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장 참기 (9/18)

8장 참기

2001년 11월 4학년

“벤! 벤!”

월요일 아침에 잠에서 깨고 보니 엄마가 내 어깨를 흔들어대고 있었다.

“어서 일어나! 학교 늦을라!”

눈곱이 껴서 눈꺼풀을 뜨기가 힘들었다. 나는 평소대로 돌아누워 시계를 힐끔 쳐다봤다. “아, 좆됐다.”

“입 조심해, 젊은이.” 엄마가 꾸짖었다.

“예,”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손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엄마는 한숨을 쉬고 방을 나갔다. 나는 그 즉시 다시 침대에 무너져 마치 도온을 뒤에서 끌어안는 모양으로 팔을 뻗었다.

팔이 아팠다. 알이 배겨서가 아니라 도온이 없어서였다. 나는 지난 이틀 동안 도온을 안고 체취를 맡으며 잠에 들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언제 그런 날이 또 올 수 있을지 알 수도 없었다.

도온은 우리가 다시 함께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나는 도온을 믿고 싶었다. 그러나 나만 홀로 수백 마일 밖에서 아침을 맞고 보니 라이언과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짓을 하고 있을 도온이 믿기 어려웠다.

나는 훌쩍이며 눈물을 떨쳐냈다. 나는 울보가 아니었다. 그리고는 침대에서 내려와 학교에 갈 준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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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켄타랑 데이트는 어땠어?” 나는 학교로 차를 몰며 브룩한테 물었다. 집으로 돌아온 어젯밤에는 영 대화하고 싶은 기분을 낼 수 없었다. 나는 저녁을 먹고 내 방에만 틀어박혀 잠들 때까지 도온을 생각했다.

새빨갛게 붉어진 브룩의 얼굴에 살며시 야릇한 미소가 떠올랐다. “화내지 않겠다고 약속해줄래?.”

대번에 알 수 있었다. 나는 따듯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섹스했구나?”

“응...” 브욱은 좌석에 몸을 파묻고 행복한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끝내줬어...”

나는 브룩의 무릎을 토닥여주었다. “네가 좋다면 나도 기뻐.” 갑자기 감정이 복받쳤다. 눈물이 났지만, 오열을 참으려 애를 썼다. 우주적인 조화라도 되는 걸까? 하나의 관계가 소멸하니깐 다른 곳에서 새로운 관계가 탄생하게. “진짜 기뻐...”

“벤?” 브룩은 내 감정을 직접 파고들었다. 아마도 브룩은 지금껏 내가 우는 모습을 두 번밖에 보지 못했을 것이다. 브룩은 근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벤, 뭐가 잘못됐어? 내가 데이트를 해서 속상해? 벤, 난 오빠를 속상하게 하려고 데이트를 한 게 아냐. 알잖아-”

“아니, 아니.” 나는 브룩을 말리고 눈물을 훔쳤다. “너하고는 상관없는 일이야. 진짜야, 브룩. 난 오히려 기쁜걸. 하지만, 페리처럼 너한테 함부로 굴지 못하게 똑똑히 해두라구. 알았어?”

“알아, 나도 그때 실수로 배운 게 있어. 게다가 난 벌써 켄타하고 잤잖아. 더 바랄 게 있을라구?”

나는 한숨을 쉬었다. “놀라지 마.”

“벤, 뭐가 잘못됐는데?” 까불이 동생이 이처럼 동정적이었던 적은 예전에 없었다. “주말에 도온하고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브룩이 깜짝 놀랄 만큼 내 몸이 세차게 떨렸다. 그래서 나는 주체하지 못할 울음이 터지기 전에 급히 갓길에 차를 대고 깜빡이를 켰다. 그리고 핸들에 엎드려 어깨를 들썩이며 울음을 터트렸다.

한 일이 분쯤 지났을까. 브룩이 내 등을 쓸어주고 있었다. 의무적으로 해대는 상투적인 위로나 동정의 말은 듣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브룩은 그런 말을 피해 겁이 난 듯한 목소리로 조용히 속삭였다. “벤, 무서워, 뭐가 잘못됐는데?”

나는 겁을 내는 듯한 브룩의 목소리를 듣고 퍼뜩 정신을 차렸다. 오빠의 보호본능이 발동했다.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똑바로 앉아 눈물을 닦고 길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어, 미안, 미안.”

“벤, 도온이랑 헤어진 거야?”

“그래.” 나는 한숨을 쉬고 울음을 참으려 이를 악물었다.

“왜? 오빨 사랑하지 않는대?”

“아니, 아니, 사랑한대.”

“뭔가 바보짓이라도 저지른 거야?”

“아니!” 나는 눈을 굴리고 브룩을 째려봤다. 그러나 그 순간 도온을 자청해서 포기한 게 떠올랐다. 정말 바보 같은 짓이었다. 그렇지? “내 말은... 아니, 바람을 피우지도 도온 몰래 딴 짓을 하지도 않았어. 하지만... 내가 도온을 놔줬어. 걔는 내가 곁에 없어서 행복하지 않았고 어떤 관심이 꼭 필요했어. 우린 둘 다 지금껏 떨어져 지내느라고 무척 힘들었어.”

“오,” 브룩은 눈치가 보통이 아니었다.

“그래서 우린 남은 한 해 동안 떨어져 지내면서 내년 여름을 기약하기로 했어. 그때 다시 합칠 계획이야.”

브룩은 바삐 눈을 깜박였다. “하지만, 상황이 변하면? 오빠가 다른 사람하고 사랑에 빠지면?”

턱이 떨리면서 눈물이 다시 쏟아지려고 했다. 나는 목멘 소리로 말했다. “나도 그게 두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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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룩은 나를 달래려 애를 썼고 나는 그럭저럭 학교에 갈 마음을 낼 수 있었다. 그러나 갓길에서 시간을 보낸 것으로 정시에 수업에 들어가려면 더욱 서둘러 차를 몰아야 했다. 나는 먼저 브룩을 내려주고 학생주차장 제일 끝자리에 주차를 했다. 그리고 부리나케 1교시 수업으로 달려갔다.

에이드리안의 2교시가 끝나고 나를 찾아와 내 품으로 뛰어들었다. “벤! 여??었구나!”

나는 도온을 잃은 감상(感傷)에 젖어 에이드리안의 품에 녹아들었다. 너무나 좋은 느낌에 또다시 눈물이 쏟아지려고 했다. 나는 슬픔과 안도가 섞인 신음을 하며 에이드리안을 힘차게 끌어안았다. 에이드리안은 나의 굳센 포옹에 기쁘게 흥얼거렸다.

“오, 내가 진짜 보고 싶었구나?” 에이드리안은 뺨을 비비며 발랄하게 외쳤다.

나는 코를 훌쩍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에이드리안은 킥킥대며 웃었다. “어쩌면 저번에 하다 만 걸 다시 하고 싶어서?”

에이드리안의 노래하는 듯한 목소리에 추수감사절 날의 저녁이 떠올랐다. 기껏해야 지난주 금요일이었다. 우리는 욕정과 욕망으로 달아올라 함께 침대에 올랐고 직접적으로 섹스를 한 건 아니었지만, 에이드리안은 나한테 블로우잡을 해주었고 나도 에이드리안을 집으로 돌려보내기 전에 펠라티오로 두 번이나 싸게 해주었다. 섹스도 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이 생겼지만, 도온을 위해 그동안 꾹 참고 지내왔던 것이 떠올라 다시 기분이 가라앉았다.

에이드리안은 킥킥대며 포옹을 풀었다. “음... 어쩌면 우리-” 그러다가 내 얼굴을 보고 갑자기 말을 멈췄다. “벤? 괜찮아? 뭐가 잘못됐어?”

나는 눈썹을 찌푸리고 한숨을 내쉬었다.

