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43)「돌아간다」후일담 #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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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소유와 백성현에게 화해의 기념으로 같이 놀자고 제안한 후, 천현식은 무리로 복귀해 지령을 내렸다.
"술. 가능하면 빨뚜로. 못해도 다섯 병."
"다섯 병이나? 백소유인가 뭔가 걔 어떻게 하게?"
"병신아. 이번엔 걔 안 건드릴 거야. 잘못 건드리면 좆된다 이거."
"그럼 어떡하게?"
"저 새끼들도 민짜인 건 분명하니까 술 마시게 하고 들켜서 전부 엿 먹이는 거지."
그의 친구들은 그거 참 재미있겠다며 낄낄 웃었다. 학교에서……정확하게는 각 학년의 8반을 대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고 마음에 안 드는 놈은 깨부수거나 괴롭히는 것에 적성이 맞았던 그들이었기에, 이번에도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비슷하게 하면 되는 거 아니겠냐며 서로에게 물었다.
물론 이들은 미성년자였기에 편의점을 뚫으려면 고생 좀 하겠지만, 어차피 오늘 하루 종일은 이곳저곳 관광지를 돌아다닐 것이었다. 한 군데에서 두세 곳 정도 도전하면 못해도 열 곳 정도는 방문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가능성이 꽤 높았다.
이것까지도 불가능하다면 그냥 몸으로 밀어버리고 뒷일은 나중에 생각하면 되는 문제였다.
물론 불가능해도 딱히 상관은 없었다. 이미 챙겨온 게 있긴 했기에. 다만 이걸 그놈들에게 먹이면 자기들이 마실 게 사라져 아쉬운 마음에 더 구할 뿐이었다.
그의 친구들은 2학년 8반에서는 8명. 남자 6명에 여자 2명이었다. 다 제정신이 아닌 문제아들이었으니 백성현을 공격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자를 쓰는 것도 나쁘진 않으리라.
"야, 혜영. 소리."
"응?"
"이따 백성현 오면 존나 달라붙어라."
"엑. 왜?"
"어떻게든 학교에서 매장시킨다. 뭐 씨발 편입생? 좆 까라 그래."
그에게 지령을 받은 여학생은 표정을 찌푸리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들이 이런 식으로 이용당하는 게 조금 꺼려질 뿐 재미 자체는 인정했다. 백성현이라고 했던가, 몸도 좋고 얼굴도 잘 생겨서 들러붙는 거에는 딱히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미술관에서 철수해 모두가 버스에 오르고, 천현식은 저 앞에 앉아 있는 8반의 반장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보다못한 그의 친구가 한 소리 했다.
"너 반장 좋아하냐?"
"지랄. 쟤는 어떻게 엿 먹일까 생각하는 거야."
"걔네 두 명만 엿 먹이면 됐지 반장까지 굳이?"
"아까 백유민이랑 붙어 있는 걸 봤어."
무엇보다 백소유, 백성현과 아무렇지 않게 같이 다니는 게 아니꼬웠다.
"그럼 뭐 어떻게 하게? 교장이 이상하게 쟤는 또 챙겨주잖아."
"하아 씨발. 뭐 떠오르는 거 없냐?"
"교장이 커버치기 어려울 정도로 학생으로서 나쁜 짓을 저지른다든가? 쟤한테도 술 먹이던지."
"술 마시는 것 정도는 커버쳐줄걸."
천현식은 그로부터 계속 곰곰이 고민하다가, 한 가지 계책을 떠올렸다.
"반장이 아마 백유민한테 부탁받고 백성현 백소유를 전담하는 거거든 저거? 그럼 백소유 백성현한테 문제가 생기면 백유민이 반장한테 지랄하지 않을까."
"나쁘진 않은데. 고작 술 마시는 거 갖고 백유민이 지랄하겠어?"
"저번에 대화를 보니까 뭐 사람을 다치게 하면 안 되는 모양이던데, 몇 대 맞아줘야지."
사악하게 웃는 천현식을 보며, 그의 친구는 한심하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얘는 인간으로서 근본이 잘못됐다.
약 30분을 달려 도착한 관광지는 제주불빛정원. 아직 해가 저물기 이전이었기에 설치된 조형물은 반짝거리지 않았다. 학생들은 실망한 기색을 풀풀 풍겼다.
"쌤, 여기 밤에 와야 하는 거 아니에요?"
"2학년에는 반이 여덟 개나 돼서, 순서가 무작위야. 우리는 두 번째 장소를 여기로 배정받았어."
"에이, 사진도 못 찍겠네."
학생들은 털레털레 걸어다니며 그래도 사진을 찍으러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천현식은 친구들한테 편의점을 다녀오라고 말한 후 백소유와 백성현의 뒤를 몰래 쫓았다.
"이거, 그물?"
"이건 LED라고 하는 건데, 전기가 흐르면 빛이 나오는 거야."
"이해, 힘들어."
"전기, 흐르면, 빛남."
