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09)2부 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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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교회의 움직임은 지극히 불온했다. 더욱 정확하게는, 교회가 에레브를 공적이라 선언했을 때부터.
교회의 교주가 에레브를 공적이라 선언한 이유는 아무도 몰랐다. 교주의 대리인인 모락스도 몰랐다. 다만 모락스는 교주의 뜻을 전할 뿐이라며 의문을 일축시켰다.
교회가 에레브를 공적으로 선언한 영향은 매우 컸다. 교회의 움직임, 정확하게는 광신도들의 움직임이 매우 불온했다.
들려오는 말에 따르면 대륙의 모든 나라들이 광신도들로 인해 피해를 보고 있다고 한다. 사상자가 발생하는 일이 매우 많았다. 원로원의 수장과 일국의 통령이 된 입장으로서 지켜볼 수만은 없었던 아타나시아는, 적어도 아케즈 내부의 광신도들만을 제어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직접 교주를 만나 회유해버려고 시도도 해보았지만, 모락스 차원에서 거절당했다. 은신까지 써가며 돌파해보았지만 교회에 교주는 없었다. 곧바로 모락스를 추궁해보아도 자신은 교주의 뜻을 대리할 뿐이라고 못박았다.
모락스에게는 죄가 없었다. 죄가 없는 사람을 잡아들일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아타나시아의 지위는 그 자체로 아타나시아의 움직임을 제한했다. 양지에서 활동할 수는 없는 아타나시아였기에 네튼에게 부탁해보기도 했지만, 네튼은 가문의 안위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거절했다. 남은 것은…….
'발상을 전환해야 해.'
아타나시아는 집무실 의자에 앉아 고민에 빠졌다. 손가락으로 각탁을 툭툭 두들기며 생각을 이어나갔다. 그녀는 광신도들을 대처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 중이었다.
'대륙에 퍼져 있는 교회의 세력……원로원이 움직이지 않는 것도 에레브 양 하나만 버리면 굳이 교회와 척을 져 상황을 더욱 심각하지 않게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면…….'
툭, 아타나시아의 손가락이 멈췄다.
'아예 교회의 세력을 상회하는 거대한 것으로 찍어누르면 어떨까. 에레브 양이 했던 것처럼……원로원이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내 협력을 강제하면 어떨까.'
급조해낸 방법이었지만, 나쁘지는 않아보였다.
'교회의 세력을 찍어누를 수 있는 세력……나 혼자서는 불가능해. 저번 천물토벌 때문에 민심이 하락했어. 그렇다면…….'
아타나시아는 곧장 일어나.자신이 방금 생각해낸 방법이 정말 최선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 따져보았다.
그러나.
'……이거 말고는 방법이 없어.'
근국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일전에 로렌스를 단죄했을 때처럼, 광신도들을 단죄한다는 명분으로 끌어들이면 문제가 없었다. 아타나시아는 곧바로 미리 전해들었던 자동차를 만들어내 로렌스를 넘어 페토라르로 향했다.
문지기들은 갑작스레 나타난 아타나시아를 보고선 놀랐지만, 바로 왕궁으로 안내해주었다.
"아타나시아, 웬일이냐?"
"간청드릴 게 있어요."
로부르크가 이마를 짚었다.
"……네가 그렇게 나올 때마다 조금 무섭다. 이번엔 또 무슨 일이냐."
"대륙 곳곳에 퍼져 있는 광신도들을 처리해야 해요. 페토라르도 고통받고 있다죠?"
"그래. 그 썩을 놈들 목을 일일이 몸통이랑 작별을 시켜주느라 내가 가장 고생하고 있다."
로부르크가 손을 절레절레 저었다.
"광신도들은 교회, 더욱 정확하게는 교주의 명령을 받고 움직여요. 그러니까──"
"교주만 죽이면 해결이 될 거다?"
아타나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교주의 행방은 파악이 되냐?"
"아니요."
"그런데 어떻게 잡아서 죽일 거냐."
"꼭 교주가 아니더라도, 교회 자체에 모든 나라가 합심해 파문령을 내리는 것만으로도 광신도들의 움직임은 제한돼요."
로부르크가 침음을 흘렸다.
"아타나시아, 우리라고 해서 그걸 모르지는 않는다. 지금까지 소극적으로 대처해온 이유가 따로 있다."
"이유요……?"