에이드리안은 직관적으로 사정을 파악했다. 남자라는 게 원래부터 워낙 단순한 동물이라 우리 남자들을 이런 식으로 흔들어버릴 수 있는 일은 수량이 한정되어 있었다. 게다가 에이드리안은 브룩처럼 나를 이렇게 동요케 할 수 있는 일이 오직 하나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여자친구랑 뭔 일이 있었던 거야?”

나는 한숨을 쉬고 에이드리안을 쳐다봤다. 우여곡절이 많은 사이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지난 몇 주간은 진정한 친구처럼 느끼고 있었다. “봐봐, 이 이야기가 퍼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알았어.”

나는 심호흡을 하고 에이드리안의 눈을 응시했다. “도온하고 난 갈라서기로 했어. 장거리 연애라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더라구.”

[헉] [헉]

마침 왼쪽에서 들린 바람 새는 소리에 얼른 고개를 돌려보니 매디 정과 나딘 버틀러가 신이 난 듯 속삭여대며 우리한테서 멀어지고 있었다. 지나가다 내 말을 엿들은 게 분명했다.

나는 한숨을 쉬고 눈을 굴렸다. 이제는 다들 알게 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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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에이드리안이 도온과 헤어진 걸 기회 삼아 다시 사귀려 들까 봐 겁이 났다. 그러나 내 걱정과는 반대로 아무런 행동도 개시하지 않고 오히려 평소보다도 더 조신하게 구는 것이었다. 에이드리안은 나를 교실까지 바래다줬고 점심 시간이 되어서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만 있었다. 반면에 친구들은 내가 왜 저기압인지 물어오며 자꾸만 귀찮게 구는 것이었다. 심지어 에이드리안은 방과 후에 집에까지 따라와서 나를 위로했고 쌓아둔 감정을 모두 발산하라는 권유를 했다.

처음에는 좀 어색했다. 사귀다 헤어진 여자친구한테 그런 문제를 털어놓을 남자가 이 세상에 존재할 리가 만무했다. 사실, 전-여자친구는커녕 누구한테라도 드문 경우였다. 나는 케니하고 쭉 단짝친구였지만 사랑이나 여자문제에 대해서는 한 번도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었다. 키이라한테는 좀 고백 비슷한 걸 한 적이 있었지만. 아무튼, 나는 처음에는 좀 쭈뼛대며 머뭇거렸지만 결국에는 속시원히 모든 걸 털어놓게 되었다.

에이드리안은 이미 나와 도온의 문제에 대해 조금은 알고 있었다. 전에 나는 에이드리안한테 우리의 배경과 역사에 대해 말해준 적이 있었고 심지어는 열린 관계를 해보기로 한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준 적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장거리 연애관계의 어려움과 육체적인 단절로 겪어야만 했던 괴로움도 털어놓게 되었다. 나는 도온이 남자애들의 관심을 받게 된 상황을 설명해주었고 진짜 괜찮은 남자애 하나가 도온을 쫓아다녔다는 것도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내가 자청해서 나 말고 다른 남자애와 진지한 관계를 탐험해볼 기회를 준 것도 이야기해주었다. 도온이 그 남자애한테 감정을 품은 게 분명해 보여서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결국 놔주어야만 했던 사실을. 그리고 지금은 그 댓가를 치르고 있다는 것을.

처음에는 이야기를 좀 가려서 할 참이었다. 어떤 이야기는 에이드리안이 알 필요가 없는 극히 사적인 내용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에이드리안의 사려 깊은 경청과 통찰력 있는 질문에 어느덧 가리는 것 없이 모든 걸 털어놓게 되었다.

나는 심지어 에이드리안 본인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었다. 아직 감정이 남아있고 심각하게 끌리고 있지만 원하는 만큼 해줄 자신이 없어 상처를 줄까 봐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도온과 헤어진 지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는 전-여자친구가 되어버린 도온을 아직도 사랑하고 있었다.

그렇게 모든 걸 털어놓자 속이 시원해지고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나는 쌓아두기만 했던 괴로움을 발산해버린 것이었다.

“훨씬 낫지?”

“그래, 진짜루. 고마워, 에이디.” 나는 한숨을 쉬었다.

에이드리안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 그 작은 미소는 금세 커다란 미소로 변했다.

“뭐?”

“너 금방 날 에이디라고 불렀어.”

내 눈깔이 튀어나왔다. 나는 에이디란 별명이 “온종일 에이드리안”을 가리키는 경멸적인 뜻임을 알고 있었다. “오, 어, 미안, 그런 의도가 아-”

“아니, 아니, 맘에 들어, 진짜야. 내 말은, 어떤 의미로 쓰이는지는 알지만, 친한 친구들은 다 날 에이디라고 부르는걸. 캔디, 미즈호, 린 등등. 네가 그렇게 부르는 게 좋아. 마침내 네가 날 진짜 친구로 생각한단 뜻이거든.”

“진짜 그래.” 나는 감정을 발산하는 도중에 에이드리안한테 해준 말을 떠올라 걱정스럽게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특히 끌리고 있음을 인정한 말이 떠올라 얼굴을 들 수 없었다. “난, 어, 너에 대해 해준 말 땜에 불편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에이드리안은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아니, 아니. 걱정하지 마. 네가 나한테 육체적으로 끌리지 않았다면 오히려 속이 상했을 것 같아. 넌 남자구, 성직 긴장은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일이거든.” 예쁜 블론드는 씩 웃으며 자기의 꼴림-유발-몸뚱이를 짜잔 하는 손짓으로 쓸어내렸다. 그리고는 한숨을 쉬고 나처럼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게다가, 넌 아직도 널 사랑하는 날 감당해야 해.”

나는 입술을 깨물고 눈썹을 세웠다. “맞아, 그 문제에 대해서 말인데, 에이드리안, 난 그럴 준비-”

“알아.”

“지금은 친구로 지내는 게 가장 좋을 것 같아.”

“나도 네 친구가 되고 싶어, 벤. 진짜루.” 에이드리안은 내 손을 잡고 미소를 지었다.

나도 에이드리안의 손을 잡고 미소로 대답했다. “고마워, 에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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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날 저녁에 도온과 헤어지기로 한 사실을 가족들한테 알려주었다. 쌍둥이들은 호들갑까지는 아니더라도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다음 여름에 다시 합칠 계획이라고 말해주자 이내 얼굴을 폈다. 자기들 딴에는 나랑 도온은 예전부터 사귀다가 헤어지는 걸 반복해 왔다며 이번이라고 유별나게 생각되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도 쌍둥이들의 관점이 꽤 그럴싸하게 느껴져서 괜히 안심이 됐고 결국에는 모든 일이 잘 풀릴 거라는 낙관적인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그런데 브룩이야 이미 알고 있다손 쳐도 놀랍게도 부모님도 이미 알고 계셨다. 도온은 자기 엄마한테 말했고 당연히 도온 엄마는 우리 엄마한테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엄마는 아빠한테 알려주었고. 세 분은 다들 실망하셨다고 한다. 그러나 엄마는 우리가 아직 열일곱 살밖에 되지 않아 안주하기에는 너무 이르다며 도온과 내가 영원히 친구가 아니기로 결정한 게 아닌 이상 세상 경험을 쌓아보는 게 오히려 더 나을 수도 있겠다는 실용적인 의견을 내놓으셨다.

나는 가족들의 격려로 화요일이 되어서는 다소 기분을 풀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여자친구와 헤어졌다는 사실은 이미 학교 친구들한테 쫙 퍼져 있었다.

한번은 화장실에서 나오다가 쓰레기통 옆에서 잡담을 나누는 4학년 여자애들의 말을 우연히 엿듣게 되었다. “이번에 시장에 나온 게 누구게?” 1번 여자애가 나한테 등을 돌린 채 킥킥댔다.

2번 여자애가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을 짓자 1번 여자애가 소곤거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벤--!”

나는 내 이름을 듣고 번쩍 고개를 돌리고 눈썹을 들어 올렸다. 2번 여자애는 그 순간 나를 발견하고 눈을 진짜 동그랗게 떴다.

