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34)「남는다」후일담 #001
아카데미 교수직이라는 건 솔직히 매우 힘이 들어가는 일이다.
그럼에도 내가 아직도 이걸 붙잡고 있는 이유가 뭐냐 하면, 마법에 대한 지식을 잊지 않기 위해, 심심해서, 뭐 이런 이유도 있지만, 더욱 높은 건 이거다.
"에레브, 꼭 이래야겠냐……?"
"네."
"교수직 재미있게 하지 않았냐?"
"그거랑 아저씨 괴롭히는 건 별개라서요. 아, 이제는 언니인가?"
델라즈가 주먹을 꽉 쥐는 것을 본 나는 황급히 거리를 벌렸다. 무엇을 숨기겠는가, 나는 델라즈를 내 조수로 삼겠다고 선언했다. 델라즈는 격하게 반대하고 거부했지만 아타나시아와 총장이 내 편을 들어주고 최종적으로는 아폰까지 델라즈를 질타하며, 결국에는 이렇게 되어버리고 말았다.
하하, 내가 이래봬도 뒤끝이 좀 있는 편이라. 응? 이제 와서는 다 옛말이긴 하지만 직무를 유기하고 말이야, 응? 그러면 써요 못 써요? 맘 같아선 델라즈한테 메롱메롱 얼레리꼴레리 약오르지 까꿍 으하하하 이런 말들 전부 하고 싶다.
아직 델라즈가 여자가 되었다는 걸 전부 아는 건 아니었다. 즉, 마학 수강생들에게 이 사람이 델라즈라는 걸 알리기 위해서는 자기가 스스로 증명할 필요가 있다는 거지. 스스로가 여자임을 인정하는 나의 기분을 너도 맛보길 바란다, 델라즈…….
나는 한껏 들뜬 기분으로 미닫이문을 쾅 열고 들어갔다. 깜짝 놀란 학생들이 얼이 빠져 이쪽을 쳐다보지만 나는 당당하게 단상 앞에 섰다.
"……여러분 이거 발판 어디 있나요?"
"거기, 커튼 뒤에요."
"아, 네……. 고마워요."
아직까지 발판이 없으면 단상 너머를 제대로 보지도 못하는 내 키가 원망스럽지만……뭐 어쩌겠는가. 이렇게 바뀌어버린 걸. 사실 홀에다가 키 크게 해주세요 간절히 빌려고 했더니만 아폰이 빙긋 웃으면서, 진짜 빙긋 웃으면서 도망가는데도 쫓아와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시간이 정확하게 일곱 시가 된 것을 확인하고, 헛기침으로 시선을 모았다. 나와 같이 온 이 어여쁜 아가씨의 정체가 대체 무엇인지 아는 학생들도 있고, 모르는 학생들도 있는지라, 그래도 어느 쪽이든 흥미진진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게 바로 TS의 순기능.
"반갑습니다, 여러분. 얼마 전에도 봤지만 오늘도 반갑습니다. 제 옆에 있는 이 아리따운 숙녀……아니, 소녀가 누구인지 궁금한 사람들 손 들어봐요."
단 한 명도 제외하지 않고 240명 전부가 손을 들었다. 대박.
"자아, 여러분. 1년 반쯤 전에 여러분을 버리고 도망간 교수가 한 명 있었을 겁니다……이름을 기억하고 있습니까?"
수많은 학생들이 델라즈의 이름을 연호했다. 나는 만족스레 미소지었다.
"맞습니다. 바로 여기 있는 소녀가 델라즈 교수님이십니다. 저번에 홀에 대해서 가르쳐줬죠? 거기 들어가서 이런 모습이 된 겁니다."
수많은 학생들이 경악했다. 개중에서는 내가 농담하는 줄 알고 피식 웃는 애들도 있어서, 나는 델라즈에게 서클을 띄워달라고 부탁했다.
"옘병……."
델라즈는 학생들에게 들키지 않을 정도로 작게 욕지거리를 내뱉은 후 서클 여덟 개를 공중에 띄웠다. 선명한 밝은 적색으로 발광하는 델라즈의 마나는 언제 봐도 아름다웠다. 그제야 학생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했다.
