닌데?'

마수를 잡을 때보다 더 심장이 뛰었다.

나보다 다른 사람들 때문에 감염되어 가는 분위기.

마부와 상인들조차 방패를 들며 조심스러우면서 빠르게 마차를 몰았다.

'이런 길은 병사들이 지켜줘야 하는 것 아냐?'

아직은 다피스 왕국령.

피요르 자작령을 지나쳐 이름도 상당히 긴 어느 남작령이라는 자르 산맥의 영역.

상인들이 활동하는 이런 곳은 세금받아 처먹는 영주들이나 국왕이 보호해야 함에도 병사들은 코빼기도 안 보였다.

'자기 목숨은 스스로 보호하라 이거지? 참고해 두겠어.'

알고 있는 것과 몸으로 체득하는 것은 다른 것.

하나둘 칼리얀 대륙의 관습에 익숙해져 갔다.

'이건 무슨 소리야?'

바람을 타고 귀에 들려오는 아주 미세한 소리.

마나가 강해질수록 신체 기능도 마나의 영향으로 오감을 비롯한 근육까지 발달해 갔다.

그런 내 귀에 들려오는 말 울음소리와 사람들의 비명.

제법 가까운 곳에서 뭔가가 벌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이들로 버틸 수 있을까?'

마수 이외에는 몬스터들과 전투를 펼쳐 보지 않았지만 왠지 못 미더운 블랙 와이번 용병단.

그들의 실력을 알고 있는 나는 걱정이 앞섰다.

얼마 동안인지는 모르지만 함께할 동료들이었다.

"론, 혼자서 오크 몇 명이나 상대할 수 있습니까? 세 마리? 아니면 다섯 마리?"

"세, 세 마리? 큼, 물론 오크 열 마리가 달려와도 문제가 없지. 제 아무리 오크라 해도 이 론님의 배틀엑스 한 방이면 오크 대갈통들은 잘 익은 수박 터지듯 박살이 난단 말이야! 움하하하하!"

'열 마리? 한 마리나 상대하면 다행일 것 같은데?'

말을 더듬으며 억지웃음을 터뜨리는 론의 모습에서 오크들의 전투력을 짐작할 수 있었다.

"마차를 멈춰라!"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던 히스 단장이 마차를 멈추게 했다.

"히스 단장, 무, 무슨 일인가?"

상단을 이끌고 있는 하메르 상인이 놀란 목소리로 히스를 불렀다.

"아무래도 오늘은 일진이 사나울 것 같습니다. 계곡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전투?"

"다른 상인들이 공격받는 것이 분명합니다. 바람을 타고 비명 소리가 들려옵니다."

"공, 공격을....?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히스의 말에 하메르가 당황하며 의견을 구했다.

"그거야 고용주가 결정해야 할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런 일에 대비하려 용병을 고용한 것.

히스는 하메르에게 결정권을 넘겼다.

"오늘 여기를 넘어가야 하는데...."

하메르 상인의 얼굴에 곤혹스러운 빛이 흘렀다.

상단이라는 것이 가고 싶으면 가고 오고 싶으면 오는 그런 단체가 아니었다.

기일이 제법 촉박한 것 같았다.

"그럼 강행 돌파 하겠습니다."

"부탁하네. 만약 이곳만 잘 벗어난다면 샤두르 성에서 한턱 거하게 내겠네."

"알겠습니다."

믿음직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는 히스 단장.

"모두들 말 잘 들었지? 고용주께서 돌파를 원하신다! 블랙 와이번 용병단의 용사들이여! 자신있나?!"

"까짓것, 돌파합시다!"

"오크 한둘 만나봅니까!"

"우리는 무적의 블랙 와이번 용병단입니다!"

"그럼 경계를 철저히 하면서 출발한다! 출발!"

사기를 돋워놓은 히스가 방패를 들고 제일 선두에 섰고, 그 뒤를 실력이 뛰어난 용병들이 따랐다.

'제법 큰 전투 같은데...'

상인들 마음이야 알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블랙 와이번 용병단으로는 무리인 상황.

입맛을 다시며 론과 함께 마차를 따랐다.

어차피 용병단에 매인 몸.

