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세기 대마법사-13화 (13/221)

제13장 마법사 카이어

"가자, 이놈들아! 이럇! 이럇!"

히이이이이잉.

달가닥달가닥!

성에서 하룻밤을 머물고 아침 일찍 말 두마리가 모는 최신형 마차를 몰며 신이 난 얀스.

굳이 영주성에 오래 머물 필요가 없기에 어제 마차 한 대와 자잘한 생필품들을 구입해 아침 일찍 출발했다.

'좋다~!'

두툼한 담요를 마차 바닥에 깔고 덜컹거리는 바퀴의 진동을 느끼며 팔베개를 하고 누었다.

'이제 슬슬 떠날 때가 된 건가.'

마을 같아서는 5서클 마법까지 수련한 후에 떠나고 싶었지만 깨달음이 수학 공식처럼 쉽게 풀릴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언제까지 루나 마을에 머무를 수 없었다.

누워서 보이는 저 끝없는 푸른 창공 같은 내 마음이 흐르기를 원하고 있었다.

'정보가 필요해. 이 세계에 대한 대략의 지식이.'

마을에서 제일 똑똑하다는 촌장도 메이저리그가 아닌 동네 투수 출신.

기껏해야 신 몇 명과 왕국 몇 개, 그리고 나도 충분히 알고 있는 단편적인 지식들을 소유하고 있었다.

'자메르에게 포션을 부탁했으니 알아서 구해올 것이고, 이것저것 기초 자립 물품들을 잘 활용하면 앞으로 몇 년 동안은 문제없이 생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는... 스스로의 몫이겠지.'

목숨을 구해준 인연으로 시작된 루나 마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이제 다했다.

언제까지 내가 그들을 위해 살아줄 수는 없었다.

"저, 저기, 카이어!"

갑자기 흔들리며 움직이던 마차가 멈춰 섰고, 얀스가 두려움이 가득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하암! 무슨 일이에요? 이제 마을도 얼마 남지 않았...."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켜고 고개를 들던 나는 눈에 들어오는 광경에 그대로 몸을 멈췄다.

'저 형님들은 누구삼?'

오로지 분류되는 루나 마을로 가는 길은 작은 숲 몇 개와 넓은 미개적 평원 지대였다.

그런 평원의 길을 가로막고 있는 이십여 명의 말탄 용자들.

"얀스, 아시는 분들입니까?"

"자네 지금 농담할 때인가? 분명 우리들을 지켜보고 있던 산적 놈들일 걸세."

튼튼한 덩치가 아까운 얀스가 벌벌 떨며 산적이라 말했다.

'그리 안 해도 심심하던 차에 잘 걸렸다.'

얀스의 말처럼 영지에서 대박을 친 우리를 관찰하다 뒤따라온 산적일 수도 있었고, 나에게 이를 갈던 못된 다론 상단과 연결된 자들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나는 전자보다 후자가 맞다고 생각하였다.

'자식, 똘마니들이나 보내고.'

마수도 골로 보낸 내가 딱 보아도 어중이떠중이로 보이는 산적들이 두려울 리 없었다.

"얀스."

"어, 어떻게 하지, 카이어? 이거 다 주고 목숨만 살려달라고 하세. 그러면 저들...."

"슬립."

가벼운 마법 시동어와 함께 얀스는 그대로 잠에 빠져들어갔다.

'메모라이즈의 생활화. 너희들, 다 죽었어!'

시비를 걸 필요는 없지만 시비를 걸어오는 자를 가만히 놔둔다는 것은 내가 허락할 수 없었다.

투두둑.

손가락을 깍지 끼며 마차에서 일어났다.

'20명. 딱 좋네.'

마을까지는 마차를 타고 반나절 거리.

넓은 평원에서 나를 도와줄 놈은 하나도 없었다.

두두두!

놈들이 움직였다.

스턱.

마차에서 가볍게 몸을 날렸다.

그리고 말을 타고 순식간에 다가오는 놈들을 발바닥 장단을 맞추며 기다렸다.

★★★★★★★★★★★★★★★★★★★★★★★

"흐흐, 네가 루나 마을의 겁탱이 없는 꼬맹이로구나."

짐작대로 나를 잘 알고 있음이 확실한 자들.

'용병들? 아닌데....?'

마을을 찾아왔던 용병들의 자유스러운 분위기와는 확연히 다른 자들.

앞에서 용병처럼 건들거리는 사십대 초반의 남자와 달리, 그 뒤에 정렬해 있는 이들은 정규병들처럼 절제된 동작을 보이고 있었다.

"댁들은 누구쇼?"

삐딱한 시선으로 말 탄 이들의 정체를 물었다.

"댁? 크크크, 죽을 놈이 많은 것을 묻는구나."

