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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각자의 삶 (2/18)

1장 각자의 삶

2001년 8월 여름방학

“적어도 열여덟 살 이상인지 동의해야 한다구? 피, 하라면 해야지!” 브룩이 ‘동의합니다.’라고 써진 대화 상자를 클릭하자 모니터는 금세 온갖 자세를 한 포르노 배우 사진으로 가득 채워졌다. 한껏 달아오른 열다섯 살 소녀는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지휘봉을 휘두르는 것처럼 컴퓨터 마우스를 요리조리 바쁘게 움직였다.

우리집은 케이블 인터넷을 달았는데도 브룩이 찾은 30초짜리 공짜 동영상이 뜨는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브룩한테는 그런 맛보기 동영상만으로도 달아오르는데 아무런 하자가 없었다.

당연히, 내 자지가 국물을 줄줄 흘리는 보지를 들락대는 것도 한몫하고 있었다. 브룩은 등받이를 앞으로 안고 의자 위에 무릎을 꿇고 있었고 나는 브룩의 등 뒤에서 탱탱한 엉덩이를 붙들어 잡고 조여대는 보지에 느긋이 펌프질을 하고 있었다.

“오오, 이렇게 하니깐 진짜 화끈해, 벤.” 브룩은 나직이 소곤대며 모니터를 가렸던 고개를 늘어뜨렸고 가짜 젖가슴을 단 귀여운 브루넷이 부엌 카운터에 엎드린 채 거칠게 배후위로 박히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동영상은 장발의 근육남이 워낙 빠르게 박아대는 통에 깍두기가 생기고 자꾸 재생이 끊겼다. 그리고 컴퓨터 스피커에서 나오는 신음소리도 브룩의 흐느낌과 내 신음소리에 파묻혀 거의 들리지 않았다.

“오, 오, 오.” 브루넷 포르노 배우가 신음했고

“오, 오, 오.” 내 브루넷 여동생이 신음했다.

동영상은 여배우의 벌린 입을 클로즈업하며 갑자기 멈췄다. 그러나 브룩은 상관하지 않고 자기의 생생한 오르가즘에 몰두했다. 브룩은 내 허리에 맞서려 더욱 힘껏 등받이를 잡았다.

나는 손바닥으로 브룩의 가는허리를 쓸어주었다. 캠프 생활을 해서 피부가 보기 좋게 그을려 있었고 감촉도 기가 막히게 좋았다. 나는 볼기짝 곡선을 따라 손가락을 달렸다. 꼬리뼈에서 엉덩이의 갈라진 틈까지. 나는 브룩이 피치를 올리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 순간이 되자 브룩의 엉덩이에 엄지를 꽂았다.

브룩은 즉시 등골을 굳히고 머리를 공중에 내던지며 엉덩이를 크게 한 번 덜컥댔다. 그리고 절정을 울부짖는 외침이 터졌다. “씨이이파아아알!!!”

나도 목전에 거의 다다라서 왼손으로 브룩의 가는허리를 꼭 붙들어 잡고 엉덩이를 가속했다. 나는 브룩의 오르가즘이 이지러지는 것에 맞춰 정상에 도달했고 걸쭉한 크림 덩어리를 브룩의 몸속에 내뿜었다.

나는 두 번이나 더 엉덩이를 찔러대며 정액을 보충해주었고 브룩은 내 엉덩이에 밀려 등받이에 짜부라지게 되었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뱃살을 경련하며 최후의 정액을 짜냈고 브룩은 등받이를 꼭 끌어안고 한숨을 돌렸다.

오누이는 함께 오르가즘의 여운을 음미했다. 잠시 후 나는 자지가 쪼그라든 걸 느끼고 서서히 브룩한테서 빼내 탁자 위의 휴지로 닦았고 브룩한테도 휴지를 건네 불법 행위의 증거가 거실에 남아있지 않도록 뒤처리를 했다.

그때 마침 컴퓨터에서 차임이 울렸고 메신져 창에 짧은 글이 떠올랐다. ‘와우, 진짜 화끈했어!’

브룩은 보지에 휴지를 댄 채 모니터 상단에 달린 웹캠을 쳐다보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진짜 화끈한 아이디어였어, 도온.” 브룩이 마이크로폰에 대고 말했다.

우리는 쌍방향이 아닌 웹 방송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도온은 타자를 쳐야 했다. ‘난 세 번이나 쌌어. 나도 거기에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브룩은 킥킥대며 나한테 고개를 돌렸다. “나도 세 번 쌌어.”

나는 미소를 지으며 브룩이 의자에서 일어서는 동안 키보드를 차지했다. 타자 치기 편안한 자세로 의자에 앉자 브룩이 알몸으로 내 무릎에 앉았다.

새 창을 띄우자 에번스 가족의 거실이 보였다. 그리고 카메라 앵글이 맞춰지며 도온과 디제이의 모습이 보였다.

정확히 말해, 도온만 보였고 디제이는 언니의 아랫도리에 얼굴을 박고 있었다. 곧 도온의 신음이 컴퓨터 스피커를 통해 들려왔다. 그 소리에 내 자지가 새롭게 반응했고 브룩은 반쯤 발기된 자지에 손을 뻗었다.

“음... 오래 걸리지 않았으면 좋겠어.” 브룩이 나직이 속삭였다. “오빤 한 시간만 있으면 쌍둥이를 데리러 가야 하는데, 내가 박히는 모습을 또 보여주고 싶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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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전

매년 캠프에서 돌아오고 난 다음에는 늘 같은 양상으로 새롭게 시작해야 했다. 나와 동생들의 8월 일정표는 한 달 동안 등한시했던 친구들과 만날 약속으로 빼곡히 채워지곤 했다.

올해도 다르지 않았다. 나는 다음날 일요일 아침에 친구들을 만나러 농구장으로 갔다. 다니엘 첸은 진짜 세상으로 돌아온 걸 환영해 주었고 성준과 제임스 케이토도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했다. 그리고 케니 도일은 그리 미묘하지 않은 방법으로 나한테 물었다. “캠프에선 재미 좀 봤냐? 내 장담해. 넌 한 달 동안 인간이 아니라 섹스 머신이었어.”

실제로 그랬다. 저절로 므흣한 미소가 얼굴에 번졌다. 예쁜 걸로 치자면 에이드리안과 자웅을 겨를 만한 블론드와 섹스를 했고 심지어 귀여운 그 애 여동생까지 박아주고 왔다. 젠장, 심지어 내 친동생 처녀를 가지기도 했다.

그러나 섹스만 한 게 아니다. 나는 평생 단짝친구인 도온과 사랑에 빠졌다. 나는 섹스에 대해 신중치 못한 자세를 고치기로 마음먹었다. 비록 도온과 같이 있을 순 없지만 충실할 거란 굳은 결심을 하고. 이제 남자 걸레 벤은 역사가 되어버렸다.

당연히, 아직 내 결심을 테스트해보진 않았지만.

아무튼, 케니하고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어서 고개를 젓고 시선을 피했다. “노 코멘트.”

한발 늦었다. 케니는 내 얼굴에 스친 미소를 놓치지 않았다. “당연히 그랬겠지. 빅 벤! 우리 학교 플레이보이! 돌아온 걸 환영한다. 형제. 내 여자친구한테 가까이 접근하지만 않으면 돼.” 케니는 내 등을 힘차게 갈기며 환영인사를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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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한 시간을 꽉 채워 땀을 흘리고 풀밭에 엎어졌다. 잠시 후 세 명이 일어나 고개를 끄덕이고 주차장으로 걸어갔다.

게토레이를 마시고 있을 때 케니가 내 어깨를 때렸다. “우리집에 게임하러 갈래? 너 캠프에 가 있는 동안 그란 투리스모 신작이 나왔거든.”

