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79)2부 0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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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그쪽 막아! 절대로 못 들어오게 해!"
몇 년 전에 있었던 천물토벌이 재현되었다.
요관에서 쏟아져나온 수백 마리의 마물들이 일제히 아케즈를 덮쳤다. 다행스럽게도 아케즈의 통령 아타나시아는 마물들 대부분이 국경에 도착하기 전에 상황을 파악했고──최대한 병력들을 끌어모아 마물들에게 대항했다.
"아타나시아! 선택해야 된다!"
아폰이 소리쳤다. 그는 최대한 장벽을 넓게 펼쳐 마물들의 진입을 막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의 요행에 불과했다. 아무리 7서클이라고 한들 서클의 개수가 지속성까지 챙겨주지는 못했기에.
"마물들이 넓게 퍼지기 시작했다! 이대로 국경을 기준으로 해서 쭈욱 돌아가면 막을 수 없어! 안으로 조금 들어가서 막아야 한다."
"지금, 여기를 포기하라는 말이에요!?"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다!"
아타나시아는 이를 악물었다.
"당장 여기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어요! 비록 관리가 제대로 되지 못하고 있는 곳이라지만──여기도 사람은 산다고요! 우리가 수도를 방위하겠답시고 뒤로 물러나면 이 사람들은 다 어떻게 되는데요!"
"내 알 바 아니다!"
아폰의 목소리에는 짜증이 섞여 있었다.
"레블의 시민들까지 사이좋게 다 죽여버리든가! 아니면 이곳의 사람들만 희생시키든가!"
"윽……!"
"선택은 네 몫이다!"
당장만 하더라도 해일처럼 밀려오는 마물들의 파도는 멈추기는 커녕 더욱 거세지고 있었다. 원로원은 물론이고 급조해 파견한 마법사들과 무인들이 활약해주고 있다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수백 수천의 마물들을 상대하기란 역부족이었다.
원로원이 규모가 거대한 공격마법을 사용하면 일이 간단하게 풀릴지도 모르겠으나, 지난 번의 천물토벌과 이번의 천물토벌은 상황이 달랐다. 마물들이 이미 국경 안쪽에까지 진입한 상태였다. 이대로라면 메테오를 쏟아부어봤자 나라를 망칠 뿐이었다.
아폰이 나라 안쪽으로 후퇴하자는 이유는 간단, 안쪽으로 뭉침으로써 보다 막기 쉽게 대처하고, 여차하면 루디와 디오클레 같은 빈민촌을 버림패로 삼아 메테오를 쏟아붓기 위해서였다. 그런 몰락한 지방도시 따위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레블은 중요하니까.
설상가상으로, 마물들이 이대로 국경을 타고 쭉 뒤로 돌아버린다면 페토라르 또한 위험했다. 요관에 대한 방비는 전부 아케즈에 맡겨놓은 나라가 페토라르였기에, 범람한 마물들을 견디지 못하고 멸망해버리겠지.
이미 프로바이오는 반쯤 함락된 상태였다. 나라 안쪽의 마물들을 고립시켜 섬멸하고 국경에서 막고 있다지만──이미 프로바이오는 물론이고 빈민촌 또한 쑥대밭이 된 상태였다.
이곳에서 더 희생을 늘릴 수는 없지만.
아타나시아는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명령했다.
"메테오 쓸 수 있는 마법사들! 지금 당장 수도까지 후퇴! 빈 자리를 바로 막아 최대한 피해를 줄이세요!"
아타나시아는 영웅이 아니었다.
페토라르를, 그리고 빈민촌의 사람들을 모두 구하는 방법 따위 알지 못했다. 자신의 서클을 모두 바쳐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면 당장 그렇게 하겠으나──저건 서클을 버린다고 해서 어떻게 되는 게 아니었다.
"대체 왜 지금 갑자기……!"
아타나시아는 하늘을 저주했다. 시기가 지나치게 절묘했다. 에레브가 정신이 나가버려 홀로 락토로 향했을 때 마물들이 밀고 들어왔다. 에레브에게 집중하는 잠깐의 틈 사이에 마물들은 더욱 안으로 치고 들어와 국토를 유린했다.
여기에도 시체가, 저기에도 시체가.
대부분이 마물들에게 짓밟혀 내장이 터지거나 물어뜯겨 오체가 분시된 시체들이었다. 지금껏 아케즈에서는 이만한 희생을 겪었던 일이 한 번도 없었다. 하필이면 아타나시아가 통령의 자리에 있을 때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에레브 양……!"
어떻게든 전투와는 거리가 먼 힐다를 파견해 에레브를 안전하게 보호하고는 있지만,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마물들은 자신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미친 소리를 하더니 홀로 타국에까지 달려갔다. 도저히 정상적인 행보라고 보기 어려웠다.
메테오를 쓸 수 있는 사람들이 뒤로 천천히 물러났다. 그럼으로써 생긴 빈자리는 대기하고 있던 다른 마법사들이 들이닥쳐 장벽을 둘러 어떻게든 막아냈다.
