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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억을 위해 아카데미 교수가 되었다-193화 (193/247)

(EP.193)2부 090

서 있는 마물들의 수는 마침 우리와 수가 똑같았다. 저놈들도 제딴에 생각이라는 걸 하는지 넓게 퍼졌다. 우리도 꿀릴 이유는 없었기에 한 마리씩 맡아 서로를 응시했다. 아폰이 내 바로 옆에 서 있었다.

"아폰 님! 총!"

원로원에도 도면을 공유했으니, 저들도 총에 대해 알고 있을 거다. 시도해봐서 나쁠 거 없다. 대인전투에서는 그것만큼 좋은 게 따로 없으니.

"인카르너."

총과 총알.

장전.

조준.

"……후우."

발사.

──탕.

- 키아아악!

과연 저 새끼들에게도 효과가 있었는지 다리나 팔 따위가 박살난 마물들이 보였다. 그에 그치지 않고 나는 몇 발을 더 발사했다.

──탕.

────타앙.

하지만.

"……하?"

내 앞의 이족보행을 하는 마물이, 무언가를 만들어냈다.

흙으로 이루어진 방패를.

"뭔……마법을 쓴다고?"

어이가 없어 헛웃음만 흘러나왔다. 비단 나만의 일은 아닌 듯 다른 원로원들도 당황한 게 엿보였다.

괜찮다. 나는 박투술이 특기이니. 총알이 막히더라도 직접 두드려패면 그만이다. 다른 원로원들도 그건 마찬가지겠지.

인카르너 따위는 마법을 사용하는 저 새끼들 앞에서는 사도(邪道)이다.

"실드."

나는 마나로 몸 전체를 강화하고 실드까지 써서 몸 안쪽과 바깥쪽 모두에 장막을 둘렀다. 그리고 남아 있는 마나수정을 전부 들이킨 다음, 입속에도 한 모금 머금었다.

'한 번 해보자, 씨발새끼야.'

놈이 먼저 내게 돌격해올 것 같지는 않아서, 나는 순간적으로 다리를 더욱 강화해 빠르게 도약했다. 못해도 10m는 떨어져 있던 거리는 순식간에 cm 단위로 좁혀졌다.

'사고 가속.'

두뇌 회전 속도를 최대한 빠르게 해 사고를 가속했다. 세상이 지나치게 느려졌다. 놈의 표정, 흙으로 이루어진 방패의 결까지 장담컨대 다 보였다. 놈이 팔을 들어 내 공격을 막으려고 시도했지만──

'팔 강화'

사고 가속을 뛰어넘는 속도로 팔을 강화해 놈의 방패를 강타했다. 놈의 방패는 간단히 부서지고 말았다. 나는 사고가속을 풀고 다시 물러났다.

'사고 가속까지는 통하고, 박투술도 내가 이길 수 있다. 문제는 저 새끼가 어떤 마법을 쓸 수 있냐는 건데……실드에 얼마나 마나를 할당하면 좋지? 큰 마법까지 사용할 수 있는 건가?'

감이 잡히질 않았다. 아니면 차라리 방금 순간적으로 인카르너를 만들어서 베어버렸어야 했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니다. 섣불리 판단하면 안 된다. 마물이 마법을 쓴다는 것부터가 일단은 상식 외의 짓거리야. 베타의 말대로라면 델타는 어지간히 또라이였으니 두 번째 요관에 이따구로 장난질을 쳐놓았을지도 모른다.'

놈도 방어는 포기했는지 격투 자세를 취했다. 어이가 없었다. 나는 입속에 머금고 있던 마나수정을 꿀꺽 삼켰다. 방금 건 탐색전이었고, 지금부터가 진짜다.

"……후우."

곁눈질로 다른 원로원들을 살피니, 대체로 나랑 상황이 비슷했다. 적어도 질 것 같지는 않아 안심이었다.

'속전속결로 끝낸다. 마법사들을 배치해놓긴 했어도 여전히 불안해. 최대한 빨리 끝내버린다. 마나는 올라가서 보충하면 돼. 마나수정은 아직 많다.'