1번 여자애는 내가 지척에 있는 줄도 모르고 계속 떠들어댔다. “샌프란시스코인가 어딘가에 산다는 여자친구랑 깨졌다고 하더라구. 그러니깐 지금은 임자가 없는 몸이라 이거야. 걔가 보통 귀여운 게 아니잖니. 게다가 걔가 침실에서 뭘 해줄 수 있는지는 너도 소문을 들어 알고 있을 거야. 내 말은, 걔는 에이드리안 데니스하고는 데이트를 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지만, 에이드리안은 걔를 졸졸 쫓아다니잖아, 마치-”

“하이, 벤!” 2번 여자애는 친구한테 입을 다물라고 흔들어 대던 손짓을 멈추고 나한테 아는 체를 했다.

1번 여자애는 2번 여자애가 어색한 미소를 짓으려 애를 쓰는 동안 나를 돌아보지도 못하고 제자리에 우뚝 굳어졌다.

나는 갈 길을 가기 전에 미소를 짓고 상냥한 대꾸를 해줬을 뿐이다. “숙녀분들...”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게 그리 기분이 나쁘지 않은 소문이었다. 그러나 현재의 내 처지에서는 여자애들의 관심이 달갑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날 하루를 친구들하고만 바짝 붙어 지내면서 외인들한테는 접근도 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내 친구들도 도온을 만나본 적은 없어서 상투적인 격려 말고는 도와줄 수 있는 게 없었지만 그래도 내 기분을 배려해 주려 나름대로 애를 써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하도록 친구들을 조직한 이는 다름 아닌 에이드리안이었다.

에이드리안이 설명하길 보통의 여자애들은 일반적으로 여자애하고 함께 있는 남자한테는 다가가기를 꺼린다고 한다. 예를 들어 내가 케니하고만 있으면 여자애들은 거리낌 없이 나한테 접근해 올 거라는 거였다. 그러나 에이드리안과 함께 있는 나한테 접근할 여자애는 한 명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미리 순번 같은 걸 정해놓은 것까지는 아니었지만, 에이드리안, 린, 헤더, 메간, 캐시디, 스테파니, 샌더스 쌍둥이들은 각자 틈이 날 때마다 나하고 있어주거나 수업에 동행을 해주곤 했다. 심지어 일레인까지도.

나는 여자애들이랑 늘 붙어 있었기 때문에 찝쩍대는 여자애들을 예방할 수 있었다... 어느 정도까지는. 내가 원하는 것은 수업을 듣고 점심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는 게 전부였다.

그리고 몇 주 동안은 실제로 그렇게만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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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2월 4학년

나는 어느 수요일 아침 쉬는 시간에 어쩌다 보니 혼자만 있게 되었다. 보통은 캐시디가 나를 2교시 수업에서 친구들이 모이는 곳까지 바래다주곤 했는데 이때는 캐머런이 해온 전화를 받으러 으슥한 곳으로 찾아간 것이었다.

그래서 “헤이이이, 벤.” 이라는 유혹적인 목소리가 왼편에서 들려왔을 때는 나 혼자만 있었다. 나는 옆으로 고개를 돌리고 굉장히 귀여운 아시안 여자애가 엉덩이를 부딪쳐오는 것에 때맞춰 대비할 수 있었다. 나는 살집이라고는 찾아볼 길 없는 늘씬한 몸매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나팔 데님 바지를 입은 것도 가뜩이나 빈약한 엉덩이를 더욱 늘씬하게 보이게 했고 피부에 찰싹 달라붙은 파스텔 핑크 색조의 7부 소매 상의는 안 그래도 가느다란 팔을 더욱 가늘게 보이게 했다. 또한, 길고 가는 목선과 달랑거리는 귀걸이는 갸름한 얼굴과 당당한 광대뼈를 강조했고 어둡고 탐스러운 머릿결은 윤기를 발하며 삼단같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긴 손 눈썹이 달린 큼지막한 아몬드 눈은 유혹적인 빛을 발하며 나한테 고정되어 있었다. 아무튼, 한마디로 말해 선이 곱고 우아하게 아름다운 여자애였다.

“헤이, 매디.”

“얼굴이 훤해 보여. 지난 몇 주보다 훨씬.”

나는 눈썹을 들어 올렸다. “칭찬이야 욕이야?”

매디는 웃음을 터트리며 내 어깨를 때렸다. “그냥 보이는 대로 말한 거라구.” 그리고는 목소리를 깔았다. “여자친구 일은 나도 들었어. 괜찮아?”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괜찮아, 우린 아직 친군데 뭐.”

“잘됐다. 잘됐어.” 매디는 킥킥대며 몸을 비틀어대다가 하얀 목덜미를 내보였다. 왠지 구미가 당겼다. 나는 쳐다보고 싶은 욕망을 억눌렀다. 도온 일로 2주 동안 섹스는커녕 자위도 할 기분이 나지 않았었다. 그런데 지금은 괴로움도 희미해지기 시작했고 다시 리비도가 펌프질을 해대고 있었다.

“근데 어떻게 참고 견뎠어?” 매디는 수수께끼 같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외롭지는 않았어? 혹은 떨어져 지내는 게 익숙했던 거야?”

“그런 셈이지 뭐. 하지만, 아직도 외롭기는 해.” 매디하고의 대화가 어디로 흘러갈지 알 수는 없었지만, 조만간 친구들한테 합류해야 했다.

그 순간 매디는 내 앞에 발을 딛고 다가와 다정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봐봐, 너무 이른 것 같지만, 너 같은 남자애는 외롭게 지낼 이유가 없어. 너한테 동행이 돼줄 여자애들이 한둘이 아냐, 벤.”

나는 예쁜 치어리더의 기색을 살피며 눈을 들여다보았다. “난 막 심각한 관계를 끝낸 셈이야, 매디. 그래서 아직은 데이트할 준비가 안 된 것 같아.”

매디의 얼굴에는 잡아먹을 듯한 미소가 번졌다. “뭐, 데이트 같은 건 신경 쓰지 않는 아이들도 있으니깐, 벤. 알다시피 긴장을 좀 풀어버리는 게 너한테도 좋지 않겠어? 막힌 관을 뚫어버리는 것 말이야.”

“매디....”

“헤이, 헤이.” 매디는 두 손을 들고 돌아서서 걸어갈 준비를 했다. “억지를 부리자는 게 아냐. 그냥 알고만 있으라고. 혹시라도 그럴 마음이 생기면... 나한테 알려주기만 하면 돼.”

나는 눈썹을 들어 올리고 멀어져가는 매디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거참, 엉덩이 한번 되게 귀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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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음속으로 매들린 정의 귀여운 엉덩이를 그리면서 반나절을 보냈다. 매디의 늘씬한 몸을 꽈배기처럼 꼬아서 박아주는 백일몽에 빠져. 치어리더 연습을 구경한 적이 있어서 매디의 유연성에 대해서는 진작에 알고 있었다. 다리를 꼬아 머리 뒤로 넘기고 별이 보일 때까지 엉덩이를 박아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방과 후에는 나딘 버틀러의 차례였다. 발랄한 2학년 치어리더는 흰색 치어리더 유니폼을 그대로 입고 킥킥대며 시시덕거리다가 다소 노골적인 제안을 해왔다. 그래서 내가 파리를 몰아내듯 손을 내젓자 나딘은 킥킥대며 덧붙였다. “혹은 매디와 내가 함께 놀러 갈 수도 있어.”

2주 동안이나 굶은 마당에 그런 소리를 듣고도 목석처럼 굴 수 있다면 성적 정체성을 의심해봐야 하지 않을까? 심각하게 하는 말인데, 요새 젊은 것들은 언제부터 이렇게까지 대담해진 걸까? 그래서 나는 꼭 물어봐야 했다. “진짜로, 나딘. 왜 굳이 날? 맘만 먹으면 널 마다할 애가 없을 텐데 말이야?”

