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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장 낫투게더 (12/18)

11장 낫투게더

2001년 1월 겨울방학

우리는 쇼핑을 하는 둥 즐거운 반나절을 보냈다. 그리고 2시간 반이 걸리는 드라이브를 하고 나서 드디어 현실로 돌아오게 되었다. 에이드리안은 나를 내려주며 우리 가족에게 신년인사를 빌어주고는 우리집 길 건너편 자기 집으로 차를 몰았다. 나는 에이드리안 집 차고 문이 위로 올라가는 걸 지켜보고는 우리집 현관으로 향했다.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전쟁터에 온 걸 알게 되었다.

“개자식! 죽여버릴 테야! 죽여버릴 거라구!” 브룩은 서슬이 퍼런 모습으로 내 앞을 획 지나쳐 계단을 올라갔다.

“벤!” 엄마가 브룩을 쫓아왔다. “마침 잘 왔다. 브룩이랑 얘기해 봐.”

“예-?”

“화난 게 뻔하잖니.”

“무슨 일인데요?”

“나도 몰라.” 엄마는 아쉬운 한숨을 내쉬었다. “말을 하려고 하지 않아. 속이 뒤집힌 모습으로 집에 돌아왔길래 무슨 일이지 물어보려고 했더니 갑자기 폭발하지 뭐야!”

마치 계단 위에서 교수대가 기다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 알았어요. 제가 얘기해볼게요.”

나는 내 방에 짐꾸러미를 내려놓고 브룩 방 앞으로 갔다.

노크를 하자 예상했던 반응이 들려왔다. “저리 가!”

“나야, 브룩.”

20초 후, 빠끔히 문이 열렸다. “다른 사람 없지?”

나는 좌우로 복도를 둘러보았다. “나 혼자야.”

브룩은 나를 안으로 들이고 문을 단단히 걸어 잠갔다.

“화났어?”

브룩은 ‘당장 돼져버려 이년아’하는 느낌이 나는 표정으로 눈을 흘겼다. 나는 눈썹을 들어 올리고 침대에 앉았다. “말해봐.”

“켄타.”

“그럴 줄 알았어. 무슨 일인데? 너희 깨지기라도 한 거야?”

“그래.” 브룩은 버럭 소리를 지르고 인상을 썼다. “뭐, 아니... 시팔! 모르겠어. 거기까지는 이야기해보지 않았어.”

나는 에이드리안이 화를 내며 나를 집 밖으로 내쫓던 때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에 우리도 헤어지는 건지 마는 건지 딱 부러지게 얘기를 나눈 건 아니었다. “어쨌든, 싸웠구나?”

“그래.” 그 한마디 말로 브룩의 격앙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왜냐면 그 새끼는 좆같은 개새끼라서!” 마지막 두 마디는 문을 향해 소리를 질렀는데 보아하니 부모님이 들으라고 한 짓 같았다.

나는 벌떡 일어서서 브룩을 붙잡아 침대에 앉히고는 움직이지 못하게 팔을 두르며 입을 막았다. “진정해, 브룩! 쌍둥이들이 집에 있는데 그런 말을 하면 엄마 아빠가 봐주실 것 같아?

브룩은 아등바등 몸부림을 쳐서 입을 가린 손을 떨쳐냈다. 그러나 또 욕을 하지는 않았다. “알게 뭐야. 내 남자 친구가 바람을 피운 마당에!”

나는 놀라서 브룩을 잡고 있던 손에서 힘을 뺐다. “뭐?”

그러나 브룩은 내 손에서 달아나지는 않고 오히려 내 품에 안겨왔다. “바람을 피웠다구, 난 분명히 알 수 있어.”

“안다구?” 다소 어리둥절했다. “실제로 바람피우는 걸 본 게 아니라?”

“현장을 직접 보진 못했지만, 증거를 발견했어.”

나는 고개를 저었다. “처음부터 얘기해 봐.”

브룩은 꽤 긴 시간 동안 쌕쌕대며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뼈가 사라진 것처럼 흐물흐물해져서는 내 품속으로 늘어졌다. 그리고 또다시 심호흡을 하고 입을 열었다. “켄타는 우리가 빅베어에 가있는 동안 열여섯 살 생일을 맞았어. 부모님은 자동차를 사줬고. 중고지만 생애 첫차를. 오빠도 알지?”

“알아.” 나는 부모님이 후줄근한 중고 코롤라를 사줬을 때 느낀 전율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암튼, 켄타는 가족들과 신년 행사가 있는데도 날 만나자고 했어. 내가 무슨 생각을 했을 것 같아? 새해 첫날에 새 차를 시승하게 된 마당에... 당연히 켄타랑 시승식을 할 생각이 들지 않았겠어? 그치?”

나는 브룩이 남자친구와 차 안에서 벌였을지도 모르는 일을 떠올리며 상기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이지 알겠어.”

“우리는 뒷좌석으로 건너가 키스를 했어. 그리고 난 옷을 벗으며 처음으로 뒷좌석 블로우잡을 해주려고 무릎을 꿇었어. 근데-” 브룩은 고통스럽게 떨기 시작했다.

나는 본능적으로 브룩을 꼭 안아주고 요람을 흔들듯 좌우로 흔들어 주었다. “헤이, 헤이, 괜찮아... 내가 있잖아.” 나는 브룩을 달래려 애를 썼다.

브룩은 눈물을 흘리며 훌쩍이다가 불쑥 내뱉었다. “차 안에서 팬티를 발견했어, 벤! 팬티를 말이야! 분명히 내 팬티가 아닌 팬티를!”

어이쿠, 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어쩌면, 먼저 주인이 남게 둔 게 아닐까?”

“바닥에 얌전히 놓여 있던 게 아니었다구, 벤!” 브룩은 고개를 들고 내 가슴팍을 때렸다.

나는 움찔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그리고는? 그리고는? 켄타 얼굴에 팬티를 던지고 팬티 주인을 밝히라고 윽박질렀어!”

“그런데?”

“근데 말해주지 않으려는 거야!” 브룩은 주먹을 불끈 움켜쥐고 몸을 떨어댔다. 내 동생은 평소에도 한성깔 하는 편이었다.

“브룩...” 나는 브룩을 달래려 진땀을 뺐다.

“말해주지 않으려는 거야! 걘 알고 있었다구! 심지어 나랑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며 나를 사랑한다고까지 했어! 말이 되는 소리야? 나를 사랑한다면서 딴 여자애 팬티를 차 안에 둬? 아아!” 브룩은 소리를 질렀다. “남자들은 하나같이 다 못된 놈들이야!”

“알았어, 알았어.” 나는 브룩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켄타는 못된 놈이 맞아.” 나는 열렬히 맞장구를 쳐주었다. 여자애들과 어울려 다니며 배운 게 있다면, 이와 같은 상황에서 해결책을 바라는 여자애는 한 명도 없다는 것이었다. 여자애들은 단지 동정을 바라며 한편이 되어주길 바란다. 해결책을 생각해내는 건 나중 일이다. 감정을 누그러뜨리기 전까지는 기다리고 볼 일이었다.

“시팔 새끼.” 브룩은 내 품에 얼굴을 묻고 흐느꼈다.

“쉬...” 나는 브룩을 아기처럼 흔들어주며 팔과 등을 쓸어주었다.

“남자들은 다 못됐어...”

“맞아, 맞아...”

브룩은 코를 훌쩍이고 고개를 들어 눈물이 글썽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오빠는 제외하고. 벤은 내 오빠니깐.”

“맞아.” 나는 브룩의 등을 계속 쓸어주었다. “내가 있잖아.”

“오빤 못된 놈이 아냐.”