천현식은 LED도 모르는 이상한 놈들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대체 어디서 굴러먹다 나온 개뼈다귀들이길래 상태가 저따구인가. 설령 외계인이더라도 저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여기, 서봐. 사진 찍어줄게."
"백성현, 개구리."
"……나, 개구리? ──?"
"──? ──."
"──! ──? ──."
저 대화법에 익숙하지 않은 건 천현식뿐만이 아니었다. 반장인 한서연마저도 머리가 어지러운지 미간을 집고 있었다. 저렇게 골치가 아픈 애들이랑 왜 같이 다니겠는가? 백유민의 사주를 받았음이 분명했다. 이것으로 확인은 끝났다.
백유민을 엿 먹인다. 모델이라고 했으니 사람들의 평판이 매우 중요하겠지. 백소유와 백성현을 나락으로 보내는 것을 시작으로 백유민까지 떨어뜨리는 게 천현식의 목표였다. 성공하면 좋겠지만 실패해서 손해보는 건 없었다. 어차피 그와 그의 친구들은 내다버린 인생이었다.
그가 다시 무리로 복귀했을 때에는, 이미 그의 친구들이 술을 사온 뒤였다.
"뭐야, 바로 뚫렸어?"
"여기 거진 산속이라 그런지 편의점이 하나밖에 없더라. 장사가 안 되는지 그냥 팔던데."
"좋아, 시발."
술도 준비됐고, 확인도 마쳤다. 이제는 정말 실천으로 옮길 때였다.
'사지 멀쩡히 살아가고 싶으면 건드리지 말라고?'
천현식은 자신에게 충고했던 한 남자의 모습을 떠올렸다.
'지랄, 모델이 어떻게 사람 써서 고딩을 팬다는 거야? 여기서 손해보는 건 백유민 그년뿐이지.'
그의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혹은 계획을 점검하며 시간을 보내며 이곳저곳 이동한 결과 밤이 찾아왔다. 다시 숙소로 이동해 인원을 확인한 다음 학생들에게 마찬가지로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뭔놈의 자유시간이 이렇게 많냐. 이거 수련회 맞아?"
"우리야 나쁠 거 없잖아."
"그건 그렇지."
천현식과 그의 친구들은 방바닥에 술과 과자를 넓게 깔아놓았다. 숙소에 도착한지 대충 한 시간 정도가 지났으니, 이만 데리러 가도 괜찮겠다 싶었다.
"갔다온다."
우선 반장과 같은 방으로 배정받았던 여자애들을 데려올 때였다. 여자방은 윗층에 있었고, 올라가 방 하나의 문을 두드렸다. 곧 한 명이 나왔다.
"왜 이제 와?"
"됐고, 반장 데려와봐."
"걔는 왜?"
"아 좀, 빨리 데려와."
혜영은 궁시렁대면서도 반장을 데려왔다. 한서연은 오기 싫은데도 억지로 끌려온 듯 안색이 좋지 않았다.
"반장. 그 걔네 방 어디인지 알지."
"……누구?"
"편입생들. 말했잖아. 화해하려고 한다고. 내 방에다가 과자랑 음료수 깔아놨으니까 데려가게 말해."
반장이 우물쭈물거리는 것을 본 천현식은 혜영에게 눈짓했다. 혜영은 반장에게 어깨동무를 빙자한 헤드락을 걸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우리 서연이, 밤에 자기 싫어?"
"……."
"우리랑 놀까, 걔네 방 위치 알려줄래? 응?"
"저기, 3층 끝방……."
혜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기 2층인데?"
"걔네 남매랑 비슷한 거라, 한 방에서……."
"인맥빨 좆 같네. 아무튼 가자."
혜영이 촐랑거리며 천현식을 따라갔다. 3층으로 올라가니 교사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3층이 선생들 방 있는 층인데 시발 애들을 여기 놔?'
보나마나 백유민의 인맥이나 재력이 개입한 것이리라. 천현식은 혀를 쯧, 차고선 한참이 지나 복도에 아무도 없게 되었을 때, 빠르게 지나가 문을 두드렸다. 곧 백소유가 나왔다.
"……."
가벼워도 너무 가벼운 차림에 천현식은 잠깐 말문을 잃었다. 돌핀 팬츠를 방에서 입는 건 알겠는데 그걸 입고 밖으로 나오면 어쩌자는 것인가.
"야……저거 원래 밖에서도 입냐?"
"많이 입는데? 움직이기 편하잖아."
"하아. 야, 백소유. 백성현 데려와."
백소유는 잠깐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안으로 들어오라며 손짓했다. 이제 와서 거리낄 건 없었기에 방 안에 들어온 천현식은 몸이 굳었다.
"──?"
"──."
백성현의 몸.
운동을 하고 있던 건지 뭔지는 몰라도 상의를 벗고 있었다. 옆에서 혜영이 작은 감탄사를 흘렸다.
"──."
"──……──?"
"──!"
"──……."
어쩐지 삼가하는 기색의 백성현을 백소유가 끌고 나왔다. 혜영이 좋다며 백성현에게 들러붙어 길을 안내했다.