몸 속에 있는 마나들을 전부 몸 곳곳으로 퍼뜨렸다. 몸 전체에 활기가 넘쳤다. 지금이라면 원로원도 혼자서 다 쓸어버릴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기분.

"흐읍!"

또 다시 크게 도약, 이번에는 굳이 사고 가속을 할 필요가 없었다. 놈은 팔을 교차해 내 정권을 막아냈다. 뒤로 밀리긴 했지만 가드가 풀리지는 않았다. 어마어마한 방어력.

- 키아악!

놈이 가드를 풀고 자세가 풀린 나를 공격하려고 하지만──

- 크아윽!?

나는 그 상태 그대로 한 바퀴를 돌아 팔꿈치로 놈의 안면을 찍었다. 놈은 미처 방어하지도 못하고 나가떨어졌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놈에게로 빠르게 다가가 목을 쥐어서 들어올렸다.

마나를 실드와 팔에 집중했다. 놈은 내 손아귀에서 벗어나지도 못하고, 내 몸을 두드려도 아무런 상처도 입히지 못했다.

"야. 너 말할 줄 아냐?"

- 키아아아악!

"모르는구나."

그냥, 옛날 일이 생각나서 한 번 물어봤다. 나는 반대편 손으로도 놈의 목을 꼬옥 붙잡아 비명도 못 지르게 하고, 위 아래로 천천히 당겼다. 놈은 목 가죽이 늘어나며 버둥거렸다. 어떻게든 나를 할퀴고 쥐어뜯고 타격해서 말려보겠다는 심산인 것 같은데, 통할 리가 없었다. 실드에 9서클 마나를 거의 집중하고 있는 나는 무적이었다.

천천히.

천천히 손을 위 아래로 잡아끌었다.

- ……!

놈의 버둥거림이 더욱 심해졌다. 아까는 분노에 찬 공격이었다면 이번에는 살려달라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어림도 없다. 나는 그대로 힘을 줘 목과 몸을 부욱 찢어 분리했다. 선혈이 촤락 튀며 내 옷과 얼굴을 더럽혔다.

"세쉬, 푸에고."

몸에 묻은 피들을 전부 날려보냈다. 옷에 묻은 것까지 치우진 못하지만, 상관 없다.

나는 놈의 몸을 잘게 다져 뼈를 전부 부수어버린 다음, 흉측하게 일그러진 머리를 들고 싸우고 있는 바로 옆의 마물에게로 다가갔다. 아폰이 나를 눈치채고 뒤로 물러났다.

- 키아악?

나를 멍하니 바라보는 마물에게, 머리통을 던졌다. 머리통은 모래밭을 한참을 굴러가다가 마물의 발치에 툭, 하고 닿았다.

마법을 쓸 줄 안다는 건 어느 정도 지능이 있다는 거다. 흉측하게 일그러져 목이 분리된 동료의 모습을, 저 마물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놈은 머리통을 한참을 바라보다가, 털썩 주저앉았다.

"인카르너."

나는 놈의 머리에 바람구멍을 낸 후 마찬가지로 머리와 몸을 분리하고, 몸을 잘게 다져 뼈를 부수었다. 나를 멍하니 바라보는 아폰의 시선을 무시하고 두 개의 머리통을 들고 또 옆의 마물에게로 향했다.

이 짓을 몇 번 반복하니, 모든 마물들이 죽었다.

"후아."

나는 지금 땀범벅이었다. 하지만 딱히 불쾌하진 않았다. 보람이 느껴진다고 해야 되나. 오히려 상쾌했다.

이것으로 입증되었다.

인간은 여신을 이길 수 있다.

"……에레브."

아폰이 내게로 다가왔다.

"네?"

"원로원에 들어올 의향이 있느냐?"

나는 피식 웃었다.

"아니요."

이제 와서 들어가봤자 나한테 하등 도움될 거 없었다.

"……어쩔 수 없구나."

아폰이 고개를 저었다.

"최대한 멀리 도망가거라. 쫓지 않겠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마물들 뼈는 전부 잘게 부수어주세요. 꼭."

