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0억을 위해 아카데미 교수가 되었다-245화 (245/247)

(EP.245)「돌아간다」후일담 #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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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선도부, 불량학생 타도."

"불량학생, 타도……."

자신의 말을 조심스레 복창하는 백설기에, 한서연은 작게 한숨 쉬었다. 백설기를 선도부에 넣어주기만 하면 된다고 들었지만 어느새 백설기의 행동을 조율하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자신이 아예 선도부의 일원이 되어 있었다.

심지어 반장인 자신이 선도부장이었다. 생기부 하나는 기깔나게 쓸 수 있겠지만 정신적 부담이 너무나 컸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 아이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일주일, 게다가 자신이 이번 일을 성공했을 때의 보수는 1억이었다. 선도부 학생이 불량학생을 잡는 데 선도부장으로서 고작 일주일 동안 조력한다면 1억이 떨어지는 것이었다. 아마도 전국 모든 인간이 이런 제안을 받았을 때 수락하겠지.

백설기도 의욕이 없진 않은 것 같은데, 어째서인지 표정이 어두웠다.

"무슨 일 있어? 표정, 어두워."

"……언니 위해 하는 일. 실패하면……."

아하, 실패를 염려하고 있는 것이었다. 몇 번 보여준 적 없는 인간다운 모습에 한서연은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괜찮아! 너희라면 분명 잘 해낼 거야. 너희, 가능성 높다."

"……고마워."

지금은 점심시간이었다. 여느 학고와 마찬가지로 학생들은 반이 아니라 교실 밖에서 쉬거나 놀았으며, 그것은 불량학생의 경우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더군다나 불량학생은 모든 반의 8반만 있었다. 백유민의 말대로라면 정말, 진짜 양아치들만 처리하면 되는 것이기에 부담도 적었다. 저 양아치 혼내주라고 말한 뒤 뒤에 숨어 있기만 하면 모든 게 일사천리가 아니던가?

"가자."

우선은 학교 내부의 구석진 곳이었다. 규모가 어느 정도 큰 만큼 '구석진 곳'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은 상당히 많았다. 당장 이곳들만 전부 확인하면 점심시간이 지나버릴 가능성도 있었다.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주어진 시간은 일주일. 주말 빼면 닷새.'

양아치 본성 어디 안 간다고 분명 어디 한 군데는 점령하고 있겠지. 걔네를 적발하면 이번 의뢰,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고등학교의 점심시간은 빠르게 맞물려간다. 공부하느라 지친 심신을 달래기라도 하듯이, 혹은 그걸 잠시만이라도 잊기 위해 놀거나 산책을 하는 학생들, 혹은 부족한 잠을 보충하기 위해 반에서 자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한서연은 미리 교실에서 확인을 하고 나왔다. 반에서 자고 있는 애들은 그나마 덜 양아치였고, 진짜 양아치라고 부를 수 있는 천현식 패거리는 보이지 않았다.

한서연이 갖고 있는 편견에 따르면, 양아치는 구석진 곳에서 담배를 피운다든가……아니라면 학교 바깥으로 나가서 담배를 사오든가……아무튼 양아치의 대명사인 담배와 뭔가 연관이 있을 것 같았다.

여기까지 판단을 마친 이후, 이제는 정말 학교의 구석진 곳들을 전부 돌아다니는 일만 남은 상태였다.

혹시 몰라 중앙계단에 올라 학교 전체를 훑었다. 인조잔디 위에서 뛰노며 축구 혹은 농구를 하고 있는 학생들, 구석에 마련된 산책로에서 한가로이 걸어다니는 학생들, 그것도 아니라면 식당에 줄을 서 있거나, 식당에서 막 나오고 있는 학생들.

한서연의 편견에 따르면 양아치는 식당에서 밥을 먹지 않았다. 밖에 나가서 편의점에서 때우든가 하겠지. 스스로도 너무 빈약한 편견이자 추측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식당까지 전부 뒤질 여유는 없었다.

우선은 학교 후문 인근이었다. 괜히 후문이라는 이름이 붙은 게 아닌 듯 학교의 구석진 곳의 대명사라고 부를 수도 있는 곳이었으며, 학교 밖으로 향하는 계단은 한 칸 한 칸이 높아 오르기도 버거웠으며, 무엇보다 항상 습기가 차 있어 축축하고 불쾌했다.

