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83)2부 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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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입니까?"
"그런 것 같다."
네튼의 사병들이 베리오의 저택에 도착했다. 이들은 사석에서는 형님 동생하는 사이었지만, 맡은 바 소임을 다할 때에는 군인에 가깝게 행동했다. 이들은 스스로가 그 누구보다 프로페셔널하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아케즈에서는 사병에 대한 법률이 아예 존재하지를 않았다. 베르노바가 살아 있을 때는 5서클 이상의 마법사들이 강제로 징집되었지만, 네튼은 4서클까지의 마법사만 다루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법률이 사라진 현재, 네튼은 무려 6서클까지 사병으로 다뤘다.
그게 가능한 이유는──엄청난 재력. 마법 강대국의 유력 가문으로써 벌어들이는 돈은 꽤 많았다. 괜히 아카데미까지 후원하며 영향력을 발산하는 게 아니었다.
이번에 베리오의 저택으로 파견된 분대의 분대장, 세실은 파견된 분대원들을 데리고 저택의 뒷편으로 조용히 접근했다. 상대는 5서클 마법사의 최강이라고 자부하는 반면에, 이쪽은 이제 막 5서클에 오른 마법사가 최대 전력이었다. 심혈에 심혈을 기울여야만 했다.
최대한 전투를 피하고 책만을 확보하라는 명령이 떨어졌기에 일부러 새벽을 선택했다. 달빛마저 구름에 가려져 들킬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최대한 닥쳐야 한다."
"예."
분대장을 포함한 정예병 네 명이 조심히 저택의 창문을 넘었다. 과연 꽤 격 높은 가문의 저택이라 보안이 허술하지는 않은 듯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네튼의 사병들은 자신감이 있었다.
보통 유력 가문이라고 해도 가문에서 배출해낸 마법사보다 높은 서클의 마법사를 저택에서 관리인으로 쓰는 가문은 거의 없었다. 자존심이 걸려 있기 때문이었다. 달리 말해 돌아다니는 관리인은 높아봤자 4서클. 5서클인 분대장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래도 최대한 전투는 피해야 한다. 무력화시키는 게 좋겠지.'
분대장은 우선 관리인의 수를 확인했다. 저택은 꽤 넓었지만 관리인의 수는 적었다. 파악된 관리인은 총 네 명. 전력의 질로 따지면 분대장 한 명이서 압살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우선 최대한 동선이 겹치지 않게 이동한 후, 관리인들의 동향을 파악했다. 구역이 철저하게 분업이 되어 있었지만 무력화시키는 것만으로는 돌파할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 섰다.
'……최대한 전투를 피하라고 하셨으니, 전투가 일어나는 것 자체는 감수할 수 있다는 것.'
경우에 따라서는 저 관리인들을 전부 죽여버려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분대장은 분대원을 따로 펼쳐 저택을 뒤지라 명령했다. 네튼의 말에 의하면 그것은 매우 소중한 책이라고 했으니 필히 금고 같은 곳에 들어 있을 터. 그렇다면 찾는 게 어려운 일만은 아닐 터였다.
20분 정도가 지나고, 분대원들이 다시 천천히 복귀하기 시작했다.
"없습니다."
"이쪽도 없습니다."
"……제대로 찾아본 거 맞아?"
"책 자체는 많지만……가주님께서 걸어놓은 조건에 부합하는 책들은 없었습니다. 금고 같은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임무는 예정과는 다르게 꽤 길어질지도 모른다며 분대장은 한탄했다.
"……잠깐, 베넷은?"
"……."
아직 한 명이 복귀하지 않았다. 저택이 아무리 넓다고 하더라도 책을 보관하는 장소에는 한계가 있기에, 게다가 네 명이서 나눠서 찾았다면 이미 저택을 다 뒤지고도 남았을 시간이었다. 하지만 복귀하지 않았다는 건──복귀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었다.
