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62)2부 059
** ** **
"교주는 아직도 움직임이 없어?"
"네, 누님."
"계속 감시해. 거기서 잠을 자진 않을 거 아냐."
"그야 교회에서 잠을 자면 불경하니까 당연한 소리이지만요, 누님."
세피르를 누님이라고 부르는 남자, 레크가 땅이 꺼져가라 한숨을 쉬었다. 세피르는 울컥했으면서도 인내했다.
"교주 얼굴도 모르는데 이러고 있는 게 소용이 있긴 있어요?"
교회를 감시하기 시작한지 정확하게 이틀째. 세피르는 교주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단원들을 넓게 펼쳐 교회를 감시하는 중이었다.
"생각을 해봐. 교주랑 신도의 차이가 뭐야."
"……계급이요?"
"그래. 교주와 신도의 차이는 황제와 신민의 차이라고 해도 틀릴 게 없어. 아케즈뿐만이 아니라 대륙 전역에 퍼져 있는 교회이니 가능성 또한 높아."
레크가 뒷머리를 긁적였다.
"……교주가 물론 다른 신도들보단 높긴 하겠지만요, 결국 여신보다는 못한 존재이잖아요. 여신을 대리하는 자라고는 해도 결국에는 인간인걸요. 그렇게 크게 차이가 날 것 같진 않은데……."
"그래도 이것 말고는 방법이 없어. 평범한 신도들과는 몸에 걸친 게 다르거나 귀티가 흐르는 사람을 파악하고 보고해."
레크는 결국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방에서 나갔다. 세피르는 레크가 방에서 나간 걸 확인한 후 다시 고민에 빠졌다.
'……이틀 동안 빠짐없이 감시했는데 안 나온다 이거지?'
교회에는 입구가 두 곳 있었다. 그 두 곳을 제외한 다른 통로는 사람이 다니는 게 불가능했기에, 세피르는 단원 여럿을 시켜 두 통로를 감시해 교주의 동향을 파악하라 명령했지만, 별 소득이 없었다.
'이래선 안 돼. 교회와의 전면전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니까 어떻게 교주의 생김새만이라도 파악을 해야 되는데…….'
교회와의 전면전으로 확대된다면 많은 신도를 거느리고 있는 교회가 확실히 우세했다. 교주에게 맹목적인 충성을 보이는 광신도들도 여럿 존재하니 선동 따위와 같은 얕은 수작은 아예 통하지 않으리라.
그래서 세피르는 교주를 직접 공략하기로 마음먹었지만, 아예 코빼기조차 보이질 않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발상을 전환해야 할 필요가 있어.'
전 대륙에 존재하는 단 하나의 종교라는 점에서 신도들이 얼마나 독실하며 신실한지는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간다면 세브레의 필패였다. 어떻게든 교회의 세력을 줄일 필요가 있었다.
'……세브레와 교회의 차이점.'
세브레는 음지에서 활동하는 약소단체이며, 교회는 양지에서 활동하는 강대단체였다. 하지만 장점이란 으레 보는 관점을 바꾸면 단점이 되는 법. 세피르는 한 가지 계책을 고안해냈다.
'어디에든 퍼져 있고, 광적인 신앙심을 보이는 신자들이 많다는 건 대륙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어. 그렇다면……교회의 평판을 떨어뜨릴 수도 있지 않을까.'
개인은 단체에 소속되는 그 순간부터 '단체의 일부'가 되기에 무언가 잘못을 저지르면 책임 또한 단체 전체에게 넘겨지는 일 또한 부지기수였다. 교회에 충성하는 신자인 척하며 무언가 사고를 치면, 교회의 평판을 떨어뜨릴 수도 있지 않을까?
'예를 들자면……삼성교를 울부짖으며 범죄를 저지른다든지, 삼성교에서 납품하는 물건들에 하자가 있다든지.'
전자는 일단 불가능하다고 봐야 했다. 광신도들을 회유하거나 포섭하는 것은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소리이고, 그렇다고 해서 세브레의 단원을 광신도로 탈바꿈시켜 흉내를 내게 하기엔 걸리는 점이 너무나도 많았다.
따라서, 세피르는 두 번째 방법을 시도하기로 마음먹었다.
'삼성교에서 납품하는 물건은 마나수정과 각종 아티팩트들. 이틀 동안 감시했으니 확실해. 둘 다 하루 단위로 유통해야 하는 물건들이야.'
그렇다면, 이제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아티팩트는 망가지면 확실히 티가 나기에, 유통 자체가 막힐 가능성이 있었다. 소거법으로 남은 것은 마나수정. 마나수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도 교회에서 감추며 불분명하지만, 평범한 액체와는 격이 다르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그렇다면, 마나수정에 무색무취의 무언가를 섞어놓는다면──일이 잘 풀릴지도 몰랐다.
세피르는 즉시 레크를 불렀다. 레크는 볼멘소리를 내뱉으면서도 방에 들어왔다.
"전부터 궁금했는데요, 누님. 이 건물은 대체 어떻게 산 겁니까? 로렌스에서 넘어오셨다면서요."
"황궁에서 훔친 걸 팔았지."
"……."
레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 년은 답이 없다.
"아무튼, 왜 불렀어요?"
"마나수정이 유통되는 과정, 알고 있어?"
"그야 이틀 동안 감시하며 두 번 확인했으니 알고 있죠."
레크는 마나수정이 '교회 바깥으로 나온 이후'에 어떻게 유통되는지 설명했다.
우선, 마나수정은 커다란 짐수레에 실려 하루에 적으면 수십 개에서 많으면 수백 개가 나온다. 마나수정은 곧바로 시장에 유통되지 않고 먼저 개수를 정확하게 확인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 이후로는?"