"교주를 죽이면 물론 광신도들의 행동 반경은 줄어들겠지. 교회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놈들이니 미련을 버리고 떠나갈 놈들이 많을 거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에는 어떠냐. 교주가 죽은 것으로 분노해 더욱 광적으로 나라를 어지럽히는 놈들이 분명 나온다. 지금까지의 광신도들의 행방은 애들 장난 수준이고, 수도 그렇게 많지 않아서 크게, 보다 강하게 대처할 필요는 없었다."
로부르크가 아타나시아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하지만 정말 광신도가 생겨난다면, 오히려 피를 더 많이 보게 될 거다."
"하지만……."
"이런 말하기 정말 미안하지만, 아케즈와는 달리 페토라르에는 영향이 적다. 우리 국민들을 위해서라도 나는 도박에 어울려줄 수 없다."
아타나시아가 이를 까득 갈았다.
"내 몸을 포기할게요."
"뭐?"
"내 몸으로 하고 싶은 거 다 하세요. 사실상 세계 최강의 몸이니 마법을 연구하는 데에는 제격일 거에요. 꼭 그게 아니더라도 저는 처녀이니까──"
"제발."
로부르크가 머리를 감싸쥐었다.
"제발 미친 소리 좀 하지 마라. 에레브도 그러더니만 이제는 너까지 그런 소리를 하냐?"
"……."
"처녀이니 뭐니, 이제 고작해야 20대 초반인 꼬마애들이 논할 게 아니라고 그건."
게다가, 하고 로부르크는 말했다.
"너도 알잖냐. 나는 그날 이후로는 여색에 관심이 전혀 없다. 오히려 내게 여색을 제안하는 걸 꺼려하고 있지. 애초에 이런 대국에서 몸을 미끼 삼아 요구를 관철시키는 건, 이런 단어가 불온한 건 알지만 화냥녀와 다를 바가 없다. 그걸 알면서도 너는 나에게 부탁했다. 그 이유가 대체 뭐지? 에레브는 정도에서 한참 벗어났다. 도와서 얻을 수 있는 건 없다."
"……페디넌트, 왕세자는."
"내 아들 놈이라고 다를 것 같냐? 에레브한테 차인 이후로는 여자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마지막으로 묻겠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를 말해라. 에레브를 위하려는 이유를."
아타나시아의 몸에서 힘이 쭉 빠졌다.
"에레브 양의 목숨이 곧 제 목숨이에요."
"……."
"그러니까, 저는 죽지 않기 위해 도울 거에요. 이걸 이해하지 못하신다면……가망이 없어요. 저는 다른 나라로 이만──"
"──아케즈에서 거리가 멀수록 광신도에 의한 피해가 적다."
아타나시아의 움직임이 멈췄다.
"탁큰이든 오르가니아든, 너한테 협력해줄 가능성이 적다는 거다. 걔네는 애초에 피해가 거의 없다시피 하니까."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하지."
로부르크가 고개를 들었다. 무언가 좋지 못한 기억을 떠올린 듯 안색이 어두웠다.
"우선 다른 나라에 다녀와라. 탁큰과 오르가니아, 둘 중 한 군데라도 힘을 약속한다면 나 또한 도와주마."
둘의 대화는 그걸로 끝이었다.
아타나시아는 텔레포트를 사용해 왕궁을 빠져나와 자동차를 몰아 탁큰으로 향했다. 마찬가지로 놀라는 문지기였지만, 곧바로 아카데미로 안내되었다.
"……아케즈의 통령 각하?"
집무실에서 서류를 처리하던 나인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여기는 무슨 일로 오셨나요?"
"카웅 전하를 알현하게 해주세요."
나인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렇게 일언반구도 없이 찾아오셔서 할 수 있는 부탁은 아니라는 거 아시죠?"
"에레브 양에 대한 것이에요."
"……아아, 진짜."
나인이 머리칼을 헤집었다. 앞으로의 미래가 훤히 보이는 듯했다. 아카데미의 학생들 대부분은 에레브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아카데미의 여론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아카데미의 총장이자 탁큰의 왕인 카웅이, 에레브와 관련된 일에서 어떻게 행동할지는 뻔했다.
"……전 모릅니다. 안내해드릴 테니 알아서 하세요. 그리고 안내해드린 건 제가 아니라 펠입니다."
"펠이요?"
"있어요. 대머리에 고자 새끼. 얼른 데려다 드리고 다시 돌아와서 서류 처리해야 되니까, 빨리 가요."
말투가 가볍고 참 드센 여자라고 생각하며, 아타나시아는 나인을 따라갔다.