나는 게토레이를 한 모금 더 마시고 고개를 저었다. “못 가. 점심때 캐시디를 만나기로 했어. 급히 말할 게 있다고 하더라구.”

“메간도 나온대?” 케이토가 물었다.

나는 눈썹을 들어 올렸다. “어, 아니. 왜?”

잘생긴데다 수줍음이 많은 남자애는 어깨를 으쓱였다. “어, 아무것도 아냐. 신경 쓰지 마.”

마침 케니가 다니엘에게 말을 거는 통에 주의 깊게 생각해보지는 않았다. “너도 올 거지? 아니면 마님한테 전화로 허락을 받아야 하나?”

다니엘은 벌떡 일어나 케니한테 헤드락을 걸었다. “아니! 내가 왜 허락을 받아! 그리고 알았어. 게임하러 갈게.”

성준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갈게.”

케니는 나한테 고개를 돌렸다. “인마, 빼지 말고. 네 사람이면 게임하기 딱 좋은데.”

나는 고개를 저었다. “세 명만 있어도 될 거야.” 그리고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아이쿠, 가야겠다. 다들 나중에 보자.”

일어서기도 전에 케니가 콧방귀를 뀌었다. “사귀지도 않으면서 쩔쩔매기는.”

성준이 비꼬았다. “넌 레이첼이 전화하면 10초도 안 돼 사라질걸.”

등 뒤로 들리는 대화는 평소처럼 서로 놀려대는 것으로 변했다. 아, 내가 집으로 돌아오긴 돌아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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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시디는 인사차 포옹을 하며 코를 찡그렸다. “벤! 냄새나! 날 만나러 오기 전에 샤워했어야지.”

팔을 들고 보니 겨드랑이와 가슴팍이 땀으로 흥건했다. 나는 짓궂게 미소했다. “뭐, 앞으론 잘 보이지 않아도 되니깐, 주근깨.”

웃기려고 한 말이었지만 캐시디는 금세 어두운 얼굴이 되어 심각한 목소리로 물었다. “진심이야?”

나는 캐시디가 정색하는 것에 놀라 미간을 찌푸렸다. “뭐?”

귀여운 빨간머리는 걱정스레 얼굴을 찌푸렸다. 그리고 내 눈길을 피하다가 자세를 가다듬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벤, 지금도 나랑 재결합하고 싶어?”

나는 아연실색해서 침을 삼켰다. 한때 캐시디가 나를 무척 열렬히 사랑한 걸 알고 있었다. 심지어 바람을 피웠는데도. 캐시디는 아직 재결합을 희망하고 있었다. 그러나 에이드리안이 나를 차버린 걸로 오해를 했을 때 그런 기회가 있었지만, 캐시디는 나를 변함없이 사랑한단 말을 하며 재결합을 거부했다. 그 후 10대들에겐 영원과 같은 시간이 흘렀다. 너무나 많은 일이 벌어졌다.

“어...” 나는 어쩔 줄을 몰라 몸을 움츠렸다. 사실, 캐시디와 재결합하길 바라지 않았다. 나는 도온을 사랑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말을 해주면 내 전-여자친구가 어떻게 반응할지 걱정스러웠다.

캐시디는 내 표정을 잃고 ‘아니’라는 대답이 나오리라는 걸 눈치채고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오, 이젠 나랑 재결합하기를 바라지 않아?”

나는 캐시디의 목소리에 안심할 수 있었다. “화 안 나?”

“아니, 사실은 안심했어.” 캐시디는 한숨을 쉬고 긴장을 풀었다. “너랑 재결합하기를 거절하고 나서 쭉 죄책감을 느꼈어. 넌 무척 속상한 것처럼 보였고 난 그 일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았어.”

“왜? 넌 잘못한 게 없잖아.”

“나 때문에 너랑 에이드리안이 깨지게 됐잖아.” 캐시디는 미안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아니.” 나는 손을 들고 캐시디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캐시디의 어깨에 손을 얹고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았다. “너 때문에 에이드리안과 헤어진 게 아냐. 진짜야.” 캐시디는 도나에 대해서 모르고 있었고 에이드리안이 나랑 자기하고 벌어진 일을 용서해주려고 했던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캐시디는 고개를 끄덕이고 내 말을 이해하려고 했다. 나는 캐시디의 어깨에서 손을 내리고 일어섰다. 그리고 차분한 미소를 짓고 물었다. “그래, 급한 일이란 게 뭐야?”

캐시디는 또다시 미안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심호흡을 하고 자세를 가다듬었다. “나 누굴 만나고 있어.”

놀라기는 했지만, 충격을 받진 않았다. “어, 그래. 누군데?”

캐시디는 내가 화를 내지 않자 녹색 눈을 반짝이며 간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 애 이름은 캐머런이고 넌 모르는 애야. 딴 학교에 다니거든. 하지만... 어... 난 우리가 가까워지면서 그 애가 꾸준히 사귀길 원하는 걸 알았어. 근데 난 아직... 진짜... 우리가 완전히 끝난 건지 확신하지 못했어. 내 말은, 우리가 헤어지고 다시는 재결합하지 않을 거라 했지만, 난 널 꼭 다시 한 번 봐야 했어, 벤. 우리가 아직 앙금이 남았는지 알아보려면.”

나는 나른한 미소를 짓고 어깨를 으쓱였다. “미안해, 난 마음을 정리했어.”

캐시디는 고개를 끄덕이고 미소를 지었다. “그런 것 같았어.” 캐시디는 길게 숨을 들이켜고 수 초 동안 소리가 날만큼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마침내 완전히 긴장을 푼 것 같았다. “나도 그래. 벤. 난 이제 마음이 편해.”

“잘됐다.” 나는 미소했다. “언제 보여줄 거야?”

“때가 되면. 오다가다 부딪힐 수도 있을 거야.” 캐시디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너도 새 여자친구를 사귀면 더블 데이트를 하면 되겠다!”

나는 도온이 생각나 밝게 미소했다. “여기로 데려올 수만 있다면.”

캐시디는 눈썹을 세웠다. “여기로? 벌써 새 여자친구가 생긴 거야? 아니면 섬머 매킨토시를 말하는 거야? 그 애가 UCLA에 간 건 알고 있지만, 난 너희가 그런 사이가 아-”

“아니, 아니. 섬머는 친구일 뿐이야.” 나는 연상의 블론드를 잊고 있었다. 마치 긴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아니, 어, 전에 도온 이야기를 해주 것 같은데. 우린 북부 캘리포니아에서 함께 자랐어.”

“오, 맞다. 해마다 여름 캠프에서 만난다는 애?”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캐시디는 다소 짓궂은 표정으로 놀렸다. “자라면서 같이 섹스를 실험한 애?”

나는 새빨갛게 얼굴을 붉혔다. “그런 말을 한 적은 없는데.”

빨간머리는 씩 하고 미소를 지었다. “메간한테 말했잖아. 우리 여자들은 감추는 게 없다구.”

나는 고개를 저으며 눈을 굴렸다. 여자애들이란... 그러나 바로 짜증을 털어내고 레스토랑 쪽으로 고개를 까닥였다. “어서 뭘 먹기나 하자. 그리고 나서 네 남자친구에 대해 심문 좀 해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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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오고 보니 부모님은 텔레비전을 보며 쉬고 있었다. 부모님은 한 달 동안 휴가를 갔다 오고 나서 생활 전선에 뛰어들기 전에 휴가의 마지막 날을 즐기고 있었다.

“헬로.” 나는 계단으로 향하며 인사를 했다.

“헤이, 벤. 점심은 먹었니?” 엄마가 물었다.

“예,” 나는 걸음을 늦췄다.

“누구랑?”

