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장 유혹 (4/18)

3장 유혹

2001년 9월 4학년

“헤이, 거기 남자친구!” 메간은 케이토한테 달라붙고 남자친구의 허리에 팔을 둘렀다. 복도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쑥스러운 표정을 짓는 케이토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케이토도 금세 기쁜 표정을 짓고 여자친구의 허리에 팔을 둘렀다.

메간은 케이토를 이끌고 나한테 다가와 내 어깨를 때렸다. “헤이, 벤.”

“헤이, 벤.” 케이토도 고개를 끄덕였다.

“헤이, 벤. 개학해서 기분이 묘하지?” 캐시디가 무선 헤드폰을 목에 걸친 모습으로 우리한테 다가왔다. 누구한테 묻는 건지 아리송했지만, 나랑 메간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캐머런이 옆에 없어서 허전하지? 너흰 지난 몇 주 동안 꼭 붙어 다녔잖아.”

캐시디는 새침한 표정을 지었지만, 고개를 끄떡였다. “끄떡없어.”

“하이, 벤!” 아담한 브루넷이 만면에 미소를 짓고 짠하고 나타났다.

“린!” 반가워서 절로 팔이 벌려졌다. 이제 상급생(senior-졸업을 앞둔 학년, 벤도 상급생이 되었음.)이 된 발랄한 치어리더는 득달같이 달려와 포옹을 하고는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진짜 반갑다! 여름은 어땠어?”

린 애리언은 어깨를 으쓱였다. “거의 지루한 편이었어. 하지만, 유럽에서 보낸 3주는 정말 재밌었어. 진짜 굉장한 걸 봤거든.”

“굉장한 거라니?” 달콤한 목소리가 왼쪽에서 들려왔다. 에이드리안은 가슴골을 가리지 않을 만큼 적당한 높이로 책을 안고 일행 사이로 끼어들었다. “헤이, 린, 벤.”

“헤이, 에이드리안.”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헤이, 에이디.” 린도 발랄하게 소리쳤다.

매혹적인 블론드는 미소를 짓고 일행들을 둘러보았다. “안녕, 얘들아.” 메간과 캐시디도 꾸미지 않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한때 나를 사이에 두고 반목한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예전의 앙금이 남아 있지 않았다. 이 애들이 친한 친구가 될 거라고는 하지 않겠다. 하지만, 작년에는 꿈도 꾸지 못한 반전이었다.

우리 10대들이 사는 방식은 이렇게 변화무쌍했다.

새 학기를 맞는 들뜬 기분으로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드루 워커가 농구부 친구들을 거느리고 옆을 지나갔다. 그러나 작년과는 다르게 나를 락커로 밀어붙이는 대신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아는 체를 했다.

나도 고개를 끄덕여 대꾸했다.

10대들에게 1년이란 이렇게 많은 변화가 생기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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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 선생 누군데?”

“해몬드.”

“안됐다. 인마.”

“헤이이, 벤.”

“오, 헤이 첼시.”

“오호...재가 언제 저렇게 자랐냐?”

“한눈팔지 마, 케니. 30초만 있으면 레이첼을 만날 거면서.”

“네가 만나는 것도 아닌데 무슨 상관이야.”

“헤이, 벤!”

“하이, 매디.”

“매들린 정도 꼬리를 쳐? 인마. 너 올해 히트치겠다.”

“인사를 한 것 뿐이라구, 케니. 게다가 난 여자친구가 있어.”

“맥만 마일 떨어져 사는 여자친구라고! 그런 건 쳐주지도 않아. 인마. 백마일 이상은 쳐주지 않는다구.”

나는 우뚝 걸음을 멈추고 케니를 쳐다봤다. “도대체 그런 말은 어디서 주워들은 건데?”

케니는 어깨를 으쓱였다. “다들 그렇게 알고 있어.”

마침 2학년 여자애들 몇 명이 중학생이라도 되는 것 마냥 까르르 웃으며 지나갔다. 특히 한 아이가 손가락으로 나를 지목해서 ‘나 말이야?’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니 작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했다.

케니가 갑자기 귓속말을 했다. “어때, 끌리지 않는다고는 말 못하겠지?”

“아니.”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난 여자친구한테 충실하기로 다짐했어. 알았어? 겨우 1년이라구. 1년만 버티면 된다구.”

“대단히 고상하십니다그려. 어르신.” 케니는 내 어깨를 토닥이며 현자라도 된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알아둬야 할 건. 올해는 네 인생이 바뀌는 해가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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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 직후에 초인종이 올렸다. 나는 텔레비전을 보다 말고 문을 열어주러 갔다.

“헤이, 벤!” 에이드리안이 오후의 햇살 속에서 눈부신 모습으로 서 있었다. 지평선에서 올라온 석양빛이 온누리를 오렌지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뱃속이 울렁거리고 자지가 꿈틀댔다.

“헤이, 에이드리안.” 나는 충동적인 욕정을 억누르고 미소를 지었다. “한동안은 저녁에 놀러 오지 않은 거 같던데?”

에이드리안은 눈을 내려트리고 귀엽게 얼굴을 붉혔다. “브랜디가 학교로 돌아가고 나니깐 왠지 폐를 끼치는 것 같아서.”

“터무니없는 소릴!” 등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엄마가 키친타올로 손을 닦으며 부엌을 나오고 있었다. “넌 언제든지 환영이야. 알겠어? 특히, 세상에 난리가 난 마당에 더욱 친구들끼리 뭉쳐야지.”

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바로 어제 동해안에서 비행기 하이재킹과 건물붕괴 사건이 일어났었다. 나로선 의미를 알 수 없는 사건이었다.

“예, 아주머니.” 에이드리안은 군대식 경례를 했다.

나는 뒤로 물러서서 들어오란 손짓을 했다. 그리고 에이드리안이 나를 지나칠 때는 무릎이 후들거렸다. 젠장, 냄새 한번 끝내주네.

“냄새 끝내주지, 그치?” 에이드리안이 돌아서서 씨익 하고 웃었다.

“허?”

“저녁!” 에이드리안은 부엌으로 걸어갔다. “가서 도와드려야겠어.”

에이드리안의 엉덩이가 나를 보고 윙크했다. 진정해, 벤. 마음을 가라앉혀.

브룩은 꼭 요럴 때만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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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wrgrl1987: 그렇게 따분하단 말이야, 허?

BigBen69: 잘 모르겠어. 개학하면 신날 줄 알았는데.

Flwrgrl1987: 학교 가는 게 신나는 사람이 어딨어? 방학 땐 누이들이 잘해줬을 거 아냐? ^-^*

BigBen69: 당연하지, 하지만 친구들이랑 시간을 때우는 것도 이젠 재미가 없어졌어.

BigBen69: 게다가 다들 쌍쌍으로 붙어 다니는 꼴도 보기 싫고. 보고 싶어 미치겠어. 도온. ㅠㅠ

Flwrgrl1987: 나도 보고 싶어, 벤.

Flwrgrl1987: 아마 너보다도 훨씬 더.

Flwrgrl1987: 트리샤랑 스테판은 나를 코앞에 두고도 자기들끼리 오그라지게 굴지 뭐야. 난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되기 일쑤고. ㅠㅠ

BigBen69: 내가 방법을 찾아볼게. 어쩌면 부모님이 주말이나 휴일에 비행기 삯을 대줄지도 몰라.

Flwrgrl1987: 정말? 꼭 그래야 해!

BigBen69: 힘써 볼게. 사랑해, 도온. =)

Flwrgrl1987: 나도 사랑해...

BigBen69: 아, 끝내야겠다. 브룩이 온 것 같아.

Flwrgrl1987: 벌써? 집까지 태워다준 줄 알았는데?

