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이른 도착
2001년 11월 1일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자정을 넘긴 시간이었다. 집안은 조용했지만, 계단을 오르고 보니 내 방의 문이 열린 채로 조명이 켜져 있었다. 설상가상이네. 아직 깨어 있는 사람도 있고.
방으로 들어가 보니 엄마가 내 핸드폰을 들고 침대에 앉아 있었다. 엄마는 나를 싸늘히 노려보다가 무척이나 적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너 어디 있었어?”
나는 절대로, 한 번이라도, 엄마 앞에서는 거짓말을 성공한 적이 없었다. 엄마는 나를 속속들이 꿰뚫어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정직하게 대답했다. “에이드리안네요.”
엄마는 눈을 깜박이다가 예상했던 대답을 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못된 짓을 한 건 아니겠지?”
나는 말로는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걔하고 섹스했어?”
나는 눈썹을 들어 올리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아뇨.”
엄마는 눈살을 찌푸리고 엄마표 거짓말 탐지기를 구동했다. 엄마는 내가 거짓말을 했다면 죄책감을 느끼고 결국에는 자백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한번 분명히 밝혔다. “진짜 안 했어요.”
엄마는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핸드폰을 들고 있는 이유는 알고 있겠지?”
나는 한숨을 쉬고 마지막 통화를 떠올렸다. 내가 도온의 입장이라면 끊임없이 전화를 걸었을 것이다. “아마 전화가 계속 울려서요?”
“맞아, 온 집안을 깨우더구나.” 엄마는 한숨을 쉬고 핸드폰을 건넸다. 나는 몇 번이나 전화가 왔는지 확인해보았다.
엄마는 한숨을 쉬었다. “브룩하고 쌍둥이들을 잠자리에 들게 한 다음에 내가 전화를 받았어. 알다시피, 도온은 완전히 정신이 나간 것 같았어.”
나는 묵은 분노가 다시 치솟는 걸 느끼며 한숨을 쉬었다. “뭐, 걘 그래도 싸요.”
“네가 감히 그런 말을 해!!!” 엄마는 악독한 목소리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나는 평소의 자애로운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진 엄마의 모습에 혼비백산하고 뒷걸음질을 치다가 옷장에 부딪혔다.
나는 어리둥절한 마음으로 급하게 눈을 깜박였다. “바람을 피웠다고 했단 말이에요! 에이드리안한테 간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구요!”
“도온은 강간당했어. 벤.” 엄마는 싸늘히 대답했다.
“뭐라구요?” 충격이 몰려오고 턱이 덜덜 떨렸다. 아니. 그럴 리 없어.
“진짜야. 지금은 도온의 아빠가 남자애를 붙잡았다고 하더구나.”
“잠깐, 뭐라구요?” 나는 실제로 고함을 질렀다.
“진정해, 벤. 동생들 다 깨울라.”
“뭐라구요?” 나는 전보다 더 큰 목소리로 외쳤다.
엄마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두 손을 들었다. “디애나가 그러는데, 도온의 전-남자친구인 마크가 인사불성인 도온을 데려오고는 파티에서 과음한 것 같다고 말해주었대. 그런데 얼마후에 도온이 네 이름을 고래고래 외쳐대며 이웃을 깨우더래. 그래서 잭과 디애나는 무슨 일이 생겼는지 도온한테 캐물었고 기억이 흐릿하다는 점과 도온의 질에 정액을 남아 있는 걸 알게 되었대.”
도온의 보지에 딴 남자애의 정액이 들어 있었다는 말에 이가 갈렸다. 그러나 엄마는 미간을 좁히는 내 얼굴을 보고는 조용히 하라며 손을 들어 말리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 “도온은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기억이 뚜렷하지 않은 것 같다고 했고. 잭 에번스는 마크의 집을 묻고는 셋이서 마크의 집으로 차를 몰고 갔어. 처음에는 술 취한 여자애를 이용한 사례일 거니 하고 생각했대. 마크는 혼자 있었는데 잭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털어놓으라면서 위협을 하니깐 남자애가 겁을 집어먹고 도온한테 로힙놀(rohypnol-강력한 신경안정제로 음식물에 타면 무색무취해서 강간 약으로 자주 쓰이는 편)을 먹이고 강간한 일을 자백했대. 분명히 그 남자애는 도온과 헤어지고 나서도 도온한테 병적으로 집착한 것 같다고 하더구나.”
나는 또다시 뒷걸음질을 하다가 이번에는 옷장 서랍에 엉덩이를 부딪치고 바닥으로 무너졌다. “아니야... 아니야...”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아니야, 도온한테는 아니야, 나의 도온한테는 아니야. 오, 제길...
분노가 되살아났다. 그 개자식의 목을 꺾어버리고 싶었다. 나는 벌떡 일어서서 아래층으로 달려갔다.
“벤!” 엄마가 쫓아오며 소리를 질렀다.
나는 엄마를 무시하고 현관문을 박차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갔다. 10초 후, 나는 11년 된 내 코롤라에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는 50마일 되는 속도로 주택가를 벗어났다.
고속도로에 가까워질 무렵 핸드폰이 울렸다. 나는 고개를 내저으면 전화를 받았다. “왜요?”
“어딜 가는 건데?” 엄마가 물었다.
“도온한테요. 그리고 마크라는 개자식도 끝장을 내주려고요.” 나는 이를 갈며 외쳤다.
“길을 잘 모르잖아-” 나는 핸드폰을 끊었다.
10초 후, 또다시 핸드폰이 울렸다. 그러나 나는 벨 소리를 무시하고 제일 한적한 길을 골라 고속도로에 진입하고는 속도계가 80마일(130km)이 될 때까지 가속페달을 밟았다. 그리고 또다시 핸드폰이 울렸다.
나는 오렌지 크러시 인터체인지를 쏜살같이 통과하고 22/57 분기점에 다다를 때쯤에야 다소 진정할 수 있었다. 그제야 나는 계속 울려대던 핸드폰을 받았다.
“벤, 뭐 하는 거야?”
“도온한테 간다니깐요.”
“내일 학교 가야 하잖아.”
“상관없어요.”
엄마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잠깐의 시간을 이용해 경찰이 눈에 띄는지 살펴보고는 노인네가 모는 것처럼 느릿느릿하게 달리는 캐딜락을 추월하기 위해 안쪽으로 차선을 갈아탔다. 노인네가 지금 이 시간에 깨어 있을 건 뭐람?
엄마의 심호흡 소리가 들렸다. “핸드폰 밧데리는 얼마나 남았는데?”
나는 남은 용량을 확인했다. “충분해요. 학교 갔다 와서 바로 충전해 뒀어요.”
“지갑은 가져가니?”
주머니를 두드려보니 익숙한 두툼함이 느껴졌다. 지갑을 챙긴 기억은 없었다. 어쩌면 차 키를 들면서 무의식중에 챙겼던 것 같다. “네.”
“좋아, 연료통을 너무 비우면 안 돼. 주요소가 드문 편이거든. 5번을 쭉 타고 가다가 152에 다다르면 길로리 쪽인 서쪽으로 진입해. 조심해야 해. 가로등도 없고 노면이 거칠으니깐. 그리고 101도로의 북쪽으로 가면 돼. 101 도로에 다다르는 약 다섯 시간 후에 나한테 전화해. 그때에 좀 더 자세하게 길과 주소를 알려줄 테니까. 알았지?”
“알았어요.”
“도온 부모한테는 내가 전화로 알려줄게.”
“알았어요.”
“운전 조심하구, 벤.”
“바이,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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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허기지고 녹초가 된 몸으로 에번스 가족의 집 앞에 퍼지기 일보 직전인 차를 댔다. 딱 오전 7시였다.
