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78)2부 0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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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악마를 어떻게 회수하겠다는 건데요? 애초에 회수도 아니잖아요."
"악마는 우리보다 한 단계 격이 높아. 악마의 계약이 알파의 서약보다 윗줄이라, 네가 악마와 계약해서 알파에게서 빼내오면 되는 문제란다."
입맛이 썼다.
"그렇게 간단한 건데, 어떻게 악마가 지금까지 풀려나지 않은 거에요?"
"계약이라는 건 두 명 이상의 존재를 필요로 해. 악마는 다른 누군가와 계약하지 않는 이상 풀려날 수 없지. 알파도 그걸 알고 있기에 최대한 악마에 대한 정보는 숨겼단다. 기껏해야 자기가 관리하고 있는 베르노바에게나 알려주었을까 싶어."
악마와의 계약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 베르노바에게 있었으며, 그건 지금 델라즈의 제자놈에게 있다고 했지. 이름이 베리오라고 했던가. 자세한 경위는 모르겠어도 베리오 또한 알파와 한편일 가능성이 높겠다.
"우리는 알파를 죽이는 게 목적이란다. 그리고 나는 그 후에 내가 악마를 통제하고 첫째가 되는 게 목표지."
"……진짜 자매도 아니지 않나요?"
"수천 년 동안 살 부대끼며 살아왔으면 그냥 자매라고 보는 게 맞지 않니?"
그것도 그렇군.
"아무튼, 그걸 위해 내 힘을 너에게 몰아주어 네 서클을 고칠 거야. 그리고 네가 악마를 갖고 돌아오면, 나는 악마의 힘으로 다시 능력을 되찾는 거지. 어때?"
"……신은 서로 죽일 수 없다면서요."
"원래대로라면 그렇겠지만……우리는 이미 인간계에 몸을 현현한 상태라서, 목이 잘리면 죽는 건 인간이랑 같단다?"
그렇다면 안심이고.
그리고 무엇보다 확인해야 하는 게 있다.
"첫째가 되시면……이계를 어떻게 하실 생각이에요?"
이계를 침공하려고 나를 소환했다는데, 힘이 돌아오고 싸움이 끝나면 정말로 이계를──지구를 침공해 멸망시키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돌아가봤자 의미가 없게 된다.
베타가 손을 저었다.
"나는 관심없어. 여기가 좋은걸."
"……."
베타는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베타 또한 이계의 침공을 목표로 두고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굳이 나를 악마를 뺏어오는 배역에 밀어넣을 리가 없다. 다른 어떤 인간이라도 가능한 걸 나에게 시키겠다는 거니까……노림수가 훤히 보인다.
"서클을 고치면 너는 홀을 통해 네가 원하는 곳으로 전이할 수 있지. 그리고 요관의 통제는 델타가 할 수 있고 말이야."
"……서클도 고쳐주고, 집에도 보내주겠다는 건가요?"
"그렇지. 이러면 구미가 좀 당기니?"
당긴다.
매우.
그래도 우선, 물어볼 것들을 물어봐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왜 저를 금방 찾지 못하신 거에요?"
"네가 여자가 되어버렸잖니. 설마 그런 욕망을 품고 있을 줄은 몰랐기에 전혀 고려하지 못하고 있었어."
……차라리 여자가 되어버렸음 좋겠다는 생각을 분명 하긴 했지만, 정말로 그것 때문에 여자가 된 건가. 누굴 탓하지도 못하겠네 시발.
"홀이라는 건, 결국 악마가 걸어놓은 주술이 근본인 건가요?"
"그렇지. 시전자의 정보를 토대로 욕구와 욕망을 파악해 소원을 들어주는 램프의 지니 정도로 생각하면 된단다?"
"……램프의 지니를 어떻게 아세요?"
"침공하기 위해서 공부 좀 했어. 네가 여기로 오면서 정보의 편린들이 휘날렸거든. 너, 소원 같은 거 매우 좋아하는 모양이더라?"