BigBen69: 오늘은 아냐. 오후에 치어리더 오디션을 본다고 했거든.

Flwrgrl1987: 알았어. 오늘 밤 전화해, 약속?

BigBen69: 약속. =)

BigBen69: 사랑해.

Flwrgrl1987: 사랑해. 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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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 아웃을 하자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브룩이 평소처럼 시끌벅적하게 들이닥칠 거로 예상한 순간 땀에 전 여자애들 몇 명이 부리나케 부엌으로 달려가는 모습이 펼쳐졌다. 나는 호기심을 느끼고 여자애들을 따라 부엌으로 들어갔다.

브룩이 냉장고 옆에 서서 낯이 익지 않은 키 큰 여자애한테 물병을 건네고 있었다. 갸름한 얼굴에 여린 몸매를 한 꽤 예쁜 여자애였다. 귀는 요정처럼 뾰족했고 검붉은 머리카락과 확연히 대조되는 푸른 눈동자는 헤엄을 칠 수 있을 만큼 깊어 보였다. 왠지 물을 마시느라 고개를 젖힌 모습까지 엄청나게 섹시해보였다.

“어, 하이.” 적어도 브룩의 친구이자 스테파니 보의 동생인 제니퍼 보는 알아볼 수 있었다. 그 애는 카운터 의자에 앉아 물을 마시고 있었는데 빨간머리는 아무리 해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음.” 브룩은 마저 물을 마셔버리고 나를 쳐다봤다. “헤이, 벤. 연습이 고됐어. 뭐 때문인지는 몰라도 에이드리안이 꼭지가 돌았고 그게 데비를 통해 우리까지 전해졌어.”

나는 축 늘어진 모습으로 의자에 앉은 여자애들을 삥 둘러보았다.

“그랬구나.” 나는 제니퍼한테 고개를 끄덕이고 적갈색 빨간머리한테 가장 자신만만하고 매력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이, 난 벤이야.”

빨간머리는 손을 내밀었다. “하이, 케이디 쟈콥슨이야.” 여린 모습과는 다르게 살짝 깊이 있는 목소리였다. 악수도 남자처럼 힘이 넘쳤다.

브룩이 거들었다. “오늘은 케이디가 태워다줬어. 우리처럼 2학년이고 치어리더 오디션을 보고 있어.”

나는 케이디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봤다. “학교의 예쁜 여자애는 모르는 애가 없는데, 넌 통 기억이 나질 않는걸.”

“베에에엔.” 브룩이 살짝 경고가 담긴 목소리로 말끝을 흐렸다.

케이디는 미소를 지었다. “아빠 직장 때문에 이번 여름에 이사 왔어. 여기서 멀지 않은 곳이라서 얘들을 태워다준 거야.”

“고마워.” 나는 환한 미소로 대답하며 케이디의 모델처럼 늘씬한 몸매를 감상했다. 젖가슴이 크거나 한 건 아니었지만, 무척 귀엽고 예쁜 모양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꿈도 꾸지 마, 벤.” 케이디는 예의 깊이 있는 목소리로 혀를 굴렸다.

“허?” 나는 노골적인 눈길이 걸린 걸 깨닫고는 급히 고개를 치켜들었다.

케이디는 씩 하고 미소를 지었다. “넌 귀엽기는 해도 내 타입이 아냐.”

나는 눈썹을 들고 순진한 척을 했다. “아니, 아니. 전혀, 그럴-”

“어-허,” 케이디는 다 듣지도 않고 브룩한테 빈 물통을 흔들어 보였다. “재활용해?”

“그래.” 브룩은 미소하며 부엌 구석의 푸른 색 쓰레기통을 가리켰다.

케이디는 물통을 버리고 제니퍼를 바라봤다. “헤이, 제니퍼, 키 좀 던져줄래?”

케이디는 제니퍼가 던져주는 키 꾸러미를 능숙하게 낚아챘다.

“태워다 줄까?” 빨간머리가 물었다.

“아니. 근처가 집인걸. 잠시 브룩이랑 놀다 갈 거야.”

“그럼 내일 학교에서 보자.” 케이디는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하고 나한테 시선을 고정했다. “그럼 이만, 벤. 참, 내 엉덩이를 너무 열심히 쳐다보진 말아.”

쩝... 열심히 쳐다보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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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게 혼자 딸을 잡아야 하는 그렇고 그런 날이었다. 요샌 집으로 돌아오면 으레 그러려니 했다. 브룩은 학교에 남아 치어리더 연습을 하고 있었고 쌍둥이들은 축구 연습을 갔다. 도온은 하고많은 사람 중에서 전-남자친구인 마크랑 학급 프로젝트를 떠맡았다고 했다.

사실 어제는 더 괴로웠다. 저녁에 놀러 온 에이드리안은 블라우스 앞섶을 훔쳐보는 걸 알아차리고는 약 올리듯이 유혹적인 자태를 취해 보였다. 그 전날도 괴롭기는 매 한가지였다. 우리 집에 들른 케이디는 자기 엉덩이를 그만 쳐다보라고 면박을 주면서도 기회가 될 때마다 내 얼굴에 엉덩이를 들이댔다. 그리고 금요일에는 브룩이 데이트를 나갔다. 브룩이 남자애를 맘에 들어 하면 몸 풀 기회를 기약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인터넷으로 포르노를 보면서 휴지에 정액을 푼 순간 핸드폰이 울렸다. 케니의 아이디가 액정에 떴다. 주중에 농구라도 할 셈인가?

“뭔데?”

“인마-인마-인마-인마-인마. 집 비었지? 지금 간다.”

“뭐?”

케니는 웃음을 터트렸다. “보여줄 게 있어.”

나는 눈을 굴렸다.

10분 후, 케니는 타어어가 끌리는 소리를 내며 진입로에 차를 대고 주먹으로 현관을 두들겼다. 문을 열어주자 번개같이 거실로 들이닥친 케니가 텔레비전 앞에 무릎을 꿇고 DVD를 집어넣었다. “밀을 수 없을걸.”

로고와 첫 장면만 봐도 포르노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케니가 리모컨을 잡고 몇 장면을 건너뛰자 금발머리와 백금발머리가 화면에 등장했다. 가짜라는 게 역력한 젖가슴이 하늘 높이 치솟은 채 신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카메라는 백금발의 화장으로 떡진 얼굴과 신음으로 헐떡이는 입을 따라 내려와 젖가슴 골짜기를 거치고 면도 된 귀여운 보지를 비췄다. 백금발이 자기의 투명 스트리퍼 하이힐을 위로 잡아당겨 활짝 다리를 벌리자 곱슬머리 금발이 민둥 보지에 고개를 처박고 빨아대기 시작했다.

나는 케니를 쳐다봤다. “뭐? 포르노를 가져왔어? 싫은 건 아니지만 서두. 근데 왜 난데없이 포르노를? 내가 포르노를 보고 딸이라도 치는 걸 기대한 건 아니겠지?”

“인마, 아냐. 조금 더 지켜보기나 하라구.” 계속 지켜보니 한 떡대남이 등장해서 아직 얼굴을 들어 보이지 않은 곱슬 금발머리의 엉덩이 뒤에 자리 잡았다. 떡대남은 믿기지 않을 만큼 길쭉한 자지를 딸쳐대며 무릎을 꿇더니 젖은 보지를 힘차게 찔러 들어갔다.

“지금이야!” 케니가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카메라 앵글이 바뀌고 백금발의 보지에서 얼굴을 든 곱슬 금발의 얼굴이 보였다. “홀리 싯! 도나 킨케이드잖아!”

“맞아.” 케니가 자랑스레 대답했다. “지금은 도나 마틴으로 이름을 바꿨더라구. 알겠어? 졸업생 도나 마틴.”