델라즈가 돌아오기도 전에 처리해버린 게 조금 그렇긴 한데, 그래도 나는 델라즈가 원로원에서 빠져나오길 바라지도 않는다. 나는 일단 아폰에게 꾸벅 인사한 후 성대로 텔레포트했다.

"……아?"

난 분명 성대 좌표를 떠올리며 텔레포트했는데, 생뚱맞은 곳으로 왔다. 여긴 바이코였다.

'뭐지. 나 지쳤나.'

한 번 더 텔레포트. 하지만 이번에는 또 락토였다.

'뭔 시발…….'

"와즈."

아예 최대한 빠르게 날아서 성대로 돌아왔다. 하지만 성대에도 아타나시아는 없었다. 싸울 때도 없더니만 아무래도 시민들을 진정시키거나 하기 위해서 나간 것 같았다. 하지만 집무실 책상 위에 책이 하나 놓여 있고, 그 위에 메모가 적혀 있었다.

「사랑해요.」

"……."

나는 책을 집어들고 세브레의 아지트로 향했다. 이번에도 텔레포트가 말을 안 들어서 다시 날아서 왔다. 세피르를 포함한 단원들은 건물 내에서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하긴, 얼마 전에 천물토벌이 일어나서 나라가 쑥대밭이 될 뻔했는데 한 번 더 일어났다니 불안할 만도 하다. 꼭 그것뿐만이 아니더라도 교회가 나를 공적이라고 선언했으니 더욱 불안하겠지.

"세피르. 가요."

"에레브 님……? 어디로요?"

"악마를 구하러."

세피르를 포함한 세브레의 모든 사람들은 표정이 아연해졌다.

"내가 말했죠, 악마 보여준다고."

"……."

"보여줄 수 있어요. 게다가 여러분이 악마를 구하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고요. 대신 나라에서 쫓겨나게 되겠지만……어때요. 해볼래요?"

모두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세피르가 가장 먼저 결의를 다지고 고개를 끄덕이자, 모두 동의했다. 나는 그들 모두를 데리고 페토라르 근처의 초원으로 텔레포트했다. 순식간에 마나가 빠져나가 조금 어지러웠지만 아직까지는 괜찮았다.

근데 좀 이상한 게, 이번에는 또 텔레포트가 제대로 됐다. 이해가 안 되는군.

"여긴……?"

"페토라르 근처에요. 혹시 몰라서 조금 멀리 나왔어요."

나는 풀밭에 털썩 주저앉았다.

"여러분은 교회를 적대하게 됐어요. 후회는 있어요?"

"……없어요."

"정말 저를 도와서 교회에 대항할 수 있겠어요?"

"네."

나는 아예 뒤로 드러누웠다. 이제는 마나를 보충해야 했다.

"여신에 대한 이야기를 해줄게요."

"……."

"세피르, 당신은 알고 있겠지만 삼성교의 여신들은 실존해요. 게다가 우리의 가까이에 있었죠. 삼성교의 교주가 여신 중 한 명인 베타에요."

사람들이 헛숨을 들이켰다.

"저는 베타로부터 힘을 전해받아 서클을 고쳤어요. 현재 베타와 델타는 알파를 적대하고 있어요. 베타는 그런 알파를 몰아내기 위해 저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저는 베타의 힘만 쏙 빼먹고 배신했죠."

눈을 감았다.

"베타는 마나와 마법을, 그리고 델타는 마물을 관장해요. 천물토벌도 델타가 일으킨 거에요. 베타를 배신했으니 천물토벌로 아케즈를 아예 밀어버려서 에레브를 죽여버리겠다 뭐 그랬던 것 같은데……저는 온힘을 다해서 마물들을 막은 것으로 제 할 일을 다했습니다."

몸에서 힘이 쭉 빠졌다.

"이제부터는 세 여신 모두를 때려죽일 겁니다. 모두 인간으로 현현한 상태이니 가능성이 있어요. 하지만 아직 정말로 죽여도 되는 건지는 확신이 안 서서……우선 그것부터 알아보도록 해요. 일단은……저 좀 잘게요. 제 기억에 남아 있는 가장 안전한 곳으로 왔으니 크게 문제는 없을 거에요. 무슨 일 있으면, 저 깨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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