한 학생이 손을 들었다.
"네, 거기. 뭐 질문 있나요?"
"홀은 사람의 욕망을 먹는다고 하셨는데……그럼 델라즈 교수님의 욕망은 여자가 되는 거였나요……?"
"푸큽."
나는 웃겨 죽을 것 같아서 고개를 숙이고 최대한 표정을 관리했다. 꼭 그것뿐만이 아니더라도 나를 옆에서 죽일 듯이 바라보고 있는 델라즈 때문인 것도 있었다. 나는 간신히 무표정을 되찾고 고개를 들었다.
"아뇨, 델라즈 교수님이 바란 건 강해지는 거였어요. 알다시피 여자가 남자보다는 마법에 적성이 있잖아요? 홀이 그걸 알아서 교수님을 여자로 만들어버린 거에요! 와! 신기하지 않나요!? 교수님은 무려 두 번째 요관에 있는 홀을 집어삼켰죠!"
"오……오오……!"
나는 학생들의 호응을 얻어 짜잔, 하고 델라즈를 소개했다.
"어때요! 진짜 예쁘죠!"
"네!"
"맞아요!"
나는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얘네도 뭐 알 건 제대로 알고 있군. 나는 너희를 가르치는 교수로서 너희 모두에게 A+이라는 점수를 부여하마.
"아, 물론 저보다 예쁘진 않습니다. 그렇죠?"
학생들이 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이 새끼들이? 나는 최대한 해맑게, 하지만 살의를 담아 다시 질문했다.
"응? 대답해줄래?"
"마, 맞아요. 에레브 교수님이 더 예뻐요."
"좋습니다……여러분은 유능한 학생들이에요."
나는 델라즈를 대충 옆에 의자에 앉혔다.
"사실 말이죠, 오늘 수업은 별 거 없습니다. 사실 뭘 가르치면 될지 모르겠어서 고민 좀 해봤는데 떠오르는 게 없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는 영웅들을 직접 대면하는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
"진짜요!?"
학생들의 괴성에 나는 귀를 막았다. 나도 영웅인데 너희 나에 대한 취급이 조금 박하다고 생각하지 않냐. 그나저나 델라즈도 포함인데 거들떠도 안 보는군. 당연하다. 학생들에게 델라즈는 원수이다…….
"인간을 데려와봤자 델라즈 교수님이랑 다를 게 없는 것 같아서……다른 분을 모셔봤습니다."
학생들이 나를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바라본다. 나는 그 시선을 한껏 느끼며, 문에다가 소리쳤다.
"델타! 들어와!"
…….
안 들어오네.
"델타?"
나는 조심스레 미닫이문을 열어 바깥을 확인했다. 델타가 보이지를 않았다.
"저, 여러분. 잠깐 기다려요? 얘가 어디 갔지?"
나는 강의실에서 빠져나와 본관 이곳저곳을 뒤졌다. 그 결과.
"델타……."
복도 구석에서 사탕을 까먹고 있는 델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복도 끝에는 학생들의 당 보충을 위해 사탕을 구비해놓는다. 원래 세계처럼 그렇게 달진 않지만 그럭저럭 달다.
"……무슨 일이니?"
"아니 즈기요. 여기 계시면 어떡해요. 예? 갑시다. 와 그걸 몇 개나 먹은 거야?"
"두 개란다."
나는 쓰레기통을 확인했다.
"……이게 대체 몇 개──"
"앞장서렴."
나는 투덜대며 앞장섰다. 얘가 요관에서 빠져나오더니 맛있는 거에 참 푹 빠져버렸다. 어째 나랑 비슷한 노선을 타고 있는 것 같아서 신기한 기분이었다.
다시 강의실로 돌아와서, 나는 델타를 세워두고 짜잔, 하며 가리켰다.
"이분이 바로 세 여신 중 한 명, 델타입니다. 참고로 저는 델타랑 말 놓았어요. 그치, 델타?"
