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0억을 위해 아카데미 교수가 되었다-167화 (167/247)

(EP.167)2부 064

조리된 음식들을 전부 갖고 나오니, 페일리가 별안간 환하게 미소지었다. 나도 육향을 처음 맡았을 땐 저렇게 미소지었다. 불과 몇 분 안 되어 저 표정이 뭉개지겠지만……일단 말하지 말자.

"뭐 먼저 먹을래요?"

"튀김이요!"

나는 플룻래빗 튀김을 정성스레 잘라 페일리에게 진상했다. 물론 내 접시와 아타나시아의 접시 위에도 놓았다. 우리 세 명의 표정에 점수를 매겨 평균을 나누면 딱 무표정이다. 왜냐하면 페일리는 해맑게 미소짓고 있고, 나는 차가운 무표정이며, 아타나시아는 이미지랑 맞지 않게 표정이 어두웠으니까.

뭔가 둘 다 먼저 안 먹길래 모범을 보이기로 했다. 포크로 푹 찍어 입속으로 넣으니, 시팔 이게 고기인지 음식물 쓰레기인지도 모를 법한 맛이 느껴졌다. 그냥 구웠을 때는 물기 짠 스펀지 같더니만 튀기니까 더 심각하다. 향만큼은 죽여주는데 진짜…….

……신이 밸런스를 맞춘 걸까? 혹시라도 만날 일이 있으면 물어봐야겠군…….

그래도 이미 한 번 먹어봐서 그런지 표정관리가 가능했다. 꿀꺽 삼키고 싱긋 웃으며 페일리를 바라보니, 페일리도 튀김을 입에 가져갔다.

바삭,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으, 으?"

페일리의 표정이 팍 썩었다.

"그, 브……교수, 니므……."

"진정해요. 페일리, 삼켜야 해요. 꿀꺽 넘겨요."

"브아……."

헛구역질까지 하려는 모습이 안쓰러웠지만, 네가 자초한 거란다, 페일리.

결국 페일리는 어떻게든 넘겼다. 옆을 바라보니 아타나시아도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며 경과를 확인했다.

나나 아타나시아는 물론이고 페일리 또한 서클에 변화는 없었다.

"……저, 교수님. 혹시 그거 다 먹어야 하나요?"

"한 번씩은 먹어봐야죠."

"……."

페일리 또한 세상을 저주했다.

하지만 내가 간신히 달래면서 어떻게든 꾸역꾸역 먹이니, 페일리는 네 가지 방법으로 조리된 플룻래빗 한 마리를 다 먹을 수 있었다. 결코 표정은 좋지 못했지만, 나는 최대한 괜찮다, 괜찮다, 아이 예뻐라, 페일리 최고다 하면서 시간을 흘러넘겼다.

"어때요, 페일리. 변화가 있어요?"

"……아니요."

변화가 없다, 라…….

대체 노브는 플룻래빗을 어떻게 처먹었길래 서클이 네 개에서 여섯 개까지 늘어난 걸까. 전혀 모르겠다.

페일리를 데려온 이유는, 아타나시아와 나는 걸리지 않는 조건, 즉 서클이 낮은 사람만 효과를 볼 수 있는 그런 거인 줄 알고 그런 건데……그냥 이 방법이 아니었나보다.

나는 착잡한 마음으로 페일리를 기숙사에 데려다주고, 성대로 돌아왔다. 힘이 다 빠져 카우치에 누워 있는 나를 보고, 아타나시아가 조심스레 말했다.

"……언젠가는 될 거에요."

"언젠가라……."

그게 언제인데?

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나는 성숙한 어른이었기에 참았다.

'이제 페토라르만 다녀오면 끝인가…….'

다녀와서 교회도 좀 다녀오고, 세피르와도 만나봐야 하고……할 게 많다.

페디넌트와는 무슨 이야기를 나누게 될까.

** ** **

"오랜만이군, 에레브."

"오랜만입니다, 전하."