초인종을 누르기 전에 디애나 에번스가 문을 열어주고 나를 안으로 들였다. “하이, 벤.”
나는 격식을 신경 쓰지 않았다. “어디에 있죠?” 내 입에서는 갈라진 목소리가 나왔다.
“자기 방에.” 계단을 올려다보자 어릴 적 향수가 물밀듯이 몰려왔다. 도온과 내가 함께 뛰어놀던 바로 그 집이었다. 왠지 모든 게 조금씩 작아진 것처럼 보였지만, 그래도 무척 친숙한 곳이었다.
계단을 오르려고 하자 도온의 엄마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배고프겠구나.”
“주유소에서 간식을 먹었어요.” 나는 다시 계단을 오르려 했다.
“먼저 씻어야 하지 않겠니. 잭의 옷 중에서 너한테 맞는 게 있을 거야.”
나는 도온의 엄마를 똑바로 바라봤다. 아마 내 강렬한 눈빛을 보고는 원하는 답을 얻었을 것이다.
디애나 에번스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계단을 올라갔다.
도온은 아직 잠들어 있었다. 작은 공처럼 몸을 웅크리고 자는 모습이 무척 작아 보이면서 연약해 보였고 산발적으로 몸을 떠는 걸 보건대 깊은 잠에 든 것 같지는 않았다. 얼굴을 보니 눈이 실눈을 뜬 것처럼 엷게 감겨 있었고 입술은 겁을 내는 듯한 모습으로 살짝 일그러져 있었다.
나는 침대에 걸터앉고 살며시 손을 내밀었다. 표정과는 상관없이, 도온은 늘 내 삶의 천사일 것이다. 영원히 변치않는 아름다움을 간직한. 그러나 그 순간 나는 굉장히 지저분한 내 손을 발견하고는 내 몸에서 고약한 냄새가 날 거라는 걸 알아차렸다. 나는 저녁에 샤워를 하지 않은 채 땀을 뻘뻘 흘리며 6시간 동안 운전을 했다. 문득 도온한테 손을 대기가 꺼려졌다. 도온의 몸에 손을 대기라도 하면 그 아름다움이 손상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적어도 세수라도 할 요령으로 욕실을 찾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도온은 내 존재를 느낀 것 같았다. 혹은 내 몸에서 나는 고약한 냄새를 맡았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유가 어찌 됐든, 도온은 잠에서 깨고는 욕실을 둘러보고 있던 나에게 부드럽게 물었다. “벤?” 마치 꿈속에서 들려오는 것 같은 영묘한 목소리였다.
나는 황급히 얼굴을 돌려 도온을 쳐다보고는 더럽건 말건 손을 내밀어 도온의 얼굴을 만졌다. “도온!”
“오, 벤!” 도온은 내 상체를 힘껏 끌어안았다. “여기엔 어떻게 온 거야?”
“소식을 듣자마자 차를 몰고 왔어.”
도온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나서는 내 어깨너머로 눈길을 돌렸다. 우리를 지켜보고 있던 도온의 부모님 중에서 디애나 에번스가 대답했다. “얘 엄마가 전화로 알려주었지만, 널 일부러 깨우지는 않았어. 괜히 기다리느라고 조바심을 내는 것보단 도착하고 나서 알려주는 게 나을 것 같았어.”
도온의 엄마는 쯧쯧 하고 혀를 차며 앞으로 다가와서는 축축한 천으로 내 손을 박박 문질러주었다. “먼저 씻었으면 좋겠는데.”
“죄송해요.”
디애나 에번스는 딸한테 미소를 지었다. “아무튼, 우린 이만 비켜줄게. 벤. 지금은 얘를 위해서라도 질문은 삼갔으면 해. 알았지? 내 나중에 다 얘기해줄 테니깐.”
고개를 끄덕이자 에번스 부부가 방을 나갔다. 나는 고개를 돌려 오랫동안 묻어두어야 했던 열정으로 도온한테 키스했다. 몇 달이나 기다려온 순간이었고 화답해오는 맹렬한 키스를 보건대, 도온도 나만큼 이 순간을 학수고대했던 같았다.
“오, 도온, 사랑해.” 나는 키스를 떼고 숨을 헐떡였다.
“나도 사랑해, 벤!” 도온은 흐느끼며 내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나는 도온을 껴안고 있다는 기쁨에 지난 반나절 동안 겪어야만 했던 근심과 고뇌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걸 느꼈다. 그 순간 나는 갑자기 극심한 피로를 느꼈다. 온몸의 근육이 아팠고 배에서는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아드레날린이 멈췄는지 현기증도 느껴졌다. 나는 가까운 미래에 대한 근심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겨우 몇 시간 전에, 나는 에이드리안의 목구멍에 정액을 뿜었고 도온은 자기의 보지로 나 아닌 딴 남자애의 정액을 받았다. 다시 상봉하게 된 건 무척 기쁜 일이었지만, 심각한 사건으로 말미암은 결과였을 뿐이다. 그리고 내 짐작이 맞는다면 우리 둘 다 전적으로 책임이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우리의 이야기는 이제야 시작된 것이다.
나는 당장에라도 옷을 벗고 내 사랑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지만, 아무리 호르몬이 왕성한 10대라도 사고라도 날까 봐 신경을 곤두세우고 낯선 도로를 밤새워 운전해 온 이상은 진이 빠지기 마련이었다. 그 상태에서는 도온, 에이드리안, 펠리샤 클락슨이 합동으로 스티립 쇼를 하며 박아달라고 애원을 하더라도 자지를 세울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대신에 나는 도온을 꼭 붙잡아주고 울음이 그칠 때까지 천천히 달래주기만 했다. 도온은 몇 번 더 키스를 해오며 우리의 사랑에 대해 넋두리를 늘어놓고는 콧등을 찡그렸다. “너 냄새 나.”
나는 웃음을 터트리고 쓴웃음을 지었다. “미안.”
도온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옷만 딸랑 걸치고 여기까지 차를 몰고 온 게 아직도 믿기지 않아.”
“그래야 했어. 너니깐 말이야.” 나는 도온의 뺨을 쓰다듬으며 진솔하게 대답했다.
도온은 얼굴을 붉히다가 금세 백지장처럼 하얘졌다. 내가 500마일이 넘는 거리를 달음질쳐온 이유를 떠올렸기 때문일 것이다. 도온은 숨을 들이켜며 나한테 시선을 돌렸다. “벤, 할 이야기가 무척 많아.”
나는 손가락으로 도온의 입술을 가로막고 순간적으로 브랜디를 떠올렸다. “지금은 아냐. 시간이 넉넉하니깐 그런 얘긴 나중에 해. 나도 너한테 해줄 이야기가 있어.”
그리고 나는 셔츠 냄새를 맡아보았다. 예상과 다르지 않은 냄새가 났다. “우선 몸부터 씻어야겠어.”
도온은 킥킥대며 물었다. “도와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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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온은 나랑 떨어지기가 싫었는지 좌변기에 앉아 투명한 샤워실 유리를 통해 샤워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는 서둘러 여행에서 묻은 때를 씻어내고 샤워실을 나왔다. 도온의 엄마는 잭의 운동복을 가져다 놓았다.
우리는 씻을 건 씻고 옷을 갖춰 있은 다음에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디애나 에번스는 우리한테 미소를 지어 보이며 식탁에 앉게 했다. 잭과 디제이는 이미 자리하고 있었다.
나는 도온의 아빠 옆에 앉아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질문을 했다. “어딨죠?”
“누가?”
“그 개자식요” 도온 아빠는 내 욕설에 놀라는 것 같았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나는 화염을 쏟아내는 눈길로 불끈 주먹을 쥐었다. 도온은 잽싸게 내 주먹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잭 에번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넌 그 애를 쫓을 수 없어. 이미 경찰한테 넘어간 일이야.”