나는 미소를 지었다. “늘 그런 건 아니라고 생각해.”

브룩은 키스를 해왔다. 부드럽고 긴급한 키스를. 브룩은 잽싸게 내 입술을 벌리고 혀를 들이댔다.

나는 순간적으로 키스를 받아주다가 브룩의 어깨를 잡고 뒤로 밀어냈다. “워, 워. 브룩, 지금 넌 무척 속이 상했어. 아무래도 마음부터 가라앉혀야 할 것 같아.”

“입 다물어, 벤.” 브룩은 으름장을 놓고는 또다시 키스를 하며 내 청바지를 더듬기 시작했다.

“브룩.” 나는 고개를 비켰다.

“오빠도 못된 놈이 되고 싶어? 제발, 응?”

브룩은 지퍼를 내리고 내 자지를 꺼냈다. 치어리더 네 명과 벌인 새해맞이 섹스 마라톤으로 에이드리안을 안고 잤는데도 발기가 되지 않았었다. 다행히 에이드리안은 섹스하고는 상관없이 내가 자기 친구라서 행복하다며 키스를 해주었다.

그러나 지금은, 반나절이 지나서 그런지 브룩의 손길을 느끼고는 소생하려는 기미가 역력했다. “오오, 브룩”

브룩은 아래로 내려가 내가 가르쳐준 전문가적인 기술로 자지를 삼켰다. 그러자 그놈은 여동생의 마법적인 오랄 테크닉에 금세 부피도 늘어나고 길쭉해졌다.

“그다지 좋은 아이디어가 아닌 것 같아, 브룩. 엄마 아빠, 쌍둥이들 모두 아래층에 있다구.”

“소리를 죽이면 돼. 전에도 해봤잖아. 제발, 벤. 난 당장 오빠를 느끼고 싶단 말이야. 하게 해줘, 응?”

한숨이 나왔다. 내 자지를 문 이상 못 해줄 게 없단 사실은 브룩이 먼저 알고 있었다. 차를 사달라고 해도 들어주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로 원한다면.”

브룩은 대꾸할 필요도 없다는 듯 자기의 바지와 팬티를 벗고 상의를 입은 채 나를 올라탔다. 그리고 묽은 액이 스며 나온 자지를 붙잡고 자기의 틈에 대고 천천히 가라앉았다.

미처 애액이 분비되지 않아 무척 빡빡했기에 완전히 들어오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브룩은 일단 바닥을 치자 내 품에 엎드리며 나를 꼭 껴안았다.

우리는 서로 힘껏 부둥켜안았다.

얼마후 브룩은 엉덩이를 움직이기 시작했고 결국 우리는 맺힌 걸 풀어버리는 절정에 올랐다. 중요한 점은 실로 오래간만에 오누이끼리 위안이 되어 주었다는 사실이다. 브룩은 내 어깨에 얼굴을 묻고 흐느꼈고 나는 브룩의 등을 쓸어주었다. 그리고 나는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함께 있어주겠다는 다짐을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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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월 졸업반

“헤이 거기 벤!” 메간이 반갑게 달려와서 친근하게 포옹했다.

“헤이, 메간. 해피 뉴 이어.”

“헤이, 메간! 헤이, 벤!” 캐시디는 무선 헤드폰을 목에 걸친 모습으로 나타나서는 우리와 나란히 걸었다.

“헤이, 캐스.”

“헤이, 주근깨.”

발랄한 빨간머리는 나를 돌아보았다. “스키 여행은 어땠어, 벤?”

나는 얼굴을 붉히며 한 쉰 발짝쯤 떨어진 락커 앞에서 동료 치어리더들과 잡담을 나누는 헤더와 린을 바라보았다. “말해줘 봤자 믿지 못할걸.”

메간은 내 눈길이 향한 곳을 힐끔 바라보고는 내 어깨를 때렸다. “사실, 믿고도 남아. 넌 야한 짓을 했어.”

헛기침이 나왔다. “아니, 무슨. 내가 얼마나 얌전했는데.”

“잘도 그랬겠다.” 캐시디는 히죽 미소를 짓고 물었다. “방학 동안 치어리더를 몇 명이나 박아주었는데? 넷?” 빨간머리는 메간과 함께 엄청나게 웃긴 농담을 했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얼굴을 붉히고 입을 다물었다.

“헤이, 얘들아.” 왼쪽에서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와서 고개를 돌려보니 에이드리안이 우리한테 다가서고 있었다. “헤이, 타이거.” 에이드리안은 자기의 거대한 젖가슴이 완전히 가리지 않을 만큼 책을 안고 애간장을 녹일 만한 달콤한 목소리로 말했다.

“헤이, 에이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방학 잘 보냈어?” 메간이 물었다.

“끝내줬어. 아빠도 꽤 오랫동안 집에 계셨어.” 에이드리안은 밝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캔디가, 너희도 캔디 기억나지? 아무튼, 걔 아빠가 빅베어에 예악 해둔 콘도를 쓸 수 없게 되어 우리끼리만 놀러 가게 되었어. 캔디, 헤더, 린 그리고 베엔...”

에이드리안이 해이즐 눈을 반짝이며 음모를 작당하겠다는 듯 고개를 기울이자 메간과 캐시디도 에이드리안한테 고개를 맞댔다. “비밀을 말해줄까?” 에이드리안이 속삭였다. “벤은 사흘 동안 우리를 혼쭐나게 박아줬어. 우리 넷 모두를!”

나는 꿀꺽 침을 삼키고 바닥만 내려다보았고 세 여자애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메간과 캐시디는 놀란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화가 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캐시디는 눈을 굴리고 고개를 내저었다. “어때, 내 말이 맞지.”

메간은 실소를 머금고 내 팔을 토닥였다. “야, 친구야, 넌 정말 걸작이야, 걸작.” 그리고는 웃음을 터트리며 캐시디와 팔짱을 끼고 다른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나는 에이드리안이 내 팔에 자기 팔을 거는 동안 한숨을 내쉬었다. “꼭 그런 말을 해야 했어?”

“왜?” 에이드리안은 의외라는 듯 놀란 얼굴이었다. “쪽팔려?”

“아니, 하지만-”

“진 정 해. 친구들인데 어때. 소문을 듣고 아는 것보단 훨씬 낫지 뭐. 린이야 함부로 누설하진 않겠지만, 헤더가 널 대하는 모습을 보면 누구라도 알게 될 게 뻔해.” 에이드리안은 내 뒤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아, 마침 주인공이 납시네...”

“헤이, 벤.” 헤더는 환한 미소를 짓고는 나한테 덥석 몸을 던졌다. 그리고 내 머리를 붙들고 즙이 넉넉한 키스를 심어왔다. “주말 고마웠어. 너무너무 환상적이었어!”

“어... 고마워?”

“나중에 보자!” 칠흑 같은 머리의 치어리더는 발랄하게 지저귀며 자기의 첫 수업 교실로 향했고 다른 4학년 치어리더 둘이 마치 갈채를 보내는 듯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는 헤더를 뒤따랐다.

평범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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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목요일, 나는 백팩의 어깨끈을 움켜잡고 에이드리안이 이야기해주는 뜨근뜨근한 가십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여자애가 누구한테 작업을 거는 장면을 누가 목격했다거나 어떤 남자애가 자기 여자친구가 독감에 걸려 학교에 나오지 않는 동안 누구랑 수상한 일을 저질렀다거나 하는.

우리는 학생 주차장 쪽으로 걸어가다가 드루 워커 일당을 지나치게 되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 아는 체를 했을 뿐이지만, 키 크고 덩치 좋은 농구부원은 우리 앞으로 다가와 친근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드루는 우선 요요 짓으로 에이드리안의 젖통을 구경하다가 고개를 들어 에이드리안의 얼굴을 쳐다봤다. “헤이, 드루. 무슨 일인데?”