나는 미간을 좁혔다. 부모님은 내 친구들을 모두 알고 있었고 나쁜 애들과 어울리지 않는 걸 알고 있었기에 누구를 만나는지 물어보는 경우가 드물었다. “어, 캐시디요.”

엄마는 소파에 등을 기댔다. “오, 단둘이서?” 엄마의 목소리에서 약간 수상쩍어하는 기미가 엿보였다.

“예.” 나는 어리둥절한 마음에 얼굴을 찌푸렸다. 엄마가 갑자기 이러는 이유가 뭘까? 친구의 사생활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미리 선수를 쳐야 했다. “어, 캐시디는 새로 사귄 남자친구에 대해 이야기해줬고 전 도온 이야기를 해줬어요.”

“오!, 엄마는 분명히 마음을 놓은 모습이었다. “오, 그렇구나. 난 매주 디애나와 통화를 하는데 네가 도온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짓을 저지르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진 않거든.” 엄마는 손가락을 들어 자기 눈을 가리킨 다음 나한테 손가락을 겨눴다. 그리고 다시 자기 눈을 가리켰다. 너무나 뻔했다. 엄마는 나를 지켜보겠단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엄마아아.” 나는 괴롭게 신음했다.

“아무튼, 저녁은 여섯 시 반인 줄 알아.”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고 아빠한테 기대며 텔레비전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는 얼굴을 찌푸리고 내 방으로 갔다. 그리고 얼른 샤워를 하고 싶은 마음에 땀에 전 옷을 벗어버리고 허리에 수건을 둘렀다.

그러나 방문을 열고 실없는 미소를 짓고 팔짱을 낀 브룩이 코앞에 서 있는 걸 보게 되어 화들짝 놀라게 되었다.

“등 밀어줄까?” 브룩이 끈적끈적한 목소리로 물었다.

“브룩!” 나는 기겁을 하고 목소리를 낮췄다. “엄마 아빠가 아래층에 계셔!”

“어젯밤에는 엄마 아빠가 침실에 있는데도 나한테 싸줬잖아.”

“그땐 주무시고 계셨지! 우리가 욕실에서 함께 나오는 걸 들키기라도 하면 어쩌려구 그래.” 나는 브룩을 엄하게 노려봤다.

“알았어. 하지만, 나중에 꼭 갚아 줘야 해.” 브룩은 심술을 부리며 말했다.

“알았어.”

나는 브룩이 자기방으로 돌라가는 걸 지켜보며 고개를 저었다. 귀엽고 날씬한데다가 섹스라면 환장을 하는 브루넷이 마구 달려드는 게 싫지는 않았지만, 지금처럼 행동하다간 들키기 십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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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도온과 즉석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그날 오후를 보냈다. 우리는 둘 다 거실에 놓인 가족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미성년자관람가로 수위를 낮춰야 했는데 나로선 내 여자친구에게 하고 싶은 등급외 행동을 에덴이나 엠마가 지나가다 우연히 알게 되는 게 무척 두려웠다.

저녁을 먹고 나서는 내 방에서 도온과 짧은 전화통화를 했다. 이날이 4주 연짱 잠자는 시간만 빼놓고 늘 붙어 다니다가 처음으로 함께하지 않는 날이었고 마치 반쪽을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우리는 드라마틱하게 서로에 대한 그리움을 토로했다. 통화 대부분을 느끼한 연인의 넋두리로 채우면서. 브룩이 우리의 통화를 엿들었다면 도온과 내가 그토록 느끼해질 수 있다는 걸 깨닫고는 손발이 오그라들었을 것이다.

도온은 통화의 끝 무렵에 속이 텅 빈 것 같은 느낌이라며 내 자지만이 자기를 다시 채워줄 수 있을 거란 고백을 했다. 그래서 우리는 과하지 않은 폰섹스를 하게 되었다. 나는 통화를 끝내고 부모님이 일찍 잠자리에 든 걸 알고는 브룩과 한 약속도 지키고 도온이 불러일으킨 욕정도 해소할 겸 몰래 브룩 방에 잠입했다.

섹스에 환장한 열다섯 살짜리 여동생을 두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 도온과 함께하지 않은 첫날이었다. 브룩이 내 곁에 없었다면 살 수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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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레인 후쿠하라는 월요일에 특별한 이유없이 친구들을 초대했다. 파티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열다섯이나 모였고 피자가 배달됐다.

나는 2학년 되고부터 종종 일레인의 집에 놀러 오곤 했었는데, 이번에는 약간 사정이 달랐다. 이날은 앨리의 임신 사건이 벌어지고 나서 처음으로 애비와 앨리는 다시 보게 되는 날이었다. 나는 한 달이 넘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실제로 앨리를 임신시킨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일요일 저녁에 그 애들과 통화를 했고 일레인 집에서 나를 만나게 될 거란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집안에 있는 아이들을 피해 풀장에서 케니와 물장구를 치고 있을 때 두 귀여운 브루넷이 풀장으로 다가왔다. 케니는 쌍둥이들이 다가오는 걸 처음으로 발견하고 능글맞은 미소를 지었다. “헤이, 벤. 네 놀잇감이 두 명 더 왕림했어. 왜 저때처럼 쓰리섬이라도 하려구?”

나는 깐죽대는 케니를 무시하고 쌍둥이를 쳐다봤다. 갑자기 긴장한 내 모습을 들키지 않았기만을 간절히 바라면서. 나는 재빨리 긴장을 풀고 풀장을 나왔다. 애비 샌더스가 처음으로 내가 머리를 흔들어 물기를 터는 모습을 봤다.

쌍둥이들은 성준과 스테파니 보한테 ‘하이’하는 인사를 하고 나한테 다가왔다. 나는 어깨에 수건을 두르고 그 애들한테 다가갔다. “헤이, 얘들아, 잘 지냈어?” 나는 명랑한 척을 하며 반갑게 외쳤다.

“하이, 벤.” “하이, 벤.” 여자애들은 메아리가 울리듯 연달아 대답했다. 애비는 다짐하듯 말했다. “우린 괜찮아.”

나는 애비한테 고개를 끄덕이고 앨리를 쳐다봤다. 앨리는 잠시 내 눈길을 피하다가 심호흡을 하고 나한테 황갈색 눈을 들어 보였다. 그리고 쌍둥이 중 동생인 어린 여자애가 고개를 끄덕이며 “난 괜찮아.”라는 말을 해주었을 때,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쌍둥이들을 번갈아 쳐다보며 냉장박스로 엄지손가락을 가리켰다. “마실 것 좀 가져다줄까?”

애비가 바라보자 앨리가 대답했다. “그러지 뭐. 난 스프라이트.”

나는 미소하며 소다수를 가지러 갔다. 아무도 이 작은 회합의 물밑에 흐르는 긴장을 눈치채지 못했기를 바라면서. 내가 여자애들을 맞이하러 나서는 건 그리 유별난 행동이 아니었다. 나는 요새 좀 논다고 소문이 나있었고 한 달 반쯤 전에 일레인의 파티에서 셋이 함께 한방을 썼던 일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내가 쌍둥이들을 맞이하는 걸 이상하게 여길 사람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앨리가 낙태한 사실은 아무도 알아서는 안 됐고 우리 셋도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걸 바라지 않았다.

음료수를 가져오고 보니 쌍둥이들은 벌써 비키니차림으로 의자에 누워 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물놀이를 하거나 멀찍이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사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쌍둥이들도 뭔가 할 얘기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찬 음료수를 건네자 둘은 동시에 대답했다. “고마워, 벤.”

애비는 몸을 일으키고 내 손을 잘아 끌었다. “헤이, 벤. 우린 앞으로도 쭉 친구지? 맞지?”