까라면 까야 했다.

★★★★★★★★★★★★★★★★★★★★★

턱봉이[poik66] 타이핑 했습니다!

"모두 전투 준비!"

협곡을 한 200여 미터 전진했을까? 갑작스럽게 협곡 중앙에 넓은 공터가 보였다.

그리고 그 공터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상.

'저 새끼들이!'

십여 대의 마차를 몰고 있는 작은 상단과 30여 명 정도 되는 용병과 상인들을 비롯한 마부들.

아랫도리만 가죽으로 가린 흉측한 오크들과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었다.

"공격하라! 사람들을 구하라!"

오크에게 공격당하는 사람들을 보자 분노에 찬 공격 명령을 내리는 히스.

공격하라는 말과 함께 어느새 몸을 날리고 있었다.

'백여 마리도 넘겠군.'

창과 검 같은, 인간들에게서 빼앗은 것으로 보이는 녹슨 무기를 들고 공격하는 오크들.

키는 모두 160 정도로 그리 크지 않았지만 울퉁불퉁 솟아 오른 근육과 푸르뎅뎅한 피부.

송곳니가 뻗어난 얼굴.

코는 뻥 뚫려 빗물이 들어갈 정도였고, 눈동자는 광기에 절어 있었다.

"오, 오크다! 으아아!"

오크 십여 마리도 자신있다던 론이 오크를 보자 비명부터 질렀다.

"론, 돌격 안 해요?"

"그, 그러고야 싶지만 마차는 누가 지키나?"

다른 용병들이 모두 달려가고 있는 와중에 부르르 몸을 떨며 마차 핑계를 대는 론.

창!

나는 검을 뽑아 들고 앞으로 달려나갔다.

"어, 어디 가, 카이어?!"

"보면 몰라요! 오크 잡으러 가죠!"

"위험해! 어서 이리 와!"

'론 아저씨하고 있는 게 더 위험해!'

대꾸도 하지 않고 달려갔다.

"지, 지원군이다!"

"모두 힘을 내라!"

꾸오! 꾸오오오!

붉은 피를 흘리며 수십 명이 쓰러져 있었다.

무식하게 사람들을 도륙하던 오크들이 블랙 와이번 용병단을 보고 괴성을 질렀다.

꾸에에! 구에르르!

들어주기 힘든 오크 언어를 남발하는 오크들.

반수 이상이 몸을 틀어 블랙 와이번 용병단을 향해 마주쳐왔다.

"이놈들아! 이거나 처먹어!"

선두에서 달리던 히스.

그의 검에서 푸른 오러 블레이드가 가는 실처럼 피어올랐다.

론에게 들었던 이곳 기준으로, 오러 블레이드가 검을 새파랗게 물들이는 블레이드 나이트 급은 아닌 오러 유저 급인 히스.

창을 찔러오던 오크의 몸뚱이를 두툼한 바스타드 소드로 베어갔다.

촤아아악!

꾸에에에에에에에에!

허리 부근이 반쯤 잘려 나간 오크.

푸른 피를 분수처럼 뿜어내며 누런 이를 드러내고 단말마의 비명을 질렀다.

"썩어 뒈지지도 않을 오크 놈들이! 모두 쓸어버려!!"

"이 잡놈의 오크 새끼들이 어디서!"

차자자장!

실력보다 입이 더 강력한 무기인 블랙 와이번 용병단.

예상외로 박진감 넘치는 육탄전을 펼쳐 갔다.

'하필 사람 모습이라니.'

인간들을 죽여 나가는 오크들이었지만 직립보행을 하는 존재들.

기분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쿠에에에!

하지만 결단의 순간은 빠르게 다가왔다.

오크들에 비하여 숫자가 부족한 용병단.

어느새 내 몫으로 한 마리의 오크가 녹슨 글레이브를 찔러오고 있었다.

'쳇!'

찝찔한 마음과 달리 재빠르게 반응하는 몸.

기사들이 사용하는 두툼한 장검이 오크의 글레이브를 향해 힘껏 내리찍어 갔다.

카강!

쇠와 쇠가 부딪치며 불꽃이 튀었다.

'강하다!'