바로 다음날 페토라르에 왔다. 이번에도 아타나시아를 대동해서, 나는 왕궁 바깥으로 나갈 수 없다는 제약이 걸렸다.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는데 웬 뚱딴지 같은 소리인지는 모르겠으나 아타나시아는 그렇게 말했다. 지금도 아타나시아는 내 뒤에 서 있다.

"아타나시아, 진전은 좀 있냐?"

"……전혀요."

"필요하다면 내 사병이라도 내어줄 수 있다."

"요관 공략은 마법사 아니면 불가능해요."

조금 무례한 말이기는 해도, 저건 진짜다. 특히나 순번이 높은 요관이라면 그 정도가 더욱 심하지.

노바를 수색하기 시작한지 정말 몇 달만 더 있으면 1년이다. 1년 동안 아무런 성과도 없었다는 건가…….

애초에 수색에 동참하는 원로원이 적다고 했으니, 딱히 이상할 것도 없군.

"바로 돌아갈 거냐?"

아타나시아가 나를 빤히 쳐다본다. 오래 있을 생각은 없긴 한데.

"이틀 정도만 있다 갈 생각입니다."

"델라즈가 내게 부탁한 것이 있다."

갑자기 델라즈가 왜 나와.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페토라르의 마법연구동을 네게 내어주라는군."

"……네?"

"일종의 거래다. 아케즈의 마법연구동의 기물을 제공해주는 대신, 페토라르의 마법연구동을 네게 내어준다. 아케즈보단 한참 못할 테지만 그거라도 있는 게 어디냐."

정신이 멍해졌다.

"가, 감사합니다."

뭐라고 말하면 좋은 건지 잘 모르겠어서 무작정 감사하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이런 곳에서 마법연구동을 쓸 수 있게 될 줄은 몰랐는데.

준비해온 게 하나도 없긴 하지만, 여기 있는 것들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그럼, 조금 오래 있어도 괜찮을까요?"

"상관없다. 그리고, 나한테 감사할 거 없다. 나를 설득한 게 내 아들이니."

페디넌트.

정말 고맙다!

아타나시아는 무언가 더 로부르크와 이야기를 나누더니, 뿅 돌아가버렸다. 마나 진짜 무지막지하게 쓸 텐데, 저러다가 다 떨어져서 황무지 한가운데에라도 떨어지면 어쩔까 걱정이다.

"밥부터 먹지."

"저, 죄송하지만……마법연구동을 먼저 가봐도 괜찮을까요?"

우선 어떤 아티팩트들이 있는지 확인해둘 필요가 있다. 오늘 당장은 아마도 페디넌트와 시간을 보내게 될 것 같으니, 우선 파악하고 페디넌트와 함께 다니면서 그것들을 어떻게 활용할지 생각해두어야 한다.

로부르크는 흔쾌히 수락했다. 로부르크를 따라 왕궁 뒷편으로 나가니, 아케즈나 로렌스만큼은 아니어도 꽤 큰 건물이 나왔다.

"왕명을 떨어뜨려놨으니, 네 요구는 웬만하면 다 들어줄 거다."

"……감사합니다."

마법연구동 안으로 발을 들였다. 마찬가지로 흰 가운 비스무리한 것을 입고 있는 연구자들이 보이고, 나는 양해를 구한 다음 아티팩트들을 이것저것 확인하기 시작했다.

내가 알고 있는 아티팩트들도 존재하지만, 내가 모르는 게 더 많다.

마법을 연구한다는 건, 마법에 대한 이해도를 높인다는 거다.

서클을 늘리는 건 마법을 많이 사용하며 마법에 대한 감을 익히는 것도 맞지만, 마법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것으로도 조건 자체는 충족이 된다고 알고 있다.

물론, 그것뿐만은 아니다. 그렇다면 연구자들 또한 서클이 높아야 정상이니까. 따라서 무언가 조건이 더 있다는 건데……그건 내가 갖고 있는 부서진 서클 여덟 개로 커버가 되길 빌어야지.