애비의 목소리에서 두려움이 느껴졌다. 나는 애비를 안심시키려 라운지 의자 사이에 꿇어앉고 진심으로 말했다. “당연하지.”

“날 미워하지 않아?” 애비가 남들이 들을까 주위를 둘러보는 동안 앨리가 머뭇거리며 물었다.

나는 겁 먹은 여자애들의 손을 잡았다. “그럴 리가 있나. 우린 실수를 저질렀어. 하지만, 난 너희를 탓하지 않아.”

앨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내 차례인 걸 느꼈다. “앨리, 날 미워하는 건 아니지?”

앨리는 심호흡을 하고 살며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니,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난 널 미워하지 않아.”

나는 미소하며 일어서려고 했다. 그러나 앨리는 내 손을 놓아주지 않고 듣는 사람이 있는지 주위를 다시 한 번 둘러보고 나직이 속삭였다. “난 궁금해...” 앨리는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숙였다.

나는 끈기있게 앨리의 말을 기다렸다. 마침내 앨리는 고개를 들었다. “나도 섹스를 하기에는 아직 준비가 안 된 걸 알아. 그때 일은 너무... 무서웠어. 하지만, 내가 준비되었다고 느꼈을 때, 너 어떻게 생각해-? 내 말은, 그러니깐, 난 네가 정말로 좋았어...”

나는 앨리가 생략된 질문을 하며 내 눈을 들여다보는 동안 손을 꼭 잡아주었다. 이 작은 소녀가 안쓰러워 감정이 북받쳤다. 나는 앨리를 사랑하지 않았지만, 예전에 벌어진 일 때문에 이 작은 소녀의 안녕이 걱정되었다. 나는 앨리의 질문에서 섹스를 떠올리지는 않았다. 앨리가 묻는 말은 명확했다. “진심이야? 내가 그래 주길 바래?”

앨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난 널 믿어. 벤. 그리고... 왜 그런 말이 있잖아. 물에 뛰어들지 않으면 영영 수영을 할 수 없다는. 게다가 때가 되면 너보다 날 잘 이해해줄 남자애는 이 세상에 없을 거야.”

나는 한숨을 쉬었다. “앨리.” 내가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이자 앨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나도 그러고 싶어. 무슨 말이냐면, 네가 진정으로 원하고 그때가 되면 그렇게 하는 옳을 것 같아.”

앨리는 어리둥절해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내 말은 ‘예스’였지만 목소리는 ‘노’로 들렸을 것이다. 게다가 예상한 대로 ‘하지만’이란 말이 등장했다.

“하지만, 지금 난 여자친구가 있어. 우리가 함께했을 때는 여자친구가 없었고. 솔직히 말해, 내 여자친구가 어떻게 생각하겠어?”

“오, 그렇구나, 무슨 말인지 알겠어.” 앨리는 눈에 띄게 긴장을 풀고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애들은 확실히 정조라는 것에 민감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노’라는 건 아냐.” 나는 서둘러 덧붙였다. “도온은... 무척 개방적이야. 그러니깐, 때가 됐다고 느끼면 나한테 알려줘. 그리고 어떻게 될지 두고 보자구. 알았지?”

앨리는 미소하며 두 팔을 벌렸다. 나는 앨리를 포옹했다. 그리고 애비의 부드러운 손이 내 어깨에 닿는 걸 느꼈다. 나는 죄책감을 조금이나마 덜게 되어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새로운 죄책감도 생겼다. 도온은 사랑을 저버리지만 않으면 남들과 섹스를 해도 괜찮다고 했었다. 물론 도온은 내가 아무하고도 자지 않으면 더욱 행복할 것이다. 나는 그런 이유로 도온한테 충실하겠단 다짐을 했다. 그러나 지금 그런 결심을 포기하게 된 건가? 이미 브룩이란 예외가 있었고 앨리도 예외가 된 걸까? 애비는 어떻고? 일단 문을 열어버린 이상 멈출 수는 없는 건가?

나는 느긋하게 앨리의 등을 어루만져주며 어지러운 생각을 달래려 했다. 어차피 내 삶이 흑백처럼 분명했던 적은 없었다. 나는 생각해낼 수 있는 최고 결정을 내렸을지도 모른다. 단지 흘러가는 대로 몸을 떠맡기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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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샌더스 쌍둥이의 모습을 유심히 지켜본 사람이 있었다. 내 첫 여자친구는 피자를 담은 접시를 들고 옆 자리에 안으며 미소를 지었다. “너희 예전보다 열을 좀 식힌 것 같아.”

“허?” 나는 메간이 건네주는 피자를 감사히 받아들고 눈썹을 세웠다.

“애비랑 앨리. 저번에는 너한테 마구 달려들 것 같은 모습이었어. 근데 지금은... 단지 친하게만 보여.”

나는 걱정스레 입술을 깨물고 어깨를 으쓱였다. “단물이 다 빨렸나 봐. 하지만, 걔들도 우리가 단지 친구 사이라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으니깐.”

이번에는 메간이 눈썹을 들어 올릴 차례였다. “내가 아는 벤하고는 너무 다른데. 내 기억이 맞는다면, 벤은 여자애를 두 손으로 녹여버리고 오르가즘 속에 허우적거리게 만들어. 여자애는 그 맛을 잊지 못해 무엇이든 하려고 하고. 진지한 관계건 아니건 간에 말이야.”

나는 메간의 찬사에 어깨를 펴고 뿌듯한 미소를 지었지만 동시에 앨리한테 떨쳐버릴 수 없는 죄책감을 느꼈다. 분명히 메간한테는 말해줄 수 없는 일이었다. ‘뭐, 난 앨리를 임신시켰는데, 그 이후론 쌍둥이들이 섹스를 꺼리고 있어.’ 나는 고개를 흔들고 학기말처럼 놀 수 없는 확고한 이유를 떠올렸다. “어, 솔직히, 메간. 난 자제하려고 애쓰고 있어. 난 네가 해준 충고를 받아들여 내 여자친구한테만 전념하기로 했어.”

메간의 얼굴에 미소가 스쳤다. “아, 그래. 도온, 맞아? 캐시디는 네가 여자친구랑 진지하게 사귀기로 했다고 했어.”

나는 어깨를 으쓱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철이 드나 봐. 좀 더 진지해진다는 게. 맞지?”

메간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충고를 잊지 않았다. “맞아. 하지만, 잊지 마. 벤. 충실하게 행동하는 게 목적이 되어서는 안 돼. 곤란한 일이 피하려고 자지에 족쇄를 채운다고 끝나는 게 아냐. 스스로 충실해지고 싶어야 해. 그런 이치를 알게 되면 네가 진짜로 원하는 애는 오직 그 애 하나라고 할 수 있겠지. 그게 사랑이라는 거야.”

나는 눈썹을 찡그렸다. 도온을 사랑하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도온은 전-여자친구를 포함해서 누구하고도 비교할 수 없는 존재였다. 하지만, 오직 하나라구? 젠장, 풀장을 둘러보니 당장 박아주고 싶은 여자애들이 떼거리로 몰려 있었다. 오직 한 명하고만 섹스를 하는 상황은 전혀 고려해 보지 못했다. 일부일처제를 이해할 수는 있었다. 특히 버클리에서 도온과 합치게 되면 우리는 영원히 함께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늘 일부일처제를 고수하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메간은 내가 마음속으로 고민하는 걸 감지하고 웃음을 터트리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당장은 너랑 결혼해서 묶어두려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깐.”

나는 안도하는 한숨을 내쉬고 메간한테 미소를 지었다.

메간도 나한테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주물러주었다. “어쨌든, 난 네가 대견해, 벤. 넌 진짜 여자친구한테 충실히 하려는 것 같아. 그리고 무엇이, 누가, 네 인생에서 소중한 건지 까먹지 않는 것 같아.”