“헤이, 에이드리안.” 드루는 에이드리안의 젖통에 대고 대답을 하고는 눈을 들었다. “헤이, 벤. 내일 저녁에 파티를 여는 걸 알려주려고. 부모님은 주말 내내 집에 안 계실 거야. 그래서 촉박하게 파티를 열기로 했어.”

“오, 그렇구나.” 에이드리안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내 애들도 초대하려고?” 다들 에이드리안이 언급한 ‘내 애들’이 치어리더 팀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드루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맞아, 그 애들이 없으면 파티라고도 할 수 없잖아. 킨리는 너한테서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하더라구.”

넋이 달아날 만큼 매혹적인 치어리더 캡틴은 자기를 우상처럼 떠받드는 드루의 치어리더 여자친구가 했다는 말에 끌끌대며 웃었다. “그러지 뭐.”

곧바로 폭발적인 몸매를 한 블론드는 나한테 팔짱을 끼며 물었다. “어떻게 할래, 타이거? 금요일 밤에 더 나은 계획이 있는 건 아니지?”

나는 고개를 젓고 드루를 돌아보았다. “파티 때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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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께 드루 워커의 파티에 간다고 하자, 엄마가 평소처럼 술을 과하게 마시지 말고 마약 같은 것에는 근처에도 가지 말라며 일장연설을 늘어놓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내 방으로 올라갔다.

저녁 식사 후, 케이디 제이컵슨이 파자마 파티를 한다며 브룩과 제니퍼 보를 데리러 왔다. 내가 브룩의 슬리핑백과 조그마한 바퀴 짐가방을 차 트렁크에 실어주는 동안 케이디는 늘 하던 대로 나한테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장난을 쳤다.

한 시간 후에는 에이드리안이 우리 집앞에 차를 댔다. 차에 올라타고 짧게 키스를 하자 에이드리안이 차 키를 건넸다. 나는 음흉한 미소를 짓고 차 키를 흔들어 짤랑거리는 소리를 냈다. “알다시피, 넌 우리가 사귀는 게 아니라지만, 집 앞에서 키스를 나누고 파티까지 동행한다면 남들이 오해하지 않을까?”

“맘대로 생각하라지 뭐.” 에이드리안은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알고 네가 아는 이상 아무래도 상관없어.”

“그럼 내가 파티에서 여자애를 꼬시면 어쩔 건데?”

에이드리안은 미소를 지었다. “그거야 네 맘이지. 누굴 박든지 간에 말이야. 하지만, 오늘 밤엔, 차를 끌고 온 여자애를 꼬셔야 할걸.”

“내 말은 그게 아닌데, 아무튼, 네가 내 옆에 붙어 있는 이상은 아무도 나한테 접근하지 않을 거야.”

“그럼, 선택을 해. 파티에 도착하자마자 나랑 떨어져서 작업을 벌이던지,” 매혹적인 블론드는 눈부신 미소를 반짝였다. “아니면, 내 옆에 바짝 붙어 있던지. 그럴 경우, 내 보장할게. 나중에 내 몸 구멍 세 개에 좆물이 흘러 넘치도록 박는 걸.”

앗싸. 땡잡았다.

나는 너털웃음을 터트리고 고개를 저으며 운전석으로 넘어갔고 에이드리안은 후드를 돌아 조수석에 앉았다. 그리고 우리는 파티를 향해 출발했다.

20분 후, 우리는 드루의 집 앞에 차를 대려고 했지만, 이미 이중 삼중으로 주차되어 있어서 결국 한참 아래쪽에 차를 대야 했다. 에이드리안과 내가 나란히 집에 들어서자 여기저기 흩어져 활기차게 대화를 나누던 고딩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아는 체를 했다. 겨울 날씨에도 뒷마당에 흩어져 있는 애들까지 포함하면 40명이 족해 보였다. 더구나 들리는 말로는 100명이나 오기로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에이드리안! 벤!” 헤더는 우리를 차례로 포옹했다. 헤더는 빨간 컵을 들고 있었는데, 보아하니 아직 이른 시간임에도 꽤 알딸딸해진 모습이었다. 사실, 음악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몇몇 남자애들이 대형 평면 텔레비전이 설치된 멀티미디어 실 앞에서 스테레오와 스피커를 앞에 두고 서로 주먹다짐이라도 하겠다는 듯이 큰소리를 쳐가며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기다려.” 나는 에이드리안한테 손을 내젓고 그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에이드리안은 은근히 뿌듯함이 깃든 목소리로 헤더한테 말했다. “임자가 납셨으니 잘 봐둬.”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거야?” 나는 일행들 사이로 끼어들며 물었다.

“우리가 알아서 할게.” 몸집 좋은 농구부원인 마르코 카넬리가 손을 내저었다. 그러나 드루는 나를 보고 눈썹을 들어 올렸다. “잠깐, 얘가 만지게 놔둬 봐.”

나는 드루가 가리키는 대로 스피커의 리시버에 연결된 복잡한 케이블을 살펴보았다. “내 방에 있던 장비를 이리로 옮기고 다시 케이블을 꽂았어. 그런데 분명히 다 제대로 연결했는데도 왠지 소리가 나지 않아.”

처음에는 쇼트가 난 선이 있는지 반복해서 점검해보았지만, 다 적합한 플러그에 적합한 케이블이 연결되어 있었고 잘못된 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심지어 나는 리시버의 채널도 확인해보았다. 그러다가 중구난방으로 얽힌 케이블을 보며 문뜩 떠오르는 게 있었다.

나는 리시버에서 삼색 RCA A/V 케이블 두 세트를 서로 자리를 옮겨 꼽고 시디플레이어를 켰다. [붐] 요란한 락음악이 스피커를 박차고 나왔다.

“뭘 손본 건데?” 마르코가 달려들듯이 다가왔다.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뭐, 제자리에 다 잘 꽂았는데, 어쩌다가 시디 아우풋을 리시버의 텔레비전 인풋에 꽂았더라구. 케이블이 똑같이 생겼거든.”

“고맙다. 고마워.” 드루는 두 손으로 내 손을 감싸쥐었다.

“별거 아냐.”

“얼른 맥주 마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내 여자가 기다리는 곳으로 향했다. 에이드리안은 이미 빨간 컵에 맥주를 담아 놓고 있었다. “늘 영웅이 되려고 하지.”

“사소한 거였어.”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에이드리안은 내 입술에 잔잔히 키스를 하고는 뿌듯한 얼굴로 내 가슴팍을 토닥였다. “넌 훌륭한 일을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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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시간 후에 작은 원을 그리며 에이드리안, 헤더, 그리고 내 활동반경에 든 친숙한 여자애들과 돌아가며 춤을 추었다.

그러다 언뜻 나한테서 슬금슬금 멀어지는 짙은 빨간머리를 보게 되었다. 나는 별생각 없이 방을 가로질러 빨간머리를 쫓아갔다.

몇 초 후, 빨간머리를 따라붙고 팔꿈치를 낚아채자마자, 여자애가 획 돌아서서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나는 우뚝 고개를 치켜들었다. “케이디!”

예쁜 2학년 치어리더는 장난기가 어린 미소를 지었다. “벤! 또 내 엉덩이를 쳐다봤구나!”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케이디는 짙은 푸른눈을 반짝이며 콧방귀를 뀌었다. “평민들과 어울리러 왕림하셨다! 어쩌라구!”

내가 눈썹을 들어 올리자 케이디가 눈을 굴렸다. “나도 치어리더야, 둘러 보라구. 치어리더들은 거의 다 왔잖아.”