골이 울려왔다.
"제가 5원소 모두에 적성이 있는 것도……베타 님 영향인가요?"
"그래. 네가 이곳에서 잘 적응해서 살아남아야 우리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즉, 내게는 마법에 재능 따위 없었다.
"……혹시 제 머리카락이 붉은색인 것도?"
"다른 인간들이랑 구별 좀 하려고 일부러 그런 희귀한 색으로 염색시켰단다. 덕분에 네가 에레브라는 걸 의심하고 있었지. 지금은 백발로 물이 빠졌지만, 오히려 예쁘구나?"
"……."
"미소녀가 되고 싶어서 그런 욕망을 가져 이렇게 미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는 거 아니니? 소원을 이뤘으니 축하해."
쪽팔려서 죽어버리고 싶었다.
"다른 아티팩트는 잘 모르겠고……금강도 여신님들이 만들어낸 거에요?"
"응. 정확하게는 알파가 악마를 억압하기 위해 만든 아티팩트지. 원래는 마나까지 먹어치우게 해야 했지만, 실험이 실패해서 마법만 먹어치우는 불량품이 됐단다. 그래서 그냥 인간계에 풀어놓았어."
상관없다. 덕분에 내가 목숨을 구했으니까.
"……베타님도 아시겠지만, 저는 남자였어요."
"그렇지. 지금은 여자지만."
"맞아요. 지금은 여자에요. 그럼, 전처럼 남자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베타가 피식 웃었다. 불안감이 엄습했다.
"바리에이션 한 번이라도 써봤으면 알 텐데. 너는 완벽하게 여자가 되었단다?"
"그게 무슨……."
"바리에이션은 신체의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마법이지. 네 몸의 시간을 1년 이상 돌렸으면, 네가 남자가 되는 게 맞지 않았을까?"
아.
아──?
노바와 에르를 엿먹이기 위해 디오클레에 찾아가서 분명, 내 몸에 바리에이션을 썼을 텐데.
중학생 정도의 나이까지 어려졌는데?
그때도 난 여자였다.
"말했잖니? 악마가 우리보단 윗줄이라고. 당연히 마법보단 주술이 격이 높아서 바리에이션으로는 해결이 안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구나."
"……."
"그리고, 착각하지 말렴. 너는 여자지만, 네 몸이 여자가 아닐 수도 있단다."
나는 멍하니 베타의 말을 곱씹었다.
"지금까지 생리 한 번이라도 해본 적 있니? 네 신체나이는 이제 겨우 20세 초반인데 말이야."
"……한, 번도."
"응. 거봐. 너는 역시 완전한 여자라고 보기에는 부족해. 남성성도 여전히 남아 있는 모양이고……아직도 여자를 좋아하니?"
나는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런데요."
"남자도 막 이성으로 보이고 그러진 않니?"
"아니요, 절대."
"으응, 그래? 막 남자한테 눈이 가고, 좋아하는 사람이 죽거나 떠나면 슬프고, 다른 여자랑 붙어 있으면 질투나고……그랬을 텐데."
"……."
아니.
아닐 거다.
아니겠지.
아니여야만 한다.
아닐 거다.
아닐 거야.
"앨버트와 페일리라고 했니? 네가 만날 데리고 다니는 아카데미 학생들."
"……."
"별로 듣고 싶어하진 않는 것 같으니 하나만 더 말하고 끝낼게. 너는 무성이 아니라 양성에 가까워."
즉.
나는 양쪽 둘 다를 사랑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아.
아…….
"더 궁금한 건 없니? 지금 질의응답의 시간을 갖는 거 아니었니?"
"……알파가 정말 이계로 가고 싶어하는 거라면, 그냥 한 명을 더 소환해내면 되지 않나요."
"아, 그건 어려워. 우리도 물론 전지전능하지 않지만, 악마라고 해서 완벽한 건 아니란다? 그랬다면 알파에게 속아서 종속되지 않았겠지. 그 주술은 딱 한 번만 가능한 거였단다."