"다론의 라이안이라는 돼지상인 놈이 보냈소? 딱 보아하니 용병들은 아닌 것 같고. 이렇게 영주의 허락없이 백성들을 핍박해도 되는 거요?"

"....."

내가 찌른 정곡에 놀라며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는 이들.

'병사들이구나.'

예상대로 라이안 놈과 행정관이라는 놈이 짜고 보낸 병사들이 분명했다.

지금쯤미염 내가 루비스 상단과 거래한 내용이 좁은 도시에 퍼졌을 것이고, 행정관 놈은 영주 때문에 자신의 치부가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할 것이 분명했다.

"어린놈이 제법이구나."

무리의 수장으로 보이는 자가 조용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를 뱉어냈다.

동시에 병사 무리도 살기를 흘려내기 시작했다.

영주를 들먹인 것이 놈들을 자극했음이 분명했다.

"쯧쯧, 백성들이 내는 세금으로 먹고사는 놈들이 부끄러운줄 알아야지. 어디 할 짓이 없어서 도적질이야! 썅!"

차자장!

"아가리 닥쳐!"

욕이 섞인 몇 마디에 병사들이 기마용 검을 빼 들었다.

'갑옷도 걸치지 않은 기마병이라.... 이것들, 혼 좀 내주면 영주가 알라나?'

어딘가에 갑옷을 벗어놓고 몰려왔음이 분명한 기마병들.

일반병과 달리 기마병은 제법 중요한 영지의 병력일 것이다.

"죽여라!"

"명!"

"히럇!"

선두에 선 자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말을 탄 병사 하나가 달려왔다.

'웃겨.'

한 칼에 죽이려는 듯 큰 동작으로 말을 타고 오며 검을 휘두르는 자.

깡!

촌장이 준 검에 마나를 살짝 담아 병사의 내려치는 검을 맞받아쳤다.

"으악!"

철퍼덕.

예상치 못한 반격에 손에 들고 있던 검이 튕겨져 나감과 동시에 병사의 몸은 충격을 받아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퍽!

그리고 떨어진 충격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병사의 대갈통을 그대로 로우 킥으로 날려 기절시켜 버렸다.

"헛!"

단 한 방에 나가떨어진 동료의 모습에 병사들의 입에서 비명이 흘러나왔다.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놈이었군. 흐흐, 그래도 네놈이 뒈진다는 결과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누구 맘대로? 형씨, 자신있어?"

껌 좀 씹는 불량배 어투로 수장으로 보이는 자를 자극했다.

'이놈은 기사다.'

다른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리며, 화가 난 놈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마나의 기운.

"죽여라!"

다시 떨어지는 명령.

히이이이이잉!

두두두두두둑!

10미터 정도 앞에 정렬해 있던 병사 세 놈이 달려왔다.

'이제 본 실력 좀 보여줄까?'

검으로도 문제없지만 주 전공은 아직까지 마법.

"매직 애로우!"

파앗!

간단한 2서클 공격 마법이 영창과 동시에 허공에 10여 개의 애로우 화살을 만들어내었다.

서클에 비례하여 애로우 화살은 수가 비약적으로 늘어나는 것이 마나의 법칙.

"쓰러져라!"

갑작스럽게 매직 애로우가 우윳빛 광채로 허공에 만들어지자 달려오면서도 놀라는 병사들.

가볍게 정신을 집중하여 애로우를 그들의 몸통으로 인도했다.

쉬익! 퍼버벅!

"컥!"

"캑!"

"헉!"

팔뚝만 한 크기의 매직 애로우를 몸으로 뜨겁게 감상하며 말 위에서 떨어지는 병사들의 몸뚱이.

갑옷도 없는 몸에 애로우가 적중했기에 최소 갈비뼈 몇 개씩은 작살난 중상을 당했을 것이다.

'이놈들, 의료보험은 되는지 몰라?'

내가 다친 것도 아니지만 심히 걱정되는 마음.

친절한 강혁 씨가 아닐 수 없었다.

"마, 마법사!"

"......"

"어, 어떻게 마법사가.....?"

남아 있는 열여섯 명의 병사들이 마법사를 연발하며 나를 두려운 눈동자로 바라보았다.

"어, 어느 마탑 소속의 마법사십니까?"

기사로 짐작되는 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어느 마탑의 마법사냐고 물어왔다.

'마탑? 건달프 사부가 거주하던 그 마탑?'

"그딴 건 없어. 들어는 봤어? 검정고시 출신 마법사라고."

"검정고시?"

알 턱이 없었다. 검정고시를 되뱉어내는 기사 놈.

갑자기 얼굴이 시뻘겋게 변하였다.