“브룩이랑 파자마 파티를 한다며?”

“맞아, 우린, 어, 그전에 잠깐 들린 것뿐이야.” 케이디는 어깨를 으쓱였다. “하지만, 괜히 왔나 싶어. 내 취향에는 안 맞는 것 같아.”

“뭐가?”

케이디는 미소를 짓고 여자애들한테 맞추려 고릴라처럼 웅크린 모습을 춤을 추는 키 큰 남자애들을 가리켰다.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왜 여태 남아 있는 거야?”

케이디는 원래 가려고 한 방향으로 고개를 까닥였다. “브룩이 졸라서”

“브룩!” 나는 케이디의 암시를 눈치채고 눈썹을 들어 올렸다.

케이디는 뒤돌아서서 외쳤다. “브룩!” 부엌 옆에 서 있던 낯익은 여자애들 몇몇이 우리를 돌아보았고 그중에는 브룩도 끼어 있었다.

“건배!” 케이디는 빈 빨간 잔을 치켜들며 소리를 질렀다.

아, 젠장. 브룩은 10시가 귀가 시간이잖아. 나는 케이디를 지나쳐 급히 열다섯 살인 내 여동생 쪽으로 향했다. 그 순간 브룩은 맥주를 들이켰고 에린 로버츠는 케이디한테 맥주를 채워주러 케이디한테 건너갔다. “브룩, 대체 여기에서 뭐 하는 거야?”

“뭐로 보여? 파티하잖아!” 브룩이 환호성을 지르며 컵을 치켜들자 주변에 있던 열 명이 넘는 아이들도 컵을 치켜들며 따라서 환호했다.

“귀가시간이 지났잖아!”

“무슨 귀가시간? 난 파자마 파티에 갔다구. 기억나?”

“넌 이러기엔 너무 어려!”

“난 열다섯 살이야!” 브룩은 벌게진 얼굴로 나를 노려보았다. “난 치어리더라서 정식으로 초대받았어.”

“아, 젠장.”

“진 정 해, 벤. 내 몸 하나 간수 못 할까. 게다가 케이디가 날 지켜줄 테니깐.”

나는 눈을 굴렸다. “엄마한테 일러바칠 수도 있어.”

브룩은 주먹을 쥐고 허리춤에 얹었다. “아니, 안 그럴걸.”

사실 그랬다. 고자질은 내 천성이 아니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내가 지켜볼 거야. 알았어?”

브룩은 미소를 지었다. “나도 알아. 그래서 아무 걱정 없이 놀러 온 거야.”

나는 콧방귀를 뀌었다. “과음하지 마. 엄마한테 오바이트 건더기가 묻은 걸 들켰다가는 끝장이니깐.”

“알았어, 알았어.”

케이디가 에린 로버츠와 제니퍼 보를 대동하고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나는 엄지손가락으로 내 동생을 가리켰다. “얘가 사고 치지 않게 돌봐줄 수 있겠어?”

“문제없어. 친구.” 케이디는 씩 웃으며 과장된 자메이카 억양으로 말했고 제니퍼도 덩달아 고개를 끄덕였다.

막 돌아서서 발걸음을 떼는 순간 케이디가 외쳤다. “그리고 벤...” 고개를 돌려보니 케이디가 엉덩이를 흔들어 보였다. “내 엉덩이 좀 그만 쳐다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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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로는 파티고 뭐고 재미가 없었다. 에이드리안은 내 흥을 돋우려 애를 썼지만, 나는 브룩이 사고라도 칠까 봐 조마조마한 심정에 방 건너편에 있는 브룩한테 자꾸 눈길이 갔다.

남자애들은 가끔 브룩 일행한테 춤을 추자며 수작을 걸어오곤 했다. 여자애들은 어쩌다가 춤 신청을 받아들이곤 했지만, 거절할 때가 더 많았다. 나는 브룩이 남자애들과 춤을 추는 동안 벽에 기대고 서서 브룩의 춤 파트너 뒤통수를 찌를 듯이 노려보았다. 그 와중에 남자애들의 춤 신청을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고 가까운 친구들하고만 돌아가며 춤을 추는 케이디가 눈에 띄었다.

심지어 브룩은 드루 워커의 관심을 사기도 했다. 드루는 친구 둘을 대동하고 브룩한테 접근해 춤을 신청했고 제니퍼, 에린, 브룩, 셋은 드루 친구들과 어울려 함께 춤을 추었다. 인정해야만 하는 게, 드루는 꽤 번지르르하고 매력이있는 사내였다. 브룩도 드루의 매력에 혹한 것처럼 보였고 내 경각심이 더욱 높아져만 갔다.

그러나 드루의 여자친구인 킨리 커쉬너가 둘 사이에 끼어들고 드루의 귀에 뭔가를 속삭이자, 드루가 여자친구를 데리고 위층으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뒤 한 시간 동안은 그 둘을 보지 못했다.

아무튼, 지겨운 파티였다. 나는 에이드리안과 헤더 말고는 꼬리는 쳐오는 여자애들한테도 관심을 쏟을 수 없었다. 첼시 레니스와 매디 정, 나딘 버틀러는 에이드리안이 근처에 있는 이상은 나한테 접근하지도 않았다. 마침내 브룩이 술을 자제했던 에린 로버츠의 차에 타고 원래 계획대로 파자마 파티로 출발했다. 그 후 나는 에이드리안한테 뜨자는 손짓을 했다.

“재미없었지?” 에이드리안은 차에 올라타며 말했다. “넌 브룩을 걱정하느라 파티를 즐기지 못했어. 브룩이 네 동생이라는 걸 몰랐다면 네가 질투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거야.”

나는 눈을 굴렸다. “동생을 걱정하지도 못해?”

“알아.” 시동을 걸고 차를 출발하는 동안 에이드리안은 킥킥대며 좌석에 머리를 눕혔다.

“뭐 일찍 뜨게 돼서 나도 좋아.”

“왜?”

“왜냐면.” 에이드리안은 은근하게 목소리를 깔고 내 바지를 더듬었다. “난 취한데다가.. 엄청 달아올랐거든... 게다가 일찍 가게 돼서 박을 시간도 많아졌잖아.”

에이드리안은 말에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2002년 2월 졸업반

“브룩! 켄타가 또 전화했다!” 엄마는 무선 수화기를 들고 계단 앞에 서서 위층을 향해 소리쳤다.

“말했잖아요! 그 개자식이랑은 얘기하지 않겠다고!”

“브룩! 입 조심해!”

“죄송해요!” 브룩은 사과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목소리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엄마는 고개를 내젓고는 부엌으로 돌아가며 브룩이 전화를 받지 않으려 한다는 걸 켄타에게 알려주었다. 나는 오빠로서 해야 할 도리가 있음을 느끼며 비디오게임을 접고 위층으로 향했다.

꽤 지극정성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딴 놈들이라면 진작에 포기했을 테지만, 보아하니 켄타라는 놈은 내 동생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분명히 켄타는 내 동생을 두고 바람을 피웠다. 그러나 내 개인적인 경험을 돌이켜보건대 갱생할 기회조차 주지 않은 건 켄타한테 다소 억울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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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교시를 마치고 식당으로 향하고 있을 때 한 여자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헤이이, 벤.” 왼쪽을 돌아보니 린 애리언이 복도를 따라 내려오고 있었다.

“헤이, 린.” 무척 반가웠다. “점심 먹으러 가는 거야?”

“옙.” 아담한 브루넷은 내 옆으로 스르르 다가서며 엉덩이를 부딪치고는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나한테 깔려 몸부림치던 린의 귀여운 알몸을 떠올렸다.

