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0억을 위해 아카데미 교수가 되었다-128화 (128/247)

(EP.128)2부 025

에레브가 서류를 붙이고 병동으로 돌아간 뒤, 아카데미에서 에레브의 뒷꽁무니를 시선으로 좇던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의 주제는 당연히도 에레브였다.

"교수직 그만두신 거 아니었어?"

"여기, 강의를 한다고 쓰여 있는데."

한 학생의 의문에 다른 학생이 게시판에 붙여진 종이를 떼내어 읽었다.

그들의 눈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분명히 종이에는 강의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학생들이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교수 복직하신 건 아닌 것 같은데. 전(前) 교수라고 적혀 있잖아."

"그럼 대체 뭘 강의하신다는 거지."

"인생 강의라고 적혀 있는데…."

학생들은 대체 인생을 강의한다는 게 무슨 뜻인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마법 실력의 증진만을 위해 배움을 갈망하는 아카데미의 학생 신분의 마법사에게 있어서, 이 글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파악할 수 없었다.

그들은 뒤늦게 에레브가 사라진 정문을 바라보았지만,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다.

학생들은 아쉬운 마음을 숨기지 않고 표정에 여실히 드러냈다.

에레브가 아카데미에 방문했었다는 소문은 불과 두 시진도 지나지 않아 아카데미 전체에 퍼졌다.

개중에는 에레브가 기숙사로 돌아온 것으로 착각하고 에레브의 방 앞에서 기다리는 학생마저 나올 정도였다.

이에 대한 학생들의 의견은 두 개로 나뉘었다.

첫 번째.

"인생을 강의한다고 하셨으니, 지금까지 보고 배운 것들을 모두 가르쳐주시려는 게 아닐까? 꼭 그게 마법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도 말이야."

꼭 그것이 마법과 관련된 지식이 아니더라도, 고위 마법사의 인생 자체를 답습하는 것에 열중하는 학생들도 존재했다.

대체로 낭설에 불과했지만, 서클 개수에 목을 매는 학생들이기에 할 수 있는 사고방식이었다.

이들은 종이에 적혀 있는 대로 내일 기필코 강의에 참여하겠다며 투지를 불태웠다.

두 번째.

"강의라는 걸 아무나 해도 되는 거야? 아무리 전직 교수라고는 해도 지금은 아닌데, 심지어 듣기로는 절대로 교수직 그만두지 않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하시는걸? 하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으셨어."

이들은 에레브의 지난 발언을 문제로 삼았다.

무책임하게 교수직을 관둔 것과 아무리 나라의 영웅이라 하더라도 이런 부분에서 특례를 받으면 안 된다는 비판을 일삼았다.

이들의 말에는 논리가 있었으나 대부분의 학생들은 공감하지 못했다.

결국, 학생들의 의견이 또 평행선을 달렸다.

이들의 시선은 또 다시 에레브가 직접 가르치던 학생들에게로 향했다.

마침 페일리가 밥을 먹기 위해 기숙사에서 나오는 것을 본 학생들이 페일리에게로 달려가 물었다.

"설녀님이 교수로 오신──"

"교수님께서 복귀하신다고?!"

학생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페일리가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소리쳤다.

질문한 학생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필사적으로 내저었다.

페일리는 눈 앞의 학생의 고개가 양옆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지 못하고 남자기숙사 쪽을 향해 달렸다.

그녀는 아무런 제지도 당하지 않고 건물 내로 들어갈 수 있었다.

남학생이 여학생기숙사에 들어가는 건 엄격히 금지되지만, 여학생이 남학생기숙사에 들어가는 건 암묵적으로 허용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3분 정도가 흐르고, 페일리는 어째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앨버트를 대동한 채로 건물에서 나왔다.

아직까지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앨버트를 쏘아보며 페일리가 일갈했다.

"교수님께서 오신다니까!"

"뭐, 에레브 교수님이?"