“지금은 어디에 있는데요?” 나는 이를 갈며 물었다.
“나도 모르지. 아마 경찰 수중에 있지 않을까. 아직 그 애 엄마와 연락되지 않았다고 하는 걸 들었거든. 출장을 갔다고 했나. 현재 마크는 모든 일을 부인하고 있어. 우리한테 자백한 적이 없다면서 얘 체내에서 약이 발견되더라도 파티에서 먹었을 거라고 주장하고 있어.”
“머더퍼-” 나는 도온의 내 손을 꼭 감싸 쥐는 걸 느끼며 말을 끝맺지 못했다. 잭 에번스는 손을 들고 디제이를 가리키며 눈살을 찌푸렸다.
“좀 진정해, 벤.” 잭 에번스는 도온을 가리키며 말했다. “얘도 힘든 밤을 보냈어. 병원에서 검사를 받느라고 새벽까지 깨어 있어야 했어. 경찰이 마크의 집에서 증거물을 찾고 있으니깐, 넌 다른 데는 신경 쓰지 말고 얘를 위해서라도 경거망동하면 안 돼. 알겠니?”
도온은 내 팔에 매달렸다. 나는 내 여자친구의 다정한 얼굴을 바라보며 분노와 슬픔을 동시에 느꼈다. 지금의 도온은 내가 옆에 있어주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을까? 적어도 지금으로서는 당국을 믿어야 할 것 같았다. “알았어요.” 나는 도온의 손을 주무르며 순순히 수긍했다.
우리는 아침을 먹고 위층으로 되돌아갔다. 도온은 내가 도착하기 전까지 두 시간밖에 못 잤다고 했고 나도 죽도록 피곤한 상태였다. 그래서 나는 여름 캠프 후로는 처음으로 내 삶의 사랑을 팔에 안고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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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고 보니 시계가 오후 3시 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시계는 도온의 귓가와 일직선으로 놓여 있어서 굳이 움직일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곧 온몸으로 친숙함을 느꼈는데, 내 손은 도온의 젖가슴을 얹혀져 있었고 아침 발기는 팬티를 입은 도온의 엉덩이를 찌르고 있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반사적으로 젖가슴을 주무르자 도온이 가볍게 신음을 했다. 극도로 피로했기에 대낮임에도 단잠을 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언뜻 와 닿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도온을 안고 있는 것만큼 중요한 건 없었다.
계속 가슴을 주물러대자 도온의 숨소리가 변했다. 도온은 더 길고 깊게 숨을 몰아쉬며 나한테 고개를 돌렸다. 오후의 밝은 빛이 내 여자친구의 천사 같은 얼굴을 비췄다. 도온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반갑게 외쳤다. “벤!”
“하이.” 나는 싱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도온은 몸을 비틀고 내 가슴에 안겼다. 그리고 내 엉덩이에 다리를 얹고 더욱 바짝 달라붙고는 트레이드마크인 화산폭발 키스를 심어왔다. 발가락까지 빨려 나갈 것만 같은 강렬한 키스였다.
“오마이갓! 난 꿈인 줄 알았어!”
“꿈이 아냐. 실제야”
도온은 곧 내 자지가 쇠처럼 단단한 걸 알아차리고 아랫도리를 비벼댔다. 그리고 절대 놔주지 않겠다는 듯 미친 듯이 키스를 해왔다. 나는 몸을 굴려 도온을 올라탔다. 그리고 도온을 푸른 눈을 깊이 들여다보았다.
작은 고통의 일렁임이 엿보였다. 백만분의 1초도 되지 않는 극히 짧은 순간이었지만, 분명히 고통의 일렁임이 있었다. 마치 잔잔한 수면에 물결이 일렁이는 것처럼. 그 순간 모든 게 되살아났다. 에이드리안, 전화통화, 강간 소식을 들은 일, 그리고 여기까지 달려오게 된 모든 일이.
“오, 도온.” 이전의 근심이 되살아났다.
“날 사랑 해줘, 벤.” 도온은 헐떡이는 목소리로 또다시 키스를 해왔다.
“뭐?”
“제발, 날 박아달라구, 벤. 날 박아서 내 정액으로 날 채워줘.” 나는 도온의 긴급한 요구가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도온은 이미 파자마를 벗기고 있었다.
망설이지 않았다면 거짓일 것이다. 무슨 말이냐면, 나도 원하기는 했다. 그러나 우리한텐 너무나 많은 일이 발생했었다. “진짜?” 나는 되물어야 했다. “그러니깐, 그 일이 벌어지고 얼마 지나지도 않았잖아.”
“기억나지도 않는데다가 기억하고 싶지도 않아.” 도온은 내 머리를 붙잡고 내 눈을 들여다보았다. 크리스털처럼 푸른 눈은 내 뇌리를 꿰뚫었다. “네가 내 안에 있는 느낌만 기억하고 싶어. 너 말이야, 벤. 내 사랑, 내 진정한 사랑. 난 널 느껴야 해. 지금 당장!”
“하지만-”
“날 박아버려, 벤!” 도온은 간절히 애원했다. “아기 만들기를 연습하는 걸 가장 최근에 한 섹스로 기억하게 해줘.”
아기에 대해 생각하기에는 너무 어린 걸 알고는 있었지만, 도온과 가족을 이루는 것은 몹시 솔깃한 아이디어였다. 내일 당장 도온과 결혼을 해서 아이를 키운다고 해도 불행한 삶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멋 훗날의 이야기였다. 지금으로서는 도온의 바람대로 내 사랑을 증명해 보이는 게 최선일 듯싶었다. 나는 도온이 마크나 파티, 혹은 무엇이 됐건, 조각난 기억들을 잊게 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내 사랑의 얼굴을 붙잡고 그 화살폭발 키스를 똑같이 흉내 내려 기를 썼다.
나는 우리의 섹스가 다정하고 잔잔한 사랑이 되기를 바랐다. 맞아, 내 여자친구한테 극한의 욕정을 느낀 건 부인하지 않겠다. 그러나 있는 솜씨 없는 솜씨 다해 극진한 쾌락을 맛보여 줘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꼈다. 그러나 도온이 원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도온은 내 굼뜬 손짓이 맘에 들지 않았는지 단박에 파자마를 벗어 영화로운 젖가슴을 드러내고는 내 박서 팬티를 거칠게 끌어내렸다.
“뜸들이는 건 집어치워, 벤!” 도온은 흐느끼는 목소리로 간청했다. “네가 필요해. 지금 당장! 내가 이렇게 흠뻑 젖은 걸 모르겠니?”
팬티 밖으로 보지 둔덕을 만져보니 말 그대로 물바다였다. 진짜로 도온은 더는 기다릴 필요없이 나와 한 침대에 함께하게 된 건만으로 잔뜩 예열 되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무릎을 펴 박서를 벗고는 도온의 팬티도 함께 벗겨 냈다. 마침내 우리는 함께 알몸이 된 것이었다.
그 뒤는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도온은 다리를 벌리고 내 자지를 손에 쥐었다. 그리고 나를 제자리로 이끌고는 내 어깨를 움켜잡았고 나는 무척 오래간만에 내 여자친구한테 자지를 묻고 엉덩이를 찔러넣었다. 그 순간 나는 자각하지 못했던 괴로움이 해방되는 걸 느끼며 안도하는 신음을 내뱉었다. 그리고 이 세상 누구보다도 첫 번째로 사랑하는 젊은 여자의 천국 같은 포근함을 온몸으로 만끽했다.
도온도 나랑 비슷한 신음소리를 내며 내 몸을 팔다리로 꽁꽁 옭아맸다. 도온은 내 7과 8분의 5인치 자지에 꿰인 채 한 치의 틈도 없이 나와 한몸이 되었다. “오, 벤... 오, 벤...”
