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0억을 위해 아카데미 교수가 되었다-219화 (219/247)

(EP.219)2부 116

언제는 안 그랬나 싶지만 결국 이번에도 내가 주역이 되어버렸다. 지금까지 내가 주역이 된 적은 많았지만, 성공한 적보다 실패한 적이 압도적으로 더 많다. 이번에는 과연 어떻게 될까.

기억하고 있던 항구의 좌표로 텔레포트했다. 기억이 틀리지 않은 듯 무사히 착지했다. 다만 데이지가 나를 좋지 않게 보고 있을 게 뻔하고, 국민들에게도 어떤 말을 해놓았을지 모르니 최대한 숨어다녔다. 항구에 사람이 적어서 그닥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마나도 비축할 수 있었다.

항구를 벗어나 제도에 들어오자, 본격적으로 혈향이 풍기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수백 번은 온몸에 피를 뒤집어썼던 나다. 적어도 피의 향기를 느끼는 것에서는 틀릴 수 없다. 게다가 무척이나 짙었다.

이 광신도들은 오르가니아에서 시작되었다. 자연히 탁큰보다 그 수가 많을 수밖에 없다. 덕분에 중간중간 있는 골목길에는 이따금 시체가 보이기도 했다.

'데이지가 미쳤구나.'

아무리 그래도 신민들이 이렇게 죽어나가는데 방치하다니. 데이지의 진짜 목표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베르노바를 살려주는 것을 대가로 무언가를 요구하기라도 한 걸까.

굳이 모습을 숨기고 다닐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했다. 꽤 들어왔는데도 불구하고 거리에는 사람 한 명 없었으며 보이는 건 피와 시체뿐이었다. 방금 막 죽은 시체, 죽은지 몇 시간은 죽은 시체 등 다양했다.

남녀노소고 외국인이고 가리지 않고 죽였다. 어느 사람이나 가슴이나 목에 칼자국이 나 있었다. 정말 죽일 셈으로 휘두른 게 맞다.

'이러면 황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아.'

데이지의 의중이 짐작되었다.

'황실 자체를 버림패로 써버리고, 자기는 알파나 베르노바를 뒷배로 세력을 회복하겠다 그건가?'

애초에 데이지는 국정을 혼자 돌보지만 황실에서 권력은 조금 약한 그런 사람이었다. 나라가 망가져도 국정을 돌보는 것은 변함이 없을 테니 황제나 황태자'보다' 더욱 많은 권력을 얻기만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한 걸까.

미친 년이었다.

알파도 미친 년이고 데이지도 미친 년이었다. 미친 년들끼리 모이니 미친 짓을 저지를 수밖에.

나는 거리 한복판을 멀쩡히 돌아다녔다. 체감상 30분 정도는 지났는데도 근처에 보이는 마광석조차 어두웠다. 살아 있긴 해도 집밖으로 나올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건가. 옳은 선택이다. 제도가 지옥도가 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는 집안이 가장 안전하다.

물론 안전불감증에 걸린 사람도 있었다.

한참을 더 들어가니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점점 들려오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이곳은 인세(人世)의 지옥(地獄)이었다. 나는 곧바로 골목길에 숨어들어서 이동했다.

그러다가, 내 발치에 툭 뭔가 걸렸다.

"……."

어린아이의 시체.

기껏해봐야 이제 열 살은 되었을까. 머리와 몸통이 서로 완전히 붙어 있지 못해 덜렁거리고 있었다. 이게 정말 제국의 황녀가 저지를 법한 일이고, 세계의 여신이 저지를 법한 일일까. 아무리 미쳤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런 일까지 벌여야 하는 걸까.

죽음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다.

하지만 그 평등함을 공평하지 않게 만들어버리는 작자들이 꼭 있었다. 이번에 한해서는 알파와 데이지가 그러했다. 자기들 목숨과 권력은 소중하면서, 이런 인간 나부랭이들은 몇 명이나 죽든 상관이 없다 그건가.