"허락한 적은 없는데 네가 마음대로 놓는 거잖니? 이렇게 당돌한 인간은 처음이라 내버려두고 있을 뿐이란다."
"튕기기는."
나는 피식 웃었다.
"정확하게는, 델타는 통령 각하의 어머니인 노바 님의 몸에 깃든 영혼입니다. 알파와 베타의 경우에는 인간의 몸을 스스로 만들어내 현현했지만, 델타는 이렇게 깃드는 방식을 선택했죠. 그 이유는 말하자면 조금 복잡한데……일단 그 딸인 통령 각하께서 납득하고 받아들였으니까 넘깁시다. 델타한테 뭐 궁금한 거 있는 사람?"
많은 학생이 손을 들었고, 나는 그중 한 명을 가리켰다.
"네, 저, 그……알파와 베타는 어떤 여신들이었나요?"
"단적으로 말하자면 쓰레기들이었단다."
델타의 놀라운 단어 선택에 학생들의 몸이 굳었다.
"여기 이 이계의 인간, 알파가 에레브를 데려올 때 설정한 조건이 뭔지 아니? 바로 '그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을 데려오는 것'이었단다. 미친 거지."
또, 하고 델타는 말을 이어갔다.
"그렇게 소환해놓고서는 몇 년 동안 에레브의 존재를 잊고 있었단다. 나중에 가서는 둘이 치고받고 목숨까지 걸고 싸우면서 에레브를 이용하려 들었지. 그에 분노한 에레브가 그 둘을 전부 때려죽였단다."
학생들은 아연해졌다. 이렇게까지 자세하게 알고 있지는 못했으니까.
"알파는 많은 인간들과 강제로 서약을 맺어 수백 명, 간접적인 살인까지 포함하면 수천 명을 죽였고, 베타는 광신도들을 부려 에레브와 관련된 모든 인간들을 죽이려 들었지……."
"……델타 님은요?"
델타는 멈칫하더니, 겨우 입을 열었다.
"천물토벌을 일으킨 게 나란다. 베타의 명령을 듣고 한 거였지만……결국 내가 일으켰다는 건 변하지 않는단다."
"……."
"그것에 대해서는 깊게 뉘우치고 있단다. 내가 뉘우치는 것으로 죽은 사람들이 돌아오는 건 아니겠지만……나는 인간이 되어, 인간세상에 섞여서 인간이란 무엇인지, 인간에게 죽음이라는 건 어떻게 다가오는지, 어째서 생명이란 소중한지……이 모든 것들을 배우게 되었단다. 앞으로 내가 마물들을 부려 인간을 공격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거란다. 염치 없는 말이지만, 부디 이것으로 용서해주지 않겠니?"
여신이 이렇게 저자세로 나오자 견딜 수 없었는지 학생은 고개를 끄덕이고선 도로 앉았다. 나는 분위기를 돌려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델타, 아무 마물이나 꺼내서 부리는 걸 보여줄래?"
"……그래도 되니?"
"응. 학생들이 이제 걔네를 잡을 일은 거의 없겠지만, 그래도 만약이라는 게 있으니까?"
델타의 눈썹이 살짝 비틀렸다.
"그 만약이라는 게 대체 무엇을 뜻하니 인간아?"
나는 흠칫했다.
"……술에 취해서 제정신을 못 차려 실수를 한다든가……?"
"아하하, 그걸 변명이라고 하니?"
방금 그렇게 사과했는데도 자기를 완전히 믿지 못한다는 거에 삔또가 상한 건지, 델타는 표정을 찡그려도 마물은 만들어주었다.
근데 발큰을. 그거 촉수.
근데 또 징그러운 게 아니라 좀 귀여워지고 깨끗해진.
"……이런 걸 꺼내서 보여줘도 돼?"
"징그러운 게 싫어서 개량했단다. 이 정도면 귀엽지 않니? 지렁이처럼 생기고."
"지렁이가 귀여운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이 정도면 나쁘지 않네. 근데 얘를 어떻게 움직이려고?"