“오, 도온.” 울음이 터졌다. 도온한테 생긴 일과 여기에 오게 된 이유가 잊혀지지 않았다. 강간 사건이 없었더라면 절대로 평일인 목욕일 새벽 한 시에 여기까지 차를 몰고 올 일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섹스가 아무리 아름답다 하더라도 애초에 도온이 당한 험한 일을 물릴 수만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여기에 오지 않는 걸 선택했을 것이다.
더구나, 모든 게 내 잘못처럼 느껴졌다. 도온은 내 여자친구였다. 도온은 나만 바라고 수절을 해온 내 사랑이었다. 나는 그런 도온을 보호하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도온의 욕구를 채워주지 못함으로써 그와 같은 상황에 빠지게 하는 데 일조를 한 셈이었다. “도온... 미안해...”
“쉬... 벤... 네 잘못이 아냐.”
“미안해...”
“네 잘못이 아냐. 그러니깐 제발, 날 사랑해주기만 하면 돼, 응” 도온은 그 말에 맞춰 쫀득한 보지로 내 고동치는 자지를 쥐어짜며 엉덩이를 굴려댔다. ”날 사랑해 줘.”
“사랑해.” 나는 한숨을 쉬고 절구질을 했다. “사랑해.”
“으으응.” 도온은 신음을 하며 더욱 힘껏 나를 끌어안고 내 목을 물었다. 그리고 내 허리의 거듭된 진퇴에 나가떨어지지 않겠다는 듯 어깻죽지를 강하게 움켜잡았다.
나는 땀 찬 등을 파고드는 도온의 손톱에 아픔을 느껴 몸서리를 쳤지만, 괘념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아픔으로 도온이 실제로 나한테 깔린 것을 생생히 자각할 수 있었다. 내 고기 기둥을 죄어오는 도온의 보지 근육을 느끼며 또다시 키스를 하자 도온은 신음을 흘리며 내 엉덩이를 더욱 강하게 조여왔다.
“날 박아줘, 벤! 날 박아버리라구!”
치유가 목적인 부드러운 사랑이 아니라 그냥 박기였다. 도온은 남자친구한테 마구 박히고 싶어했다. 도온은 나를 믿었다. 도온은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도온은 섹스를 꺼리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실제로 있는 힘을 다해 도온을 박아 마크의 흔적을 지우려 애를 썼다. 내 과업이 마무리되었을 때에는 도온도 알 게 될 것이다. 자기를 철저히 박아준 남자애는 자기를 끔찍하게 사랑하는 남자친구 벤이란 사실을.
“오, 시팔, 벤! 난 싼다! 네가 날 싸게 해줬어. 벤!” 도온은 끙끙대며 고개를 마구 도리질 쳤고 리듬을 잃고 발작적으로 덜컥이는 엉덩이에는 바짝 힘이 들어갔다. “나랑 함께 싸!”
“어, 어.” 나는 미친 듯이 허리를 내지르며 도온의 얼굴 옆 매트리스에 머리를 박았다.
“어어엉!” 도온은 몸을 굳히며 싸는 순간 나한테 고개를 돌려 맹렬히 키스를 해댔다. 그리고 내 자지를 조여대는 도온의 보지 근육이 마구 요동을 쳤다.
나는 기껏해야 몇 초쯤 뒤처졌을 뿐이다. 나를 보내 버린 건 질 근육의 경련이었다. 곧 도온의 자궁은 뜨거운 정액으로 흘러넘쳤다. 단지 이번에는 그러한 사실을 완벽하게 인식하고 기쁜 마음으로 영접한 게 달랐을 뿐이다.
“오, 벤...” 도온은 자기의 내부로 흐르는 뜨거움을 느끼고 크리스털처럼 푸른 눈을 반짝였다.
“끄응.” 나는 엉덩이를 떨어대며 추가로 정액을 털어냈다.
“오, 벤.” 도온은 한숨을 쉬고 내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내 뺨을 손가락으로 쓰다듬으며 내 사랑에 흠뻑 젖어들었다. “이유가 어찌 됐든, 네가 여기에 있어줘서 너무너무 행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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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잠시 섹스 후의 여운을 즐기고 몸을 씻고자 침대에서 일어섰다. 우리는 데이나의 방과 공동으로 쓰는 욕실로 들어가 함께 샤워를 했다. 당연히 서로 만져대고 주물러대기는 했지만 제일 좋았던 건 야한 짓을 하기보단 따듯한 물줄기를 맞아가며 서로 가만히 기대었을 때였다.
나는 옷을 갖춰 입고 나서 그토록 험한 일을 당했는데도 완전히 정상적인 모습으로 보이는 도온의 모습에 새삼 놀라게 되었다. 그래서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조금도 괴롭지 않아?”
도온은 셔츠를 입고 미소를 지어 보였다. “솔직히, 하나도 기억나지 않아. 그 약이 원래 그렇대.”
나는 도온한테 데이트 강간 약을 쓴 사람이 있었다는 생각에 몸서리가 일었다.
“진짜야.” 도온은 자기의 윗몸을 껴안고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널 잃을 거라는 생각에 훨씬 더 동요했던 것 같아. 그래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던 거고, 부모님이 알 게 된 것도 그 일 때문이었어. 근데 널 잃지 않게 됐으니깐, 지금은 안심하게 됐어.”
도온은 미간을 좁히고 바닥을 내려다봤다. 그리고는 길게 한숨을 내쉬고 그간의 사정을 털어놓았다. “벤, 정신이 들어 정액을 발견했을 땐 만취해서 어리석은 짓을 저지른 줄만 알았어. 파티에 같이 간 남자애가 있었어. 벤. 그리고 솔직히 말해 유혹을 느꼈어. 미안하지만, 실제로 그랬어. 난 네가 몹시도 그리웠고 무척 오랫동안 제대로 된 섹스를 해보지 못했어...”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도온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
도온은 내 눈을 조심스레 바라봤다. “진짜 묘한 게, 종종 이런 생각이 들어. 그런 상황에 놓이게 되었을 때, 내가 아무리 당황을 했다손 쳐도 그냥 증거를 씻어내고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시치미를 뗐을지도 모른다는. 그랬으면 마크가 한 짓이라는 걸 모르게 되었을 테지만.”
도온은 숨을 들이켜고 내 눈을 들여다봤다. “하지만, 온통 네 생각뿐이었어. 내가 어떤 식으로 널 배신하게 되었고 또 너한테 어떻게 말해야 할지 온통 그런 생각뿐이었어. 그리고 난 네 전화가 끊기고 나서는 절망에 빠지게 되었어. 그리고 내가 네 이름을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걸 듣고는 부모님이 달려왔어. 그런 다음에는 마크의 자백이 있었고. 그렇게 일이 묘하게 흘러가게 되었는데, 따지고 보면 네가 날 구해준 셈이야.”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종잡을 수 없었다. 도온이 들려준 이야기를 완전히 이해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벤. 미안해.” 도온의 아랫입술이 떨렸다. “애초에 그런 상황에 놓이게 될 만큼 과음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어. 난...난 지난 몇 달간 떳떳하지 못한 일을 해왔어. 네가 알게 되면 기뻐할 수 없는 그런 일을 말이야. 벤. 난-”
“쉬...” 나는 도온을 달래며 꼭 껴안아 주었다.
“꼭 고백을 해야겠어. 벤.” 도온은 훌쩍이며 말을 이었다. “쭉 같이 어울려 다니던 한 남자애가 있어. 별다른 짓을 한 건 아냐.... 진짜야. 하지만... 하지만... 난...” 도온은 한숨을 쉬었다. “네가 내 말을 듣고 나서 날 버릴까 두려워.”