델타가 인간들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했을 때 어느 정도 짐작을 하긴 했지만……이건 도를 넘었다.

"……바리에이션."

실날 같은 희망을 담아 중얼거렸지만, 이미 죽은 아이가 살아나지는 않았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비명이 더욱 거세졌다.

거리도 가까워졌거니와 비명을 내지르는 사람의 수도 많았으며, 무엇보다 아까와는 비교도 못할 정도의 혈향이 풍겨왔다.

'여기서 발이 묶이면, 알파의 의도대로 되는 거다.'

베르노바를 살리기 위해 발악하는 거니까, 시간을 지체하면 지체할수록 알파의 의도대로 해주는 게 되었다.

'저 사람들은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설득을.

'지금까지 수많은 생명을 짓밟아온 주제에, 저 사람들이 죽는 건 용납을 못 하겠다고? 네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설득을.

'알파를 잡아야 저 사람들을 대신해 복수를 해주는 거야.'

설득을…….

…….

'……악마, 넌 어떻게 할래?'

'이제 와서 내 의견을 묻냐? 지금까지 네가 알아서 했잖아.'

'대답해줘. 저 사람들을 구하는 게 맞을까, 아니면 그냥 알파한테 쭉 가는 게 나을까.'

수 초 후에 대답이 들려왔다.

'베르노바를 혼자서 잡을 자신이 있다면 광신도들을 전부 처리하고 가도 상관없지.'

'베르노바를 혼자서 잡을 자신이 없다면?'

'광신도를 잡느라 시간을 낭비할 때 베르노바가 살아났는데 네 힘으로 해결을 못 한다면, 넌 사람들 목숨을 개만도 못하게 취급하게 되는 거지. 참고로 나는 네가 그럴 의향이 있다면 얼마든지 환영이다.'

나는 피식 웃었다. 누가 악마 아니랄까봐.

'저 사람들을 구한다.'

'뭐, 정말이냐?'

'구해야지.'

'베르노바가 살아나면? 네가 죽으면 나도 알파에게 종속된다고.'

'걱정 마. 생각이 있어.'

악마가 뭐라 중얼거리지만 나는 시끄러우니까 닥치라고 말한 후 비명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날아올랐다. 그러면서 챙겨온 물건들이 잘 있나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사, 살려주세요!"

한 남자가 한손에 단검을 들고 한 여자를 뒤쫓고 있었다. 여자는 뒤를 흘끔거리며 달음박질했지만, 어째 남자는 정말 목숨이 걸린 듯 미친 듯이 집요하게 쫓아왔다. 아니,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목숨이 달렸겠지. 민간인을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든가. 그런 서약을 맺은 게 아닐까.

여기서, 고민이 된다. 이 일에 엮인 사람들은 세 가지 종류로 나뉘지만, 문제는 가해자가 두 명이고 피해자도 두 명이다. 한 무리가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이기도 한다는 거다.

알파와 서약을 맺어 사람들을 죽이고 다니는 저 광신도들……내 예상이 맞다면 저건 광신도가 아니라 그냥 평범한 시민이다. 운 나쁘게 알파와 그딴 계약을 맺게 돼서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죽이는 거지.

그렇기에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이다.

나는 저 남자를 결박해서 두 사람 모두 살려야 할까, 아니면 여자만 살려야 할까.

"……."

괜한 고민이었다.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은 정해져 있었다.

마나를 아껴야 했으므로, 나는 단검을 만들어 골목길에서 질주하던 남자의 정수리를 내려찍었다. 남자는 그로부터 두세 걸음을 더 걷다가 풀썩 쓰러졌다. 피가 튀는 걸 나는 그대로 뒤집어썼다.

"가, 감사, 합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새빨갛게 물든 내 머리를 본 여자는 히끅 딸꾹질했다.