달리 말해, 추가적인 외부 요인이 개입할 가능성은 전무하다, 라고.
"제 존재를 알파가 알고 있을까요."
"그럴 확률이 높겠지? 그년도 결국에는 인간이 되어 몇 년을 살았으니까. 너는 네 입으로 레블에서 살면 너의 존재를 모를 수 없다고 말하고 다녔잖니? 알파도 레블에서 살고 있을 거란다."
시발.
괜히 떠들고 다녔네.
"그리고, 가장 궁금했던 건데요. 감마는 어디에 있나요?"
"감마?"
"네. 알파 다음에는 베타, 베타 다음에는 감마, 그리고 그 다음이 델타잖아요. 왜 감마를 생략하고 델타에요?"
베타가 쓴웃음을 지었다.
"우리의 이름은 네가 살던 세계를 엿봐서 얻은 정보의 편린으로 지은 거야. 숫자는 절대적이지. 우리의 이름은 절대적이라는 의미를 품고 있단다."
"……근데 왜 감마가 없는데요?"
"델타 그년이 조금 미친 년이라, 셋째가 되기 싫다고 감마를 거부했단다."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감마가 싫어서 델타가 되길 자처했다고요?"
"그래. 나도 믿기 싫지만 그게 진실이란다. 물어볼 거 다 물어봤니?"
나는 손을 저었다.
"악마는 그럼 어디에 있는 거죠?"
"정신세계."
베타가 자신의 머리를 가리켰다.
"악마 자체는 우리 셋 중 누구든지 접촉할 수 있단다. 애초에 우리 머릿속에 똬리를 튼 게 악마니까 말이야. 다만 서약 때문에 알파의 말만 들을 뿐이지."
"종속……이 되었다고 했나요."
"그래. 그 빌어먹을 종속 때문에. 그러니 일단 정신세계에 들어가서 악마와 계약을 하고 나오렴. 그럼 서클을 고쳐줄게."
나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가까스로 고개를 끄덕였다. 베타가 내 머리에 손을 올렸다.
"눈 감고, 정신을 최대한 집중하렴. 네 몸의 모든 부분이 두개골 내부에 속해 있다는 느낌으로."
내 온몸이 끊임없이 짧아져, 마치 두개골의 크기가 내 키인 것처럼 생각에 생각에 생각에 생각에 생각에 생각에 생각에 생각에 생각에───
["너, 누구냐?"]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기한 감각이었다. 나는 지금 눈을 감고 있는데 눈앞의 광경이 보였다. 푸른색과 붉은색이 한데모여 일렁이고 있는 오오라 비스무리한 것들 사이에 큼지막한 뿔을 머리에 달고 있는 대머리가 보였다.
["……인간인가? 인간이 어떻게 여길 들어왔지?"]
저것에게 감히 말을 걸어도 되는가?
흔히 악마하면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보다 수천 배는 흉악했고, 불길했다. 저것과 말을 섞으면 악마에게 홀려 순식간에 죽어버리는 것은 아닐까……그렇게 생각될 정도로.
하지만, 나는 이미 오래 전부터 악마에게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는 상태였다.
"악마."
["어떻게 들어왔냐고 물었다. 인간 주제에 정신세계에 개입하다니."]
"베타가 나를 여기에 집어넣었어."
악마가 표정을 흉측하게 일그러뜨렸다.
["뭐가 목적이지?"]
"너를 여기서 꺼내줄게. 나랑 계약하자."
["계약……베타가 쓸데없는 이야기를 지껄인 모양이군."]
악마가 코웃음쳤다. 이 장소 자체가 진동했다.
["거래라고 했나? 어디 들어나보지. 대신 내 기준에 충족하지 못하면 네가 이곳에서 절대로 나가지 못하게 막으마."]
"나는……여신이 이계를 침공하기 위해 소환했던 인간이야. 너의 주술로 이 세계로 날아왔어."