"맞다, 너 얼빠지?"
"몸도 좋으니까 좋은 거지. 이런 애가 남자친구면 얼마나 행복할까……."
"미친 년."
저래놓고서는 한 달마다 남자친구를 갈아치우는 걸 취미로 삼는 여자인 걸 천현식은 알았다.
1층 방에 도착해서는 문을 활짝 열어젖히니, 이미 한창 마시고 있는 친구들이 보였다.
"야, 데려왔다. 자리 좀 내봐."
"진짜 데려왔네. 존나 예쁘다."
"그거 면전에다가 얘기해도 되냐?"
"시발 어차피 말이 안 통하는데 무슨."
"나, 예뻐?"
모두 멈칫했다. 그들의 시선이 백소유에게로 향했다.
"너 한국말 할 줄 아냐?"
"조금, 가능해."
"뭐가 뭔지 모르겠네……앉아."
일부러 백소유는 여자애들 사이에 앉히고, 천현식은 백성현의 옆에 앉았다.
"편하게 즐겨. 과자든 술이든 넘쳐나니까 마음대로 마시고."
"술, 가능해?"
"어, 가능해."
백성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종이컵에 담긴 술을 들이켰다. 천현식은 속으로 샐쭉 웃었다.
'됐다.'
계획의 반은 성공한 거나 다름이 없었다. 건너편을 보니 백소유도 다를 것 없이 술을 들이키고 있었다. 한국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살다 왔으니 이런 것까지 세세하게 알지는 못할 것 같아 건 도박이었지만 성공했다.
곧 어색함은 사라지고 저들마다 맞는 주제로 대화하며 즐기기 시작했다. 백소유도 여자애들 둘과 어떻게든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이제는 천현식의 차례였다.
"야, 백성현."
"응?"
"백유민 그거 뭐 하는 사람이냐?"
순간 백성현의 눈초리가 매서워졌다.
"아니, 그냥 궁금해서."
"누나, 뭐 하는 사람?"
"어. 뭐 하는 사람."
외국인이랑 대화하는 것도 아니고 이게 뭐 하는 짓거리인지. 천현식은 인생에 회의감이 들었다.
"……영웅?"
"영웅?"
"나라, 나, 백소유, 구했어."
"나라는 또 누군데."
"이름 아니라, 국가."
천현식이 미간을 좁혔다.
"국가 하나를 구했다고? 어디?"
"아케즈."
"모르겠다, 어디인지."
천현식은 직접 백성현의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그리고 컵을 내밀었다. 백성현도 건배를 모르지는 않는 듯 종이컵을 갖다 댔다.
"후우, 백유민 그 사람 몇 살이냐?"
"나이?"
"어, 나이."
"이십……일? 이십이?"
"누나라며 나이도 몰라?"
백성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정확하게 몰라."
"야, 근데 네 누나 존나 예쁘더라."
천현식은 실실 웃었다.
"네 누나, 예쁘다고. 엄청. 아직 욕은 모르나보네."
"동의해."
"아, 따먹고 싶더라."
순간 주위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천현식이 무엇을 하려는지 눈치챈 그의 친구들은 저마다 눈빛을 교환하며 킥킥 웃었다.
백성현은 이해하지 못한 듯 가만히 있었다.
"아, 시발 이런 것도 모르냐. 그럼 이건?"
천현식은 손가락으로 구멍을 만들어, 다른 손가락으로 쑤셨다.
"알지?"
"……."
"네 누나랑, 하고 싶다고."
천현식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백성현의 주먹이 코앞에 닿아 있었다. 백성현의 주먹은 천현식에게 닿기 직전 백소유에게 제지당했다.
"──?"
"──!"
"──. ──……──."
"──?"
"──."
백성현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다시 자리에 주저앉았다.
'백소유가 백성현 행동에 제약을 줄 수 있는 건가?'
그렇다면 백소유에게 작업을 걸 뿐이었다.
"야, 백소유."
"응?"
"너 존나 꼴린다."
백소유가 얼굴을 찌푸렸다. 얘는 그래도 욕이나 비속어는 얼추 아는 모양이었다.
"천현식. 너. 병신."
"뭐?"
"좆밥."
"이런 씨발련이……."
천현식은 순간 끓어올랐던 화를 다시 안으로 욱여넣었다. 어차피 곧 이곳에 교사가 들이닥치게 되어 있었다. 그의 무리 중 여자는 두 명이었으며, 한 명은 이곳에 선생을 이끌고 오기로 입을 맞춘 상태였다.
아니나 다를까, 잠깐 대치상태가 이루어졌을 때,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야, 열어줘."
문이 벌컥 열리자, 학생부장이 서 있었다. 학생부장은 안의 처참한 풍경을 보더니 표정을 와락 구겼다.
"다 아는 문제아 새끼들은 그렇다 쳐도……편입생들까지?"
학생부장이 방 안으로 성큼 들어왔다. 천현식이나 그의 친구들이나 실실 웃고 있었다.
"너희, 따라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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