“진짜 그래.” 나는 진심으로 대답했다.

“당연하지. 난 아직도 네가 나한테만 전념하는 게 마음에 들었을 테지만,” 메간을 혀를 차며 웃었다. 그러나 내가 사과하려고 하자 조용히 하라고 손을 저었다. “하지만, 지금도 괜찮아. 너랑 도온 사이를 망치게 하고 싶진 않아. 아무튼, 우리가 데이트하기 전에도 그 애한테 우선권이 있었던 게 아닌가 싶어.”

“고마워, 메간.” 나는 내 어깨에 얹힌 메간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메간은 내 뺨에 뽀뽀했다. “난 늘 네 주위에 있을 테니깐, 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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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시간 동안 햇볕을 쬐고 수영을 하고 나서 모두 안으로 들어가 당시에는 기절초풍할 42인치 평면 텔레비전으로 영화를 보게 되었다. 그 즉시 케니는 10년 후에는 벽면을 꽉 채운 평면 텔레비전이 널리 보급되어 세 살짜리 어린애들 눈이 멀게 될 거란 예언을 했다.

당연히, 다니엘 첸과 일레인이 서로 바짝 붙어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했다. 케니 도일과 레이첼 타일러는 나란히 소파에 앉았고 제임스 케이토는 성준과 스테파니 보가 붙어 앉을 수 있도록 자리를 양보했다.

나는 잠시 주위를 둘러보고 순간 메간이나 캐시디 혹은 샌더스 쌍둥이들이 앉아 있는 소파에 앉으려고 했다. 그러나 좀 전에 메간과 한 대화로 도온한테 전념하는 것에 대해 다소 걱정스러운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겨우 이틀이 지났을 뿐이었다. 그런데 다른 여자애와 살짝 부딪힌 것만으로 살며시 욕망이 쳐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일체의 유혹을 물리치고 구석에서 찌그러지기로 했다.

결국, 메간이 옆으로 다가와 함께 앉게 되었지만. 메간은 남자친구한테 기댄 여자애들처럼 기대지는 않았다. 그러나 귀여운 여자애가 나를 찾아왔다는 게 은근히 기뻤다. 곧 세이브 더 라스트 댄스(註-Save the Last Dance, 2001)가 시작되자 모두 입을 다물었다.

다들 극장에서는 보지 못한 영화였다. 일레인이 굳이 이 영화 DVD를 고른 걸 보면 미리 의견을 물어본 듯했다. 그러나 메간, 캐시디, 나는 1월에 데이트를 하며 극장에서 본 영화여서 내용을 알고 있었다. 나는 주인공들이 영화의 말미에 재결합할 수 있도록 헤어지는 장면에서 소변도 보고 음료수도 챙길 겸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두 연인이 헤어지고 나서 고통스러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는 내용을 알고 있었기에 다소 마음이 불편했다.

나는 소변을 보고 부엌에서 제임스 케이토와 마주쳤다. 우리는 고등학생이 되고부터 서로 알고 지냈는데, 제임스는 예전부터 스테파니 보와 성준의 친한 친구였고 요사이 부쩍 우리 그룹의 멤버가 다 되어 있었다.

“헤이, 어뗘? 케이토?” 나는 고개를 끄덕여 인사했다. 1학년 때부터 제임스를 케이토라는 성으로 부르는 이유는 제임스라는 이름이 지천으로 널렸기 때문이었다.

케이토는 고개를 끄덕이고 그릇에 쏟아 붓는 팝콘 봉지를 가리켰다. “너도 줄까?”

“그러지, 뭐.” 나는 팝콘을 받으러 가다 문뜩 생각이 났다. “사실, 우리 쪽 소파에는 다들 팝콘이 없어. 넌 어디서 났는데?”

나는 케이토가 일러준 대로 튀기지 않은 팝콘 봉지를 가져다 전자레인지에 넣고 시간을 조절했다. 그리고 버튼을 누르고 돌아서자 케이토가 심호흡을 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요즘 메간하고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이던데.”

나는 케이토의 목소리에서 억지로 꾸민 자연스러움을 느끼고 눈썹을 들어 올렸다. 케이토는 178cm인 나보다 5cm쯤 작았지만, 날카로운 광대뼈에 강인하고 건장한 체격을 하고 있었다. 여자애들도 케이토의 남자답고 잘생긴 외모에 반하는 일이 잦았지만, 지나치게 수줍어하고 말을 아끼는 태도는 요즘 같은 세태에 먹혀들지 않았다. 나는 케이토의 의중을 가늠하며 쉽사리 대답할 수 있었다. “그래, 깨지고 나서 어색해질까 봐 걱정했는데, 메간이 봐주기로 작정한 것 같아.”

케이토는 허허하고 웃었다. “겉모습만 봐선 모르는 거야. 메간은 평소 흑백이 분명하거든.”

나는 케이토의 목소리에서 심상치 않은 점을 발견했다. “맞아, 메간은 한 번 마음을 정하면 꽤 완고해져. 나한테 한을 품지 않아 천만다행이지 뭐.” 나는 케이토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다. 얘가 메간을 좋아하나?

케이토는 한숨은 쉬고 팝콘과 콜라를 챙겼다. “뭐, 잘 지낸다니 잘됐네. 너흰 참 잘 어울리는 한 쌍이 될 거야.”

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잠깐, 뭐? 우리는 재결합하는 게 아냐.”

케이토는 부엌을 나가려다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아니라구?”

“아니. 왜 그런 생각을?”

“오,” 케이토는 당황한 기색이었다. “어, 메간이 작년처럼 널 쳐다보더라구. 게다가 요샌 무척 친해 보이고 풀장에서도 진짜 다정히 이야기도 하고 또 영화도 같이 붙어서 보고해서.” 케이토는 횡설수설하고 있었다. “그래서, 난 너희가 다시...”

나는 고개를 힘껏 가로저었다. “난 따로 여자친구가 있어. 그 애는 북부 캘리포니아에 살지만 우린 꽤 심각해.”

케이토는 반기는 표정을 지었다. “진짜? 오, 축하해.”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고마워.” 그리고 팔짱을 끼고 대들다시피 다가섰다. “이젠, 네 얘기를 할 차례야.”

케이토는 침을 삼키며 뒤로 물러섰다.

“메간은 언제부터 좋아한 거야?”

“뭐-? 어, 왜 그런 생각을-?”

“그래 안 그래?”

케이토는 순간 얼굴에 핏기를 잃었다. 그러나 내가 장난스레 미소를 지은 걸 알아차리고 이내 평정을 되찾았다. “화난 게 아냐?”

“전혀, 내가 알기엔 넌 괜찮은 애야, 케이토. 난 메간한테 참견할 권리가 없어.”

“메간도 그렇게 알고 있어?” 케이토는 걱정스레 물었다.

돌이켜보니, 한 달 동안 자리를 비웠기에 어떻게 돌아가는지 확신할 수 없었지만, 메간과 케이토가 서로 대하는 모습을 보건대 메간이 케이토의 의중을 알고 있다고 생각할 수는 없었다. 케이토는 늘 자기감정을 숨겨오고 있었고 메간도 케이토를 유별나게 여기는 것 같지는 않았다.

사실, 뭔가 있기는 있는 게, 케이토가 말한 메간이 나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 꽤 신경이 쓰였다. 처음에는 내가 철들기를 기다려주겠노라는 잦은 언급이 있었고 헤어진 뒤로 나를 볼 때마다 동경인지 꾸짖음인지 분간할 수 없는 표정을 지어 보이곤 했다. 아마도 두 가지가 반반씩 섞여 있지 않을까? 캠프에서 돌아온 지금은 나한테 사적인 대화를 자청하기도 했고 영화를 본다니깐 다른 사람들은 다 제쳐 두고 굳이 내 옆으로 와서 앉았다. 어이쿠, 피자를 가져다준 사람이 누구였더라?