아타나시아는 또한 마법사 30명을 더 차출해내 국경을 빙 둘러 페토라르로 향하는 마물들을 요격하라 명령했다. 이 이상 희생을 늘릴 수는 없었다!
별안간 하늘에서 새빨갛게 불타는 거대한 돌덩어리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원로원이 메테오를 퍼붓는 것이었다. 저 멀리서부터 마물들이 떨어지는 돌에 압사하거나 불에 타 죽는 광경이 보였다. 돌은 약간의 경사진 땅으로 인해 국경쪽으로 굴러오기 시작했다.
난세(亂世).
난세가 펼쳐지고 있었다.
수십 수백명의 사람들이 국경에 모여 수백 수천의 마물들을 막아내는 장관이란 무척이나 비현실적이어서, 아타나시아는 사람들을 뒤로 물려야 한다는 사실마저 잊고 헛숨을 들이켰다.
"도, 돌이 굴러온다! 피해!"
돌이 코앞까지 굴러오자 마법사들은 알아서 살 길을 찾아 흩어졌다. 마법사들이 자리를 비운 덕에 수백의 마물들이 다시금 국경을 넘었으며, 아직 탈출하지 못하고 남아 있던 빈민촌의 사람들을 철저히 유린했다.
아타나시아는 정신을 퍼뜩 차렸다.
"뒤, 뒤로 천천히 물러나세요! 대열을 맞춰서!"
하지만 마법사들은 이미 흩어진 이후였다. 다행히 마물들은 돌 수십 개가 굴러오면서 처리가 되고 있었지만, 문제는 마물이 아니라 아케즈의 피해였다. 빈민촌에 얼기설기 지어진 집들은 마물들에 의해 무너지거나 돌에 짓밟혀 개집만도 못한 신세가 되었다.
진동이 점점 가까워졌다.
이러다간 아타나시아가 있는 곳까지 돌들이 들이쳐 다른 도시까지 짓뭉갤 것이었다. 아타나시아는 자신의 실수를 뼈저리게 후회하며 직접 돌들을 멈췄다. 완전히 멈춘 돌들은 다른 마법사들이 반으로 쪼개 더 이상 구를 수 없게 만들었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
천물토벌은 전쟁이 아니었다. 인간들이 일방적으로 마물을 섬멸하는 것에 가까웠으므로 시간이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요관의 마물 따위 원로원이 작정하고 큰 마법들을 난사하면 충분히 정리할 수 있기 때문에.
이번에도 역시 그랬지만, 살짝 다른 부분이 있다면 시체는 마물의 것만이 아니라 인간의 것도 넘쳐난다는 것일까. 아타나시아는 눈앞의 참혹한 광경을 목전에 두고 털썩 주저앉았다.
"……."
아직 처리되지 않은 잔당들은 마법사들이 처리했다. 급보가 들어오지 않는 것을 미루어 보았을 때 아마 락토를 지나쳐 레블로 향하던 마물들도 정리가 되었을 터. 지난 번과 마찬가지로 어떻게든 정리가 됐지만, 그 어떻게든이라는 과정에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인종을 가리지 않았다. 빈부를 따지지도 않았다. 마물들은 공평하게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는 인간에게 죽음을 선사했다.
"나, 때문에……."
아타나시아는 눈을 질끔 감아버렸다. 차라리 없던 일이 되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그러나 일국의 수장인 아타나시아에게는 이미 벌어진 참사에서 눈을 돌릴 권리가 없었다.
아케즈가 건국된 이후 이토록 국토가 유린되고 사상자가 많이 발생했던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심지어는 베르노바가 다스리고 있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국민을 가장 많이 죽게 만든 통령은 베르노바가 아니라 아타나시아였다…….
국경을 제대로 방비하지 않은 책임, 빈민촌의 사람들을 죽게 내버려둔 책임, 마물들이 지방도시에까지 밀려들어와 일반 시민들에게까지 피해를 준 것에 대한 책임, 통령으로서의 온갖 책무들이 아타나시아에게 들러붙었다.
"……."
"아타나시아."
누군가가 아타나시아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정리 얼추 됐다. 일어서."
아타나시아가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거기에는 델라즈가 있었다.
델라즈는 아타나시아의 눈을 보고 흠칫했다. 보석이 박힌 것처럼 예쁘게 빛나던 눈망울은 생기를 잃어버려 일그러져 있었다.
"……정리가 된 건 마물들뿐이다. 페토라르로 넘어가던 놈들도 죄다 잡아죽였고, 페토라르 쪽에 연락을 넣었으니 곧 답변이 올 거다."
"벌써……?"
"벌써가 아니다. 벌써 두 시간이나 흘렀다."
그렇다면 두 시간 동안이나 가만히 앉아 정신을 놓고 있었다는 말인가. 아타나시아는 저도 모르게 실소했다.
"아직 남았어. 시체도 수습해야 하고, 저 돌덩어리들도 없애야 한다."
그것 외에도 국민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천물토벌이 끝났음을 알릴 필요도 있었으며, 사망자 유가족들에게 보상하거나 사망자들의 신원을 파악하는 일 등도 산재해 있었다. 아타나시아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에레브, 양은요?"
