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0억을 위해 아카데미 교수가 되었다-186화 (186/247)

(EP.186)2부 0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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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리오는 닥치는 대로 세브레에 대한 정보를 긁어모았다.

'아케즈로 넘어온지는 1년도 안 됐고, 토종 로렌스인에 최근에는 강력범죄에도 연루되었다…….'

사고방식이 꽤나 단순했다. 아마도 전사자들의 유품을 취하려고 든 것은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그리고 교주를 암살하려 시도한 것은 그가 삼성교의 교주이기 때문에. 그리고 어젯밤 자신을 습격한 이유는 악마와의 계약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을 구하기 위해.

책의 내용을 어떻게 알았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는 게 흠이었지만, 베르노바가 갖고 있던 책이 악마와 관련된 책이었다는 사실은 어느 정도 퍼져 있었다. 책을 자신이 소유하고 있다는 정보를 건네받거나 했으면 충분히 알 법했다.

'세브레를 처리하는 건 쉽겠으나……처리하고 나서가 문제이군.'

우선 베리오 본인이 살인을 저질렀다는 점과, 세브레를 쓸어버린다고 해서 세브레 같은 단체가 박멸되리라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악마를 숭배하는 단체 중 로렌스에서 건너온 세브레가 가장 이질적이고 규모가 거대해서 각광을 받는 거지, 악마를 숭배하는 단체 자체는 꽤 많았다. 그들 또한 세브레처럼 폭주해서 공격해올 가능성이 아주 없진 않았다.

'아예 씨를 말려야 하나?'

베리오는 고개를 단호히 가로저었다.

'이 이상으로 눈에 띌 필요는 없다. 선공을 범해서 좋을 것도 없다. 어디까지나 방어하는 과정에서 정당방위로 죽여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인질로 잡히면 곤란한 건 이쪽도 마찬가지이니, 내가 직접 미끼가 되어 꾀어내야겠군.'

그날 밤, 베리오는 이제는 전소되어 뼈대만 남아버린 자신의 저택 주변을 서성거렸다. 세브레의 행동력은 확실히 과격해서, 하루가 지난 지금 다시 공격해올 가능성이 높았다.

'전부 다 죽이진 말고, 단장을 잡아서 명분을 취하는 게 좋겠지.'

자신의 무죄를 주장할 증거가 하나라도 남아 있어야 했다. 6서클 마법사가 조금 걸리는 게 흠이지만, 어차피 이번에도 인질 몇 명 잡으면 그리 어렵지 않게 처리할 수 있으리라.

무엇보다, 자신은 5서클 최강 아니던가? 7서클이었던 에레브와도 몇 합을 비볐으니 6서클이라고 딱히 어려워보이진 않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거리에 설치된 마광석도 마나가 다 닳아 슬슬 꺼질 때쯤에서야 인기척이 느껴졌다. 베리오는 인카르너로 치도(薙刀)를 만들어내 꼬나쥐었다.

터벅, 하고. 어제와 마찬가지로 온몸을 새까만 천으로 가린 무리가 나타났다. 같은 것은 입고 있는 옷의 색뿐만 아니라 구성 또한 마찬가지였다. 베리오는 눈여겨보았던 마법사에게 치도를 겨누었다.

"너희도 어지간히 멍청하군. 마법을 쓸 수 없는 일반인 따위가 대체 뭘 할 수 있다는 거냐. 마법사, 대답해봐라. 저들을 왜 데려왔지?"

"……."

"사람이 몇 명이 죽어나가든 딱히 상관이 없다는 건가? 호쾌해서 좋다."

전투란 무엇인가.

한 명의 사람과 또 한 명의 사람이 검을 주고받는 것이었다. 피가 튀고 살이 갈라진다. 베리오는 이 치도를 사용한 끝없는 전투 끝에 5서클의 최강이 되었다. 그는 자신의 실력을 믿어의심치 않았으며, 적이 늘어나도 오히려 자신의 무위를 입증할 수 있다며, 혹은 인질로 써먹을 수 있다며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가장 최근에 만난 사람들 중에는 에레브가 가장 강했다. 에레브를 처음 만났을 때는 서클의 차이가 아니라 순전히 실력으로 밀렸다.

하지만 눈앞의 졸개들은 아니었다.

"단장이 누구지?"

베리오가 느긋하게 물었다.

"나다, 이 개새끼야."