나는 고개를 저었다. “모르는 것 같아.” 케이토한테는 그런 말을 해지만, 메간이 나랑 재결합하기를 바랄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만약에 그렇다면, 무척 어색한 상황이 벌어질 게 분명했다.

무엇보다도, 나는 도온한테 전념하고 있었다. 나는 전에 없던 열정으로 도온을 사랑했고 앞으로도 열과 성을 다해 도온과의 관계를 지킬 작정이었다. 뭐니뭐니해도 운명이잖아? 안 그래? 메간에 대해 말하자면, 메간을 좋아하기는 했어도 진정으로 사랑한 적은 없었다. 메간이 걸핏하면 나를 사랑한다고 말할 때에도 마지못해 ‘나도 사랑해’라고 대꾸해주었을 뿐이다. 메간이 진정으로 나를 전향케 할 의도라면 서로 상처만 남을 게 분명했고 우리의 우정도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것이다. 게다가 나는 메간의 우정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했다.

아하, 케이토를 미끼로 쓰면 되겠구나. 메간은 나같은 놈보다 훨씬 번듯한 얘한테 더 훌륭한 대접을 받아야 해. 케이토는 한 여자한테 모든 걸 받칠 수 있는 성품 같아. 그리고 마침 메간한테 기꺼이 자기를 받치려 하고 있고.

시기적절하게 머릿속 전구가 나가며 전자레인지에서 딩하는 소리가 울렸다. 나는 팝콘을 쓸어담고 웃는 낯으로 케이토한테 다가갔다. “뭐, 메간이랑 잘되고 싶다면, 케이토. 몇 가지 알려줄 게 있어.” 

화요일 아침, 브룩과 나는 집이 빈 틈을 이용해 토끼처럼 박아댔다. 브룩은 보지에 가득 정액을 채우고 친구들을 만나면 눈치를 챌 아이가 있을지 궁금하다고 했다. 나는 브룩을 꾸짖으며 만에 하나 발각된다면 정액이고 뭐고 다시는 섹스를 할 수 없게 될 거란 경고를 해주었다.

브룩은 다음날이 생리예정일이라며 한 주 동안 섹스를 할 수 없게 되어 무척 아쉽다고 했다. 브룩의 말은 나도 섹스 없이 일주일을 버텨야 하는 걸 의미했다. 그래서 나는 브룩의 소원대로 정액을 꽉꽉 채워주었다.

오후에는 친구들과 비디오게임을 하며 놀았다. 케이토도 와있었기에 전날 밤 메간과 한 대화를 평가하며 몇 가지 전략을 가르쳐주었다. “너랑 데이트하는 걸 정할 사람은 메간이어야 해. 메간이 그럴 마음이 생기기 전에 너무 심하게 몰아붙이면 셔터를 닫아버려 영영 기회가 없을지도 몰라. 그러니깐 당분간은 메간이 하는 말을 주의 깊게 들어주라구. 맞장구를 쳐주면서 말이야. 그리고는 메간이 마음을 정할 때까지 참고 기다려야 해. 알았지?”

케이토는 진중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저녁에는 도온과 한 시간 동안 즉석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도온을 그리워하는 괴로움은 주기적으로 그 강도가 강해지고 약해지기를 반복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도온을 생각하는 시간이 줄어드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마음을 도려내는 아픔이 깊어져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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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은 좆같았다. 아니, 진짜 진짜 좆같았다.

우선, 한 달 만에 처음으로 섹스를 못했다. 도온은 캘리포니아 북부에 있었고 브룩은 생리 중이었다. 브룩은 불로우잡을 해주겠단 약속을 했지만, 속이 메스껍다며 기분을 낼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브룩한테 어떤 짓도 강요할 수 없었다.

농구를 하면서는 공격본능을 발산하려 미친 듯이 뛰어다녔다. 그러다가 루즈볼을 쫓는 과정에서 좋지 못한 자세로 아스팔트에 넘어져 오른팔 손목을 접질렸다. 그리 심하진 않았다. 가볍게 붕대로 감아주니 일주일 동안 농구는 할 수 없더라도 일상생활에는 지장이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딸을 치는 전용 손이 오른손이라는 걸 나중에야 깨달았다. 결국은, 섹스도 할 수 없고, 블로우잡도 받을 수 없게 된데다 제대로 딸도 칠 수도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날 오후에는 도온을 떠올리며 처량하게 왼손으로 성에 차지 않는 딸을 칠 수밖에 없었다.

도온과 채팅을 할 때도 개운하지 않았다. 성적으로 괴로워하는 걸 숨기려 했지만, 어떻게든 도온은 내 기분을 눈치채고 나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해주었다. 나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해주고 벌떡 일어서서 잠을 자러 내 방으로 돌아갔다.

수요일은 진짜 좆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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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는 불알이 간지러워 잠에서 깨고는 화들짝 놀래야 했다.

“음!” 몸을 일으키자 누군가 신음하며 내 자지를 목구멍에 끼웠다. 그러나 캑캑대며 고개를 들었고 머리카락이 젖혀지며 얼굴을 보게 됐다.

“브룩!”

브룩은 씩 웃으며 내 발기 위에 맴돌았다. “안녕 벤!” 그리고는 내 자지를 능력껏 가장 깊숙이 삼켜버렸다. 브룩은 가만히 있어도 귀여운 소녀였다. 그러나 내 자지를 물고 뺨을 부풀린 모습은 더욱 예뻐 보였다. 아마 2년 전이라면 브룩을 보고 섹시하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내 그 즉시 죽빵을 날려 옥수수를 털어버렸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누가 봐도 부인할 수 없는 새끈녀가 다 되어 있었다.

또한, 블로우잡 테크닉도 장족의 발전이 있었다. 나는 브룩의 능숙한 양손 놀림에 고맙게 신음했다. 내 자지 머리를 안달 나게 핥아대는 혀 놀림이 느껴졌다. 대단원에 가까워졌을 때는 힘차게 자지를 빨아대는 것과 동시에 불알을 간질이는 손놀림도 느꼈다. 브룩은 알고 있는 테크닉을 총동원해 내 정액 덩어리를 편도선 너머로 삼켜버렸다.

“으음, 단백질...” 내 작은 여동생은 콧노래를 부르며 내 옆구리로 기어들었다. “필요한 영양분을 모두 보충했다고 하면 엄마가 아침을 거르게 허락해줄까?”

“까불지 마.” 나는 브룩의 파자마 속으로 손을 집어넣고 생리대를 피해 클리토리스를 부드럽게 문질러주었다. 브룩은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 얕은 신음소리를 냈다. 나는 쾌락버튼을 자극해 여동생의 아침 호의에 보답해 주었다.

브룩은 절정을 느끼며 내 가슴에 대고 헐떡였고 나는 브룩의 입술에 짧게 키스를 해주고 이마에도 키스를 해주었다. “부모님이 일어나기 전에 얼른 네 방으로 돌아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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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 무슨 짓이야?”

고개를 들어보니 메간이 팔짱을 끼고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우리 일행들은 금요일 개봉일에 프린세스 다이어리를 관람하고 막 로비로 빠져나온 참이었다. 맞아. 계집애나 보는 영화였다. 그러나 우리 일행들은 여자애들의 비위를 맞추러 그 정도 희생은 순순히 감내했다. 평소대로 스크린을 빠져나온 일행들은 음료수 때문에 늘어난 방광을 비우러 화장실 앞에 줄을 섰다.

아무튼, 나는 가장 일찍 밖으로 나와 벤치에 앉아 있었다. 바로 그곳이 메간이 나를 엄한 얼굴로 노려본 곳이다.