그제야 앨버트가 정신을 차리고 소문의 진원지를 찾았다.

그때부터 5분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두 사람은 게시판 앞에 서 있었다.

앨버트가 종이를 읽어내려갔다.

"에레브 전 교수의 인생 강의. 자유 수강, 성적에 영향 없음. 관심 있는 사람은 내일 오후 2시까지 아카데미 훈련실로."

"앨버트, 너는 갈 거야?"

"당연히 가야지."

페일리와 앨버트가 결의를 다졌다.

하루에 한 번은 꼭 같이 밥을 먹으며 대화를 나눈다고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밥을 먹는 것이 주체였기에 그리 많은 대화는 나누지 못하는 둘이었다.

에레브가 정상적으로 활동한다고는 하지만, 명목상으로는 환자인 것이 문제였다.

환자의 휴식을 길게 방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교수님께서 이쪽으로 오시는 거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게 아닐까.'

둘은 기적적으로 정말로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의 진심을 눈빛으로 교환한 뒤, 다음날, 에레브의 모습을 아카데미에서도 눈으로 보겠다고 다짐하며 각자 기숙사로 돌아갔다….

"아, 밥."

페일리는 식당으로 향했다.

**

이튿날 아침, 페일리가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앨버트를 제외하면 딱히 친구라고 할 법한 사람이 없는 그녀였기에, 그녀는 혼자 묵묵히 숟가락을 들 뿐이었다.

그것도 잠시, 누군가의 발소리가 점점 페일리에게로 가까워졌다.

페일리가 고개를 들자, 접시를 들고 있는 앨버트가 있었다.

앨버트는 말없이 페일리의 건너편에 앉았다.

이 또한 어느 정도 일상으로 자리잡은 일이었다.

"몇 시였지?"

맥락이 없는 페일리의 질문.

하지만 앨버트는 곧바로 대답했다.

"두 시."

페일리가 벽에 걸려 있는 시계를 확인했다.

지금이 여섯 시라는 것을 깨닫자, 페일리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무언가 고민을 하는 듯했다.

"왜 그래?'

"좀, 시간이 애매한데. 우리가 병동 찾아가는 게 한 시쯤이잖아."

"그렇지?"

"어차피 교수님이 오실 거면, 시간도 애매한데 그냥 여기서 기다리는 게 낫지 않을까 해서."

앨버트가 시간을 가늠했다.

에레브는 점심을 꽤 늦게 먹는 사람이었다.

열두 시 정각에 딱 맞춰서 가봤자 에레브가 자고 있을 때가 종종 있었기에, 둘은 시간을 살짝 뒤로 밀었다.

그게 한 시였다.

한 시, 에레브가 두 시에 강의를 하는 것, 즉 못해도 한 시 반에는 병동에서 발을 뗄 것을 고려하면 참 애매한 시간대였다.

어차피 자신들이 가봤자 곧바로 아카데미로 돌아올 것이 아닌가?

언뜻 생각하면 효율이 엉망이라 그저 아카데미에서 기다리는 게 낫지 않겠냐는 의문으로 치부할 수 있는 말이었지만, 앨버트의 생각은 달랐다.

'도전인가!'

에레브가 마지막으로 교수 노릇을 한지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공원에서 사람들 모아놓고 마법사의 정의를 설파한 것은 수업으로 쳐주기 어려우니, 사실상 반년이 넘은 것이었다.

여기까지는 아무런 문제도 없지만, 앨버트가 신경을 쓰는 것은 바로 에레브의 옷차림이었다.

강의를 할 때면 어김없이 로브를 두르는 에레브였다.

그리고, 에레브에게는 총 세 개의 로브가 있었다.

델라즈 교수님의 황토색 로브, 앨버트 자신이 선물한 하얀색 로브, 페일리가 선물한 검붉은색 로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앨버트는 페일리가 마냥 곱게 보이진 않았다.