나딘은 씩 하고 미소를 지었다. “어쩌면. 하지만, 너처럼 침실에서 1등급이라고 소문난 애는 아무도 없어, 벤. 에이드리안, 미즈호, 도나, 섬머... 더 말해봤자 입만 아프지. 넌 노려야 할 대상이야, 벤. 치어리더 애들의 반이 벤의 롤러코스터를 타봤다고 자랑하고 싶어 한다구.” 나딘은 나한테 바짝 다가서서 내 가슴팍에 손을 얹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래서 말인데, 내가 그런 희망을 품어도 될까? 날 앞으로 타고 싶어 뒤로 타고 싶어?” 나딘은 내 손을 자기 엉덩이로 잡아끌었다.

솔직히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었다. 단지 섹스일 뿐이고 아무런 조건도 없었다. 경험이 없던 것도 아니었다. 단지 섹스뿐이라... 현재의 내 마음 상태에선 그보다 좋은 제안이 없을 성싶었다.

그러나 그럴 순 없었다. 일 년 전이라면 아마도 이랬을 것이다. “까짓것 못할 것도 없지!” 그리고는 매디와 나딘을 함께 데리고 갔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리 가벼운 섹스라 하더라도 사람들을 변하게 하는 섹스의 속성을 알고 있었다. 더구나 매일 학교에서 부딪혀야 하는 여자애들인데 남은 기간에 뭐가 어떻게 될지 무슨 수로 알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나딘의 어깨에 손을 얹고 천천히 뒤로 밀어버렸다. “나딘...”

“헤이, 헤이.” 나딘은 두 손을 들더니 접힌 핑크빛 종이를 꺼내 내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단지 종종 전화를 해줬으면 좋겠어, 괜찮지?”

그리고는 불루머가 보일 만큼 치마를 날리도록 돌아서고는 낄낄대며 웃는 것이었다. “나중에 보자, 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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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집으로 돌아와서 30분 동안 내 방의 벽만 우두커니 쳐다보았다. 해야 할 숙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지만, 집중이 되지 않아 좀처럼 손을 댈 수가 없었다. 나는 매디와 나딘을 생각했다. 한순간의 전율을 맛보려고 나한테 기꺼이 몸을 내던지는. 나는 도온을 생각했다. 도온이 나와 함께 이곳에 있기를 바라면서. 나는 에이드리안을 생각했다. 젖가슴 무더기를 훤하게 내보이는 옷만 입고 다니면서 어딜 가더라도 나를 졸졸 쫓아다니는. 그리고 나는 심지어 브룩도 생각했다. 새로 사귄 남자친구한테 정신이 팔린.

나는 그 운명적인 일요일 이후로는 내 손 말고는 누구하고도 섹스를 해보지 못했다. 2주가 넘는 금욕은 점점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그리고 내 손은 몇 시간을 굶은 것 마냥 떨리고 있었다. 나는 여자애의 몸을 직접 만지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나는 여자애의 달아오른 냄새가 맡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빨아대는 자궁 속으로 네 좆물을 싸지르고 싶었다.

나는 지난주 수요일 저녁에는 나도 모르는 사이 에이드리안의 젖가슴을 다소 노골적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나는 쌍둥이들을 앞에 두고도 그런 짓을 했고 에이드리안은 내 눈길이 부담스러웠는지 가슴을 가리려 은밀하게 단추를 채우기도 했다.

또한, 그 주중에는 나도 모르는 새에 브룩의 방으로 다가서기도 했다. 나는 브룩이 켄타랑 로맨스에 빠진 걸 알고 있었고 그 애들의 관계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댓가를 치를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을 브룩 말고는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매디와 나딘은 나를 궁지로 내몰고 있었다. 나는 천장을 바라보다 매디의 말대로 파이프를 비우지 않고는 집중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쌍둥이들이 집에 있어서 인터넷으로 포르노를 볼 수도 없는 일이었다. 결국, 잡지와 오른손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티슈를 챙겼다.

비록 만족스럽지 못한 사정이기는 했지만, 적어도 숙제에 손을 댈 수 있을 만큼 급한 불을 끌 수는 있었다. 그러나 본질적인 성적 긴장은 아직 그대로 남아있었다. 브룩이 집으로 돌아오면 사정만 더 악화될 게 뻔했다.

마침 유니폼을 제대로 갖춰 입는 연습 날이었다. 사실 치어리더 유니폼은 의외로 노출이 심하지 않았다. 물론 치마가 긴 편이라고는 할 순 없었지만, 반바지를 입은 여고생들이 훨씬 다리 노출이 심하다고 할 수 있었다. 상의도 상당히 두꺼운 편이었고 목선도 꽤 높은 편이었다. 그러나 치어리더의 유니폼만이라는 사실만으로 평상복보다 섹시하게 느껴지는 것도 부인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위아래로 통일된 유니폼 색과 튀어 보이도록 한 화장, 그리고 맵시 있는 머리모양은 한층 더 야한 생각을 불러일으키게 했다.

그래서 브룩과, 제니퍼 보, 케이디 제이컵슨이 치어리더 유니폼을 입고 헐떡대며 집안으로 들이닥치는 모습은 지켜보며 자지가 꼴리게 된 것은 꼭 내 잘못만은 아니었다.

“헤이, 벤.” 케이디는 내 눈길이 자기 몸을 훑는 걸 즐기며 엉덩이를 꼼지락거려 보였다. “좀 긴장돼 보여.”

케이디는 우아하게 돌아서서 내 옆자리에 무릎을 대고 앉더니 친구들과 부엌 쪽을 바라보며 나한테 엉덩이를 들이댔다.

나는 참지 못하고 신음을 흘리다가 얼른 입을 가렸다. 짓궂은 빨간머리는 한 술 더 떠 치마를 들추고 탱탱한 엉덩이를 감싼 블루머를 내보였다.

장난기가 깃든 노골적인 시위였다. 브루과 제니퍼는 내 얼굴을 보고는 웃음을 터트렸고 케이디도 따라 웃었다. 비디오게임이고 뭐고 내 방에 틀어박혀 있었어야 했다. 다행히 여자애들은 오래 머물지는 않았다.

마지막 유혹은 오후 여섯 시에 초인종이 울리면서 시작됐다. 나는 늘 하던 대로 문을 열어주러 현관으로 갔다.

“헤이, 벤!” 에이드리안이 휘황찬란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희미한 조명 아래에서도 숨쉬기가 어려울 만큼 아름다웠다. 배속이 울렁이고 심장박동이 빨라졌다. 그리고 나는 에이드리안의 옷차림을 보고 그만 그 자리에서 팬티를 적셨다.

나는 쪽팔림을 면하려 배에 힘을 주느라 대답도 하지 못했다. 나는 괴로운 신음을 하고 돌아서서 딱딱히 몸을 굳히고 걸어갔다.

“벤?” 에이드리안은 안으로 들어서며 나를 불렀다.

나는 돌아보지도 않고 손을 내저으며 계단으로 향했다. 마침 에덴과 엠마가 에이드리안을 맞이하러 달려나왔고 나는 그 틈을 이용해 유유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나는 방문을 걸어 잠그고 바지를 내렸다. 그리고 10초 후에는 티슈에 대고 남아 있던 좆물을 처리할 수 있었다.

나중에 식탁에 앉을 때 에이드리안이 물었다. “괜찮아?” 진심으로 걱정하는 얼굴이었다.

“괜찮아, 괜찮아, 끄떡없어. 에이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당장 급한 건 가라앉혔지만, 완전히 뿌리가 뽑힌 건 아니었다. 나는 눈길이 에이드리안의 가슴으로 쏠리는 걸 피하려 애를 썼다.