“뭐가?” 나는 영문을 몰라 눈썹을 세웠다.

“’뭐가’라니, 난 네가 무슨 의도로 케이토하고 자리를 바꾼 건지 알아야겠어. 어디 한 번 시시껄렁한 변명을 해볼래?” 메간은 눈썹을 세우고 나를 째려봤다.

“레이첼한테 수작을 걸려고 했어. 케니를 약 올려 주려고.”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제에바알,” 메간은 눈을 굴렸다. “거짓말하는 게 빤히 보여.”

“헤이 시시껄렁한 변명을 하라며.”

“너 진짜 날 케이토랑 엮어 주려는 거야?”

“아니, 내가 왜 그런 짓을 해.” 나는 고개를 젓고 내 전-여자친구를 올려다보며 동시에 화장실에서 나온 친구들이 있는지 로비를 살펴보았다. 성준과 스테파니는 우리와 다섯 발짝 떨어진 곳에서 자기들만의 세상에 빠져 있었고 그보다 몇 발짝 뒤에서는 다니엘이 여자친구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메간한테 시선을 돌렸다. “적어도 난, 발벗고 나서진 않았어.”

메간은 눈살을 찌푸리다가 느닷없이 옆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넌 방해하지도 않았어.”

나는 어정쩡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메간은 나한테 바짝 다가와 내 눈을 들여다보았다. 나는 태연한 척을 하려고 했지만, 메간의 서슬 퍼런 태도가 무서웠다. 내가 8인치나 컸는데도 말이다. 사실 메간은 우리가 사귀는 동안에도 나를 발밑에 두었었다. “벤...” 메간은 위협적으로 서두를 뗐다.

“으응...?” 나는 메간과는 대조적으로 목소리를 깔았다.

“케이토가 날 좋아해?”

나는 어깨를 으쓱이고 눈싸움을 벌였다. “넌 어떤 것 같아?”

메간은 한숨을 쉬고 눈길을 돌렸다. “케이토는 지나치게 수줍어해. 하지만, 맞아, 나도 우리가 모일 때마다 케이토가 나한테 관심이 있는 걸 눈치챘어. 나한테 문을 열어주고 기다려주거나 하는 기사도적인 행동을 하더라구. 게다가 이번 주에는 지난 1년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이 말을 걸었어.”

메간은 나를 새롭게 쳐다봤다. “게다가 밀고자 없이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사소한 것들도 알고 있더라구.”

나는 태연한 척을 했다.

“내 다시 물을게, 벤. 너, 무슨, 짓을, 하는 거야?” 메간은 눈을 가늘게 뜨고 엄한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메간의 성격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한숨을 쉬고 꼬리를 내렸다.

“좋아. 한두 가지 알려주기는 했어.”

“그러면서 발벗고 나서지 않았다는 거야?” 메간은 눈썹을 들어 올렸다.

“그래, 여자애한테 말 거는 게 서투른 착한 애를 조금 도와준 것뿐이야. 특히 너처럼 예쁜 애한테 말 거는 걸 힘들어하는 애한테.”

메간은 주위를 둘러보고 케이토가 화장실 밖으로 나온 걸 발견했다. 케이토도 로비를 둘러보다가 우리가 자기를 바라보는 걸 알고 눈길을 피해 걱정스레 머리를 긁적댔다. “종종 좀 미련퉁이 같은 짓을 한다니깐, 안 그래?” 메간은 한숨을 쉬었다.

“난 안 그랬나?”

메간이 실소했다. “맞아, 그랬지.”

나는 메간의 어깨를 쳤다. “헤이, 난 널 떼어내려는 게 아냐. 단지... 난 네가 행복해하는 모습이 보고 싶어. 어찌 됐든 난 그렇게 해줄 수 없으니깐.”

메간은 심호흡을 하고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넌 좋은 친구야, 벤.”

미소가 일었다. “고마워.”

메간은 다시 한 번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벤치에서 일어서서 케이토한테 걸어갔다. 케이토는 순간적으로 당황했지만 이내 등을 펴고 미소를 지으려 애를 썼다.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뭔가 결실이 생길 것만 같았다.

한쪽에서는 케니하고 레이첼이 캐시디하고 캐머런 피어스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캐머런은 우리와는 다른 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이날 처음으로 얼굴을 비춘 셈이었고 아직 많이 상대해보지는 않았지만, 언뜻 봐선 꽤 괜찮은 녀석처럼 보였다. 다니엘, 일레인, 성준, 스테파니는 따로 모여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애비와 앨리는 자기들한테 관심을 보이는 남자애들 세 명과 어울리고 있었다. 쌍둥이들은 그럴 마음만 있으면 꽤 인기를 끌 게 분명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꼭 우리 친구들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커플들이 손을 잡고 금요일 밤을 즐기고 있었다.

한숨만 나왔다. 도온이 그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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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저속으로 주택가를 내려가고 있었다. 늦은 저녁이라 다른 차는 한 대도 보이지 않았고 마치 내 무기력한 외로움을 대변하는 듯 내 차의 헤드라이트 불빛만이 넓게 아스팔트를 밝혔다.

나는 도온이 그리웠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도온과 함께하는 게 그리웠다. 누구라도 함께하고 싶었다. 금요일 밤 홀로 차를 몰고 외출하는 건 무척 외로운 일이었다. 브룩이랑 섹스하는 게 아무리 즐겁다고 해도 도온이 내 손을 세 번 잡아주는 것만큼은 만족스럽지 않았다.

왼쪽으로 키이라 맥닐의 집이 보였다. 키이라는 우리가 캠프에서 돌아오고 난 뒤 부모님을 방문해 그동안 이웃에서 벌어졌던 일에 대해 담소하며 포도주를 마시고 간 적이 있었다. 오른쪽으로는 에이드리안 데니스의 집이 보였다. 테니스공을 힘껏 내던지면 차고 문을 맞출 수 있을 만큼 우리집과 가까웠지만, 한 주가 지나도록 에이드리안을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이날은 도로변에 세워놓은 낯선 차가 보였다. 그 차는 검은색 벤츠였는데 전조등은 꺼져 있었지만, 후미등과 방향지시등은 엔진을 끄고 차 키를 전원으로 돌려놓은 것처럼 불이 켜져 있었다. 그리고 내 차가 바로 옆을 지나갈 때 조수석 문이 열리면서 여자의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싫다고 했잖아.”

에이드리안은 블라우스 단추가 몇 군데 풀린 모습으로 차에서 뛰쳐나왔다. 그리고 휘청대며 거의 넘어질 뻔했지만, 간신히 균형을 잡고 매몰차게 차 안을 노려보았다.

나는 뭔가 잘못된 걸 직감하고 에이드리안의 집앞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차 문을 열고 뒤를 돌아보니 마침 자기 차만큼이나 덩치 큰 모히칸 머리를 한 녀석이 운전석 밖으로 나와 에이드리안한테 다가가는 게 보였다. “이러기야, 베이비. 밤새 애만 태우더니 지금 와서 내빼는 게 말이 돼?”

“싫다고 했잖아, 타이슨.” 에이드리안이 악을 썼다.

“싫다는 걸 믿지 못하면 어쩔 건데?”

“헤이!” 나는 소리를 지르며 당당히 벤츠로 다가갔다. “숙녀분이 싫다고 하잖아.”

“넌 웬 놈이냐?” 나는 타이슨이 돌아선 걸 보고 일순 기가 죽었다. 에이드리안의 데이트는 나보다 4인치나 더 커 보였고 40파운드나 더 무거워 보였다.

“벤!” 에이드리안이 반갑게 소리쳤다.