하지만 모르는 아티팩트를 뚫어지게 쳐다본다고 해서 그 기능과 원리를 알아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으음……."

"저기, 에레브 님. 이런 거 필요하세요?"

"네?"

한 연구자가 내민 책자를 확인해보니, 많은 아티팩트들의 정보가 기술되어 있다. 모르는 아티팩트는 여기서 찾아보라는 뜻인 것 같아서, 나는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진짜 별 게 다 있다. 내게 가장 친숙한 회중시계부터 시작해서, 무기나 방어구도 있다. 또한 실생활에서 범용성이 높은 기본 5원소 마법이 깃들어 있는 아티팩트 같은 것도 있다. 더럽게 비싸지만.

이거 하나하나 뜯어보면서 머릿속에 입력하다보면, 언젠가는 서클이 복구되지 않을까.

오랜 생각이다.

대충 어떤 것들이 있는지만 파악하고, 책을 갖고 내게 배정된 왕실 내의 방으로 돌아왔다. 책자를 읽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하녀가 한 명 들어와 나를 연회장 비슷한 곳으로 데려왔다.

아니 시팔, 나 연회 같은 거 필요없다니까.

내가 국빈인 건 알겠는데 다들 너무 나를 과하게 챙겨주려고 한다. 데이지는 충분히 나를 싫어할 법하니 논외이고.

하하호호 떠드는 곳에 끼어들기도 뭣해서 그냥 구석에서 술이나 마시고 있는데, 내 맞은편에 사람이 한 명 털썩 앉았다.

"오랜만이다, 에레브."

"……오랜만입니다. 왕세자 전하."

"못 본 새 말투가 꽤 딱딱해지지 않았나? 편하게 이름으로 불러주게."

그야 이제부터는 너랑 거리를 최대한 벌려야 하니까요. 이런 사소한 부분에서도 거리감을 유지해야 나중 갔을 때 수월하다.

근데 어째, 페디넌트는 살짝 언짢은 기색이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내 맞은편에 앉을 때도 그러했다. 왕세자 씩이나 되는 사람이 의자에 털썩 소리를 내며 주저앉을 리 없으니.

"저기, 페디넌트 님.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페디넌트가 나를 멍하니 바라본다. 그걸 왜 네가 모르냐는 듯한 표정이다. 내가 뭐 잘못한 게 있다……아.

'나 레즈 선언했지.'

그걸 페디넌트가 알았다면, 화가 날 법도 하다. 지금까지 자기를 이용해먹은 거라고 생각했겠지.

거래를 하자던 페디넌트의 요구를 받아들인 것도 그렇고……결코 내게 좋은 상황이라고 볼 수는 없다.

"함께 산책 좀 하겠나?"

"……부탁드립니다."

페디넌트는 천천히 일어나 내게 눈짓했다. 따라나서니, 저번에 왔던 거기였다. 수목원처럼 생긴 곳. 마찬가지로 지난 번에 앉았던 곳에 페디넌트는 앉았다. 그 옆에 나는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신히 앉았다.

페디넌트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일단 데리고 나오기는 했는데, 대체 뭐라고 운을 띄우면 좋은 건지 갈피가 잡히지를 않는다는 듯한 기색이다. 나는 그냥 침묵했다. 내가 먼저 꺼내도 될 이야기가 아닌 것 같아서.

꽃을 구경하고 있자니, 체감상 10분 정도가 흘렀을 때쯤 페디넌트가 입을 열었다.

"여자를 좋아한다고 들었다."

"……."

목소리에는 착잡함이 묻어나 있었다.

"그때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도 알고 계신가요?"

"페토라르에 시집을 갈 거냐고 학생이 물어봤다지?"

"맞습니다. 그때 상황을 무마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페디넌트는 입을 다물었다. 나 또한 내 변명이 궁색한 것임을 알았기에, 감히 참람해 입을 열기가 두려웠다.

