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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억을 위해 아카데미 교수가 되었다-192화 (192/247)

(EP.192)2부 089

국경 바깥에서 마법사들이 다시 돌아오기 시작했다. 정확하게는 뭐 귀신이라도 본 것마냥 새파랗게 질려서 뛰어오고 있었다. 나는 전방을 예의주시했다. 곧 먼지구름 너머의 존재들이 확인되었다.

"……후우, 미치겠네."

2페이즈, 오룡 무리.

요관 하나에 얼마 서식하지 않는 놈들이기에 저렇게 떼로 몰려오는 건 불가능하다. 가능성을 따져보자면 하나의 오룡을 여러 개로 나눈 걸까. 그럼 적어도 높은 서클은 아니니 마법사들도 자기 속성에 맞는 놈들 수월하게 때려잡을 수 있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면, 마법사들이 오룡을 심각하게 무서워한다는 거다. 지금 달려오는 마법사들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다. 쟤네는 오룡이 요관 하나에 얼마나 서식하는지 모른다. 그냥 생긴 게 괴팍하고 처리하기 어려운 마물이라고 알고 있을 뿐이다.

그런 마물들이 무리를 지어 떼로 몰려온다라……마법사들이 패닉에 빠지는 것도 당연하다.

오룡이라고 해서 정말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날아다니는 용의 형태는 아니다. 공룡이랑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땅을 밟고 달리는 애들인데, 문제는 몸집이 어마어마하게 크거나……아니면.

'이러면 조금 난감한데.'

메테오로 큰 돌덩이를 날려봤자 화룡이나 전룡 같은 애들은 멈추지 않는다. 수룡이나 풍룡도 금새 다시 전열을 되찾겠지. 가장 까다로운 토룡들이 전부 나가떨어지는 것까지는 좋지만 나머지를 처리할 방법이 없다. 땅으로 장벽을 만들어놓았다고 한들 쉽게 넘어올 거다.

천물토벌에서 마물을 잡을 때는 큰 공격으로 많은 마물을 쓸어버리는 게 중요하다. 국경 안으로 들어오기라도 하면 대처가 어려우며, 하나하나 잡는 건 사용하는 마법의 마나 효율이 개박살나기 때문에. 하지만 이번에는 그게 불가능하게 되었다.

천물토벌을 직접 일으키는 건 여신 중 막내인 델타. 지금까지는 인간들의 번영을 원했기에 천물토벌을 일으켜도 인간들이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일으켰지만, 베타가 머리 끝까지 화가 난 지금 베타는 인간들을 멸망시키려고 작정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인간의 몸이라 감정적이게 된 폐해라거나.

"아재, 저번에 갖고 온 마도구 있죠? 탁큰에서 가져온 거. 그거 좀 갖고 와요."

"……저 수를 그걸로 다 막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냐?"

아폰은 물론이요 델라즈도 얼이 빠져 전방을 응시하고 있었다. 멘탈이 나가버린 건 알겠는데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다.

"그래도 해봐야지. 그거에 더해서 내가 힘 좀 써보려고요. 그리고 마나수정도 최대한 가져와줘요."

"……."

델라즈가 마도구를 가져왔다. 대충 30개 정도 있는 것 같은데, 나는 마법사들을 넓게 펼쳐 이 마도구를 하나씩 들게 만들었다.

"직접 싸울 필요 없어요. 그거 들고 원로원의 델라즈 님의 구령에 맞춰 마나를 불어넣어 작동시키기만 하면 됩니다. 오룡들이 일제히 멈추면 제가 처리할게요.

3서클까지는 쉽게 멈출 수 있다고 했으니 오룡들을 멈추는 게 가능하긴 할 거다. 나는 참호 바로 바깥쪽에 그물을 만들어 넓게 펼쳤다. 아카데미에서 학생들에게 했던 것처럼 마나를 주입해 터뜨릴 거다. 나는 내 옆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마나수정을 델라즈에게 전부 개봉해달라고 부탁했다.

"에레브, 막아야 한다."

"……해볼게요."

이 사태를 초래한 범인이 나니까, 나는 막아야 할 의무가 있다.

바닥에 최대한 넓게 펼쳐 깔아놓은 그물들은 빨갛게 발광했다. 이따금 저들끼리 혼자서 크게 요동치기도 했다. 내가 마나를 한계치까지 불어넣었기 때문이었다. 이 그물은 굳이 따지자면 3서클 마법이니까. 9서클 마나를 견디는 게 조금 무리이긴 하겠지.