델타가 씨익 웃었다.
"이렇게."
그리고 발큰을 빠르게 움직여 내 치마를 들췄다. 잠깐 정신이 멍해진 나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파악하기 위해 머리를 굴린 결과, 내 속옷이 만천하에 드러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기겁하며 치마를 내렸다.
"히야아악!? 야!"
"얘들아 기억하렴. 에레브의 속옷은 순백의 하얀색이란다. 누가 처녀 아니랄까봐──"
"야 이 미친 년아! 내가 미안해!"
나는 학생들의 안색을 살폈다. 학생들은 갑자기 휘몰아친 여러 개의 정보를 한꺼번에 받아들이지 못해 버퍼링이 걸려 있었다.
델타가 천물토벌을 일으켰다는 것, 뉘우치고 있으며 온전한 인간이 되었다는 것, 마물을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다는 것, 근데 그게 또 촉수라는 것, 근데 또 그 촉수로 내 치마를 들췄으며 내 속옷이 하얀색임과 처녀 커밍아웃을 함과 동시에 내가 여신에게 미친 년이라고 욕을 한 것.
하지만 델타는 콧방귀를 뀌며 어깨를 으쓱이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누가 저런 걸 가르쳐줬는지 모르겠다. 진짜 인간 다 됐네.
"……수업을 재개합니다. 여러분, 보다시피 델타는 완벽하게 인간의 편입니다. 촉수로 하는 게 고작 내 치마 들추는 것밖에 없잖아요……."
"하얀색."
"아 조용히 해! 아! 미치겠네! 여러분 내일 승단시험 있는 거 알죠? 딱히 가르친 게 없어서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거기서 결과 보고 어떻게 가르칠지 결정하자고요. 저는 이래봐도 유능한 교사랍니다."
델라즈와 눈이 마주쳤다. 델라즈는 동태 썩은 눈깔을 하고 있었지만, 나는 다시 고개를 돌리는 것으로 무시했다.
"수업이라 할 것도 없었네요. 돌아가서 술식지로 복습이나 하셔요 다들……."
** ** **
델타를 성대에 데려다줬다. 성대에 도착하자마자 델타가 아타나시아에게 뭐라뭐라 귓속말하더니, 아타나시아가 나를 바라보며 풋, 하고 웃었다.
"에레브 양, 하얀색 입어요?"
"……아아아악! 너는 뭐 입는데요!?"
"검은색이요."
나는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검은색이라니, 그것은 어른의 색이 아니었던가? 아타나시아는 이미 어른이 되어버렸다는 것인가……? 나도 어른인데, 아타나시아랑 같은 나이인데 나는 왜 흰색이고 아타나시아는 검은색인가. 또 왜 아타나시아는 피식 웃으며 나를 여유로운 눈빛으로 내려다보고 있는 것인가.
"……아타나시아, 우리 대결 하나 합시다."
"네?"
"내가 아타나시아보다 유능한 여자임을 인정하게 만들어버리겠어요."
나는 투지를 불태웠다. 이렇게 된 이상 속옷 색 따위로 승부하지 말고, 가사 실력으로 승부를 본다.
"요리로 합시다."
"에레브 양이랑 제 요리 실력은 엇비슷한데요? 게다가 심사해줄 사람도 없어요."
"델타를 누가 더 잘 가르치나 대결하는 거에요. 어때요? 알다시피 델타의 실력은 처참하다고 말하는 것도 칭찬이라고 할 정도로 형편없잖아요."
"싸우고 싶니?"
나는 델타의 말을 무시했다.
"아타나시아가 저번에 계란요리를 가르치는 데 실패했으니까……오늘의 주제는 계란으로 하죠. 계란 프라이 하나는 성공해야 하지 않겠어요? 누가 계란 프라이 하나 못 만들어서 계란 한 판을 태워요 대체? 그쵸?"
"딸아, 저 인간이 나를 괴롭힌단다. 복수해주렴."
"……어머니는 요리 실력을 높일 필요가 있어요."
델타는 큰 충격을 받았다.
