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장 루비스 상단
"저것들은 뭐야?"
어제 내가 수집해 온 각종 버섯과 풀 쪼가리들을 보고 마을에선 축제가 열렸다.
자신들의 목숨이라 할 수 있는 감자와 밀이 아니어도 영주에게 세금을 낼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을 사람들 얼굴에 오랜만에 웃음꽃이 피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마을 사람들에게 마수 가죽은 내밀지 않았다.
그리 안 해도 숲을 혼자 돌아다니는 내 정체를 다들 궁금해 하는데 마수 가죽까지 내밀면 사람들은 나를 경원시할 것이 틀림없었다.
"상인인가?"
마수와의 대결을 곱씹으며 사방이 확 뚫린 벼랑 위에서 부족한 검술에 매진하는 순간 마을로 다가오는 일단의 마차와 사람들.
대충 보아도 스무 대가 넘는 마차와 무장한 오십여 명의 사람들은 상인들과 용병들이라 생각되었다.
"상인들이 온다!"
마을 방책 위에서 망을 보고 있던 누군가의 입에서 상인들이 온다는 소리가 울렸다.
'호오, 상인들이라 이거지?'
소설에서나 보았던 이세계의 상인들.
궁금함이 뭉클 일었다.
"오늘 할 일도 다 한 것 같은데 한번 구경 가볼까?"
순박한 마을 사람들과 달리 더 넓은 세상을 알고 있을 상인과 용병들.
이제 서서히 세상에 나갈 준비를 해야 하는 나에게 그들의 등장은 반가웠다.
"나 없어도 혼자 잘 마르고 있어라~"
가죽은 웅달에 말려야 한다고 하여 벼랑 위에 있는 작은 굴바닥에 황금 표범 가죽을 말려왔다.
이곳까지 마을 사람들이 올 수도 없거니와 놀랍게도 마수 가죽을 가지고 나타난 순간 벌레도 모두 사라져 버렸는지 사방이 적막강산이었다.
평소 상습 살인을 벌였던 마수의 행실이 아주 불량했음을 증명하는 명확한 증거였다.
★★★★★★★★★★★★★★★★★★★★★
'용병들은 마을 출입이 안 되는군.'
절벽에서 내려오자 보이는 광경 하나.
상인들을 호위해 왔음 직한 수십 명의 험상궂은 용병들이 마을 방책 앞에 편안하게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런 용병들은 검 하나 차고 마을로 들어서려는 나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헤이, 꼬맹이."
'헤이? 꼬, 꼬맹이?'
상인들이 끌고 온 마차는 대부분 비어 있었다. 그런 마차를 호위하면서 따라온 용병들 중 내 옆에 있던 몇 명이 심심했던지 나를 불러 세웠다.
감히 겁대가리를 상실하고서.
"형씨들, 안녕하쇼?"
오는 말이 싸가지 있어야 가는 말이 정중한 법이다.
"형씨들? 푸하하하하하!"
"크하하하하!"
대부분 훈장처럼 얼굴과 몸뚱이에 지렁이 자국 같은 흉터를 드러내고 있는 용병들.
나의 자극이 재미있었는지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기에 바빴다.
'이것들에게 불침 한 방씩 쏴?'
딱 보아하니 이렇다 할 마나도 없는 단단한 머리와 무식한 힘만을 숭배하는 삼류가 분명한 용병들이었다.
마음먹으면 밥 먹을 시간 정도면 충분히 어찌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자네, 검을 쓸 줄 아는가?"
용병들 중에서 그나마 성격이 괜찮아 보이는 삼십대 중반의 남자가 눈으로 검을 가리키며 다가왔다.
"보면 모르쇼?"
용병들의 태도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천하에 잘난 맛으로 사는 나에게 실력도 없는 것들이 놀려오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젊은 친구가 성격 하나 까칠하군. 어떤가? 이런 촌구석에 있지 말고 우리 용병단에 들어올 마음은 없는가? 보아하니 제법 체격도 되고 눈빛도 쓸 만하군."