"허, 마법사가 단장이 아니었단 말인가?"

키가 자신보다 살짝 작은 여자가 대답했다. 이건 조금 의외였다. 당연히 마법사가 단장이라고 생각했고, 혹시 몰라서 질문을 던진 것이었다. 하지만 마법과는 전혀 상관이 없어보이는 사람이 단장이라니. 심지어 이 여자는 쇠로 된 단검을 들고 있었다.

"거기, 마법사. 네게 묻지. 세브레의 단장은 빡대가리인가?"

"……뭐?"

"아니면 부하들의 말은 귓등으로도 들어처먹지를 않는 머저리인가?"

베리오가 비웃음을 입에 담았다.

"마법사는 죽여도 되는 건가. 다행이군."

직후, 베리오는 신체를 강화해 빠르게 달렸다. 순식간에 일반인으로 보이는 사람과 접촉한 베리오는 뒤로 돌아 검을 목에 가져다대었다.

"저번이랑 달라진 게 없군. 자, 이제 어떡할 테냐? 이번에도──"

베리오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마법사가 인카르너로 구현한 검을 그대로 찔러왔다. 베리오는 순간 당황해 인질을 잡은 채로 뒤로 크게 도약해 물러났다.

"……인질이 다 죽어버려도 괜찮다는 거냐?"

"어차피 네가 다 죽여버릴 거잖아 씨발아!"

"나한테 죽나 아군한테 죽나 죽는 건 마찬가지이지만, 당사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텐데."

베리오가 다른 일반 대원에게 눈짓했다.

"살고 싶으면 이쪽에 붙어라. 널 버린 단장에게 복수하는 거다."

"버리긴 뭘 버려!"

"소모품으로 사용하는 게 버리는 거지 그럼 아니냐? 목표를 위해서라면 대원의 목숨쯤은 아무렇지 않게 갖다 버릴 수 있다라……정말 단장이라고 불릴 자격이 있는가?"

단장이 뭐라 버럭 소리지르려고 했지만, 그녀를 제지하며 일반 단원이 앞으로 나섰다.

"모든 것은 악마를 위해서."

"……악마?"

"여신들을 죽이고 악마를 이 세계의 신으로 추대하기 위해 베리오, 너는 죽어줘야겠다."

베리오가 피식 웃었다.

"그거 잘 됐군. 내가 갖고 있는 책이 악마와의 계약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내게로 붙으면 보여주도록 하지."

"……."

일반 대원은 마음이 흔들린 듯 멈칫했다. 이변을 눈치챈 단장이 그를 제지했다.

"저거 다 개구라야. 그분의 말씀에 따르면 저 새끼 책 아무한테도 안 보여줄 거라고 그랬어."

"……나는 속지 않는다, 베리오. 너를 죽이고 책을 뺏어 악마를 진정한 의미에서 해방시켜줄 것이다."

베리오는 대답하는 대신 붙들고 있던 인질의 목을 베어버렸다. 머리와 몸이 분리된 시체가 힘없이 허물어졌다.

베리는 일반 대원에게 피와 살덩어리 따위가 뭉개지며 떨어지는 머리통을 들이밀어 흔들었다.

"이래도?"

"으아아아!"

일반 대원이 검을 크게 휘두르며 베리오에게로 돌진해왔다. 베리오는 일반 단원에게로 머리통을 던졌다. 눈앞에 두 눈이 뒤집힌 사람의 머리통이 날아오자 일반 대원은 주춤했고, 베리오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일반 대원에게 날아들었으나──

"안 돼!"

어느새 지척까지 다가온 마법사가 그의 검격을 막아세웠다. 과연 허울뿐인 6서클은 아니었는지 검격이 무거웠다. 베리오는 대원을 베어버리는 걸 포기하고 뒤로 물러났다.

6서클 마법사나 자신이나 마나를 함부로 마구잡이로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전투가 은밀하게 진행되는 만큼 지나칠 정도로 시끄러우면 안 되었으며, 또한 베리오나 마법사나 죽이지 말고 살려야 할 사람이 존재했다.

마법사는──마법사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을.

베리오는──세브레의 단장과 자신의 식솔들을.

"너희들도 광신도들 못지 않군."

베리오가 검을 휙 휘둘러 핏물을 흩뿌렸다.

"악마가 네놈들의 대체 무엇이길래 목숨까지 버리려는 것이냐?"