나는 이곳에 페디넌트와의 연을 사실상 끊어버리기 위해 왔으니까.

페디넌트에게는 미안하지만, 얘는 앨버트보다 더 받아들이기 힘든 존재였다.

앨버트와 페일리 둘 다 내가 납득할 수 있는 나를 좋아하는 이유가 뚜렷히 있었다. 하지만 페디넌트는 뭔가. 그냥 내 외모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고 했다.

내가 무엇 때문에 페일리와 앨버트를 내쳤는데. 그 둘을 내친 이 상황에서 페디넌트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허황된 꿈에 지나지 않는다.

페디넌트와의 연을 끊으면, 델라즈와 아타나시아와의 관계도 '정리'할 생각이다. 물론 그 사람들은 페디넌트처럼 연을 끊지는 않겠지만, 내가 원하는 건 '여자인 에레브'와의 관계를 정리하는 거다.

그렇기에 페디넌트는 낙제점이다. 내가 여자라는 사실, 그리고 내가 아름답다는 사실만 보고 나를 좋아하기에.

"아케즈는 동성애에 관대한가? 이성애와 마찬가지로 평범한 시선을 받는가?"

"……아닙니다.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압도적입니다."

애초에, 내가 나 좋다는 여자애들을 멀리 하는 이유가 무엇이었던가.

걔네랑 나는 이어질래야 이어질 수가 없었던 관계이기 때문이다. 나는 여자이기 때문에. 아무리 내 정신은 남자라고 주장해봤자 씨알도 먹히지 않을 것임을 나는 알고 있기 때문에.

내 몸이 여자가 아니었다면 나는 페일리와 교제했을 것이다. 장담해도 좋다. 어여쁜 여제자가 내 등을 밀어주겠다는데 흑심이 안 드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그냥 고자 새끼다.

"그렇다면."

페디넌트의 음색은 싸늘했다. 하지만 폭풍전야와도 같은 열기를 머금고 있었다.

"나와 엮이는 것을 부정하기 위해, 그대의 평판까지 시궁창으로 떨어뜨렸다는 것이군."

"……."

"하나 묻고 싶다. 나와 이어질 수 없는 뚜렷한 이유가 존재하는가?"

마지막 질문이었다.

저 질문에 '그렇다'라고 대답하든, '아니다'라고 대답하든, 내가 페디넌트와 이어지고 싶지 않아한다는 것은 이미 확정된 사실이기 때문에.

"……예."

"무엇인지는 묻지 않겠다. 그저, 조금 씁쓸하군……애초에 그대는 나를 남자로 보지 않았던 거야."

물론 없다. 페디넌트에게 무언가를 요구하기 위해 그런 거래를 했을 뿐이다.

"……그대는, 사랑에 아예 관심이 없구나."

"……."

"남자를 좋아하지도, 여자를 좋아하지도 않는다. 그대의 동성애 발언은 그대를 '사랑을 할 수 없는 몸'으로 만들었다."

남자를 좋아한다면, 여자를 좋아한다고 당당하게 말했을 리가 없다.

정말 여자를 좋아했다면, 페디넌트와 그런 내용으로 거래를 했을 리 없다. 그건 일국의 왕세자를 철저히 기만하는 행동이니까. 지금 이 상황도 크게 다를 건 없지만……결 자체가 다르다. 페디넌트가 받아들이는 게 다르겠지.

"제가 좋으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첫눈에 반했다는 것으로는 부족한가?"

첫 만남에 했던 말과 아예 차이점이 없어서, 나도 모르게 쓴웃음이 지어졌다.

"부족하지 않습니다. 충분합니다."

"……나는 집착이 좋지 못한 것이라 배웠다."

나는 가만히 경청했다.

"내게는 어머니가 없다. 내가 아직 소년이었을 시절 고별하셨지.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아바마마의 집착 때문이었다."

"집착……이요?"