순수한 근력만으로 부딪쳐 본 일격의 느낌은 단단한 절벽과 같은 오크의 무식한 힘.

보디빌더 저리 가라 할 정도의 근육질을 자랑하는 오크의 모습에서 사부가 내 실력을 비웃으며 오크 똥이 되고 싶냐고 놀려댔던 이유를 이제 깨달았다.

쿠에!

더욱이 흉포함이 가득 들어찬 붉고 노란 눈동자.

진물이 흐르는 오크의 눈동자 주변과 누런 이빨과 걸쭉한 침은 오크에 대한 미안한 감정을 저 멀리 날려 버렸다.

'난 지금 장난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살고 싶으면 죽여야 하는 전쟁터! 이놈을 베어야 한다!'

자신보다 빈약한 내 근육 힘을 간파하고 비릿하게 승리의 미소를 머금어가는 오크.

"탓!"

짧은 기합과 함께 마나를 살짝 끌어올려 검에 담았다.

쉬이이익!

그리고 빠르게 펼쳐지는 횡 베기.

우두두둑!

오크의 몸뚱이가 횡으로 베어지며 검신과 손을 타고 뇌리 속에 생생히 뼈를 가르는 느낌이 전달되었다.

부르르.

오크의 몸속에 틀어박혀 있는 검을 빼내지 못하고 잠시 몸을 떨었다.

마수는 생겨먹은 모습이 맹수였기에 거리낌이 없었다지만 오크는 인간을 닮아 있는 존재.

심장이 빠르게 뛰고 호흡이 가빠왔다.

꾸에에에!

하지만 그것도 잠시, 동료를 죽인 나를 향해 달려드는 또 다른 오크의 길쭉한 창.

으득.

이를 악물며 오크의 몸에 박혀 있는 검을 빼내었다.

솨아아아아악!

그 순간 뿜어져 나오는 푸른 핏물.

엄청난 압력에 의하여 전달된 핏물에 옷이 젖었다.

쉬이익!

'죽여야 산다!'

번뜩 깨어나는 정신.

그대로 검을 돌려 창을 찔러오는 오크의 이마를 향해 내리꽂아 갔다.

★★★★★★★★★★★★★★★★★★★★

"오오! 신입, 대단한데?"

"봤어? 푸르스름한 오러 블레이드가 담겨 있었어!"

"무슨 소리야? 저 나이에 무슨 오러 블레이드야!"

"내가 똑똑히 봤다니까!"

'흥분했군.'

오크들과 용병들이 뿜어내는 진득한 살기에 나도 잠시 취한 것 같았다.

그리고 그 결과 내 주변으로 십여 마리의 오크가 이승을 하직한 채 땅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감, 감사합니다! 여러분이 아니었다면...."

"고맙소! 와칸 용병단의 이름으로 귀 용병단에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는 바이오."

"업계의 규칙을 따랐을 뿐이오. 그런데 오크 계곡을 너무 무시한 것이 아니오. 겨우 이십 명도 안 되는 용병으로...."

나에게 쏟아지던 용병들의 시선이 오크의 공격을 받은 상인들과 용병들에게 옮겨졌다.

"그, 그것은 우리 잘못입니다. 갑자기 이곳을 거넌야 하는데 용병들을 구할 수 없어서...."

"모두 다 우리 용병단의 무능 때문입니다."

십여 대의 단출한 상단과 그에 어울리는 조그만 와칸 용병단.

내가 보기에는 블랙 와이번 용병단과 다를 바 없건만 히스 단장은 어깨에 힘을 팍 주고 있었다.

"으으, 살려주세요."

"크윽! 어, 엄마!"

'다친 사람들이 많군.'

나와 히스의 선전으로 블랙 와이번 용병들은 작은 부상을 당한 몇몇이 다였지만, 오크들의 집중 공격을 받은 상인들과 마부들, 와칸 용병단원들은 많은 수가 죽거나 부상을 당해 있었다.

'이게 죽음이구나.'

난생처음 사람이 죽어 있는 모습을 보았다.

오크들이 흘린 푸른 피와 대조적으로 붉은 피를 쏟아놓고 쓰러져 있는 사람들의 시체.