'뭐야? 이, 이게 말로만 듣던 길거리 캐스팅이야?'
갑작스럽게 용병단에 들어오라고 제의하는 남자.
정직해 보이는 눈빛을 보니 거짓은 아닌 것 같았다.
"단장님, 저런 애송이를 언제 키웁니까?"
"아무리 우리 블랙 와이번 용병단이 삼류 취급을 받는다지만 애까지 받아들이는 것은...."
'블랙 와이번 용병단? 너희들이?'
딱 보아하니 삼류에 머물고 있는 참새 용병단이 이름 하나는 거창하였다.
"싫습니다."
"싫어? 이런 촌구석에서 농사나 짓다가 죽는 것보다는 사내답게 살 수 있는 용병이 좋을 텐데?"
"별로 안 당기네요. 저기 배 나온 아저씨를 보아하니."
손가락으로 친절하게 나에게 먼저 시비를 걸었던 용병을 가리켰다.
"크하하하하하! 론, 자네 뱃살이 마음에 안 든다네."
"크크크, 천하의 론이 꼬맹이에게 무시를 당하다니 오늘부터 아무것도 먹지 말게. 밥이 아까워~!"
상당히 무료했던지 용병들이 론이라는 용병을 갈구며 즐거워했다.
"이, 이 꼬맹이가!"
무식함의 대명사인 용병 아니랄까 봐 조그만 자극에 발끈하는 론이라는 용병.
뱃살이 출렁이는 거구에 들고 있는 무식한 도끼에서 제법 위압감이 느껴졌다.
"뱃살 아저씨."
조용히 씩씩거리며 황소 눈망을 같은 큰 눈을 부라리는 론을 불렀다.
"왜, 이 버르장머리없는 꼬맹이 녀석아!"
생각했던 것보다 성격은 포악하지 않는 듯 씩씩거리기만 하는 론.
"밤길 조심하세요."
"....."
나의 조용한 경고에 순간 얼어버린 론을 뒤로하고 몸을 돌려 마을 방책 안으로 향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아이고! 아이고! 나, 나 죽는다! 크하하하하하하하하하!"
뒤에서 들려오는 용병들의 배꼽 빠지는 웃음의 행진.
바짓가랑이를 잡고 용병이 되어달라고 사정해도 들어줄까 말까 한 삼류 용병들.
하는 짓도 딱 그 수준이었다.
★★★★★★★★★★★★★★★★★★★★★
'마을 사람들이 다 모였네.'
상인들과 용병들이 이 마을까지 온 이유는 하나.
무언가 거래를 하기 위함이었고, 상인들로 보이는 세 명이 촌장을 위시한 마을 사람들과 함께 마을 공터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곡, 곡물을 팔지 않겠다니요? 촌장님, 다시 한 번 말씀해보십시오."
"허어, 입 아프게 왜 그러시나. 올해는 상단에 넘길 곡식이 없다지 않소."
버섯을 믿고 배짱을 부리는 촌장.
뒷짐을 지고 딴청을 부렸다.
"아니, 그럼 우리 상단은 어찌합니까? 저 용병들을 고용하려고 10골드나 사용했습니다."
"그거야 댁들 사정이 아니겠소. 작년에 그렇게 후려쳐서 가격을 깎는 바람에 세금을 내기 위하여 남아 있던 소와 나귀까지 팔아야 했소. 그런데 올해도 작년 가격이라니... 더 이상 할 말이 없소."
'오호라, 저놈들이 그 악독하다는 다론 상단 놈들이야?'
세금 이야기와 함께 착한 얀스의 입에서 욕이 나오게 만들었던 악독 상인 집단인 다론.
10년 전 참사 이후 다른 상단이 찾아오지 않는 틈을 타서 곡물 가격을 매년 낮춰왔다고 한다.