"저걸 받아들이겠다는 거니?"
"어머니가 해주는 계란 프라이가 먹고 싶어요."
"좋아, 나를 열심히 가르쳐주렴."
저 둘 뭔가 케미가 잘 맞네. 보는 즐거움이 있다.
더 이상의 견제는 필요없었다. 우리는 즉시 대결을 시작했다. 하지만 델타와 한 편인 만큼 아타나시아에게 유리한 싸움이었기에, 나는 후발주자를 자처했다. 아타나시아는 열심히 델타를 가르쳤다.
"어머니, 불의 세기라는 건 어머니가 생각하는 것 그 이상으로 훨씬 중요한 거에요. 이 세상의 모든 요리가 강불로 요리가 되진 않아요. 그러니까, 계란을 구우실 때는 굳이 강불로 하지 않아도……."
"빠르게 하고 싶으면 불의 세기를 높이는 게 맞지 않니?"
"시간의 단축을 위해서는 불을 강하게 피우는 게 아니라 요리 자체에 숙련하셔야……."
"요리라는 건 굉장히 어렵구나."
그야 네가 말을 제대로 듣지 않아서 어려운 게 아닐까요.
나였으면 그렇게 말했을 텐데, 아타나시아는 입을 꾹 닫고 말을 참아내고 있었다. 저것도 능력이야.
결국 계란 10개를 사용해 완성된 것은 날계란과 타버린 계란. 델타는 이 처참한 광경을 목전에 두고선 나를 바라보았다.
"성공 아니니?"
"대체 어딜 봐서?"
"……먹을 수만 있으면 되는 게 아니니?"
"너 그거 먹을 수 있어?"
나는 날계란을 가리켰다. 약불로 줄이랬더니 알코올 램프 정도의 크기로 줄여버려서 전혀 구워지지 못한 날달걀이었다.
"결국 이것도 음식이니까 가능하지 않겠니?"
"그거 다섯 개 연속으로 먹으면 내 패배를 인정할게."
델타는 의기양양하게 날계란을 집어삼켰다.
"……."
집에서 걸어서 10분이 걸리는 편의점에 왔는데 지갑을 갖고 오지 않은 사람처럼 절망적인 표정을 짓더니, 꾸역꾸역 어떻게든 삼켰다.
"네 개 남았어, 델타."
"딸아, 네가 진 것 같단다."
"어머니……."
아타나시아, 격침.
"좋아, 델타. 내가 너를 요리의 신으로 만들어줄게."
"그런 게 꼭 돼야만 하는 걸까……."
"요리를 잘하는 건 어머니로서의 기본 소양이야. 네가 정말 아타나시아의 어머니가 되고 싶은 거라면 응당 배워야만 해."
자고로 모성애만큼 잘 먹혀드는 건 없었다. 델타는 곧바로 눈동자에 생기를 되찾았다.
"좋아……우리는 오므라이스를 할 거야."
"오므라이스?"
"응. 불 조절 스킬은 계란 프라이보다 어렵지만, 손재주가 좋으면 성공할 확률이 높은 음식이지. 어때, 준비 됐어?"
"손재주 하면 또 나란다."
델타의 당당한 모습에 안심이 되었다. 네가 왜 여신인지 보여줘 델타!
"시작하자. 우선, 계란을 까서 프라이팬에 올려."
탁, 하고 계란을 까는 델타.
하지만 프라이팬에 껍질이 들어가고 말았다. 괜찮다. 여기까지는 봐줄 수 있다. 아타나시아는 아예 날계란을 만들어버렸으니 그것보다만 잘 만들면 된다.
"……근데 델타, 그거 기름칠은 한 거지?"
"그걸 왜 두르니?"
"……."
아타나시아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델타를 바라본다. 나는 침착을 가장하고 델타에게 왜 기름을 둘러야 하는지 설명했다. 계란이 프라이팬에 들러붙으면 고생하는 건 아타나시아라고 말해줬더니 납득했다.
좋아, 두 번째 계란이다. 프라이팬이 작은 거라 계란 하나에도 꽉 찬다.