안타까움과 묘한 기분이 가슴을 뭉클하게 적셔왔다.

"포션을 사용해서 다친 사람들을 치료합시다."

히스 단장이 인상을 구기며 포션을 사용하자고 했다.

"하지만 포션을 사용하면 오크들이 문제가 아니라 마수들이 공격해 올지 모릅니다."

살아남은 상단의 상인이 두려움에 떨며 거부 의사를 밝혔다.

"그렇습니다. 오크 계곡을 지나 포션을 구입할 수 있는 신전이 있는 마을까지 가려면 며칠을 더 가야 합니다. 죽는다면 저들의 운명이지요."

와칸 용병단의 단장인 구렛나룻 사내도 상인의 편을 들었다.

'살기 위해서 동료도 버려야 하는군.'

급하게 다친 이들의 상처를 살피는 어두운 표정의 용병들.

포션이나 치료 마법 없이는 금방 숨이 넘어갈 자들이 대여섯 명은 되는 것 같았다.

"이럴 때 마법사라도 있었다면...."

"뭐가 아쉽다고 마법사가 이런 삼류 용병단에 들어와? 3서클 정식 마법사만 되어도 모셔가려고 눈을 뒤집는 일류 용병단이 수두룩한데."

"그렇지. 나 같아도 목숨 보장도 안 되는 우리 같은 용병단에 들어오지는 않을 거야. 도끼로 머리를 맞지 않는 이상."

자신들의 동료도 아니건만 남의 일을 아님을 알고 있는 블랙 와이번 용병단원들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오늘은 다른 용병들이 저리 죽어나갔지만 당장 그들도 죽지 말라는 법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컥...."

"제론, 참아! 이깟 상처로 죽는다면 네 사랑하는 아내와 새끼들은 누가 돌봐주나! 이겨네, 제론!"

오크의 창에 배를 찔린 제론이라는 30대 초반의 용병의 배를 찢어진 옷으로 막고 있던 남자가 울음을 참으며 악을 썼다.

"친, 친구야, 미안하지만... 우리 집사람을...."

입으로 핏물을 넘기며 눈동자에 힘을 풀려고 하는 제론이라는 용병.

"저리 비키세요."

도저히 보고 있을 수 없었다.

"비키라니? 지금 친구가 죽고 있는데 어디로 가란 말이야?"

입술을 꾹 깨물고 눈물을 참고 있던 제론 용병의 친구라는 자.

"친구를 죽이고 싶지 않으면... 제 말대로 하세요."

"자네가 빌어먹을 성직자야? 마법사라도 돼? 마지막 친구 가는 모습을 왜 못 보게 해? 크윽!"

누구에 대한 원망인지도 모르고 나에게 분노를 토하는 남자.

퍽!

주먹을 들어 그대로 얼굴에 날렸다.

철퍼덕!

제법 힘이 들어간 일격에 옆으로 나가떨어지는 남자의 모습.

'정체가 들통나는 게 문제가 아니다. 나의 선택으로 한 생명을 살릴 수 있다.'

나를 죽이려 한 악한 자도 아니고 가족까지 있는 평범한 삼류 용병의 목숨.

편리를 위하여 마법사임을 감추려 하는 내 계획과 바꿀 수 없는 귀한 생명이었다.

"힐!"

"허억!"

"마, 마법사!"

갑작스러운 나의 과격한 행동에 모두의 시선은 집중되어 있었고, 내가 생명의 노란 기운을 마법으로 만들어내자 용병들 입에서 경악의 신음이 터져 나왔다.

"조금만 참으십시오. 죽지는 않을 터이니."

배를 뚫고 깊숙이 상처가 난 창자.

다행스럽게 내장 외에 다른 장기는 다친 것 같지 않았다.

'다행이다.'

언제나 보면서도 나 자신도 신기한 마법의 놀라운 힘.

5서클에 이른 뒤 안정화된 강맹한 마나가 생명의 에너지로 전환되며 상처를 치유하였다.

상처 위에 소독약을 뿌릴 때처럼 보글보글 일어나는 거품.

그 안에서 마나는 상처를 아물게 만들며 새살을 돋게 만들고 있었다.