더욱이 다론 상단에 물건을 팔면 그 가격으로 상인들이 알아서 자작가에 세금을 납부하였기에 감자나 곡식을 따로 끌고 가 팔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의 지나친 폭리.
어느 순간부터 마을 사람들이 쫄쫄 굶어가며 아꼈던 곡식도 터무니없는 가격에 사들여 간다 하였다.
'조선시대 백성들의 등골 빼먹었다는 시전 상인들이 바로 이놈들을 말하는 거였어.'
한눈에 보아도 뒤룩뒤룩 살찐 상인들은 얍삽해 보였다.
"뭘 믿고 이러시는지 모르겠는데... 이러면 곤란하실 텐데요? 이번 달까지 세금을 납부하지 않으면 다들 농노로 팔려갈텐데..... 흐흐흐."
서서히 본색을 드러내는 상인들의 수장으로 보이는 놈.
훤히 드러난 대머리와 번들거리는 개기름 낀 얼굴, 작아서 보이지도 않는 눈은 악덕 상인의 표본처럼 보였다.
"흥! 세금을 납부하면 될 게 아니오!"
젊었을 적 제법 거친 삶을 살아왔다던 과거가 거짓이 아닌듯 배짱을 퉁퉁 부리는 아베스 촌장.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마을 사람들과 달리 촌장은 자신만만한 포스를 풍겨내었다.
"마지막 기회요! 정말 밀과 감자를 넘기지 않을 것이오? 오늘 우리가 가면 이 촌구석까지 올 상단이 없다는 것을 명심하시오!"
당황하면서도 협박을 잊지 않는 상인.
"마음대로 하시오. 그럼 거래는 결렬되었으니 나가보시오. 자이콥 대장, 손님들이 가신다니 밖에까지 정중히 배웅해 드려."
"네, 촌장님!"
마을 자경단 단장인 허우대 좋은 자이콥 아저씨가 힘차게 대답했다.
'멋진데~!'
그동안 상단에 당한 화풀이라도 하듯 촌장은 강하게 나갔다.
"두, 두고 봅시다!"
무장을 한 자경단원들이 다가서자 겁이 난 상인들이 두고 보자며 황급히 밖으로 사라졌다.
'보는 내 속이 다 후련하네.'
악독한 한마디를 남기고 등을 돌린 이름도 모르는 상인 놈.
무언가 뒤끝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흐흐, 드디어 내일이구나.'
걸어서 이틀거리에 있다는 자작성에 세금을 납부하러 가기 위하여 얀스와 나는 자작성으로 떠나기로 되어 있었다.
덜컹덜컹.
그리고 상인들이 몰고 온 마차는 떠나갔다.
공수래공수거.
빈 수레로 왔다가 아무것도 거둔 것 없이 빈손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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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왔네. 저기가 바로 영주님이 거처하는 피요르 성이네."
걸어서 이틀거리에 있는 영주의 성.
세금으로 사용할 버섯과 두 개의 담요, 간단히 먹을거리를 들고 얀스와 함께 성에 도착했다.
예전에는 한 번 움직이려면 최소 이십여 명의 무장한 마을 사람들이 필요했다지만, 모두들 내 실력을 의심치 않았기에 얀스와 단둘이 마음 편히 올 수 있었다.
'대단하다!'
기중기와 각종 중장비가 없어도 큼직한 바위로 튼튼하게 만들어진 성.
지방 영주의 성임에도 불구하고 높이는 7미터 이상에 망루가 곳곳에 서 있는 전형적인 중세시대의 성 모양이었다.
"카이어, 여기서는 말조심하게. 우리 같은 평민은 말 한마디 잘못하면 바로 죽을 수 있네."
덩치에 비하여 겁이 많은 얀스가 조심하라 일러왔다.
'평민.... 하아, 내가 평민이었군.'
21세기와 확연히 다른 이세계의 문명.