“너 엉큼한 생각하지?” 린은 단번에 내 표정을 알아차렸지만, 진심으로 꾸짖은 건 아니었다.

나는 얼굴을 붉혔다. “어쩔 수 없었어.”

“그렇겠지.” 귀여운 브루넷은 미소를 지었다. “섹스 이야기가 나온 김에, 밸런타인데이에 계획해 둔 거라도 있는 거야?”

나는 우뚝 걸음을 멈추고 눈썹을 찡그렸다. “린, 어, 이야기한 줄 알았는데-”

“나 말고, 둔탱아.” 린은 내 말을 끊고 급히 덧붙였다 . “에이드리안한테 뭘 해줄 거냐고?”

일순 멍해져서 말문이 막혔다. “에이드리안? 난, 어, 특별히 생각해둔 건 없-”

린은 느닷없이 바짝 다가서서 뒷발꿈치를 들고 내 이마를 때렸다.

“아야.” 나는 뒷걸음질을 쳤다. 아프지는 않았지만,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린은 왼손을 들고 한 번에 하나씩 손가락을 폈다. “하나, 걔는 장미를 좋아하지 않아. 너무 진부하다나. 백합이나 튤립이면 괜찮을 것 같아. 파스텔 색깔을 권할게. 둘,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걔는 기념일 같은 날이 되면 중국 음식이 댕기는 것 같았어. 자기를 달아오르게 한다나. 셋, 근사하게 차려 입으라구. 정장에 넥타이까지 매고 나타나면 깜박 죽으려 할걸. 걔를 어른처럼 대해주라구. 그리고 넷, 캔디한테 이야기해서 비아그라 한 알을 타 놓을 것.”

“허?”

“밸런타인데이잖아.” 린은 씩 미소를 지었다. “걔가 엄청나게 특별한 섹스를 해줄 테니 너도 만반의 준비를 해놓는 게 좋지 않겠어?”

“하지만, 우린 데이트도 안 하는데!”

“피.” 린은 손을 내저었다. “그건 네가 자기를 떠났을 때 상처 받지 않으려고 둘러대는 핑계일 뿐이라구. 하지만, 걘 널 사랑해. 그리고 너도 현실을 직시해야 해. 빅베어에 여행을 갔다 온 이후로 에이드리안 말고 따로 섹스한 여자애가 있어?”

즉각 브룩이 떠올랐다. 브룩은 싱글이 되었다며 수시로 나한테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런 것까지 밝힐 수야 없지. “어, 없어.”

“내 말이 그 말이야. 걔는 너한테 내키는 대로 박고 다니라고 하지만, 넌 그러지 않잖아. 그러니깐 너랑... 걔는... 학교 전체가 너희가 사귀는 줄 안다구. 벤, 네가 그 바보 같은 테이프 레코더를 걸핏하면 틀고 다녔을 때부터 말이야.”

“헤이!”

린은 미소를 지었다. “데이트를 하건 말건, 내 말대로만 하면 에이드리안이 무척 기뻐할 거야, 알았어?”

“어, 알았어.”

“오, 그리고 내가 알려줬다고 말하면 안 돼.” 린은 돌아서다 말고 급히 덧붙였다. “그리고 절대 발렌타인 데이트라는 말은 꺼내지도 마. 걔는 너랑 데이트를 하려고는 안 할 거야. 딴 구실을 생각해 둬. 어... 걔도 싱글이고 너도 싱글이니깐 그냥 목요일 밤을 같이 보내자는 식으로 말이야. 무슨 말인지 이해돼?”

“알았어.”

“그래야지!” 린은 발꿈치를 들고 내 뺨에 뽀뽀를 해줬다. “점심 테이블에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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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뿡!”

“에이드리안!”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아니 대체 뭔 변고래?”

“어쩌라구? 네 엄마 음식 솜씨가 워낙 좋으셔서 그런 건데.” 넋이 날아날 만큼 예쁜 블론드는 킥킥대며 웃고는 소파 등받이에 어깨를 기대고 한쪽 다리를 들어 두 팔로 끌어안았다. 자동으로 눈길이 우아하고 길쭉한 다리로 향했다.

“적어 놔야지.” 나는 손바닥에 글을 쓰는 시늉을 했다. “더는 미트로프를 하지 말라고 엄마한테 요청할 것. 이웃 여자애가 방귀쟁이가 됨.”

“잘 먹었다고 표시도 못 해?”

“헤이, 지금까지 참아줘서 나도 고마워.” 나는 씩 미소를 지었다. “예전에 네 방귀 냄새를 맡아 본 적이 있는데, 예쁜 냄새하고는 정반대였거든.”

“벤!” 에이드리안은 내 어깨를 때리고 도로 소파에 기댔다. 가족들과 식사를 한 평범한 수요일 저녁이었다. 이 날이 2월 13일이라는 것만 빼놓으면.

나는 태연한 척 기지개를 켜며 하품을 했다. 그리고는 배를 두드리며 에이드리안을 쳐다봤다. “참, 내일은 뭘 할 건데?”

에이드리안은 순간적으로 내 눈길을 피했다. 에이드리안은 내일이 밸런타인데이라는 걸 의식하지 못하는 척을 했다. 그러나 그 순간 에이드리안도 똑똑히 알고 있음을 깨달았다. “글쎄, 주말 숙제를 해놓을까 하는데.”

“뭐, 내 생각은 이래. 내일은 싱글 자각 데이잖아. 알지?”

“싱글 자각 데이?”

“옙, 2월 14일. 전 세계의 싱글들이 싱글이라는 현실을 자각하고 싱글이 아닌 사람들한테서 동정을 받는 날.”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서 떠오른 아이디어가 있어. 집에 죽치고 앉아 신세타령을 하거나, 아니면 집 밖으로 나가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게 어떨까 하는.

“뭐? 데이트 같은?” 에이드리안은 눈살을 찌푸렸다.

“아니, 아니.” 나는 두 손을 들었다. “우린 데이트를 하지 않잖아, 기억나? 그냥 어딘가에서 요기를 때우고 대화를 좀 나눈 뒤에, 너희 집으로 가서 토끼처럼 박자는 거야. 평소랑 그리 다를 것도 없잖아.”

“그럼 밸런타인데이하고는 아무 상관도 없다는 거야?” 에이드리안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래. 무슨 말이냐면, 내가 싱글이라는 사실을 자각시켜주는 날이니만큼 집에 머물면서 궁색을 떠는 것보단 너랑 함께 외출해서 즐기는 게 나을 거란 말씀이야. 사실, 집에 머물렀다가는 너한테 우리 관계에 대해 확실이 결정을 내려달라고 조르고 싶은 마음이 생길지도 모르고. 너도 그런 상황으로 몰리는 건 달갑지 않을거야.”

“맞아.” 에이드리안은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끄떡였다.

“그리고 네가 외출하기 싫다면 딴 애랑 데이트할 수도 있을지도 몰라. 요즘 첼시 레니스가 부쩍 꼬리는 치는데, 내가 연락만 하-”

“알았어.” 에이드리안은 내 말을 가로막고는 이내 얼굴을 폈다. “괜찮은 계획 같아. 늘 하던 대로 외출하는 거지?”

“맞아, 늘 하던 대로...” 미소가 일었다. 장담컨대 내 눈에서도 번쩍하는 빛이 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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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에이드리안과 외출을 하라는 린의 명을 들은 일주일 전쯤에 엄마한테 중국집을 소개해달라고 했다. 엄마는 가족끼리 종종 들르는 허름한 단골집보다 상당히 고급인 레스토랑을 권했다.