브랜디가 해준 말이 생각났다. 11개월은 굉장히 긴 시간이었다. 유혹에는 장사가 없단 사실도 알고 있었다. “나도 고백할 게 있어. 도온. 네가 날 그대로 사랑해줄지 걱정케 하는 그런 일이.”
“벤. 난 네가 무슨 말을 해도 널 끝까지 사랑할 거야.” 도온은 구명줄이라도 되는 것 마냥 내 팔에 꼭 매달렸다. “넌 모든 걸 팽개치고 나한테 달려왔어. 더 무엇을 바랄 수 있겠어. 넌 뭐든지 말할 수 있어. 넌 나의 벤이라구.”
나는 도온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나도 어젯밤에 벌어진 일을 들으면서 네 고통을 느꼈어. 날 안은 팔로도 느낄 수 있고. 넌 그런 상황에 빠지게 된 걸 후회하고 있어. 그거만 알면 됐어. 너도 무엇이든지 고백해도 돼. 반길 수는 없겠지만 받아들이게, 알았지? 넌 나의 도온이라구.”
도온은 내 팔을 붙잡고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심호흡을 하고는 침대를 가리키며 고개를 까닥였다. 나는 침대에 앉는 대신 베개를 괴고 등받이에 기대 도온을 내 가슴으로 안았다.
그리고 우리는 각자의 죄를 고백했다.
도온이 먼저 단짝친구의 남자친구의 단짝친구인 라이언에 대해 털어놓았다. 나는 라이언이 무척 잘생겼고 또한 무척 매력적으로 생각한다는 도온의 말에 속이 불편해졌다. 도온은 라이언을 긴 시간 동안 안달 나게 했는데도 늘 자기를 조심스럽게 대해줬다고 했다. 또한, 도온은 라이언의 관심이 좋았다며 키스를 허용한 사실도 털어놓았다. 도온은 늘 나를 배신하지 않으려 굳게 애를 써왔지만, 할로윈 파티에서 곪은 게 터졌다고 했다. 도온은 취해서 라이언과 한 침대에서 알몸이 되었지만, 팬티를 벗기는 건 말렸다며, 뚜렷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마크의 수중에 떨어지기 전까지는 그 선에서 멈췄을 거라고 확신했다.
도온은 마음을 졸였고 나는 도온의 말에 달가워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화가 난 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와 같은 유혹을 똑똑히 이해하고 있었고 도온이 자지 하나 없이 어렵게 지내온 것도 알고 있었다. 적어도 나한테는 보지를 대주는 누이들이 있었다. 사실, 고백할 게 있다는 도온의 말에 내심 좀 더 심각한 일을 저질렀거니 하고 예상하고 있었다.
나는 잠시 도온을 달래주며 도온이 더 죄질이 나쁜 내 얘기를 듣고 나서는 어떤 반응을 보일지 걱정스러운 심정이 되었다.
내 얘기를 듣는 도온의 표정을 보고 오줌이 지리도록 겁이 났다. 그러나 늘 그래 왔듯이 양심을 속일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할로윈 저녁에 전화하려고 했던 일을 털어놓았다.
도온은 입술을 깨물고 어렸을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믿음과 관련 있는 에이드리안의 심리적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게 했다. 물론 지나치게 사적인 이야기는 해 줄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에이드리안과 친구가 된 일과 에이드리안이 수요일 저녁마다 우리 가족한테 놀러 오게 된 경위를 이야기해주었다. 또한, 에이드리안이 연달아 데이트에 실패하고는 나한테 몸을 던져 블로우잡을 해준 일도 빠트리지 않았다. 도온은 그 부근에서 도저히 읽을 수 없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에이드리안을 박지 않고 전화를 하려고 했던 데까지 도달하려고 서둘러 이야기를 진행했다.
도온은 내 말을 듣고 나서 한숨을 쉬며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그게 다야?”
나는 얼굴에서 핏기가 가시는 걸 느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그 전화를 받고 나서 나락에 빠진 기분으로, 벤의 참모습이 발동되어 복수 삼아 박아 줄 요령으로 에이드리안한테 되돌아간 일을 이야기해주었다. 그리고 에이드리안한테 사랑한다는 말을 들었던 것도 말해주었다. 그러나 나는 다시는 예전의 실수를 되풀이할 수 없음을 깨닫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 일을 급하게 부연해서 이야기해주었다.
도온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분명히 생각에 잠긴 모습이었다.
나도 입을 열 수 없었다. 나는 스스로 저지른 일뿐만 아니라 도온이 겪어야만 했던 유혹에 대해 되새겨보았다.
도온이 먼저 침묵을 깼다. “좋아, 나도 실수를 저질렀고 너도 실수를 저질렀어. 그러나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일이야. 난 네가 어떤 남자인지 알아, 그리고 이것만은 인정해야겠어. 오렌지 카운티에 사는 다른 여자애랑은 더 심한 일이 없었다는 것에 놀랐다는 걸.”
메간의 란제리 쇼와 헤더의 대담한 제안, 그리고 꼬리를 쳐대는 학교의 여자애들이 떠올랐다. “솔직히 유혹이 많았어...”
“나도. 하지만, 난 아직도 널 전심전력으로 사랑해.” 도온은 미소를 지으며 두 팔로 내 몸을 감싸 안았다.
나는 마음이 놓여 한숨을 쉬었다. “나도 사랑해.”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서로한테 기댄 채 우리의 관계가 영원히 지속할 거라는 확신을 되새겼다. 맞아, 우린 아직 10대였고 10대의 사랑이라는 건 다들 알다시피 잘 풀리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그러나 우리한텐 단지 10대의 사랑이라고만 할 수 없는 유아기부터 쌓아온 17년이나 된 동반자 의식이 있었다.
그래도... “우린 아직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야 해. 도온. 겨우 석 달이 지났을 뿐인데 우리한테 생긴 일을 보라구.” 나는 한숨을 쉬었다. “8개월은 우리를 말려버릴 수 있을 만큼 긴 시간이야.”
“맞아, 그것에 대해선-” 도온이 입을 열었지만 끝내기도 전에 왈칵하고 방문이 열렸다.
“도온!” 데이나 에번스는 숨넘어가는 목소리로 달려들어 동생을 맹렬하게 껴안았다. “너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도온은 데이나의 포옹 속에서 간신히 대답할 수 있었다.
“오, 엄마한테 전화를 받자마자 차를 몰고 달려왔어. 도대체 왜 더 일찍 전화해주지 않은 거야? 그리고 너한테 이런 짓을 한 머더퍼커는 어디에 있는데?”
“진정해, 진정해.” 도온은 데이나를 달래려 했다. “벤도 있고 이젠 아무렇지 않아.”
“헤이, 벤.” 데이나는 도온의 어깨를 으스러지게 끌어안은 채 나를 쳐다보고 나서 다시 동생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진짜?”
“진짜야.”
데이나는 이마에 힘을 주고 도온과 나를 차례로 쳐다봤다. “와우, 넌 진짜 도온한테는 만병통치약이구나.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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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브랜디도 와 있었고 디제이도 학교를 마치고 돌아와 있었다. 세 여자애는 둥그렇게 둘러앉아 도온을 위로했다.
나는 도온의 방으로 돌아와 충전기를 꽂고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여긴 다들 무사해요.”
“넌 어때? 밥은 잘 챙겨주디? 옷도 더러워졌을 거 아냐?”
“예, 도온 엄마가 제 옷을 세탁했어요. 일요일까지 입으라고 티와 운동복을 내줬고요.”
“그럼 주말까지 머무르겠다는 거야? 내일 수업은?”