"반숙이 좋아, 완숙이 좋아?"
"그게 뭐니?"
"반숙은 반만 익힌 거, 완숙은 전부 익힌 거. 아까 하던 계란 프라이."
"……반숙으로 해보자꾸나."
계란 프라이는 이미 수십 번 실패해버려서 자신감을 잃은 것 같았다. 괜찮다. 오므라이스를 성공하면 그만이다.
"중불로 돌리고 가볍게 저어서 스크램블로 만들어."
델타가 손잡이를 돌렸다.
근데 강불쪽으로.
"델타? 그건 강불인데?"
"알고 있단다. 조용히 하렴."
그러더니 이번에는 완전히 약불로 돌려버렸다.
"……중불이 뭔지는 알지?"
"그럼. 가운데라는 뜻 아니니? 그럼 강불과 약불의 정확하게 중앙으로 맞춰야 하니, 거리를 재야지."
"……."
얘가 왜 요리를 실패했는지 알 것 같군.
"좋아, 맞췄지? 그럼 이제 가볍게──"
"가볍게라는 건 힘을 어느 정도로 주면 되는 거니? 내가 갖고 있는 근력과 그에 대한 기준치로 설명해주렴."
"……."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러는 도중에도 계란은 익어가고 있었다. 완숙으로.
"……다음 계란을 사용하도록 하자."
델타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지만 순응했다. 그로부터 계란을 열 개 정도 더 사용했지만……."
"……와."
"뭐가 문제니?"
"대체, 어떻게 해야 스크램블 에그를 만드는 데 계란 열 개를 썼는데도 실패하는 거지?"
세기의 난제를 앞둔 수학자처럼 심경이 복잡했다.
"네가 잘못 가르쳐서 그런 거겠지."
"아니……그래……응……."
"에레브 양, 우리 대결은 나중에 하고 어떻게든 어머니가 요리에 성공하게끔 만들어봐요."
아타나시아 또한 투지를 불태웠다. 나 또한 포기할 수는 없었기에 동참했고, 오로지 델타만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약불과 강불 사이의 거리를 쟀을 때 약 45% 정도 손잡이를 전진시켜 약중불로 만들어."
"어머니가 숟가락을 들 수 있을 정도의 근육을 할당해서 그 정도만의 힘으로 프라이팬을 쓰다듬듯이 저어주세요."
이렇게 세세하게 따지는 사람을 다루는 건, 그 세세한 것들에 맞춰 전부 가르쳐주면 그만이다. 하지만 델타는 시발 지가 그렇게 말해놓고서도 미숙했기에 몇 번을 실패한 결과…….
"……드디어."
스크램블 에그 하나가 완성되었다. 나와 아타나시아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해 얼싸안고 환희했다.
"근데, 인간들아?"
"으응?"
"오므라이스라는 건 밥도 있지 않니?"
"……."
이날 요리하는 데 약 다섯 시간을 소비했다는 것만 알려주겠다. 그래도 마지막에 나온 건 그럭저럭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게 나와서 오순도순 나눠먹었다. 나는 다시는 델타가 요리하는 거 도와주지 않을 거다. 저런 힘든 건 아타나시아한테 맡겨야 한다…….
** ** **
승단시험이 찾아왔다.
모든 교수들은 시험감독이 되어 강의실을 관리한다. 물론 수가 부족해서 재단에서 사람을 빌려오기도 한다. 원래 자기가 가르치는 반의 감독은 맡을 수 없지만, 나는 특별히 특혜를 받아 마학 강의실에 배정되었다.
보통 승단시험이라는 건 자기가 갖고 있는 서클보다 한 개가 더 높은 술식지나 자기 서클의 술식지를 푸는 방식이다. 성적으로 따지면 후자가 압도적으로 유리하겠지만, 진심으로 서클을 올리고자 하는 소수의 학생들은 전자를 선택했다.
페일리와 앨버트도 그러했다.