"……."

"나는 진실을 안다. 악마는 네놈들이 절대 만날 수 없어."

괜히 베리오 본인이 악마와의 계약의 내용이 담긴 책을 갖고 있으면서 사용하지 않는 게 아니었다. '그분'과 서약을 맺었기 때문에 아예 불가능한 행동이었다. 책의 소유권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것도, 또한 책을 멋대로 읽어버려 악마와 접촉할 구실을 만들어내는 것도 서약의 조건에 위배되었다.

조건이 침범당할 경우에는 베리오는 죽는다.

따라서 베리오는 어차피 읽지도 못하고 잃어버리면 죽는 거 관리인 몇 명의 도움을 받아 책을 자신의 몸 속에 집어넣었다. 나중을 위해 마나로 막을 둘러 처리까지 했으니 안심이었다. 그렇기에 베리오는 흔들리지 않는 의지를 갖고 칼을 겨누었다.

"가능하면 포섭하라고 말씀하셨지만……생각이 바뀌었다."

'그분'은 가능하면 교회와 적대하는 집단들을 끌어모아 포섭하라고 명령했지만, 이런 머저리들까지 포섭할 이유는 없어보였다. 베리오는 마법사를 바라보았다.

"마법사. 너와 나 두 명이서만 싸우도록 하지."

"……."

"입 꼭 다물고 있으면 멋있는 줄 아는 건 로렌스 놈들 종특인가. 혐오스럽군. 기억해라. 나는 네놈만 공격하겠다."

어차피 마법사를 죽이면 마나가 다 떨어져도 일반 대원 따위는 가볍게 이길 수 있었다. 마나를 다 써서라도 마법사를 죽여버린 후, 일반 대원까지 죽인 후 단장을 탈취한다. 이것이 베리오의 목표였다.

인질을 잡으면 보다 수월하긴 하겠지만──베리오는 절대적인 자신감이 있었다.

5서클 최강인 자신이 무명의 6서클 마법사에게 꿀릴 리가 없다는 자신감.

근거없는 자신감이 아니었다. 스스로가 강하다는 것은 에레브와 나누었던 짧은 공방에서도 알 수 있었다. 노바의 명예까지 수여받은 여자 7서클 마법사였지만, 분명 몇 합은 버텼다.

6서클은 7서클보다 약했다. 심지어 명예도 없었다. 그렇다면, 쉽게 이길 수 있는 건 아닐까. 베리오는 검파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빠르게 도약해 마법사를 위에서 아래로 찍어내렸다.

"크, 읍……!"

밀려나는 마법사를 보고 베리오는 직감했다.

'이길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서클이 높다고 해서 꼭 유리한 것만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마법은 눈에 담기에 화려했다. 차라리 암살 같이 조용하게 싸워야 하는 입장에서는 무인들이 제격이었다. 지금처럼 박투술로 싸우는 이상 자신에게 승률이 아주 좀 더 많았다.

마나량에서도 밀리고 서클 개수의 차이에서도 밀리지만──단기결전으로 한 번에 끝내버리면 되는 문제였다.

"캔……슬!"

치도가 손아귀에서 사라지는 걸 확인한 베리오는 바닥을 굴러 몸을 피한 후 다시 치도를 만들어낸다.

마법사가 마나량으로 베리오를 찍어누르든가──베리오가 박투술에서 우위를 점해 마법사를 썰어버리든가. 전투상황에서 마법을 사용함에 있어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뉘는 두 부류 사이의 대결──난제가 여기서도 재현되었다.

"후."

베리오는 단장을 포함한 일반인들을 곁눈질했다. 그들은 싸움에 끼어들 생각은 전혀 하고 있지 않은 듯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저절로 입가가 비틀어졌다. 예나 지금이나 로렌스 놈들은 역겨웠다.

물론, 그 로렌스가 아케즈를 집어삼켰더라도 자신만은 그 '역겨움'에서 벗어났을 테지만……사람이 벌레를 혐오하듯이 본능적인 혐오감이 드는 것만은 어쩔 수 없었다. 순식간에 살의가 치밀어올랐다.

저들은 단순히 '적'일 뿐만이 아니었다. 저택에 불을 질러 소중한 여동생과 관리인들을 죽일 뻔한 악당들이었다. 그렇다면 그 악당들, 가족의 이름으로 직접 단죄해도 문제는 없는 것이겠지.

