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0억을 위해 아카데미 교수가 되었다-169화 (169/247)

(EP.169)2부 066

"아, 아하……."

고개 끄덕이지 마라, 멍청아! 하지만 네튼이 직접 입으로 발음한 섹스라는 단어는 너무나도 이질적이라서,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만은 어쩔 수 없었다.

"……이런 거에는 내성이 없나요? 그럼 성교라고 말을 바꿀게요."

"아니, 네……감사합니다……?"

"그래서, 대답은요?"

뭔가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질 않는다. 뭔가 이상하다. 지금 이 대화도 충분히 문제이지만, 이 사단을 초래해버린 더 거대한 문제가 존재하는 것 같은데…….

"저는 그, 앨버트랑 그런 걸 한 적이 없는데요?"

"오르가니아에서, 부둣가에서 치마를 내리고 있었잖아요? 앨버트 군 위에 올라탄 채로."

"……죄송한데 근데 그걸 어떻게 아세요?"

앨버트나 페일리가 말해줬을 리는 없고. 네튼이 이런 정보를 얻을 만한 곳이 어디일까.

나를 보호하고 있었다고 했으니 아예 밀정을 내 근처에 붙여둔 것이었을까? ……아니, 아니다. 네튼은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철저하다. 밀정을 붙일 생각이었으면 굳이 아타나시아를 나와 함께 오르가니아로 보낼 필요가 없었겠지. 아타나시아가 나와 함께 오르가니아에 온 것으로 나를 향한 위협은 사라졌다고 보는 게 맞다.

그럼, 밀정이 아니라는 건데.

"그건 알려줄 수 없어요. 그래서, 대답은요?"

"……확실하게 해둘게요. 저는 앨버트랑 그런 걸 한 적이 없어요."

"에레브 양은 처녀인가요?"

"에, 예? 네……아마도요? 아마……안 하긴 했는데, 네……."

왜 자꾸 목소리가 바닥에 기어다니냐. 제발 어깨 좀 피고 당당하게 말해라. 지금 내 꼬라지가 다른 사람이 보면 숫처녀가 부끄러워하는 게 귀엽다고 말할 법한, 그런 모습이다. 그리고 시팔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아닌데, 아닌데 분명…….

뭔가, 느낌이 이상해. 부끄러.

"안 한 거면 안 한 거지 아마도는 뭐에요?"

"기억이, 안 나서요……? 아니, 아니……그건 왜 물으시는 거에요?"

"도저히 처녀가 보일 법한 행동이 아니었거든요."

뭐라 할 말이 없다.

"그건, 이제……조금 말씀드리기 그래서, 그냥 그런 일은 절대로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학생이랑 관계를 맺는 교수라니, 어떻게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있어요?"

"흐음……."

네튼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나 색이 고파지면 말해요."

"……."

아무래도 이 아줌마는 나를 놀려먹는 거에 재미를 들린 것 같다. 지난 번에도 그렇고. 보통 여자한테는 못할 얘기를 나한테는 막 하는군.

……그냥 이게 네튼의 성격이고 화법인 걸까? 어떻게 유력가문의 가주가 될 수 있었는지조차 미스테리이다.

그나저나, 대체 네튼에게 그걸 알려준 사람이 누구일까. 모르겠다…….

** ** **

"안 돼요."

응접실을 나와 아타나시아에게 내 뜻을 전했더니, 아타나시아가 완곡한 거절 의사를 내비쳤다.

내가 요구한 것은, 나를 지나치게 과보호하지 말라는 것. 지금껏 살아온 일상을 그대로 앞으로도 답습하겠다는 당연한 것이었다.

다시 기숙사로 돌아가서 살고, 나 원하는 대로 이곳저곳 누비며 살고 싶다고, 아타나시아의 보호 하에 아타나시아와 함께 다니는 건 불편하다고 말했다.

'불편하다' 라는 건 상당히 부정적인 말이다. 일부러 그런 말까지 들먹이면서 아타나시아를 조금 떼놓으려고 했던 건데……네튼이 얼마나 잘 꼬드겼는지 절대로 떨어지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명하고 앉았다.

이대로 아타나시아에게 코가 꿰이는 건 원하지 않는다.

……사실, 아타나시아를 떼어놓을 방법이 하나가 있긴 하다. 내 서클을 들먹이는 것. 내가 서클을 잃은 이유가 너 때문인데──이런 것마저 나에게 강제하려 드는 게 말이 되냐는 폭언 한 마디면 아타나시아는 격침당해 아무런 말도 못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런 건 원하지 않는다.

아타나시아와는 이미 진실된 이야기를 한 번 나누었지만, 한 번 더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 이야기를 제대로 나누기도 전에 아타나시아가 나가떨어지면, 내 목표를 달성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아타나시아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고 아타나시아를 떼어낼 수 있는 방법에는 뭐가 있을까…….

"아타나시아."

"네."