“포르노 배우랑 박고 있잖아!”

“그래.”

그때쯤 백금발녀가 누군지 알 듯했다. 도나를 마지막으로 봤을 때, 제나라고 하는 백금발녀도 함께 있었다. “쟨 제나였어!”

“허? 제나 식스를 안단 말이야?”

“홀리 싯! 8월쯤에 사우스코스트에서 우연히 부딪힌 적이 있어.” 나는 탄성을 질렀다. “도나가 쓰리섬을 하자며 같이 가자고까지 한걸.”

“뻥 까고 있네.” 케니는 씩씩대며 이죽거렸다.

“뻥이 아냐. 진짜야.”

“마더퍼커! 둘을 거절했단 말이야?”

나는 눈을 굴리며 케니를 쳐다봤다. “난 내 여자친구를 사랑해, 인마.”

“나도 레이첼을 사랑해. 그치만 시팔! 저런 여자애 둘이 나한테 쓰리섬을 하자고 했다면, 난 레이첼이고 뭐고 상관 안 해!”

나는 믿을 수가 없어 고개만 저었다. 그리고 다음 10분 동안 12인치 씨가 온갖 기괴한 체위를 해가며 두 헤픈 블론드를 박아대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떡대남이 호스를 뽑아 두 여자애의 얼굴에 뿌려댈 때 케니가 팔꿈치로 갈비뼈를 찔렀다. “인마... 저게 너였을 수도 있었다구.”

기분이 언짢았다. 도온이 얼른 집으로 돌아와 전화해주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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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0월 4학년

수요일 오후 6시 직후에 초인종이 울렸다. 에이드리안한테 문을 열어주는 건 내 일상이 되어버렸다. 에이드리안은 브랜디가 학교로 돌아가고 나서는 매주 수요일마다 저녁식사에 참석했고 심지어 엄마는 아름다운 이웃이 도착하기를 바라며 미리 자리를 챙기기도 했다.

“헤이, 벤!” 에이드리안이 오후의 햇살 속에서 눈부신 모습으로 서 있었다. 지평선에서 올라온 석양빛이 온누리를 오렌지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뱃속이 울렁거리고 심장박동이 빨라졌다. 에이드리안은 늘 그런 영향을 주었다.

에덴과 엠마는 종소리를 듣고 아래층으로 달려 내려왔다. 쌍둥이들은 이제 아이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종종 언니나 오빠한테 아이 취급을 받아서인지 나이 든 10대처럼 대해주는 에이드리안을 큰 언니처럼 따랐다. “에이드리안!” “에이드리안!”

“헤이, 얘들아!” 에이드리안은 내 막냇동생들을 보고 밝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축구 연습 어땠어?”

“재밌었어!” 엠마가 싱글벙글 웃으며 대답했다. “감독님이 날 선발 출전시켜준대!”

“모두 돌아가며 선발 출전하는 거라구.” 에덴이 심술을 부렸다.

쌍둥이들이 서로 말다툼을 해대자 에이드리안이 나를 바라보고 눈을 굴렸다. 나는 고개를 젓고 거실을 가자는 손짓을 했다.

“우, 에이드리안!” 에덴은 청중을 잃은 걸 깨닫고 급히 끼어들었다. “옷 고르는 걸 도와줘, 언니.” 에덴은 에이드리안의 손을 끌어당겼다.

“이번 주 토요일에 우리 친구인 미셸이 생일 파티를 열거든. 근데 남자애들도 초대했대.” 엠마가 설명했다.

“벤한테도 조금 도움을 받아봤지만, 아무래도 언니 패션감각이 더 낫지 않겠어?” 에덴은 나를 보고 씩 하는 미소를 지었다.

에이드리안은 나한테 눈을 반짝이며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당연하지, 숙녀분들. 도와줄게.”

쌍둥이들은 신이 나서 자기들방으로 에이드리안을 잡아당겼지만, 에이드리안은 마지막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어디 가지마, 벤. 토미 카스트레일에 대한 조언을 듣고 싶거든.”

“조언?”

“걔하고 몇 주 동안 데이트하고 있는데, 너 걔에 대해 아는 게 있으면 알려줘야 해.”

“어, 그러지 뭐.” 나는 눈썹을 들어 올렸다. 에이드리안 데니스가 나한테 남자에 대한 조언을 듣는다고? 뭐 친구 좋다는 게 뭐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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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았어, 알았어. 미분을 하기는 했어.” 린 애리언은 얼굴을 찡그리고 콧등을 씰룩거렸다. “하지만, 적분만큼 헷갈리네.”

“이건 단지 미분계수를 구한거라구.” 나는 손을 흔들어가며 요점을 설명하려 했다.

아담한 브루넷은 내 손을 바라보다가 킥킥대며 웃었다. “뭐 도루를 하라고?”

내가 봐도 손동작이 바보스럽기는 했다. 나는 얼른 손을 내리고 껄껄대며 웃었다. “화이트보드 앞에선 그럴싸하게 보일 텐데 말이야.”

“바지 주머니에 찔러두고 다니는 걸 본 것 같은데?” (주-둘둘 말 수 있는 휴대용 보드를 말하는 듯, 참고- 벤은 수업을 녹음하는 테이프 레코더도 들고 다닙니다.) 린은 팔짱을 끼고 미소를 지었고

나는 아랫도리를 힐끔 내려다보고 나서 미소를 지었다. “필요 없어. 널 보는 것만으로도 좋은데 뭐.”

린은 내 말뜻을 깨닫고 놀라 입을 벌렸다. “벤!” 그리고는 킥킥대며 내 어깨를 때렸다.

“미안, 어쩔 수 없었어.”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뭐, 화이트보드가 없더라도 종이를 쓰면 되잖아.” 린은 한숨을 쉬었다.

“가서 공부하는 걸 도와줄까?” 나는 곧바로 항복을 하듯 두 손을 들었다. “공부만, 진짜 다른 의도는 없어.”

린은 또 팔짱을 끼고 어깨를 들썩였다. “섬머한테도 그런 식으로 말했다지. 내 기억이 맞는다면.”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얼굴을 붉혔다. “오, 그건, 그러니깐, 상황이 달랐-”

“진정해, 벤.” 린은 킥킥대며 웃었다. “장난이야, 장난.”

“휴우,” 나는 빤히 보이게 안도하는 한숨을 내쉬었다.

“목요일 괜찮겠어? 금요일에 쪽지 시험이 있어. 그날 우리집으로 와.” 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 부모님이 와 계실 테니까, 별다른 일은 생기지 않을 거야.”

지켜보는 사람이 있을 거라는 말에 왠지 안심이 되었다. “그래, 괜찮을 것 같아.”

수요일 오후 4시쯤에 초인종이 울렸다. 이르게 방문할 사람이 없었기에 슬쩍 궁금한 마음으로 문을 열어주러 갔다.

“헤이, 벤!” 에이드리안이 밝은 오후의 햇살 속에서 눈부신 모습으로 서 있었다. 지평선 위에 걸려 있는 태양이 온누리를 밝게 비추고 있었다. 배가 울렁댔고 심장이 두근댔다. 누구라도 즉시 기분을 밝혀 줄 만큼 매혹적인 모습이었다.

“꽤 일찍 왔네.” 나는 들어오라는 손짓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 이르건 늦건 에이드리안을 쫓아버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좀 따분해서. 오늘은 치어리더 연습도 없고 숙제도 벌써 다 해놓았거든. 별일 없다면 이야기를 나누러 와도 반대할 것 같지 않아서.”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그럼.”

에이드리안은 앞질러 거실로 가면서 매 걸음 자연스럽게 엉덩이를 씰룩거렸다. 따듯한 날씨 덕에 등이 환하게 내보이는 얇은 홀터 탑을 입고 있었는데 브라의 하얀 택이 등 뒤의 옷 사이로 삐져나와 있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태그를 잡아 안으로 찔러넣었다.