"……최대한 전투는 피하되, 가주님께 피해가 갈 것 같으면 살상까지 염두에 둬라. 너희가 누군지 들킬 것 같아도 죽여라. 베넷을 찾아."
"예."
하필이면 베넷은 네 명 중에서 가장 약한 3서클이었다. 미친 게 아니고서야 분대장의 말을 무시할 리 없으니 무언가 일이 생겼다고 봐야 했다.
저택 곳곳을 탐색하던 세실은 하나의 방 앞에 도착했다. 아직 방에 불이 들어와 있었다. 관리인들의 경로와도 꽤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세실은 미닫이문을 살짝 열어 안쪽을 살폈다.
'……젠장. 왜 이 시간까지 깨어 있는 거야?'
딱 봐도 가장 주의하라던 베리오가 분명했다. 그는 가만히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그때, 방 구석의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베넷!?'
세실은 곧바로 문을 열어 베넷을 구하려고 했지만──베넷이 고개를 젓는 걸 보고선 멈췄다.
'……젠장. 이러면 일이 꼬이는데.'
아무래도 베넷은 베리오에게 들켜 방에 구속된 모양이었다. 이래서야 책도 못 찾고 분대원까지 잃었으니 돌아가봤자 좋은 꼴을 못 볼 것이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나.'
책을 구해오라는 건 네튼이 진중하게 다뤄야 할 임무라고 말했으니, 한 번 실패했다고 해서 발을 뺄 리는 없었다. 베넷이 붙잡혔다는 것을 알면 더욱 많은 인원을 내어주겠지. 세실은 거기까지 판단한 후, 나머지 분대원들을 데리고 저택에서 조용히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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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말하지 않을 셈이냐?"
"……."
"네가 누구길래 여기에 침입했냐고 지금까지 한 열 번은 물은 것 같은데."
베리오는 책의 활자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그가 인카르너로 구속해둔 온몸이 검은색으로 도배된 남자는 구석에 무릎을 꿇은 채로 입을 열지 않았다.
"교수님이 보내셔서 왔나?"
"……."
"그건 아닌 것 같군. 교수님께서 나를 죽이고 싶으셨으면 직접 오셨겠지. 귀찮더라도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신다면 완벽하게 처리하시는 분이니."
사라락, 하고 종이가 넘어갔다.
"이 새벽에 저택에 몰래 침입했는데, 관리인을 건드리지 않고 굳이 이 방에 직접 왔다라……나를 죽이려고 온 것이었으면 나보다 높은 서클의 마법사를 보내는 것이 맞지만 그러지 않았다라……."
"……."
"내 목숨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군. 네놈, 혹시 책을 찾고 있나?"
베넷이 움찔했다. 베리오가 피식 웃었다.
"누가 네놈한테 사주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이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지 알기는 하나?"
"……."
"모르겠지. 모르니까 이곳에서 책을 찾으려고 했겠지. 네놈은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 정말 그 책을 찾고 싶었더라면 나를 죽였어야지."
쯧, 하고 베리오가 혀를 찼다.
"애초에 나보다 약한 놈이 그게 어떻게 가능하겠냐마는."
"……."
"네놈 말고 같이 침입한 자들이 더 있나?"
침묵이 자리했다.
"대답해줄 리가 없나. 서클은 적어도 상당히 정예 같은데. 뭐 어떻게 해도 요지부동하겠군. 그럼 그냥 기다리도록 하지. 어차피 네놈을 구하러 올 사람이 한 명쯤은 있을 것 아니냐? 얼마나 강할지는 모르겠지만, 6서클 이상이 아닌 이상 나를 이기기란 불가능하다. 얌전히 와서 붙잡혀주면 고맙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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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튼이 급하게 불러서 네튼 가문의 본관으로 찾아왔다. 그냥 허울뿐인 말이 아니었던 듯, 네튼의 표정은 매우 심각했다.
"조금 일이 꼬인 것 같아요, 에레브 양."