정당방위를 주장하기 위한 준비도 마쳤다. 베리오는 다시 마법사에게 달려들었다.

검을 치켜세우고 손이 가는 대로, 혹은 마법사의 눈이 향하는 곳으로 검을 휘두르거나 막아세웠다. 마나로 이루어진 검들이 요란하게 부딪히며 쇳소리를 낸다.

"캔슬!"

"인카르너."

확실히 보다 서클이 높은 마법사와 싸울 때는 캔슬이 번거로웠다. 하지만 기본적인 체술 면에서도 마법사는 자신의 상대가 되질 못했다. 베리오는 마법사였지만 끊임없이 운동해 신체를 단련했다.

그 결과가 자신보다 서클이 한 개 더 많은 마법사와 싸울 때 이점을 가져왔다.

검이 사라진 틈을 타 마법사가 검을 휘두르지만──오히려 베리오는 사정거리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 마법사의 손을 낚아챘다.

"검이 아무리 날카로워도 휘두르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지. 그렇지 않나?"

"후, 으으!"

이질적인 마나가 몸속으로 침투해오는 것을 느낀 베리오는 마법사의 손을 잡아 강하게 던졌다. 마법사는 날아가다가 땅바닥에서 굴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바로 일어서 검을 겨누었다.

'……확실히 직접 마나를 주입당하면 조금 힘들긴 하군.'

베리오는 전투에서 학습할 줄 아는 사람이었으며, 마법사에게 지나치게 가까이 다가가서는 안 된다는 사실 또한 파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실전'에서 직접 맞부닥친 경험은 전무했기에 잠깐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 결과로 체내의 마나가 살짝 울렁거리지만…….

'이 정도는 패널티로 치면 된다.'

이미 기세에서 마법사가 밀렸다. 베리오는 자신의 승리를 점치면서도 마법사의 행동을 예의주시했다. 승리를 확신할지언정 손에서 힘을 뺄 수는 없었다.

"쿠폴트, 일레트로닉, 푸에고, 사비."

마법사의 영창에 베리오는 얼굴을 찌푸렸다.

'사비?'

수 년을 마법사로 살며 난생 처음 들어보는 마법의 이름이었다. 베리오는 일단 수동적인 자세를 취했다. 정체를 모르는 마법 앞에서 까불다가는 큰일 나는 수가 있었다.

마법사가 달려들어 검을 횡으로 휘둘렀다.

"캔슬!"

"인카르너."

검이 베리오의 몸을 반으로 썰어버리기 직전에 마법사는 캔슬을 외쳤지만, 검이 몸에 닿기 직전에 베리오는 다시 검을 만들어내어 막아냈다.

'동체시력이나 반응속도도 내가 위다.'

이쯤 되면 저 정체모를 마법을 제외하면 자신이 질 확률은 거의 0에 수렴한다고 보면 되었다.

서로의 역량이 거의 정확하게 판단되었으니──나머지는 난투극이었다.

빠르게 땅을 밟고 도약해 공중에 뜬 베리오는 검을 수직으로 내리꽂았다. 마법사는 검을 위로 들어 힘들게 막아낸 후 또 다시 캔슬로 검을 없앴다.

"인카르너."

베리오는 다시 검을 휘둘렀다. 좌에서 우로, 위에서 아래로, 어쩔 때는 사선으로, 또 어쩔 때는 곡선으로, 검은 마치 봄날의 나비처럼 흐느적거리지만 강한 힘으로 마법사의 검을 때렸다.

'마나를 부딪히는 것으로는 승산이 없다. 검만 떨쳐내면 돼.'

수 년을 함께해왔던 치도였으며, 지금까지 베어넘긴 사람만 하더라도 수십 명에 달했다. 치도와 일심동체가 되어 마법사가 버텨내지 못할 부분을 강타했다.

"크, 으……!"

마법사는 겨우 힘겹게 막아내는 듯했으나──점점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오른발이, 이번에는 왼발이, 마법사가 뒤로 후퇴하지만 반대로 베리오는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턱, 하고, 어느 순간 마법사의 발이 돌부리에 걸려 몸이 뒤로 기우뚱 기울어졌다. 베리오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검을 위에서 아래로 찍었──

카가각, 하고.

베리오의 검이 또 하나의 검에 막혔다. 베리오는 자신의 검을 막아선 인물을 보고는 몸이 굳었다.