에이드리안은 내 손길을 느끼고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다. “뭐?”

“오, 어. 그러니깐, 택이 삐져나와서.”

에이드리안은 등에 손을 대고 택을 만져보았다. 그리고 살며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고마워, 벤.”

나는 살짝 얼굴을 붉혔다. “언제든지.”

에이드리안은 돌아서서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고 그 충격으로 커다란 젖가슴이 도저히 외면할 수 없을 만큼 매혹적인 모습으로 출렁였다. 에이드리안도 내 눈길을 알아차렸지만, 자기 눈을 바라볼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기다려주었다. “마실 것 좀 갖다 줄까?”

“아니, 괜찮아. 저녁때까지 기다릴게.” 그리고는 맞은편에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개구쟁이들이 안 보이네?”

“쌍둥이들은 축구 연습하러 가서 오지 않았고 브룩은 친구들을 만나러 나갔어. 집에는 우리만 있는 셈이야.”

에이드리안은 뭔가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너 알아? 너희 집에 우리끼리만 있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는 걸.”

“진짜?” 나는 눈썹을 들어 올렸다. “그럴 리가 있나?”

“진짜야, 예전엔 늘 우리집만 사용했었어.” 에이드리안은 어깨를 으쓱였다.

“뭐,” 나는 가벼운 목소리로 농담삼아 지껄였다. “맘이 내키면, 내 침대를 구경시켜 줄 수도 있는데.”

“그런 농담은 하는 게 아냐, 벤.” 에이드리안은 굳은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나는 에이드리안의 대꾸에 놀라서 두 손을 들고 사과했다. “미안, 미안.” 그리고 얼른 주제를 바꿨다. “토미하고는 잘돼가?”

에이드리안은 눈을 굴렸다. “끝났어. 알고 보니 못된 놈이더라고.”

“거봐, 내 말이 맞지.” 나는 혀를 찼다.

“맞아, 진짜 그랬어.” 에이드리안은 무릎을 끌어안았다. “하지만, 이젠 괜찮아. 지금은 카일 맥긴리하고 데이트하고 있거든.”

나는 한 덩치 하는 4학년 애를 떠올리며 눈썹을 들어 올렸다. “벌써?”

에이드리안은 눈길을 피하고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는 얼굴을 찡그리고 무거운 목소리로 토로했다. “난 외로운 게 싫어, 벤. 난 남자애가 날 떠받드는 게 좋아. 알겠어?”

도온과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던 게 떠올라 한숨이 나왔다. “알아...”

에이드리안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언제 대화가 끊겼냐는 듯이 다시 입을 열었다. “카일은 훨씬 착한 것 같아. 성격도 무던하고, 나한테 모든 걸 양보해.”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잘 알지 못하는 애라서 조언해줄 게 별로 없어.”

“괜찮아.” 에이드리안은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 “그것 말고도 얘기할 게 많아. 예를 들어, 내일 방과 후에 린한테 놀러 갈 거라며?”

나는 눈을 굴렸다. “미적분 공부를 도와주러, 미적분, 에이드리안. 세상에서 젤 섹시하지 않은 주제라구. 아무 일도 생기지 않을 거야.”

“아님 말고.”

“린하고는 단지 친구일 뿐이라고, 게다가 부모님도 와 계실 거래.”

“딱해라.” 에이드리안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린은 지난봄에 트레버하고 일이 있고 나서는 한 번도 남자애랑 함께한 적이 없어. 걔도 이젠 제대로 된 대접을 받을 때가 됐어.” 예쁜 블론드는 린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내가 적격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에이드리안의 말을 듣자마자 나한테 깔려 몸부림치는 린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나 나는 고개를 저으며 야한 생각을 떨쳐내려 애를 썼다. 분명히 린은 함 박아주고 싶을 만큼 귀여웠다. 그러나 도온한테는 충성하겠단 맹세를 저버리고 싶지 않았고 여자애들하고는 육체적이지 않은 우정을 유지하고 싶었다. “절대로 그런 일은 생기지 않을 거야. 에이드리안, 난 새로운 벤이라구.”

“뭐, 걔가 예전 벤이랑 같은 사람이라면, 새로운 벤도 맘에 들어.” 에이드리안은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마치 경애하는 듯한 눈빛으로 내 눈을 응시하고 다리를 토닥여 주었다. 블쑥 에이드리안한테 키스하고픈 충동이 일었다. 우리를 둘러싼 세상이 시간을 멈추고 적막이 흘렀다.

“오, 헤이!” 한 소녀의 목소리가 총알처럼 튀어나와 우리의 세계를 박살 냈다. 우리는 못된 짓을 하다가 들킨 것처럼 화들짝 놀라 잽싸게 떨어졌다.

에이드리안은 재빨리 수습했다. “오, 브룩, 깜짝 놀랐잖아.”

여동생은 어깨를 으쓱였다. “왜? 야한 짓이라도 하고 있었던 거야?”

내가 우물쭈물하며 뭐라 변명을 하려는 순간 에이드리안이 손을 저으며 말했다. “아니, 이제 벤하고 난 단지 친구일 뿐이야. 얘한텐 도온이 있고 나도 내 생활이 있어. 맞지, 벤?”

“어, 맞아.”

“뭐,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니깐.” 브룩은 어깨를 으쓱였다. “참, 치어리더 연습 때 웃긴 일이 생겼어. 데비가 2군 치어리더팀의 나랑 신입들한테 못되게 군 것 얘기했지? 근데 이번 주 들어서는 무척 다정하게 대해주더라구.”

에이드리안은 환하게 미소했다. “그랬을 거야, 내가 손을 써 뒀거든.”

“정말?” 브룩은 더욱 환하게 미소했다. 그리고는 킥킥대며 에이드리안한테 몸을 던져 힘껏 포옹을 했다. “고마워... 언니가 짱이야!”

브룩이 포옹을 풀었을 때에는 에이드리안의 눈이 촉촉해져 있었다. “별일 아냐.”

브룩은 환한 얼굴로 방방 뛰며 거실을 나갔고 에이드리안은 흐뭇한 미소로 브룩을 바라보다가 나한테 고개를 돌렸다. “어디까지 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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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너 오늘 밤 재미 볼 계획이구나?” 캐시디는 씨익 하고 웃으며 내 어깨를 꼬집었다.

나는 옆자리에 점심을 내려놓는 캐시디를 눈썹을 세우고 지켜봤다. “허?”

“오늘 데이트하는 거 아냐?” 캐시디는 메간을 쳐다보며 대꾸했다.

중국계 전-여자친구는 나한테 얼굴을 돌리더니 금세 뭔가 알았다는 식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오!”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왜 다들 장난을 치는 걸까? 나는 괜히 역정이 나서 큰소리로 외쳤다. “뭐가?”

다들 나를 쳐다봤다. 샌더스 쌍둥이와 다니엘은 나처럼 어리둥절해하는 것 같았다. 마침내 캐시디가 대답했다. “너 수염 깎았잖아. 뭐 대수로운 건 아니지마는 넌 보통 월, 수, 금요일에 수염 깎고 다른 날은 그냥 내버려두잖아. 그런데 오늘은 목요일이야.”

“그래서?”

캐시디는 분명히 콧방귀를 뀌었다. “넌 평소에 저녁에만 샤워하는데 오늘은 아침에 샤워했어. 게다가 평소 아침에는 살짝 린스 같은 것만 하고 오는데, 오늘은 아침부터 샴푸도 하고 비누칠도 하고 아주 말쑥한 차림으로 학교에 왔어.”