"가세요. 집에 들어가서 나오지 마세요. 최대한 숨어서 이동하세요."

"네, 네……."

눈에 보이는 사람들만 공격하는 서약일 테니, 집 안에만 들어가 있으면 안전하다.

나는 여자를 돌려보낸 후 비명소리가 들리는 곳마다 날아가 칼을 든 '광신도'들을 죽였다. 그때마다 솟구쳐 튀어오르는 피를 나는 피하지 않았고, 증발시키지도 않았다. 내가 구해준 사람들은 그런 내 모습에서 관능을 엿보았는지 전부 안색이 새파랬다.

혹시 몰라 한 명은 죽이지 않고 결박해서 목적이 뭐냐고 물었다.

"교주님의 죽음을──"

"하아."

더 들을 것도 없어서 목을 베어버렸다.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참 웃기지만 이제는 살인도 아무렇지 않게 하는 내가 신기했다. 나는 그제야 사람들이 왜 나를 보고 안색이 새파랗게 질려 도망치는지 깨달았다.

아무리 자기 목숨을 구해줬다고 해도, 사람을 아무렇지 않게 죽인 거다. 긍정적으로 보이진 않겠지.

비명소리를 듣고 바로 날아가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몇 명 있었다. 주로 빠르게 달리기 어려운 유년층과 노년층이었다. 대체 왜 이 사단이 일어났는데 밖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내 머릿속 한켠에 쌓여가는 시체들이 나를 무감각하게 만들었다.

미친 년들을 상대하려면 미쳐야만 한다.

나는 그러니까, 너희와 같은 미친 년이 될 것이다.

아이를 죽이고선 절망에 빠져 스스로 자기 목을 찌르는 광신도를 목전에 두고, 나는 배낭을 챙겨 다시 날아올랐다.

이제는 아예 어린애들만 따라다니기로 마음먹었다. 나이가 꽤 찬 사람들이면 그래도 도망은 칠 수 있을 것 아닌가. 미친 말이지만 노인들은 곧 죽을 테니까 굳이 살릴 이유가 없고, 어린아이들은 이제 미래를 책임질 아이들이니 구해야 했다. 나도 안다. 미친 소리인 거.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 말고는 답이 없었다.

"꺄아아악──!"

한 여자아이의 비명소리가 하늘을 찢어발겼다. 나는 위치를 특정하고 곧바로 날아갔다. 한 성인 남성이 아이를 쫓고 있었다. 나는 마찬가지로 남자의 목을 베어냈다. 아이는 다리 힘이 풀렸는지 주저앉아서 일어나지 못했다.

"괜찮아?"

옆으로 넘어져 얼굴이 보이질 않았지만, 꽤 크게 다친 것 같아서 다가갔다. 힐이나 바리에이션을 써줘도 멘탈이 나가버린 거라면 혼자 움직이기 어려울 테니까. 어디 안전한 데에라도 둬야지.

여자아이에게 다가가서 어깨를 툭툭 쳤다.

"괜찮──"

"미안, 해요……."

아이가 내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그와 동시에 몸에 둘러져 있던 모든 마법들이 해제되었다.

──금강.

** ** **

세상에 지옥도가 펼쳐졌다.

오르가니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살풍경은 무척이나 비현실적이어서, 이 상황을 초래한 장본인인 알파조차도 그만 멍을 때리면서 바라보고 말았다.

"악마를 위해!"

악마를 위해.

알파와 서약을 맺은 인간들은 하나같이 그따위 말을 외치면서 같은 동족인 인간을 학살하고 다녔다.

한 10대 여자아이는 좁은 골목길에서 도망치다가 막다른 길에 막혀 우왕좌왕하던 사이, 갑작스레 닥쳐온 광신도에게 배가 찔려 창자를 왈칵 쏟았다. 그녀는 끔찍한 고통 속에서도 흘러내리는 창자를 다시 뱃속으로 집어넣으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정신이 아득해졌다. 영원한 잠이었다.