“무척 비싼 곳인데, 예산은 되니?”

“다른 사람도 아니고 에이드리안이잖아요.” 나는 솔직히 대답했다.

엄마는 흐뭇한 미소를 짓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아빠 차를 끌고 가. 후줄근한 코롤라로 모실 수는 없지.”

“고마워요, 엄마.”

그래서 나는 당일이 되자 정장 재킷과 바지, 넥타이 차림으로 에이드리안처럼 아름다운 백합과 튤립 꽃다발을 새로 세차한 은색 BMW에 싣고 에이드리안의 집으로 출발했다.

나는 진입로에 차를 대고 현관으로 올라가 초인종을 눌렀다. 그리고 에이드리안을 놀라게 할 만반의 준비를 했다.

대신 문이 열리자마자 바닥을 친 건 내 턱이었다. 에이드리안은 눈부셨다. 깊게 파인 핑크빛 드레스의 목선은 젖가슴 살을 실하게 드러내고 있었고 금빛 머리카락은 올림머리 스타일로 예쁘게 꾸며져 있었다. 머리카락의 방해를 받지 않은 얼굴은 달랑거리는 귀걸이와 완벽한 화장 덕에 20대 후반으로 보일 만큼 성숙해 보였다.

놀란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호울리 싯.”

에이드리안은 킥킥대며 웃었다. ‘맘에 들어?”

“가볍게 외출하는 걸로 알고 있을 줄 알았어.”

에이드리안은 눈을 굴렸다. “넌 거짓말하는 게 빤히 들어나.”

나는 얼굴을 붉히다가 금세 평정을 되찾고 꽃다발을 내밀었다. 에이드리안은 고마움을 표시하며 꽃다발을 받고 향기를 맡아보았다. “진짜 마음에 들어...” 그리고는 안으로 들어오란 손짓을 했다. 현관을 들어서자 에이드리안은 문을 닫고 꽃다발을 한쪽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정신을 쏙 빼놓을만한 핵폭탄 키스를 심어왔다.

키스를 마쳤을 때, 내 무릎은 고무처럼 흐물흐물해졌다. “호울리 싯...”

“우리가 남자친구/여자친구가 될 거란 생각은 일찌감치 접어 둬. 알았어?” 엄한 얼굴로 또다시 상기시키는 것이었다.

“당연하지.” 나는 키스의 후유증으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멍하니 대답했다. 에이드리안의 키스는 그토록 강렬했다.

에이드리안은 멍해져 있는 나를 홀로 남겨두고 부엌으로 가서 물을 채운 꽃병을 들고 나왔다. 그리고 정성껏 꽃을 정리하고는 팔짱을 껴왔다. “코롤라를 끌고 오지 않았기를 바래.”

“안 끌고 왔어.”

“또 판다 익스프레스에 간다고는 하지도 말고”

나는 눈썹을 들어 올렸다. “중국집에 가는 건 어떻게 알았어?”

에이드리안은 미소를 지었다. “난 모르는 게 없어. 여태 몰랐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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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한 저녁이었다. 에이드리안은 어디를 가든 내 팔에 매달려서 무척 살갑게 굴었고 나는 그날 밤 내내 다시없는 사랑을 느꼈다.

남들 눈에도 그런 점이 보였던 것 같다. 우리가 테이블로 안내를 받을 때는 뒤편에 앉아 있던 한 중년부부가 물어보기까지 했다. “신혼이신가?”

에이드리안은 킥킥대며 나를 돌아보았다. “사실은, 우린 아직 함께하는 것도 아니에요.”

우리가 아직 어린 걸 깨달은 부인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편분은 미소를 지었다. “아직은 아니라 이거지.” 그리고 손바닥으로 칸막이를 만들고 나한테 말했다. “널 좋아하는 게 분명해.”

모두 웃음을 터트릴 때, 부인네가 나한테 충고했다. “망치면 안 돼.”

나는 얼굴을 붉혔지만, 다행히 호스티스가 다가와 우리를 테이블로 안내했다. 웨이트레스가 와인에 대해 물을 때는 에이드리안이 미소를 짓고 우리가 열일곱 살이라는 걸 밝혔다.

음식도 훌륭했다. 예상했던 대로 내 입맛에는 다소 미국화된 맛이었지만, 에이드리안은 신경 쓰지 않았다. 에이드리안은 린넨 냅킨과 양초가 놓인 우리만의 사적인 부스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서로 손을 잡고 끊임없이 대화를 했기에 많이 먹지는 못했다.

그리고 식당을 나와 주차보조원이 아빠의 BMW를 가지러 간 사이, 에이드리안은 나한테 기대고 이전 키스를 능가하는 핵폭탄 키스를 해왔다.

천국이 따로 없었다. 나는 일 년 중 가장 로맨틱한 이 날, 절실히 사랑하는 매혹적인 여자애와 함께하고 있었다.

게다가, 더욱더 기대되는 건, 저녁 내내 완벽한 숙녀였던 여자애가 침대에 드는 순간 창녀처럼 돌변할 거라는 사실이었다.

에이드리안은 집으로 차를 모는 내내 내 허벅지에 왼손을 올려놓고 사랑이 절절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넥타이를 매고 정장 재킷을 입은 김이 차 문을 열어주고 팔을 붙잡을 수 있게 하고 현관까지 바래다주는 둥 진짜 신사가 된 것처럼 행동했다.

나는 현관 앞에서 허리를 굽혀 에이드리안의 손등에 키스했다. “멋진 저녁이었소. 마드무아젤.”

에이드리안은 킥킥대며 내 목에 손을 두르고 살며시 키스를 해왔다. 이번에는 서서히 타오르는 키스였다. 에이드리안은 키스를 마치고 나직이 속삭였다. “’낫투게더’인 커플치고는... 멋진 ‘낫데이트’였어...”

나는 미소를 짓고 한 번 더 키스를 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신사인 척을 하기로 했다. “안녕히, 마드무아젤.” 그리고는 돌아서서 발걸음을 디디려 했다.

그러나 에이드리안은 얼른 내 팔을 잡아당겼다. “어디를 가려고?”

나는 미소를 지었다. “섣부른 짓은 하고 싶지 않소.”

에이드리안은 내 등을 끌어안으며 얼굴을 바짝 들이댔다. “오를 밤 날 독수공방하게 내버려둘 거라면 내일 학교에 나올 생각은 하지도 마.”

“아가씨 분부대로 합죠.”

에이드리안은 웃음을 터트리며 나를 집 안으로 힘껏 밀어버렸다. “실없는 장난은 집어치워, 타이거.” 에이드리안은 깔깔대며 현관을 닫았다. “레스토랑에서 화장실 갈 때, 파란 알약을 먹는 걸 못 본 줄 알아?”

나는 두 손을 들고 ‘누가?-내가?’ 하는 손짓을 해보였다.

에이드리안은 먹잇감을 노리는 매의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아무튼, 잘 먹어 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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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옷을 벗어 던지며 복도를 통과했다. 나는 현관 바로 앞에 재킷을 벗어 던지고 몇 발짝 더 지나서는 넥타이를 벗어 던졌다. 그리고 에이드리안이 나를 벽에 밀어붙이고 내 셔츠를 찢어발기듯 벗겨 냈다.

에이드리안도 드레스를 벗어 아무렇게 내던져버렸다. 침실까지는 나머지 옷가지들이 바닥에 내던져졌다. 그리고 마침내 에이드리안의 브라와 팬티가 침대 옆에 대충 내던져졌다.

그러나 에이드리안은 내 바람대로 하이힐과 장신구를 남겨 두었다. 그렇게 우리는 본격적인 거사를 시작했다.