["아아, 어디로 사라졌나 싶었는데 그런 꼬라지가 되었나. 네놈도 델타 년 못지 않게 어지간히 변태군. 그딴 욕망이나 숨기고 있었다니."]
"……."
딱히 부정할 방법이 없다는 게 슬펐다…….
"나는 원래 세계로 돌아가길 원해. 첫 번째 요관의 홀에 네가 걸어놓은 주술이 전이지?"
["맞다. 철저히 인간들의 개입을 막고 우리끼리만 이계로 건너가 침공할 작정으로 그런 것을 만들어놓았지."]
"베타가 너를 이용해 자기를 도와주면 나를 원래 세계로 보내주겠다고 약속했어. 너를 알파와의 서약에서 해방시켜서 베타에게 종속시킬 거야."
["하, 무슨 소리를 하는가 싶었는데, 또 다른 년에게 목줄을 잡히라고? 네 눈에는 내가 동네 개새끼로 보이는 모양이군."]
악마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내 기분을 더럽힌 죄를 물어──지금 당장 오체를 분시해도 되겠지만, 마지막으로 네게 제안을 하나 하마."]
"제안……?"
["이곳 정신세계는 완벽하게 단절된 공간이다. 다른 여신 년들이 너와 나의 대화를 듣기는 불가능하다. 그러니 제안을 하나 하지."]
어째서인지 악마의 흉측한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이대로 풀려나봤자 다른 여신들에게 종속될 뿐, 그럴 바에는 차라리 너와 손을 잡겠다."]
"나와……?"
["그래. 너와. 함께 여신들에게 엿을 먹이는 거다. 너도 여신들에게 불만을 갖고 있지 않나? 그 악랄한 년들이 너를 소원할 때 어떤 조건을 내걸었는지는 알고 있나."]
베타에게 전해듣기로는…….
["그 순간 그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을 이곳으로 데려왔다는군! 오로지 세상을 파괴하기 위해 존재하는 악마인 내가 혀를 내두를 정도로 악랄하다.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베타의 손에 이끌려 원래 세계로 돌아간다고? 베타 그년이 순순히 너를 보내줄 것 같나?"]
"……."
["나와 손을 잡아라."]
베타의 말이 거짓임은 어느 정도 간파하고 있었다.
굳이 베타가 나에게 딜을 제시할 이유는 없었기 때문에. 베타는 내가 불쌍해서라고 말했지만, 그거는 기만이다.
베타를 포함한 모든 여신들은 나를 위해 뭔가를 해준 게 없다. 다 자기들 사익을 취하기 위해 나를 이용했을 뿐이다. 이번에도 그렇고. 소환 조건부터가 저따구였으며 소환된 인간인 나를 이용해서 저들이 하려고 했던 건 내 고향을 침공하는 것이었다.
나를 농락하는 것.
그것이 베타의 의도이겠지.
악마가 나에게 이런 제안을 하는 까닭은, 여신들의 주박으로부터 풀려나기 위해서이겠지. 왜 나와 손을 잡는 게 여신들로부터 풀려나는 것의 초석이 될 수 있는지는,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알 것 같지만……그래도 확인해두는 게 좋을 것 같다.
"한 가지, 물어볼게."
["뭐냐."]
"왜 이런 곳에 이렇게 잡혀 있어? 베타 말로는 네가 여신들보다 격이 높다고 하던데."
악마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여긴 땅이 없는 것 같지만.
["알파의 사탕발린 말에 넘어가버렸다."]
"뭘 제안했는데?"
["인세의 난을 원했다. 세계를 쑥대밭으로 만들어주겠다는 알파의 말에 무조건적으로 협력하겠다는 서약을 맺었지. 하지만 시간이 한참이 흘러도 이 개새끼들은 나를 구속하고 약속을 유보했으며, 서약을 파기하기 위해서는 계약이 필요하지만 알파가 계약의 내용이 적힌 책들을 한 권만 남기고 죄다 불살랐다."]