"꼬였다니요?"
"사병을 부려서 확인해봤지만, 책도 못 찾고 심지어 한 명이 붙잡힌 모양이에요."
"음……."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하고 싶다고 해서 수락했었다. 어차피 나는 책만 찾으면 그만이니. 베리오를 죽이고 싶다거나 그런 생각은 딱히 없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진 것 같군…….
"네튼 언니, 역시 아예 뒤흔드는 게 낫지 않을까요?"
"물론 그래야 하겠지만……오히려 에레브 양에게 악영향이 미칠 수도 있어요. 5서클 최강이라고 자부하는 남자를 제압하고 저택을 뒤흔들 정도의 실력자들을 부릴 수 있는 사람, 이라고 한정지으면 에레브 양도 포함되는걸요."
그거야 그렇다. 유력가문이 사병을 거느리는 것도 사람들은 모르는 모양이니까. 기껏해야 원로원이라고 생각할 법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원로원은 불법과는 척을 지고 있었다.
즉, 모든 곳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그리고 베리오와 악연인 내가 용의선상에 오를 수도 있었다. 네튼은 이걸 걱정하는 것이겠지.
"네튼 가문에서 가장 높은 서클을 갖고 있는 사람은, 몇 개를 갖고 있나요?"
"여섯 개에요."
"그러면……차라리 그냥 죽여버리죠?"
나 스스로도 과격한 말을 했다는 자각은 있었다. 네튼이 깜짝 놀라 되물었다.
"그래도 되나요?"
"안 될 건 없지 않나요?"
"……에레브 양은, 후폭풍이 두렵지 않나요? 프로바이오는 지방도시이긴 해도 5서클의 장남을 보유하고 있다면 그래도 유력가문으로 취급할 수 있어요. 레블의 유력 가문들의 경우에는 제 통제 하에 있지만, 프로바이오는 제가 관리할 수 있는 영역 밖이랍니다."
"……제가 위험할 수도 있겠군요?"
내가 베리오와 악연이 있다는 건 베리오뿐만이 아니라 그 가문 사람들 모두가 알 거다. 베리오 본인이 알렸거나, 아니면 그 작은 여자애가 알려줬거나. 애초에 기물의 청구서를 받아서 모두 복구시켜줬으니 그 가문 사람들이라면 모를 수 없겠지.
자칫하다간 내게 보복이라도 들어오는 일이 생긴다면, 조금 곤란해지긴 하는데…….
"……저택을 급습하고 나서 시간이 얼마나 지나야 제가 책을 확보할 수 있을까요?"
"못해도 두세 시간은 필요해요. 거리도 만만치 않게 멀고 그 난리에서 책만 갖고 빠져나오기란 쉽지 않으니까요."
즉, 두세 시간만 안전하게 있을 수 있다면 딱히 상관이 없다는 건가. 어차피 책을 확보해 교회로 가면 서클을 되찾게 되니까.
"6서클 마법사를 사용해주실 수 있을까요?"
"에레브 양의 소원이니 말리진 않겠지만, 최대한 조심해야 해요?"
"아타나시아가 지켜주겠죠 뭐."
성대에 틀어박혀 있다가 교회로 이동하면 된다. 교주가 여신이라는 사실은 아직 밝히면 안 된다. 자칫하다가는 델타의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으니. 교회 바로 앞까지 텔레포트를 시켜달라고 하면 되는 문제다.
"책을 이번에도 확보하지 못하면요?"
"……그럼 뭐, 성대에서 죽치고 있어야죠."
온 저택을 다 뒤졌는데 책을 확보하지 못했다면……내 서클을 복구할 수는 없는데 나를 공격하는 사람들이 생기는 꼴이 되니까 조금 위험하긴 하겠다만.
"저는 네튼 언니를 믿어요."
네튼을 믿는 수밖에.
괜히 유력가문이 아니겠지. 난 네튼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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