"그래. 어머니는 6서클 마법사이셨다. 사실상 페토라르에서 가장 강한 마법사였지. 아바마마는 뭐든지 정치적인 이익을 보는 방향으로 행동하시는 경향이 있으셨고, 어머니에게 청혼해 식을 올렸다."

페토라르를 지금까지 두 번 와봤지만, 로부르크의 아내는 만나보지 못했다. 이런 이유가 있었던 건가.

"아바마마는 어머니에게 집착하셨다. 아름다운 6서클 마법사라는 사람은, 페토라르의 어딜 가도 볼 수 없었으니까. 아케즈나 로렌스보다 마법적인 부분에서 훨씬 밀리는 페토라르였기에, 아바마마는 어머니와 피를 섞어 마법에 적성이 있는 후계자를 만들고자 하셨다."

페디넌트가 자기를 가리켰다.

"그게 나지."

"……."

"하지만 나는 남자였고, 마법에 적성이 전무했다. 유능한 2세를 만드는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아바마마는 아이를 더 만들자고 어머니에게 제안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마법적인 부분과는 다르게 몸이 약하셨고, 아이를 한 번 더 낳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셨다."

그래도, 하고 페디넌트는 말했다.

"아바마마는 강권하셨지. 왕자이지만 마법에 적성이 없는 나는 거들떠보지도 않으시고, 결국에는 어머니와 관계를 맺으셨다. 임신까지는 하셨지만, 결국에는 몸이 버티지 못해 돌아가셨다."

"……."

"아바마마의 마법 분야의 강함으로의 집착이 6서클 마법사를, 아내를 죽였으며 하나뿐인 왕자를 들러리로 만들었다. 아바마마께선 자신의 실수를 바탕으로 결코 집착이라는 행위를 좋게 보실 수가 없으셨다."

페토라르는, 아예 무인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나라가 아니었다. 마법 분야에서는 아케즈나 로렌스보다 못하고, 무인 쪽으로는 탁큰보다 못한 나라였지. 어느 한쪽을 고르지 왜 그렇게 우유부단하게 나라를 운영했나 싶었는데…….

"그 후로는 마법에 대한 집착마저 끊어버리시고, 나에게 애정을 쏟기 시작하셨다. 이제는 세상에 남은 하나뿐인 혈육이기도 하며, 어머니와 내게 속죄해야만 했으니까. 그때부터 나는 왕자가 아니라 왕세자가 되었다. 우리 레인 가(家)는 그때부터 무예를 익혀나갔고, 나라의 근본 또한 무인으로 바꿔나가길 희망했다. 지금은 바뀌는 과정이지."

마법 강대국을 노리다가, 무인 쪽으로 노선을 비튼 것이었다.

"내 존재 자체가 하나의 집착에서 태어난 육화(肉花)와도 같기에, 나는 나 같은 인간을 만들어낸 집착을 결코 좋게 볼 수 없었다. 그리고, 나라는 사람에 대한 것마저도."

"……."

"아바마마께 그대를 보게 해달라 요청해드린 것은, 사실상 철이 든 후 처음으로 아바마마께 부탁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나라를 강하게 만들 수도 있는 기회를 버려가면서까지 나를 위해 그대를 데려온 거다."

페디넌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내게 등을 보였다.

"나는 그대에게 집착하지도 않을 것이며, 원치 않는 사랑을 강요하지도 않을 것이다. 일국의 왕세자라는 지위를 이용해 아녀자를 핍박하는 것은 무인으로서의 도리가 아니니."

"……."

"포기하겠다."

페디넌트는 앞으로 성큼 발을 내딛었다. 무겁지만 천천히, 한 발자국씩.

"마법연구동은 전적으로 자유롭게 사용해도 된다. 그리고, 미련은 아직 남아 있어 집착이라는 불씨를 키울 가능성도 있으니, 나는 더 이상 그대와 얼굴을 마주하지 않겠다."

"……."

"아바마마께는 알리지 않는 게 좋다. 내 사랑이 식어버린 것으로 입을 맞추도록 하지."

그리고, 페디넌트는 수목원에서 나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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