"고, 고서클 마법사다!"

"세상에....!"

세상 경험이 많은 용병들이 나의 마법 수준을 대충 파악했다.

힐 마법이 비록 2서클의 하급이지만 소유한 서클과 마나량에 비추어 마법 능력이 늘어나는 마나 비례법칙을 용병들도 대충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크, 크윽! 고맙습니다, 마법사님. 크윽!"

치유 마법을 펼쳐도 고통은 사그라지지 않는 듯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고맙다는 말을 뱉어내는 제론이라는 용병.

'고마우면 잘사쇼!'

처자식을 먹여 살리려 용병 일을 했음이 분명한 제론이라는 남자.

방금 전까지 절망에 빠져 있던 그의 눈동자에 삶의 희망으로 부풀어 올랐다.

'내 양심에 어긋나지 않는 모든 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는 것도 죄악이겠지.'

잔잔하게 얻어지는 삶의 깨달음 하나.

이제 열일곱 소년이 알기에는 조금 주제넘는 점이 있지만, 나는 칼리얀 대륙에서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내 힘만으로 살아가야 하는 진정한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

"지금까지 무례한 점이 있었다면 먼저 사과드립니다."

상단을 이끌고 있는 하메르가 고개를 숙이며 몸을 굽실거렸다.

'이래서 감추려 했건만.'

칼리얀 대륙에서 마법사가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 마을 사람들을 통해서 알고 있었기에 실력을 감추려 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마법사라는 것이 들통 났고, 대충 상황을 수습한 상인과 용병들은 이동을 하면서도 나를 두려운 시선으로 보고 있었다.

"아닙니다. 제가 마법사라는 것을 감춘 것이 잘못이지요."

"아, 아닙니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손사래를 치며 정색하는 하메르.

나를 두려워하며 비위를 맞추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카, 카이어님, 혹시 소속되신 마탑이 어디신지....?"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자기 밑에서 열심히 일하라고 어깨를 두드리던 히스 단장이 조심스럽게 내 정체에 대하여 물어왔다.

"비밀입니다."

"아, 네, 그러시군요."

두 번도 물어보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이며 저자세로 일관하는 히스.

'마법사가 조폭이야? 왜 다들 이렇게 무서워해?'

아직 다른 마법사를 만나본 적은 없지만 일반인도 아닌 용병들도 두려워하는 모습에서 마법사의 지위를 짐작할 만했다.

"저기가 샤두르 성입니까?"

"네, 저곳이 다피스 왕국의 맹장 로한 드 샤두르 백작님의 성입니다."

오크 계곡을 벗어나 잠시 휴식을 취하는 중에 저 멀리 보이는 평원의 성.

"상당한 신망을 받는 분인가 봅니다."

"다피스 왕국에서는 그렇습지요. 로한 백작님이 방어하는 북부 지역이 가장 중요한 전략적 거점이라 국왕 폐하를 비롯한 왕국 사람들 모두 존경하고 있습니다."

'응?'

산등성이 부근의 제법 높은 지대였기에 한눈에 보이는 거대한 평원.

그런 평원에 자리 잡은 샤두르 백장 성 위로 갑자기 십여 개의 점이 솟아오르며 이쪽으로 날아왔다.

"백작령의 스카이나이트들이다!"

"와아! 대단해!"

마차를 몰고 반나절은 더 가야 할 거리건만 순식간에 공간을 압축해 오는 스카이나이트와 와이번.

'멋지다!'

혼자서 비행하던 피요르 자작의 와이번과 비교할 수 없는 집단 비행.

학익진 모양으로 편대를 이루며 열 마리의 와이번이 날개를 퍼덕이며 날고 있는 모습.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히는 장관이었다.

'스카이나이트....'

스카이나이트라는 단어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백작 각하시다!"

"휘이이이이! 멋지십니다!"

어느새 수백 미터 정도 가까이 다가온 와이번.

저마다 마법 갑옷을 착용하고 백작가를 상징하는 쌍검이 교차되는 문장을 몸에 두르고 있었다.

그런 와이번 위에 꼿꼿이 서서 붉은 망토를 휘날리며 고삐를 잡고 있는 열 명의 스카이나이트.