새삼 내가 평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자 할 말이 없어졌다.
"들어가세."
수학여행 중 보았던 동유럽의 성들보다 큰 성.
오고 가는 수많은 사람들 틈에 껴 얀스와 함께 성문 앞에 이를 수 있었다.
"정지! 어디서 오는 자들인가?"
성벽 위에는 활을 멘 궁수들과 무장한 병사 수십 명이 망을 보고 있었고, 성문 앞에는 십여 명의 병사들이 오가는 자들 중에 수상한 자들이 없는지 검문하고 있었다.
"수고가 많으십니다요. 저희는 루나 마을에서 세금을 납부하러 온 자들입니다요."
"루나 마을? 아! 십 년 전에 불타 버린 그 마을을 말하는군."
내심 기사라는 작자들을 만나보고 싶었건만 성문 앞에 있는 자들은 체인 메일과 할버트 같은 창을 든 일반 병사들이었다.
그리고 그들 중에서 선임자로 보이는 자가 얀스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
"여기, 마을 증명패가 있습니다요."
루나 마을을 대표하는 증명패를 들이미는 얀스.
"됐다. 통과해."
얀스가 내미는 둥근 패를 귀찮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더니 통과하라고 하였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는지라 우리만 붙잡고 있을 수는 없었다.
'갑옷 죽인다!'
기사들도 아닌 일반 병사들이 착용하는 평범한 갑옷이었건만 기름칠이 잘되어 햇빛에 반짝거리는 것이 감탄을 터뜨리게 만들었다.
"잠깐!"
감탄 속에 얀스를 따라 성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한 병사가 우리를 불렀다.
"왜, 왜 그러십니까요?"
일반 평민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급히 묻는 얀스.
"이자도 너희 마을 사람인가? 검은 머리칼은 보기 드문데...."
요 몇 달 햇빛에 잘 그을려 촌놈이 다 된 내 얼굴을 유심히 살피는 병사.
"저, 그...."
거짓말을 못하는 성격답게 머뭇거리는 얀스의 물러 터진 모습.
"하하, 수고가 많으십니다. 진작 인사를 드려야 했건만 워낙 모습들이 출중해서 입도 못 열었습니다. 카이어라고 합니다."
웃는 얼굴로 정중하게 인사를 하였다.
'썩을, 영주도 아니고 일개 병사들에게 고개를 숙여야 하다니!'
신분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세계.
아직 평민 레벨밖에 습득하지 못한 나는 톡톡히 밑바닥 분위기를 맞봐야 했다.
"카이어? 이름 좋구먼. 알았네. 통과하게."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격언처럼 공손하게 말을 붙이는 내 모습에 고개를 숙이며 통과를 외쳤다.
'여기는 돈도 아니고 오직 신분이 말해주는 사회! 최소 기사라도 따야겠군.'
자격증도 아니건만 기사가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앞으로도 평민 신분으로 고개를 돌쇠처럼 숙이며 살 수는 없었다.
"수고하십시오, 나리들."
큰 소리로 외치며 등에 버섯을 메고 있는 얀스를 이끌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얀스를 믿고 있다가는 세금도 못 내고 감옥에 잡혀 들어가겠군.'
마을에서야 믿음직한 착하고 순수한 농부 얀스였지만 이런 도시에서는 믿을 수가 없었다.
어리바리한 모습이 딱 서울에 상경한 가출 중삐리 같았다.
"얀스, 갑시다."
"응 그, 그러세."
내가 이끄는 팔을 따라 걸음을 옮기는 얀스.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사부의 고향 칼리얀 대륙의 성에 입성할 수 있었다.
★★★★★★★★★★★★★★★★★★★★★
'이곳이 상인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 했지?'
마을에서 성을 구경한 사람이 촌장과 몇 사람 안 되었고, 그중에서 한 명인 얀스는 오랜만에 성에 들어오자 정신을 못차렸다.