자신을 노릴고 있음을 파악한 것이다.

"이 빌어먹을 놈이!"

파앗!

기사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말을 박차고 검을 날려오는 자.

'느려.'

내가 잡았던 마수에 비하면 한없이 느려 터진 기사의 몸놀림.

"탓!"

마법사가 전공이지만 요즘은 복수 전공이 대세인 세상.

검으로 놈의 하체를 찌르며 돌격을 차단했다.

"헛!"

마법만 생각하고 있다가 검이 날아오자 기겁을 하며 검을 급히 돌려 방어를 하는 기사.

'오러 블레이드!'

이 세계에 넘어와 처음으로 나 이외의 오러 블레이드를 감상할 수 있었다.

파가강!

'에계, 오러 블레이드가 뭐 이래?'

기대와는 달리 내 검에 담긴 오러 블레이드에 부딪치자마자 지직거리며 사라지는 놈의 얇고도 연약한 오러 블레이드.

순간적으로 놈의 몸이 굳었고, 그 허점을 맹렬한 발차기가 파고들었다.

퍽!

"커억... 컥!"

옆구리에 틀어박힌 마나가 담긴 일격.

숨이 막혔는지 시커멓게 변한 얼굴로 몸이 굳은 기사 놈.

빠각.

가벼운 뒤돌려 차기로 가뿐하게 마무리를 하였다.

'다행으로 생각해라, 생명의 소중함을 알고 있는 21세기 대마법사님을 만난 것을.'

강력한 발차기에 입에 거품을 뽀글뽀글 만들어내며 기절한 기사 놈.

"내려."

고개를 들어 어미 잃은 강아지 꼴로 파랗게 질려 있는 병사들에게 내리라 명령했다.

"파이어 볼!"

화르르르르르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놈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약이 아니라 몽둥이.

몸통만 한 파이어 볼을 두둥실 내 앞에 띄워놨다.

"으아아아!"

"살, 살려주십시오, 마법사님!"

타다다다닥!

누가 먼저라고 할 것이 없었다.

남아 있던 병사 놈들은 들고 있던 병장기를 내던지고 말 밑에 내려 고개를 처박았다.

'궁지에 몰린 꿩도 아니고.'

마법사라는 족속이 일반 병사들에게 어떤 이미지로 비쳐지는지 알 수 있는 한 장면.

개기는 병사 하나 없이 모두 땅바닥에 대가리를 박고 바짝 엎드렸다.

"행정관이 보냈냐?"

가벼운 질문 하나.

"그, 그렇습니다."

병사들 중 선임으로 보이는 자가 살짝 고개를 들고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영주는 알고 있어, 네놈들이 이렇게 못된 짓을 하고 있는지?"

"그, 그건....."

아마 모를 것이다.

피요르 자작가의 영주라는 작자는 인상으로 보아 그럴 놈이 아니었다.

"모두 벗어. 착용하고 있는 무기 일체와 상의를 벗는다! 실시!"

갑작스러운 명령에 어안이 벙벙한 병사들.

"동작 봐라! 파이어 볼에 통닭구이가 되고 싶나!"

중학교 2학년 때, 단체로 체험한 적이 있는 해병대 극기 캠프.

그때 우리를 미치게 만들었던 조교의 말투가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아, 알겠습니다요!"

"벗습니다! 벗어요!"

이미 나에게 완벽하게 정신이 제압당한 병사들이 단도와 여러 가지 군용 물품, 그리고 상의를 벗어 던졌다.

"거기 쓰러져 있는 놈들도 모두 벗겨!"

"넵!"

어느새 충실한 내 병사가 된 듯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병사들.

'저거 돈이 얼마야?'

갑자기 나타나 짭짤한 부수입을 올려주는 말 탄 병사들.

흐뭇한 모습으로 서로를 벗겨가는 그들의 아름다운 전우애를 감상했다.

★★★★★★★★★★★★★★★★★★★★★★★

"카, 카이어, 저게 무슨 말인가?"

"이제 일어나셨어요? 갑자기 쓰러지신 걸 보면 상당히 피곤하셨나 봐요."

따그닥따그닥 마차를 몰고 마을로 돌아가는 길.

길눈이 제법 밝기에 얀스가 없이도 마을은 점점 가까워졌고, 마법에서 깨어난 얀스가 마차 뒤에 병장기와 함께 줄줄이 매여 따라오는 말들을 보고 놀랐다.

"카이어, 그 산적들은 어디로 가고 이 말들은....?"

"아, 이거요? 알고 봤더니 산적들이 아니라 신실한 신앙심을 소유한 자선사업가더라고요. 불쌍한 루나 마을 이야기를 해줬더니 타고 있던 말에 옷과 무기까지 다 벗어주고 갔습니다. 각박한 요즘 세상에 그런 분들이 있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더라고요."

