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46)「돌아간다」후일담 #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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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와 성현이는 점심시간 직후 조퇴했다. 소유가 얻어맞아 상태가 좀 나빴기 때문이다.
"소유, 고생했어."
"맞은 건 상관이 없는데……백성현 얘가 자꾸 사람 패려고 해요. 혼내주세요."
"성현아?"
나는 성현이를 향해 빙긋 웃어보였다.
"사람 패지 말라고 했지?"
"……백소유가 맞고 있었어요."
"소유한테는 미안하지만 애초에 의도한 거였어. 소유, 제대로 녹음했어?"
"네."
소유가 스마트폰을 내게 건넸다. 나는 가장 최근 녹음기록을 확인했다. 천현식이 소유를 때리고 밀친 건 확실하게 녹음되었다. 변명하는 건 불가능하다.
"죄송해요, 누나. 아무래도 선도부는 못 될 것 같은데……."
"괜찮아. 그건 애초에 구실이었어. 선도부는 들어가면 좋은 거고, 못 들어가도 딱히 상관은 없어."
내가 미쳤다고 사람 패면 안 되는 애들한테 양아치 때려잡는 선도부 하라고 시키겠는가. 어느 정도 양아치 새끼들이 잠잠히 가라앉으면 모를까, 아직 몸을 쓰는 버릇이 남아 있는 성현이를 선도부에 밀어넣기는 좀 그렇다.
준비물은 모두 갖추어졌다.
천현식이 일방적으로 소유를 구타한 것과, 천현식에게 복수할 힘과, 아니라고 잡아뗄 미끼와, 설령 들키더라도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살 수 있는 사랑하는 의남매를 때린 불한당에 대한 복수라는 명분까지.
"얘들아, 집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그 새끼 팔이라도 하나 분지르고 올게. 너희 못 건드리도록."
애들은 나를 쉽게 보내지 않으려고 했지만, 이미 준비물이 다 갖추어진 상태에서 나를 막기란 요원했다. 나는 최대한 괜찮다며 애들을 설득하고 밖으로 나왔다.
솔직히 애들의 걱정은 전혀 쓸모가 없다. 내가 설마 천현식에게 지겠는가.
오늘은 6교시까지밖에 없는 날. 4시 조금 안 돼서 학생들은 하교한다. 천현식이라고 별 다를 건 없을 터. 지난 번에도 후문으로 하교하는 걸 확인했으니, 나는 마찬가지로 후문 쪽으로 향했다.
현재 시각은 약 2시. 너무 일찍 나온 감이 없지 않게 있지만, 상대가 정말 쓰레기 양아치인 만큼 수업 도중 탈주해버릴 가능성도 있었기에 나는 후문 근처에서 잠자코 몸을 숨기고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려서 학교 종이 울리고, 학생들이 우르르 쏟아져나와 하교한다. 천현식도 예외는 아닌지 후문으로 나왔다. 나는 스마트폰 녹음 기능을 켜둔 후 그런 천현식 앞에 당당하게 섰다.
"천현식."
"……뭐야 넌 또. 애새끼들 맞은 거 복수하러 왔냐?"
"사과해."
"조퇴는 왜 하나 싶었는데, 꼰지르러 간 거였네. 병신 새끼들."
천현식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주위를 살폈다. 나는 일부러 아무도 데리고 오지 않았다.
"그 떡대들은 없냐?"
"사과 받으러 온 건데 그 사람들이 왜 필요한데?"
"와……."
천현식이 비릿하게 웃었다.
"야, 고맙다."
천현식이 내 손을 낚아채더니 근처 골목길로 쭉 끌고 갔다. 나는 힘없이 딸려갔다.
"야 이 씨발련아. 내가 너 가만히 안 놔둔다고──"
녹음 기능을 끄고, 나는 천현식의 팔을 잡아 비틀었다.
"아악──읍!"
골목길이라고는 해도 학교 후문이다. 시끄럽게 떠들어봤자 좋을 거 없다. 아예 천현식의 입까지 틀어막은 후 몸 위에 올라탔다.
"으읍!?"
"우리 현식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지? 분명 떡대들 없어서 나 이길 줄 알았는데, 왜 팔이 비틀리고 엎어져 있나 싶지?"
천현식의 팔을 더더욱 비틀었다. 아예 팔이 한 바퀴가 돌아가버릴 지경에 천현식은 악을 쓰며 몸부림쳤다. 돌부리 따위에 쓸린 천현식의 팔에서 피가 흐른다.
"현식아, 우리, 잘 생각해보자."
"으으으윽!"
"닥치고, 잘 생각해봐. 너 같은 양아치 새끼들은 뒷감당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일단 싸지르고 보지. 그런 너희의 행동이 먹히는 건 수준이 비슷한 또래들뿐이야. 왜냐하면 걔네는 같은 학생이라 너희가 무서워서 감히 반항할 수가 없거든."
천천히.
하지만 분명히 조금씩 비튼다.
"으읍! 으으으읍!"
"근데, 나는 아니야. 너는 뭐 내가 코리안 갱이고 여두목 같은 거로 아는 모양인데, 오히려 그랬으면 내가 힘이 없다고 하더라도 함부로 건드리지 말았어야지. 양아치 새끼야. 나중에 뒷감당은 어떻게 하려고?"
빠득, 하고 어깨가 탈골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미안한데 나는 그 떡대들보다 훨씬 강해. 너 같은 양아치 새끼들 한트럭으로 몰려와도 충분히 이겨. 그러니까 현식아. 너 죽여버리고 돈으로 묻어버리기 전에 자중하는 게 좋을 거야. 나는 누가 내 새끼들 건드리는 걸 제일 싫어하거든. 알겠지, 현식아?"