이따금 계단 천장에 둘러져 있는 플라스틱 돔에서 어째서인지 물기가 한 방울씩 떨어지는 게 그나마 이 장소에서 가장 눈에 담기 깨끗한 것이었다.

바닥은 잿더미와 껌으로 가득했다. 계단 손잡이는 녹이 슬어 있어 이걸 잡고 오르라고 만들어놓은 것인지 의심이 갈 정도였다. 한서연은 1년 반을 학교에서 생활하며 후문에 온 적이 아예 없었기에, 살풍경으로 느껴졌다.

"여기, 탐색?"

"으응. 여기 확인해야 해."

딱 보아도 어두컴컴하고 우중충한 게 양아치와 어울려보이지 않는가. 후문에는 계단이 있을 뿐만이 아니라 근처에 이리저리 돌벽으로 둘러싸인 통로가 있었기에 하나하나 확인을 해야만 했다.

백설기는 이따금 쳐져 있는 거미줄을 직접 손으로 걷어내며 골목의 안쪽까지 확인했다. 골목의 안쪽은 빛도 거의 들지 않아 어두웠으며, 계단 앞의 땅과 마찬가지로 바닥에는 잿더미가 간간이 쌓여 있었으며 껌으로 가득했다.

골목은 이곳 한곳뿐만이 아니었다. 후문쪽에 적을 두고 있는 모든 골목을 구석구석 뒤진 결과, 아무래도 양아치는 이런 곳에 없다고 판단했다.

'후문 밖으로 나갔을 가능성이 있는데…….'

하지만 아무리 선도부장이라고 하더라도 수업이 끝나지 않았는데 학교 바깥으로 나갈 깜냥은 없었다. 생기부 채우려고 하는 행동인데 생기부에 나쁜 말이 기입되면 본말전도이지 않은가.

결국 후문 밖으로 나가는 것은 포기하고, 다시 인조잔디 운동장으로 돌아왔다. 학교에 구석진 곳은 얼마든지 있었기에 백설기를 데리고 부지런히 이동하며 기웃거렸다. 밖에는 없는 건가 싶어 교내도 뒤졌다. 하지만 역시 양아치……천현식 패거리는 학교 내부에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서연은 마음을 굳게 먹었다. 한 명이라도 좋으니까 일단 잡으면 되는 거다……들키지 않고 나가면 되는 거다……점심 시간이 끝나기 전에만 돌아오면 되는 거다……그녀는 스스로를 세뇌하며 후문으로 향했다.

계단에 발을 올렸을 때.

"반장, 나가도 돼?"

"……잠깐 몰래 나가서 요 근처만 보고 오자. 아마 편의점 근처에 있을 테니까……잠깐, 가능, 편의점 근처, 확인."

백설기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여정은 결정되었다. 층계를 조심스레 올라 철문을 열어젖히고 바깥으로 나왔다. 후문이라고는 해도 학교 바깥으로 나오면 시내인 게 한눈에 보였다. 어느 골목길로 나온 이들은 다시금 골목을 샅샅이 수색했다.

한참을 뒤져도 보이지 않자, 한서연은 시간을 확인했다.

'……10분.'

돌아가는 시간가지 고려해서, 앞으로 10분 안에 돌아가야만 했다. 아무런 소득이 없이 돌아가면, 이대로 닷새가 지나버린다면, 1억은 날아가는 것이었다.

"편의점 근처, 확인하자."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도박이지만 수업시간에 늦는 한이 있더라도 찾아야 했다. 못 찾으면 큰일이겠지만, 찾는다면 불량학생들을 선도한다는 명목으로 조금 늦은 건 봐주지 않을까, 싶었다.

학교 바깥에, 그것도 바로 근처에는 편의점이 두 군데가 있었다. 서로 정반대에 있는 곳이었기에, 따로 갈라져서 찾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최대한 뛰어다녔다.

"헥, 헥……."

하지만 한서연의 체력은 결코 좋다고 할 수 없는, 한참 평균에 못 미치는 수준이었기에 금방 지치고 말았다.