내가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박는 도중 두 다리를 내 어깨에 걸치고 있던 에이드리안이 처음으로 쌌고 또 두 번째로 싼 것도 에이드리안이었다.

나는 에이드리안이 세 번째 오르가즘에 오른 직후에 처음으로 쌌다. 그 후 에이드리안은 나를 똑바로 눕히고 기운을 차릴 때까지 내 자지를 빨아주었다.

에이드리안은 나를 타고 달리며 네 번째 오르가즘을 맞이했다. 나는 잠시 숨을 돌리고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체위인 배후위 자세로 에이드리안을 엎드리게 했다. 나는 그 자세로 폭발적인 두 번째 오르가즘에 올라 블론드 10대의 질내벽을 처바르는 좆물을 토해냈다. 그리고 마저 다 싸기도 전에 좆을 뽑아서 에이드리안의 주름진 똥구멍에 대고 남은 좆물을 뿌렸다.

나는 비아그라의 약발을 받아 꺾일 줄 모르는 자지로 에이드리안의 항문을 힘껏 찔러 들어갔고 에이드리안은 내 강력한 침범에 침대에 몸을 무너뜨렸다. 나는 밴시처럼 울부짖는 에이드리안의 발을 붙잡아 엉덩이에 붙여두고 아드레날린의 버프를 받은 펌프질을 해댔다.

“씨이이이이이이팔!!!” 에이드리안은 숨이 찰 때까지 고함을 치고 비명을 질러대다가 또다시 숨을 깊이 들이켜고 “씨이이이이이이팔” 비명을 질러댔다.

결국, 나는 에이드리안의 발을 놔주는 대신 어깨를 붙들었다. 그리고 유정을 파듯 엉덩이를 쉬지 않고 내지르며 고개를 숙여 에이드리안의 등을 쭉 핥아 올라가 목의 민감한 부분에 다다랐다.

“내 엉덩일 박아, 벤! 내 엉덩이 속에 싸질러 버려, 벤.” 에이드리안은 침대 시트를 침으로 적셔가며 고개를 좌우로 내저었다.

“박아-박아-박아!” 에이드리안은 노래를 불렀다. “내 엉덩이에 싸고 나서는 네 고동치는 좆으로 내 얼굴도 박아 줄 거지? 나 네 자지 맛보고 싶어! 날 박아버리라구!”

에이드리안의 추잡한 말이 내 뇌리로 스며들며 방안이 빙글빙글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마 숨이 따라가기 벅찰 만큼 내 한계를 넘어 박아대느라고 산소가 부족했던 것 같다. 내가 고작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황홀경에 빠져 자동화된 기계처럼 에이드리안을 박아대는 것 뿐이었다.

마침내 나는 내뱉는 즉시 목이 쉬어버릴 만큼 강력한 사자후를 포효하며 폭발해버렸다. 나는 쓰러지지 않으려 에이드리안의 어깨에 이마를 기대고 껄떡대는 자지를 에이드리안의 직장 깊숙이 그대로 박아둔 채, 벌컥벌컥 좆물을 쏟아냈다.

그리고는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가운데에서 에이드리안의 딱한 똥구멍에서 자지를 뽑아 쓰러지지 않도록 침대를 짚고 비틀거리며 침대 옆에 서고는 에이드리안의 늘어진 사지를 잡아당겨 자지 앞에 머리가 놓이게 했다.

에이드리안의 눈꺼풀이 펄럭였다. 아직 의식이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지만, 확실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나는 에이드리안의 요구한 대로 손으로 머리를 붙들고 입가에 자지를 들이댔다. 그리고 에이드리안이 내 자지를 빨아대는 걸 보며 아직 의식이 있음을 깨닫고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아직 창창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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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금요일인 다음날 학교에서 린하고 헤더랑 잡담을 나누는 에이드리안을 발견하고 힘들게 걸음을 옮겼다. 매혹적인 블론드는 나를 보고 기운 없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나도 에이드리안이 퀭한 눈을 하고 느른하게 몸을 늘어트린 걸 볼 수 있었다. 에이드리안도 나처럼 진이 빠져 있었다.

린과 헤더는 우리 둘을 보고 킥킥대며 함께 1교시 수업으로 향했다.

“헤이...”

“헤이...”

“실제로 발기불능 같은 문제가 생기기 전까지는 파란 악을 끊어야 할까 봐. 고놈들 때문에 심장마비가 올 것 같아.” 나는 괴로운 신음을 토했다. 우리가 함께한 밤은 현세를 벗어날 정도였다. 스키 여행에서는 여자애 넷을 상대하면서도 4시간이 지나서야 자지가 가라앉았지만, 에이드리안은 고작 2시간도 채 되지 않아 내 자지를 꺾이게 했다. 생각만 해도 심장이 두근거리는 일이었다.

“에이, 늘 발기된 게 싫지는 않았는데,” 에이드리안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네 말이 맞아. 나도 걷는 것도 힘들어.” 에이드리안은 나한테 기댔고 나는 에이드리안을 부축해주었다.

“힘내, 내가 교실까지 바래다줄게.” 그렇게 우리는 실없는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찬사를 보내는듯한 남들의 눈길을 깡그리 무시한 채, 절룩거리며 복도를 걸어갔다. 즐거운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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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화창한 2월 하순, 나는 점심시간이 끝나갈 무렵 락커를 닫고 5교시를 향해 갈 채비를 마쳤다. 나는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고 수업을 들어가야만 한다는 사실에 아쉬운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버클리에 합격한 마당에 꼭 수업을 들어야만 하나?

“하이이이, 벤.” 밝고 상냥한 목소리가 백일몽을 깨웠다. 나는 고개를 돌리고 닿을 듯 바짝 붙어 있는 여자를 보고는 화들짝 놀라게 되었다.

“웁스, 미안. 놀라게 하려는 건 아니었어.” 키 큰 백금발 여자애가 현기증이 나는 완벽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왜 다들 알다시피, 치약 광고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미소를 말이야.

나는 재빨리 자세를 가다듬었다. “어, 괜찮아, 헬렌.”

헬렌 맥그레고리는 나하고 같은 학년으로 학교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미녀였다. 우리는 5교시 수업을 같이 들었는데 나는 종종 나도 모르는 사이 헬렌의 다리에 눈길을 고정하곤 했다. 그러나 아무리 예쁜 다리라고 해도 헬렌의 미소에는 쨉도 되지 않았다. “백일몽을 꾸기라고 한 거야?”

나는 콧방귀를 뀌었다. “그래, 여기에 없는 걸. 날씨가 너무 좋아서 주말을 생각했어.”

“진짜?” 헬렌은 환한 미소를 짓고 버드나무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듯 몸을 앞뒤로 비비꼬왔다. 나는 헬렌의 몸짓에 초미니스커트를 입은 헬렌의 몸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특히 길쭉하게 뻗어 있는 다리를. 헬렌은 내 눈길이 자기 얼굴로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여기에 없는 걸 생각했다면 어디서 무얼 하고 있었을까?”

나는 어깨를 으쓱이고 먼 곳을 쳐다봤다. “글쎄, 아마 헌팅턴으로 날라서 파도타기를 하는 걸 생각했나? 여름 이후로는 해변에 나가본 적이 없어. 2월에 날씨치고는 무척 따듯하잖아.”

“넌 파도 타니?” 예쁜 여자애는 흥미가 이는 얼굴로 물었다.

“가끔.”

“잘 타?”

나는 뿌듯이 가슴을 내밀었다. “괜찮게 타는 편이야.”

“진짜? 난 파도를 타 본 적이 한 번도 없지만, 내 수영복 차림은 너도 보고 싶을걸.” 헬렌은 대놓고 유혹하듯 킥킥대며 웃었다. “날 가르쳐 줄 수 있겠어?”