“머무를 거예요. 도온이 괜찮아질 때까지는 떠나고 싶지 않아요. 일요일을 넘기는 한이 있더라도요.”
엄마의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쉬 교장한테는 내가 얘기해놨어. 상황을 잘 이해해주더구나. 오늘하고 내일 결석신고는 이미 승인해주었고. 하지만, 월요일에는 꼭 돌아오기를 바라더구나.”
“그렇게 해볼게요. 단지 학교를 빼먹는 문제가 아니란 걸 아시잖아요.”
“그래, 그래. 브랜디도 거??니? 데이나하고 거기로 향하고 있다는 전화를 받았거든.”
“예, 전하고 싶은 말이라도?”
“아니, 그냥 궁금해서. 벤. 몸간수 잘하고. 수시로 소식을 알려줘야 해. 네 처지를 이해는 하지만, 넌 아직 10대일 뿐이고 혼자서는 이렇게 오랫동안 집 밖에서 생활해본 적이 없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잘 알아서 할게요.”
“좋아, 내일 꼭 전화해.”
“그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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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층으로 내려가 보니 브랜디와 도온이 손을 잡고 소파에 앉아 나직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디제이는 다소 동요된 모습으로 맞은편 소파에 앉아 있었다. 아마도 에번스 가의 막내는 데이트 강간이라는 것에 남들보다 더 겁을 집어먹을 만큼 아직은 어렸던 것 같다.
부엌에서 부산을 떠는 데이나 소리를 듣고 내 배에서도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나는 오전 7시 이후로는 아무것도 먹지 못했는데 열일곱 살 먹은 10대에게는 영원처럼 긴 시간이었다.
여자애들은 꼬르륵거리는 소리를 듣고 내가 내려온 것을 알아차렸고 도온은 미소를 짓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브랜디가 미소하며 물었다. “헤이, 동생. 운전하느라 고생했나 봐?”
나는 한숨을 쉬었다. “말도 마. 그냥 운전만 해도 힘들 텐데, 난 내 여자친구를 걱정하며 장장 6시간이나 운전을 했다구.”
도온은 다정히 미소하며 자리를 내줬고 내가 옆에 앉자 내 팔을 당겨 자기의 허리를 두르게 했다. 도온은 한숨을 쉬고 내 어깨에 머리를 눕혔고 우리의 누이, 자매들은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꽤 힘들었을 것 같아.” 브랜디는 우리를 대견스레 바라보았다. “하지만, 너흰 무척 운이 좋은 줄 알라구. 태어날 때부터 짝이 정해져 있는 사람은 무척 드물다구.”
도온과 나는 얼굴을 붉혔고 나는 도온의 이마에 키스를 해주었다. 도온은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얘가 가버리면 어떻게 될지 짐작도 안 가. 얘가 차를 몰고 시야에서 사라지면 1분도 지나지 않아 마음이 산산조각 날지도 몰라.”
브랜디는 입술을 꼬집고 고개를 끄덕이다가 불현듯 뭔가 떠올랐다는 듯 이마를 때리고 엄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너 말이야, 그 얘기 해봤어?”
나는 누나가 무엇을 말하는지 금세 알아차리고 부정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누나들이 도착할 때 그 얘기를 하려고 했어.”
브랜디는 고개를 끄덕였고 도온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무슨 얘기?”
나는 한숨을 쉬고 처음에는 디제이를 힐끔 쳐다보고는 도온한테 도로 눈길을 돌렸다. 나는 입술을 찡그리고 어떤 식으로 말해야 할지 궁리했다. “섹스와 욕구에 대해서, 도온. 우리의 관계를 손상하지 않으려면 앞으로 8개월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에 대해서.”
“아, 그 얘기!” 도온은 알고 있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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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고 나서 온 가족이 집 밖으로 나왔다. 나는 도온이 둘만 있고 싶다고 내 차로 끌고 갔다. 내 여자친구는 슬며시 미소를 짓고 내 차를 바라보았다. “이런 똥차를 몰고 여기까지 왔단 말이야?”
“헤이, 괄시하면 안 돼. 이놈은 내 똥차란 말이야. 이놈이 없었다면 너한테 올 수도 없었다구.”
“알았어. 알았어.” 도온은 씩 하고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 이런 차를 몰면서 지난 학기에 열여덟 명이나 되는 여자애들이랑 엮일 수 있었지?”
나는 눈을 굴리고 의연히 못 들은 척을 했다. 도온은 웃음을 터트리며 나를 따라 조수석에 올라탔다. 나는 도온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차를 몰았고 도온은 우리가 어렸을 때 놀러 가곤 했던 장소들을 가리키며 지금은 없어진 식당이나 장소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예를 들어, 부모님이 걸핏하면 데리고 갔던 허름한 중국집도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사실 상가 전체가 완전히 사라지고는 그 자리에는 홈디포 주차장이 들어서 있었다.
결국, 도온은 샌프란시스코 만과 인접한 해안가 도로로 방향을 잡게 했다. 101(도온 말이 이 지역에서는 도로번호 앞에 ‘the’ 를 붙이지 않고 번호만 부른다고 한다.)을 타고 1마일쯤을 달려 목적지에 도착하자 시내와 비교적 가까운 거리임에도 광활한 물길 너머 샌 마테오 다리를 밝히는 불빛만 보이고 온 사방이 어둑어둑했다. 밤이 되면 꽤 인기있는 장소로 생각되는 게 은밀함이 보장되는 거리를 두고 대여섯대의 차가 주차된 모습이 보였다.
엔진을 끄고 어둠에 잠기자 도온이 나직이 물었다. “그리워? 벤? 학교에서 열여덟 명이나 되는 여자애들과 엮인 것 말이야?”
“학교에서는 열여덟 명이 아냐. 너, 데이나, 브랜디, 심지어 브룩도 그 안에 포함되어 있어. 그 애들이 다-”
“어쨌거나,” 도온은 손을 내저었다.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잖아.”
나는 무시당한 기분에 얼굴을 찌푸렸다. “너만 옆에 있다면 다 소용없어. 이미 그래 왔고.”
“하지만, 내가 옆에 없다면...” 도온은 한숨을 쉬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불끈 주먹을 쥐고 입술을 깨물었다. “여자애들이 아직도 꼬리를 쳐대지? 그치? 브랜디가 말해줬어. 네가 학교에서 어떻게 소문이 났는지.”
나는 눈을 몇 번 깜박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은.”
“그리고 너도 혹했어. 안 그래? 꼭 에이드리안 같은 여자애한테 뿐만 아니라 다른 여자한테도 말이야.”
“어쩌면.” 나는 도온의 의중을 가늠할 수 없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도온은 입술을 깨물고 부르르 몸을 떨었다. “내 말 주의해서 듣고 건성으로 대답하지 말았으면 해. 그 애들하고 자면서도 나를 변함없이 사랑할 수 있겠어?”
그 즉시 ‘당연하지.’라는 말로써 어떤 경우라도 도온을 사랑하겠다는 다짐을 표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혀를 깨물고 도온의 질문을 곰곰이 되새겨보았다. 전에도 그러한 질문에 대해 생각해둔 답이 있었지만, 지금은 도온의 의중이 짐작이 갔다.
“도온, 난 널 사랑해. 오직 너만을. 에이드리안하고 실수를 저지른 건 나도 알아. 하지만, 끝내는 유혹을 뿌리쳤어. 에이드리안한테 그럴 수 있는데, 누가 감히 날 유혹할 수 있겠어?”
“벤, 믿음에 관한 문제가 아니잖아. 네가 날 사랑하는 걸 알아. 그리고 믿거나 말거나, 네가 진짜로 그러려고 작정하면 8개월이건 아니건 버틸 수 있다는 걸 알아.” 도온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하지만...”
