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0억을 위해 아카데미 교수가 되었다-149화 (149/247)

(EP.149)2부 046

"배는 채웠는데, 또 뭐 하고 싶으신 거 있으세요?"

"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불현듯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저, 저한테 맞는 무기랑 방어구 맞추고 싶어요."

"……네에? 장검도 못 드시잖아요."

"단검이라면 그럭저럭 가능하지 않을까요?"

내 몸이 아무리 허약하다고 한들 단검 하나를 못 들겠어?

내 요구를 거절할 명분도 이유도 없었기에, 일단은 공방에 들렀다. 아까와는 다르게 매캐한 연기가 코를 간질여서 눈물이 찔끔 나온다. 괜히 구역을 나눠놓은 게 아니로군. 평생 공방이랑 담을 쌓고 사는 사람도 있을 테니, 섞어놓기는 무리인 듯하다.

하지만 이곳은 공방이라기엔 차라리 하나의 공장이라고 불러야 맞는 게 아닌가 싶다. 천장에 얼기설기 얽혀 있는 쇠파이프부터, 저 아래에서 쇠를 두드리는 깡, 깡, 하는 소리까지. 사람이 기계로 대체된다면 그야말로 공장 그 자체다.

좁은 통로를 지나니 새하얀 빛이 하늘에서 내려쬐었다. 눈을 어느 정도 빛에 적응시키자 보인 것은 곰.

"……."

아니.

사람.

곰 같은 사람.

사람 같은 곰……? 모르긴 몰라도 사냥당하기 딱 좋게 생긴 짐승과 사람 사이의 무언가였다. 하얀 가운을 걸치고 있지 않았더라면 정말 곰인 줄 알았을 거다.

"왜 또 왔어?"

"이분, 무기랑 방어구 좀 맞추러. 어설프게 할 수는 없잖아."

"새하얀 백발……."

곰……남자가 내 머리카락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 그 시선이 조금 고까워서, 나인의 뒤로 숨어버렸다.

"에레브 님, 죄송해요. 얘가 백발만 보면 정신을 못 차리는 사람이라."

"대체 왜요?"

"몰라요. 자기 취향이라던데 별로 알고 싶진 않아서 자세히 안 물어봤어요."

동감한다는 의미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헛, 하고 정신을 차리더니 나인 뒤에 숨어서 고개만 빼꼼 내밀고 있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유령이라고 합니다."

"에레브, 에요."

이름이 유령인 게 아니라 아마도 별명이겠지. 별로 특이하진 않다. 나도 모험가였을 시절에는 별에 별 미친 놈들을 다 봤으니까. 자기 이름이 바퀴벌레라고 소개하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있는가? 잠깐 동료로 같이 일했는데 부를 때마다 바퀴야, 바퀴야, 하고 부르느라 정신이 나갈 뻔했지.

"에레브 양. 원하는 무기가 따로 있나요?"

"단검이요."

"단검이라……."

유령이 턱을 쓰다듬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여기는 공방이 아니라 연구실에 가깝습니다. 따라서 무기나 방어구를 맞추시기 위해서는 공방으로 가는 편이 낫습니다만……."

유령이 나인을 쏘아본다.

"아마 나인이 원하는 건 그런 단순한 게 아니겠죠. 마도구를 보여드리겠습니다."

"마도구요?"

"정확하게는……에레브 양이 개발했던 광선검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기 시작한 건데요."

유령이 어딘가에서 여러 단검들을 꺼내와 나열했다.

"에레브 양이 만들어서 모험가들에게 유통했던 건 일정 마나를 흘려야만 작동하는 물건이었습니다. 맞나요?"

"네."

"즉, 시전자의 마나를 사용해야 하기에 특정 상황이 아니라면 효율 면에서는 결코 좋은 무기가 아니었습니다."

이건 나도 감안을 했던 부분이다. 전쟁을 빨리 끝낼 계획으로 배포했던 거라 크게 신경을 쓰지도 않았고.

무인이라고 해서 마나가 없는 게 아니다. 무인의 몸에도 마나는 돈다. 다만 무인은 마나를 사용해 무(武)를 단련하는 방법을 익혔을 따름이다. 마법사는 마나와는 별개로 마법에도 적성이 있어야 하는 거고.