“맞아, 에이디!” 에덴이 지저귀고

“우린 끄떡없어, 에이디!” 엠마가 덧붙였다. 쌍둥이들은 2주 전부터 나를 따라서 에이드리안의 별명을 채택했고 그것만큼 멋진 일이 없는 양 시도 때도 없이 에이디란 이름을 불러댔다. 얘들이 속뜻을 알고나 지껄이는 건지.

에이드리안은 쓴웃음을 짓고 학교생활에 대해 묻는 부모님한테 다시 귀를 기울였다. 평범한 수요일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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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드리안과 나는 저녁을 먹고 나서 거실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요새는 에이드리안이 나랑 늘 붙어 다니는 단짝친구에 가까웠다. 그러나 수요일 저녁은 엿들을 만한 친구들이 없어서 좀 더 내밀하고 사적인 이이기를 나눌 수 있는 날이었다.

“기분이 좋아 보여, 에이드리안.”

에이드리안은 미소를 지었다. “아직도 이름을 오락가락해서 불러야겠어?”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에이디’는 친한 느낌이고 ‘에이드리안’은 좀 진지한 느낌이야. 게다가 아름다운 이름이기도 하고. 오늘따라 넌 유별나게 아름답게 보였어.”

에이드리안은 웃음을 터트렸다. “과찬의 말씀을, 내가 얼마나 먹음직스러운지 알아봐 줘서 고마워요. 신사 양반” 그러면서 젖가슴을 감싸 안고 뽐을 내는 것이었다. 현재 에이드리안은 목이 깊게 파인 옷을 입고 꽤 현란한 광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심지어 우리 아빠도 에이드리안의 가슴에서 눈길을 떼지 못할 정도였으니.

나도 따라 웃었다. “뭐, 맞아, 분명히. 하지만, 내 말은 네가 행복해 보인다는 것이었어. 요샌 생기가 넘치는 모습이거든.”

“그러지 못할 것도 없잖아?” 나를 바라보는 에이드리안의 눈동자에서는 황금빛이 너울댔다. 사실 너무나 짙은 눈빛에 다소 흠칫한 기분이 들었다. “사람들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 한다구.”

나는 콧방귀를 뀌었다. “한 달 전쯤이랑은 너무 다른 것 같은데, 안 그래? 겨우 몇 주 만에 바뀐 이유라도 있는 거야?”

에이드리안은 미간을 좁히고 ‘모르겠어?’ 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더니 고개를 저으며 눈을 굴렸다. “넌 가끔 보면 둔하기 짝이 없다니깐,”

“허?”

“됐네요.” 에이드리안은 손을 내저었다. “여러 가지 일이 있었어. 아빠는 요새 부쩍 자주 집에 들어오셔. 사이가 나아졌다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혼자만 있는 것보다는 가족이란 기분을 들게 해주거든. 게다가 친구 방면으로도 훨씬 사정이 나아졌어.”

나는 웃으며 나를 가리켰다. “뭐, 나랑 다니게 돼서?”

에이드리안은 웃음을 터트렸다. “자기만 주인공인 줄 아나 봐. 난 린하고 헤더랑 훨씬 친해졌어. 우린 쇼핑도 함께하고 이야기도 많이 해. 우, 캔디도 더 자주 놀러 오고, 참, 걔하고 트레버가 헤어진 걸 얘기해 줬던가?”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거참 안된 일이네.”

“뭐, 꼭 그렇지는 않아. 그리 바람직한 관계는 아니었거든. 난 걔가 트레버를 차버려서 반가웠어.” 에이드리안은 실없는 미소를 지으며 핥는 흉내를 냈다. “게다가, 캔디하고 난 서로... 위로해주기도 하거든.”

나는 에이드리안의 이글거리는 눈을 보고 둘이 동성애적인 친구관계를 재개했음을 깨달았다. 오, 그 방에 카메라를 갖다 놔야 하는데.

“진짜 잘됐다. 에이드리안.” 나는 진심으로 대답했다.

에이드리안은 미소를 지으며 등받이에 팔꿈치를 댔다. “네 말이 맞아, ‘에이드리안’이라고 말하는 게 훨씬 진솔하게 들려.”

나는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근데 넌 근황이 어때?” 에이드리안은 눈썹을 들어 올렸다. “지난 2주 동안은 갈수록 덜 우울해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요 며칠간은 좀 긴장한 것처럼 보였어. 오늘은 특히 더 심해 보였고.”

얼굴이 달아올랐다. “알다시피, 쌍둥이들이 거실로 들어오면서 엿들을 수도 있으니깐 그런 얘긴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

“뭐? 성적으로 긴장했다는 거야?” 에이드리안은 장난기가 어린 미소로 킥킥댔다.

나는 거실입구를 살펴보며 나직이 대답했다. “대충 그런 셈이야.”

에이드리안은 뭔가 깨달았다는 듯이 실눈을 뜨고 잡아먹을 듯한 미소를 지었다. “문을 열어주면서 날 보고 쌌지? 그치?”

나는 새빨갛게 얼굴을 붉히고 눈길을 피했다.

“뭐, 알게 돼서 기쁘긴 한데 넌 여자친구랑 헤어진 지 2주 반밖에 되지 않았지만 난 8월부터 해보지 못했다구.”

딱히 해줄 말이 없어 머뭇거리고 있자 에이드리안이 나한테 바짝 다가서며 물었다. “전에는 어떻게 처리했어? 8월부터 할로윈까지인가? 여자친구랑 재회하기 전까지 말이야?”

내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그 기간에 잔 여자애는 브룩과 브랜디뿐이었고 절대 발설할 수 없는 사항이었다. “어, 그럭저럭 버티기는 했어.” 나는 나직이 속삭이며 경각심을 높이고 입구를 바라봤다. “그리고 내 이미 말했듯이 내 동생들이 들을까 봐 그런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아. 알다시피, 브룩은 몰래 엿듣는 것에 재주가 있거든.”

에이드리안은 눈썹을 들어 올리고 생각에 잠긴 듯 해이즐 눈을 번뜩이더니 손가락으로 자기의 금발머리를 빗어 내렸다. 진짜로 뻥이 아니라, 머릿속으로 기어를 바꿔 넣는 소리가 똑똑히 들려왔다. 그 순간 에이드리안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가려구?”

“잠깐만 기다려.” 에이드리안은 소파에서 서로 기대고 누워 티비를 보고 계신 부모님이 있는 가족 거실로 건너갔다. (주-거실과 가족 거실이 나누어져 있는 듯?, 혹은 한쪽에 덴(Den) 같은 공간이 마련되어 있는 듯.) 나도 에이드리안을 따라갔는데 부모님은 에이드리안이 다가오는 걸 보고 고개를 들었다. “헤이, 벤을 잠시 데리고 나가도 될까요? 할 얘기가 있는데 아이들이 들을까 봐서요.”

엄마는 나와 에이드리안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너무 오래 있지는 말고, 벤.”

“그럴게요.”

에이드리안은 미소를 지었다.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안녕히 계세요.”

몇 분 뒤 나는 외투를 꼭 둘러 입고 밖으로 나왔다. 우리는 말없이 길을 걷다가 에이드리안의 집 앞에 도착했다. 평소처럼 어둡고 썰렁한 분위기였다. 그 회색의 우중충한 집 앞에서는 목소리도 낮춰야 할 것만 같았다. 혹은 아무 말도 하지 않거나.

에이드리안은 열쇠를 꺼내 현관을 열었다. 그리고 내 손을 잡아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에이드리안은 복도의 불도 켜지 않고 창으로 비쳐드는 달빛의 도움을 받아 나를 자기 방으로 이끌었다.

방에 들어서자 한때 내 여자친구였던 여자애는 침대맡 탁자 위의 등을 켜며 나한테 침대에 앉으란 손짓을 했다. 그리고는 거울이 달린 화장대 위에 열쇠를 내려놓고 벽장으로 다가가 코트를 벗었다.