나는 비폭력적인 뜻을 표하려 두 손을 들었다. 삔 손목으로 나보다 훨씬 덩치 큰 녀석과 싸우는 것은 그리 좋을 게 없을 것 같았다. “난 맞은편에 사는 이웃인데, 보통은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이 여자분이 분명히 ‘싫다.’라고 말한 걸 들었어.”

타이슨은 잠시 나와 에이드리안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에이드리안은 겁먹은 모습으로 자기 몸을 꼭 끌어안고 있었다. 아마 타이슨은 마음만 먹으면 나를 한 방에 날려버릴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하는 같았다. 그러나 결국에는 고개를 저으며 질린 표정으로 자기 차로 돌아갔다. 타이슨은 열려 있는 조수석 문을 꽝하는 소리가 나도록 거칠게 닫았다. “시팔년!” 그리고 후드를 돌아 운전석으로 향했다.

나는 타이슨이 시동을 거는 동안 에이드리안한테 다가갔다. 그리고 검은색 벤츠가 아스팔트에 타이어를 긁는 굉음을 내며 박차고 나갈 때쯤에는 에이드리안을 꼭 붙들어주었다. 에이드리안은 나한테 기댔고 나는 등을 두드려주었다.

에이드리안은 1분 후, 눈에 띄게 긴장을 풀었다. 나는 예쁜 블론드를 놓아주고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괜찮아?”

에이드리안은 다소 놀라기는 했지만, 그리 나빠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길게 숨을 들이켰다. “왜 자꾸 저런 못된 놈들만 꼬이는 걸까?”

나는 쓴웃음을 짓고 고개를 저었다. “미안, 거기까진 도와주지 못해서.”

에이드리안은 한숨을 쉬고 힘없는 미소를 지었다. “구해줘서 고마워, 벤. 아마 가만히 놔뒀어도 설득할 수 있었겠지만, 네가 도와줘서 훨씬 쉬어졌어.”

“곤경에 빠진 아녀자를 도와주는 게 내 임무인걸.” 나는 과장되게 ‘당치도 않아!’ 하는 식으로 팔을 휘저었다.

에이드리안은 웃음을 참았다. “근데, 이 시간에 웬일로?”

“오, 막 영화를 보고 귀가하던 참이었어. 타이밍 좋지?”

에이드리안은 미소를 짓고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해이즐 눈동자에서 예전에는 그토록 사랑했던 밝은 금빛이 일렁였다. “그래, 완벽한 타이밍이야.”

우리는 잠시 어색한 침묵에 빠졌다.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종잡을 수 없었다. 에이드리안과 나는 헤어지고 나서 서로 악의를 내비친 적은 없었지만 늘 함께할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다. 나는 에이드리안을 볼 때마다 견줄 수 없는 매력과 동시에 깨어질 것만 같은 연약함을 떠올렸다. 나는 처음에는 캐시디와 그다음엔 도나와 섹스를 함으로써 모든 걸 망쳐버렸다. 나는 에이드리안을 바라보며 내가 잃게 된 게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리고 에이드리안이 나를 바라보는 눈에서는 나에 대한 믿음이 배신당한 것을 떠올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에이드리안이 먼저 침묵을 깼다. “캠프는 어땠어?”

“굉장했어.”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돌아와서 기쁘겠네?”

나는 도온을 떠올리며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머뭇거리는 미소로 발끝을 내려다보았다. “꼭 그렇지는 않아.”

나는 에이드리안이 궁금해하는 표정을 짓는 것에 순순히 털어놓기로 작정했다. “어, 한 여자애랑 꽤 심각해졌는데, 지금은 그 애가 무척 그리워. 500마일이나 떨어져 사는 건 보통 힘든 게 아냐.”

“오,” 에이드리안은 눈썹을 세우고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색했다. 전-여자친구한테 다른 여자애하고의 로맨틱한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늘 어색할 것이다. 아마도 일찌감치 주둥이를 닥쳐야 했나 보다. 그래서 나는 황급히 사과했다. “미안, 듣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었을 텐데.”

“아냐, 아냐. 괜찮아. 우린... 우린 한때 사귄 적이 있지만, 이젠 각자의 삶을 사는 걸.” 에이드리안은 걱정스레 입술을 깨물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에이드리안의 눈은 살며시 물기가 어렸다.

나는 분위기를 바꾸고 싶어 물어보았다. “넌 어떻게 지냈어? 어, 타이슨은 제하고 말이야.”

“괜찮았던 것 같아.” 에이드리안은 어깨를 으쓱였다. “친구들이 떠나기 전에 함께 있어주려고 애쓰고 있어. 적어도 캔디는 UCI(註-캘리포니아 오렌지 군 어바인(Irvine)에 있는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어바인 캠퍼스)에 다니게 됐으니깐 떠나지 않을 거야. 몇 명은 플러턴(註-Fullerton, 오렌지 군 Fullerton에 있는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풀러턴 캠퍼스)에 다닐 거야. 하지만, 다른 애들은 뿔뿔이 흩어져야 해. 미즈호는 코넬대학교처럼 먼 곳까지 가야만 해.”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또다시 대화가 끊어졌다. 에이드리안은 머뭇거리며 나를 한 번 더 바라보고는 엄지를 들어 집을 가리켰다. “이젠 안으로 들어가야겠어. 구해줘서 고마워. 벤.”

“언제든지.” 나는 꾸벅 목례를 했다.

에이드리안은 미소하며 돌아서려고 했다. 나도 돌아서려고 했지만, 에이드리안은 갑자기 동작을 멈추고 또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아 참...”

“왜?”

“너 진짜 멋져 보여. 벤. 셔츠가 마음에 들어.”

웃음이 나왔다. “당연히 그래야지. 네가 골라 준 옷이데.”

“오... 맞다.” 에이드리안은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는 돌아서서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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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요?” 눈깔이 튀어나올뻔했다.

“치사해요!”

“진정해, 브룩, 너도 하나 생기니깐. 하지만, 거기서 끝.”

“뭐라고요?” “뭐라고요?” “치사해요!” 이번엔 쌍둥이들이 들고 일어섰다.

엄마는 한숨을 쉬고 쌍둥이를 꼭 집어 바라보았다. “너흰 아직 너무 어려. 고등학교에 입학하면 사줄게. 알았지?”

“진짜 치사해요!” 엠마가 떼를 썼다.

부모님을 쌍둥이를 무시하고 뭉뚝한 검은색 노키아 두 대를 건네 주었다. 몇몇 동급생들이 쓰고 있는 휴대폰과 비교하자면 한눈에도 구닥다리인 게 보였다. 그러나 전혀 기대치 않았던 공짜폰에 불만을 품을 수는 없었다.

한편, 브룩은... “에이, 이왕이면 예쁜 걸 사주지. 너무 못생겼잖아요!”

“알았어, 그럼 쌍둥이한테 줘야겠다.” 아빠가 심각하게 말했다.

브룩은 급히 태도를 바꿨다. “아뇨, 아뇨. 괜찮아요. 쓸게요.”

“잘 들어. 정해진 시간을 넘기면 그때부턴 너희가 요금을 물어야 해. 턱이 얼얼해질 때까지 친구들이랑 수다를 떨라고 사준 게 아냐. 가족끼리 용건이 생겼을 때 연락하라고 사준 거지. 그래, 맞아. 모발일 투 모바일을 쓸 수 있어.” 엄마는 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서 말인데 벤, 이제부턴 매일 밤 도온한테 유선 전화를 거느라 전화비를 왕창 물리는 걸 안 봐도 되겠지?”

“그럼요.” 나는 휴대폰이 생긴 것만으로도 벅차 흔쾌히 대답했다.

“너희 둘 명심해. 엄마 아빠는 너희 통화내역을 샅샅이 알 수 있어.” 엄마는 ‘너희 지켜보겠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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