“좀 깔끔해 보이고 싶은 게 죄가 되나?”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아직 결정타가 남았지.” 캐시디는 내 가슴을 가리키며 메간을 쳐다봤다.

메간은 미소를 지었다. “셔츠.”

“셔츠가 어때서?”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바나나 리퍼블릭에서 산 반팔 져지 폴로 티 중에서 하나일 뿐이었고 그동안 쭉 입던 옷이었다. 새것도 아니고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캐시디는 킥킥대며 내 옷깃을 잡아당겼다.

“헤이, 헤이!” 나는 캐시디 손을 쳐냈다. “구겨지잖아!”

“봤지!” 캐시디는 답이라도 나온 것인 양 좋아했다. “이 셔츠는 네가 젤 좋아하는 옷이라구.”

“아닌데.” 나는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메간이 눈썹을 세우고 거들었다. “아니긴 뭐가 아냐. 넌 우리랑 데이트할 때마다 그 옷을 입었어. 넌 어깨선과 허리선을 살리는 그 옷을 좋아해. 게다가 그 옷을 입은 걸 본 게 한 달이 넘은 것 같은데 예고도 없이 목요일에 입고 왔잖아.”

“특별한 의미가 없다는데도 그러네. 아마 한동안 입지 않아서 한 번 입어 보고 싶었던 것 같아.”

“그렇겠지.” 이번엔 캐시디가 눈썹을 세웠다. “어디 한 번 말해 보시지. 오늘 학교가 끝나고 여자애를 만나지 않을 거라고.”

“난-” 막상 말을 하려고 했지만, 기운만 빠졌다. “데이트 같은 건 아냐.”

“하지만, 여자애를 만날 거고 잘 보이려고 하고 있잖아.” 메간은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나는 눈을 굴렸다. “린 애리언을 만나려는 거야. 미적분을 공부하러. 우린 친구일 뿐이라구.”

“공부하러 간다면서 그렇게 때 빼고 광을 냈단 말이야?”

“아니!” 나는 얼굴을 찌푸리다가 문득 깨닫는 게 있었다. “뭐...아마도...”

캐시디와 메간은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마주 보았다.

“데이트 같을 걸 하러 옷을 차려입은 게 아니라구. 단지...난 오랫동안 누구를 방문한 적이 없어. 아마 무의식중에 골라 입은 것 같아. 무슨 말이냐면, 데이트를 할 마음도 없을뿐더러 잘 보여야 할 여자애도 없어. 너희 여자들도 데이트를 나가는 게 아니면서 겉옷과 매치가 되는 속옷을 골라 입은 적이 있을 거 아냐? 보여줄 의도는 없지만, 문득 일상을 깨고 싶은 마음에 평소보다 말쑥한 차림을 한 때가?”

캐시디는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진심으로 하는 말인데, 린을 어떻게 해보려는 의도는 눈곱만큼도 없어. 너희도 걔를 알잖아. 걘 단지 친구일 뿐이라구. 그리고 나한텐 도온이 있어. 알겠어?”

케니가 내 옆으로 왔다. “그럼. 단지 여자애를 만나 수학공부를 하러 새벽부터 샤워에다 수염을 깎고 제일 좋은 옷으로 차려입었단 말이야?”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너 게이가 아닌 건 확실해?”

케니는 이미 내 주먹을 막으려고 방어자세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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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 벤!” 린이 문을 열어주었다. 귀여운 브루넷은 맨발에 면 반바지와 순면 티를 입고 있어서 평소보다도 더 작고 더 어려보였다. 더구나 브라 끈이 보이지 않는 걸 알아차리고는 심장이 박동 하나를 건너뛰었다. 린은 꽤 예쁘게 보였다.

그러나 선수를 빼앗기고 말았다. “너 엄청 말끔해 보여!”

나는 눈썹을 세우고 별일 아니라는 듯이 대꾸했다. “학교에서 입은 옷 그대로야”

“맞아, 하지만 학교에서는 말해줄 틈이 없었어. 어서 들어와.” 린은 미소를 짓고 계단을 향해 손짓했다.

“어, 부모님한테 인사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오, 아직 돌아오지 않으셨어. 엄마는 네 시에 오신 댔고 아빠는 다섯 시에 오실 거래. 그때 인사시켜줄게.”

“오, 어, 알았어.” 다소 심장이 빨라지는 걸 느끼며 집안으로 들어섰다. 린이 앞장서 계단을 올랐다. 그리고 면 반바지에 둘러싸인 탱탱한 엉덩이를 감상하며 입안에 침이 고였단 사실을 숨기지 않겠다.

진정해, 벤. 맥박을 정상화 시키라구... 그러나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 월요일 밤 이후로는 브룩을 박아주지 못해서 욕구가 쌓여 있었다. 그러나 그럭저럭 진정시켰다고 확신한다.

린을 따라 방으로 들어서고 처음으로 눈에 들어온 건 침대에 팔꿈치를 대고 엎드려 있는 헤더 윌킨슨의 환한 젖가슴 골짜기였다.

“괜찮겠지?.” 린은 짙은 머리카락을 출렁이며 나한테 고개를 돌렸다. “헤더도 수업 시간은 다르지만, 미적분을 듣고 있어. 얘도 내일 쪽지 시험을 볼 거라고 해서 함께 공부하자고 데려왔어.”

일순 눈이 휘둥그레졌다. 헤더는 까닥하면 젖꼭지를 드러낼 것만 같은 목이 깊게 파인 웃옷을 입고 있었다. 짙은 머리를 한 치어리더는 바다색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헤이, 벤.”

“헤이, 헤더.” 의연하게 답례를 했지만, 헤더의 눈길이 내 아랫도리로 쏠리는 것을 보고는 속으로 괴로운 신음이 터져 나왔다. 반바지를 내려다보니 이미 텐트가 처져 있었다. 위로 고개를 들자 헤더가 얄궂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우, 린, 부모님이 귀가하기 전에 우리 둘이 박힐 시간이 될까?”

“헤더...” 린은 헤더를 노려봤다. “공부를 하쟀지, 섹스를 하자고 한 게 아냐.”

“제발, 에이드리안한테 물어보니깐 자기는 상관하지 않는대.”

“헤더...”

“알았어.”

진정해, 벤. 헤더는 날 놀리는 것뿐이라고. 린을 바로 옆에 두고 진짜 그러기야 하겠어? 더구나 부모님도 곧 귀가하실 텐데 말이야. 별일 없을 거야.

별일 없을 거라구. 

린은 나를 꼭 껴안아 주었다. “고마워, 벤. 덕분에 시험 걱정을 덜게 됐어.”

“나도 재밌었어.” 나는 우아하게 고개를 조아렸다.

“아니, 아직 끝나지 않았어.” 헤더가 킥킥대며 나한테 포옹을 해왔다. 이번에는 내 가슴팍에 노골적으로 젖가슴을 눌러대며.

“작작 좀 해, 헤더.” 린이 대놓고 짜증을 부렸다. “벤도 참 용하지. 네 짓거리를 공부하는 내내 참아냈잖아.”

“뭘 어쨌다구?” 헤더는 순진한 척 킥킥대며 아랫도리를 비벼댔다. 지금까지는 헤더의 수작에 대응하지 않았다. 그러나 헤더를 말리거나 밀어내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진심은, 헤더의 관심이 싫지는 않았다. 도온이 북 캘리포니아에 있어서 해줄 수 그런 관심이. 그래서 가끔 헤더의 수작에 관심이 있는 척을 했고 헤더도 내 태도를 보고 두 시간 동안 쉬지 않고 돌진해왔다.

린은 헤더의 등 뒤로 걸어가 투수처럼 와인드업을 하고는 치어리더 친구의 엉덩이를 갈겨버렸다.