나는 길을 건너며 조금은 긴장하고 있었다. 겨울 거리의 적막함과 에이드리안의 침묵으로 다소 마음이 가라앉은 상태였는데 우중충하고 황량한 분위기의 집을 대하고 보니 한층 더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이었다. 개운치 않은 기분에 이전을 떠올려보니, 에이드리안의 방을 마지막으로 방문했을 때가 기억났다. 할로윈 밤. 에이드리안은 자기를 사랑해달라고 애원을 하며 나를 유혹했었다.

그러나 나는 도온을 향한 사랑을 저버리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었다. 그리고 도온이 마크한테 강간을 당한 사실을 알게 되었었다.

나는 그러한 상념을 마음에 담아 두고 있어선지, 에이드리안의 침대에 앉고서도 특별히 흥분이 일지는 않았다. 더구나 열쇠를 내려놓고 겉옷을 벗는 에이드리안의 행동에서도 유혹의 기미가 전혀 엿보이지 않았고 단지 하루를 마치고 휴식을 취하려는 듯한 일상적인 행위로만 보였다.

그러나 에이드리안은 코트만 벗은 게 아니었다. 나는 느긋하게 침대에 앉아 활짝 문을 열어놓은 벽장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벽장 안에서 조명이 켜지더니 에이드리안이 블라우스를 벗는 뒷모습을 볼 수 있었다. 곧 에이드리안은 위에는 검은색 브라만 입은 채 허리를 굽히고 청바지도 벗겨 냈다. 그 동작으로 에이드리안의 엉덩이가 나를 향하게 되었는데, 가는 끈 팬티가 볼기 안으로 파고들어 흠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길이 없는 탱탱한 엉덩이 볼기짝이 고스란히 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나는 에이드리안이 다시 똑바로 일어서서 브라를 벗는 모습을 보고는 거의 숨도 쉬기 어려운 지경이 됐다.

에이드리안은 절대로 돌아서지 않았다. 단지 어깨끈이 달린 파자마를 입으려고 옆으로 살짝 돌아설 때 스쳐 지나가듯 젖가슴을 보여줬을 뿐이다. 매혹적인 금발 10대는 파자마를 다 입고 나서야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내 아래턱이 바닥에 닿은 걸 보고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

에이드리안은 그렇게 젖판과 바쩍 선 젖꼭지를 훤하게 내비치는 얇은 상의와 작디작은 끈 팬티만 입고 침대에 앉았다. 나는 물러서거나 다가서지 않고 숨 쉬는 법을 기억해내려고 애를 썼다.

“에이드리안, 뭘 하려고?”

“너랑 앉아 있을 뿐이야.”

“하지만, 넌...” 나는 손을 내저어 옷감을 극도로 아낀 옷을 가리켰다. 에이드리안의 상의는 거의 젖꼭지를 드러낼 만큼 목이 깊게 파여 있었고 아랫자락도 턱도 없이 모자라서 배꼽을 그대로 내보이고 있었다. “옷차림이 좀... 어... 친구사이에는 다소 지나친 게 아닐까?”

에이드리안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난 다른 친구들하고 있을 때도 이렇게 입어.”

“개들은 남자가 아니잖아.” 나는 눈썹을 들어 올렸다.

에이드리안은 킥킥대며 웃었다. “그런가?”

“그럼 이건 뭐야?” 나는 헐떡이지 않으려 애를 쓰며 살짝 과장된 목소리로 물었다.

에이드리안은 숨을 깊이 들이켰는데 그 커다란 E컵 젖가슴만 불린 꼴이 되었고 나는 순간적으로 눈으로 요요짓을 하며 아래를 내려다보게 되었다. “벤, 난 너한테 부담을 주지 않기로 스스로 다짐했어. 가끔 짓궂은 장난을 거는 거야 어쩔 순 없더라도 말이야. 그래서 난 전적으로 네 의사에 맡겨둘 참이야.”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에이드리안이 말하는 걸 듣고 이해하는 순간에도 자지의 힘을 받은 두뇌가 마구 굴러가고 있었다.

“난 널 원해, 벤.” 확고부동한 목소리였다. “8월에 우리집 밖에서 타이슨을 저지하러 나타났을 때부터 널 원했어. 넌 정말 경이로운 연인이고 난 무척 달아올랐어. 그리고 너라면 내 육체적인 욕구를 구석구석 만족시켜 주리라는 걸 확신해. 네가 진짜 원한다면 내 다시 옷을 입고 대화만 할게. 하지만, 네가 하라고만 하면 이 옷을 당장에 벗어버리고 널 죽도록 박아줄 거야.”

제어할 수 없는 날카로운 신음이 터져 나왔다. 숨결이 가팔라졌고 자지도 청바지를 뚫을 듯 단단해졌다. “아, 제길.”

“내가 그러길 바래, 벤?” 에이드리안은 한쪽 어깨끈을 팔로 젖혀 내리고 육감적인 목소리로 물었다.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졌다. 에이드리안은 그 즉시 상의를 벗으려 했다. “잠깐,” 나는 뒤로 몸을 당기고 황급히 소리쳤다. 제기랄, 내가 무슨 짓을 하는 거지?

에이드리안은 입술을 삐죽이고 동작을 멈췄다. 젖가슴이 위아래로 먹음직스럽게 오르내리는 모양새를 보건대 에이드리안도 숨결이 거칠어진 것 같았다. 단단해진 젖꼭지가 얇은 천을 헤치고 머리를 들이대고 있었다.

“에이드리안, 너도 알다시피 난 누구를 사귈 준비가 되지 않았어. 넌 날 사랑한다고 했지만, 난... 난 네가 원하는 걸 해줄 수 없어. 그건 옳지 않은 일이고 널 그렇게 대하고 싶지는 않아.”

“알아,” 에이드리안은 숨넘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도 알아. 하지만, 이미 말했듯이 난 네가 해주는 것이라면 뭐든지 마다하지 않을 거야. 난 널 즐겁게 해주고 싶을 뿐이야, 벤. 하지만, 난 널 박고도 싶어. 날 위해서. 넌 날 달아오르게 해. 오직 너만이 말이야. 난 단지...” 에이드리안은 마치 눈물이 쏟아지는 걸 참으려 애를 쓰는 모습으로 훌쩍이다가 결국은 고개를 돌려버렸다.

에이드리안의 모습에 마음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할로윈 밤의 보았던 절박한 눈길과 사랑을 갈구하는 여린 소녀의 모습이 동시에 떠올랐다.

다시 나를 돌아본 에이드리안의 눈은 촉촉이 젖어 있었다. “난 다른 남자애는 누구도 믿지 않아, 벤. 다른 남자애가 날 올라타는 것도 생각하기도 싫고. 오직 너뿐이야, 너랑 있을 때는, 벤, 두렵지 않아.”

내가 손을 내밀자 에이드리안은 내 품으로 뛰어들었다. 나는 온 힘을 다해 에이드리안을 꼭 껴안아주었고 에이드리안도 전혀 개의치 않고 오히려 나를 더욱 힘껏 끌어안았다.

“제발, 벤? 날 사랑해줘. 난 널 박고 싶어. 널 몸속 깊이 느끼고 싶다구.”

“에이드리안, 난 아직 누구랑 사귈 준비가 되지 않았어. 다시 사랑을 할 수 있을지도 자신이 없구.”

“상관 안 해. 이것만 해주면 돼, 제발, 벤? 날 위해서라도? 단지 친구이기만 해도 좋아. 난 이걸 꼭 하고 싶어.”

육체적으로는 나도 에이드리안을 원했다. 감정적으로는, 준비되지 않았다. 그러나 딱한 마음에 거부할 수도 없었다. 어쩌면 옳지 않을 수도 있었다. 어쩌면 부당한 일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에이드리안의 머리를 잡고, 뒤로 기울이고, 그리고는 내 입술을 에이드리안의 입술에 심고 우리의 오래된 트레이드마크인 서서히 타오르는 키스를 했다.