“그럴까, 나중에 시간 나면.” 나는 미끼를 놓았고

헬렌은 덥석 물었다. “토요일은 어때? 마침 할 일도 없는 데다가 날씨가 쭉 좋을 수만은 없잖아. 아마 이번 주까지는 괜찮을 테지만. 우리 파도도 타고 밥도 먹고 하루를 재밌게 보내는 거야. 어때?” 거의 흰색에 가까운 머리카락이 뺨에 부드럽게 나부끼는 모습이 천사처럼 예뻤다.

나는 눈썹을 들어 올리고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나한테 데이트 신청하는 거야, 헬렌?”

헬렌은 얼굴을 붉히고 눈부신 미소를 지어 보였다. 뻥이 아니라 새하얀 이가 광고에서 본 것처럼 빛을 반짝였다. “그렇다면 어쩔 건데?”

여자애한테서 진지하게 데이트신청을 받는 게 하도 오래간만이라 경황이 없었다. 보통 여자애들은 에이드리안의 존재에 위압감을 느끼고 나한테 접근하기를 꺼렸다. 나는 턱을 맞추며 조심스레 대답했다. “어, 좀 곤란할 것 같아.”

“왜? 만나는 사람이라도 있는 거야?”

“어, 글쎄, 그러니깐-” 나는 침을 삼켰다.

“너랑 에이드리안은 그냥 친구라는 말이 있더라구. 맞아?”

“맞아.”

“그럼 별 탈 없잖아? 우리 재미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야.” 헬렌은 은근히 부추겼다. “내가 비키니 입은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

침이 말랐다. 나는 대놓고 단단하면서 늘씬한 헬렌의 몸매를 감상했다. 나는 진짜, 진정으로 헬렌의 비키니 차림을 보고 싶었다... 혹은 비키니를 입지 않은 모습을... 그러나 양심이 나를 주저케 했다. 마치 에이드리안을 배신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실제로도 그랬다. 에이드리안은 우리가 ‘낫투게더’라며 심지어는 자기 친구들을 박도록 부추기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 친구들은 에이드리안도 곁에 있을 때 박은 것이었다. 에이드리안의 등 뒤에서 딴 여자애를 박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단지 친구’이건 아니건 간에 에이드리안과 나는 사실적으로는 커플이나 마찬가지였고 밸런타인데이에 한 ‘낫데이트’로 내 속마음은 더욱 공고해졌다.

“헬렌.” 나는 아쉬운 한숨을 내쉬었다. “난 진짜로 너와 데이트하고 싶어. 하지만, 그럴 수 없어.”

“왜? 넌 싱글이잖아. 안 그래?” 거의 울먹이는 듯한 목소리였다.

마음이 아팠다. 나는 더는 생각하지 않고 돌아섰다. “미안해, 헬렌. 난, 어, 나중에 얘기하자.” 나는 서둘러 자리를 떴다. 나는 고개를 늘어뜨리고 뚜벅뚜벅 걸었다. 처음에는 도온과 열린 관계를 갖자면서도 끝내 실천할 수 없었고 지금은 공식적으로 사귀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면서도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었다. 나한테 뭔가 잘못된 게 있는 걸까? 예전에 메간, 캐시디, 에이드리안을 두고 바람을 피웠던 일로 심리적인 상처가 남은 걸까?

“마음이 바뀌면 전화해!” 헬렌이 소리쳤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 뚜벅뚜벅 걷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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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드리안은 5교시와 6교시 사이에 나를 찾아와서 그리 친밀하지 않은 목소리로 날카롭게 내 이름을 불렀다. “헤이! 벤!”

“헤이, 에이디.”

매혹적인 블론드는 화난 표정으로 내 앞길을 가로막았다. “너 왜 그랬어?”

“허?”

“헬렌이 데이트 신청했지?”

“어-...” 나는 어리둥절한 마음에 주저하며 입을 열었다. “그걸 어떻게 알았어?”

“그건 상관하지 마.” 에이드리안은 손을 내저었다. “거절했다며?”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흥미가 안 생겼어.”

“뻥까네.” 에이드리안은 내 앞에 우뚝 섰다. “헬렌 맥그레고리는 2주 전에 남자친구랑 깨졌어. 그래서 즐기고 싶었을 뿐이라구. 걔가 분명히 밝혔을 텐데, 아니면 네 아둔한 머리로는 이해가 안 됐단 거야?”

“헤이, 헤이! 왜 이렇게 화를 내? 난 네가 기뻐할 줄 알았다구!”

“기뻐한다구? 내가 왜 기뻐해야 해?”

“어... 왜냐면, 너랑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지 않아서?”

“좆까, 벤...” 에이드리안은 어깨를 늘어뜨리고 한숨을 내쉬었다. “나 때문에 헬렌을 거절한 거라고는 하지도 마.”

나는 두 번 눈을 깜박였다. “하지만...난...” 나는 에이드리안 때문에 헬렌을 거절했다는 말을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과거의 경험으로 이럴 때는 섣부른 말을 하지 않는 게 상책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우린 함께하는 게 아냐, 벤.” 에이드리안은 엄한 목소리로 힘주어 말했다.

“알아, 알아.” 나는 어깨를 으쓱이고 허공에 따옴표를 그렸다. “적어도... 명목상으로...”

“아니! 명목상으로도 아냐. 우리는 함께하는 게 아니라구!”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왜? 난 너 말고는 아무도 원치 않아, 에이드리안. 넌 나를 사랑한댔잖아. 게다가 우린 밸런타인데이에 진짜 좋았잖아. 게다가-”

“아니-아니-아니!” 에이드리안은 한 손을 들고 돌아섰다. “이런 일이 생기다니!”

에이드리안은 나한테서 두 발짝을 물러섰고 나는 에이드리안을 따라 걸어갔다. 에이드리안은 우뚝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섰다. “벤, 나 때문에 데이트 신청을 거절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내 말 이해해? 넌 맘 내키는 대로 누구라도 박을 수 있어. 난 아무 상관이 없어. 난 네 여자친구가 아냐. 이제 넌 완전한 자유야.”

“에이드리안!”

에이드리안은 이미 돌아서서 저만치 나아가고 있었다.

“우리 아직 방과 후에 놀러 나갈 거지?” 나는 에이드리안한테 소리쳤다.

“수업 들어가, 벤!” 에이드리안은 어깨너머로 버럭 소리를 지르고는 코너를 돌아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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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생 여자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수년 동안 안전하다는 평판으로 여자애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여자애들의 정신세계에 대해 나름 아는 게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고, 또한 몇몇하고는 데이트도 하고 꽤 많은 여자애를 박아주기도 했건만, 여자애들을 이해하는 방면에서는 코딱지만큼도 진전이 없다는 사실을 지금에야 깨닫게 되었다.

나는 에이드리안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에이드리안은 나를 사랑했다. 에이드리안은 나를 철석같이 믿었다. 그리고 과거까지 통틀어서 그 누구보다도 나한테 애착이 강했다. 어쩌면 도온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나는 근 넉 달 동안 누구보다도 에이드리안과 함께한 시간이 많았다. 케니, 다니엘, 내 동생들보다도 더. 에이드리안은 내 단짝친구이자 연인이었다. 그리고 나는 에이드리안을 알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에이드리안은 나를 잃게 될까 두려워하면서도 겁을 내지는 않았다. 에이드리안은 나를 사랑했다. 그러나 에이드리안은 자기의 애착이 너무 강한 걸 알고 우리의 관계가 진전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우리는 모든 면에서 실질적인 남자친구/여자친구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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