특히 큼지막한 엉덩이를 흔드는 아줌마들을 보면 정신을 놓기 일쑤였다.
'미치겠네.'
어찌 이런 사람이 버섯을 팔아 세금을 내고 마을에 필요한 물건을 구입할 수 있겠는가.
촌장님의 한 치 앞도 예견 못하는 탁한 안목에 고개를 흔들 수밖에 없었다.
"얀스...."
"응? 왜 그러나?"
"침 닦아요."
"미, 미안하네. 하도 오랜만에 와서 정신이 하나도 없네 그려."
오랜만에 정신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제법 깨끗하고 화려한 복장을 한 아줌마들 때문에 혼이 빠졌다고 함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이제 버섯을 팔 겁니다.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그저 제 옆에 가만히 계십시오."
"자네가? 알겠네."
자신의 주제를 알고 있는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얀스.
말이라도 잘 들어서 다행이다.
"버섯 하나만 꺼내주십시오."
"왜? 서, 설마 여기서 팔려고?"
성문을 들어서자 여러 상점이 보였다.
땅땅거리는 망치 소리와 옷감, 먹을 것과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파는 상점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는 커다란 골목.
물건을 팔기에는 딱 안성맞춤이었다.
'이곳 상인들은 믿을 수 없다. 그러면 방법은 하나. 가격 경쟁밖에 없다.'
듣기로 샤리프 버섯은 쉽게 구할 수 없는 귀한 물건이라 하였다.
특히 지금 우리가 가져온 버섯은 최상품.
파는 내가 아쉬울 것이 전혀 없었다.
'좀 더 큰 성이 아닌 것이 아쉽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하다.'
"큼큼!"
생각을 정리하고 목청을 다듬었다.
"자! 왔어요, 왔어!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닙니다! 공기 좋고 물 맑은 루나 마을에서 방금 따온 싱싱한 최상급 샤리프 버섯이 왔습니다!"
드라마에서 많이 보았던 대로 다리 정도 되는 돌덩이 위에 서서 힘차게 목청을 열었다.
"샤, 샤리프 버섯?"
"정말이야?"
처음에는 웬 미친놈이야 하는 표정으로 스쳐 지나가려던 사람들이 샤리프 버섯이라는 한마디에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어디, 샤리프 버섯?!"
"오! 정말 최상품이잖아!"
얀스에게서 어른 주먹만 한 동그란 갈색 버섯을 꺼내 들자 사람들이 모여들며 탄성을 질렀다.
"캬아, 향기가 진동하는구먼!"
"세상에, 정말 탐스럽네요."
마을 사람들이 말하기를, 향기와 맛이 좋아 귀족들만 먹을 수 있다는 샤리프 버섯.
모여드는 사람들은 진품 샤리프 버섯이 풍겨내는 향기에 입맛을 다셨다.
'오늘 가져온 샤리프 버섯은 모두 70여 개. 하나에 2골드씩만 받아도.... 흐흐흐.'
모여드는 사람들 중에 샤리프 버섯을 살 수 있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샤리프 버섯을 들고 있음을 확인한 몇몇 사람들이 부리나케 사라지는 모습을 보아하니 곧 진짜 고객들이 나타날 것을 의심치 않았다.
"언제 맛볼 수 있을지 모르는 귀한 샤리프 버섯입니다. 그런 샤리프 버섯 최상품을 단돈 2골드부터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니니 다들 이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바라겠습니다!"
"2, 2골드!"
"싸다! 저 정도라면 배는 남을 것 같은데...."
대한민국에서 송이버섯이 귀하게 취급받는 것처럼 이곳 사람들도 알고 있는 샤리프 버섯의 가치.
일이 생각대로 술술 풀려갔다.
'어라? 저놈들은?'
일반 평민들 말고 상인 복장을 한 이들이 허겁지겁 내가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그런 놈들 중에 눈에 익은 다론 상단 놈들.