에이드리안은 내 목에 팔을 두르며 온 집안을 메아리치는 환희의 신음을 외쳤다. 우리는 키스를 하고 자세를 바꿔 또 키스를 했다. 우리는 혀를 얽고 입씨름을 하며 더없는 흥분을 신음했다.

갑자기 에이드리안은 내 셔츠 자락을 잡으려 아등바등하다가 손에 옷자락을 잡자마자 단번에 내 목 위로 벗겨 내고는 잽싸게 자기 상의도 찢어발기듯 벗겨 냈다. 그리고 내가 내 가슴을 눌러대는 그 육중한 젖가슴을 음미할 때 에이드리안의 벌벌 떨어대는 손은 내 허리띠를 풀고 있었다.

에이드리안은 답답함을 느꼈는지 나를 밀어버리고 무릎을 꿇고 앉아 내 바지의 단추를 풀고 지퍼를 내리고는 바지를 잡고 발목까지 끌어내렸다. 일 분 뒤, 나는 완전한 알몸이 되었고 에이드리안도 자기의 끈팬티를 벗어버리고 나처럼 완전한 알몸이 되었다.

“날 박아버려, 벤!” 에이드리안은 내 옆 침대에 등을 대고 누우며 헐떡였다. 그리고는 다리를 활짝 벌려 침대 밖으로 내려뜨렸다. “빨리! 제발! 딴 건 다 잊어버리고 당장에 날 박아달라구!”

나는 잽싸게 에이드리안을 올라타고 왼손으로는 침대를 짚고 오른손으로는 내 물건을 잡고 목표물에 조준한 다음 틈바귀 안으로 자지 머리를 찔러 넣었다. 에이드리안은 내 자지를 한시라도 빨리 집어삼키겠다는 듯 엉덩이를 들썩대며 나를 맞이했다.

“나 젖었어! 나 젖었으니깐 뜸들이지 말고 얼른 날 박아버려! 제발! 벤! 날 위해서!”

그래서 나는 에이드리안의 몸에 가지런히 자리를 잡고 엉덩이를 들이밀어 몇 달 만에 처음으로 살아있는 뜨거운 자지를 질구멍으로 찔러넣었다.

에이드리안은 돌아버렸다.

에이드리안은 밴시처럼 울부짖으며 엉덩이를 쳐올려 우리의 골반이 충돌케 했다. 어찌나 강력하게 엉덩이를 쳐올렸는지 오직 손과 발, 머리로만 온몸을 지탱하고 마치 야생마처럼 덜커덕대는 것이었다.

그리고 도로 매트리스에 가라앉은 다음에는 내 머리를 끌어당겨 핵폭발 키스를 내 입술에 심어왔다. 마치 내 입술을 삼켜버리겠다는 듯이. 그리고 키스를 해대는 동시에 냉큼 박아달라는 듯이 내 손을 잡아끌어 자기의 손목을 붙잡게 했다. 그토록 좋아하는 밝은 황금빛 눈에서는 눈물이 데굴데굴 굴러 나왔다.

“오-갓-오-갓-오-갓-오-갓...” 에이드리안은 활짝 눈을 뜨고 신음을 하며 사방으로 머리를 비틀고 뻗쳐댔다. 그러다가 마침내 나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을 만큼 페이스를 조절할 수 있었다. “날 박아버려, 벤... 날 박아버리라구.”

나는 엉덩이를 내지르고 또 내질렀다.

“난 네가 필요해, 벤. 방법이나 이유는 상관 안 해. 난 네가 필요할 뿐이라구. 날 박아서 날 채워줘. 내 안을 네 정액으로 채워달라구.” 에이드리안의 눈에서 밝은 빛이 났다. “날 붙잡아주기만 널 절대 놓아주지 않을 거야.”

나는 온 힘을 다해 절구질을 해대며 에이드리안의 눈을 깊숙이 들여다보았다. 육중한 젖가슴은 내 찌르기에 맞춰 위아래로 요동을 치고 있었고 내 엉덩이를 감은 다리에는 점점 더 힘이 들어갔다.

“어엉!” 에이드리안은 꼭 눈을 감고 또다시 허리를 추켜올렸다. “시팔, 이렇게 좋을 수가!”

나는 에이드리안의 손목을 침대에 꽉 붙들어 매고 고개를 숙여 젖꼭지를 물었다.

“그래 내 젖꼭지를 빨아줘, 벤. 내 젖꼭지를 깨물어버려! 시팔!”

나는 잡고 있던 손목을 놓고 에이드리안의 어깨를 잡아 침대 정중앙으로 길게 눕혔다. 그리고 배게 옆에 놓여 있던 내 셔츠로 에이드리안의 손목을 묶었다. 맘만 먹으면 거뜬히 풀 수 있을 만큼 헐거웠다. 그러나 에이드리안은 내 의도에 따라 머리맡에 묶인 손을 고정하고 나직이 신음만 읊조렸다.

나는 자유로워진 손으로 에이드리안의 육중한 젖가슴을 짓이기고 움켜쥐며 이빨로는 젖꼭지를 살살 깨물어 주었다. 동시에 나는 온 힘을 다해 절구질을 해댔고 마침내, 섹스의 여신을 울부짖는 오르가즘에 오를 수 있게 해줄 수 있었다.

“아아아아아아아!” 에이드리안은 목이 쉴 때까지 오르가즘을 내질렀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는 그 금빛 눈동자에는 그 이상을 바라는 애원이 깃들어 있었다.

나는 에이드리안을 더욱 강하게 박았어야 했다. 꼭 사랑이어야 할 필요는 없었다. 심지어 오르가즘이 아니어도 됐다. 나는 에이드리안을 정복해야 했다. 그리고 나는 에이드리안을 작살내야 했다. 더구나 에이드리안은 내가 그래 주길 바라고 있었다.

나는 자지를 뽑고 엉덩이가 위를 향하도록 에이드리안의 몸을 굴렸다. 그다지 부드럽지도 않고 안위도 상관하지 않고. 에이드리안은 손목이 묶여 있어 위태위태한 균형으로 엉덩이를 추켜들었다. 그러나 나는 더는 생각하지 않고 힘차게 볼기짝을 갈겨버렸다. 에이드리안은 비명을 내지르며 매트리스로 엉덩이를 무너뜨렸다.

“꼼짝하지 마!” 나는 천둥처럼 소리를 내질렀다.

도대체 어디서 솟아난 걸까? 브룩은 엉덩이를 처맞는 걸 무진장 좋아했다. 가끔 분위기를 타면 거친 섹스에 질질 싸대기 일쑤였다. 그러나 이토록 강하게 때려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열일곱 살 먹은 금발머리 소녀의 벌게진 볼기짝에는 내 손자국이 흰색으로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그리고 나는 땀이 흥건한 에이드리안의 몸을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침대로 찍어눌렀다.

“오, 벤.” 에이드리안은 울먹이며 신음했다.

나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또다시 볼기짝을 후려갈겼다. 더욱 힘껏, 이번엔 왼쪽 볼기짝을. 에이드리안은 비명을 지르며 온몸을 웅크렸다. 그리고 나는 에이드리안의 뺨에서 눈물이 구르는 걸 볼 수 있었다. 나는 제법 힘센 사내였고 그런 내가 힘을 아끼지 않고 때리고 있었으니.

“아우....” 에이드리안은 분명히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시팔, 내가 에이드리안을 다치게라도 했단 말인가? 아마 마음속 한구석으로는 내 행동을 의아해하고 있었을 것이다. 어디서 이런 폭력성이 솟아난 걸까? 이건 내 본성이 아니잖은가? 게다가 에이드리안도 이렇게 해달라고 하지는 않았다. 단지 나 때문에 일어나 일인가? 벤이 권력을 과시하는 것에 맛을 들이기라도 했단 말인가?

“넌 맞아야 해! 이 개년아! 맞아야 한다구!”