한 30대 장년 남성은 공원에서 산책을 즐기던 중 그 근처를 지나가는 광신도 여러 명의 눈에 띄고 말았다. 조용히 운치를 즐기던 남성은 자신을 향해 질주해오는 수 명의 사람들을 피하기 위해 젖먹던 힘까지 짜내 달렸지만, 광신도들은 기어코 그 남성을 붙잡아 겨드랑이, 목, 심장에 꽂아넣었다. 남성은 단 10초도 버티지 못하고 절명했다.

한 10살 남자아이는 집 앞에서 또래 친구들과 공을 차다가 허우적대며 뛰어가던 광신도와 눈이 마주쳤다. 광신도는 희열에 찬 괴성을 내뱉으며 남자아이에게로 달려왔다. 남자아이는 그대로 몸이 굳었다. 목에 칼이 박히는 그 순간까지 아이는 자신을 구해줄 사람을 기다렸지만 남자아이를 기다리고 있던 건 모두에게 공평한 죽음뿐이었다.

한 50대 여성은 새벽 시장에서 장을 봐오던 중 시장을 습격한 수십 명의 광신도들에게 난도질당했다. 그녀는 정말 이것이 사람이었던 무언가인가 의심될 정도로 가죽이 벗겨지고 근육이 난도질당했으며 장기가 찢겼다. 마지막까지 그녀의 눈이 향한 곳은 이 장바구니를 전달할 가족들이 있을 집쪽 방향이었다.

한 70대 남성은 거부였다. 저택의 테라스에서 차를 마시고 있던 도중 골목길에서 쏟아져나온 광신도들과 시선을 직선으로 교차했다. 광신도들은 무언가에 홀린 듯이 저택으로 달려와 문을 두드렸다. 남성은 깜짝 놀라 안간힘을 다해 문을 지키려고 사수했지만, 어느새 도끼를 가져온 광신도들에 의해 머리가 박살났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공평한 죽음을 세상에 흩뿌렸다.

이따금 광신도는 저들끼리 공격하기도 했다. 누군가는 칼을, 누군가는 도끼를, 누군가는 검을, 또 누군가는 돌을 들고 사람들을 공격했다. 찔리고 박살나고 베이고 얻어맞은 사람들은 다신 사람이라 불리지 못하게 되었다.

황실의 아침은 어느곳보다도 빨랐다. 황실에서 근무하는 하녀들은 일찍이 제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사에 대해 파악하고 상부에 보고했다. 하지만 황실 차원에서 내려온 명령은 무시하고 황궁을 방비하라는 것이었다. 몇 명이 거세게 반발했지만 그때는 황궁 밖으로 내쫓겨 마찬가지로 광신도들에 의해 죽음을 맞이했다.

두 시간 정도가 지났을 무렵 광신도들에게 공격받지 않는 방법이 생존자들 사이에 공유되었다. 광신도들에게 보이지 않는 것이 유일한 해답이라는 것이었다. 이들은 마찬가지로 현관문을 열리지 못하게 잠근 후, 방구석에 틀어박혀 지옥이 세상에 강림한 시간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아무도 사건을 해결하려고 감히 시도하지조차 않았으며, 각자 저마다의 안위를 위해 억울한 죽음을 방관했다.

인간들 입장에서는 더없이 현명하게 대처한 것이었지만──알파는 미친 듯이 달려나가는 광신도 하나하나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인간이란 이런 걸까."

무려 수쳔 년 동안 인간을 지켜온 알파였다. 인간의 추악한 부분, 인간의 선한 부분, 두 부류를 지금까지 남김없이 확인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벌어지는 풍경을 보니 그런 것 같지도 않았다. 어쩌면 악마가 존재하지 않았더라도 세계는 멸망할 운명이었던 걸까……알파는 회한을 느꼈다.