쟤네는 지금 3서클인 걸로 기억한다. 즉 4서클 술식지를 풀고 있다는 거다.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뜻을 존중해주기 위해 말리진 않았다.
두 시간이 지나고, 나는 술식지를 걷어 체점실로 가져왔다. 이건 내가 채점하는 게 아니라, 따로 채점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내가 옛날처럼 고생할 필요는 없다 이거지.
마학 강의실로 돌아와 수고했다는 말을 전하려고 했는데, 어째 반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다들 뭐 해요?"
"교, 교수님! 앨버트랑 페일리가!"
"응?"
뭐 무슨 큰일이라도 벌어진 건가 싶어 황급히 둘에게로 달려가 상태를 확인했다. 하지만 어딜 봐도 다친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둘에게 이게 무슨 일이냐고 시선으로 설명을 요구했다.
"저희, 서클 하나가 더 생겼어요."
"뭐?"
뭐야, 그럼 너희 4서클이야?
"와……둘 다 3서클 된 것도 얼마 안 되지 않았어요? 1년도 안 된 걸로 기억하는데."
"맞아요."
"빠르네……일단 축하해요. 4서클이면 이제 슬슬 마학은 졸업해야죠? 반 따로 배정해줄 테니까 거기로 가요."
앨버트와 페일리는 굳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여기 눌러살기로 결정한 이상 굳이 나에게 꼭 붙어다닐 필요는 없으니까.
"그것보다, 먼저 해야 되는 게 있어요."
"응?"
"누가 더 강한가!"
갑자기 앨버트가 크게 소리쳤다. 나는 깜짝 놀라 뒤로 자빠졌다.
"에?"
"페일리, 대결을 신청한다!"
이게 대체 뭔 개소린가 싶어서 페일리를 바라보니, 얘도 눈에 불을 키고 있었다.
"받아들일게. 가자, 대련실로."
"아니, 잠깐만. 4서클 방금 달았는데 대결을 한다고요? 진짜?"
이미 둘은 시선을 교차하며 서로에게 적의를 보이고 있었다. 내 목소리 따위 들리지 않는 듯했다. 나는 어떻게든 둘을 말리려고 했으나.
"에레브."
"아재?"
"쟤네는 진심으로 하려는 거다. 서로 자존심을 걸고 하는 거야. 네가 방해하면 오히려 더 사태가 안 좋아질 거다."
"진심?"
나는 미닫이문을 가리켰다. 방금 쟤네 밖으로 나갔다.
"저러다가 다치면 어떡하려고요?"
"네가 치료해줘야지. 쟤네도 정도라는 걸 알 테니까 목숨을 노리지는 않을 거다."
"……."
저게 진심이라면 일단 내가 곁에서 지켜볼 필요가 있으니, 나는 대련실로 달렸다. 이미 앨버트와 페일리는 준비를 마치고 양쪽에 서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기, 막……죽을 기세로 싸우고 그러진 마요? 내가 심판 봅니다?"
"네."
나는 어쩔 수 없이 대결을 시작시켰다. 둘은 탐색전을 하듯이 서로를 노려보았다. 얘네가 언제까지 이럴 건지 이해가 안 돼서 계속 지켜보는데, 나는 깨달았다.
'이거 마법을 쓰고 있는 거네.'
영창의 단점이 무엇인지 알아차린 것 같다. 영창하면 위력이 올라가긴 하지만, 동시에 상대방에게 내가 쓸 마법이 무엇인지 알려주게 된다. 위력은 서로 엇비슷할 테니 변수를 노리는 건가.
별안간 앨버트가 손에 화염을 두르고 페일리에게 돌진했다. 페일리는 뒤로 살짝 도약해 돌진의 힘을 줄인 다음, 무릎을 꿇고 뒤로 눕는 것으로 피했다. 그리고선 바람길을 만들어 앨버트를 살짝 휘청거리게 만든 다음, 다리를 차서 아예 엎어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앨버트라고 해서 마냥 당해준 것만은 아니었다. 엎어짐과 동시에 화구 여러 개를 떨궈 페일리가 그에 직격되었다. 다치진 않았지만 옷이 좀 탔다.