그물에 마나가 꽉 찼다. 오룡들은 상당히 가까워졌다. 오룡들은 지금 당장에라도 국토를 유린하고 빈민촌의 사람들을 죽여버릴 기세로 맹렬히 달려오고 있었다.

화룡은 불꽃을 튀기며, 풍룡은 그런 화룡의 불길을 확산시키며, 전룡은 전격을 발산하며, 토룡은 흙 따위를 떨구며, 수룡은 물웅덩이를 만들어내며. 5원소란 무엇이며 그게 왜 기본이고 가장 무서운 것인지 저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저건 그냥 자연재해다.

재앙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다.

나는 그물을 바라보며 내 시야에 오룡이 들어올 때까지 기다렸다.

"준비!"

델라즈가 마법사들에게 외쳤다.

"시동!"

그와 동시에──오룡의 형상이 내 시야에 잡혔다. 나는 그물 전체에 마나를 다시 공급하기 시작했다. 마도구에 의해 멈춰선 오룡들은 내 그물에 닿아 한계치를 훨씬 상회하는 양의 마나를 몸속에 주입당해 형상이 흘러내렸다.

그야말로 지옥도가 펼쳐졌다.

원소 다섯 개가 그물 위에 깔리며 그물을 조금씩 덮어가고 있었다.

"스승님! 저거 치워요! 애들 그물에 닿게 해야 돼! 바람으로 전부 치워!"

"알았다!"

나는 그물에 리젤을 걸어 무겁게 만들었다. 델라즈가 바로 비엔토를 영창해 흙무더기 따위를 날려보내지만, 이미 그 틈을 타 넘어온 애들이 있었다.

"막아! 절대 못 들어오게 해!"

정신을 차린 마법사들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을 붙들고 장벽 위에 서서 각자 속성으로 오룡들을 터뜨렸다. 몇 마리를 그렇게 터뜨리자 자신감이 생겼는지 전열은 다행히도 회복되었다.

오룡들은 거대한 발톱으로 장벽을 타고 오르려고 시도했지만──위에서 버티고 있는 마법사들은 굳셌다. 절대로 오룡이 넘어오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으아아악!"

하지만 마법사 모두가 난관을 극복한 건 아니었다. 전열 중 일부가 뚫렸다. 곁눈질해서 확인하니 오룡 두세 마리가 이미 넘어왔다.

"인카르너."

총.

"푸에고, 일레트로닉, 아쿠아, 비엔토, 테라."

5원소를 전부 때려박은 총알.

마나로 사고를 가속해서 오룡들을 눈에 담은 다음──최적의 경로를 찾아내 쏴서 맞췄다. 쓰러져 오들오들 떨고 있는 마법사들을 짓밟으려던 오룡들은 형체 없이 허물어졌다.

"뭐 하고 있냐! 당장 다시 올라가!"

다행히도 다른 마법사들이 그들을 대신해 위로 올라갔다. 이와 같은 풍경이 전열의 모든 곳에서 재현되었다. 내가 모든 오룡들을 쏴서 맞추기에는 마나가 부족할지도 몰랐기에 이번에는 원로원이 나섰다. 다행히 그들은 밥값을 제대로 했다.

"다 됐다!"

그물에서 모든 흙무더기와 먼지가 사라졌다.

"시동시켜!"

"시동!"

마나수정을 마시고 죽을 셈으로 들이키며 그물에 마나를 공급했다. 오룡들은 다시 몸체가 허물어졌다. 마법사들의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는 찰나, 아폰이 말했다.

"당장 마법사들 뒤로 물려! 여기 지나쳐서 페토라르로 향하는 놈들이 있다!"

"아폰 님! 총 만들어요 총!"

아폰은 헛, 하고 정신을 차리더니 총을 만들어내서 마법사들을 데리고 사라졌다. 국경 뒷편으로 가서 달리는 오룡들을 처리해줄 거다.

다행히 시간이 지날수록 오룡들은 점점 약해져갔다. 계속해서 남아 있는 오룡들을 쪼개어 인해전술로 밀어붙이는 모양이었다. 덕분에 마나 효율이 오히려 좋아져서 다 없애버리기 쉬웠다. 얘네는 뼈가 없는 만큼 다시 살리지도 못하겠지. 아마 직접 만들어내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에, 에레브 님! 저기!"

내 바로 옆의 마법사가 저 멀리 전방을 가리켰다.