"──?"

"──."

백설기 중 한 명인 백소유가 한서연을 번쩍 안아들었다. 한서연은 당황해 몸부림쳤지만 백소유의 괴력은 상당했다.

"시간, 급해. 이게 더 빨라."

"그, 그래도 이건……!"

"우리, 선도부. 양아치, 잡아."

한서연은 이를 아득 갈았다. 그래, 1억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감내할 수 있다!

마침내 편의점 인근에 도착해 근처 골목길을 전부 뒤졌다. 이쪽은 그나마 번화가에 가까웠기에 골목길이 적었고, 수색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역시 이곳에도 천현식 패거리는 없었다.

"반대편으로 가자!"

이번에는 아예 백소유에게 업혔다. 공주님 안기로 안기는 것보단 등에 업히는 게 그나마 낫지 않겠는가. 대낮에 교복 입은 여학생을 사복 입은 또래 남녀 한쌍이 업고 뛰어다니는 것은 사람들에게 있어 이상하게 비추었지만, 한서연은 최대한 부끄러움을 참아냈다.

마침내 반대편 편의점에 도착했을 때.

"으……."

딱 봐도 장사가 안 될 것 같은 구석진 곳에 편의점이 있었다. 덕분에 마찬가지로 근처에는 좁은 골목길이 아주 많았다. 한서연은 불경을 읊듯이 하나님 부처님 예수님을 중얼거리며 골목길을 뒤졌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골목길 안에서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백설기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한 후, 골목 벽에 기대 최대한 안쪽에 귀를 기울였다.

"아, 씨발. 진짜라니까."

"알았다고. 백유민은 코리안 갱이다. 됐지?"

"하아……사진이라도 찍거나 녹음이라도 할걸."

"너 그럴 머리가 안 되잖아."

"뒤질래?"

서로 만담을 나누며 킥킥대고 있는 천현식의 패거리. 한서연은 앞으로 세 종교의 독실한 신자가 될 것임을 맹세하며 골목길 안으로 들어갔다.

"너희."

"……뭐냐, 반장?"

구석에 비치된 버려진 의자에 앉아 있던 천현식이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한서연은 그제야 눈치 챘다. 이곳은 담배 연기로 자욱했다. 비흡연자인 한서연에게는 목이 매일 정도로 칼칼한 냄새가 코를 괴롭히는 탓에, 한서연은 잔뜩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여긴 왜 나왔냐? 뭐 하려고."

"나……는 선도부장이야."

"그래서 뭐, 우리 갖다가 교장한테 바치기라도 하게? 어떻게?"

천현식이 담배꽁초를 한서연에게 던졌다. 한서연은 움찔하며 꽁초를 팔로 막아냈다.

"……야, 가라. 보내줄게. 귀찮게 하지 말고."

"학생이 담배를 피면 안 되지."

"어째 하는 말이 꼰대 새끼들이랑 다를 게 없냐. 좀 꺼져라. 우리가 담배를 피든 말든 뭔 상관인데 네가."

"야, 야 그냥 평소처럼 해."

천현식의 친구 중 하나, 혜영이 한서연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우리 서연이? 정의감이 아주 넘쳐흐르는 건 알겠지만 선을 넘으면 곤란해요? 교장 빽을 가진 반장이래도 오냐오냐 해주는 게 한계가 있지, 어디까지 간섭하려고 그래?"

한서연의 지척까지 다가온 혜영이 한서연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남자가 여자 패는 건 문제가 있겠지만, 같은 여자가 은근하게 따돌리고 왕따 만드는 건 엄청 쉬운데! 우리 어떡할까? 그냥 갈래, 아침마다 우유로 샤워할래?"

무언가를 더 말하려고 했던 혜영의 몸이 굳었다. 골목 바깥에 몸을 숨기고 있던 백소유와 백성현과 눈이 마주쳤다. 혜영은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야, 천현식."

"왜."

"우리 좆된 것 같은데?"

"뭔……."

어디 먼 곳을 바라보듯이 담배나 뻐끔거리든 천현식이 골목 바깥을 유심히 살폈다. 그제야 눈에 익은 사람 두 명이 보였다.