"그래서, 아예 마나를 무기 속에 내장해서 소모할 수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개발 중인 무기입니다."

나는 멍하니 설명을 듣다가, 유령의 손을 잡았다.

"에, 에레브 양……?"

"그게, 가능해요?"

나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나는 터져버리기 일보직전이었다.

"아직 완벽하진 않지만, 개발 중입니다. 마나수정과 금강을 연구한 끝에 겨우 시품이라도……만들었습니다."

"……마나수정을 연구해요?"

"예. 아실지 모르겠지만 마나수정을 만들어내는 곳은 아케즈의 삼성교 본회입니다. 저는 그 제품을 수십 개에서 수백 개씩 납품받아 연구하죠."

그러니까, 이거다.

요컨대 유령은 건전지를 발명해냈다는 소리였다.

기존에 존재하던 마도구들은 '마법'이 깃들어 있는 것이라 마나와는 관계가 없다. 마나와 마법은 엄연히 다르다. 회중시계고 나발이고, 죄다 시전자가 직접 마나를 불어넣어야만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근데 여기서, 마나를 내장해서 건전지처럼 사용할 수 있다면?

마나가 아예 몸에 돌지 않는 사람들도 그런 마도구를 이용할 수 있게 된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스태프 같은 곳에 활용한다면 보조배터리 같은 느낌으로 마나를 몸에 충전할 수도 있겠지. 어디까지나 이 연구가 잘 풀린다는 가정 하에 말이지만, 그래도 이게 어디냐.

마나는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삶의 질이 떨어진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마나를 사용한다는 것은 결국 시간을 사들여 기술을 구매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비어버린 마나를 채우는 방법은 오로지 수면밖에 없기에, 마나를 사용해서 뭔가를 이루어냈다고 하더라도 수면으로 낭비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엇비슷하다. 마나수정은 제외. 걔는 돈이 드니까.

물론 유령이 발명하는 것도 돈이 드는 건 똑같지만, 현대인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겠지. 왜 보조배터리가 필수적인지. 마나를 쓸 필요가 없는데 넘쳐날 때 충전해놓고 나중에 쓸 수도 있다는 거다.

이 얼마나 획기적인가.

내 머리는 말 그대로 터져버리기 일보직전이었다. 왜냐하면, 이 기술이 요관을 공략하는 데 있어 크나큰 장점으로 다가올 테니까.

나는 유령의 손을 꾸욱 눌렀다.

"완성품이 만들어질 때까지 얼마나 걸릴까요?"

"사실, 최근에는 별다른 진전이 없습니다. 아케즈에서 만드는 마나수정의 총량이 줄어서 말입니다."

"그걸 늘린다면?"

유령이 멈칫했다.

"……얼마나 말입니까?"

"지금은 얼마나 납품받는데요?"

"한 달에 300개입니다."

달리 말해 하루 10개 남짓.

"그 배로 늘려줄 수 있어요. 두 배, 세 배,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양으로."

"……그게 가능하십니까?"

불가능할 이유가 없다.

모락스는 내게 교리를 알려주고선 언제 한 번 찾아오라 말했다. 스스로를 충실한 충복이라고 가리켰으니 나를 초대한 것 또한 교주이겠지. 델라즈와 아타나시아에겐 미안하지만 '아케즈의 영웅'이라는 간판으로 압박하면서 자금을 쏟아부으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

마나수정의 재료고 나발이고 하나도 모르지만, 가능하겠지. 가능할 거다. 가능해야만 한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알겠습니다. 그래도 무기와 방어구는 챙겨가서야 하니 골라주세요."

"얘네 차이점이 있나요?"

"각 원소가 하나씩 들어가 있습니다."

나는 망설임없이 검파가 붉게 마감되어 있는 검을 골라잡았다.

"이거 어떻게 쓰나요?"

"……그거는 조금 위험합니다. 차라리 녹색이나 청색을 고르시는 편이."

"전 이게 좋은걸요. 걱정 마요. 제가 이거 쓰다가 다쳐도 여기에 치료비를 청구하는 일은 없을 거에요. 그래서 사용 방법은요?"

"코등이를 왼쪽으로 돌려보세요. 돌리자마자 손을 떼셔야 합니다."