에레브를 보필한다는 명목 아래 많은 활동을 같이 하고는 있다지만, 엄밀히 따져보았을 때는 연적이었다.

그리고 앨버트는, 오랜만에 아카데미에 모습을 비춰 수업하는 에레브가, '연적의 로브를 두른 채로 수업하는 것'을 보고 싶진 않았다.

그래, 여기까지 왔다면 숨길 것이 없겠지.

앨버트는 조용히 마음 속 경쟁심에 불을 지폈다.

기필코 교수님이 하얀색 로브를 입어서 천사──설녀──에레브가 무엇인지 학생들에게 보여주겠다고, 또한 그것이 자신이 선물한 것임을 학생들에게 알리겠다고 다짐하며.

"…."

"…."

어색한 침묵 속, 앨버트는 접시 위의 모든 음식을 게걸스럽게 흡입한 다음 벌떡 일어났다.

이는 앨버트가 자리에 앉은지 3분도 채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이었다.

페일리가 앨버트를 '뭐지 이 미친 놈은' 하는 시선으로 보고 있지만, 앨버트에게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앨버트가 페일리를 내려다보며 싸늘하게, 하지만 입가에 미소를 띄운 채로 말했다.

"우리, 교수님을 아카데미에서 기다리자? 굳이 왔다갔다 하면서 비효율적이게 움직일 바에는, 그게 낫지 않을까?"

페일리가 앨버트를 삐딱하게 올려다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미처 숨기지 못한 살기(殺氣)가 가득했다.

페일리는 앨버트의 시선을 맞받아치며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로브를 오랜만에 두르시는 것이긴 해.'

이번처럼 마지막으로부터 시간이 한참 흘렀을 때는, 그 다음에 이루어지는 행동이 첫 번째로 취급받고는 했다.

에레브가 두르고 있는 로브가 누가 선물한 것인지, 아카데미의 많은 학생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페일리는 절대로 에레브가 하얀색 로브를 두르는 모습을 가만히 두고볼 생각이 없었다.

그렇기에.

"그래. 그게 나아보이네. 교수님께 부담이 될 수도 있고, 그렇지. 네 말이 맞아."

앨버트의 말에 긍정은 하면서도, 페일리 역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접시에는 아직 다 먹지 못한 음식들이 올려져 있었다.

"페일리, 음식 남기면 안 되는 거 알지?"

"걱정 마."

페일리의 접시 위에 올려져 있던 튀김을, 페일리는 단번에 손으로 집어 입에 쑤셔넣었다.

못해도 대여섯 개는 되던 튀김들이 몽땅 페일리의 입속으로 도망갔다.

그녀는 이제껏 살면서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빠른 속도로 튀김을 삼켰다.

"다 먹었어."

페일리와 앨버트의 시선이 허공에서 교차했다.

그리고 이때, 둘은 비로소 서로 하고 있는 생각이 엇비슷하다는 결론을 세웠다.

눈 앞의 남자──여자──는 자신이 선물한 로브를 에레브 교수님에게 두르려고 하고 있었다!

둘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접시를 반납하고 식당에서 빠져나갔다.

둘은 기숙사로 향하지 않고, 곧바로 아카데미의 밖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앨버트는 정문으로, 페일리는 후문으로.

'교수님의 단잠을 깨우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로 넘겨줄 수 없다.'

정작 사건의 중심에 있는 당사자인 에레브는 현재.

"…으부…."

침대에서 아직도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바로 옆의 창문은 그녀가 자는 동안 다녀간 누군가가 환기를 위해 열어둔 상태였다.

창문에서 이따금 불어오는 세찬 바람에 신음하며 그녀는 더욱 이불속으로 파고들어갔다.

아카데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알아채지 못한 채.

침대 옆의 서랍 안에는 세 개의 로브들이 고이 모셔져 있었다.

로브들은 각각 황토색, 하얀색, 검붉은색을 띄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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