"정, 정말인가?"

"얀스, 제가 언제 거짓말하는 거 봤습니까? 그리고 만약 그분들이 산적이라면 얀스와 제가 이렇게 멀쩡히 마을로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 그건 그렇지만...."

"마을이 보여요!"

"벌써 다 왔어?"

얀스가 자는 동안 마차에 라이트 마법을 걸어 말들과 함께 평원을 질주해 왔다.

해도 저물어 밤늦게 몬스터들과 드잡이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얀스~!!"

"얀스와 카이어가 돌아온다!"

대부분 시력 2.0의 독수리눈을 가지고 있는 마을 사람들이었기에 망루에 있던 이들이 큰 소리로 우리를 환영해 주었다.

"얀스, 제가 말했지요? 상인들이 올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마십시오."

"그, 그래, 알겠네."

마차에 실려 있는 물건만으로도 마을 사람들은 충분히 행복해할 것이다.

그리고 내일 상단이 도착하면 그 기쁨은 배가 될 것이다.

'오늘은 제대로 된 정찬을 즐겨볼까.'

다른 것보다 기대되는 것은 세실이 만들어주는 저녁밥.

성에서 이것저것 각종 양념과 주방용품을 구입해 돌아가는 중이었다.

"아빠!! 카이어 형!!"

마을 방책 문이 열리고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던 데론 녀석이 달려왔다.

그리고 그 뒤로 기대에 찬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

"오늘, 참치로 파티 한번 열어볼까?"

마을로 돌아온 지 이틀째.

튼튼한 말 이십여 마리와 마차에 실려 있던 작은 선물에 마을은 축제 분위기처럼 들떴다.

워낙 가난하게 살던 이들이라 조그만 선물에도 몇 배의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오늘은 상인들이 도착하는 날.

어제쯤 성에서 출발했을 것이니 늦어도 오늘 오후에는 자메르가 물건들과 함께 도착할 것이다.

'촌장님 기절하시겠지?'

세금만 내고 포션을 구입하지 못해 모두 말을 사버렸다는 말에 경악을 감추지 못하던 촌장.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끙끙 앓는 소리가 집 밖으로 노랫소리처럼 끊이지 않고 있다 하였다.

"왕창 벌어서 자메르에게 성수 구입을 맡기자. 신의를 아는 상인 같으니 내가 없어도 마을을 살펴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 제대로 마디르를 선사해 주어야 했다.

"마나는 풀로 충전됐고, 남은 것은 어떻게 바다 몬스터들을 물리치고 참치를 안전하게 수송하느냐인데...."

해변에서 1킬로가량 떨어진 바다 위.

지금도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참치들이 바다를 박차고 오르며 나를 희롱하고 있었다.

일 년에 단 석 달만 마을 앞바다를 지나간다는 참치는 지금이 가장 절정이라 하였다.

"저기 오는군."

바다를 보며 참치 수송에 고심을 하고 있는 사이, 저 멀리서 일단의 무리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내가 주문한 물건들은 마을 사람들이 일 년을 풍족히 먹고살 정도의 양.

곡물 때문에 백여 대의 마차가 줄지어 지평선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캬아, 땀 흘려 일하는 이 보람. 사부님이 주신 백금 카드도 부럽지 않구나."

사부의 고향 대륙에서 산 지 몇 달 되지도 않았건만 누군가를 위하여 작은 힘으로 큰일을 이루어냈다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했다.

대한민국에서는 그저 공부 잘하는 고삐리에 불과했지만 이곳에서는 한 마을을 책임지는 대부였다.

땡땡땡!

"누, 누군가가 온다!"

"모두 모이시오!"

마을 망루에서도 마차가 보이는지 요란한 종소리와 함게 마을 사람들이 부산하게 움직였다.

몬스터를 빼고는 찾아올 이가 드문 루나 마을.

그들을 위해 반가운 손님이 찾아오고 있었다.

★★★★★★★★★★★★★★★★★★★★★★★

"이, 이게 무슨....?"

"와아! 돼지하고 소야!"

"저게 다 밀가루야?"

"질 좋은 레더아머다!"

장이 선 것처럼 마을 사람들 모두 밖으로 몰려나왔다.

험상궂은 용병 수십 명이 상인들과 함께 왔지만 마을 사람들은 난생처음 보는 엄청난 물건에 넋을 빼앗기고 구경하기에 바빴다.

아마 태어나 이런 엄청난 물량은 구경도 못해봤을 것이다.

"우, 우리 마을은 교환할 것이 감자와 보리밖에 없습니다. 말도 몇 마리 있기는 하지만... 저희 것이 아니라...."