마을에서 도망치듯 사라지더니 어느새 성에 와 있었다.
'오늘 더러운 기분 한번 맛보아라! 크크.'
머릿속에 그려지는 사악한 생각 하나.
손에 들린 샤리프 버섯은 상인들이 돈을 주고서 쉽게 구할 수 없는 물건.
나야 쉽게 샤리프 버섯을 발견했지만 사실 샤리프 버섯은 그리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버섯이 아니라 하였다.
그중에서도 모든 이들이 이동을 꺼리는 루에나의 달에 따는 샤리프 버섯이 상품 중의 최상품으로 취급된다 하였다.
"루에나의 달에 목숨 걸고 산에 가서 채취한 샤리프 버섯입니다! 이제 대충 모인 것 같으니 바로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이 손에 들린 샤리프 버섯은 기념으로 1골드에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돈 냄새를 풀풀 풍기는 상인 십여 명이 모이자 입에 기름칠을 더하며 샤리프 버섯을 높이 쳐들었다.
'아, 역시 사람은 가정교육이 중요한 것이야!'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부모님으로부터 가끔씩 내려졌던 생존 미션.
혹시 부모님이 불의의 사고에 돌아가실 수도 있다며 나는 어머니가 만들어준 김밥을 들고 지하철 입구나 공원에서 김밥 팔기 미션을 완수해야 했다.
김밥뿐만이 아니었다.
집에 필요없는 물건들도 가끔씩 들고 나가 현찰로 바꿔 가정사에 일조를 해야 했다.
그리고 그 미션의 결과로 나는 너끈히 상인들을 홀릴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다.
"2골드에 내가 사겠소!"
'앗싸! 시작 좋고!'
어중이떠중이가 모인 틈에 있던 상인 한 명이 2골드를 외쳤다.
"3골드! 내가 사겠소!"
"4골드! 꼭 나에게 파시오!"
시작이 문제가 아니라 상인들은 미친 듯 다른 사람이 말하는 가격에 1골드를 더하며 외쳤다.
'1골드가 그렇게 값어치가 없었나?'
1골드면 듣기로 이곳의 일반 가정이 한 달을 배불리 놀고 먹을 수 있는 가치가 있다고 하였다.
대충 계산해 보아도 상당한 값어치건만 상인들은 돈을 돈으로 보지 않는 것 같았다.
"7골드! 내가 사겠소!"
그 와중에 들려오는 귀에 익숙한 자의 외침.
'자식, 열 좀 제대로 받아라.'
"낙찰되었습니다! 저기 계시는 상인 분께 4골드에 드리겠습니다!"
"뭐, 뭐야!"
"헉!"
낙찰되었다는 말에 의기양양하던 다론 상단의 뚱뚱이 상인 놈 얼굴이 보기 좋게 굳었다.
"긴장들 하지 마세요~! 물건은 많습니다! 그리고 바로 낙찰이 되면 여기 계시는 이분에게 돈을 지불하고 물건을 찾아 가십시오!"
비록 3골드를 날렸지만 못된 상인 놈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는 기회비용으로 생각하였다.
"다음 물건!"
말과 함께 얀스가 다시 버섯 하나를 꺼내 들었다.
"이번부터는 열 개씩 묶어서 팔겠습니다!"
누가 그랬던가, 장사는 엿 장사 마음대로라고.
"자! 최상품 샤리프 버섯을 열 개에 20골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25골드!"
"30골드!"
"35골드!"
내가 합리적인 가겨으로 판매를 하자 눈이 돌아간 상인들이 다시 게거품을 물고 손가락을 펼쳤다.
"7, 70골드!"
무슨 이유에서인지 하나에 7골드 이상을 부르는 다론 상단의 돼지 상인.
"누구 없습니까! 50골드에 열 개를 팔겠습니다!"
"50골드! 내가 사겠네!"