“헤이!” 헤더는 내 목을 감은 손을 풀고 뒤를 돌아보고 따졌다.

린은 눈을 굴렸다.

“넌 궁금하지도 않니? 너도 학교에 떠도는 얘 소문을 들어봤을 것 아냐?. 게다가 우린 그 소문의 장본인하고 두 시간 동안이나 한 침실에 있었다구!”

일순 린과 눈이 마주쳤다. 우리는 지난 봄 방학 때 서로 오랄을 해준 적이 있었다. 귀여운 브루넷과 69 체위를 한 일은 결코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그러나 주말 동안 약초를 피워댄데다가 자극적인 게임을 하느라 정신이 몽롱해진 상태에서 벌어진 일이었고 단 한 번으로 끝내야 함을 암묵적으로 약속한 일이었다.

그러나 헤더는 모르고 있었다. 파티에 참석한 아이들은 마치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는 듯이 그 일에 대해 함구했다.

“작작 좀 해, 헤더. 처음부터 공부하려고 모인 거고 부모님도 계시잖아.”

“알았어, 알았어.” 헤더는 한숨을 쉬고 욕정이 깃든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적어도 오늘 밤 자위를 할 거라면 날 상상해야 해. 벤. 그래도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을게. 혹은 직접 나한테 들리면 상상하지 않아도 되는데.”

“헤더!”

“알았어, 알았다구.” 헤더는 내 뺨에 잽싸게 뽀뽀를 하고 뒤로 물러섰다. “미안해, 벤. 너한테 여자친구가 있는 줄 알면서도 몹쓸 짓을 한 것 같아. 하지만, 박아본 게 워낙 오래돼서 어쩔 수 없었어. 그리고 꼭 알아둬야 할 건, 난 네가 원하기만 하면 무슨 짓이든 해줄 수 있어. 아무 조건 없이 말이야.”

“헤더!”

헤더는 킥킥대며 웃었다. “바이, 바이.” 그리고는 사뿐히 방을 나가버렸다.

린은 한숨을 쉬고 어깨를 으쓱였다. “미안해, 쟨 몇 주 전에 남자친구랑 헤어졌어. 하지만, 이렇게까지 대범하게 나올 줄은 몰랐어.”

“괜찮아, 별일 없었잖아.” 그러나 속으로는 자지가 가라앉길 빌었다. 나는 작별인사로 린과 가볍게 포옹을 하고 등을 토닥여주었다.

집으로 차를 몰면서는 도온을 떠올렸다. 무척 보고 싶었고 당장에라도 함께하고 싶었다. 사실 헤더의 그리 미묘하지 않은 유혹 덕분에 도온의 알몸이 보고 싶어졌다.

상상만 해도 즐거웠다. 알몸인 도온이라. 내 여자친구이자 평생 단짝친구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예쁜 여자로 성장했다. 늘 귀여운 아이라고 생각했고 데이나가 자라는 모습을 보고 도온의 잠재성을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도온이 열여섯, 열일곱이 되었을 때 이토록 아름다운 베이브가 되어 있을 줄은 꿈에서도 상상 못한 일이었다.

그러나 도온의 모습을 떠올리려고 애를 썼지만, 헤더의 얼굴, 젖가슴, 몸매가 비집고 들어와 도온의 모습을 방해했다. 도온에 대한 사랑이 줄어들어서가 아니었다. 단지 최근에 라이브로 몸을 비벼댄 여자애가 헤더였던 반면에 도온의 모습에 대한 기억은 다소 선명함을 잃고 있었다.

내 자지는 어느 여자건 상관하지 않았다. 그놈은 쇠꼬치처럼 단단해져서 마구 껄떡대고 있었다. 미적분이라는 게 호락호락하지 않은 과목이라는 게 천만다행이었다. 집중을 요하는 공부가 아니었다면 린이나 부모님을 상관하지 않고 내 결심을 무너뜨릴 수도 있었다. 나는 그만큼 꼴려 있었다.

아무나 당장 박고 싶었다. 핸드폰에는 헤더의 전화번호가 저장되어 있었다. 지금 당장 전화를 해야겠다. 도온은 될 대로 돼라지. 좀전의 제안이 아직도 유효한지 물어보고 그렇다고 대답하면 헤더를 바닥에 내동댕이쳐서 혼쭐나게 박아주고 싶었다.

진짜 박고 싶어 환장할 지경이었다. 아래턱에 경련이 일었고 운전대를 깨물어버리고 싶었다. 팔도 부들부들 떨렸고 숨결도 거칠어졌다. 도나 킨케이드의 전화번호를 어디에다 뒀더라? 전화번호를 적어둔 종이쪼가리가 아직 방구석에 있을까? 전화번호를 핸드폰에 저장해 뒀던가? 이메일이 아직 남아 있을까?

주차도 똑바로 할 수 없었다. 나는 떨리는 몸을 이끌고 집으로 뛰어들어갔다. 에덴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나를 보고 반색했다. “헤이, 벤.”

“지금은 못 놀아줘.” 나는 손을 내저어 에덴을 쫓아버리고 오줌이 마려운 모양새로 황급히 계단을 올랐다.

목적지가 눈에 들어왔다. 다섯 시 반이니만치 부모님이 집에 계실 것이다. 그러나 상관하지 않았다. 나는 싸야만 했다.

노크도 하지 않고 문을 박차고 안으로 들어갔다. 브룩은 침대에 앉아 책을 읽다 말고 놀라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발광한 내 모습을 멀뚱멀뚱 지켜보았다.

여태까지는 브룩한테 먼저 섹스해달라고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캠프에서는 상호 이해 하에 아침 일과를 수행한 것뿐이었고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는 늘 브룩이 먼저 찾아오곤 했다. 드물게는 같이 놀아본 적이 오래되었다는 말을 넌지시 비추기는 했지만 늘 그쯤에서 그치고 브룩이 제 발로 찾아오길 기다렸었다.

그러나 이날엔 부모님과 다른 동생들이 집안에 있는 데도 간절한 목소리로 빌었다. “브룩, 제발...”

고맙게도, 브룩도 내 절박한 처지를 감지한 것 같았다. 브룩은 씨익 하고 웃으며 문을 잠그란 고갯짓을 했다. 그리고 문을 굳게 걸어잠그자 웃음을 머금은 얼굴로 옷을 벗으며 나이답지 않게 끈적끈적한 목소리로 물었다. “나 필요해? 오빠?”

나는 발발 떨어대며 간신히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브룩, 제발.”

전희는 없다시피 했다. 나는 쫓기듯 옷을 벗겨 내며 발정이라도 난 듯이 키스했다. 브룩이 내 열의에 반응해서 금방 달아올랐던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래서 내 자지를 아무런 고통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보지를 적셔놓을 수 있었다. 보지는 엄청 조여댔지만, 몸으로는 나를 고분고분 따랐다. 그리고 보지 속 깊숙이 잠겨 들어갈수록 더없는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

“오오 … 브룩, 베이비.” 행복한 한숨이 터져 나왔다.

“박아 줘, 오빠.” 브룩은 나한테 깔려 속삭였다.

곧바로 나는 내 여동생의 몸에 반복된 절구질을 해댔다. “오, 시팔... 오, 시팔... 오, 시팔.” 브룩이 끙끙댔고 나도 끙끙댔다.

불과 몇 분도 지나지 않아 뱉어달라고 아우성치던 끈끈한 크림이 쿨럭이며 브룩의 몸속으로 쏟아져 나왔다. 브룩은 보지 속 용기가 습한 열기로 빼곡히 들어차는 걸 느끼며 대단한 과업을 성취했다는 듯 내 등을 대견스레 토닥여주었다. 그 순간 나는 온몸에서 기운을 잃고 아담한 동생 몸 위에 깔아졌다.