내 여자친구는 몸서리를 치며 눈을 감았다. 나는 손을 뻗어 도온의 어깨를 부드럽게 어루만져주었다. 그러자 도온은 나한테 머리를 기대고 내 손길을 음미하다가 내 손바닥에 입을 맞췄다. 그리고 눈물이 맺힌 눈을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벤, 미안해, 하지만 난 8개월 동안을 수녀처럼 지내고 싶지 않아. 난 딴 남자애랑 섹스를 하면서도 널 변치 않고 사랑할 거란 내 말을 믿어 줄 수 있는지 묻고 있는 거야.”
나는 반사적으로 도온한테서 손을 뗐다. 나는 우리의 짧은 관계 동안 누구한테도 느껴보지 못한 과도한 질투를 보인 적이 있었다. 나는 도온 이전에 세 명의 여자친구를 둔 적이 있었다. 특히 그 중 한 명은 습관적으로 남자애들과 시시덕대는 에이드리안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세 명의 여자친구한테는 도온만큼 크게 질투를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도온의 말을 듣고는 속이 뒤집혔다.
도온은 내 기분을 눈치채고는 내 손을 잡아 두 손으로 감싸쥐고는 강렬한 눈빛으로 내 눈을 바라보았다. “제발, 벤. 내가 널 덜 사랑하겠다는 뜻이 아냐. 그리고 우리가 함께하게 되었을 때는 문젯거리가 되지도 않을 거고. 하지만, 진짜로 신경이 쓰인다면 그냥 우리 둘끼리만 장거리 관계를 유지할 수도 있어. 내 그렇게 못 할 것도 없어. 진짜야.”
도온은 입술을 굳게 다물고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하지만, 벤. 우리는 열린 관계를 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넌 잔뜩 달아오른 10대들이 11개월 동안 떨어져서 유혹 없이 지낼 수 있을 거란 소년다운 이상적인 생각을 하고 있어. 하지만, 현실적으로 굉장히 어려운 일이잖아. 난 유혹에 마음이 끌렸고 너도 마찬가지였어. 그리고 욕구를 풀 수 없어 쌓아놓기만 하는 건 건강에도 좋지 않아.”
“넌 디제이와 데이나가 있잖아.” 나는 징징거리며 떼를 썼다.
“자지가 달리진 않았잖아. 넌 집에 가면 보지가 있고. 하지만, 진짜로, 브룩이 며칠마다 널 박아주지 않았다면, 그날 밤에 에이드리안을 내팽개치고 발길을 돌릴 수 있었을 것 같아?”
나는 도온을 외면했다.
도온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다시금 내 손을 쥐어 잡았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꼭 그래야만 한다면, 하지 않을게. 난 널 영원히 사랑할 거야. 그리고 영 내키지 않으면 네 뜻대로 할게. 하지만, 더 나을 거란 생각은 안 들어? 우리 둘 모두한테 말이야? 전에도 말했듯이 난 섹스를 위한 섹스는 감수할 수 있어. 이상적이라고는 말 못 하겠지, 그리고 우리가 당장에 함께할 수 있다면 내 다른 남자애를 거들떠보기나 할 것 같아? 하지만, 그렇지 못하니깐 문제지. 그리고 우린 둘 다 욕구가 있어. 벤.”
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인정해야만 하는 게, 내 여자친구한테서 다른 여자애랑 섹스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는 건 굉장히 솔깃한 일이었다. 메간과 캐시디는 둘이 함께 섹스의 다양성을 즐기게 해주었고 에이드리안은 미즈호나 캔디, 섬머, 린 같은 여자애들을 맛보게 해준 적이 있었다. 그리고 도온은 양쪽 가족의 누이와 자매들을 우리의 섹스놀이에 끼워주었다.
나는 도온을 사랑했고 브룩을 사랑했다. 그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게, 여동생하고만 하는 건 다소 지루해진 감이 있었고 또 브룩 자신도 또래 남자애들한테 관심을 두려는 참이었다. 솔직히 말해, 브룩과의 규칙적인 섹스가 천년만년 지속될 거라고는 기대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도온이 다른 남자애들과 섹스를 하는 걸 참아낼 수 있을까? 그래야 서로 공평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아직은 생각하기 싫었지만, 도온이 나를 사랑하는 한 조금은 자유를 누려야 하지 않을까? 게다가 내 여자친구가 나 없이 홀로 지내면 살짝 회까닥할 수도 있다고 브랜디가 경고해 준 적도 있지 않은가?
“제발, 벤. 작년하고 그리 달라질 것도 없잖아? 우린 열여섯 살 때, 지금과 비슷한 관계를 시작했지만, 결국에는 서로 갈라서서 각자의 삶을 살기로 했었잖아. 왜냐면 결국에는 다시 볼 수 있단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난 그때도 널 사랑했어. 넌 그동안 열여덟 명이나 되는 여자애와 엮이게 되었지만, 저번 여름에 난 변함없이 널 사랑했어. 그리고 난 다음 여름에도 널 사랑할 거야. 무슨 일이 있더라도 말이야. 그리고 그 여름이 끝나면 우린 대학에서 함께하게 될 거고 그 후로는 다시는 헤어지지 않아도 될 거야.”
“그건 네 바람일 뿐이야.”
“우리 둘 다 버클리에 입학할 거야. 난 진작에 알고 있어.”
“어떻게?”
“그냥 알아. 게다가...” 도온은 깊게 숨을 들이켜고 눈길을 돌렸다.
나는 갑작스러운 침묵에 놀라 눈을 깜박였다. “뭐?”
“미안해, 벤. 하지만, 호기심이 생긴 걸 부인하지 않을 게.” 도온은 내 눈을 피하려고 했다. “난 너밖에 경험해보지 못했어. 마크는 제외하고, 아무튼 아무런 기억이 없으니깐 말이야.”
강간 이야기를 꺼내는 것에 마음이 갈라졌다.
“난 진짜 궁금해, 벤. 다른 남자애는 어떨는지 말이야. 널 사랑하는 게 변치않을 걸 알고는 있지만, 진짜 궁금해.” 도온은 미안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호기심이라, 이해가 갔다. 속으로는 썩 내키지 않았지만, 그래야만 서로 공평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의젓하게 행동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도 네가 호기심으로 아쉬워하는 걸 바라지 않아. 우리가 나중에 결혼하고 나서도 그런 호기심을 간직한다면 우리한테도 좋지 않을 거고.”
도온은 의견 변화를 감지하고 열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숨이 나왔다. “봐봐, 도온. 내 경험으로 경고해주고 싶은 한가지는 누구하고 든지 섹스를 하게 되면 결국에는 그 애하고의 관계가 변하게 될 거란 거야.”
“난 널 영원히 사랑할 거야.” 도온의 주장이 그랬다.
“나도 널 믿어. 하지만, 넌 그 애들한테 감정을 느끼게 될 테고 그렇게까지 친밀해진 이상은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될 거야.”
“단지 섹스일 뿐이라고 사랑이 아니라. 분명히 넌 그런 일에 대해 뭔가 아는 것 같기는 하지만.”
나는 한숨을 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조금은. 하지만, 아직도 어려워.”
“500마일이나 떨어져 사는 것보다 어려워? 본능을 부정하고 욕구를 풀지 못해 괴로워하는 것보다 어려워? 난 널 사랑해, 벤. 하지만, 이미 말했듯이. 남은 8개월은 우리를 죽이고 말 거야.”
나는 숨을 들이켜고 마지못해 고개를 끄떡였다. “아마도.” 일부일처제가 옳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지난 몇 개월 동안은 본능적인 충동을 억누르느라 괴로움을 견뎌야 했다. “이게 네가 바라는 거라고 확신해?”
“변치않고 날 사랑할 수 있겠어?” 도온이 되물었다.