자메르 앞에서 질 좋은 각종 물건들을 보며 머리를 굴리고 있는 이 빠진 촌장.

아마 지금쯤 감자 몇 포대로 뭘 사야 하나 엄청난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다.

"자메르님 오셨습니까!"

"어디 있다 이제 오는가?"

촌장 이하 마을 사람들의 구경에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던 자메르가 내가 나타나자 반색을 하였다.

아무리 대상단의 지배상인이라 해도 내가 외상으로 구입한 물품은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물건들은 믿어도 되겠죠?"

"카이어 군, 자네 집 가훈이 정직이라고 했나?"

"네, 정직 맞습니다.'

자메르가 장난스러운 눈빛으로 가훈을 물었다.

"우리 상단의 상훈이 바로 정직한 자와만 거래하라이네. 난 자네의 양심을 믿네."

'헐, 내 양심을?'

나도 가끔은 믿을 수 없는 털 난 내 양심.

그런 양심을 믿는다는 자메르 역시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카이어, 이분들을 아시는가?"

자연스럽게 상단의 우두머리와 얘기를 나누자 촌장이 놀란 눈으로 나를 보았다.

"물건은 마디르를 넘겨받을 때마다 인도할 것이네."

계약에 쐐기를 박는 자메르.

"물론이죠. 단, 만족한다면 초과 수당은 지급해 주시는 거죠?"

나를 믿고 나름대로 모험을 한 자메르.

칼리얀 대륙에서 처음으로 나에게 투자한 투자자였다.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자는 언제나 우리 루비스 상단의 최고 고객일세."

긴말이 필요없었다.

"그럼 물건을 확인하러 가시죠?"

"아, 아니, 벌써 잡았나?"

내 말에 깜짝 놀라는 자메르.

"상인이시면서 생선의 생명은 신선도라는 것을 모르십니까?"

"그거야 그렇지만...."

"마을 뒤편으로 가시지요. 오늘 기분도 좋은데 팍팍 잡아드리겠습니다."

"지금 무슨 말들을 하는 건가? 뭘 인도하고 무엇을 넘겨준다는 것인가?"

궁금해서 미치겠다는 표정의 촌장.

그 뒤에서 얀스만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가시지요."

어차피 마법을 사용하지 않고 마디르를 잡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

더군다나 이번에 사용할 마법은 4서클 공격 마법의 최고봉이었기에 마을 사람들이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잠깐, 그전에 자네를 만나고 싶어하시는 분이 계시네."

"네? 저를 만나고 싶어하시는 분이라고요?"

'분?'

자메르가 존칭을 사용할 정도의 상대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 중에 나를 보러 올 사람은 없었다.

"마차 문을 열어드려라."

"네, 지배상인님."

자메르의 보좌관인 테리슨이 힘차게 대답하고 한 대의 마차 앞으로 달려갔다.

'누구야, 상인들에게 저리 존경받는 사람이?'

촌장의 궁금함에 비견될 만큼 나의 호기심도 절정에 달했다.

"도착했습니다. 나오십시오."

덜컹.

조심스러운 자세로 마차의 문을 여는 테리슨.

"고마워요."

'여, 여자?'

마차 안에서 듣기 좋은 맑은 음성이 흘러나왔다.

사박사박.

마차의 발판을 밟은 하얀 가죽신.

"허억!"

그리고 발판을 딛고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내리는 한 여인의 모습에 나는 심장이 멎는 충격을 받았다.

'아, 아르미스!'

그러했다.

놀랍게도 자메르와 함께 루나 마을을 방문한 이는 자비의 여신 네르안의 수습사제 아르미스였다.

"이렇게 다시 찾아뵙게 될 수 있도록 허락하신 인연의 주관자 로메로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모든 것이 신과 연결된 삶을 살아가는 칼리얀 대륙인.

아르미스는 나에게 다가와 우아하고 기품있는 동작으로 귀부인처럼 인사를 해왔다.

"저, 저도 다시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아나, 이게 무슨 일이야!'

나를 만나뵙고 싶어 이 먼 곳까지 상인들을 따라왔다는 아르미스.

유니콘을 타고 각종 동물들과 친구를 먹을 성스러운 여신의 미모를 소유한 여인이 나를 향해 싱긋 미소 짓고 있었다.

'심장아, 넌 왜 이리 뛰니?'

보는 것만으로 포근해지는 아르미스의 성스러운 아름다움.

주책없이 심장은 펌프질하기 바빴다.

"오오오오오오오오! 신이시여!"

"네, 네르안님의 사제가 이곳에....!"

"흐윽! 자비의 여신 네르안님이시여!

털썩털썩.