아타나시아의 어조가 흉흉했다. 나는 최대한 쌍불한 눈빛으로 아타나시아를 정확하게 44도 각도로 올려다보았다. 이게 가장 파괴력이 높았다.

"저는, 사생활을 존중받고 싶어요."

"사생활……이요?"

"네. 다른 사람들도 물론 그렇겠지만, 저는 다른 사람에게 결코 들키고 싶지 않은 게 있거든요. 아무리 아타나시아라고 해도 말이에요. 오히려 아타나시아처럼 가까운 사람에게 밝힐 수 없는 은밀한 취미 같은 것도 존재하는 법이죠."

아타나시아가 떨떠름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타나시아에게도 그런 취미가 한 개쯤은 있지 않나요?"

"저는, 그런 거 없어요."

"……정말요?"

아닐 텐데. 나는 아타나시아가 갖고 있는 은밀한 취미가 무엇인지 안다. 성대에서 같이 살기 시작하며 깨닫게 되었지.

내가 어조를 이상하게 꾸며 은근히 압박하자, 아타나시아는 안색이 새파래졌다.

"저, 정말 없어요."

"진짜요?"

"……네."

끝까지 시인하지 않겠다니, 어쩔 수 없군. 직접 목을 베어내는 수밖에.

"……밤마다 노래를 부르는 소리──"

"꺄아악!?"

아타나시아가 황급히 내 입을 막았다. 그럴 줄 알고 일부러 작게 말했는데도 어지간히 쪽이 팔렸던 모양이다.

아타나시아는 목소리가 굉장히 고운 것에 비해 가창실력은 좀 별로였다. 남들한테 들려줄 수 없으니 혼자 몰래 부르는 것 같은데, 내가 성대에 같이 살기 시작했다는 걸 미처 고려하지 못한 것 같다. 덕분에 재미 좀 봤지.

아타나시아는 아까와는 다르게 얼굴에 홍조가 떠올라 있었다. 사람의 치부를 드러내는 건 정말이지 할 짓이 못 된다. 나는 내 입에서 아타나시아의 손을 치웠다.

"자, 저도 아타나시아 못지 않은 비밀이 몇 개 있어요. 아타나시아한테 절대로 들키기 싫은."

"……."

"이런 비밀들을 들켜버린다면……나, 죽어버릴지도 몰라요."

아타나시아가 흠칫 어깨를 떨었다.

"정말 위험하다 싶으면 직접 부탁할게요. 지켜달라고. 그러니 방생해주지 않을래요?"

"……알겠어요."

아타나시아는 끝까지 명백히 싫어하는 기색을 보였지만, 그래도 말릴 명분이 없었는지 순순히 물러났다.

"저, 스승님 저택에 좀 데려다줄래요? 스승님이랑 할 얘기가 있어서."

네튼의 귀에 들릴지도 모른다. 단어를 잘 고르자.

"……에레브 양 짐은 기숙사에 제가 갖다놓을게요."

"고마워요."

** ** **

"자아, 아저씨. 내가 돌아왔답니다."

"이제 말해라. 왜 빨리 복귀했는지."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어? 못해도 한 시간 정도는 지났으니 잊었을 줄 알았는데. 델라즈가 장년 치매에 걸렸기를 희망했지만 아무래도 그건 무리였던 것일까…….

"그냥, 거기 더 있기 싫었어요."

"……마법을 연구할 수 있는데?"

델라즈의 의문은 정상적인 반응이다. 나도 내가 그렇게 행동할 줄은 몰랐으니까.

"마법을 연구하는 건 물론 환영할 일이지만, 뭐라고 해야 할까……우선순위를 정했다고 해야 하나?"

"우선순위?"

"네, 우선순위. 제 목표는 엄밀히 따지면 세 개잖아요."

첫 번째는 원래 세계로 돌아가는 것.

두 번째는 서클을 복구하는 것.

세 번째는 남자로 돌아가는 것.

여기서 나는 우선순위를 정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세 가지 전부를 동시에 해내는 건 불가능하다고 봐야 하니, 현실과 타협을 했다. 할 수 있는 것부터 하고, 힘든 건 나중에 해버리기로.

마법을 연구하면 물론 첫 번째와 두 번째를, 아주 잘 하면 충족시킬 수 있겠지만, 그곳에 더 있었다가는 세 번째 항목이 뭉개졌을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 발악 중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법연구동을 이용한다면 페디넌트에게 빚을 갖게 되는 거나 다름이 없었다. 관계를 깨끗하게 청산해냈으니 더 이상 왈가왈부할 것들을 만들고 싶진 않았다.

"그중 하나를 우선 챙겨야 할 필요를 느꼈다는 거죠."

"마법보다 우선으로 하는 거면, 원래 몸으로 돌아가는 것 말이냐?"

"네."

마법은 없어도 살 수 있지만, 여자인 나로는 멀쩡히 살아갈 수 없으니까.

"……난 또, 식겁했군."

"뭐가요?"

"애들한테 들은 게 있어서 말이다."