나인의 도움을 받아 왕궁에 진입하는 것까지는 성공했다. 남은 것은 카웅과 만나는 것이었다.
"응접실 들어가 계세요."
아타나시아는 나인의 안내를 따라 응접실에서 대기했다. 십수 분이 흐르자, 카웅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타나시아! 오랜만이다."
"……오랜만이에요."
여전히 쾌활하며 우렁찬 카웅이었다. 아타나시아는 쓴웃음을 머금었다.
"무슨 일로 여기까지 왔냐?"
"교회가 에레브 양을 공적으로 선언하고, 광신도들이 대륙에서 날뛰고 있는 건 아시죠?"
"알다마다. 이쪽에도 피해는 있었는걸."
카웅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페토라르나 아케즈만큼은 아니어도 고통을 받고 있긴 한 모양이었다. 아타나시아는 가능성을 엿보았다.
"광신도들을 대륙에서 몰아내고 싶어요. 도와주세요."
"……광신도들을 몰아내고 싶다고? 어떻게?"
"교주를 죽이거나, 교회에 파문령을 내릴 거에요."
"우리의 힘을 빌릴 셈이군?"
아타나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페토라르와 탁큰의 왕들이 한데 모여 교회를 적대하면, 아무리 교회라고 하더라도 쉽사리 행동할 수 없었다.
"이게 이렇게 될 줄이야."
"네?"
"마침 우리 애들이 에레브를 워낙 좋아해서 말이야! 에레브가 마법쟁이들한테 당하고 있다고 하니까 도와주고 싶다고 하더군. 게다가 광신도들도 애들이 때려잡고 있다."
"아하……."
광신도들 중 마법쟁이는 거의 없을 테지만, 아타나시아는 말을 아꼈다.
"뭐, 도와주도록 하지. 근데 탁큰 하나로는 조금 부족하지 않냐? 부끄러운 일이지만 우리가 영향력이 크진 않다."
"로부르크 전하께서, 탁큰과 오르가니아 중 한 곳에서라도 협력을 약속받아오라고 하셨어요. 잘 하면 페토라르와 오르가니아도 협력해줄 거에요."
"사실상 로렌스를 제외한 나라들이 전부 합심하는 거군. 아무리 삼성교라고 하더라도 무리이겠어."
카웅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혹시 몰라 명단을 미리 추려놓긴 했다. 바로 갈 테냐?"
"……여기서 대기하고 계셔주세요. 오르가니아에도 다녀와야 해요. 그리고 페토라르에 가서 확언을 받아올게요."
"최대한 빨리 다녀와라."
아타나시아는 고개를 끄덕이고 마나 수정을 챙겨받아 텔레포트로 자동차에 안착했다. 최대한 빠르게 몰아 오르가니아에 도착했다.
아타나시아를 알아본 한 여자가 아타나시아를 황궁까지 안내했다. 응접실로 이동하는 도중, 멋들게 차려입은 남자가 아타나시아에게 말을 걸어왔다.
"유리, 이 아리따운 여성분은 누구시지?"
"아케즈의 통령 각하이십니다."
남자가 표정을 찌푸렸다.
"데이지가 드디어 미쳤나보군. 얼마 전부터 광신도들──"
"황태자 전하."
유리가 남자의 말을 끊었다. 남자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다.
"네년, 감히──"
"데이지 황녀 전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 어쩌다가 내가 이리 몰락했는지. 썩 꺼져라."
남자가 씩씩거리며 둘을 지나쳐갔다. 모퉁이를 돌아 시야에서 사라진 것을 확인한 후, 유리가 아타나시아를 응접실로 안내했다.
이번에는 거의 한 시간 가까이 기다려서야 데이지가 응접실로 들어왔다.
"아타나시아, 웬일이야?"
"언니……."
아타나시아는 마음속으로 안도했다. 말투가 평어로 풀려 있었다.
"우리 아타나시아가 일국의 수장이 되더니 많이 수척해졌구나?"
"언니이……."
"그래, 그래, 뭐가 그렇게 힘들어?"
데이지가 아타나시아를 품에 안았다. 관료들이 본다면 경을 칠 법한 광경이었으나, 다행히 이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언니한테 부탁할 게 있어서요."
"무슨 부탁? 뭐든지 들어줄게."
"광신도를 대륙에서 몰아내고, 교주를 단죄하거나 교회에게 파문령을 내리려고 해요. 도와줄 수──"
딱, 하고.
데이지가 아타나시아의 이마에 약하게 딱밤을 때렸다.
"언니……?"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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