세 번째 먼지구름.

첫 번째보다는 확연히 수가 적지만, 문제는…….

"스승님, 저거 몇 서클 마물들이에요?"

"……세 번째, 네 번째 요관. 그리고 나도 모르는 애들도 있다."

아마 첫 번째 요관에 있는 애들까지 빼오진 않을 거다. 내가 원래 세계로 돌아가버리면 말짱 도루묵이니. 따라서 첫 번째 요관을 제외한 모든 요관의 마물들을 아예 차출해서 이쪽으로 보낸 모양이었다.

"스승님. 요관 다녀오세요."

"……뭐?"

"지금이라면 두 번째도 어렵지 않게 파훼할 수 있어요. 다른 원로원들 몰래 가서 홀에 접촉하세요. 스승님의 평소 욕망은 뭔가요?"

델라즈가 미간을 좁혔다.

"남들 몰래 나도 모르게 바라고 있던, 그런 욕망 말이에요. 홀은 그런 욕망을 받아들여서 작동돼요."

"……강해지는 것."

홀이 서클을 늘려주진 않겠지만, 시도해봐서 나쁠 건 없다.

"다녀오세요. 기다릴게요."

"……."

델라즈는 마나수정을 몇 개 챙겨서 떠났다.

"그럼 이제, 저 새끼들이 문제인데……."

마도구로 멈출 수도 없다. 수가 적긴 해도 나와 원로원이 합심해서 처리하기엔 양이 너무 많고, 그렇다고 다른 마법사들이 저것들을 죽일 수 있을 리가 없다.

어쩔 수 있나. 마나수정이 거덜나는 한이 있어도 메테오를 날리는 수밖에.

"아폰 님! 첫 번째 천물토벌을 재현해보자고요!"

"……."

"마나고갈까지 각오하고! 대체 우리가 저 새끼들을 안 막으면 누가 막아요! 적어도 6서클은 돼야 쟤네들 잡을 수 있어요! 지금 당장은 우리밖에 없습니다!"

저 멀리서 아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뭐라 소리치니 눈에 익은 모습의 원로원들이 집합했다. 나는 그물을 거두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에레브."

"다들, 오랜만이에요. 어째 저희는 참 극적인 상황에서만 만나는 것 같네요."

"네가 이번 사건의 주범이라고 들었다."

한 초로의 노인이 말했다.

"사실인가."

"대충 맞습니다."

"우리가 협력하는 날은 이번이 마지막일 듯하군."

"그거,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나는 씨익 웃어보였다. 잡담은 그것으로 끝났다. 우리는 시선을 앞으로 향했다.

"메테오."

"토네이도."

테라와 푸에고를 다룰 수 있는 자들은 메테오를, 아쿠아와 비엔토를 다룰 수 있는 자들은 토네이도를 흩뿌렸다.

"토네이도, 메테오."

나는 둘 다 쓸 수 있었기에, 충당한 마나수정을 끊임없이 들이키며 마법을 퍼부었다. 첫 번째 페이즈에서의 일이 다시 재현되었다. 이번에는 내가 모든 흙덩어리를 제어하는 게 아니라서 조금 편하다는 것과, 마물들을 보다 쉽게 처리할 수 있다는 것.

과연 원로원 짬밥이 어디 가진 않는지 원로원은 아예 커다란 흙덩이들을 지면에서 굴려 마물들을 쓸어버리기 시작했다. 마물들 중 정말 힘이 좋은 놈들은 아예 흙덩어리를 멈춰세우고 부숴버렸지만, 그것보단 아예 압사해버리는 놈들이 더 많았다.

시간이 한참 흐르자, 쓰러지지 않고 남아 있는 마물들은 거의 없게 되었다.

"……요관이 아니니 조금 쉽군."

아폰이 중얼거렸다. 동감이었다. 요관을 돌파하지 못하는 건, 메테오 같은 커다랗고 강력한 공격 마법 따위를 쓰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저기 서 있는 마물들, 아시나요?"

"기억에 없다. 두 번째나 세 번째 요관의 마물이겠지. 어느 정도 파도도 멎은 것 같으니, 직접 가서 상대하도록 하지."

동감이었다. 메테오를 멈추고 토네이도를 피하는 놈들에게 다시 메테오와 토네이도를 퍼부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나와 원로원은 마법사들에게 장벽 위에서 절대로 내려오지 말라고 일러두고 국경 바깥으로 나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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