"건물 밖으로 나온 적 없다고 한다. 창문으로 나간 게 아닌 이상 무사할 거라는군."
"확인, 한 번 더 하라고 해줘요. 직접."
델라즈는 고개를 끄덕이고선 텔레포트해 사라졌다.
아타나시아는 터덜터덜 국경 쪽으로 걸어갔다. 그곳에는──
"지금, 뭘……?"
"통령 각하?"
시체들에서 부산물을 챙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마물뿐만이 아니라 인간의 시체 또한 그들은 헤집었다. 자기들이 하는 짓이 떳떳하지 못한 것임을 아는 듯 표정이 어두웠다.
"지금, 뭘 하는 거죠?"
"아, 그게 말입니다……."
아타나시아는 방금 대답한 사람의 행색을 살폈다. 마법사가 아니라 무인이었다.
그것도 로렌스의.
"사람들이 전부 합심해서 마물들에 대항할 때, 당신은 대체 뭘 했죠? 뭘 했길래 살아남아서 여기서 시체를 뒤지고 있는 거에요?"
"그게, 참──"
"──지금 뭘 하고 있냐고!"
마나를 담아 버럭 일갈한 탓에 시선이 이쪽으로 몰렸다. 수십 명의 시선을 한몸에 받게 되자 시체를 헤집던 사람은 고개를 푹 숙였다.
"통령 각하, 무슨 일이십니까?"
"이 사람들, 전부 감옥에 집어처넣어요. 당장."
"예."
마법사들이 범죄자들을 끌고 가고, 아타나시아는 아직 커다랗게 남아 있는 돌덩이를 쪼개기 시작했다. 천물토벌이 끝난 후 만들어진 돌덩이들은 국경 바깥쪽에 세워놓는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마물들이 국경에 접근하는 것을 막아주었다.
문득, 발에 무언가 걸렸다. 아타나시아는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우, 욱……."
배가 터져 내장이 튀어나온 시체가.
인간의 시체가.
그것도 빈민촌의 작은 어린아이의.
아타나시아는 최대한 구역질을 참았다. 이대로 게워내봤자 아이의 시체만 더럽혀질 뿐이었다.
돌들을 사람 키만한 기둥으로 만들고 국경 바깥쪽으로 날랐다. 주위를 살피니 다른 마법사들도 마찬가지였다. 무인들은 마법사들이 쪼개준 돌덩어리들을 옮기거나 앉아서 쉬고 있었다.
터벅터벅 발소리가 들려왔다.
"아타나시아."
"……."
"잘 했다. 그 이상으로 지체했으면 레블에까지 피해가 있었을 거다. 아무리 우리 원로원이라고 한들 마물들이 나라 안쪽에까지 들어와 있으면 한꺼번에 섬멸할 방법이 없어. 네 선택은 틀리지 않았──"
"──아폰 님은, 이 아이들이 불쌍하지도 않나요."
아폰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참혹하다는 말도 부족한 참사의 풍경은 확실히 눈에 담기 힘들었다. 마물들의 시체들에는 이골이 나 있는 아폰이었지만, 그 역시 이렇게 수많은 인간의 시체를 본 건 처음이었다.
"불쌍하다."
"……."
"하지만 똑바로 생각하거라. 감정에 휩쓸리지 말고 이성으로 감정을 지배해라. 네가 그런 결정을 하지 않았다면 마물들은 레블에까지 밀고 들어와 네 소중한 사람들을 짓밟았을 거다. 아카데미의 학생들도 예외는 아니고──네가 끔찍히 아끼는 그 아이, 에레브도 예외는 아니다."
아타나시아는 까득, 이를 갈았다.
"그 아이는 더 이상 마법사가 아니다. 그 아이가 위험하다고 판단돼서 너는 힐다를 보내놓은 것 아니었느냐."
힐다는 힐러였다.
원로원에 들어올 수 있을 정도로 유능한 인재였기에, 다 죽어가는 사람들도 목숨만 붙어 있다면 살릴 능력 또한 되었다.
하지만 아타나시아는 그러지 않고 오로지 에레브의 안전을 위해 힐다를 성대로 보냈다.
"위선을 부리려고 하지 마라. 이건 모두 네 선택이었다."
"……."
"이번엔 저번보단 쉬웠다. 대처가 늦었기에 피해가 커진 것이야. 조금이라도 더 빨리 이곳을 정리하고 돌아가야 한다."
아폰은 거기까지 말하고 사라졌다. 아타나시아는 참혹한 광경을 더 눈에 담다가, 발걸음을 돌렸다.
이날, 내륙 곳곳에 즐비한 시체를 치우는 치우고 신원을 파악하는 데만 십수 시간이 걸렸으며, 국민들은 역적 베르노바보다 무능한 베르노바의 딸 아타나시아를 질책했다.
시민들은 이날 있었던 일들을 전해받고 분노했으며, 곧장 시위대가 결성되었다. 시위대는 레블의 저잣거리를 돌아다니며 아타나시아의 하야를 촉구했다.
통령은 국민들에게 깊은 사죄를 전달함과 동시에 나라를 위해 동분서주하며 분골쇄신의 각오로 일하겠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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