"스승님……?"

"……."

베리오는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무슨……어떻게 원로원에 계시면서 저놈들이랑……?"

"오랜만이구나, 델리오. 아니……이제는 베리오인가."

남자는 문답무용으로 검을 휘둘렀다. 6서클 마법사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날렵하고 첨예한 공격이 베리오를 더욱 뒷걸음질치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네 스승이 아니다."

"후, 크……!"

자신이 마법사를 찍어눌렀을 때보다 더욱 굳센 검격이 정확하게 급소들을 노리고 들어왔다. 완전히 베이지 않더라도 상처가 나는 것만으로 과다출혈로 죽을 수도 있는 부위를 남자는 노리고 있었다.

"어째서……."

"……."

"어째서……!"

베리오는 도저히 버틸 수 없어 뒤로 크게 물러났다.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이미 궁지에 몰려 있었다.

"왜 여기에 계십니까!"

"내 제자가 아니라고 했다지."

베리오는 이를 악물고 임전태세를 갖추었다.

"하나만 묻겠다, 베리오. 너는 한참 전에 나로부터 쫓겨났다. 하지만 네가 내 제자가 아니라고 자처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지."

"……."

"아직도 수많은 마법사들을 죽여버린 일, 후회하지 않느냐."

베리오는 표정을 관리하지 못했다. 얼굴이 잔뜩 찌푸려진 게 본인 스스로도 느껴졌다.

"아직도 그 일을 들먹이시는 겁니까."

"……."

"스승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계의 근본은 약육강식이라고! 남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시키기보단 남을 죽여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고! 저는 스승님의 뜻을 실천으로 옮겼을 뿐입니다! 대체 뭐가 잘못되었다는 겁니까!"

남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물론 내가 너를 처음 들였을 때 가르친 건 그러했다. 그때는 나도 제정신이 아니었지. 노예생활에서 벗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 인생 자체에 회의감을 갖고 타인을 적대하던 때였다. 나를 위해서라면, 나를 위협하는 사람 몇 명쯤이야 죽일 수 있다고 여겼다."

"그럼……!"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희생시키는 쪽이 아니라 희생을 당하는 쪽이 되어보니 확실히 알겠다. 널 쫓아낼 때는 단순히 사람 한 명을 그 이상으로 망치기 두려워서, 그리고 로렌스에서 사람을 수도 없이 많이 죽인 네놈이랑 그 이상으로 엮이기 싫어서 그랬다만, 이제는 생각이 바뀌었다."

남자의 목소리는 어디까지나 차가웠다.

"희생은 정당화될 수 없다. 네가 약육강식을 주장하며 보다 약한 마법사들을 죽여봤자 너는 살인범일 뿐이야. 지금까지는 어떻게든 넘어가고 있었다만……내 애제자를 위해서 죽어줘야겠다."

"애제자……?"

베리오가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그 꼬맹이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런 재능이 전부인 새끼들보단 제가 훨씬 더 낫습니다! 제가 이 몸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또 수많은 마법사들을 짓밟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그리고──당신의 제자가 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는 스승님이 가장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놈이 훨씬 낫다."

남자가 검을 치우고 팔을 들어올렸다. 손에는 인카르너로 만들어낸 무언가를 쥐고 있었다.

"적어도 자기가 잘못되었다는 자각은 하고 있으니 갱생의 여지가 있지만, 너는 아니야."

남자가 손을 움직인 순간──무언가가 날아와서 베리오의 배를 관통했다. 베리오는 뚫린 배를 부여잡고 털썩 주저앉았다.

"이, 무슨……."

"마지막으로 대화 한 번 나눠보고 싶어서, 또 마지막으로 네놈이랑 검을 맞대보고 싶었다."

남자가 베리오의 이마에 무언가를 가져다대었다.

"잠깐만요!"

그때, 엎어져서 멍하니 둘의 설전을 구경하던 마법사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저 남자에게, 베리오에게 할 말이 있습니다."

"할 말?"

"네. 죽이기 직전에 말해주라고 그분께서……."

남자는 두어 번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사가 베리오를 바라보았다.

"베리오, 너에게 사비라고 전하라고 하셨다."

"사비……?"

"병신이라는 뜻이라고 하셨다."

덜컥, 하고.

베리오의 이마가 뚫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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