"그걸 어떻게 압니까. 우리는 하루 종일 교회 바로 앞에서 죽치고 있는데요. 그게 어디로 향하는지는 모르죠."
"교회에서 마나수정을 꺼내오는 사람과, 개수를 확인하는 사람이 동일인물이야?"
레크가 멈칫했다.
"……아닌 걸로 기억해요. 분업이 되어 있는 것 같았어요."
"그럼, 과즙을 섞어버려."
세피르는 히죽 웃었다.
"색이 옅은 것들 있지. 사과나 배 같은 거. 그 과즙을 마나수정에 넣어버려."
"그런 짓을 하면……."
"마나 수정이 아니라 음료가 되어버리겠지. 모르긴 몰라도 효과가 조금이라도 줄어들지 않을까?"
레크는 떨떠름하게 말했다.
"하지만, 무슨 수로요? 사람이 지키고 있다니까요."
"교회는 평소에도 스스로가 선함을 주장했어. 범죄자를 회개시키거나 싸움을 중재하는 일 또한 교회에서 하는 일이지."
교회의 광신도들은 교회가 성스럽게 보이기 위해 각종 선행들을 행하고 다녔다. 범죄자에게 진심을 전해 울려 회개시키거나, 길거리에서 일어난 싸움, 혹은 분쟁을 무마시키거나, 심지어는 재판에도 개입하기도 했다.
"……그런데요?"
"너희끼리 패싸움 좀 해볼래?"
레크가 표정을 팍 썩혔다.
다음날, 교회 근처에서 사람 여러 명이 패싸움을 벌이는 사건이 일어났다. 칼부림까지 일어난 대사건이었으며, 마나수정의 개수를 세던 사람도 차출되어 현장을 정리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세피르 휘하의 단원들 여러 명은 과즙을 수십 개의 마나수정에 섞었다.
"어떻게 됐어?"
"대충 다 섞은 것 같긴 한데, 장담은 못 해요. 몇 개 빠졌을지도 몰라요."
"애들은?"
"다행히 잡혀간 애들은 없고, 다 훈방조치 됐어요."
칼부림까지 났는데 훈방 조치가 된 게 신기하네요, 하고 레크는 말을 이어갔지만, 세피르는 그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있었다.
'교회를 건드리는 건 방해가 들어오지 않네?'
에레브와 조금이라도 엮일 구실을 만들어내면 자그마치 통령까지 동원해 방해공작을 펼치던 놈들이, 교회를 건드릴 때는 방해하지 않았다. 이것이 무엇을 뜻할까.
'걔네도 교회 편이 아닌가보네. 교회의 편이 아니면서 에레브 님을 도울 세력……양지에서 활동하는 경우에는 교회를 적대하기란 불가능하니, 음지에서 자그마치 통령을 동원할 수 있는 그런 세력이, 어디가 있을까.'
세피르는 고심 끝에 결론을 내렸다.
'유력 가문.'
아케즈에서 입김이 센 세력들을 나열하자면, 통령과 원로원, 그리고 유력 가문과 아카데미의 총장 정도였다. 지금까지 보수적으로 나온 원로원이 교회를 건드릴 리가 없으니, 나머지는 유력 가문과 아카데미의 총장이었다.
그리고, 아카데미의 총장 또한 교회를 적대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아카데미의 총장은 학생들을 지배하는 사람이 아니라 학생들이 엇나가지 않게 바로잡고 아카데미를 운영하는 사람이었으며, 학생들 중에서도 신도가 있을 것이기에 적대할 수 없었다.
'……아니, 잠깐. 교회와 척을 지지 않더라도 그냥 교회를 도와주지 않는 것일 수도 있잖아?'
점점 더 오리무중으로 빠져들어가는 사고에, 세피르는 머리를 감싸쥐었다.
과즙을 섞어넣은 마나수정이 시장에 유통된 후, 세피르는 단원을 시켜 마나수정을 여러 개 사오라고 시켰다.
"열 개 사왔어요."
"잘 했어."
"근데요, 누님. 교회 놈들이 수레를 잠깐 교회 안으로 다시 가지고 들어갔다가 나오더라고요? 길게는 아니고 한 5분 정도요."
"5분 정도면 상관없어."
대체 5분 동안 뭘 해낼 수 있다는 말인가? 세피르는 관심을 꺼뜨렸다.
세피르는 마나수정을 전부 개봉한 다음, 단워들에게 마시라고 시켰다. 마나수정을 복용한 단원들은 하나같이 대답했다.
"……뭐 다른 게 없는데요?"
마나수정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는 것.
과즙을 섞었으니 하다못해 조금 시거나 단 맛이 남아 있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마나수정에서는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도 열 명 전부.
"……너희, 과즙 제대로 섞은 거 맞아?"
"아, 맞다니까요. 왜 이런 걸로 거짓말을 하겠어요."
"……."
그렇다면, 마나수정이 새것으로 교체가 되었다는 말인가.
하지만 도대체 언제?
'그 5분 사이에 수십 수백 개를 교체했다고?'
세피르는 충격에 빠졌다.
'매일 납품하는 양이 달라지니 하루에 생산해낸 전부를 꺼내오는 건 분명해. 그렇다면 여유분이 없으니 교체하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건데……대체 어떻게 마나수정을 새것으로 교체했지? 광신도들에게 그런 힘이 있을 리는 없고……교주?'
교주.
여신을 대리하는 자.
'교주는 대체 뭐 하는 사람이지?'
이틀 동안 교회에서 나오지도 않으며, 어떻게 생긴 사람인지 아무도 모르며, 마나수정 수십 수백 개를 5분만에 새것으로 교체할 능력이 되는 사람.
'이건 마치, 사람이라기보단…….'
상식적으로 사람이 해낼 수 없는 일을 해낸다면.
'……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