에이드리안은 엉덩이를 씰룩댔다. 그리고 나는 그 왼쪽 볼기짝을 향해 온 힘을 다해 손바닥을 날려버렸다. 에이드리안은 고통을 떨쳐내려 다리 근육에 힘을 줬다.

그 순간 에이드리안의 손목을 묶은 셔츠가 상당히 헐거워진 게 보였다. 에이드리안은 쉽사리 손을 풀고 나를 말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에이드리안은 그러지 않았다. 에이드리안은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해줄 거라고 했고, 실제로 그 말은 진심이었던 것이다.

학교에서 가장 예쁘고 섹시한 여자애가, 치어리더의 캡틴이고 늘 앞장을 서야 직성이 풀리는 여자애가 내 노리개가 되고 싶어 안달하고 있었다. 나는 마음이 내키는 데로 이 여자애를 박을 수도 있고, 싸고 싶은 곳이라면 어디든지 범할 수 있었다. 취기가 도는 듯했다.

“움직이지 마,” 나는 위협적으로 으르렁거렸다. “초죽음이 될 때까지 박아버릴 테니깐.”

에이드리안은 볼기짝 사이로 자지를 대도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았다. 이미 둥그런 볼기짝은 한껏 벌어져서 똥구멍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상관하지 않고 볼기짝을 잡아 더욱 넓게 벌렸다. 에이드리안은 얕은 숨을 몰아쉬며 헐떡이다가 괄약근의 긴장을 풀고 나한테 길을 열어주었다.

나는 그 순간부터 욕정에 나를 잃었다. 진입한 것은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 항문 구멍을 미친놈처럼 박아댄 것은 어렴풋이 기억난다. 나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에이드리안의 등에 질질 침을 흘렸던 것 같다. 나는 우리의 살이 부딪치는 소리를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에이드리안의 비명 소리는 기억한다. 그리고 나는 내 자지를 조여대는 똥구멍의 감촉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2주 넘게 모아두었던 정액을 콸콸 쏟아낼 때 내 몸을 통과한 짜릿한 쾌락은 기억한다.

그리고 내 두뇌에 이성이 되돌아왔을 때, 내 몸의 반은 에이드리안의 몸에 나머지 반은 침대의 매트리스에 겹쳐져 있었던 것을 똑똑히 기억한다. 흐물흐물해진 좆은 에이드리안의 볼기짝을 누르고 있었고, 뻥 뚫린 항문은 뻐금거리며 마치 간헐천처럼 하얀 크림을 토해내고 있었다.

에이드리안 아직도 내 셔츠로 느슨하게 손목이 묶인 채 땀으로 목욕을 한 몸을 발발 떨어대고 있었다. 또한, 나는 내 엉덩이가 흠뻑 젖어 있음을 느꼈다. 에이드리안도 몇 동이나 되는 체액을 싸질러 침대 시트를 흥건히 적셔 놓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전의 폭력적인 행위와 확연히 딴판인 부드러움으로 에이드리안의 머리를 받들고 그 금빛 눈을 들여다보았다. 에이드리안의 눈은 생기있는 빛을 발하며 나머지 몸에서 달아나버린 에너지로 춤을 추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부드럽게 키스를 하자 훌쩍이며 다시 울음을 터트렸다.

나는 우리의 숨이 달아날 때까지 키스를 하고는 매트리스에 머리를 눕혔다. 그리고 미소를 짓고 에이드리안한테 고개를 돌렸다. 에이드리안은 그 순간보다 다 더 예뻤던 적이 없었던 것 같은 생각이 들 만큼 아름다웠다.

에이드리안은 가장 부드럽고 가장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고마워.”

에이드리안과 나는 꽤 닭살 돋는 한 쌍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보통 커플처럼 손을 잡거나 키스를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서로 마주 볼 때마다 뭔가 달라진 게 있었다. 에이드리안은 내가 실없는 농담을 할 때마다 가슴을 살짝 두드린다거나 혹은 어깨를 때린다거나 하는 식으로 평소보다 더 자주 나한테 손을 댔다. 그리고 우리는 평소보다 더 자주 웃었다. 훨씬 자주.

한동안 저기압에 머무르다가 갑자기 고기압이 되었으니, 남들 눈에도 띄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틈만 나면 바보처럼 킥킥대는 에이드리안과 내 모습을 지켜본 케니가 방과 후에 나를 한쪽으로 끌고 갔다. “그러면, 이제 너하고 에이드리안은 다시 커플이 된 거야?”

“아니.”

“뻥 까네.”

나는 지겨워하는 케니의 얼굴을 보고 백팩에서 테이프 레코더를 꺼내 재생 버튼을 눌렀다. “아니, 우린 단지 친구일 뿐이야.”

케니는 껄껄대며 웃다가 콧방귀를 뀌었다. “마아자.”

메간과 케이토가 이어서 도착했고 어느새 나는 세 친구한테 포위당해 라커로 내몰렸다. “도대체 너랑 에이드리안은 어떻게 되어 가는 거냐?” 내 전-여자친구가 심문했다.

되감기, 재생. “아니, 우린 단지 친구일 뿐이야.”

“맞아, 맞아.” 메간은 내 눈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내가 짜증을 부리려는 참에 히죽거리는 미소를 짓고 콧방귀를 뀌었다. “어쨌든 넌... 어제 걔를 박았어.”

“허?”

“얼굴에 다 나와 있다구, 난 널 알아.” 메간은 무척 심각한 투로 말했다.

그때 왠지 왼쪽을 돌아보고 싶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에이드리안이 우리 쪽으로 룰루랄라 걸어오고 있었다. 나를 발견한 에이드리안은 몸 전체로 환하게 빛을 냈고 나도 미소가 번지는 걸 참을 수 없었다.

메간, 케이토, 케니는 내 얼굴을 보고 뒤로 고개를 돌려 매혹적인 블론드를 바라봤다. 셋은 다시 나를 돌아보고 또 고개를 돌려 에이드리안을 바라봤다. 그리고 또다시 나를 돌아보았다. 메간은 내 가슴팍을 톡톡 두드렸다. “거봐, 내 말이 맞지.”

그리고 그 셋은 돌아서서 나의 ‘단지 친구’를 맞이했다.

“헤이, 얘들아!” 에이드리안이 귀여운 목소리로 외쳤다.

“헤이, 에이드리안,” 세 명 일당은 나랑 에이드리안을 번갈아 쳐다보는 개그 짓을 하고는 일부러 우왕좌왕하며 한심한 핑계를 대고 자리를 떴다.

나는 애들이 물러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솔직히 털어놓았다. “쟤들은 우리가 다시 합친 줄 알아.”

에이드리안은 내 손을 잡고 깍지를 꼈다. 그리고는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우리 그런 거야?”

상반된 감정이 일었다. 두려움이 얼버무려진 사랑과 욕망이. 나는 리바운드를 하고 있었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런 사실을 안다고 해서 감정을 제어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에이드리안, 전에도 말했듯이 당장은 준비가 된 것 같지 않아. 너한텐 몹쓸 짓이겠지만, 앞으로도 그럴 수 있으리라고는 장담할 수 없어.”

내 손을 쥔 에이드리안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나는 에이드리안의 눈에서 근심을 읽을 수 있었다. 이유야 어째 됐든 에이드리안은 나를 진정, 전적으로 사랑하고 있었다. 아직도 내가 자기와 똑같은 마음이 아닌 것에 속이 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도 에이드리안과 똑같은 마음이고 싶었다. 에이드리안은 내가 필요했고 나는 아직도 간밤의 화끈한 섹스에 마음이 잠겨 있었다. 에이드리안은... 나를 부추겼다. 전에는 꿈도 꿔보지 못한 일을 하도록. 그 황홀한 몸매와 근육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능력을 보건대, 에이드리안 만한 연인은 이제껏 만난 적이 없었던 같았다. 더구나 나를 절실히 갈구하는 것, 내 사랑을 절실히 갈구하는 것은 단지 친구 사이로 남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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