이래서야 위험을 무릅쓰고 악마를 가둔 것에 대한 보람이 없었다.

악마를 속여 가둔 것은 인간들을 위해, 하지만 인간들은 같은 인간을 위해주지 못했다. 자신의 목숨이 달려 있다면 다른 사람의 목숨마저 거리낌없이 빼앗았다. 심지어는 소수이지만 살인을 즐기는 자들도 이따금 엿보였다. 알파는 그런 자들이 시야에 들어올 때마다 눈가를 찌푸렸다.

"역겹구나."

인간이 된지도 수 년이 흘렀다.

하지만 베르노바를 살리는 데 열중하느라 지금껏 세상에서 눈을 돌리고 있었다.

불과 6년이었다. 여신들이 세계를 보살피지 않은 6년 동안 인간들은 타락할 대로 타락해버렸다. 아니라면 인간의 본능이라는 게 이런 것일까.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인간들의 이러한 본능이 알파를 도왔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학살한 덕택에 사람들은 집밖으로 나오지 않았으며, 길거리에 싸돌아다니는 최소한의 사람들만 공격당하고 있었다. 덕분에 광신도들 중에서도 서약을 지키지 못해 죽는 사람들이 꽤 나왔다.

괜찮았다.

인간은 수가 좀 줄어들 필요가 있었다.

인간의 번영을 위해 수천 년 동안 힘써왔다. 하지만 노력과 최선이라는 건 항상 최고의 결과를 내주지는 못했다. 인간들이 불어난 것은 여신들의 실수였다. 말하자면 지금 이 지옥도는 여신들이 실수를 바로잡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알파는 슬펐다.

슬퍼서 눈물을 흘렸다.

수천 년 동안 일궈온 것을 이계에서 소환한 인간 한 명 때문에 망쳐버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분노에 몸을 떨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어느때보다도 냉정해져야 하는 때였다. 자신이 오롯이 완전한 여신으로 거듭나기 위해,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9서클을 만들기 위해, 멍청한 동생들을 통제하기 위해, 이 정도 수고쯤은 감수할 수 있었다.

알파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참상을 목격한 덕분인지 몸이 무거웠다. 하지만 어떻게든 한 발, 두 발, 이윽고 세 발, 또 다시 네 발,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을 반복하자 저택의 문까지 당도할 수 있었다.

알파는 문을 열어젖히고 걸어서 제도로 향했다. 광신도들과 눈이 마주칠 때면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광신도들은 그럴 때마다 안색이 새파래져 도망갔다.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알파는 고개를 갸웃했다.

"조금만 더 있으면 에레브가 오겠지."

탁큰으로 향한 서약자들 몇 명이 죽었다. 에레브 일행이 탁큰에 당도했다는 것이었다. 에레브 홀로 선두에 서 있을 테니 아마도 오르가니아까지 오고 있을 게 분명했다. 에레브가 도착하기 전에 손을 써야 했다.

알파는 광신도에 쫓기다가 넘어져 몸이 굳은 여자아아이에게 다가갔다. 여자아이는 알파의 모습을 보더니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러고선 저 뒤를 가리켰다.

"사, 살려주세요. 저기, 뒤에 사람이, 미쳤어요, 저를 죽이려──"

"──죽기 싫으면 나의 제안에 따르지 않을래?"

여자아이가 흠칫했다.

"네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단다. 내가 지금 저 미친 사람으로부터 너를 구해준다고 하면, 너는 네 목숨을 위해 다른 사람을 죽일 수 있겠니?"

여자아이는 단 1초도 망설이지 않고 간절히 고개를 억세게 끄덕였다. 알파는 뒤쫓아오던 광신도를 멈춰세웠다.

"이름이?"

"아를렌……입니다."

"그래, 아를렌. 이 여자아이를 아무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쫓아다니렴. 내가 신호하면 여자아이를 덮치면 된단다. 알아들었니?"

"네, 네!"

알파는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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