내가 혼란에 빠져 있는 사이, 촌장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 모두 성호를 그으며 무릎을 꿇었다.

'이, 이 정도란 말인가.'

얼마나 감격에 복받쳤으면 마을 사람들은 눈물까지 뚝뚝 흘리며 성호를 긋기에 바빴다.

"미안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네르안님은 당신의 신실한 종들을 위하여... 지금 기쁨의 눈물을 흘리신답니다."

자비의 여신을 향한 순수한 사람들의 신앙에 태양처럼 반짝이는 보석 같은 눈물을 또르르 흘리는 아르미스.

마을 사람들뿐만 아니라 상인, 용병들까지 경건한 자세를 취하였다.

'이게 진정 신앙이구나.'

신의 마음을 아는 종과 신을 갈구하는 어린 양들.

타락하고 돈에 물든 21세기 신앙과는 천지 차이로 다른 감동이 밀려왔다.

"왜 아르미스님을 모시고 온 것입니까?"

그동안 사제 한 번 찾아오지 않았건만 신을 의지하며 살았던 마을 사람들과 네르안 사제와의 뜨거운 만남.

조용히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는 자메르에게 물었다.

"포션을 구해오라 하지 않았나?"

"아니, 포션하고 저 사제 분하고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기껏 수습사제밖에 안 되잖아요."

내가 알고 있는 상식선에서 되물었다.

"자네, 모르고 있었나? 여기 아르미슨님이 네르안 신전의 포션을 만드시는 분이라는 것을?"

"....."

'어쩐지 좔좔 후광이 흐른다더니.'

"자네, 복받은 줄 알게. 아르미스님은 내가 보기에 현 신관들 중 최고의 신력을 소유하신 분 같네. 그런 분이 자네를 보고 싶다며 이곳까지 찾아왔다는 것만으로도 자네는 앞으로 신의 축복을 듬뿍 받을 것이네."

부러운 눈길로 나를 바라보는 자메르.

"큼, 제가 복이 좀 많긴 많습니다."

겸손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신의 어린 양들을 축복의 손길로 쓰다듬고 있는 여신 아르미스.

나를 보러 왔다는 그 말에 가슴 한쪽이 훈훈해졌다.

'움직이는 종합병원. 딱 좋네.'

성력으로 어지간한 병은 치료할 수 있다는 신관, 또는 사제들.

결코 알아서 나쁠 것은 없었다.

더욱이 저렇게 아름다운 여사제라면 두 손 들고 대환영이었다.

★★★★★★★★★★★★★★★★★★★★★★★

"저기 참치, 아니, 마디르가 보이시죠?"

"보이긴 보이네만... 배도 없이 어찌 잡는단 말인가?"

힘 좀 쓰는 용병들이 가로 2.5미터, 세로 1미터 크기의 마법 냉동고를 가지런히 해안가에다 정렬해 놓았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과 상인들, 아르미스, 용병들은 내 손길을 따라 팔짝팔짝 뛰어 바다를 헤엄쳐 가는 참치를 바라보았다.

"어떻게든 잡아만 주면 되는 거 아닙니까?"

"그야 그렇지. 하지만 자네가 무슨 수로...."

'흐흐, 그거야 보면 아는 거 아닙니까.'

내 실력을 굳이 자랑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카이어, 왜 그런 무리한 일을....?"

촌장도 대충 사건의 전말을 듣고 안타까운 눈길로 나를 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대머리 촌장 머리로는, 아니,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도 해답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아르미스, 그런 웃음 짓지 마요.'

다만 무언가 알고 있는 듯한 신비한 미소를 짓고 있는 아르미스만이 반짝이는 눈동자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심장 떨리게 말이다.

"날 실망시키지 말게."

아무리 통밥을 굴려도 답이 나오지 않는지 자메르의 표정이 굳어갔다.

'사람이 속고만 살았나.'

하지만 나라고 나 같은 사람은 믿지 못할 것 같았다.

"카이어, 어, 어서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게. 잘못하면... 어, 어, 어!"

얀스가 다가오다가 발걸음을 멈췄다.

"플라이!"

호흡으로 마나를 모으자 몸에서 마나가 발생하였고, 메모라이즈된 마법은 영창만으로 몸을 가볍게 하늘로 띄웠다.

"마, 마법사!"

"카이어가 마법사라니!"

"이, 이럴 수가!"

바람을 타고 가볍게 몸이 바다 쪽으로 날아가자 아래에서는 난리가 났다.

자신들과 함께 살았던 평범한 이가 마법사라는 사실.

놀라지 않는다면 우황청심환 상습 복용자일 것이다.

'크크, 다들 기대하쇼! 오늘 리얼 버라이어티 번개 쇼를 펼쳐 줄 터이니!'