유령의 말대로 코등이를 왼쪽으로 회전시킨 후 손을 바로 떼니,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검신에 불이 붙었다.

"……."

짙은 먹색으로, 무채색이기를 주장하던 내 여생에서 불꽃이 피어올랐다.

불길은 언제나 내 곁을 지키고 있었다. 마법사로 살며 어떤 마법을 가장 많이 사용했냐고 물으면 당연히 푸에고라고 대답할 수 있을 정도로, 나는 푸에고를 애용했다.

이 불길은 어디까지 유지될지. 얼마 못가 픽 꺼져버릴지, 아니면 영원토록 내 곁에 남아 앞길을 밝혀줄 수 있을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내가 바라보는 것은 나의 것이 아니라 내 것으로 만들어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에.

겨울은 추웠고.

나는 설녀였으며.

푸에고는 불이었고.

불은 따뜻했다.

나는 따뜻함을 느끼고 있다.

이 따뜻함이 무엇을 의미할지, 앞으로 살아가면서 천천히 알아보자.

"……푸에고."

"예. 푸에고랑 접목시킨 단검입니다."

검신에서 노랗게, 붉게 일렁거리는 불길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내가 직접 쓰는 푸에고는 화력을 몰아넣지 않은 이상 뜨겁지 않았는데, 얘는 뜨겁다. 코등이가 둥글면서 조금 두껍고 넓은데,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사용자의 손이 화상을 입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다.

"코등이, 재질이 뭔가요?"

"열전도율이 낮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런가요……."

애써 미련을 버리고 시선을 치웠다. 코등이를 다시 오른쪽으로 돌리니 불길 또한 멎었다.

"에레브 양."

"네?"

"명심하셔야 합니다. 검에서 타오르는 불길은 결코 에레브 양의 것이 아닙니다. 주의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불에 오래 노출시킬수록 온도가 가파르게 올라가니 이 점, 부디 유의해주세요."

아무것도 모르는, 세상에 갓 태어난 애를 타이르는 느낌이라 나도 모르게 풋, 하고 웃음이 나왔다.

"이거 녹진 않죠?"

"장담해드리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뭐……애초에 단검이니까요."

검에 불을 붙일 일은 어지간해서는 없겠지. 있더라도 오래 유지될 리가 없었기에, 문제는 없다.

방어구는 간단한 걸로 맞췄다. 튼튼한 사슬갑옷. 장점을 물으니 얘는 쿠폴트라는 마법이 부여되어 있어서 마나를 흘리면 실드처럼 쓸 수 있다고 한다. 시험삼아 칼로 그어봤더니 자국도 안 남았다.

쿠폴트. 분명 강하게 타격하는 마법으로 알고 있었는데, 강하게 타격하는 게 아니라 일단 단단하게 강화를 하는 마법인가. 마법을 쓸 줄 모르는 사람들을 겨냥한 제품인 것 같다.

아까부터 계속 생각한 건데, 이 사람 엄청 유능한 것 같다. 이렇게 커다란 곳을 혼자 쓰는 것도 그렇고……이런 사람이 아군이라니 다행이군. 여차하면 써먹을 수 있어서.

유령에게 허리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진심을 담아서. 유령은 그런 나를 보더니 몸이 굳었지만, 그것까지 내가 알아줘야 하는 건 아니었으므로 나인을 데리고 빠져나왔다.

"에레브 님."

나는 굳이 대답하지 않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새까맸다. 밤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다신 여기 올 일 없게 만들어야겠다.

"이런 말씀 드리기 정말 죄송하지만……."

"하세요."

"……거기 부여되어 있는 마법은, 에레브 님의 것이 아니에요. 그러니, 화상입는 일이 없게 조심하세요."

나는 단검을 허리춤에 멨다. 이 벨트 또한 모험가 풀셋 중 하나로, 유령에게 받았다. 이렇게 보니 정말 몇 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네.

시선을 내렸다. 하늘보다는 차라리 바닥이 조금 더 희었다. 까맣게 내려앉은 재들이 길을 더럽히고 있었다. 머리를 툭툭 건드려보니, 내 머리에서도 검은 부스러기 같은 게 떨어졌다.

시선을 올려 정면을 바라보았다. 지금 표정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는 죽어도 싫었으므로.

"네."

대답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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