뭐냐 얘네.
왜 이렇게 잘 싸워.
앨버트는 아직 몸을 막 쓰는 버릇을 없애진 못한 것 같지만, 그래도 이전보다는 의미있게 활용하는 것 같고, 페일리는 아예 체술을 중점적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페일리가 옷에 붙은 불씨를 꺼뜨리는 사이, 앨버트가 다시 달려들어 페일리를 깔아뭉갰다. 페일리는 사지가 두 팔이 눌린 상태에서, 허리와 다리를 위로 들어 앨버트의 목을 옥죄였다. 앨버트가 저 상태 그대로 페일리를 타격하면 이기겠지만, 그걸로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페일리를 번쩍 들어올려 던졌다. 페일리는 완벽하게 낙법을 펼쳐 착지했다.
다른 학생들도 몇 명 와서 구경하고 있었는데, 다들 입을 떡하니 벌리고 구경하고 있었다. 쟤네는 마법사가 아니라, 마법을 쓸 줄 아는 무인에 가까웠다. 뭐 저런 애들이 다 있냐. 내가 가르쳤다지만 정말 신기하다.
이번에는 페일리가 돌진했다. 슬라이딩 태클로 앨버트의 다리를 노렸지만, 앨버트는 진즉에 다리에 힘을 주고 있었던 듯 끄떡도 하지 않았──페일리는 그대로 다리로 앨버트의 몸을 휘감아 몸을 타고 올라가더니, 또 다시 목을 다리로 옥죄였다. 정확하게는 무게를 실어 쓰러뜨리는 걸 목표로 한 것 같지만 앨버트가 갖고 있는 괴력 덕분에 그건 면한 모양이었다.
앨버트는 떨쳐내는 것 대신에 페일리가 향하고 있는 방향으로 그대로 엎어졌다. 페일리는 몸을 빙글 공중에서 한 바퀴 돌려 빠져나오고, 앨버트는 벌떡 일어났다.
"저기, 얘들아?"
보다못한 내가 태클을 걸었다.
"너희 4서클 단 걸로 싸우고 있으면서 왜 마법은 안 쓰니?"
두 사람은 그제야 무언가를 깨달은 얼굴을 했다. 그러더니 내쪽으로 털레털레 다가왔다.
"응?"
"4서클 마법은 아는 게 별로 없어요. 공격마법도 아니고."
"……근데 왜 대결을 신청한 거니, 앨버트?"
"저희는 라이벌이니까요."
나는 둘의 엉덩이를 팡 때렸다.
"악!"
"히약!?"
"나중에 술식지 조금 더 풀고 싸워요. 대체 탁큰에서 배워온 걸로 싸워서 어쩌겠다는 거야. 이 바보들아."
나는 어이가 없어서 학생들을 해산시켰다. 앨버트와 페일리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둘은 시무룩해져서는 각자 기숙사로 돌아갔다.
"쟤네 어차피 언젠가는 싸우게 되어 있다."
"뭣 때문에요?"
"당연히 너지, 이년아."
나는 표정을 와락 구겼다.
"그건 좀 그런데."
"왜?"
"나는 누구의 것도 아니에요. 내 거지. 근데 그렇다고 쟤네랑 내가 싸울 수는 없잖아요."
나는 내 몸을 가리켰다. 그러자 델라즈가 난해한 표정을 지었다.
"쟤네 사랑해서 여기 눌러붙은 거 아니었냐?"
"네. 쟤네는 내 거에요. 근데 나도 내 거에요."
"……."
델라즈는 뭐라 중얼거리며 대련실에서 나갔다. 나는 내가 뭐 틀린 말을 한 건가 싶어서 방금 전의 대화를 복기해보았지만, 딱히 틀린 게 없었다. 애들은 내 거고, 나도 내 거다. 감히 꼬맹이들이 나를 취하겠다는 말을 하다니, 어불성설이다. 적어도 스무 살은 돼야지. 안 그러면 내가 아청법에 걸려서 잡혀간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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