"크, 아아아악!"
천현식은 발버둥을 친 끝에 나를 밀쳐내고 벌떡 일어났다. 팔을 붙잡고 몸을 부들부들 떠는 게 어지간히 아픈 모양이었다.
나는 다시 녹음기능을 킨 후 근처 돌맹이로 내 머리를 후려쳤다. 조금 강하게 친 덕분에 머리가 깨진 건지 뭔지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사람, 살려요! 여기 미친 년이!"
천현식은 괴성을 지르며 골목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어수선하게 소음이 모여드는 게 천현식이 사람들에게 접근한 모양이었다. 저 빡대가리가 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사람들에게 도움을 구해 나를 경찰에 신고하는 것 정도일까.
괜찮다.
나는 우는 연기까지 할 수 있다. 그닥 어렵진 않은 게, 다시 현대로 돌아왔을 때와 그쪽으로 납치됐을 때를 비교하며 떠올리면 눈물이 나오더라. 신기해.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오고, 120억이라는 구체적인 숫자를 떠올리자 나는 이윽고 훌쩍거리며 아예 본격적으로 울기 시작했다.
"흑, 으……."
그리고 바닥에 굴렀다. 흙먼지가 내 고급스러운 옷을 더럽혔다. 일부러 비싼 거 좀 입고 나왔다.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가 점점 커졌다. 여러 명이서 오는 건지 말발굽 소리 비스무리하게 들렸다. 골목 지척까지 다가왔을 때, 참아왔던 울분을 터뜨리듯이 대성통곡했다.
"헝, 흐윽, 흑……아윽……."
"여기! 여기에요!"
마침내 사람들이 골목길에 들어왔을 때, 어수선하던 분위기는 온데간데 없고 정적이 찾아왔다. 사람들의 얼이 빠져 있는 게 피부로 느껴졌다.
"……학생. 팔을 비틀었다며?"
"아! 이것 봐요! 어깨 탈골됐잖아! 저거 다 연기라니까!"
"머리가 깨져서 피까지 흐르고 있는데 뭔 연기야. 연기는. 애초에 탈골되면 그렇게 멀쩡히 못 있어. 야, 얘 데려가. 어차피 훈방조치되긴 할 텐데 그래도 서로 데려가라."
천현식은 악을 쓰면서 경찰의 손을 벗어나 내게로 돌진해왔다. 나는 짐짓 공포에 질린 듯 비명을 지르며 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뒤로 물러났다. 천현식은 그런 내 바로 앞에 우뚝 서서는 소리질렀다.
"씨발! 네가 나 이렇게 만들었잖아."
"무, 무슨……소리세요……제발 그만해요……."
"이런 미친……!"
내 외모는 써먹기 참 좋다. 일단 호리호리하기때문에 양아치 팔을 비틀어서 탈골시킬 괴력은 없어보이기에. 게다가 현재 내 외모, 비싼 옷에 흙먼지가 잔뜩 묻어 있고 머리는 깨져서 피가 흐른다. 게다가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유명한 모델이라는 것까지 알 터.
"저 사람, 이펙트 소속 모델……."
마침내 뒤에서 경찰이 수근대기 시작했다. 경찰이 다가오기 전에, 천현식이 내 멱살을 잡고선 들어올렸다.
"이 씨발련이……."
나는 그런 천현식에게, 비굴한 몸짓과 우는 표정을 그대로 연기한 채로 속삭였다.
"또 그러면, 그땐 진짜 죽여버릴 거야."
"이, 이거 봐! 이 새끼 또 나 협박하잖아!"
경찰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다가왔다.
"학생, 그만해. 이건 상해죄야. 따라와."
"아니, 씨발 지금 팔이 돌아간 건 나인데 뭔 개소리야!"
"저 사람이 어떻게 네 팔을 돌려?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좀. 얌전히 따라와."
천현식은 끝까지 악을 쓰며 나의 죄를 주장했지만, 먹힐 리가. 여기 근처에는 CCTV도 없다는 거 확인하고 저지른 일이고, 녹음한 것도 쟤가 나 협박하거나 한 것들만 녹음되어 있어서 문제 없다.
나의 승리다.
이길 수 없다는 걸 깨달았으니 앞으로는 자중해라, 천현식. 법으로 처벌받거나 민사로 고소당하기 싫으면 말이다.
나는 남아 있는 경찰의 도움을 받아 몸을 일으켰다. 내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을 본 경찰이 대체 왜 갖고 다니는지 모를 손수건을 꺼내 내게 건넸다. 나는 눈물을 훔쳤다.
"감사, 합니다……감사합니다……너무 무서웠어요……."
"이젠 괜찮습니다. 대신 참고인으로 서로 좀 따라와주셨으면 합니다. 힘드신 건 알지만, 괜찮으실까요?"
"네, 네……."
여경이었는데, 보다 못한 경찰이 내 옷가지를 털어주었다. 흙먼지 따위가 날리며 내 처지를 더욱 서글프게 만들었다. 나는 흩날리는 흙먼지에 기침했다.
"켈륵, 쿨럭."
"아, 죄송합니다. 옷을 털어드린다는 게."
"괜찮, 아요……."
"우선 병원으로 모시겠습니다. 찢어졌을 수도 있으니……."
나는 경찰의 도움을 받아 경찰차에 올라 병원으로 향했다. 저 뒷편을 곁눈질하니,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경찰차에 탑승하길 거부하는 천현식이 보였다. 아예 경찰을 밀치고 도망가려고 하길래 경찰은 삼단봉을 꺼내들어 천현식을 타격했다. 천현식은 또 다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바닥에 엎어졌다.
한 번 병신은 영원한 병신이다. 병신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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