"야, 데려와."

천현식이 벌떡 일어났다.

"우리가 좆된 게 아니라, 쟤네가 좆된 거야."

"뭐?"

"저 새끼들 사람 패면 안 돼. 데려와서 문제될 거 없어. 그냥 최대한 도발해. 처맞을 수 있도록."

"쟤한테 처맞으면 골로 가겠는데."

"백유민이 사례금으로 몇백씩 주겠지. 시발 그냥 데려와."

혜영이 한숨쉬며 한서연을 지나쳐 백성현에게로 다가갔다.

"안녕, 성현아."

"……."

"천현식이 너 데려오래. 같이 갈래?"

혜영이 손짓하자, 백성현과 백소유는 그녀를 따라 골목길 안으로 들어왔다. 백성현이 공포에 질려 몸을 떨고 있는 한서연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으, 으?"

"반장."

"응……?"

"얘네, 전부, 학교로 데리고 가?"

"……응! 전부 데리고 가."

백성현이 천현식에게로 향하려는 그때, 백소유가 그의 앞을 막아섰다.

"──?"

"──. ──."

"──……──."

그러더니 백소유가 천현식에게로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뭐, 어쩌라고."

"학교로 가."

"싫은데?"

천현식이 피식 웃었다.

"야, 어차피 네 새끼들 우리 못 패지? 구설수에 오르는 것 자체가 안 된다는 거잖아."

천현식이 백소유의 손을 잡는 척하다가, 백소유의 뺨을 찰싹 때렸다.

"……."

"뭐, 꼽냐? 그럼 때려."

백소유는 아랑곳 않고 고개를 다시 앞으로 돌린 다음 손을 내밀었다.

"안 간다고 씨발."

한 번 더 찰싹.

하지만 다시 앞으로.

"아니 씨발 좀 꺼지라고."

한 번 더 찰싹.

하지만 다시 앞으로.

"──."

쐐액, 하며 공기가 갈라지는 소리가 천현식의 귓등을 간질였다. 주마등을 보듯이 세상이 천천히 느려졌다가 백성현의 주먹이 천현식에게 꽂히기 직전, 백소유가 막아세웠다.

"──!"

"──. ──."

백성현이 이를 갈며 물러섰다. 천현식은 죽다 살아난 기분에 헛웃음을 내뱉었다. 백소유가 우물처럼 깊은 눈동자로 천현식을 직시했다.

"같이, 학교로 가. 나, 때리지 마."

"아니 씨발련아 안 간다고!"

이번에는 찰싹이 아니라 철썩. 천현식은 짜증을 이기지 못해 온힘을 실어 백소유의 뺨을 후려쳤고, 백소유는 그대로 옆으로 엎어졌다.

"야, 이거 봐봐. 이 새끼들 우리 못 건드린다니까? 마음대로 때려. 마음대로."

"재미있네."

그의 친구들도 한두 명씩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들이 천천히 백소유에게 다가가려고 할 때, 그들의 앞을 막아세우는 누군가가 있었다.

"저기, 얘들아. 폭력은 나쁜 거야……."

한서연.

"우리 나쁜 새끼들인데 뭐가 문제야?"

"그래도 폭력은……."

"아, 씨발 꼰대 새끼야 좀 꺼져."

그의 친구 중 한 명이 한서연을 밀쳐 넘어뜨렸다.

"윽."

"야, 여자 괴롭히는 건 여자가 하라니까."

"몰라. 존나 짜증나잖아. 지가 뭔데 우리한테 훈수를 둬."

백소유는 말없이 한서연을 일으켰다.

"사과해."

"뭐?"

"때린 거, 사과해."

"하……."

천현식은 아예 주먹에 힘을 싫어 백소유의 안면을 가격했다.

"윽!"

백소유는 그대로 뒤로 엎어져서는 천현식을 노려보았다.

"뭐 씨발, 노려보면 어떡할 건데."

"……."

백소유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더니, 천현식을 한껏 노려보고선 한서연을 데리고 골목에서 빠져나갔다.

"봐봐 씨발, 우리 못 건드린다니까."

천현식과 그의 친구들은 승리를 자축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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