나는 굳게 고개를 끄덕였다. “영원히, 넌 나의 도온이야.”
도온은 좌석을 가로질러 내 목을 끌어안았다. “그렇다면, 확신해. 이렇게 하는 게 우리한테 이로울 것 같아.”
도온과 나는 “연인의 오솔길”에서 거의 열 시가 될 때까지 머물렀다. 우리는 일단 다음 여름에 재회하기 전까지 열린 관계를 해보자는 결정을 내리고 나자 서로에게 향한 사랑의 참됨과 또 떨어져 있더라도 절대 변심하지 않을 거라는 다짐을 재확인하고 싶은 욕구를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다.
굳은 언약은 육체적인 애정표현으로 변했고 육체적인 애정표현은 달콤한 키스와 힘찬 포옹으로 변했다. 그리고 그런 애무는 우리의 속궁합이 얼마나 잘 들어맞는지 재확인하는 행위로 변했다.
우리는 집으로 돌아와서도 달콤한 속삭임과 부드러운 애무로 사랑을 나누었다. 그리고 행복한 만족감에 젖어 잠에 빠져들었다.
금요일에는 아침 11경에 기상했다. 멋진 하루였다. 데이나와 브랜디는 대학으로 돌아갔고 디제이는 학교에, 도온의 부모님은 직장에 나갔기 때문에 집에는 우리 단둘만 남아 있었다. 도온과 나는 알몸으로 온 집안을 들쑤시고 돌아다녔다. 도온은 심지어 우리가 아기였을 때 굴러다니던 거실 바닥에서도 박자는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다. 그 옛날 우리가 아기였을 때는 카펫에 침을 흘리고 놀았을 테지만, 이날은 도온의 현격히 다른 구멍에서 현격히 다른 액체가 흘러나왔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난생처음으로 정식 데이트를 나갔다. 우리가 겪어야만 했던 수많은 우여곡절을 돌이켜봤을 때, 정식 데이트를 한 번도 못 해봤다는 건 상당히 신기한 일이었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이사를 하고 나서는 줄곧 여름 캠프에서만 함께할 수 있었고 고등학생다운 데이트를 해볼 기회가 한 번도 없었다.
처음에는 도온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게 망설여졌다. 강간을 당한 지 기껏해야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고 종종 도온의 눈에서는 그때의 사건을 돌이켜보며 괴로워하는 기색이 엿보이기도 했다. 그리 심각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도온은 아주 짧은 순간 갑자기 긴장을 하곤 했고 나는 그럴 때마다 재빨리 도온을 붙잡아주고 괴로움을 떨칠 수 있도록 가만히 기다려주곤 했다. 마크의 일이 일단락되기까지는 아직 완전히 끝난 게 아니었다.
그러나 도온은 그 일이 자기 삶을 지배하게 내버려주지 않겠다며 굳이 데이트를 나가자고 고집을 부렸다. 게다가 자기 친구들한테 나를 소개해 주고 싶다며.
“내가 여기에 와있는 건 어떻게 설명할 건데? 나는 걱정이 들어 물어보았다. “혹은 학교를 빼먹고 전화를 받지 않은 건 어떻게 설명하려고?”
도온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 도온은 강간당한 일을 비밀로 할 의도였고 가족들도 소문이 나봤지 좋을 게 없다며 비밀로 하기로 동의한 상태였다. 도온은 어깨를 으쓱였다. “넌 내가 너무나 보고 싶은 나머지 앞뒤 재보지 않고 불쑥 찾아왔다고 하면 되고 난 너랑 정신없이 박아대느라 학교도 빼먹고 전화도 받지 않았다고 할게.”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맘에 들어.”
그래서 우리는 쇼핑몰에서 도온의 학교친구들과 만나 몬스터 주식회사를 보기로 했다.
도온은 친구들한테서 요 며칠간 왜 코빼기도 비추지 않았는지, 그리고 할로윈 파티 이후로는 왜 전화를 받지 않았는지, 이런저런 걱정스러워하는 질문을 받았지만, 겉으로 별 이상이 없어 보이는 데다가 내가 붙어 있는 모습을 보고는 곧 그런 질문이 잦아들게 되었다.
도온의 여자 친구들은 말로만 듣던 유명한 벤을 보게 되었다며 적당히 호들갑을 떨었는데 갈색 금발머리를 한 그웬은 “귀엽네, 얘 빌려가도 돼?”라는 말을 할 만큼 맹랑했다.
도온과 나는 열린 관계를 해보자고 한 말이 생각나 서로 미소를 교환했다.
또한, 나는 의도치 않게 남자애들하고도 인사를 나누게 되었는데, 은연중에 소개받는 남자애들을 도온의 잠재적인 섹스 파트너로 재어 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사실 트리샤는 어렸을 적 같이 논 기억이 났는데 그 애의 남자친구는 상당히 키가 큰데다가 덩치도 좋았다.
그러나 스테판은 도온의 섹스 파트너로 어울릴 것 같지 않았다. 반면에 라이언은 보자마자 도온이 혹할 만한 매력적이고 잘생긴 남자애라고 느꼈는데, 이내 도온이 바람을 피웠을지도 모른다며 눈물이 흘리며 인정한 장본인임을 떠올릴 수 있었다. 라이언은 내가 도온의 남자친구라는 말을 듣고는 로드킬을 당하기 직전 헤드라이트에 비췬 사슴 같은 눈을 해보였다.
아마 악수하는 손을 힘껏 움켜잡고 위협적으로 노려본 것도 도움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 키가 190이 넘고 덩치가 산만한 남자한테 겁을 주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진짜로 이 남자애는 장난 아닌 근육 덩어리였다. 나는 도온을 따먹어보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는 이 열아홉 살 먹은 전문대생이 천성적으로 싫었다. 그러나 내 팔을 붙잡고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며 명령을 내리는 문제의 마나님한테는 져줄 수밖에 없었다. “벤, 앞으론 라이언과 사이좋게 지냈으면 좋겠어. 알았지?”
내가 속으로 괴로운 신음을 토할 때 라이언은 즉시 내 여자친구를 돌아보았다. “도온, 제발. 파티에서 생긴 일은 너무너무 미안해. 의도치 않게 일이 커져-”
“괜찮아, 라이언.” 도온은 손을 들어 라이언의 말을 말렸다.
그러나 라이언은 이틀 동안 죄책감에 시달렸던지 도온의 말을 듣고도 마음을 놓지 못한 것 같았다. “진짜야, 도온. 내가 너무-”
“라이언, 라이언, 진정해. 네 잘못이 아닌 걸 알아. 우린 둘 다 취했었고 난 이미 벤한테 모든 걸 털어놓았고 벤도 괜찮다고 했어. 맞지, 벤?”
라이언은 다 털어놓았다는 도온의 말에 더욱 겁을 집어먹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나도 조금은 화가 가라앉았다. 내가 봤을 때도 라이언은 선을 넘은 것에 대해 진심으로 죄스러워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태도를 누그러트렸다. “괜찮아. 얘가 워낙 예뻐 놔서 남자애들의 관심이 쏠릴 걸 진작에 알고 있었어.”
어차피 열린 관계를 대처하려면 지금부터라도 시작해야겠단 생각이었다. 도온과 라이언이 함께하는 모습을 그려보고 싶지는 않았지만, 도온이 이 초롱초롱한 푸른 눈을 한 키 큰 금발 덩치에 대해 이야기할 때의 태도를 보건대 자기의 성적 판타지를 충족시켜줄 만한 한두 가지 자질을 발견했을 거라는 사실이 수긍이 갔다. 나는 라이언과 경쟁하기보다는 차라리 내가 없을 때에 도온을 잘 대해줄지 확인해 보기 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