“오오.” 머릿속이 검은 잉크로 칠해진 주름 한 점 없는 박편으로 화했고 절대적인 해방감 속에서 다시금 평온이 찾아왔다.

몇 분이 흐르고 브룩이 깊은 동면을 깨우는 듯 내 어깨를 두드렸다. 나는 의식을 찾고 브룩의 몸에서 내려왔다. 브룩은 잠시 숨을 고르다가 천천히 한숨을 내쉬었다. “얼른 씻어야겠어. 섹스 냄새를 풍기며 식탁에 앉았다간 엄마가 우릴 죽이려 들 거야.”

나는 신음으로 대답했다.

“그리고 벤?” 브룩은 바람이 담긴 목소리로 덧붙였다. “밤중에 내 방으로 와. 또 하고 싶어졌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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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저녁을 먹고 나서 엄마를 도와 설거지를 거들었다. 꼭 해야 할 말이 있었다.

“엄마, 추석(Thanksgiving-추수감사절)에 도온을 방문하고 싶어요.”

엄마는 두 번 눈을 깜박이더니 나한테 시선을 고정하고 아빠를 불렀다. “마이클!”

잠시 후 아빠가 부엌으로 들어오며 우리를 번갈아 쳐다봤다. “무슨 일이데?”

엄마는 미소를 지었다. “우리 아들이 에번스 가족과 추석을 보내고 싶다고 하네요.”

아빠는 우리 가족 특유의 눈썹 들어 올리기를 했다. “목요일부터? 아니면 주말에만?”

‘그래, 가 혹은 아니, 가지 마’라는 내용이 생략된 아빠의 말에 기대감으로 심장이 두근거렸다. “솔직히, 허락해 주는 기간이 길면 길수록 좋겠어요.”

나는 아빠의 표정에서 1박2일밖에 안 되는 신통치 않은 대답이 나올 것 같아 얼른 어깨를 펴고 선수를 쳤다. “금요일 아침에 출발하는 게 제일 좋을 것 같아요. 그렇게 하면 추석 당일에는 집으로 돌아올 수 있어요. 도온도 추석에는 가족과 지낼 수 있고요.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니깐 도온하고는 온전한 3일을 같이 보내는 셈이 되고요.”

엄마는 미소를 지었고 아빠는 대견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가 있어, 하지만... 비행기 표 값은 싸지 않아. 특히 추석 철에는 말이야. 저번 911 난리로 사정이 달라졌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저한테 모아둔 돈이 있어요. 사적인 여행인 걸 알아요. 경비를 달라는 게 아니에요.” 헤더의 수작에 발정 난 일이 떠올라 어깨가 쳐졌다. 브룩이 없었다면 무슨 짓을 저질렀을지 상상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도온이 보고 싶어요. 아빠. 진짜, 진짜 보고 싶어요.”

“도온도 부모한테 얘기했대?”

“글쎄요. 저도 아직 얘기해보지 못했어요. 하지만, 도온도 좋아할 게 분명해요. 전 꼭 갔으면 해요. 도온이 무척 보고 싶어요.”

엄마는 좋아했고 아빠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하지만 내가 제안을 하나 할게. 비행기 표 값은 우리가 대줄게. 대신 다음 주에 마당을 깨끗이 정리하고 담장을 살펴봐서 고칠 게 있으면 네가 다 고쳐놔야 해. 어때?”

나는 바삐 눈을 깜박였다. 오렌지 카운티에서 산호세 공항까지 왕복표 값은 대략 150달러 정도였다. 마당을 정리하는 일은 두 시간이면 뒤집어쓸 수 있었다. 시간당 75불이라, 그래, 그쯤이야 감당할 수 있지. “어, 당연하죠! 할게요!”

엄마는 내가 방방 뜨며 좋아하는 꼴을 빤히 지켜봤다. “좋아, 가서 전화해. 그리고 전화 끊지 말고 가져와. 그 애 엄마한테 할 말이 있으니깐.”

“알았어요!” 나는 이미 내 방으로 달려가느라 어깨너머로 대답해야 했다.

그리고 소식은 전해 들은 도온도 나처럼 좋아했다. 최고로 끝내주는 추석이 될 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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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오후 4시에 초인종이 울렸다. 나는 평소대로 에이드리안한테 문을 열어주었다.

“헤이, 벤!” 에이드리안이 밝은 햇살을 받으며 눈부신 모습으로 서 있었다. 태양이 지평선 위에서 온누리를 밝게 비췄다. 뱃속이 울렁거렸고 심장박동이 빨라졌다.

“카일은 어때?”

에이드리안은 눈을 굴렸다. “끝났어. 하지만, 금요일에 덱스터 헤이그랑 데이트하기로 했어.”

“카일은 뭐가 문제였어?”

에이드리안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 얘긴 하고 싶지 않아, 알았어?”

나는 두 손을 들었다. “알았어, 알았어. 그럼 무슨 얘기 하고 싶어?”

“우! 첼시 레니스 얘기 들어봤니? 걔가...”

나는 미소를 머금고 소파 등받이에 팔꿈치를 짚었다. 가십이나 소문을 퍼트리는 체질이 아니었지만, 요즘에 나도는 이야기를 듣는 건 그리 싫지 않았다.

가십을 이야기하다 대학 전공으로 화제가 흘러갔다. 마침, 한창 원서를 작성하는 시기였는데 에이드리안은 정치학과 경영학을 사이에 두고 가부를 나누며 내 의견을 물어봤다. 그러한 주제에 대해 진지하게 말해줄 수 있는 친구는 아마도 내가 유일할 듯싶었다. 그래서 나는 에이드리안의 말을 경청하며 솔직한 의견을 내놓았다.

브룩과 쌍둥이들도 집으로 돌아와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줄도 모르게 저녁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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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 게임 그만 해. 곧 영화 볼 거야.” 엄마는 팝콘 그릇을 들고 거실로 들어왔다.

나는 한숨을 쉬고 엄마 말을 따랐다. 금요일 저녁이 되어서도 데이트 나갈 일이 없었지만 그리 속상하지는 않았다. 월요일에는 GTA III가 출시됐고 호위해야 할 여자친구가 없었기에 남은 시간 내내 게임 연습을 할 수 있었다. 케니는 엉뚱하게 그와 같은 여유를 부러워했다.

게임을 하는 동안 에덴과 엠마도 소파에 앉아 있었다. 에덴은 나를 등받이 삼듯 기대고 책을 읽었고 엠마는 반대쪽에서 파고들었다. 아빠가 DVD에 미이라 2를 넣는 동안 온 가족이 늘 앉던 대로 자리를 잡았다.

부모님은 2인용 안락의자에 앉아 서로 기대고 있을 테고 브룩은 1인용 의자에 삐딱하게 누워 한쪽 팔걸이에 두 다리를 걸쳤다. 엠마는 내 옆구리에 그대로 달라붙어 있었고 에덴은 내 팔에 머리를 기댔다.

도온과 함께할 수 없어서 제일 아쉬운 점은 서로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대화는 친구들과 하면 됐고 에이드리안하고는 철학적인 이야기도 나눴다. 브룩은 꽤 만족스러운 잠자리 상대였다. 그러나 서로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 제일 그립고 아쉬웠다.

브룩하고는 늘 이목을 조심해야 했기 때문에 일을 마치면 몰래 제 방으로 돌아가야 했다. 한번은 브룩과 소파에서 기대고 앉아있는 모습을 본 엄마가 엄한 표정을 지어 보인 일이 있었다. 쌍둥이들의 눈길을 조심하라는 눈치를 주면서.

쌍둥이들한테는 참된 동기간의 애정을 느꼈다. 쌍둥이들은 늘 귀엽고 다정한 동생들이었다. 그러나 여자친구와 몸을 맞댄 것과는 게임이 되지 않는다.