그게 뭔데. 나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델라즈는 손사래쳐서 내 의문을 일축시켰다.

"그럼 이제, 아까 줬던 거 갖고 가라."

"방어구랑 뭐, 그런 것들?"

"그래. 난 좀 자마."

"……전부터 궁금했는데, 왜 요즘은 책 안 써요?"

델라즈가 나를 멀뚱히 바라본다.

"책보다 중요한 게 있으니까."

"예를 들자면?"

"노바를 찾아야 하지 않겠냐. 찾기 전까지는 안 된다."

"이상하네."

나는 말꼬리를 길게 늘어뜨렸다.

"노바 수색 자체는 꽤 오래됐고, 아저씨가 책을 안 쓰기 시작한지는 얼마 안 됐는데요. 왜 갑자기 마음가짐을 다르게 먹은 거에요?"

애초에 원로원의 존재 이유가 노바를 수색하기 위함이었다.

그때와 지금에 차이가 있다고 하면, 노바가 아타나시아의 친모라는 게 '명확히' 밝혀졌다는 것과, 아타나시아가 통령의 자리에 오른 것뿐.

얼핏 보면 아타나시아를 위해서 요관 수색에 열중인 것 같지만…….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냐?"

나는 다르게 판단했다.

정말 델라즈가 '아타나시아를 위해서' 집필까지 중단하고 시간과 힘을 끌어모아 사용하고 있다기에는, 어귀가 들어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내가 의식을 잃은 이후, 아타나시아와 델라즈는 함께 노바의 정보를 모으던 도중, 노바가 그려진 그림을 발견했다고 한다. 화풍이나 정황적으로나 그린 사람은 거의 델라즈로 확정이었지만, 델라즈는 기억이 나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던가.

거짓말이었다.

분명, 델라즈는 그것을 자신이 그렸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애초에 가족사진을 컨셉으로 찍었으니 '노바'가 '아타나시아의 모친'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겠지.

왜 이걸 확신하냐면, 델라즈의 기억력은 어마어마하게 좋으니까.

이 세계에는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았다. 따라서 델라즈가 책을 집필하기 위해서는 직접 손으로 써야 한다는 거다. 중간에 첨삭을 가하거나 내용을 편집하는 일 따위는 불가능하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도 델라즈는 수많은 책들을 찍어냈다. 심지어는 그 책에 들어가는 삽화까지 그려냈다. 자신이 하는 일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고, 또한 전부 기억하고 있기에 오차 또한 발생하지 않는 사람이, 자기가 그린 그림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게다가 델라즈의 화풍은 꽤나 특이했으니까.

따라서 '아타나시아를 위해서'라는 이유는 거짓. 그것 말고도 모종의 이유가 숨겨져 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나는, 그걸 알 것만 같다.

"아저씨한테 한참 전부터 갖고 있던 의문이 있어요. 왜 아저씨는 집필에 그렇게까지 집착해요?"

델라즈는 원로원이다. 원로원이지만 다른 단원들과는 거의 접점이 없을 뿐더러, 신경도 안 쓰고 책을 쓰는 일에만 열중했다.

원로원에 들어오는 자격 조건은 9위계 술식지들을 푸는 것. 보통 재능이나 실력으로는 따내지 못하는 자리다. 델라즈는 그런 자리에 올랐으면서도 소홀히 행동했다. 나는 도무지 그게 이해가 안 됐다.

"말 돌리지 말고."

"어차피 이거나 그거나 비슷한 내용이에요. 아저씨랑 각잡고 오붓하게 진지한 얘기 하려는 거니까, 말해줘요."

"……나는 노예였다."

델라즈의 암울한 과거.

"어쩌다 운 좋게 8서클이 되어 베르노바의 명예를 따냈다고는 하지만……마법에 크게 관심이 있는 건 아니었다. 누군가는 기만이라 욕하겠지. 서클을 여덟 개나 갖고 있는 놈이 마법에 관심이 없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면서."

확실히, 마법에 적성이 없는 사람들이 던지면 짱돌을 던질 법한 소리이긴 하다.

"내가 원로원이 되길 희망한 이유는 단 하나뿐이었다. 전적인 자유를 보장받기 위해서였지."

"자유요?"

"법적으로 마법사를 노예로 부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법이 그렇게 되어 있긴 했어도 나는 불안했다. 다시 또 발목에 족쇄가 걸려 내가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는 건 아닌지."

델라즈가 나를 지그시 바라본다.

"원로원에 들어왔으니, 나는 나와 같은 노예 처지였던 한 남자를 구했다."

"그 사람이 현 총장이군요?"

"그래. 내 부랄친구지. 내가 그놈을 노예인 처지에서 구해준 이유는 물론 부랄친구라서이겠지만, 하나가 더 있다."

델라즈가 검지 손가락을 들었다.

"그놈 또한 자유를 맛봐 증명해주기를 원했다. 나는 더 이상 노예가 아니라는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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