다론 상단 상인 놈의 말은 듣지도 않고 다른 경매인을 찾았고, 날렵한 상인이 50골드를 외쳤다.
"낙찰되었습니다! 저기 계시는 날씬한 분께 열 개를 넘겨드리겠습니다!"
"네 이놈!"
'어라? 이놈?'
열이 받았는지 나를 향해 삿대질을 하며 이놈이라 부르는 뚱뚱이 다론 상인.
"금방 이놈이라고 했냐?"
좋게 말이 나갈 내가 아니었다.
"일개 평민 주제에 다론 상단을 무시하다니!"
"그러는 넌 평민 아니냐? 그리고 내가 언제 무시했더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침을 튀기는 돼지.
"그, 그럼 왜 내가 부른 가격에 팔지 않는 것이더냐?"
"아, 그거? 어떡하나. 내 귀는 사람 말만 들리거든."
"뭐, 뭐라고!"
뚜껑 열리기 일보 직전의 상황인 듯 얼굴이 벌겋다 못해 퍼렇게 질려가는 돼지상인.
"그리고 내가 그 가격에 팔겠다는 데 불만있어? 아니꼬우면 네가 마수가 득시글거리는 산에 들어가 캐서 팔든가."
확인 사살은 제대로 하라 하였다.
귀를 후비며 돼지의 기분을 처참하게 만들었다.
"두, 두고 보자! 으드득!"
얼마나 한을 품었는지 이 가는 소리가 귀에 선명하게 들렸다.
"그러시든가. 그런데 오늘은 바쁘니까 다음에 보자. 알았지?"
동네 꼬마를 다루듯 돼지를 약 올렸다.
'자식, 독하게 마음먹었네.'
나보다 훨씬 나이를 많이 먹었지만 사람이 사람다워야 값어치가 있는 것이다.
돼지상인은 파란 광망을 뿌리며 나를 노려보고 사라졌다.
"남아 있는 샤리프 버섯을 하나에 8골드씩 모두 사겠소."
'8골드? 이건 웬 봉이야?'
흐뭇한 시선으로 씩씩거리며 사라지는 돼지를 바라보고 있을 때 귓가에 들리는 봉의 목소리.
"루, 루비스 상단이다."
"쳇, 오늘은 글렀군."
'루비스 상단?'
좌우지간 알아야 할 것이 많은 칼리얀 대륙.
내 눈에 삼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말끔한 귀족 자제 같은 자가 나타났다.
그자가 나타나자 다른 상인들은 입맛을 다시며 물러났다.
"루비스라면 대륙오대상단 중 하나 아냐?"
"우리 영지도 찾아오고, 별일이네.'
갑자기 흥미로웠던 버섯 경매를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수군거렸다.
'대륙오대상단? 호오, 대기업이네?'
그렇게 말을 듣고 보니 나타난 자의 몸에서 광채가 나는 것 같았다.
"난 루비스 상단의 자메르라고 하네."
악덩 상인의 전형적인 모습이 다론 상단의 돼지라면,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하는 자메르라는 자는 신의있는 상인의 모습 그대로였다.
"카이어라고 합니다."
"카이어? 특이한 머리칼과 잘 어울리는 이름이군."
'우! 동건이 형 저리 가라군.'
나와 비슷한 키의 자메르.
황금 곱슬머리에 차분한 연보라색 눈동자가 매력적이었고, 움푹 들어간 눈두덩이와 높게 솟은 콧대가 미남이라 불리기에 충분하였다.
"여기서 얘기하기는 그렇고, 내가 머물고 있는 여관으로 가지."
"좋습니다. 단, 배가 고프니까 밥은 쏘십시오!"
"쏘아? 하하! 알겠네. 내 한턱내지."
아직 30대 초반이건만 나중에 상인으로 대성할 자질이 보이는 자메르.
"얀스, 가요."
"어? 어, 그래."
아직도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 못한 얀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얼빠진 모습으로 황급히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