하루바삐 추석이 다가오기만을 바라는 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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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0월 31일 4학년

할로윈인 수요일 오후 6시에 초인종이 울렸다. 나는 평소대로 에이드리안이거니 생각하고 문을 열어주었다. 트릭 오어 트릿(trick or treat-대접이 시원찮으면 해코지 할거여!)이기에는 지나치게 이른 시간이었다.

“헤이, 벤.” 에이드리안은 피곤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 두 팔로 윗몸을 꼭 끌어안은 모습이었다. 두꺼운 구름이 태양을 가리고 온누리를 잿빛으로 물들였다. 할로윈에는 제격인 분위기였지만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조금은 따듯했으면 했다.

“헤이, 어서 들어와.” 나는 안으로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고 에이드리안은 다소 굼뜬 동작으로 힘들게 발을 디뎠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그러나 정신이 팔린 모습이었다. “최근에 잠이 모자랐어.”

“덱스터는?”

“알게 뭐야?” 에이드리안은 어깨를 으쓱였다. “끝났어.”

“벌써?” 나는 눈썹을 들어 올렸다. 사실 그리 놀랄 일도 아니었다. 에이드리안은 생수병을 버리듯 남자친구를 갈아치웠다. 그러나 최근에는 지나치게 주기가 빨랐다. “한 닷새쯤 되나?”

에이드리안은 어깨를 으쓱이고 거실로 향했다.

나는 여왕님 모시듯 열과 성을 다해 헌신하던 덱스터의 모습을 떠올리며 에이드리안을 뒤따랐다. “그럴 거면서 남자친구로 소개할 건 뭐고 점심테이블에 초대한 건 뭐냐고?”

에이드리안은 듣기 싫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고 나를 외면하며 이마에 손가락을 짚었다.

나는 에이드리안의 옆자리에 앉았다. 우리는 한때 짧게나마 사귀었던 전력과 최근 한두 달 동안 수요일마다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기 때문에 서로에 대한 이해가 깊어져 있었다. 나는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에이드리안의 어깨에 손을 얹고 차분히 물어보았다. “에이드리안 뭐가 문젠데?”

“아무것도, 난 끄떡없어.” 에이드리안을 내 시선을 외면하고 무심히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신경질적인 손놀림으로 머리카락을 고르는 모양새를 보고 더욱 걱정이 되었다.

“두 달 동안 벌써 세 번이나 남자친구를 차버렸어. 에이드리안.” 나는 조심스럽게 걱정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뭔가 문제가 있어.”

갑자기 에이드리안이 분노와 좌절이 뒤섞인 얼굴로 나를 돌아보았기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내가 데이트하는 남자들은 왜 하나같이 첫 데이트부터 섹스해줄 거로 단정하는 거지?” 에이드리안 실제로 내 얼굴에 대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섹스, 섹스, 오직 섹스! 날 쳐다보는 남자들은 오직 섹스만 생각해! 예전 남자친구들한테 꼭 그랬던 것도 아닌데 말이야! 로비 페더슨한테는 한 달 넘게 기다리게 했고 제이크 하버한테는 두 번째로 데이트할 때도 젖꼭지를 못 만지게 했단 말이야!”

“남자들은 단정하는 게 아냐, 에이드리안. 그랬으면 하고 바라는 것뿐이라고. 그 애들은 기껏해야 10대 남자애들이라고.” 나는 에이드리안의 어깨를 달래듯 쓸어주었다. “걔들은 일이 진전될 수 있도록 네가 자기들을 오랫동안 좋아해 주기를 바랄 뿐이라구.”

“그렇다고 해도 내가 좀 더 엄격한 기준을 원한다면 어쩔 건데? 시간을 끌고 말고를 떠나서 말이야? 에이드리안은 초점을 잃은 눈길로 또다시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진짜 어처구니가 없어. 오늘 점심을 먹고 나서 덱스터가 날 한쪽으로 끌고 가서 묻더라고. ‘언제까지 함께해야 그걸 하게 해줄 거야?’ 얼마나 오랫동안? 얼마나 오랫동안? 마치 내가 모래시계고 모래가 다 떨어지면 자동으로 팬티를 벗어줄 것처럼 말이야. 시팔!”

“무슨 문제라도 생겼니?” 엄마가 염려하는 얼굴로 머리를 삐죽 내밀었다.

에이드리안은 즉시 안색을 풀었다. “죄송해요. 소리치려고 한 게 아니었어요.”

“괜찮아. 하지만, 쌍둥이들이 집에 있을 때는 험한 말을 자제해주었으면 좋겠구나.”

“예, 당연히 그래야죠.” 에이드리안은 송구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한테 향한 엄마의 엄한 얼굴이 말했다. ‘잘 처리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에이드리안의 무릎에 손을 얹고 폭풍이 휘몰아치는 헤이즐 눈을 골똘히 응시했다. “에이드리안, 저녁까지는 좀 시간이 남았어. 산책하러 나갈래?”

예쁜 블론드는 천장을 바라보고 눈물을 참았다. 그리고 길게 숨을 내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잠시 후 우리는 보도 위를 걷고 있었다. 나는 집을 나서고 에이드리안의 집이 있는 방향인 오른쪽으로 꺾으려고 했지만, 에이드리안은 내 손을 잡고 왼쪽으로 끌어당기며 그쪽으로 가고 싶다는 의향을 내비쳤다. 사실, 방향은 별다른 의미가 없었기 때문에 에이드리안의 의도에 따랐다. 그리고 에이드리안은 내 손을 놓아주려고 하지 않았다.

내가 뜸을 들이자 에이드리안이 먼저 입을 열었다. “도대체 이해가 안 돼. 무슨 말이냐면, 맞아, 나 섹스 좋아해. 꽤 쉽게 달아오르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걸 피하지 않아. 내 말은, 꽤 많은 남자를 겪어보기는 했지만, 내가 아무나 가리지 않고 자는 걸레라는 건 아냐. 하지만, 일단 이 남자다 싶으면 주저하지 않고 쟁취해야 해.”

나는 입을 열려다 말고 입술을 깨물었다. 따지고 보면 나도 한때는 에이드리안의 목표물이었던 적이 있었다. 이미 임자가 있었던 건 둘째치고서라도.

“하지만, 요 몇 달 동안은 예전 같지 않았어.” 에이드리안은 땅이 꺼지라 한숨을 내쉬며 내 손을 꼭 쥐어 잡았다. “네 말이 맞아, 개학하고 나서 남자친구를 세 명이나 뒀었어. 하지만, 섹스를 한 애는 한 명도 없어. 뭐, 걔들이 귀엽기는 하더라구. 나도 달아올랐고 하지만... 하지만...도저히 그럴 수 없었어.”

“하기 싫었어?”

“아니, 아니, 하고 싶었어.” 에이드리안은 후회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내젓다가 나를 똑바로 바라봤다. 금빛 머리카락이 얼굴로 흘러내려 눈이 반쯤 가려진 모습이었다. “너도 날 잘 알잖아, 벤. 일단 달아오르면 날 말릴 수 없단 걸.”

눈깔이 튀어나오고 자지도 튀어나오려 했다. 맞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시기와 장소가 적절하지 않았다.

“난...” 에이드리안은 등이 꺼진 어느 조용한 집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마치 한 바퀴를 모두 채우겠다는 듯이 서서히 몸을 돌리며 내 손을 다른 손으로 바꿔 잡았다. “토미하고는 도저히 그럴 수 없었어. 데이트한 지 2주가 지나고 서로 블로우잡을 해주기는 했어. 하지만, 걔가 날 올라탔을 때는 갑자기 두려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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