이 맛에 마법사로 사는 것이다.

마법을 배워 평범하고 찌질하게 세상을 살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잘나면 잘난 대로, 못나면 못난 대로 사는 것이 인생.

난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진정한 풍류 남아였다.

'움하하하하하하하하!'

★★★★★★★★★★★★★★★★★★★★★★★

'마법사라니....?'

처음 볼 때부터 범상치 않다는 것을 상인의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작은 영지의 궁벽한 시골 마을 출신이라고 볼 수 없는 평범하지 않은 외모와 귀족가의 자제처럼 주눅 들지 않는 자연스러운 행동과 총기에 반짝이는 눈동자.

거기에 상인 뺨치는 인간 심리를 꿰뚫고 활용하는 능력까지.

카이어라 불리는 검은 머리 청년은 루비스 상단에서 차기 총단주가 될 1순위인 자메르를 감탄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그런 자가 마법사였다.

'플라이 마법을 저렇게 자연스럽게 펼칠 수 있는 자라면 4서클 마스터만이 가능한 일. 저 나이에 4서클이 가당키나 한 말인가?'

상인 이전에 마법사가 꿈이었던 자메르.

비록 수습마법사인 2서클을 끝으로 마법과 인연을 끊었지만 자메르는 잘 알고 있었다.

이제 갓 스물도 안 된 나이에 4서클에 오른 이는 마법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너의 정체가 무엇이더냐, 카이어.'

뭇사람들의 경악에 찬 시선을 즐기며 어느새 마디르가 뛰어 헤엄치는 바닷가 상공에 이른 카이어.

그의 손이 허공중에서 수식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라이트닝 웨이브!!"

버언쩍! 쩌저저저저저저저저저저적!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마법이다!"

난생처음 4서클 마법을 보았을 순박한 마을 사람들이 입을 쩍 벌리고 탄성을 터뜨렸다.

"대, 대단하군!"

어지간한 장면에는 놀라지 않는 자메르도 입을 벌리며 카이어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플라이 마법 중에 펼치는 4서클 최고 공격 마법.

마나를 저리 완벽하게 조절할 정도면 카이어의 수준은 4서클이 아니라 5서클 마스터라 해도 믿을 정도였다.

★★★★★★★★★★★★★★★★★★★★★★★

두웅, 두웅, 두웅.

강력한 전기 충격에 한 무더기의 참치가 배를 뒤집고 바다위에 떠올랐다.

'한 놈, 두 놈..... 흐흐, 한 방에 열다섯 마리라.... 대박이군.'

떼를 지어 다니는 습성답게 4서클 라이트닝 웨이브 마법에 감전되어 떠오르는 참치.

참치뿐만이 아니었다.

몸통만 한 일반 생선부터 시작해 수천 마리의 잡다한 생선이 바다 위를 표류했다.

'이제 끌고 가는 것이 문제인데....'

처음 멋모르고 잡았을 때의 생고생은 이제 없었다.

발전이 없다면 그것은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아닌 원숭이 친구 원돌이에 불과한 것이다.

'마나의 양이 반절로 줄어들었다. 역시 4서클 공격 마법의 최고봉답다.'

플라이 마법을 시전하면서 마나를 컨트롤하는 일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른 4서클 마법사들이었다면 플라이 마법에 사용되는 마나 조절만으로도 벅찰 것이다.

'다음 마법은 윈드 팬.'

바람 부채라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2서클 마법.

저서클이었지만 참치를 1킬로에 이르는 해변으로 이끄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바다가 밀물 때라 시도해 보는 마법이었다.

"윈드 팬!"

참치를 잡기 위하여 고심하여 조합한 마법 공식들.

메모라이즈해 두었기에 영창만으로 마법은 펼쳐졌다.

휘리리리리리리링!

참치가 사방으로 흩어지기 전에 바람이 불어 한쪽으로 모았다.

그리고 참치들과 기절한 고기 떼는 내 의제에 따라 해안가 쪽으로 밀려갔다.

'완벽해! 역시 난 천재야! 크크크!'

배 한 척도 없이 누가 대형 참치를 잡을 생각을 하겠는가.

일인 원양어선의 선장이 된 나는 마법의 무궁한 효용에 다시 한 번 큰 기쁨을 맛보았다.

'오늘은 이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주겠다! 축제! 축제를 펼칠 것이야!'

사람이 밥만 먹고 살 수 없는 것처럼, 평범한 삶 속에서 축제 같은 이벤트는 반드시 필요했다.

더욱이 태어나서 제대로 된 인생의 즐거움을 맛보지 못했을 마을 사람들.

죽어서도 잊지 못할 추억거리 하나를 선물해 주고 싶었다.

'응? 그런데 이 기운은 뭐야?'