그게 아마도 베리오가 갖고 있는 책.
"내가 널 거기서 꺼내줘서 자유의 몸이 되면……여기를 쑥대밭으로 만들 거야?"
["당연한 거 아니냐? 어차피 네놈은 이계로 돌아갈 거 아니냐? 그럼 협력할 수 있지. 여기가 어떻게 되든 네 알 바 아니잖아."]
확실히.
나는 돌아갈 수 있다면 이곳의 모든 것을 내칠 수 있다.
"……받아들일게."
["잘 생각했다! 드디어 이 지긋지긋한 곳에서 탈출할 수 있겠군!"]
"계약은 어떻게 하는 거야? 여기서 할 수 있어?"
["불가능하다. 여기는 말 그대로 여신이 너와 나를 연결해줬을 뿐인 정신세계. 나와 계약하기 위해선 알파가 남긴 그 책을 통해 나를 소환해야 한다. 그 책을 찾아라."]
곧바로 하는 건 불가능한가. 아쉽게 되었지만……달리 말해 책만 찾아 악마와의 계약을 완료하면 나는 이전의 힘을 되찾을 수 있다.
"알겠어. 근데 여기선 어떻게 나가?"
["이곳 또한 하나의 세계다."]
악마가 씨익 웃었다.
["한 번쯤은 죽음을 경험해보는 것도 괜찮겠지."]
무슨 말일까,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는데──갑자기 악마가 큰 뿔로 내게 돌진해왔다. 나는 깜짝 놀라 허우적거렸지만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뿔이──내 배에 박혔──
"아아아악!"
내가 내지른 괴성에 놀라 눈을 떴다. 온몸에서 식은땀이 흥건했고 시야 끝부분이 선명했다. 숨결마저 거칠어져 있었다.
방금 난 악마의 뿔에 의해 배가 찔렸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소리를 지르니?"
나는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고개를 돌리니 베타는 선반에서 술을 꺼내 마시고 있었다.
"아, 이거 네 거니? 취한다는 거, 엄청 느낌 좋더라. 미안하지만 몇 개만 좀 마실게?"
"……."
"그래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꼴이 그러니?"
나는 배를 쓰다듬었다. 통증은 없지만 감촉이 남아 있는 듯해 껄끄러웠다.
"악마가……정신세계에서 절 죽였어요."
"으응……?"
베타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화가 많이 나 있긴 할 텐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널 찔러? 걔도 제정신이 아니구나."
"……좀 놀랐네요."
"괜찮아. 거기는 또 다른 별개의 세계라서 거기에서 죽어도 여기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단다. 그래서, 계약은 성공했니?"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악마와의 계약을 위해선 책이 하나 필요하대요."
"걔도 만능은 아니었구나."
"문제는……아마 그 책이 알파한테 있을 거에요. 정확하게는 알파 휘하에 있는 인간에게."
베타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래? 그럼 구해오렴."
"네?"
"네가 구해와야지, 내가 구해올까."
"아니, 광신도들을 쓰시면……."
"내 말을 안 듣는 새끼들 천지라 안 돼. 책을 구해오라고 하면 그 책을 전부 찢어버릴 새끼들밖에 없어. 나는 불가능하단다."
까득, 이를 갈았다.
"그럼, 서클을 먼저 복구해주세요."
"내가 호구니? 먼저 악마를 데려오려무나."
대체 서클 없이 그 새끼를 어떻게 이기라는 거야 씨발.
……아니, 아니다. 아직 나에게는 패가 여러 개 남아 있다.
"최대한 빨리 구해올게요."
"그러렴. 구하면 교회로 오렴? 모락스에게 네가 찾아오면 들여보내라고 해놓을게."
그 말을 끝으로, 베타는 방에서 나가버렸다.
나는 땀에 푹 젖어버린 팔을 쓸었다. 찝찝했다. 이 찝찝함이 아마 베타의 뜻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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