와락 손을 움켜쥐었다.

'반드시 가장 멋진 와이번을 모는 스카이나이트가 될 것이야!'

사나이 강혁의 다짐.

머리 위를 날아 멀리 사라지는 와이번의 뒷모습을 보며 다시 한 번 맹세하였다.

★★★★★★★★★★★★★★★★★★★★

"뭐, 뭐라고요? 알 값만 200만 골드라고요?"

"그렇습니다. 거기에다가 부화할 때까지 몬스터 흉성을 제거하기 위하여 매일 최고급 성수를 부어주어야 하고, 약 1년동안 양육하고 비행 훈련 비용만으로 수십만 골드 이상은 너끈히 들어갈 것입니다. 또 와이번을 보호하는 경량화와 보호마법이 걸려 있는 미스릴 합금 갑옷만 해도 100만 골드에 스카이나이트 전용 마법 갑옷이 적어도 수십만 골드. 대충 한 마리의 와이번을 구입해서 사용하려면 초기 비용이 400만 골드는 들어갈 것입니다."

'4, 400만!'

작은 영지 구입 비용이라 할 수 있는 400만 골드라는 숫자.

루나 마을 사람들은 50골드에도 피눈물을 흘렸건만 하메르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400만 골드를 입에 담았다.

"그렇기에 각 제국과 왕국에서 가장 중시하는 곳이 바로 스카이나이트 기사 학교와 그 부속 시설들입니다. 와이번을 교배시켜 수백만 골드 정도 하는 알을 얻고, 부화한 와이번을 정규 교육을 받은 스카이나이트에게 인계하여 막대한 비용을 치르지 않고도 고급 전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 구라쟁이 히스 단장 같으니라고!'

한쪽 구석에서 용병들과 죽어라 술을 퍼마시고 있는 히스를 노려보았다.

"자, 마셔! 우리에게 내일 따위는 없다!"

"크하하! 그렇지요. 우리 블랙 와이번 용병단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단지 오늘만 있을 뿐입니다!"

"스카이나이트를 소유할 블랙 와이번 특급 용병단을 위하여, 건배!"

'상습 청소년 약취 위인죄로 고발할까 보다!'

나 말고도 다른 마을에 들를 때마다 용병단에 들어오라 꼬이는 것 같았다.

대부분 이 대륙의 소년들이 꿈꾸는 스카이나이트를 팔아 꿈을 착취하는 히스.

'저렇게 퍼마시면서 저축은 무슨.'

상인들이 제공하는 술이라고 술통째 들이붓는 히스와 블랙 와이번 구라 용병단.

술에 취해 천국을 헤매고 있었다.

"그런데 왜 스카이나이트에 대해서 물으시는지...."

다 알고 있으면서 왜 묻느냐는 식의 눈빛을 보내는 하메르.

"하하, 그냥 요즘 시세가 궁금해서요. 저희 마탑에서도 스카이나이트에 대단히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말입니다."

"아! 그러시군요. 요즘은 어지간한 마탑에서도 대부분 스카이나이트 전용 마법사를 육성한다 들었는데 그 말이 사실이었군요."

'이건 또 무슨 소리야?'

그냥 대충 둘러댄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하메르.

"마탑에서 스카이나이트를 육성하는데 제국이나 왕국이 가만히 있을까요?"

"네? 그거야 마법사님이 더 잘 아시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제국이라 할지라도 대형 마탑은 건들이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 아닙니까요."

상인답게 무언가 눈치를 채려는 하메르.

"혹시나 해서 말입니다. 요즘 스카이나이트 때문에 마탑이 무시를 당한다 생각하는 마법사들이 많아서 한번 물어봤습니다."

"그렇군요. 마법사님들보다 더 대우를 받는 스카이나이트들이니...."

말을 하면서도 하메르는 내 눈치를 살폈다.

"이봐, 그 소문 들었어?"

"뭔 소문?"

"이번에 각 제국과 왕국이 능력있는 인재들을 선발하기 위하여 기사 학교와 스카이나이트 기사 학교의 문을 활짝 열었다네."