축제를 생각하며 기분 좋게 참치 떼를 몰고 가는 와중에 느껴지는 불편한 기운.

"헉! 저, 저놈들이!"

참치 떼와 고기를 잘 몰고 가는 와중에 제법 쓸 만한 고기들이 쑥쑥 바다 속으로 사라져 갔다.

그리고 흥건하게 퍼지는 핏줄기와 그 아래로 보이는 검은 실루엣의 그림자.

말로만 듣던 바다 몬스터가 분명했다.

'썩을! 이건 또 뭐다냐?'

아이들이 당황할 때 뱉어내는 21세기 언어를 사용하며 나는 기분이 급 다운되는 것을 느꼈다.

힘들게 참치와 고기를 잡은 놈은 따로 있건만 힘 안 들이고 포식하는 바다 몬스터.

저놈들 때문에 굶주리면서도 멀쩡히 눈뜨고 헤엄치는 고기만 바라보았을 마을 사람들 심정이 이해가 갔다.

'으아아! 열받네!'

하나둘 사라지던 고기들에 이어 제법 쓸 만한 참치 한 마리도 쑤욱 가라앉아 버렸다.

하지만 공격할 방법이 전무했다.

마법의 연속 사용으로 마나가 삼분의 일만 남은 상황.

타격을 줄 공격 마법을 펼쳤다가는 끈 떨어진 연 신세가 될 것이 분명했다.

'신이시여! 양심도 없습니까? 좋은 일 한번 하기 이렇게 어렵다면 누가 자선냄비에 동전을 던지겠나이까.'

앞으로도 해안가까지는 약 500미터나 남았다.

그리고 이렇게 느릿하게 가는 동안에 참치 뼈다귀 하나 남지 않을 것이다.

하늘을 바라보며 이곳을 주관하는 신들께 원망을 퍼부었다.

파아아아아아!

'오잉?'

나의 간절한 불만에 응답이라도 하듯이 갑자기 성스러운 기운이 바다 위로 쫘악 퍼졌다.

"신성의 축복이다!"

"오오! 네르안님이 내리시는 정화의 힘이시다!"

해안가 쪽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놀란 목소리.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보았다.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를 울리는 한 여인의 모습을.

'아르미스....'

평화를 내리는 천사로 보이는 그녀의 모습.

상당히 먼 거리였건만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녀의 몸에서 태양빛의 광명처럼 흘러나오는 신성한 오라를.

끼이이이이이이.

신성한 기운이 바다에 흩뿌려지자 공짜 좋아하는 대머리 몬스터들이 괴성을 지르며 갑자기 사라졌다.

'이것이 신의 힘이구나.'

강신을 받아 작두 타고 부채 흔들던 무당들의 모습과 확연히 다른 또 다른 차원의 힘.

왜 이곳 사람들이 신께 간절히 의지하는지 알 수 있었다.

'크으, 그런데 왜 자꾸 생각나는 거야!'

나에게는 지구에 두고 온 어여쁜 예린이가 있건만 머릿속을 가득 메우는 아르미스의 성스러운 얼굴과 착한 몸매.

아직 짝을 이루지 못한 수표범의 혈기 방장한 호르몬의 분비가 아닐 수 없었다.

★★★★★★★★★★★★★★★★★★★★★★★

"마디르가... 몰려온다!"

"물, 물고기야! 물고기라고!"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없고 형을 형이라 부를 수 없는 홍길동의 심정처럼 어부였건만 고기를 고기라 부르지 못했던 루나 마을 사람들이 해변으로 밀려오는 물고기에 환호성을 질렀다.

태풍이 치는 날에나 가끔씩 파도에 밀려온 눈먼 물고기들을 맛볼 수 있을 뿐이었던 마을 사람들.

마디르를 비롯한 수천 마리의 물고기가 둥둥 떠서 밀려오는 장관에 넋을 잃었다.

"용병들은 속히 마디르를 끄집어내시오! 테리슨, 목에 상처를 내어 피를 빼라! 마디르의 생명은 신선도다!"

감탄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님을 잘 알고 있는 자메르.

멍하니 정신줄을 놓고 있는 고용 용병들과 상인들을 채근했다.

'모두 상처 하나 없는 최상품이다! 적어도 200골드 이상은 받을 수 있다!'

이 속도로 마디르를 잡아들인다면 상단에 엄청난 이문을 남길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마디르 때문에 곤란을 겪고 있는 상단에서는 자메르를 더욱 신임하게 될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카이어, 고맙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짜 청년 카이어.

"하하하하하하하!"

무엇이 그리 좋은지 플라이 마법을 펼쳐 하늘을 마음껏 비행하며 시원한 웃음을 뿌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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