"그럼 우리 같은 평민들도 입학할 수 있다는 말이야?"

"그렇지. 원래 바즈란 제국이야 능력을 중시하는 곳이니 상관없지만 다른 제국과 왕국들까지 이럴 줄은 몰랐네."

국경 쪽에 위치한 덕분에 장사가 잘되는 샤두르 백장성의 여관.

하메르의 단골 여관은 상당히 넓었고, 용병들과 상인들을 수용하고도 백여 명의 사람들이 술을 마시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 와중에 뒤쪽에서 들려오는 솔깃한 이야기 하나.

"이거 이러다 큰일 나는 거 아닌가 모르겠어. 왜 이렇게들 전력을 비축하려 하는지...."

"자네들에게만 얘기하는데, 요즘 전쟁 상인들이 대박을 치고 있대. 갑자기 병장기며 각종 광물 거래 가격이 두 배씩 뛰었다고 해."

"벌써 두 배씩이나?"

"이럴 줄 알았으면 우리도 곡물 말고 전쟁 물품이나 취급 할 것을...."

'대륙에 무슨 일이 있나?'

아이란 상단 상인들도 그렇고, 다른 상인들의 말에서도 느껴지는 대륙의 긴장감.

피부에 와 닿지는 않지만 무언가 일이 터질 것은 분명한 것 같았다.

"저... 카이어 마법사님."

"네?"

골똘히 생각에 젖어 맥주잔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나를 은밀히 부르는 상인 자메르.

"실례지만 어디까지 가시는지요?"

"그건 왜 묻는지요?"

나를 마법사라고 깍듯이 대우해 주지만 나이도 많은 어른이기에 반말을 할 수는 없었다.

"혹시 가시는 길이 겹치시면 저희 상단을 좀...."

'바즈란 제국에 블랙 와이번이 있다 그랬지.'

구라를 치는 히스였지만 블랙 와이번에 대한 정보는 틀린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뒷자리의 상인들이 말하기를, 바즈란 제국은 본래부터 능력을 중시하는 곳이라 하였다.

"바즈란 제국까지 갑니다."

"바, 바즈란까지 말입니까?"

"네. 왜, 가면 안 됩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저희와 가는 방향이 달라서."

말을 하면서 실망의 빛을 감추지 못하는 하메르의 표정.

'흐흐, 다행이군.'

신이 도우사 구라 용병단과 헤어질 수 있는 절호의 찬스.

놓치면 바보였다.

"정말 아쉽군요. 이왕이면 인연있는 아이란 상단과 같이 가면 좋을 텐데."

"그러게 말입니다. 알티어스, 혹시 우리 상단에서 바즈란에 갈 상행이 있나 알아봐 주게."

"아! 그러고 보니 루메스님이 이끄시는 포도주 운반 상단이 내일 국경 부근에서 출발한다고 합니다."

"그래? 그럼 다행이군. 가서 속히 연락하게 뛰어난 마법사님께서 저렴한 봉사료로 바즈란까지 간다고 말이야."

'헐, 이 양반들이 털도 안 뽑고 잡아먹으려고 하네! 저렴한 봉사료?'

누가 상인 아니랄까 봐 머리를 빛나게 굴리는 하메르.

"자, 모두 건배합시다! 우리의 굵고 짧은 우정을 위하여!"

자리에서 일어나 블랙 와이번 용병단과 상인들을 향하여 잔을 높이 들었다.

"위, 위하여~!"

"우정을 위하여!"

다들 술이 만취한 용병단.

'우정을 위하여' 라 외치며 술을 들이켰다.

'다들 바이 바이!'

아쉽지만 더 이상 비전 없는 용병단과 인색한 상인들을 따라다닐 수는 없었다.

'바즈란 스카이나이트 기사 학교! 움하하하! 기다려라! 이 강혁님이 가신다!'

현대로 치자면 공군사관학교에 해당하는 대륙 엘리트 코스.

나의 화려하게 펼쳐질 미래를 꿈꾸며 맥주를 시원하게 들이켰다.

앞으로 펼쳐질 내 인생이 비단길과 같이 술처럼 술술 잘 넘어가게 해달라고 신들께 간절히 기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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